(가) 용왕이 토끼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뱃속에 깊은 병이 들어 백약이 효과가 없었는데 뜻밖에 도사의 말을 들으니 너의 간을 먹으면 효험을 보리라 하여 너를 잡아왔으니, 너는 조그만 짐승이오 나는 수궁 대왕이라 너의 뱃속에 든 간을 내어 나의 골수에 든 병을 낫게 함이 어떻겠는가?" 하고 토끼를 동여매라 명령한다. 이에 좌우 나졸들이 달려들어 결박하니 토끼가 몹시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가만히 생각하기를 '내 별주부에 속아 사지(死地)에 들어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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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또 웃고 말하기를, "별주부 국록을 먹고 임금을 섬긴다면 마땅히 온 힘을 다해 충성해야 할 것을 벽계수 가에서 소생을 만났을 때 왕의 병환 말씀을 하였으면 조그만 간을 아끼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 말을 조금도 하지 않고 오직 용궁 자랑만 하기에 소생이 생전에 용궁 구경을 할 뜻이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세상 인심이 극악하기에 이를 피하고자 들어왔더니 일이 이렇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 일은 비유컨대 급한 곽난에 청심환 사러 보냄과 같습니다." 용왕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너의 말이 극히 간사하구나. 지금 간을 내라 하는데 무슨 딴 말을 하는가?" 하고 호령이 추상같으니, 토끼 망극하여 방귀를 잘잘 뀌며 반쯤 웃으며 아뢰기를, "세상 사람이 소생을 만나면 약에 쓰려고 간을 달라 하기에 소생이 이루 입막음을 할 길이 없어 간을 내어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고 다녔던 바 마침 별주부를 만나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저 들어왔습니다." 하고 별주부를 돌아보며 꾸짖기를 "이 미련한 것아, 이제 용왕의 기색을 보건대 병세가 매우 위중하거늘 어찌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하니, 용왕 더욱 노하여 말하기를 "간이라 하는 것이 오장(五臟)에 달려 있거늘 어찌 임의로 넣었다 꺼냈다 하겠는가? 끝내 나를 업신여기려 하는구나" 하고 좌우에 명하여 "저 놈을 바삐 배를 따고 간을 꺼내라" 하니 토끼 망극하여 아뢰기를 "지금 배를 가르고 보아 만일 간이 없으면 누구더러 달라 하며 죽은 자는 다시 살 수 없어 후회막급이니 소생의 명을 살려주시면 간을 갖다가 바치겠습니다."
왕이 더욱 분노하여 좌우를 재촉하자 무사가 칼을 들고 달려들어 배를 가르려 하니 토끼가 얼굴을 끝내 변하지 않고 급하게 아뢰되, "소생이 간을 내어 두고 다니는 표적이 분명하오니 감하여 보십시오." 하니 용왕이 말하기를 "무슨 표적이 있느냐?" 토끼 말하기를 "소생이 다리 사이에 구멍이 셋이 있어 한 구멍으로는 대변을 보고 한 구멍으로는 소변을 통하고 한 구멍으로는 간을 출입하오니 살펴보십시오." 하니 왕이 이상하게 여겨 좌우에게 명하여 토끼를 자빠뜨리고 사타구니를 살펴보니 과연 틀림이 없었다. 용왕이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하기를, "그러면 간을 넣을 때는 어느 구멍으로 넣으며 어찌하여 너의 간을 약이 된다 하는가?" 토끼 그제서야 마음을 진정하여 아뢰되 "간을 넣을 때는 입으로 삼키옵고, 소생은 다른 짐승과 달라 춘하추동 음양오행 일월성신의 모든 정기를 다 쏘이고 아침 이슬과 저녁 안개와 새벽 서리를 받아먹어 오장육부의 맑은 기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약이라 하나이다."
용왕이 이 말을 듣고 그럴 듯하여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아뢰되, "그 놈의 말이 모두 간사하오니 배를 갈라 보도록 하소서." 용왕이 또한 옳다 생각하고 토끼에게 말하기를 "네 말을 들으니 그럴 듯하다마는 혹 도로 넣고 잊었는지 모르니 배를 갈라 보는 것이 제일 낫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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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말하되 "산중의 조그만 몸이나 대왕의 후대를 입어 벼슬까지 봉하시오니 불승황감하는지라 청컨대 별주부와 함께 세상에 나가 간을 가져오겠습니다." 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대연을 배설하여 토끼를 대접할 새 대사간 벼슬하는 자가사리가 아룁기를, "토끼의 말을 믿을 길 없사오니 토끼를 용궁에 머무르게 하고 별주부만 보내어 간을 가져오게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옵니다." 하니, 토끼 내심으로 자가사리를 소리 없는 조총으로 쏘고 싶던 중 용왕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이미 정한 일에 네 무슨 잡말을 하는가?" 하고 금부에 내리라 했다. 토끼 종일 대취하여 즐기며 말하기를, "대왕의 병세를 볼진대 염라대왕 삼촌이요, 불로초로 두루마기를 하고 우황 감투를 하였어도 황당하오니, 바삐 나가 간을 가져오겠나이다." 하니, 왕이 별주부를 불러 교유하여, "토끼 말이 근리(近理)하니 공연히 죽여 쓸 데 없고 함께 가서 간을 가져오는 것만 같지 못하니 제 나가 속히 간을 가져오라." 하고, 각 처에 공문을 보내었다. 각설, 토끼 별주부 등을 타고 물 밖을 향하여 나가며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처음 너에게 속아 죽을 뻔한 것은 나도 지각없었거니와 저 용왕도 어림없어 내가 살아나게 되었도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세상에 간을 내었다가 넣었다가 하겠는가? 아무러나 별주부를 잘 달래어 빨리 나가리라.'
(나) "장인님! 이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참,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을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