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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조의 왕릉이라 그런지
소나무부터 관리가 남다릅니다.
한여름의 이 잔디 빛 참 곱습니다.
냉큼 한국인으로 돌아오렷다.
이글스님~
그늘이 있는 숲길은 참 걷기 좋네요.
방장님이 뒤에서 오시며 이쁘게 담아주셨습니다.
걷다보니 건물이 보입니다.
들어가봐야지요^^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비(新羅始祖王妃誕降遺址碑)와
알영정(閼英井)
알영부인(閼英夫人)
삼국사기에 혁거세 거서간이 태어나던 그 해
알영정(閼英井)가에 용(또는 鷄龍)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 아이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는데,
월성북천(北川)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고
태어난 곳의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알영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탄생 설화의 비범함처럼~
자라면서 용모도 빼어나지고
덕행까지 두루 겸비하니
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며
알영도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2대 왕 남해 차차웅을 비롯 3남 2녀를 낳았고
혁거세와 알영을 두 성인(二聖)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나정(蘿井)에서 태어났고
혁거세의 부인 알영 또한 우물에서 태어나죠.
우물이란 물을 잉태하는 신성함
만남의 장소요
정보 공유의 장소입니다.
중매의 장소며 인연의 장소
신라 시조의 우물 탄생 설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며...
방장님...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 신고 오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런 정보는 미리미리 좀 주시지 않고...
풀밭을 많이 많이 걸어야해요~
숭성각(박혁거세 신도비와 비각)
신도비(神道碑)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근처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을 말합니다.
경주 숭덕전(慶州 崇德殿)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는 곳
오릉에 관한 설명 읽어보시구요.
위치 설명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오릉 후문에 있는 '신원갤러리'
빙수 먹으러 들어갔다가
빙수는 없고 음료수만
벌컥벌컥~
동네 작은 꼬마도서관 같은 느낌
동네 분들 마실 자주 나오실 듯
주인장님도 친절하시고요.
우리들 잠시 앉아서 열기좀 식히며 갑니다.
오릉네거리쪽으로 방향을 다시 틀어
김종대ART형제공방 앞을 지나며...
물 밖으로 뛰쳐나온
나무물고기들과 인사좀 하고
요녀석들 귀엽네요.
시간 여유있으시면 여기 들러서
구경해보시면 좋을 듯^^
우리는 밖에 있는 작품들만 봤는데...
솜씨 있으시네요.
찾아보니 이곳 주인장님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신 듯~
그렇게 잠시 발 묶였다 갑니다.
물고기들의 꿈은 뭘까요?
이글스님의 꿈은 뭘까요?
작품 세계를 통해 하늘을 날고자 하는 김종대님..
주인 보이지 않는 공방 밖에서
멋진 작품 잘 만나고 갑니다.
백일홍 꽃이 길가에서 목말라 하네요.
꽃말은 행복, 인연, 그리움..
이렇게 행복한 시간 속에 인연을 만들며
함께 걷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는 더위와 씨름하며 걷던 이날이
많이 그리워도 지겠지요^^
음료수도 마실 때 뿐이고...
조금만 걸어도 더워서...
켁켁...
우리가 가게될 남산 동북부쪽 지도...
바람이 부는 곳,
조금이라도 그늘이 있는 곳 찾아
도로를 왔다갔다 걷습니다.
더워서 안되겠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팥빙수 먹고가야지..
카페를 찾아서~~
팥빙수... 나와라!!
망산 어여쁜가요??
들판은 초록 융단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
벼 알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망산과 뒤로 벽도산...
그 뒤로 호암산과 단석산까지...
벽도산과 선도산은 男子山~
그들이 끝없이 바라보는 미인 산인 망산 女子山~
그러나 망산은 둘의 마음을 받을 수 없고
오로지 경주 남산만을 사랑하니...
망산을 사이에 두고
오랜세월 끝없는 싸움 중인 벽도산, 선도산
그리고
망산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인 남산
방장님 후기에서 봤었네요.
거대한 고분 같은 망산이라 표현하셨었는데...
그 표현에 격하게 공감하며 걸어갑니다.
ㅎㅎㅎ
팥빙수 먹으러 드뎌 들어왔습니다.
옛날 국그릇 같은 사기 그릇에...
셋이서 두 개,
저는 이쪽 먹었다가 저쪽 먹었다가...
이글스님꺼 홀짝
방장님꺼 홀짝
흐흐...
맛있습니다. 냠냠~
더위 식히면서 가지 않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지지 말입니다.
우리는 소중하니께~
날씨가 너무 더워 도로 버리고..
숲으로 도망 들어옵니다.
삼불사 지구쪽으로 들어가서, 삼릉 찾아 갑니다.
경주시 배동에 자리한 대한불교원효종 사찰인
망월사(望月寺)를 지나갑니다.
망월사는 신라의 원효(元曉) 스님을 종조(宗祖)로 함.
<종조(宗祖)란 한 종파를 세워서 그 뜻을 펼친 사람을 높여 이름>
전봇대에 삼릉 가는 길 표식
하하..
저는 촌에 살아서 그런지 이런 이정표가 참 좋습니다.
낙서인듯 낙서 아닌.....
바닥엔 야자수 카펫~
그래도 그늘 숲으로 들어오니 살 것 같네요.
새 지저귀는 숲속을 걸어~
국립공원이지만 일반 묘도 보입니다.
국립공원되기 전부터 있던 묘겠지요^^
인공꽃이 묘 옆에서 나뒹굴길래
잘 세워서 정리해주고 걸어 갑니다.
삼릉숲 소나무 너무 멋지죠?
살아서 꿈틀꿈틀 하늘로 올라가는 듯...
우왕~~ 좋네요. 좋아.
저 앞에 삼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돗자리 가져와서 한 숨 꼴깍 자고 가면 좋겠습니다.
이 좋은 기운...
왕릉 무덤가라고 해도
무섭지 않고 어쩐지 편안합니다.
소나무 기운 덕분인가??
경주 배동 삼릉, 사적 제219호
박씨 왕인 3기의 왕릉
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53대 신덕왕(神德王)
54대 경명왕(景明王)
8대와 53,54대의 무덤이
같이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죠?!
7척 거인이었다는 박씨 아달라왕
(8대왕, 재위 30년)
왕이 되고 길을 만들고 농사지을 땅도 넓히며
내실 기하며 30년을 재위했던 왕.
홍수와 가뭄, 지진, 메뚜기 떼 등
천재지변의 시련도 겪고...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고
왕위를 넘보던 길선이란 자가
백제로 도망을 치게 되니
직접 출정하며 백제와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왕비가 아달라왕을 배신하며...
이매라는 자와 사귀면서 아달라왕과의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고...
아달라왕은 이매를 죽이고,
그후 아달라왕도 죽으며...
그 후 왕위는
왕비와 바람났던 이매의 아버지인
석씨 벌휴(9대)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매는 죽었지만 내례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지요.
바로 10대 왕이 되는 내해이사금
여기 경주의 삼릉 소나무숲은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으로도 유명하죠.
기묘하게 휘어져 자라는 소나무들
몸 자체가 예술입니다.
이 소나무들처럼 우리 몸도 자체가 예술이 되게~
아자자!!
그러고 보니 배병우 작가님
우리 J3 배방장님과
이름 끝자 하나만 다르시네요.
배병우 작가 소나무숲 사진(위), 퍼왔습니다.
배병만 방장님도
J3에서 사진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신데^^
방장님 후기속 사진 보면 뭔가 좀 남달라요.
영혼을 지켜주는 나무이자
하늘과 소통하는 나무인
소나무
삼릉, 3개의 능과 3개의 상석(床石)
상석은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을 말하죠.
53대 신덕왕(5년 재위)
184년 아달라 이사금(8대, 박씨) 왕이
석씨 벌휴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728년이 지난 한참 뒤...
912년 53대 신덕왕이(박씨, 5년 재위)
52대 효공왕(김씨, 15년 재위)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49대 헌강왕(경문왕의 맏아들)의 사위였던 신덕왕
52대 효공왕(헌강왕의 서자)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고구려의 궁예(弓裔),
후백제의 견훤(甄萱) 등의 세력 밀리게 되며
위태위태~
그리고
54대 경명왕(53대,7년 재위)
바로 신덕왕의 태자입니다.
신라가 기울어가던 시기의 통치자.
924년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삼릉은 그렇게 연결된 박씨 성의 왕족 무덤^^
그 옆으로 조금 떨어져서 있는
53대 신덕왕의 둘째 아들이며, 54대 경명왕의 동생인
55대 왕인 경애왕(景哀王)
경명왕이 죽은 뒤 그 아들들이 어려서
대신 왕위를 이어받아 왕에 올랐습니다.
3년을 재위했는데
나라는 몹시 궁핍했고
현재 포석정이라는 곳에서
경애왕이 주연을 즐겼다라고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만...
본래 포석정은 포석사라는 사당이 있던 곳으로
나라의 안위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고 보는 관점이
훨씬 더 타당하고 지배적입니다.
견훤의 강요로 경애왕은 결국 자살하게 되며
잠시 박씨 왕족에 머물다가
그의 이종 동생 경순왕(김씨, 8년 재위, 46대 문성왕의 후손)이
보위를 승계하게 됩니다.
설명 한 번 읽어 보세요.
친절한 갱주 할매 주인장으로 계시는
삼릉 휴게소 들러
또 음료수 폭풍 흡입 후 아이스크림 들고 출발...
삼릉솔숲 설명이구요^^
가서 걸으며 온몸으로 호흡하며 솔숲 만나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요~
가운데로 형산강이 크게 흐르며
좌측의 대천이 형산강으로 합류
우측의 북천과 남천이 형산강으로 합류합니다.
형산강 팔경 한번 보며 넘어 갑니다.
방장님 메로나 하나 물고~
아이스크림을 드시는건지,
껍질을 드시는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글스님은 거의다 드셨네요.
빠름~
솔숲 걸으며 먹는 달달한 아이스크림맛~~
ㅎㅎㅎ
고것참 침 고이며, 시원~~~합니다.
경주 삼릉 솔숲~
꾸미지 않은 휘어짐의 아름다움
어쩜 여기 소나무들도
나름 주위에 친한 녀석들과
더 많이 붙어 자라지 않나 싶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한 사람들과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가까이 보내는 것처럼...
복장은 뭐~
목에 수건 하나 대충 걸고
편한 냉장고 바지에
운동화~
콩밭 매러 가야할 듯 싶은 모습입니다.
방장님 뒤에 오시면서 찍어주셨습니다.
멋진 곳이니까 제대로 찍어야겠죠.
이글스님과 함께. 저는 Jiri-깽이입니다.
(근데 지리깽이가 휴가 때 지리산에 안가고 갱주에는 왜 왔을꼬~)
이글스님과 신나서 이야기하며 걸어갑니다.
ㅎㅎㅎ
뒷모습만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겠죠^^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拜洞石造如來三尊立像)은
삼국시대 불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63호로 지정.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모아서 세운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 읽어보시구요.
계단 몇 개를 오르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에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표현
좌 우 양쪽의 보살
7세기 작품으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어쩐지 비슷한 시대의 작품인
위의 백제의 서산마애삼존불과도 느낌이 비슷한듯^^
2017년 12월 가야산 석문봉 산행하며 들러 찍었던
사진 한점 추가해 봅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중생의 두려움과 고난을 해소해 보이는 수인으로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여원인(與願印)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원하는 바 이루게 하고자 하는 자세로
왼손을 아래로 내리고 손바닥을 보이게 하는 수인
지마왕릉, 포석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남산 자락의 안내판
쉽고 간단하니 보기 좋죠.
나무데크까지 쭉쭉 뻗어 올라오는
풀 가득한 대진지(연못?)를 지나~
찾는 사람이 없는지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었습니다.
지마왕릉까지는 이제 지근~
다~ 온거나 진배 없죠.
짜잔~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지마왕릉~
요즘 추석을 앞두고 벌초가 한창이죠^^
누구 솜씨인지 몰라도 100점짜리네요.
옥의 티가 하나도 없어요.
저도 소싯적에 갈퀴질좀 했었는데...
ㅎㅎ
6대 왕이었던 지마왕릉(祗摩王陵)
지마왕은 5대 파사왕의 적자로
22년간 재위하였습니다.
백제와는 사신을 보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가야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전쟁이 빈번
아들이 없어 죽어
3대 유리왕의 맏아들인 일성 이사금이
그의 뒤를 이어 7대 왕에 오르게 됩니다.
지마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이 없었나 봅니다.
20년 넘는 세월 재위인데도 설명이 짧습니다.
찾아봐도 별 내용이 안나오네요.
1대 혁거세로부터
2대 남해-3대 유리
(4대는 사위인 석씨 탈해가 23년간 재위)
5대 파사-6대 지마-7대 일성-8대 아달라까지
시조의 박씨 일족의 화려한 무대가 막을 내리며...
9대 벌휴 석씨(탈해의 손자) 일가로
왕위가 넘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지마왕과 아달라왕의 이름에 관한 웃픈 이야기
성이 박씨라..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면
음담패설이 된다는
ㅠㅠ
누가 찾아냈는지 그 사람도 대단~합니다.
포석정에 관한 설명 읽어보시구요.
사적 제1호로 지정된 포석정(鮑石亭)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정식 명칭은 '경주 포석정지'
포석정지는 통일 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줄기 둘레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벌였다고 하는 곡수거(曲水渠).
55대 경애왕(927년)
견훤의 습격으로 연회중이던 경애왕은
스스로 죽음을 맞게되며
찬란한 경주의 천년은 그렇게 사그라 듭니다.
포석정 앞에 말을 세울 때
생각에 잠겨 옛일을 돌이켜보네
유상 곡수하던 터는 아직 남았건만
취한 춤 미친 노래 부르던 일은 이미 옳지 못하네
함부로 음탕하고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쏜가
강개한 심정을 어찌 견딜까
가며가며 오릉의 길 읊조리며 지나노니
금성의 돌무지가 모두 떨어져버렸네
_서거정, 십이영가(十二詠歌)_
또한 연회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설도 많이 제기되고 있으니
단정짓지 말고~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우리 노력해야겠죠^^
위에 있는 설명 표지판과 대조적으로 서 있습니다.
이 설명도 한 번 읽어보시죠.
포석정 둘러보고 나와
식혜 한 캔씩 시원~하게 하고
주차장 입구에서 입장료 계산 중...
땡볕 들녘을 지나 유리왕의 맏아들이었던
7대 일성왕릉 찾아 걸음 옮깁니다.
머리가 뜨거워서 지끈지끈...
더우면 벗기도 하지만
뭔가로 가려서 열기를 차단하기도 해야합니다.
종아리 양쪽이 뻘겋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글스님이 잘 익은 복숭아 같대요.
따끔따끔~
남간사지 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09호, 통일신라시대 중기
남간사 옛 절터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논 가운데 세워진 화강석 당간지주
크기 비교차,
남간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방장님 인증해 주십니다.
당(幢)을 거는 장대인 당간(幢竿)을 걸어두기 위하여
세운 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하며
당이란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깃발로
보통 불전이나 법당 앞에 걸어둔다고 합니다.
당간은 당을 거는 장대
당간은 보통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사악함을 깨뜨리고 정당함을 기린다는 뜻.
일성왕릉 가는길...
낮은 담장을 넘은 석류가
먹기 좋게 익어가며 갈라집니다.
경덕사(景德祠)
ㅋㅋ
배방장님 배문(裵門)의 시조이자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인 배지타와
고려 개국 원훈 배현경을 모신 사당
후손들이 1995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방장님도 돈좀 내셨을라나요?
우리 시조도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평산신씨)~
(고려 왕건 개국공신으로는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
우리 한 편 아이가? 맞제~
방장님 성씨, 裵(배) 옷 치렁치렁할 배
걸음하며 종종, 꽤, 쫌 많이 들었죠^^
귀에 딱지 앉았습니다.
이글스님하고 저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곳에서 살피고 계십니다.
어쩜 물빛이 저렇게 노랄수 있는지...
금강저수지를 지나~
백련은 다른 연꽃보다 좀 오래 늦게 핀다고 하죠.
귀한 자태로 우리 일행 반겨 주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연꽃
연꽃의 꽃말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순결
흰연꽃의 꽃말은 결백
연꽃 구경은 비오는 날이 제격인데...^^
오늘은 날이 쨍쨍~
더위에 지친 두 냥반 오고 계십니다.
그늘에서 기다리며...
한 컷 담아봅니다.
어여 오이소.
일성왕릉.
하단에 석축을 쌓은 것이 다른 왕릉과 차이가 있네요.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은
7대 왕으로(134~154, 재위20년)
3대 유리이사금의 맏아들.
134년은 유리이사금이 죽은지 77년이나 지난 뒤이므로
일성이사금이 왕위에 오른 시기는 적어도 80세 이상~
할배 왕~으로
20년이나 재위하셨으니
참말로 대단하십니다.
우리 노송님 일성이사금에 비하면 애^^네요.
일성왕릉 설명 보세요.
시조 박혁거세로부터 남해차차웅으로
이어지는 가계도 참고 하시고요.
남간마을을 지나갑니다.
창고 건물 올리려고
터 닦고 계시는 분들과 인사하며 지나가고...
적당히 긴~ 나정 설명 먼저 읽어보시고요.
경주 분지 한가운데 솟아 있는 남산 자락~
신라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는 곳...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를 간직한 나정(蘿井)과
통일신라의 멸망을 예고한 포석정(鮑石亭)이 함께 하는데...
포석정 만나고 왔으니,
이번엔 잠시 나정(蘿井)도 보고 갑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전한 지절원년 임자(前漢地節元年壬子:BC 69) 3월 1일,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村)의 촌장들이 모여,
군주를 선출하고 도읍을 정하자고 결정한 뒤
일행이 높은 곳에 올랐다.
그런데 양산(陽山)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돌며
백마 1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어 가보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갔고
붉은색의 커다란 알만 남았는데,
이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상히 여겨 동천(東川)에서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 ·짐승들이 춤추듯 노니니
천지가 진동하며 해 달이 청명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세상을 밝게 한다 하여
혁거세라 이름하고,
알이 박같이 생겼다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나정 터입니다.
날이 뜨거우니
왕릉 유적지 다니며
사람 만나는 게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미칠 수 없죠^^
우리 셋은 미친겨~
ㅎㅎ 미안요.
방장님 이글스님~
방장님 다음 갈 곳 지도 살피고 계시고...
그 곁의 이글스님
이글스님 안경 속에 저와 방장님 있네요.
^^
다시 길 되짚어 오릉네거리 방향으로 갑니다.
ㅎㅎㅎ
이 두 양반님네들
오릉네거리 신호 대기 기다리며...
그 작은 그늘이라도 놓치지 않고 찾아 들어가
털썩 주저 앉아요~
사진 찍자마자 저도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셋이 같이 주저 앉습니다.
같이 걷는다는 거
이런겨~
그늘~ 속은 그래도 천국~
... 2부도 곧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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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치우선배님은 앞으로 스크롤압박은 사용하지 말아야할듯....ㅎㅎㅎ
냉장고 바지 입은 모습이
전형적인 농촌 아낙네같습니다..
더운날 고생하셨고요..3인의 우정의길 잘보고갑니다
후기가
축구같이 전반전,후반전이네요..ㅎㅎ
제 고향 경주 다녀가셨네요^^경주가 손바닥만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릴적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고 대왕극장 근처에만 가면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장소를 특정하지 않아도 될덩도였습니다. 더운날 고생하셨습니다~
이건 뭐 개족보구먼... ㅋㅋ
띠악빛에 세분이 총총걸음으로 천년의 향기 고행길을 재미지고 야무지게 걸음하시네요 포항할배랑 깽이랑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꼭 父女 모습 같어요 ㅋㅋ
후반전엔 누가 MVP가 될 까^^
대단타 울 깽이님... 퐈이팅 으싸으싸~
천년고도 경주를 모두 다돌아보는 겁니까?
해안길 동지들도 많이 함께가시죠.하이틑 경주 두루두루
즐감하고 갑니다.
ㅎ- 부녀같나요 ?
연무대처자님 오늘의 피로를 잊게하는 멋진 후기글 잘봤습니다
삼리에와서 내모습이 이마이 나온건 첨입니다
초상권 청구하겠습니다 ㅎ
언제또 걩주할배집에 올라는지 ㅋ ㅋㅋ 송아지싸서 열씨미 키우겠습니다 연무대처자님 억쑤로 욕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푸~~~우~~~욱 쉬세유
우째 나는 위에 사진은 안보이고 배꼽만 보이네요
경주 나들이 가장 더울때 지대로 걸었네요 땡볕에ㅎ
덕분에 경주 역사에 대해 다시 공부하게 됩니다
더운날 억시로 고생했습니다 ^^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사진들이 많이 외출을 하였네요ㅇㅅ 老 松
발목 치료한다고 안갔드니, 세분이서 잼나게 걸음 하셨네요...
배꼼만 있는 사진 돌려다오,,, 디분날에 고생 하셨네요, 울 빵순이,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논산에서 경주는 참 머네요.
구미에서 가는거보다 두배는 더 걸릴듯.
정성스런 후기 그냥보기 아깝네요..ㅎㅎ
경주는 이지역 사람이면 초등학교때 수학여행으로 가곤합니다.
최근에 천년의향기로 찾아가 비슷한 분위기는
느껴 보았네요..
그림들 잘보고 갑니다.
경주 왕릉투어를 하셨네요.그 더운 날 경주에 계시는 왕들을 몽땅 모셔 오셨네요.
가만히 앉아서 아련하고 있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포석정 입장료 내고 다녀온 기억이 있습니다
더분날 경주 천년의 향기 다니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긴글 읽느라 혼났네 ㅎ
몇 해전에 경주를 처음으로 갔었는데 그때도 무척이나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여행기 작성하려면 공부도 상당히 오랜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데, 보는 이는 좋군요.
더운 날 아스팔트 걸으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