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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이만희교 신천지를 이기는 무기
친구는 다투지만 적은 싸워야 합니다. 이만희가 이끄는 신천지 교도들이 이미 기독교를 이단으로 몰아가고 교회에 침투하여 전쟁을 시작하고 교인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직접이든지 간접이든지 적과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이만희교 신천지 교도들이 기독교를 찌르고 죽이고 있는데 기독교는 싸울 생각은 않고 방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싸울 무기도 없이 수동적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 적과 싸워 이기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
하나는 적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하고,
하나는 적의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한다.
본장은 적을 이길 수 있는 우리의 무기가 무엇인가 살펴보고다음 장에서는 적의 상태를 살펴봅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어두운 세상의 주관자인 마귀와 귀신뿐만 아니라 마귀의 쓰임 받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적과 싸워 이기려면 여러 가지 최신무기를 준비해야 하지만 영적싸움에 있어서 무기는 단 한 가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말씀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장 11-17절
기독교의 무기는 성경인데 신천지 이만희교도 외형적으로는 성경을 무기로 가지고 싸우려고 합니다.
같은 무기를 가지고 싸울 때 이기는 방법은 무기의 성능을 알고 무기를 누가 잘 다루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됩니다.
본장에서는 기독교가 가지고 싸워야 하는 무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봅니다.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아야 상대방이 성경을 사용할 때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만희 신천지교도들과 싸우는 방법은 적들과 똑같은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을 비방하고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사도들, 선지자들은 이런 육적인 싸움과 무기가 아닌 오직 성경과 진리를 가지고 싸워 이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정확한 진리의 답을 알 수 있게 되므로 이만희교 신천지나 이단들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설교는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성경해석은 석의를 하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석의는 본문에서 말하는 영적실체를 찾지 못하면 할 수 없습니다.
한편의 설교가 나오기까지는 본문 - 말하고자 하는 영적 실체 - 석의 -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 편의 설교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실력이 없으면 남이 풀어 논 해석이나 설교를 가져다 사용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구별 못하면서사용하기 때문에 이단 침투에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1. 기독교의 성경해석 방법
유대인들은 1500년 동안 구약 성경을 육신의 눈에 보이는 역사적 사실과 그 안에 들어있는 교훈을 찾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이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 그들을 소경과 귀머거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유대인들과 똑같이 성경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건에 약간의 설명을 붙여 전해주거나 겨우 본문 속에서 교훈을 찾아 전해주는데 이런 설교가 유대인들보다나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사실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경을 보는 방법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이 제자훈련의 핵심이었습니다.
오늘날 제자 훈련이라며 가르쳐 주는 것은, 성경공부, 직분자 훈련, 교회의 일군 되는 방법 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고 삶속에서 그 말씀대로 사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신천지 이만희교나 이단들은 자신들이 나름대로 만든 성경해석 방법을 가지고 말단 평신도까지 교육으로 무장을 시켜 싸우라고 내 보내는데 기독교 목회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해석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성경만 가지고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무장도, 무기도 없는 교인들을 싸움터에 내보고 있는 한, 절대 싸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경을 펴서 “이 본문을 해석하세요.” 하면 기독교 목회자들 중에 몇이나 즉석으로 성경만 가지고 해석할 실력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기독교도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며 제시하는 것은 귀납법, 연역법의 방법입니다.
귀납법, 연역법은 기독교가 만들어 놓은 방법이 아니고 세상 학문이 만들어 놓은 것을 교회가 사용하며 최고의 성경해석 방법인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귀납법은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로부터 그러한 사례들이 포함 되는 좀 더 확장된 일반적 명제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과거에 나타났던 일에 근거해 미래에 어떤 것이 일어날지를 예측하기도 하고, 현재의 사 실들에 근거하여 과거의 사실들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하 는 것으로 성경의 단어나 구절을 정하고,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 중에 비 슷한 것을 찾아내어 추론적인 결론의 답을 내리는 것입니다.
연역법은이미 증명된 하나 또는 둘 이상의 명제를 전제로 하여 새로운 명제를 결론으로 이끌어내는 것으로 연역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므로 일정한 명제를 출발점으로 하여 답을 내리는 것입니다.
두 방법은 각기 장점이 있지만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 실체를 모른 상태에서 추론적으로 답을 만들어 출발하기 때문에 해석하는 자들의 생각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 실체를 모르고 출발하기 때문에 똑같은 본문을 제시하면 열 명의 목회자들이 쓴 답이 모두 다르게 나옵니다.
답이 열 가지가 나온다는 것은 아홉의 답은 틀린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시대 최고의 성경해석이라면서 등장한 것이 강해설교인데 강해설교는 성경해석 방법이 아닙니다.
강해 설교란 단어나 문장을 풀어서 청중들이 쉽게 알아듣도록 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정통 강해설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편하도록 육하원칙의 틀을 만들어 사용한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강해설교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둔갑했습니다.
강해설교는 설교를 잘 전달하기 위한 테크닉의 부분이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려야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내 영혼의 구원받는 방법들을 성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태복음 13장 11. 15-16절
성경을 한글로 보면 똑같이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어려워 최초로 기록된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 원어 연구를 많이 하는데 언어 연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이유 중에 중요한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전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글로 기록된 성경을 모두 알거나 또 원어를 통달한다고 성경해석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원어로 모두 외우고 원어로 성경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던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 실체 곧 목회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이만희교나 이단이 출몰하게 된 배경은 기독교에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나, 비유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실체로 생각하고 문장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교훈만을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보면 성적이 각각 다른 이유는 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답을 미리 가르쳐 주고 시험을 본다면 모두 100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단들은 교주부터 말단까지 무엇을 물어보아도 답이 똑같은데 기독교는 답을 물어보면 교파, 교단, 교회, 개인마다 답이 다릅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단들은 답을 모두 정해놓고 가르쳐주고 있는데 기독교는 서로 맞는 답을 찾는다고 하며 각 교파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와 신학만이 정답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누가 답을 말해도 자신들이 만든 교리와 신학의 답과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합니다.
교리, 신학, 훌륭한 사람이 답을 말해도 성경과 다르면 그 답은 정답이 아닙니다.
이런 틈을 이단들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확한 답을 알고 가르쳐 준다면 어떤 이단들이 공격해도 흔들리지 않고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경을 보는 눈
예수님께서 지금 나를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하면서 질문을 생각해 보고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독자들도 서서히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우유와 밀크라고 답을 쓰면 정답일까요? 오답일까요?
이렇게 답을 쓰면 우유도 있고, 밀크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유는 한글 단어이고, 밀크는 영어 단어입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우유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에게는 밀크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육신의 눈으로 보면 모두 똑같은 한글로 보이지만 똑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어도 문장 안에 단어가 같은 뜻으로 쓰여 지는 것이 있고, 다른 뜻으로 쓰여 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답이 같은 것이 있고, 답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려지려면
먼저 아래의 세 가지 단어가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래의 세 가지 단어를 보시기 바랍니다.
12사도 - 보석 - 마음
포도나무 - 좋은 나무 - 마음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한글은 셋의 단어가 모두 다릅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요한계시록 21장 14, 19절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3-35절
육신의 눈으로 보면 12사도, 보석, 포도나무, 좋은 나무, 마음은 각기 다르고 역사의 문장 속에서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뜻으로 보면 똑같은 답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천지교 교주 이만희가 즐겨 사용하는 비유 해석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이만희는 보석, 포도나무, 좋은 나무, 마음을 이만희 자신으로 모두 만들어 해석해 냅니다.
그러나 이만희나 이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똑같은 뜻을 담고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 12사도, 보석, 마음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셨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장, 우동을 만들어야 할 제품으로 짬뽕을 만들어 버립니다.
| 12 사도 | 보 석 | 마 음 |
| 포도나무 | 좋은 나무 | 마 음 |
| 역사속의 실체 | 비유로 사용된 단어 | 영적 실체 |
먼저 셋의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 12사도와 포도나무는 역사속의 실체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2. 보석, 좋은 나무는 영적실체를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
비유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입니다.
3. 마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영적 실체입니다.
마음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마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설명해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육신의 눈에 보이는 보석, 좋은 나무를 비유로 사용하여 마음을 설명해 주려고 선택한 단어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단어와 문장이 있습니다.
1. 역사적 사실의 문장과 단어.
2. 영적실체를 설명해 주기 위해 비유로 사용되는 문장과 단어.
3. 영적 실체의 문장과 단어.
이 셋을 구별하지 못하면 눈으로 한글로 기록된 성경은 읽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내가 책이나 편지를 읽는다고 해도 저자의 뜻과 편지를 보내는상대방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쉽게 알도록 하기 위해 이와 같이 세 종류로 구별하여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기독교뿐 만아니라 이단들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눈을 가지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됩니다.
기독교는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면 안 되고, 가감하면 안 된다는 성경 구절을 잘못 이해하여 역사, 비유, 영적실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똑같이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목회자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를 할 때는 비유,영해라는 말을 사용하며 자신들이 찾아낸 것만 진리라고 주장 합니다.뿐만 아니라 다른 목회자들이 자신과 같은 방법을 가지고 해석하면 알레고리 해석이다. 또는 이단으로 단죄를 합니다.
이만희나 이단들도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면 안 되고 가감하면 안 된다는 성경 구절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 비유, 영적실체를 구분하지 않고 셋 모두를 비유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답, 자신들의 교주를 신으로 만든 답이 정답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장 17-18절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성경에 나오는 대로 역사적 사실은 역사로, 비유는 비유로, 영적실체는 영적실체로 인정할 때 비로소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고 바르게 성경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무조건 비유해석을 하지 말라, 비유해석을 하면 이단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목회자들은 비유해석을 하여 교인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비유가 무엇인지, 비유해석이 무엇인지, 비유해석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모릅니다.
* 비유의 정의 *
사람은 육체와 영혼의 두 실체가 하나로 결합되어 사람이라 부릅니다.
육체는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영혼은 영원한 영의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영원한 영의 세계 안에는 구원자이신 하나님, 예수님, 천사, 구원받은 영혼, 천국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면 영어를 해야 하듯이 영원한 영의 세계에서 모든 용어는 영의 세계의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의 영혼은 영의 세계와 교통하였고 육체는 육신의 세계와 교통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 범죄 이후, 죄로 인해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의 용어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알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장 12절
예언이나 방언 등으로 영의 세계와 교통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육체가 교통하는 것이 아니고 영이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린도전서 14장 13-15절
성경에 비유라는 단어의 구절이 63구절 등장하는데 비유란 어떤 말하고자 하는 실체가 있는데 그 실체를 볼 수 없거나 설명하기 곤란할 때 상대방으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사용하여 말하는 것을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태복음 13장 18-19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13장 34-35절
성경에 비유의 단어나 문장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렇게 사용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영적인 것들로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영적인 것들과 용어들을 바로 전해주면 영혼이 죄로 인해 더럽혀진 육신을 가진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죄로 인해 영혼이 더럽게 된 사람들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과 사물들을 사용하고, 또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영적세계를 설명해 주시는데 이를 비유라고 말합니다.
정확한 용어는 비유를 사용하여 영적 실체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천국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영적세계의 언어로 말하고 영적세계의 실체를 보여 준다고 해도 죄로 인해 영의 눈과 귀가 어두워진 육신을 입은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들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알아듣고 볼 수 있는 것을 사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보고, 듣고, 읽기는 쉽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세계의 실체를 모르면서 보고, 듣고, 읽는 다 해도 소경과 귀머거리와 같습니다.
영적실체를 보여주고 설명해 주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실체를 알지 못하고 다른 실체를 찾아 이것이라고 해석하면 어찌되겠습니까?
비유를 사용하여 보여주며 말하고자 하는 그 영적실체를 찾지 못하면 100% 잘못된 해석을 만들어 거짓말을 전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비유로 말하는 것마저도 영적실체라고 생각하고, 영적실체도 모르면서 오직 비유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찾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이만희나 이단은 역사적 용어, 비유, 영적실체까지 모두 비유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실체가 아닌 다른 실체로 바꾸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과 가짜가 됩니다.
역사, 비유, 영적실체의 단어와 문장을 구별하여 보는 눈이 없으면 한글로 된 성경의 문장은 보고, 알고, 전해 줄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없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해줄 수 없습니다.
* 앞서 배운 것을 공부해 봅시다. *
이사야 5장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스라엘 족속, 포도나무, 좋은, 나쁜 포도, 정의, 공의, 포악을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스라엘 족속 | 포도나무 | 좋은, 들포도 | 정의. 공의. 포악 |
| 역사적 실체 | 영적실체의 비유단어 | 영적 실체 | |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도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해 두셨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용어와 단어들이 육신의 세계 용어인지, 영의 세계의 용어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좀 더 세분하면 역사적, 비유, 영적 단어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한글 용어의 우유인지, 영어 용어의 밀크인지가 구별되어야 한국 사람에는 밑크를 우유로, 미국사람에게는 우유를 밀크라고 바르게 전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장과 단어가 구별이 되어야 육신에게 전해줄 때는 영적실체를 비유를 사용하여 쉽게 설명해주고, 영혼이 먹는 설교를 할 때는 비유로 말한 영적인 실체를 찾아 해석한 후에 전해주어야 영혼이 생명의 양식으로 말씀을 먹을 수 있습니다.
비유해석이 무엇인지?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유를 영적실체로, 영적실체를 비유로 해석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비유 해석하지 말라, 이것이 비유다.’ 라며 소경과 귀머거리들이 서로 옳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독사의 자식(유대인) | 나무와 열매 | 선과 악의 마음 |
| 역사적 실체 | 영적실체의 비유 | 영적 실체 |
이 세 가지가 구별되어 보여 진다면 이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이 어떤 단어와 구조로 기록된 줄도 모르면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입니다.
3.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 해석방법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면 다음 중요한 것은 영원한 영의 세계의 실체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원한 영의 세계의 실체를 알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100% 이만희나 이단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기독교는 문자를 그대로 보존하려 하기 때문에 역사나 비유의영적실체를 찾지 않고 그저 본문에 대해 설명해주거나 본문에서 교훈만 찾아 전해주기 때문에 교인들이 영원한 영의 세계의 영적 실체를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단들이 영적인 문제를 조금만 언급해도 쉽게 미혹됩니다.
기독교가 바른 영원한 영의 세계, 곧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영적실체를 가르쳐준다면 이단의 가르침에 쉽게 미혹되거나 그들을 따르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답을 알고 있으면 틀린 답을 쉽게 분별할 수 있지만 답을 모르면 틀린 답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이만희나 이단들은 역사, 비유, 영적실체를 모두 비유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영적실체를 밝히면 이만희나 이단들이 설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보는 눈만 아니라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영의 세계인 천국을 완성시키려고 구원받을 영혼들을 향해 영의 세계의 뜻을 말씀하시는 것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의 세계의 실체를 아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397년 카르타고회의에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선포하면서 구속사 계시가 완료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영혼구원 받는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지식이나 새로운 계시가 있다고 말할지라도 믿지 말라는 선포입니다.
또 구속사 계시 완성의 선포는 성경을 통해 영원한 영의 세계의 영적 실체를 성경에 모두 계시하고 있다는 선포이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영의 세계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전체를 모르면서 부분을 보는 것과 전체를 알고 부분을 보는 것과 어느 쪽이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전체를 알고 부분을 볼 때 정확하게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미비점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선택한 본문만 보고 그 본문 안에서만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경은 31,073구절로 기록되어 있는데 겨우 10구절 정도만 펼쳐놓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면 무엇이 보이겠습니까?그로 인해 자신이 선택한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영적 실체를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31,073구절을 그림 한 장에 담아 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이 선택한 본문의 실체를 정확하게 볼 수 있어 정확한 답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66권 31,073구절 곧 하나님께서 보여주며 말씀해주시고자하는 영의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해둔 곳은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영의 세계의 외부를 요한계시록 22장은 영의 세계의 내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보여주는 천국 안의 그림과 설명 안에는하나님, 예수님, 구원받은 성도들, 천사들, 천국이 등장합니다.
성경 66권의 기록은 이 완성된 천국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면으로 이 영원한 천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전해주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영적실체와 뜻은 천국에 있는 하나님, 예수님, 구원받은 영혼, 천사, 마음, 천국입니다.
이 영적실체들은 어느 것 하나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실체들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며 뜻을 전해주시고자 하지만 사람의 죄로 인해 바로 전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육적인 세상의 역사, 사물, 사람, 육적 용어 등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 지니라
또는 이는 그들로 핑계하지 못하게 하심이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로마서 1장 19-22절
성경에는 사람들의 역사, 사물, 상황들의 기록들이 들어있지만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영적인 실체를 전해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장 39절
그러므로 영혼이 듣고, 먹어야 하는 설교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역사, 인물, 사물들로 시작할지라도 결론은 영적인 실체와 영적 용어로 맺어져야 합니다.
기독교가 결론을 영적인 실체로 정의하는 바른 해석과 설교를 한다면 모든 결론을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으로 결론을 맺는 신천지 이만희교나 이단들은 설자리가 없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 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13장 34-35절
예수님께서 천국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천국 안에 있는 영적인 실체들을 모두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후에 처음으로 천국에 관한 것들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창세기 1장에서부터 구약성경에 기록되는 천국과 영적인 실체에 관한 것들까지도 비유로 말씀하고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후에도 계속 천국에 관한 것들을 비유로 가르쳐 주시고 계셨는데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은 구약은 영적실체를 희미하게 보여주면서 기록되어 있고, 신약은 천국과 천국 안에 있는 영적실체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육신의 눈으로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영적 실체와 영의 세계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영적실체의 첫 번째 모습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보여주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1-23절
성경을 바르게 보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다음에 말하는 실체들을 영원한 세계의 영적인 실체로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 66권은 이 영적인 실체를 보여주고 전해주고자 기록한 것입니다.
선한 것들 중에 이 영적인 실체들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실체라고 전하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고 영원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며 만질 수 있는 사람이나, 우상들을 가지고하나님, 재림예수,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들은 모두 가짜(거짓)입니다.
* 영원한 실체 다섯 가지 절대 잊지 말자. *
하나님, 예수님, 영혼, 마음, 천국
성경은 이 다섯 가지 영적 실체를 보여주고 설명해 주고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의 영적실체를 모르면 역사를 전하고, 비유를 전하고, 윤리, 도덕, 육체의 순종 부분만 전해주게 됩니다.
육체의 순종과 절제는 순간적이지만 영이 성장하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면 육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복습해 봅시다. *
| 12 사도 | 보 석 | 마 음 |
| 포도나무 | 좋은 나무 | 마 음 |
| 역사적 실체 | 영적실체의 비유 | 영적실체 |
성경본문을 그대로 전해주거나 성경공부를 할 때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 비유, 영적실체의 기록된 사실 그대로 전해주어야 합니다. 성경 시험을 볼 때 성경에 기록된 한글 그대로 답을 적어야 100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나 성경해석은 다릅니다.
설교는 육체가 아닌 영혼이 먹는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에 육신의 눈에 보이는 육적인 사물과 육적 용어들의 영적실체를 찾고, 영적 용어로 해석하여 영혼이 먹을 수 있도록 전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육체로는 만나인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만나인 떡을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적인 만나뿐만 아니라 영적인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육체가 육신의 눈에 보이는 만나를 먹는 것처럼, 그들의 영혼이 영적인 말씀을먹고 영생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공부에서 만나라고 답을 적어야 정답이지만
영혼이 먹는 설교에서는 만나가 아닌 말씀이라고 해야 정답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6장 32-33절
한글로 기록된 성경은 한국사람 누구나 읽고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전해주시고자 하는 말씀은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삶을 전해주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사용하여 영적인 실체인 영혼구원 얻는 방법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 해석해 주어야 하는 목회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인들도 성경을 보고 역사와 문장을 알고 있는데 목회자가 성경에서 영적 실체를 찾지 않고 역사나, 본문을 그대로 전해준다면교인들에게 목회자는 필요치 않습니다.
설교에서 역사도 영적실체의 그림자와 이야기로 변하기 때문에 영혼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떡인 만나를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먹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성경 역사나 교훈을 전해주고 가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예수님의 예표라고 하는데 교인들이 들을 때는 역사는 역사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이지 아브라함이 왜 예수님인가? 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이만희나 이단들은 비록 가짜지만 성경을 해석하여 영적인 실체를 찾았다고 하면서 아브라함을 예수님이 아닌 이만희 또는 문선명, 박태선 등이 실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단으로 넘어가는 교인들도 문제지만 바르게 가르쳐주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 아래 질문에 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모세는 예수님이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다.
모세는 예수님의 예표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예표다.
모세는 예수님의 상징이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상징이다.
이만희 교도들의 답은
모세는 이만희다. 아브라함은 이만희다.
비유해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가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이단이 나오고 교인들이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 : 위의 답은 모두 정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도표 안에
| 모 세 | 아브라함 | 예 수 님 |
| 모 세 | 아브라함 | 예 수 님 |
| 역사적 실체 (비유로 사용할 수 있다) | 영적실체 |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성경해석방법을 살펴봅니다.
성공하면 진짜 예수님의 정통을 이어가는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뜻을 찾아 순종할 수 있고
이단에 절대 속지 않고 이단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타종교와 이단은 다릅니다.
타종교는 신과 정경이 전혀 다릅니다.
이단은 같은 성경을 사용하지만 해석과 신이 다릅니다.
기독교는 신이 예수님이고, 신천지는 신이 이만희입니다.
모세, 아브라함은 - 역사적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 영적 실체입니다.
비유란 어떤 모르는 것? 어떤 영적 실체? 를 설명하기 위해 듣는 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람의 육신의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사물과 용어를 가지고 전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그림자와 비유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그림자는 비유로 말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물과 사람이고 비유는 영적실체를 설명해 주기 위해 사물이나 사람을 등장시켜 설명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문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림자는 사람과 사물이고 비유는 설명문장입니다.
방주, 성막, 율법, 절기, 이런 단어는 영적실체의 그림자가 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다는 글은 비유가 됩니다.
곧 비유 안에는 그림자와 문장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비유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실체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말하고자 하는 실체가 없으면 비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만희나 이단이 비유해석을 하는 이유는 비유는 반드시 어떤말하고자 하는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희나 이단들의 문제점은 역사, 비유, 영적실체를 모두 비유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되면 성경에는 진리나 진실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이만희나 이단들이 역사, 비유, 영적실체를 모두 비유라고 말하는 이유는 비유는 어떤 실체를 찾아야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실체를 자신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영적 실체마저 비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비유해석을 하면 안 되는 이유 *
성경박사원에서 성경해석을 배우던 한 목사님이 자신의 교회에서 성경에서 어떤 것이 영적 용어인지? 육적 용어인지? 가르쳐주었더니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질문하는 말 ‘목사님 그 말씀은 육적용어인데 영적용어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것을 아는 성도들에게는 영적인 것을 그대로 전해주어도 상대방이 알아듣기 때문에 이럴 때는 굳이 영적인 것을 비유를 가지고 전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을 모르는 상대방에게 영적인 실체를 쉽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유해석을 하면 안 된다는 말과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해서는안 된다는 말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영적인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교인들에게는 영적인 것을 비유를 사용해서라도 말씀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유해석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비유는 영적실체를 찾아야지 비유를 비유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비유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해석하면 가짜가 더 가짜가 되므로 그 이후의 모든 것은 거짓이 됩니다.
영적실체는 비유를 들어 설명해 줄 수 있지만
비유 본문을 비유나 예화를 들어 해석하면 절대 안 됩니다.
설교가 아닌 것에서는 비유의 실체는 육적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설교에서 비유의 실체를 찾는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실체라고 말하면 그것은 가짜이며 거짓입니다.
신천지 이만희교와 이단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비유를 비유로 해석하고, 영적인 실체마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적인 사람이나 사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상징이라는 말을 흔히 많이 쓰는데
상징은 어떤 실체를 실체가 아닌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상징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이것이다.” 라고 답을 정해놓은 것으로 다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설교나 해석에서 진리처럼 사용되는 상징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 구약시대에는 영적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징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신약이 완성된 후에는 이제 모든 영적실체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구속사 계시가 완료됐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상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실체의 그림자는 보여주시고 있지만 영적실체의 상징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영적 실체를 알고 난 후에 상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모형, 그림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상징은 그 실체를 모른다는 것인데 목회자들이 자신만이 그 상징의 실체를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들도 자신들만이 그 상징을 안다고 말하며 가짜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징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할 수 있어도 기독교의 설교에서 상징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상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만 안다는 교만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본문이 비유라면 비유가 말하는 영적실체를 찾아야 합니다.
비유 문장에서 영적 실체를 찾아내지 못하면 절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비유는 비유로 해석하면 가짜가 된다.
비유는 반드시 영적 실체를 찾아야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기독교가 이단을 막는다는 이유로 비유해석을 하지 말라 고 하고 이만희나 이단들은 비유 해석을 한다면서 가짜 실체를 찾아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영적실체와 비유를 통해 말하려는 영적실체를 찾는 방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이만희나 이단은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성경해석의 원칙은 비유는 반드시 그 비유가 말하는 영적실체를 찾아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실체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비유를 가지고 설명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실체를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데 최고였습니다.
반대로 사도 바울은 그림자와 비유문장의 영적실체를 찾아 해석하고 설명해 주는데 최고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두 방법을 배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목회자들에게나 교인들에게 이 방법이 전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도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고, 성도들도 스스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뜻을 찾지 못해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6-36절 내용을 보면 빌립집사가 주의 사자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납니다.
내시가 성경을 읽고 “이글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물으니 빌립 집사는 주저 없이 그 실체는 예수님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사도행전 8장 32-35절
빌립집사의 성경해석은 사도들에게 배운 것입니다.
빌립집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실체와 역사 문장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바로 답을 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기독교의 문제는 목회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몰라 성경 해석이 어렵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성경해석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설교 집이나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 놓은 주석, 강해 집 등의 내용을 가져다가 짜깁기하여 설교하는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따라서 말해 봅시다. *
성경을 해석하지 못해도 보는 눈만 있으면 해석이 된다.
영적인 것을 비유로 들어 설명을 만들고, 비유문장의 영적실체를 찾아 해석할 있는 실력을 모든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고 이단들은 이미 이 방법을 사용하며 교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인들은 성경공부를 많이 해도 밖에 나가면 성경을 전해주지 못하지만 이단들은 잘못된 답이지만 줄줄이 막히지 않고 전해줄 수 있도록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고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설교자가 아닌 교인들은 꼭 영적인 것을 비유를 가지고 설명해 주는 방법이나 비유의 영적인 실체를 찾아 해석할 실력까지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영적인 것을 비유로 들어, 비유는 영적인 실체를 찾아서 모두 해석하고 기록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구속사 계시의 완성이란 이것을 말합니다.
성경 속에서 영적인 것을 비유로 사용하여 말한 것과 비유로 말한 것의 영적인 실체를 찾아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성경해석은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설교를 작성하는 방법 등을 배우려고 힘쓰고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 이전에 먼저 성경을 보는 눈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 복습해 봅시다. *
| 이스라엘 족속 | 포도나무 | 좋은, 들포도 | 정의. 공의. 포악 |
| 역사적 실체 | 영적실체의 비유단어 | 영적 실체 | |
위의 글들과 연결해서 생각해 봅시다.
정의, 공의, 포악은 영적인 실체입니다.
이 영적인 실체를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 선택하여 사용한 단어는포도나무, 좋은 포도, 들 포도입니다.
이사야 5장은 이런 모습을 한 곳에 모아 두었지만 다른 많은 문장들은 어떤 것의 비유는 구약에 그 영적 실체는 신약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실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야 비로소 가르쳐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모세, 아브라함은 역사 속에 실존한 인물들로 그들의 기록은 분명히 역사 속에서는 실체가 됩니다.
그러나 비유 말고 이런 역사속의 실체도 그림자와 비유로 변합니다.
여기서 꼭 명심할 것은 역사는 역사다.
역사와 성경에 기록된 문장을 가르칠 때는 모세와 아브라함은 역사의 실체이기 때문에 부정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모세나 아브라함의 문장을 선택하여 사용하면 그 문장은 역사지만 예수님을 설명해주는 그림자와 비유가 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5장 39, 46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장 45절
육신의 눈으로 보면 모세와 아브라함이 기록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내용을 기록한 이유는 모세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대해 서 가르쳐 주려고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나 아브라함의 기사 속에는 예수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전해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설교는 모세와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어도 모세를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이야기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명의 씨와 복을 주시는 예수님이 등장하고 모세와 아브라함은 사라져야 합니다.
영적실체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영적실체를 설명해주기 위해 사물과 육적용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영적실체를 쉽게 설명해주는 문장들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성경을 따로 해석하지 않아도 영적실체가 등장하면 영적실체를 설명해주는 문장을 찾으면 되고, 비유 문장이 등장하면 영적실체의 문장을 찾으면 쉽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영혼, 마음, 천국의 영적실체를 전해줄때는
절대 다른 실체를 찾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실체이기 때문에 그 실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찾는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진짜를 바꾸면 가짜가 되기 때문에 영적실체는 그 실체를 찾는 것이 아니고 설명이 필요합니다.
영적실체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실체를 바꾸면 거짓이 됩니다.
영적실체는 영적실체를 설명해주는 비유나 영적실체를 설명해주는 역사적 문장을 찾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만희가 기독교를 비난하고 무료성경공부를 가르쳐주면서 하는 말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나 이단이나 이 말에는 모두 공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만희나 이단과 다른 점은 결론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답을 성경에 나오는 단어로 결론을 내립니다.
이만희나 이단은 성경에 없는 단어 곧 이만희, 과천장막성전을 답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답을 이렇게 내리기 위해서 성경의 완전계시를 부정하고 이만희 자신이 성경 기록에 없는 또 다른 계시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 연습해 봅시다. *
성경 본문에 포도나무가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1. 역사속의 실체입니다.
2. 비유입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보고 답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9장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이사야 5장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마태복음 12장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요한복음 15장
1 나는 참포도 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포도나무는 누구입니까?
포도나무, 이스라엘족속, 마음, 예수님 = 틀렸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나무입니다.
이스라엘(영혼), 마음, 예수님의 영적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포도나무는 그림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영혼), 마음, 예수님의 영적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포도나무의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은 비유입니다.
포도나무는 마음이나 예수님이 아니고, 영적실체인 마음과 예수님을 포도나무 특성을 사용하여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포도나무다. 마음이 포도나무다. 라고 해석하거나 말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영적실체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면 절대 안 됩니다.
바꾸는 순간 그것은 가짜가 됩니다.
예수님과 마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포도나무와 열매를 비유로 사용하여 설명해주고 있다고 해야 정답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만희나 이단에게 속게 됩니다.
이만희나 이단들은 비유를 영적 실체가 아닌 다른 실체로 바꿀 뿐 아니라 영적실체까지 다른 실체로 바꾸어 버립니다.
비유의 포도나무도 이만희, 예수님도 이만희로 바꾸어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실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 종합 해 봅시다. *
1. 성경은 역사, 비유, 영적실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역사는 분명히 역사 속에 실체입니다.
3. 비유는 반드시 그 말하는 영적실체를 찾아야 합니다.
3. 영적실체는 절대 다른 실체를 찾거나 바꾸면 안 됩니다.
4. 영적실체는 그대로 전해주기 어려우면
비유를 사용하여 쉽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나 성경을 전해줄때는 문장 그대로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님, 영혼, 마음, 천국의 영적실체를 전해주기 위해서 역사의 본문을 선택하면 그 역사도 비유가 됩니다.
영적인 실체를 전해주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여 전해주면 쉽지만 꼭 비유로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미 영적실체를 비유로 해석해 둔 문장들이 있기 때문에 그 문장만 찾으면 됩니다.
비유는 반드시 영적 실체를 찾아야 하지만 또한 영적 실체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실체를 이미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가르쳐주고자 하는 영적실체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하나님, 영혼, 마음, 천국입니다.
영적실체를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면 가짜입니다.
영적실체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 공부 해 봅시다. *
가나안 땅은 천국이다.
맞는 답입니까? 틀린 답입니까? 틀린 답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가나안 땅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말하지만
가나안 땅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은 역사속의 실제입니다.
천국은 영적인 실체입니다.
영적실체인 천국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여주거나 설명해주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 등장하는 가나안 땅을 사용하여 천국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가나안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천국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나안을 비유로 사용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 쉽기 때문에 가나안을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답은 가나안은 가나안이고 천국은 천국이 답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천국은 영적 실체, 가나안은 그림자, 가나안을 들어 천국을 설명해 주는 문장은 비유입니다.
역사의 문장은 역사 속에 분명하게 실체이지만 그것들은 영적인 실체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사용하려는 것들이기 때문에 영적인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의 문장을 선택하면 역사의 문장은 비유가 됩니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최 수종이
대조영 역을 맡았습니다.
아이들은 TV를 보면서 야! 최 수종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TV를 보면서 야! 대조영 나왔다고 말합니다.
최 수종은 분명히 역사 속의 최 수종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최 수종은 최 수종이 아닌 대조영입니다.
대조영 - 실체, 최 수종 - 그림자, 드라마에 등장하는 최수종은 대조영을 설명해주기 위한 비유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수종과 대조영을 분리하면
대조영은 대조영, 최수종은 최수종이 됩니다.
영적실체와 영적실체를 설명해주는 비유나 역사의 문장을 찾을 수 있는 수준에 오르게 되면 이후에 스스로 영적실체의 비유문장을 찾지 않아도 비유를 사용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역사나 비유 문장을 보면 바로 영적실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문, 포도나무를 보면 이제 이스라엘백성, 마음,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백성, 마음, 예수님을 설명하라면 포도나무가 떠올라 포도나무를 비유로 사용하여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1단계 - 성경을 보는 눈
2단계 - 영적실체를 설명해주는 비유 문장 찾는 것.
비유 문장의 영적실체 문장 찾는 것.
3단계 - 영적실체의 비유를 가지고 해석하는 방법.
비유를 보고 영적실체를 아는 것.
모든 성도들은 성경해석의 3단계까지 성장해야 하지만
2단계 훈련을 잘하면 3단계는 저절로 터득이 됩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장 12-14절
이정도 수준에 오르면 이만희나 이단들이 가르치는 모든 성경해석의 말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단을 끌어들이게 되는 원인 중에는 성경 안에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는 눈이 부족하여 성경을 성경으로 풀지 못하고 설교 시에 세상의 육적인 것을 동원하여 간증과 예화로 가득히 채우는 설교로 변질시켰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단에 쉽게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에서부터 예수님까지 성경역사를 4000년이라 말하고 성경의 기록 역사 1400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람과 사물들이 등장하여 성경기록에 올라와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역사와 인물들이 아니고 그들을 사용하여 영적 실체인 하나님, 예수님, 성령하나님, 영혼, 마음, 천국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해석과 결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실체의 등장과 영적실체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만희는 자신이 말한 것을 더하거나 제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는데 요한이 말하는 더하거나 제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적실체를 바꾸거나 영적실체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변경시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실체를 육적인 실체로 바꾼 이만희나 이단들이 저주를 받고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본장에서 논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경을 보는 눈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무장을 하면 이만희나 이단들의 가르침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은혜를 받고 내가 듣는 설교와 가르침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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