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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생 시집
싸리비의 고백
지은이: 강옥생
(저자 소개)
* 강옥생
1961 년 경남 거제 출생
1988 년 부산대 영문과 졸업
1989 년 부터 현재까지 삼성여고 재 (저서)
살다가 부딪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이 만남은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저와 작은 만남을 가진 사람들과
이 글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내 삶의 근원이 되는 가족
수업중 만나는 순수하고 착실한 아이들
신의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동료교사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늘 내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을
시 속에 담았습니다.
하찮은 글일지라도 읽고 격려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도 합니다.
1994. 1월
강옥생
1
또 다른 나
가난한 나
너의 얼굴 생각하면
억누를 수 없는 희열이 샘솟는다.
너의 미모 너의 부요가
나의 기쁨이 아니라 넌 나의 생명의 불씨를 지닌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긴 밤을 뒤척이며 기도하다가
꿈 속에 5원어치 사랑을 잉태하고
바쁠 때 전화를 통해
귓속말로 20원어치 사랑을 속삭이고
백지 위에 마음으로 빚는
사랑을 쓴다. 80원어치의.
가난한 나
너의 얼굴 생각하면
기도와 전화와 편지로 사랑하기보다
너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여
너의 필요를 채워주고 응석을 받아주고 싶다.
너는 나의 기쁨이고 소망, 사랑이며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교사일기.1
아이들에게서
스승에 대한 불신의 눈빛을 보았을 때
교단에 서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선한 충고나 사려깊은 지도조차
역겹게 들릴 테니까요.
교사들의 삶은
아이들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진실 그 자체이어야 하며
양심의 그림자이어야 합니다.
귀가 세련되고 행동이 작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넓은 가슴과 솔선수범입니다.
험난한 세상에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아이들
홀로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체벌이나 엄격함이
때로는 필수과목일 수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정원수 같은 아이들
사고와 사상까지도
틀 속에 갇혀
기계적인 행동을 합니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전지가위로 나무를 다듬는 것처럼
기성의 가치와 사고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다듬지 맙시다.
덜 세련되어도
설익은 손짓, 가슴으로 살아가게 내버려둡시다.
가슴 속에 스며드는 절망과
발목을 붙잡는 후회가
아이들의 영혼을
성숙하게 인도해 갈 것이기에.
교사일기.2
따뜻하고 온화하게
아이들을 만나자.
설익은 몸짓으로 험난한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에게
소망의 말, 칭찬의 말을 자주 하고
진솔한 삶을 보여주자.
내 언어와 행동이
백지상태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판에 새겨져
언젠가 그대로 나타날 것이기에.
무의미하게 내뱉은 나의 실언이
내 가슴에 상처를 주고
무절제한 나의 행동이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내 모습을 연출해낼 것이기에.
자족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나의 지나친 기대감이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자리잡을 때
그들의 지극히 적은 소망까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기에
자유로운 날개짓으로
넓은 세상을 날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체험하면서 겪는
작은 아픔도 가르치자.
나의 두 손은
도와 줄 준비를 하자
교과수업을 하는 것 이외에
어버이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보호자로서의 손을 가져
아이들의 적은 필요까지도 채워주자.
무례하고 나태한 아이들에게
매를 아끼지 말고
착하고 성실한 아이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자.
만나는 아이들의 성격, 환경, 외모가 다르기에
내 주관의 자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말자.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성적이란 자로
아이들의 인격까지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자.
다양한 사고 속에
선택을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교사가 되자.
내 눈에 어긋나더라도
윤리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말없이 포용하는 넓은 가슴을 갖자.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자.
내 사랑의 흔적이
아이들에게 남지 않을지라도
순수한 사랑만 실천하자.
그들 중 누군가가
옥토에 내린 비처럼
내 사랑을 가득 담아
영혼이 풍성케 되며
온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준비된 자가 있을 것이기에,
지속적인 서로의 사랑은
사랑을 갈망한 아이들의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며
사랑의 씨앗을 수태할 것이기에.
회색지대
대답도 질문도 않는,
일등과 꼴찌를 만드는,
바위 밑에 숨어 핀 제비꽃 같은
중간지대의 아이들.
행사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반항아로 설치지도 않는,
주어진 역할분담을
숨어서 말없이 잘 실천하는,
회색지대의 아이들.
동일한 평범 속에
담임, 교과 담임선생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빛깔을
보호색으로 감추고 생활하는
무색의 아이들.
불우이웃돕기, 대청소, 환경미화
큰 일, 작은 일 도맡아서 하는
숫자를 채우고 공간을 메우는
알려지지 않은
일등보다 더 소중한 아이들.
시험감독
시험 시작종이 울리면
떠들썩하던 교실이
아이들의 침묵 속에 잠들고
노력한 땀의 결과를 수확하는
진지한 시험이 시작된다.
폭 넓은 이해력
예리한 사고력
고도의 집중력
종합적인 판단력을 동원하여
난해한 시험을 친다.
진급의식 같은 성스러운 시간
시험에 몰두한 아이들의 시간은
제트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나
내가 채워야할 시간은
굼벵이처럼 지나간다.
시험에 열중한 아이들의 눈동자 몸짓
불신의 눈으로 살피며
생각없이 시간을 채우는
교사는
따분하고 외로운 파수꾼.
자율학습
침묵을 담은
시간의 강이 흐르고
글 쓰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소음처럼 들리는 시간.
눈 감으면
진달래, 송순 꺾던 당메
더덕 캐던 산바골
염소찾아 헤매던 시리미
밀물고동 줍던 감나무골
월척 낚던 숨쉬는 바위
방석 고동 줍던 첫째바위
볏짚으로 불을 밝히며 넘던 아리랑 고개
발로 밟아 잡던 꽃게 잡이
기억을 더듬어 상념에 빠질 때
책상에 떨어진 요란한 필통소리
회색 교실로 되돌아오게 한다.
평교사
일평생을 승진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삶을 가르치는
신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교단이란 무대 위에서
교과서란 대본으로
주어진 시간을 열연하는
광대와 같은 배우
아이들의 슬픔과 기쁨이
신경조직에 연결되어
더불어 울고 웃는
부모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
아이들.1
사랑받길 원하면서
멀리서 서성대는 아이
장점은 알리길 원하면서
약점은 철저히 감추길 원하는 아이
자신감으로 화사하게 필 때는
벚꽃처럼 아름답다가
고통으로 시들어 버릴 때는
진 목련꽃처럼 품위없는 아이
진심은 가슴 속에 묻어놓고
일상적인 소식만 나누는 아이
움직이는 시한 폭탄처럼
늘 대형사고를 몰고 다니는 아이
자기 불신 속에서도
확신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아이
순진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좋아하다
짝사랑에 빠진 아이
수업시간에 총기있는 눈빛
시험뒤에 백치미로 인정받는 아이
아이들.2
공해로 찌든 빈 하늘
생명있는 것들은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평범한 모습으로
아픔을 간직한 자리
이채를 띤 아이들
생명의 빛깔로
환하게 거듭난다.
던져진 자리에서
자기 완성을 해 나가는
21세기의 마술사
눈 감지 않고 귀 닫지 않고
세상을 그대로 알아가는
순수한 결정체
수업
하늘은 변화가 많습니다.
출근길에
다양한 인간의 삶을
변덕스런 하늘을 통해 봅니다.
수없이 바뀌는
아이들의 감정, 태도, 표정
카멜레온처럼 나를 바꾸어
수업시간을 엮어 갑니다.
지적인 수업보다
인간적인 교감을 추구하며
시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합니다.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낡은 학문으로
21세기 총아들을 가르치는 것은
모순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하늘가린 검은 구름 걷어 갑니다.
환한 햇살이
부채살처럼 교실을 비출 때
아이들의 얼굴에서
밝은 미래를 봅니다.
소녀에게
시월의 안타까움으로 멍든
성숙한 회색 세상
도심지, 산, 바다
투명한 창 속에 담아놓은
부딪히며, 부서지며, 아파하며
성숙해가는 곳
서로 다른 이해 속에
공통의 목표를 향한
청순한 소녀들의 심각한 갈등
사랑과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곳.
소망으로 일어나라.
너의 절망의 침대에서
빛보다 강한 열망으로
허무의 담을 녹이며
꿈의 세계로 나아가라.
너희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불신을 버리고
또 다른 계절 속에
마음으로 빚은 작은 꿈을 심으며
성숙한 기도를 드리자.
사랑보다 더 진한
정겨움 넘치는 교실에서
소녀야 일어나라.
네 고통으로 상한 심령
꼭 안아서 치유해주고
네 허무로 텅 빈 가슴
친구되어 메워 주고
네 포기한 삶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라.
네 허무의 강가에서
소망의 돛단배가 되고
네 고독속에 부르는
위로와 평강의 노래가 되고
네 절망속에 붙드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
역경의 골짜기가 깊을수록
네 찬란함의 등성이는 더욱 높고
부러졌다 다시 붙은 뼈는
온전한 뼈보다 더 튼튼한 것
살아 살아서
우리 같이 웃으며 노래하자.
네가 살아서
우리들의 기쁨이 되고
네가 일어나서
우리들의 힘이 되고
네가 자라서
우리들의 소망이 되고
네가 눈을 떠서
우리들의 천국을 보아라.
자신감을 상실하고
갈등의 대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녀야
세밀하게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네 생명의 창조에서
수의를 입을 때까지의.
육체의 눈을 감고
영안을 떠서 보아라
너를 향한 지존자의 사랑을
폭염의 계절에서
얼어붙은 북극을 떠올리는 소녀야
네 감정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가
굴곡이 심한 고속도로를 미친 듯 달리는 것 같구나.
흩어지는 의식을 붙들고
어둠을 밝히는 새벽 빛으로 일어나
사랑과 고통의 물결 함께 출렁이는
세상으로 나아가자.
네 굳게 쥔 손을 펴서
우리 같이 손잡고
네 굳게 닫힌 마음의 문 열어
우리 같이 나누고
네 나약한 의지
같은 믿음으로 뭉치며
소망의 언덕으로 올라가자.
겨울나무는 떨어지는 잎 하나에도
소망의 봄에 돋아날
새순을 기대하며 감사한다.
네 정갈한 영혼
백합꽃처럼 일어나
이 세상에 향기, 기쁨 되리라.
네 순수한 고독과 갈등
대장장이의 손에 연단되어
정금되어 나오리라.
연날리기.1
언 땅이 녹는 봄날
골짜기에서 도심지에서 보내져 온
모양과 색상이 다른 쉰 여섯개의 연
똑같은 길이와 굵기의 끈을 잘라
각 연에 매달아
내 얼레의 중심에 굳게 묶어 띄웠습니다.
쉰 여섯 개의 연들은
높낮이가 서로 다르게 날고 있습니다.
독수리처럼 위엄있게
제비처럼 산뜻하게
가오리처럼 날렵하게
내 일생 다가도록 쉰 여섯개의 연들을
날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연을 받았던 내년 이맘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연을 넘겨 주기 전까지
내가 날리는 연들이
내 옆에서 날리는 다른 사람들의 연보다
하나같이 더 높이, 더 활기차게, 더 아름답게
창공을 비상하길 기대하며
사랑과 정성을 쏟습니다.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연들은
미풍이 불어오는 날이나 구름 낀 날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자신의 고운 꿈 간직하며
나의 작은 소망 싣고 날고 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이면
허공에서 풍차처럼 선회하다가
얼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파
먼 이국땅으로 가고 싶어
온 몸으로 발버둥칩니다.
"나를 가게 내버려 두세요
나는 바람을 타고 싶어요
나는 더 높이 날고 싶어요"
쉰 여섯개의 연들 중 한 개의 연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레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버팁니다.
얼레를 돌려 연을 당깁니다.
어떤 연들은 순하게 따라오고
어떤 연들은 버티다 못 이기는 척 따라오고
어떤 연들은 괜히 한 번 버티어보고
어떤 연들은 줄이 끊어질 정도로
버티고 서서 따라오길 거부합니다.
계속 얼레를 돌린다면 몇 개의 줄이 끊어져
연들이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한 개 혹은 두 개의 연 때문에
한 쪽 손을 놓아 줄을 풀어버립니다.
쉰 여섯 개의 연들이
바람에 몰려가는 가을 낙엽처럼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허둥댑니다.
순진한 연들이 아름답게 날던 연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사정없이 땅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모습을
이가 앓는 고통을 느끼며 묵묵히 바라봅니다.
아파하며 사랑하며 지켜보다
다시 연줄을 감습니다.
언제까지나 내버려 둔다면
나뭇가지에 전봇대에 걸려
더 많은 나의 연들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땅에 떨어져
다시는 날아 오르지 못할 연들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다시금 모든 연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높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새벽이 밀려오는 빈 뜰에 서서
오늘도 나는
쉰 여섯개의 연들이
푸른 창공을
높이 아름답게 활기차게 비상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심정으로
연을 날립니다.
연날리기.3
사랑이 깊을수록 애닯음도 많나니
그대들의 절망, 고통은 나의 슬픔
얼레를 움켜쥔 멍든 내 손
연들을 지켜보다 흘리는 네 눈물
무심한 연들은 바람을 타며
더 높이 더 세련되게 나는 연습을 한다.
내 사랑을 독식하는 연들이^5,5,5^
태풍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연
창공을 비상하길 포기한 연
익숙하게 홀로 나는 연들처럼
아름답게 활기차게 날기 바라는 심정은
나의 지나친 편애일까.
홀로 완벽히 날 그 순간까지
내 손에 내 신경조직에 얽매여
설익은 몸짓으로 나는 연들
그대들을 끌어안고 사랑함은
나의 지나친 구속인가.
사랑이 깊을수록 애닯음도 많나니
그대들의 이상 비상은 나의 작은 소망.
사랑의 교실
색상이 다른 예순 둘의 털실이 모여
우정과 이상을 가꾸며
믿음과 사랑으로 옷을 짜는 아담한 교실
샛별같은 눈동자와 티 없는 웃음이
교정에 종소리처럼 번진다.
예순 둘을 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굵은 살, 가는 실, 긴 실, 짧은 실 엮어
한 올, 한 올 우정과 염려로 짜는 협동의 교실
서로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털옷은
교정과 가정, 이 민족과 사회를
포근하게 덮고 살찌우리.
열성있는 선생님의 강의와
먼지처럼 떠돌아 다니다 창틀과 책상에 내려 앉은
둘 하나 반의 장난치며, 속삭이며, 뛰어다니던 이야기가
친구 잃은 토막 연필과 밀어를 나누는 사랑의 교실
그 속에서 그대들은
무지를 깨치며 어둠을 밝히는 촛불
새벽을 깨우며 빛을 발할 태양이 되소서.
말
말의 의미 그 자체가
현대인들의 마음에 전달되지 않아
다양한 색상이 덧칠 되어지고
옷을 한겹 두겹 더 걸쳐 입는다.
마음은 쉽게 믿지 않는
활자화된 언어
공식화된 소리
우리네 할머니들은
사랑, 소리, 교육, 진실
단순한 말로도 쉽게 감동을 받았다.
말 위에다 옷을 입히며 불신의 늪속으로
깊이 빠져 가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
방송국 앞 참 소리, 참 보도
문교부의 참 스승의 길, 참 교육
먹자 골목의 원조 일미 갈비탕.
2
여자
비둘기처럼 순결한 여자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한 여자
사슴처럼 고상하고 화려한 여자
고향 뒷동산의 잔디처럼 포근하고 부담없는 여자
장미꽃처럼 정열적이고 향기로운 여자
소나무처럼 젊고 싱싱한 여자
대나무처럼 곧고 정직한 여자
난초처럼 청초하고 섬세한 여자
잡초처럼 끈질기고 생활력이 강한 여자
모나리자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은 여자
백합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
흰 눈처럼 깨끗하고 결백한 여자
태양처럼 정열적이고 화끈한 여자
바다처럼 마음이 넓고 깊은 여자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양귀비의 입술을 닮은 여자
심청이처럼 효심이 지극한 여자
하늘처럼 늘 무르고 고매한 인격의 여자
호수처럼 고요하고 맑은 여자
어둠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여자
수밀도처럼 달콤하고 감미로운 여자
시계처럼 정확하고 소리처럼 명랑하고 경쾌한 여자
클래식 음악처럼 우아하고 고전적인 여자.
외사랑
내 사랑만큼
되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내가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사랑한 만큼
돌려 받지 않아도 좋다.
내가 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너에 대한 것은
내 삶의 부분이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것이다.
너를 잃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다.
네가 존재할 때에
내가 살아 있는 것이며
소망이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네가 있는 것이 기쁨이며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메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메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내가 널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만남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
땅을 사모하여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계절
네 따뜻한 흰 손
내 차가운 거친 손 녹이며
네 사랑담은 눈길
내 메마른 지친 가슴에 소망을 주었네.
고독으로 저무는 나의 청춘
그대 만남으로 황홀한 탈피
잠자던 작은 소망 깨어나 준비운동하고
안개에 싸였던 내 미래의 모습
현실로 구체화 되는 시간의 집
초저녁 서쪽 하늘 위
다리 꼬고 드러 누운 초겨울 하현달
아파트 냉방에 누워 생각하는
그대 그리는 내 모습
아버지.1
매달 음력 보름 때가 되면
외투에 짠 바다 내음새 가득 몰고 왔던
나의 아버지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놀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못한 정
못내 아쉬워
잠이 든 나의 조그마한 두 뺨을
수염난 얼굴로 부벼대셨던
흥건히 술취한 인정 어린 아버지
못난 자식 뒷바라지에
반평생을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나의 아버지
강철보다 더 억세고 강하게 굳어버린
부드러운 손가락
눈 내린 산처럼 희어져버린
깊은 밤보다 더 검은 머리카락
이제 당신의 모습은 옛날과 달라졌습니다.
당신의 품에서 떠나간 자식 생각에
노안은 항상 젖어
마를 날이 없었죠
자나 깨나 무딘 두손 가지런히 모아
일월 성신께 간절히 기도하는
아버지의 손
그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
붉게 물든 단풍잎
손때 묻은 일기장 책갈피에 끼워놓고 생각하는
내 키만큼이나 닳아버린
어머니의 주름잡힌 따뜻한 손.
밤을 쓸다 불어온 바람.
무성한 솔잎 가지런히 빗을 때
자식 걱정에
내 심술만큼이나 어지러운
어머니의 반백이 되신 머리카락
무심한 세월의 등에 업혀 흘러가는 강물
메마른 대지를 옥토로 적실 때
풍만한 젖샘
내 몸무게만큼이나 사랑으로 충만한
어머니의 찬란하게 비어버린 젖가슴
청자빛 사랑 담은 호수
바람 멎은 수면 달 그림자 담은
호젓한 고요
내 부끄러운 눈물로 씻어내신
어머니의 인정어린 눈동자.
새벽 어머니
가난을 지탱하기 위해
고운 손, 주름진 노안의 어머니
서둘러 깊이 잠든 밤을 깨워 옷을 입으신다.
억겁의 졸음 쌀과 같이 씻고
새벽을 담아 머리에 이고
케르베로스가 귀가하는 인적 없는 잿빛 거리로 나선다.
철없이 나이만 먹은 아들
화살처럼 달아나는 밤의 목덜미를 잡아
비단 이불 깊숙한 곳으로 끌어 안고
애인처럼 부드럽게 애무한다.
무의식의 영상 속에서
고뇌하고 질책하는 생각과 시간들이
붉은 손을 흔들다 사라지고
나태와 나약한 모습들이
태양과 더불어 더 선명해 진다.
새벽이 일어나는 세상을 커텐으로 가리고
꿈 속으로 황홀한 여행을 떠나는 길목에서
세월의 수레바퀴에 쫓기는
노모의 흰 머리카락과 노안
구름처럼 허공에 머물 때
혼이 나간 내 영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
늦은 아침을 깨고
부끄러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씻는다.
다^36^애
갓 태어난 다^36^애가
관심을 받고 싶을 때
가장 단순한 언어로
단지 울기만 했다.
뒤집는 방법을 배운 다^36^애가
말하고 싶을 때
팔, 다리, 표정, 울음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두 다리로 걷게 된 다^36^애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간단하고 쉬운
자기중심적인 단어를 구사했다.
4살이 된 다^36^애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왜 비가 오는데?
왜 개미는 말을 못하는데?
아빠, 저건 뭔데?
그리움
세상은 잠든 안개 바다
부둣가 고철 공장의 망치 소리
귓가에 공전하다 떠나고
작은 은빛 구슬 유랑하는 잿빛 하늘
하나님의 은총 내려
쌍무지개 우아하게 젖어드는 그대 생각
내 작은 가슴앓이
나의 노래
머리속이 꽉 찬 날이면
하늘 끝 구름 가는 길 사모하여
인간사 고역과 일상의 구속 떨쳐 버리고
나그네길 떠나고 싶다.
머물며 손가락질 받기보다
나홀로 말없이 세상사 싸서 짊어지고
넓은 하늘을 거침없이 달리는
고독한 바람이고 싶다.
세상이 빛을 잃고 흑암에 사로 잡혀도
모든 것을 다 사랑할 마음으로
바람이 가는 길 따라가며
동네 어귀의 한많은 고목의 이야기를 듣다가
농부의 땀이 자란 황금 들녘의 벼이삭을 쓰다듬다가
태산을 만나 끝없이 등산하다가
벼랑과 밤을 지새며 논쟁하다가
길가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천국을 보다가
청송의 사랑으로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다가
가슴속 수많은 사연 간직하고서는
어둠이 오는 빈 뜰에 서서
밝은 하늘 한 자락 끌어 안고
새벽을 맞기 위한 콧노래를 부르고 싶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픈 사연도
양심이 인도하는 길 따라
영혼이 갈구하는 진실을 가식없이 말하며
바람처럼 물처럼 스치다 지나는 인생길을
후회없이 살고 싶다.
힘이 없어 변화시키지 못하나
눈 감지 않고
얼싸안고 사랑하는 공기이고 싶다.
사랑의 낙서
살아가는 순간 동안
나는
너에게
삶의 의미가 되고 싶다.
찰나적 인간으로 잠깐 존재하다
비극적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현대인으로 남기보다
너의 주위에서
언제나 맴돌며 사랑하는
한무리 투명한 공기가 되고 싶다.
하나님의 선물을 온통 너에게 주어
너의 육체를 자연의 옷으로 치장하느라
나의 빛이 시들고 쇠약하더라도
나의 네가 화려하게 피어날 때
나는 너의 삶들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
너의 생활 속에
나의 기억과 상이 존재한다면
너는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것이고
나는 너에게 또 다른 생명의 불꽃으로 나타나리라.
살아가는 순간 순간
내가 던지는 사랑의 실타래 네가 매듭 짓는다면
사랑의 미 가슴 속 깊이 가져와
나는 너에게 삶의 의미가 되고 싶다.
눈
눈이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내려와서
눈속에 가득 들어온다.
눈의 하얀 빛깔처럼
눈이 맑고 깨끗하여
눈속에 아름다움 간직하면 온 세상은
눈처럼 정결케 되어
눈동자 속에
눈과 더불어 나타나는 너의
눈빛, 눈망울, 눈웃음, 눈인사
눈앞에 옛추억처럼 회상한다.
눈은 세상을 하얗게 옷 입히고
눈의 망막 속에 가득
눈길 눈덮힌 산
눈속에 거니는 연인
눈 가득 부서져 내리는 하늘
눈보라 속에서 아이들
눈사람 만들고
눈송이 뭉쳐 눈싸움하는 아이들
눈덩이에
눈에 맞아 웃는 아이들 모두
눈과 어울려 기뻐한다.
눈이 흰눈이 내리는 날은 나의 천사와
눈길을 걷고 싶다.
눈동자가 맑고 깨끗한 소녀와
눈으로 말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눈속에 사랑을 담아서
눈처럼 순수한 영혼에게 보내면
눈빛의 정열속에 포근히 용해될 눈
눈과 눈의 만남이
눈속에서 신비로운 매듭을 꼬아
눈과 더불어 생명의 불꽃을 잉태하리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나 너와의 만남의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육체적 자아와 영적 자아가
끊임없이 나눈 대화를
노을빛 상념의 커피잔에 타서 마시며
물 흐르듯 입에서 쏟아넣을 시간이
시간이 흐르면
고뇌의 갈등의 싸움과 슬픔도
황혼 속에 파묻힐 것이고
애닯던 나의 목소리도 흩어져 버리겠지만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 너와의 만남을 기다릴 것이다.
나 너와의 언약된 만남이 없어도
사랑을 포기할 수 없음은
내 영혼 속에 네가 자리 잡았고
내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영원한 만남을 지리하게 기다리는 것은
순간순간의 흐름이
내 생애를 단축시키는 아픔이지만
순간순간의 흐름 속에
너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고
나의 키는 한자한자 더 자라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을 것이다.
호수 옆 갈대 사이에 백조가 믿음의 둥지를 틀고
그들만의 사랑과 행복을 낳듯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남을 가질
지난 시절의 속으로 앓던 사랑과
수없이 반복된 기다림과 만남이 영근
성숙한 기다림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눈의 대화
네 두 눈 가득 담은
무언의 언어를
두 귀가 없어도
나의 두 눈만으로 들을 수 있음은
눈과 눈의 대화 이전에
너의 마음이 나에 대해 열렸고
나의 마음도 너에 대해 열렸음이라
농아들의 손가락이
입을 대신하여 언어를 표현하기 이전에
눈으로 마음으로 대화하듯
연인들의 언어는
두 귀가 없어도
두 눈동자만으로 통함은
너의 마음이 나를 향해 열렸고
나의 마음이 너를 향해 열렸음이라.
많은 말이 없어도
많은 글이 없어도
너의 체온과 마음을 느낄 수 있음은
나의 눈동자가 너의 눈동자에 머물고
너의 눈동자가 나의 눈동자에 머물러
우리들의 영혼이 일체가 되고
서로가 하나가 되었음이라.
반성
내 삶의 하루 하루가
고인 물처럼 정체된 시간속에 갇혀
허우적댄다.
밀폐된 고가의 벽에 붙은
초상화와 같은 내 삶
흘러간 내 시간의 길이만큼
방치된 달란트
내 삶의 하루 하루가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는 어둠에 숨어
반복된다.
바람 공기 햇빛 사람
내 안 가득 채워
따뜻한 피가
온몸을 흐르게 하자
습관적인 사고, 행동의 틀을 깨고.
삶
개인의 하루는
자신의 주관적 삶
죽음으로 마감되는 일평생은
타인의 객관적 삶
3
싸리비의 고백
나는 당신의
싸리비가 되겠습니다.
벌레먹은 낙엽같은 내 죄
마른 머리 풀어
하루에도 몇번이고 풀겠습니다.
당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손가락이 상하고 문드러지는
아픔을 인내하며
내 몸이 멍들고 부러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어디든지 쓸겠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고통의 골고다 언덕길 생각하며
내 몸이 닳아 몽당빗자루로 변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순종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죄인의 손
붙잡아 주신다면.
나는 당신의
싸리비가 되겠습니다.
나의 기도
내 일상의 기도가
나의 뜻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소서
내 삶의 기도가
나의 소망대로 이루어지기보다
당신의 우주적인 계획의 일부이게 하소서
내 기도 시간이
나를 위해 채워지기보다
당신을 위해 채워지게 하시며
지극히 작은 기도 한마디라도
당신의 마음에 합당케 하소서
내 평생의 기도가
의미없는 단어의 반복보다
마음으로 빚는 진솔한 기도이게 하소서
내 육신의 기도보다
당신의 사랑, 온유, 겸손, 평강을 담은
영혼의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기도
하루살이에게 강한 번식력을
나비에게 아름다움을
잔디에게 끈질긴 생명력을
연약한 자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
40억 인구중
부족하고 천한 저에게
지고의 미와 지순한 심성을
정갈한 영혼과 사랑의 마음을 주소서.
내 사는 날까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당신의 형상을 닮아
살아가게 하소서.
한알 밀알의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풀어놓은
이른비와 늦은비, 바람 햇볕
밀알의 속과 겉이 잘 여물게 하소서.
부자 농부의 곡간에 남기보다
옥토에 썩어져 생명을 잉태하는
한알 밀알이게 하소서.
캄캄함 땅속 깊이 파묻혀
대지의 품에 암기며 대지의 젖을 먹으며
짓눌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모의 고통을 겪게 하소서.
씨앗이 태양을 만날 순간까지
썩어가는 내 모습에서
생명 열매를 그리게 하소서.
내 가난한 뿌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만물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내 여린 가지 하나 하나에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게 하소서.
내 밀알 한알 한알에
당신의 숨결, 손길, 마음을 달게 하소서
축혼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왔던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사람들이 모여
창조자 하나님의 주례로
아담과 이브처럼 다정한 한 가족을 이루소서.
하나님을 믿어왔던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믿을 사람들이 모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할 사람들이 모여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젊은 날의 수밀도처럼 달콤한 시간들이
그대들 머리 위에 화관을 쓸 때까지
혀와 손의 분쟁없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지나가며
축복한 사람 야곱과 요셉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소서.
요람에서 두 영혼이 한 영혼으로 되는 날까지
눈물로 사랑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
부모님과 친지와 축혼객을 기억하시고
인격적인 삶을 살아오신 주님의 작은 제자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 감당하소서.
가을의 기도.2
모두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을
노랗게 물든 잔디 입술 끝에 달린 이슬
말없이 밤을 사랑하다가
새벽에 말없이 자리틀고 일어나
청자빛으로 익은 가을 하늘로 날아가며
의미 깊은 이별의 전주곡을 뿌린다.
그 따스한 손길 내 얼굴에 부딪힐 때
부드럽게 두눈 감고 고개 숙인다.
내 생명 나무에 열매 없음을 안타까와 하며.
언 땅이 녹을 때 당신은
내 토지와 내 생명 나무에 사랑을 주셨고
황량한 토지에 이른 비와 늦은 비
알곡이 익도록 적당한 햇살과 바람도 풀어 놓았지요
태풍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과 관심 지극했소.
나의 못난 성품과 게으름이
잉태하지 못할, 씨앗을 내지 못할 열매를
전시하듯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땀으로 가지를 돌보며
열매를 자식 다루듯 정성을 쏟으며
기도의 불씨가 있는, 생명있는 열매가
하나라도 더 익게 할 힘을 주소서
나의 뿌리에 더 많은 사랑을 주셔서
잉태 못할 하나의 열매까지도 익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은 태양같은 사랑
주님의 사랑은 태양같은 사랑
한낮에는 태양의 청자빛으로
깊은 밤중에는 태양의 그림자 빛으로
내 영혼 위에 항상 따뜻한 체온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빛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던 불기둥도
풍파속에 헤매는 난파선을 찾는 등대의 불빛도
태양의 시녀
내 인생에 광명의 빛을 주신
주님의 사랑은 태양같은 사랑.
주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
세살적 젖먹이에서 청년이 된 지금까지
날마다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언제나 내 생명 깊숙이 숨쉬는 변함없는 사랑
핏덩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사랑도
친구를 위해 자기 몸을 대신 죽는 우정도
주님의 사랑의 분신
나의 탄생이전 수십억년 전부터
날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
주님의 사랑은 모가 없는 사랑
주님의 사랑으로 나의 모난 부분들은 다 깎였다오
시기와 질투, 교만과 나의 육체까지도
부족한 나를 위한 사랑으로
주님의 모난 부분들을 다 버렸다오
하늘의 영광도 땅의 권세도 기쁨도
당신의 마지막 남은 생명까지도
내 영혼속에 핏자국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주님의 모가 없는 사랑
내 작은 가슴에
내 발길이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 마음은 주께로 향하고
내 발길이 어느 곳을 헤매더라도
주께서 나를 친히 인도하시는도다.
생명수 맑게 흐르는 송호리 강변에서
내 작은 가슴에 세상을 안고
내 작은 가슴에 주님을 모시고
새 생명 찾아 순례자의 길 떠난다.
가진 것은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 뿐
내 작은 가슴에 조국을 부둥켜 안고
내 작은 가슴에 주님을 모시고
남은 인생 밀알처럼 썩어지며 살리.
어떤 일류 성직자
사랑이 식은 회색 도심지의
종탑만 높은, 장소만 넓은 교회
수천가지 신앙의 색상을 지닌 영혼들
갈급한 심정으로 귀를 기우렸다.
고성능 마이크에 실려 나오는
색동옷 같은 갖가지 기운 언어가
쉼없이 토해져 나와서
양들의 귀를 수준높게 하나
목회자도 성도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느꼈다.
평범한 유리창 같은 자신의 모습들
낮은 곳으로 임하지 못하고
교회의 높이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채색 유리창 같은 성직자들
화려하고 부유한 권위에 사로잡혀
사랑으로 돌아보며 권면하지 않는다.
단색 옷으로 차려입은 양들에게
언어가 없고 소리가 없어도 선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대신
세상적인 말과 미사여구를
쏟아 놓는다.
깨달은 마음과 기도하는 심정에서 벗어난
하나님도 모르시는 설교를
피값
다윗의 음탕함이 한 생명을
죽음이 보장된 전쟁터에 몰아 넣어
땅위에 죄 없는 피로 적시자
압살롬이 창칼을 갈아
부친과 대적하여 피를 뿌렸다.
제우스 신의 격정에 찬 욕망이
호수에서 목욕하던 미녀 레다(Leda)를 겁탈하여
순결한 여인의 피를 호수 위에 뿌리자,
헬렌(Hellen)을 사랑하는 영웅들의 전쟁이
트로이(Troy) 전쟁의 불운과 비극을 초래했다.
이 민족의, 크리스챤의, 나의 죄악 때문에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십자가 상에서 주홍같은 피 흘렸네
죽음을 향해 달리던 내 영혼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네.
불신
최첨단의 물질 속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정신문명이여!
벽 하나 사이에 둔 옆집 사람
오다 가다 얼굴 마주쳐도
엇갈리는 고뇌 속에
외면하는 눈동자
담쟁이 넝쿨 대신 쇠창살로 울타리진
도시의 건물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번민하는 도마
수 많은 세월 속에 늘어가는 것은
닫힌 문, 닫힌 마음.
갈등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은
수상기 화면이 갑작스런 전파의 방해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다툼이 일어나
오브랩(overlap) 되어 나타나는 영상처럼
전화가 갑자기 혼선된 상태처럼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은
일식 현상으로 갑자기 두 개의 돌멩이가 던져져 파문 상태가 되었다.
백조에게 불시에 겁탈당한 레다처럼
악몽 속에서 마녀에게 쫓기는 상태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은
야누스적 성격을 알기 시작했고
파우스트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고백했다.
주님이 값으로 산 성령의 전과 영혼
나의 자아를 죽이고 참된 평화가 가슴 깊숙이 몰려왔다.
해바라기
당신을 그리워하다.
당신의 모습을 닮아버린 해바라기.
내 인생은 모두 당신에게 속한 것
나의 것은 아무 것도 없어라.
백설의 숱한 추위와 갈증 속에서도
안으로 울음 삼키며 살아온 해바라기
기다림을 먹고 그리움을 마시며 자란
태양의 꽃
당신을 그리워함이 사랑 되어
나의 가장 높은 곳에
당신의 노을 빛 형상을 간직하며
점점이 박힌 씨 속에
당신의 깊은 사랑을 가득 담는다.
작은 꽃잎들 당신의 아침 햇살처럼
온누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을
당신을 향해 조심스럽게 옷깃 여미고
긴 목이 부끄러워 살며시 고개 숙여
노란 사랑을 고백하는 해바라기.
풍란
파도와 태풍에 깎인 낭떠러지 위
바위에 뿌리 내리고
고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살아온
전설의 외로운 대변자.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에 자생하는
한 민족의 역사 같은 끈질긴 생명력의 난
잎새끝에 맺힌 이슬 먹고 자라는
불로초의 후손
자그마한 꽃에서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는
너의 모진 삶과 고도의 전설.
그림자
내 그림자가 뒷쪽으로
길게 드리울 때
나에 대한 당신의
첫사랑이 시작된 순간
내 그림자가 앞쪽으로
길게 드리울 때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마감되는 순간
내 그림자가 가장 진한 때
당신이 나를 가장 뜨겁게 사랑한 순간
내 그림자가 가장 희미한 때
당신과 나의 사랑이 식은 순간
내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
당신이 나를 가장 사랑한 순간
내 그림자가 없을 때
내가 당신을 떠난 순간
황혼
대머리 같은 황혼의 태양이
서산 허리에 걸리면
바닷가 모래밭에 뒹굴던 아이들
텅 빈 마을 속으로 귀가하고
초가집 굴뚝 위에 피어오르는 저녁밥 연기
바람이 불어
하는 저 모퉁이로 달 마중 가듯 달려가고
석양빛에
노을지는 무의미한 사물들이
찰나적인 결작을 만들었다가 사라져간다.
황혼의 길목에 들어서서
지나간 세월들은 한 장 한 장 거꾸로 넘기며
태양을 등지고 서 있는 사람들
열정이 식어버린 빛바랜 햇살을 밟으며
담담하게 미소짓는 얼굴에
어둠이 살며시 다가와
한 겹 두 겹 옷을 입고 있었다.
구름
엄마구름 흘러가는 곳에
아기구름 따라 흘러간다.
황혼이 홍씨감처럼 익어갈 때
둥근 하늘을 초원 삼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가는
누나 치마폭에 놓인 수 같은 양털구름아
대지가 젖을 때나 마를 때나
오늘은 이 마을 위에서 저 마을 위로
내일은 이 호수 위에서 저 호수 위로
나그네처럼 떠도는 방랑화가
긴 여로에 지친
두 다리 뻗고 마주 기대어 앉아
다정스럽게 이야기 나누다가
바람이 불면
앉은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나
손에 손을 마주잡고 달려간다.
매미
무성한 잎들이 펴 놓은 양산보다
더 시원한 매미소리
칠일 낮동안 노래하기 위해
폭서와 혹한을 일곱번 되풀이
나뭇잎들을 흔들어 놓고 가는 바람보다
더 시원한 매미소리
칠일동안 살다가기 위해
칠년을 준비하는 숲속의 가수왕
4
10급 공무원
나의 전 재산은 피곤한 육체
정신은 죽어 허무에 저당 잡히고
육체만 홀로 서 있는
10급 공무원
허공에 던졌다 내려 꽂는 곡괭이
불끈 움켜쥔 무쇠 같은 손가락
뱀 기어가듯 툭 튀어나온 힘줄
이두박근 삼두박근 생겼다 사라졌다 할 때마다
튀어가는 돌조각 산개하는 흙
온몸을 목욕시킨 비지땀의 댓가는
못배긴 손바닥에 얹혀진
구겨지고 찡그린 노인의 초상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된장찌개 끓는 대문없는 판자집
우리집 전 재산은 피곤한 육체
물질은 도시에 깔려 썩어가고
정신은 쓰레기처럼 묻어두고 비탈에 선
10급 공무원.
앉은 자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 속에서
좌석에 앉은 자는 왕자다, 공주다, 대통령이다.
똑같은 하나의 토큰을 주고서
자리를 차지한 특권으로
행인을, 간판을, 건물을, 책을 본다.
넥타이 맨 신사와 책가방을 든 여고생의 시선을 외면한 채
어제 흔들거리는 버스 속
탈진 상태의 자신의 모습 잊고서
앉은 자는 선 자의 고통, 짜증, 피곤을 잊는다.
아기 업은 아주머니, 백발의 할머니 시선
졸음이 오듯 살며시 감은 눈
앉은 자는 사장이다, 대통령이다, 임금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자리에 앉으면
죄로 우로 밀리는 선 자의 고통 마음
눈동자에 담지 않고 마음에 헤아리지 않는다.
좌석에서 일어섰을 때 잊어버린다.
휴식도, 특권도, 감사도, 짜증도
앉은 자는 왕자다, 공주다, 대통령이다, 임금이다.
고결한 죽음
진실을 외면치 않던
마음 밑 뿌리 정결한 너의 영혼
한서린 민족의 아픔 덩어리
레테에 떠내려 보내지 않고
캠퍼스와 민중과 국가에
다른 언어와 목소리로 외쳐 대었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케르베로스*처럼
진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
사탄의 영혼을 사서 마음에 이식시키고
영장없는 납치, 폭행, 물고문 자행하여
한강물에 한 영혼 장사 지냈다.
안개속에 묻힌 왜곡된 죽음은
한강물에 실려 떠내려 가지않고 머물며
거룩한 분노로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졌다.
골고다 십자가상의 죄 없는 예수의 피값으로
태양이 3일 동안 빛을 잃듯
언제부터인지 대지위엔
신의 눈물같은 비가 내렸다.
신은 인간들에게 푸른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어떤 사람들은 칼을 심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심었다.
* 케르베로스: 머리가 세 개 달린 지옥의 문을 지키는 개
독주
모든 것이 달려간다
세월도, 바람도, 생각도, 나라(국가)도
모두가 달려간다
빛도 길도 주자도 없는데
나도 달려 간다
넓은 공간 속에 함께 어울려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앞에도 뒤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랑도, 우정도, 인생도, 경쟁자도
둘이서 달리고 있었다
빈 껍데기만.
일상생활
새벽이 하얗게 질렸다.
밤새 남편처럼 다가온 찬 서리에
내 주름진 눈가
깃털 뿌려진 서편하늘 구름
시름의 눈물 출렁이며 잦아들고
네 무상의 흐름 나의 흐름이면
한 많은 세상 쉽게 살 것을
나의 하루하루가
무의미한 생활의 지극한 가치
지는 별을 보고 스러지는 별빛을 보고
첫차를 타고 막차를 타고 그렇게 살아
내 영혼이 새벽녘 가위에 눌러
하얗게 질렸다.
손
소용돌이 치는
손가락 끝 무늬
삶의 발자취
못 배긴 손바닥
굽이쳐온 인생길
손금으로 흐르고
굵은 손가락 마디마디
두텁게 드러누운 주름살
어린시절 감추어진 고난의 삶
검지에 새겨진 긴 상흔
보릿고개
굽이 굽이 돌아가는 들길
땔감을 지고 내려오던 급경사 산길 생각난다.
굴쩍이 붙은 돌아래
손바닥 만한 창게
손가락 마디마디
손가락 끝 구석구석
앞으로의 살아갈 길 새겨놓아
눈으로 가져가는 미래
손으로 먼저 예언하는 삶
소용돌이 치는
손가락 끝 무늬
내 삶이 살아온
살아갈 자서전
삶
어둠을 잠재운 깊은 밤
길 없는 길을 따라 걷는 방황하는 영혼들
바쁜 일이 없어도 바쁘게 걷는
패션 쇼를 하다가 막 나온 것 같은 아가씨들
불러도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들어 주는 이 없어도 불러대는
지하철 계단 옆 저 가련한 소녀의 입술
이 세상 죄 홀로 진 그녀의 얼굴 위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뭇 시선들
소녀의 마음 깊이 자리잡은 그들의 마음
네 삶의 집착력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전역 생각
연병장에 불어가는 바람
삼각형으로 세워 놓은 소총의 소염기 끝에
잠깐 머물다 스쳐 지나가고
푸른 제복의 사나이들 땀냄새
땅속으로 스며들다 말고
대기중에 안개처럼 흩어진다.
호국의 일념으로 총을 잡은 대한의 건아들이
전 세대부터 밟아왔고 앞으로도 밟을
훈련으로 겹쳐 밟힌 어지러운 발자국은
누구의 인생을 그려 놓았나.
발끝에 채이며 굴러다니는 돌멩이는
누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나.
높다란 가을 하늘 구름 사이로
귀향하는 시골길이 보이고
녹슨 철조망 너머 잠자던 못다핀 청춘은
긴 잠에서 깨어나 눈 비비며
불완전한 몸짓으로 출발선에 섰다.
기다림
어둠을 쫓으며 달려온 기차가
세련된 인형의 머리를 꾸민 사람들을
싣고 왔다가 팽개치고
어둠 속으로 곧게 뻗은 두 가닥 철로를
썰렁하게 남긴 채 가버렸다.
광장 옆 시계탑 아래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차에서 지금 막 내린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보며 그냥 지나쳤다.
역사에 사람들이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사람들 도시의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시계탑 아래 빈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귀로 그리고 있었다.
어둠을 남긴 채 사라진 철로 위로
어둠을 밝히고 달려올 기차를
죄 없는 담배 연기 서러워 빠져나간
회색 하늘 바라보고
갈길 재촉하는 먼지 앉은 기둥 시계와 철로 사이
보지 말아야지 하며 바라보는
초조감에 젖은 시선
왔다 갔다 한다.
가로수.1
더덕 더덕 몸뚱이 팔다리 먼저 둘러쓴 수양버들
시멘트 틈에 큰 뿌리 잘리고
잔뿌리 내려 긴 생애를 한과 눈물로 살아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질곡의 도심지에서 서성이다가
저녁에 죽어서 돌아와 서면
새 순의 생명에 대한 경이와
큰 줄기의 평등한 세상을 향한 삶의 욕구가
목마른 숨통을 조여왔다.
회색 빌딩 숲에 서서
매연 최루탄 개스 도심지에 자욱할 때
인생의 온갖 눈물 아무도 몰래 같이 흘렀다.
배운 것은 참은 것과 용서하는 것
물려받은 재산은 한과 눈물
가로수.2
태산같은 해일
지구를 날려버릴 듯한 폭풍우
농작물과 가옥을 집어삼킨 홍수
간밤에 세상은 죽어 버렸다.
고향을 떠나 도심지로 이사온 가로수
정원사에 의해 몸을 지탱할 뿌리
잔인하게 톱질 당한 채 심겨졌다.
간밤의 폭풍우가 건장한 네 모습
술취한 거한처럼 비틀거리게 하고
뿌리째 뽑아 길가에 팽개쳤다.
좋은 토양의 키 크고 무성한 잎의 가로수
잎과 가지 바람에 날려 보내고 꺾어져
슬피운다. 교만한 자기모습 후회하며
고개숙여 명상한다.
뒷 동산에 살았다면
강한 바람에 부드럽게 굽히는 겸손을
강한 바람에 버티는 인내를
강한 폭풍우에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사랑을
삶 속에서 배웠으련만^5,5,5^
거대한 빌딩숲 사이에 옮겨져
탄산가스를 주식으로
잠깐동안 허락한 땅에 사는
가련한 가로수. 인간의 욕심에 희생된
새로운 족보
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의 무늬
나무가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무늬
과거의 모습 잃고
새옷을 차려 입은 넌
화려한 혼혈아
부모들이 물려준 유전자
적도의 외딴 섬에 묻어 두고
인간들이 창조한
새로운 족보를 가지고 나타난
줄무늬 베니다판
목수의 손에 다듬어져
세련된 옷을 입은 숙녀
페인트 공에 의해 새옷을 입으면
새로운 족보는 지워지고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서는 넌
애련한 적도의 고아.
자동판매기
투입구에 100원을 집어 넣으면
100원 어치의 커피가 쏟아져 나오고
종이컵속에 담긴 100원어치의 커피를 마시고 나면
미련없이 던져 버린다.
쓰레기들의 고향 휴지통으로
커피 자동판매기에 100원을 집어 넣고서
우유, 커피, 밀크커피, 코코아, 콜라 등
기호대로 버튼을 누르면
브라질의 향수도
미시시피강의 청량함도
대관령의 신선함도
고향 하늘의 세 살적 어머니의 젖냄새도
도심지에서 맛볼 수 있다.
이제 커피 자동판매기는
현대인의 생활 틈바구니에서
주인없는 수퍼마켓이며
사랑없는 연인의 대명사이며
사랑없는 인간들에 의해 잘 훈련된
사랑없는 어머니.
소먹이는 아이들
잠결에 들리는
새벽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
단꿈이 어둠과 함께 달아난다.
싸리대문 사이로
몰려나온 소먹이는 아이들
소 잔등에 걸터앉아
아침이슬 맺힌 산길을 올라간다.
칡넝쿨 무성한 산허리에 멈춰서서
산에다 소를 맡겨놓는다.
소들은 무리를 지어
풀이 무성한 곳으로 간다.
태고적 위엄이 서린 암석에 올라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벌어진 윷놀이
집생각 숲속에 풀어놓고
소도 잃어버리고
시간도 잊고 사는 목동들의 어깨 너머로
아침햇살이 살며시 솟아올랐다.
산마을
아리랑 고개 30리길
실같은 오솔길에는
신작로가 붉은 양탄자처럼 드러누웠다.
청년들은 나그네처럼 도시로 나가고
조상들의 때 묻은 고가에
늙은이들 덩그러니 남아
물질적으로 황폐해진 마을
발자국 뭉개버리고 지나간 차 바퀴자국
평행선으로 달리는 가로수에
어린 아이들 여럿 걸어가고 있었다.
메마른 사연들이 차편으로 메스컴으로 실려와도
받기보다 주기를 사모해 온
산마을의 소박한 인정이
집집마다 활짝 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