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1 /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7)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수치를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창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의 수치를 감추려고 숨기도 하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움을 가리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입고 있는 무화과나무 잎이 곧 마를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수치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안타까와하시며 최초로 짐승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와 같은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죽옷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낡아지고 찢어집니다. 다시 수치가 드러납니다. 짐승을 죽여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아들을 죽여 그 가죽으로 우리를 옷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의 수치를 영원히 가려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기만 하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옷을 무겁다고 입지 않으려고 합니다.
입었다가도 거추장스럽다고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죽옷인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이요 그리스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손수 지어주신 가죽옷은 어떤 짐승의 가죽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았을 때는 어린양일 가능성이 큽니다.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에게 그들의 수치와 죄를 가려주기 위해서 손수 지어 입히신 가죽옷은 결국 어린양이 대신 죽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양이 가죽을 벗김을 당하고, 피 흘려 죽어서 인간의 수치를 가려준 것입니다.
(히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사람의 죄 용서를 위해서 짐승이 대신 피 흘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자로 오셔서 당신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심으로 온 인류의 허물과 죄와 수치를 다 가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수치와 죄를 가려주기 위해 잡은 어린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어린양을 잡아서 피가 묻은 가죽으로 직접 옷을 지어 입힘으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직접 양을 잡고, 그 가죽을 벗겨 그들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입은 옷은 다 더러운 옷입니다. 그것마저도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더러운 누더기를 벗기시고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그 옷이 바로 구원의 옷입니다. 그 옷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내버려 두시고,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수치와 죄를 가려준 가죽옷이 되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는 자는 죄를 용서받은 가죽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성령의 소원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겸손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믿어주고 소망하며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경외심을 갖고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과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멘!
***호주의 어부인 아놀드 포인터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 놓은 그물을 걷다가 작은 새끼 백상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도 해치는 무서운 상어이다 보니까 어린 백상아리가 잡히면 다 죽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은 백상아리가 어쩐지 불쌍하게 보여서 아놀드는 상어를 풀어줬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 작은 백상아리는 아놀드의 배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아놀드의 배 밑에 붙어 있다가 출항을 하면 어김없이 쫓아왔습니다.
상어가 배를 항상 쫓아다니니 물고기가 다 도망가서 잘 잡힐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쫓아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놀드는 상어에게 신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고기는 잘 안 잡혀도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신디는 아놀드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물에서 나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고, 몸을 만져주면 물장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생활하다가 몸길이가 4m가 넘는 커다란 상어가 됐지만 몇 년간 한 번도 아놀드를 해치려고 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백상어는 지능이 높은 편도 아니고 사람을 따르는 종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어부의 단 한 번의 손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기 위해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죽옷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보답을 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 놀라운 은혜에 보답할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한 말의 고백과 행동과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악에서 구원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수치와 죄를 가려주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피 흘리게 하셔서 그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의 구원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다시 한번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