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
박정대
달빛 한 줄기 없는 다락방에서
추억의 꽃씨처럼 누워
어린 시절의 달맞이꽃으로 피어난들
누가 눈치채기나 할까요
푸른 눈을 반짝이며 밤의 기둥을 깎아
저 먼 은하수로 통하는 동굴을
파고 있는 생쥐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해요, 저 튼튼하고 긴 앞니의 자유
열 손가락 꼽아본들 나에겐 그런 신기한
재주도 없어
그저 풀썩거리며 먼지만 내다 만 하루
노을을 접어 뒤춤에 구겨넣지요
문을 열고 나가 사랑을 하고
돌아와 문을 닫고 그리워하는 건
흔하디흔한 습관성 발작
달빛 한 줄기 없는 다락방에서
추억의 꽃씨처럼 누워
어린 시절의 달맞이꽃으로 피어난들
누가 눈치채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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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은 흔하디흔한 들꽃이다. 수수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꽃, 낮에는 꽃잎을 다물다가 밤에만 피는 꽃이다. 그러므로 밤이나 이른 아침이 아니면 활짝 핀 꽃의 형태조차 보기 힘든 존재감 없는 꽃이다.
이 시는 달맞이꽃을 노래하는 내용은 아니다. 달맞이꽃은 은유를 뒤집어쓴 화자 자신으로 읽혀진다. 어린 시절 살았을 ‘달빛 한 줄기 없는 다락방’에서 아무도 ‘눈치채기’조차 못하는 보잘 것 없는 ‘달맞이꽃으로’ 살아가는 화자, 이처럼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어디 자신뿐이던가.
달맞이꽃은 역시 존재감 없는 생쥐로 변주한다. 비록, 어두운 밤의 한구석에서 아무런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생쥐지만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푸른 눈을 반짝이며 밤의 기둥을 깎’으면서 ‘은하수로 통하는’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화자는 생쥐만큼의 ‘신기한 재주도 없어 그저 풀썩거리며 먼지만 내다’말고 ‘노을을 접어 뒤춤에 구겨넣’듯 하루를 산다. 그러다가 겨우 ‘문을 열고 나가 사랑을 하고 돌아와 문을 닫고 그리워하는’ ‘습관성 발작’이나 반복한다.
화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틀에 박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삶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삶일지 몰라도 그 삶 또한 위대한 우주와 같다. 화자는 그런 삶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달맞이꽃으로 피어난들 누가 눈치채기나 할까요’(최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