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늘 소통과 협치가 필요하다.
야당은 정치에서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파트너로 국정을 같이 걱정하고 의논해야 한다.
입법기관을 무시하고 대통령령을 수정하여 통치하면 안되는 것이다.
협치로 입법이 이루어진 후에 통치행위가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다.
국회와 국회의원이 범죄자 집단이 아닌것이 총선을 통해 국민투표로 선출한 각각의 입법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전제 군주가 아니다.
단임제 대통령은 딱 5년만 통치하여 권력의 세습을 제한하자는 뜻이 있다.
행정, 입법, 사법 3권이 분리 독립 되어 있고 그 위에 헌법이 모든 국민 주권의 지침서 이다.
헌법 위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류 역사중에 가장 발전한 민주국가는 그리스 폴리스(도시국가)인 아테네로 시민 전원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정치를 실시
했다.
고대에 가장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 체제였다.
그러나 이런 도시국가가 침략 전쟁에 소멸되면서 거대한 절대군주 사회인 왕정국가가 생겨나 절대군주와 귀족과 노예로 이루어진 사회가 탄생 되었다.
이런 시대가 무려 1,000년 넘게 지속되면서 노예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사회가 도래했다.
그래서 모든 정치 용어는 왕 중심과 귀족 중심으로 생겨나게 된다.
역적, 역모, 역린등 수많은 말들이 왕권을 지키기 위한 말 들이다.
내시니 상궁이니 수라간 나인이니,
상의원이니, 내의원이니,
이, 호, 예, 병, 형, 공조니 백성을 위한 체계가 아니었다.
절대 왕실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과 싸워 이기는 건 신하로서 마당히 해야 할 일인것이고 왕권에 도전 의사가 없다는 것을
왕에게 늘 보여줘야 했다.
전쟁에 이기는게 선조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왕위를 뺏기지 않는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본시 이성계는 요동땅을 점령하라는 고려 우왕의 명령을 받고 출병하였으나 불가론을 앞세워 위화도에서 군사를 회군시켜 개경을 쿠데타로 점령한 반란군이다.
그래서 조선왕들은 늘 왕권에 도전할수 있는 세력을 혁파하는 게 1순위 였다.
선조는 전쟁 중이라도 늘 군권을 가진 세력들을 감시하고 좌천시켰다.
광해군도 마찬가지로 내란을 가장 두려워했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소설이 조선사회의 불합리에서 불거진 대표적인 사회상을 고발 한것이다.
이 당시 조선시대 양반 자제 중 서얼들은 지식인 계층이었으나, 과거시험도 응시 할수 없고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서얼들은 조정에 일 할 수 있게 해달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양반자제인 서얼들은 늘 불만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군대가 조직되어 전쟁에 참여한 임진왜란 기간에 제일 많이 군사를 일으켜 군주제를 없애고 차별없는 세상으로 바꿔 볼려고 혁명을 자주 일으켰으나, 번번히 권율등 정규군에 패하여 실패 했던것이다.
그리고 역모죄는 너무나 가혹했다. 실패한 내란들은 삼족을 멸하였다.
허균은 서얼은 아니었으나 칠서의 난을 계기로 역모죄로 몰려 많은 서얼들과 함께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렇듯 조선의 법은 왕권보호를 위한 법이지 백성을 위한 법이 아니었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백성들은 차별없는 사회 율도국 건설 위해 부도덕한 왕권에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했다.
이렇듯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백성들은 나라가 풍전등하에 몰릴 때마다 늘 분연히 일어나 재건했다.
몽골과 청나라의 침략 때도 일제식민시대에도 나라를 지킨 것 백성들 이었다.
조선말 탐관오리로 인해 조세제도인 삼정이 문란하여 백성들은 도저히 먹고 살수 없어 고부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이 민란은 동학혁명으로 발전하여 서울 진군작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씨 왕조는 백성들에게 어떻게 했는가. 일본에 군대을 요청 지금의 용산에 주둔시켜 일본군의 총과 대포로 동학도를 죽여 해산시켰다.
오직 자기 살 길만 찾았다.
일본은 어째는가. 메이지 유신 세력에게 에도막부가 항복해 신식문화를 받아들여 내각 총리가 국가의 수반인 나라가 됐다.
조선의 왕들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위정척사비를 세워 외세를 막는 쇄국정책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져도 백성들의 먹고 사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초들은 꿋꿋하게 살아 남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1987년 전두환의 호헌철폐를 물리친 대한민국 시민에 의한 직선제 개헌에서 이루어 졌다.
민주주의가 다져진지 38년이 되어간다.
그런데도 작금에 시대에는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계몽하려고 보냈다 한다.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겠다.
심훈의 상녹수 소설의 계몽운동이라도 된단 말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계엄이 선포되어 언론이 폐쇄되고 국회와 의원이 사라져 군사독재가 다시 될 뻔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 거짓말 말잔치에 재판관들이 농락 당하고 있다.
보수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치고 거짓말을 옳다고 하고 있다.
보수 집단의 탄핵 반대가 이루어져 윤석열 대통령이 복귀하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 하는가. 계엄은 합헌으로 마음대로 선포할 수 있고 군대도 마음대로 보내도 합헌이다.
국회와 모든 헌법기관에 군대를 보호 목적으로 상주시켜도 합헌이다.
그럼 종신 장기집권을 하란 말이다.
이런 독재의 나라를 그대들은 원하는가.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진영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절대 왕조국가로 회귀되어 국민이 노예가 되는 문제다.
탄핵 반대자들은 절대군주와 기득권자들의 노예로 살기를 진정 원하는가 ?
거짓말에 속지 말자.
거짓말을 꼭 거짓말 탐지기로 탐지해야 아는가.
전후 사정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
거짓말은 또 거짓말을 낳는다.
거짓말을 한번 하면 계속적으로 해야된다.
그래서 거짓말은 정말 인간이 할 말이 못된다.
이제 절대적인 대통령의 권안을 분산시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만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