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브레송 기획초대전
열정과 패기넘치는 사진가들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 차세대 사진가로 자리매김할 수있도록 한 달에 한 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최현주의 감칠맛나는 글과 더불어 <사진 바깥에서 사진읽기>라는 제명으로 월간 사진예술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Real Illusion
양정아 사진전
일시: 2008. 5. 23 ~ 2008. 5. 29
장 소: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
글. 최 현주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5년 동안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및 제작팀장을 거쳐 현재 Freelance copywriter로 활동 중. 공저 <워딩의 법칙>(2005년) 및 <두 장의 사진> 출판(예정)
fromganges.naver.com, http://blog.naver.com/fromganges.do
진실이거나 거짓이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양정아의 <Real Illusion>
신기루, 눈과 마음의 착시
이집트에 원정을 간 나폴레옹의 군사들은 허공에 산이 떠있고 분명하게 보이던 호수가 갑자기 사라지고 자그마한 풀잎들이 커다란 야자수로 변해버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군인들은 이 갑작스런 광경이 신이 내린 최후의 심판이라는 두려움에 빠져있었는데 원정대에 함께 온 물리학자 몽즈가 이 현상의 신비를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신기루’라고.
7월의 뙤약볕이 내려쬐이는 몽골의 사막을 달릴 때 나도 이와 같은 신기루를 경험했었다. 덜컹거리는 러시안 짚차 푸르공 뒷좌석에 몸을 싣고 누런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황무지 사막을 종일 달리는데 전방에 물 위에 뜬 작은 섬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곧장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호수도 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 역시 지표면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공기층에 의해 빛이 굴절하면서 생긴 신기루였다. 더운 사막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반대로 북극해 같은 곳에서도 신기루가 일어나고 이탈리아 남단 메시나해협에서는 구름 위에 아름답고 웅장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이중삼중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겹겹이 겹치면서 생기는 착시현상에 다름 아니다.
사막도 아니요 북극해도 아닌 우리 삶 속에도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 : 신기루를 만드는 전설 속 요정)가 있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작은 것을 거대하고 아름다운 공중누각으로 부풀리기도 한다. 눈을 비비고 다시 비벼보아도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찾아 끝없이 내달리는 일, 어쩌면 삶이란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운명을 타고 난 것 아닐까?
마술, 과학보다 더 달콤한 환상
젊은이들 사이에 마술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져서 내 주변에도 마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몇 있을 정도다. 얼마 전 지역축제를 보러갔을 때에도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지고 그 중에서 마술쇼도 있었는데 푸른 리본이 붉은 리본으로 바뀌고 종이가 사라졌다가 화려한 꽃으로 바뀌는 마술은 정작 축제의 주인공인 봄꽃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아무리 주의깊게 살펴보아도 웬만해서 마술의 실상을 가려낼 재간은 없다. 최근 TV에 종종 출연하는 일본의 유명한 마술사는 멀쩡한 수족관의 유리면으로 손을 불쑥 통과시켜 물속에 놓인 동전을 꺼내 보이기도 하고 테이블에 흠집 하나 내지 않고 포크나 스푼을 통과시키기도 한다.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은 쇼라기보다는 초능력으로 보일 정도이다.
특수한 무대장치를 이용해 대상을 사라지게 하거나 인체를 분리하거나 공중부양을 시키는 등의 대형마술을 ‘일루전 마술’이라고 한다. 검은 모자 속에서 흰 비둘기를 만들어 날리거나 꽃 색깔을 바꾸고 동전을 이용하는 ‘클로즈업’ 마술은 소박한 추억에 속한다. 요즘 마술사들은 마술이 눈속임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주장하는데, 빛의 굴절이라든가 도구의 원리를 이용하여 새롭게 창안해내는 마술이 간단한 과학을 응용한 것이라고 해도,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미인을 관 속에 눕혀놓고 사지를 절단하고 다시 감쪽같이 붙이는 마술에 한결같이 감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라면 마술이 과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보다는 여전히 놀랍고 신비한 초능력의 신화로 남기를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야 실타래같이 꼬여 좀체 풀리지 않는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그보다 더 미스테리하면서도 경쾌한 매직의 판타지를 간직하며 살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예술, 리얼 일루전
‘Real Illusion’이라는 아이러니한 타이틀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진짜와 가짜가 이렇게 멋스럽게 결합하다니! 양정아 작가의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숨박꼭질 하는 아이를 찾아내거나 숨은 그림을 찾듯 즐거운 놀이가 된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사이비(似而非)인고? 어느 것이 실물이고 어느 것이 ‘모조된’ 것인고? 또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가상인고? 사진 속의 가짜와 진짜는 한 쌍의 커플처럼 둘이 아니고 하나의 이미지로 착 달라붙어 있어서 단번에 real과 pretended를 구별해내기가 용이치 않다. 오히려 그 둘은 오목과 볼록처럼 하나의 공간 속에 사이좋게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풀꽃에 둘러싸인 저 푸른 들판 속에 서있는 집은 알고 보면 집이 아니라 손때 묻은 꾀죄죄한 전기스위치요, 초원을 달리는 기계차처럼 보이는 것도 기실 벽에 달라붙은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푸른 하늘 아래 다시 돌아온 제비도 건설현장의 펜스에 그려진 그림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별반 눈을 거스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실제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이 본디 모방, 즉 미메시스에서 출발하였다고 하지 않던가. 양정아 작가의 사진 속에 출연한 가짜들 역시 누군가 조악하게 만들어놓은 재현에 불과한데, 진짜가 가짜를 또다시 실존하는 진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가짜가 진짜와 도시공간 속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처럼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포착한 사진들은 예술이라는 ‘실재하는 환상 혹은 환각’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한다. 진실이라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진짜와 가짜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 유쾌하고 즐거운 세계,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이 한데 섞여 또 다른 실재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진실인 세상이 바로 예술일 것이다. 그것이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리얼 일루전’일 지도 모른다.
최 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