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건 지금에 와서 생각난 건데 내가 운동부에 들러간 것은 엄마 탓이라고 할수 있다. 엄마는 내가 여섯살이였을 때 근처 두 누나가 다니던 영락유치원과 차원이 다른 호수유치원에 다녔다. 그 곳은 도보로 가기는 너무 멀어서 매일 아빠 짐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또 택시도 가끔 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집은 다섯식구가 한방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 했었다.
우리집에 딸린 화장실도 없어서 공중화장실로 가야 했는데 난 무서워서 집앞 도랑에서 해결을 봐야 했다. 그렇게 가난한 우리집에서 그 비싼 사립 유치원에는 왜 보냈을까?
첫댓글 답은... 아들이니까~ 이거 아닐까요? 저희집도 딸셋 밑으로 남동생이라 엄청 귀하게 키우셨어요. 요즘은 아들 딸 동등하게 대하지만 예전엔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 있었고 더우나 귀한 아들은 더 그랬지요.
아이고 기억역은 ..그래도 경제가좀 나아졋을때네 한건물에 세집이쓰니 공동변소가 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