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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전철 4호선
수도권 전철 4호선은 1985년 4월 20일 개통시작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당고개역과 경기도 시흥시의 오이도역을 잇는 수도권 전철의 도시 철도 운행 계통 중 하 나이다, 이 노선은 당고개역에서 남태령까지는 서울메트로가 운영하고 있으며 이구간의 통행 방식은 우측통행이다, 반면 선바위역에서 오이도역 구간은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고 있으며 좌측통행 방식으로 운행한다, 노선의 고유색은 파란색이다,
※ 4호선 연장계획 창동의 서울철도차량 기지를 진접지구 인근으로 이전하는 대신 종점인 당고개에서 남양주시 진접까지 12km를 4, ~ 5km 구간에 하나씩 역을 모두 3,~4개를 만들 예정이다, 한편 창동차량 기지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문화 체육시설 호텔 버즈니쎈터 공항터미널 등을 갖춘 복합거물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
수인선으로는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으로 운행했던 수인선 협궤철도를 표준궤 복선전철 통근용 광역 전철로 다시 만든다, 1차로 오이도에서 소래 인천역까지 12개역을 2013년까지 운행계획으로 2006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오이에서 소래까지는 우선 2012년까지 조기 계통할 예정이다, 2차로 한 대앞, 사리 야목 어천 봉담 고색 수원까지이다, 수인선이 왕공 되면 인천 ~ 수원, 서울 ~수원을 축으로 하는 수송체제가 확립되어 지역산업육성 및 지역 발전 산업육성 지역 간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부호) ☞ (숫자는 역 번호) (☯ 갈아타는 곳) (★ 부 역명)
(409) 당고개 1993년 4월 21일 개통한 노원구 상계4동 111번지에 위치한 당고개역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의 기점역으로, 수도권 전철 4호선의 막차를 제외한 모든 전동차가 이 역에서 시·종착역을 담당하고 있다. 당고개역부터 창동역까지 지상 구간이다. 승강장 사이를 개표하지 않고 건너갈 수 없다.
역명은 예로부터 당고개(일명 덕능고개)는 산짐승이 많아 나그네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들고 넘었으며 그 돌을 쌓아둔 서낭당 터가 고개에 있으므로 해서 당(堂)고개라는 유래에서 당고개역이 되었으며,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서낭제를 지낸다,
(410) 상 계(上 溪) 노원구 상계5동 173번지에 위치한 상계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전철역이다. 4호선이 개통되었던 1985년 4월 20일부터 당고개역이 문을 연 1993년 4월 21일까지는 이 역이 시·종착역이었으나, 현재는 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편성이 없으므로 회차선로가 철거된 상태이다. 역은 지상에 위치하고 있다.
☞ 상계동유래는 불암산과 수락산의 골짜기에서 생겨난 한천(漢川)이 중랑천으로 이어지고 이 한천의 계곡 윗부분을 상계라 일컫고 하부를 하계라 하여 한천 위에 있다하여 상계리가 된 데에서 유래
(411) 노 원(蘆 原) (☯ 수도권 전철 7호선) 노원구 상계2동 335번지에 위치한 노원역은 노원구의 지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4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의 환승역이다. 4호선의 역이 지상에 있게 되어, 7호선과의 환승 거리가 상당히 길어지게 되었다. 4호선의 경우 일부 편성이 인근 창동차량사업소에서 입·출고하여 이 역에서 시·종착한다.
☞ 노원구는 그전에 이곳은 갈대만 무성하고 인가가 없어서 행인들이 불편했으므로 나라에서 갈대밭에 원(院)을 세우고 그 뜻을 따서 노원(蘆院)이라 하였다, 본래 양주군 노원면이였으나 해등면과 합하여 노해면이 되었고 1963년 1월 성북구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나누어질 때 도봉구에 속하였으며, 1988년 1월 도봉구에서 나누어, 노원구가 되었다,
(412) 창 동(倉 洞) (☯ 수도권 전철 1호선) 도봉구 창5동 135번지에 위치한 4호선 창동역은 나라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가 조선시대 후기 어영청의 북창이 이곳에 있었기에 동명에서 명명되었으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의 환승역이다. 경원선의 철도역으로 개업하였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개통에 따라 수도권 전철 1호선과 환승하는 전철역이 되었다. 역사는 현재 민자역사를 2005년에 기공하여 신축중이다. 4호선은 이 역부터 당고개역까지 지상 구간이다.
(413) 쌍 문(雙 門) 도봉구 창1동 659-12번지에 위치한 쌍문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역이다. 수도권 전철역 중에서 출근시간 승차인원이 8번째로 많은 역이다. 주변에는 대규모 주거지역이 밀집해 있으며, 1호선 방학역, 도봉역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1호선을 이용하지 않고 버스를 이용해서 쌍문역까지 와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경우도 많다.이 역부터 이촌역까지는 지하 구간이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쌍문의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온다, 하나는 현 쌍문동 286번지 근처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계성과 그 부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생시에 부모를 정성껏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부모의 묘 앞에 움막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그 아들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그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운데서 쌍문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현 창동우체국 부근에 열녀문(烈女門) 두 개가 서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 쌍갈래 길에 이문(里門)이 있었으므로 쌍갈문이 한자음으로 쌍문(雙門)으로 되어 쌍문동이라고 한다,
(414) 수 유(水 踰) 강북구 수유3동 140번지에 위치한 수유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역이다. 인근에 대규모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는 데다가 서울 강북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의정부/동두천 방면 버스의 환승기능까지 겸하고 있어, 수도권 전철역 중에서 출근시간 승차인원이 6번째로 많은 역이며, 4호선을 통틀어서는 승하차수가 가장 많은 역이다.
☞ 수유동의 유래는 삼각산 골짜기에서 물이 이 마을로 넘쳤기 때문에 물 수(水)자와 넘칠 유(踰)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며 우리말로 물이 넘친다하여 무너미라 부르기도 하고, 삼양동에 살던 삼형제가 인근에 다니면서 남의 땅을 빼앗으려 하므로 빨래 골을 경계로 하여 막았는데, 이때 개울물이 넘쳐서 물너미라고 하는 것을 한자음으로 수유(水踰)리라고 하였다,
(415) 미 아(彌 阿) 강북구 미아3동 197-14번지에 위치한 미아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전철역이다. 병기역명은 서울사이버대학으로 인근에 서울사이버대학교가 있다. 원래는 반대편 승강장 횡단가능 역이었지만 2009년 5월 이후로 횡단불가 역으로 구조가 변경되었다.
☞ 미아동의 유래는 삼양동(三陽洞)을 합한 넓은 지역으로서 서쪽은 산 능선을 경계로 성북구 정릉동과 접해있고 북쪽은 수유동 동쪽은 번동 남쪽은 도봉로를 경계로 길음동, 하월곡동과 이웃하고 있는 미아동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미를 뒤집은 불교적 표기로 보고 있으며, 그 유래는 미아 7동의 불당골에 원효가 세운 미아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416) 마이삼거리 강북구 미아4동 71-5번지에 위치한 미아삼거리역은 장위동과 종암동 그리고 돈암동으로 갈라지는 세 갈래 길이 나뉘어 지는 지형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이 일대는 예로부터 밤나무숲이 많아 밤나무골 월곡 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기도 한다,
(417) 길 음(吉 音) 성북구 길음1동 877-66번지에 위치한 길음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길음동의 유래는 삼양동(三陽洞) 좌우편에 위치한 곳이다, 정릉천의 골짝기가 길게 놓여 져 있으므로 기리목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음으로 고쳐 쓴 것이다, 그리고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기분(氣分)이 맑아지므로 좋은 노래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에서 길음동이란 하였다는 것이다,
(418) 성신여대입구(誠信女大入口) (★ 돈암) 성북구 동선동4가 1번지에 위치한 성신여대입구역은 동성동 3가 249-1번지에 1963년에 설립된 성신여자대학교의 학교이름 딴 역명이며 돈암역로 더 널리 알려진 ★ 돈암동의 유래는 미아리(彌阿里)고개에 걸쳐서 고지대에 위치한 돈암동은 되너미 고개라 했는데 이 고개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 돈암현(敦岩峴)이므로 고개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가 되었다, 되너미 고개는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오랑캐 즉 되놈이 서울에 침입할 때 넘어왔다 되로 넘어 갔다하여 부른 명칭이며 또는 적유현(狄踰峴)이라고도 칭하였다,
(419) 한성대입구(漢城大入口) (★ 삼선교) 성북구 삼선동1가 14번지에 위치한 한성대입구역은 삼선동2가 389번지에 1972년 12월 21일에 한성여자대학교를 설립하고 1978년 1월 11일에 한성대학교로 변경한 학교의 이름을 딴 역명이며 ★ 삼선교로 더 널리 알려진 삼선동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三仙坪)이라 칭했기 때문에 연유(緣由)된 이름인데 삼천평은 이 동네 남쪽에 있는 옥녀봉(玉女峰)에서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신선(三神仙)과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삼선교는 복개되어 볼 수 없으나 1번 출구 은행 앞에 위치한 표석은 대로변 널찍한 인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420) 혜 화(惠 化) 종로구 명륜동4가 1번지에 위치한 혜화역은 혜화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혜화문은 원래 지금의 서울의대 뒤편과 창경궁의 동편 산줄기가 언덕으로 이어져 있던 것을 일제 때 새 길을 내면서 현재 위치 옆으로 옮긴 것이다, 동소문은 원래 여진족(女眞族)의 도성출입 전용문(專用門) 이었으므로 조선 초에는 상당한 규모의 문루(門樓)가 있어 위용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청을 건국한 여진족이 예전 명나라 사신이 드나들던 서대문으로 출입하면서부터 문의 관리를 소흘(疎忽)히 하여 문루가 없어지고 암문(暗門)으로 남계 되었던 것이다,
(421) 동대문(東大門) (☯ 수도권 전철 1호선) 종로구 종로6가 69번지에 위치한 동대문역은 수도권 전철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역이다. 청계천 인근에 각종 의류상가가 밀집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서울의 대표적인 동대문(흥인지문)에서 유래
(422) 동대문역사문화공원(東大門歷史文化公園) (☯ 수도권 전철 2, 5호선) 중구 광희동1가 194번지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2, 5호선 황승역이다, 역명을 변경하기 전의 이름이었던 동대문운동장역은 인근에 1926년 개장한 동대문운동장이 위치하고 있어 이름이 붙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동대문운동장의 옛 이름은 서울운동장으로 역명 역시 서울운동장역이었으나, 1985년 7월 27일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과 함께 역명도 개칭되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2003년 3월 1일 동대문축구장이 철거, 2007년 12월 18일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어 동대문운동장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나, 철거 후에도 인지도가 높아 역명을 유지하다가 동대문운동장부지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짓게 되면서 결국 역명을 개명하게 되었다. 역명은 간혹 동대문구에 위치한 역으로 오인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중구에 있다. 동대문역도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다.
☞ 역명 변경 2009년 10월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문을 열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10월 29일 이 역의 이름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변경 고시하였고, 12월 1일부터 바뀐 역명을 사용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9글자 역명을 가지고 있다.
(423) 충무로(忠武路) (☯ 수도권 전철 3호선)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에 위차 한 충무로역은 동명에서 명명 된 것이다, 충무로동의 유래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이 당시 한성부 건천동 현재 인현동 명보극장 부근에서 1545년 양력 4월 28일 출생하여 어린 시절 살던 곳이라 충무공 시호 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한성부 남부 명례방(明禮坊), 호현방(好賢坊) 훈도방(薰陶坊) 낙선방(樂善坊)의 일부 또는 전부이었다, 1914년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 상권을 잡고 이곳을 본정(本町)이라 하였던 수치스런 때도 있었다, 1946년 우리말로 동명을 바꿀 때 충무로 1, 2, 3, 4, 5가동 등으로 정하게 되었다,
(424) 명 동(明 洞) 중구 충무로1가 64번지에 위치한 명동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명동의 유래는 조선시대 남부(南部) 명례방(明禮坊)의 이름을 써서 명례방골이라 하다가 줄여서 명(明)자를 써서 명동이라 부른 것이다, 1914년에 명치정(明治町)이라 하였는데 본래 명례방의 의미와 다른 일본 연호를 따서 쓴 것이다, 1946년에 우리말로 바꿀 때 명동 1가~2가로 되었다,
(425) 회 현(會 賢) (★ 남대문 시장) 중구 남창동 46번지에 위치한 회현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회현동의 유래는 이 마을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것을 나태 내는 이름이다, 1914년에 욱정(旭町)이란 이름으로 불리었고 1943년에 구제도(區制度)가 실시(實施)되면서 중구로 편입되었다, 1946년 우리말로 고칠 때 회현동 1가 2가 3가 동으로 정하였다,
★ 남대문시장으로 더 널리 알려진 남대문시장은 태종(1414년) 정부임대전(政府賃貸廛)으로 문을 연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중기에 들면서 저자거리로 자리 잡은 남대문시장은 일제 감점기에 일본인들이 독점운영을 했던 역사도 지니고 있다, 광복 후 상인연합회에서 관리를 해오다 1964년 10월에 이르러 건물주 땅주인 상인들이 공동출자한 주식회사 형태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426) 서울역 (☯ 수도권 전철 1호선) 용산구 동자동 14번지에 위치한 서울역은 사적 제284호 서울역사(驛舍)에서 따왔다, 1899년 4월 착공되어 같은 해 9월 18일에 인천~노량진 33.2km 구간을 개통하였다. 이어 1900년 8월 8일 한강철교(漢江鐵橋)가 개통되면서, 같은 해 서울 남대문역까지 기차가 들어오게 되면서 겨우 10평짜리 목조 바라크 건물을 염천교 아래 논 가운데에 대충 짓고 ‘남대문정거장이라 불렀다. 1925년 9월에 현 위치에 서울역이 완공한 서울역에 이름 따서 별도의 지하철 서울역이라고 하였다,
(427) 숙대입구(淑大入口) (★ 갈월) 용산구 갈월동 101번지에 숙대입구역은 인근 용산구 청파동2가 53-12번지에 1906년 설립한 숙명여자대학교의 이름으로 명명된 것이다, ★ 갈월동으로 널리 알려진 동명은 부근에 칡이 많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한편 갈월도사(葛月道士)가 살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조선 초에 한성부 성저 10리에 속해 남서 둔지동 갈어리계(葛於里界)이었다, 1914년에 강기정(岡岐町)이라 하였는데 이는 러일전쟁 후에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 사단장 강기생삼(岡岐生三)의 성을 딴 것이다, 1946년에 우리말로 고칠 때 갈월동(葛月洞)이 된 것이다,
(428) 삼각지(三角地) (☯수도권 전철 6호선) 용산구 한강로1가 293번지에 위치한 삼각지역은 옛날 한강, 이태원 서울역 방면으로 도로가 나있어 땅모양이 세모졌다고 하여 삼각지로 불리운 것이다, 이곳은 한강로1가 지역이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둔지방이라 칭해왔다,
(429) 신용산(新龍山) 용산구 한간로2가 181번지에 위치한 4호선 신용산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역이다. 내리는 문은 전동차의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이다. 호남선, 전라선 새마을호, KTX, 1호선, 중앙선을 이용할 수 있는 용산역과 매우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역으로서 환승이 불가능하다. 스크린도어가 2009년 6월 21일 현재 설치가 완료되어 있다. 용산역과의 환승을 위해 환승 통로를 개설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지만 2010년 현재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코레일, 서울메트로, 서울시설공단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공문이나 협조 요청도 받지 못한 상태이다.
1호선 용산역이 가까운 위치에 있어 4호선역은 신용산역으로 칭하였다,
(430) 이 촌(二 村) (★ 국립박물관) (☯ 수도권 전철 중앙선) 용산구 용산동 5가 17번지에 위치한 이촌역은 2번출구로 나가면 ★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촌동의 유래는 원래(元來) 이촌동(移村洞)으로 불리었다 이곳은 한강(漢江) 주변의 모래벌판으로 여름에 장마가 지면 강 가운데(노들섬)에서 살던 주민들이 홍수(洪水)를 피하여 강기슭에 옮겨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이 마을을 사평리진(沙平里津)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 하였고 간단히 사리(沙里)마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431) 동 작(銅 雀) (☯ 수도권 전철 9호선) 동작구 동작동 121-5번지에 위치한 동작역은 동작구에서 명명 된 것이다, 조선시대 용산(龍山)에서 수원(水源)으로 통(通)하는 한강(漢江)의 나루터인 동재기 나루(동작진;銅雀津)가 있었으므로 동작구로 하였다, 본래 시흥군 동면의 지역으로 영등포구→관악구에서 나누어졌으며, 1980년 4월 관악구에서 동작구가 신설되어다,
(432) 총신대입구(總神大入口) (★이수) (☯ 수도권 전철 7호선) 동작구 동작대로 390 (사당동 736-1번지)에 위치한 총신대입구역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위치한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역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의 병기역명은 이수로 환승역인만큼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명과 혼동을 막기 위해서 병기되었다. 지하철 건설 당시, 초기 역명은 '이수'으로 정했으나 인근에 위치한 총신대학교가 건설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댓가로 역명을 '총신대입구 (이수)'로 바꾸었다. 그러나 7호선이 개통되면서 사당동 남성역이 캠퍼스에서 훨씬 가까워졌고, 이에 따라 남성역과 이수역의 역명이 몇 차례 변경되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교통표지판을 포함해 이수역으로 많이 부른다. 4호선의 경우, 이 역부터 범계역까지는 지하 구간이다.
이 역은 환승역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선별로 수도권 전철 사상 유례없이 역명이 다른데, 1985년에 개통한 4호선의 역명은 ‘총신대입구(이수)’이고 1996년에 개통한 7호선의 역명은 ‘이수’이다. 2000년 4호선 쪽의 역명도 ‘이수’로 바뀌었으나 총신대학교의 시위를 벌였고, 결국 1년 후 총신대학교의 요청대로 다시 ‘총신대입구(이수)’로 환원되었다. 7호선 쪽의 역명은 개통 초기부터 ‘이수’였다. 현재도 총신대역 논란은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이수'로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 부역 이수은 이 일대를 배나무굴이라 부르던 마을이다, 해방 전까지 이곳에는 아름드리 배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앞 한강변 일대의 마을은 갯말 또는 포촌(浦村)이라 불렀다, 1925년 일제가 이곳에 다리를 놓았는데 갯말 앞에 있는 다리로서 여기에 배나무골이 있고 또 그 앞에는 한강물이 흐른다고 하여 배물다리로 불리워진것을 한자로 이수교(梨水橋)라 한데서 유래
(433) 사 당(舍 堂) (☯ 수도권 전철 2호선) 동작구 동작로 502 (사당1동 588-44번지)에 위치한 4호선 사당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으며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1동에 있는 서울메트로(2호선·4호선)의 환승역이다. 경기도 과천시로 이어지는 과천선의 관문이자, 수원시로 향하는 광역버스의 기점이기도 하여 환승 승객이 많은 편이다. 4호선의 경우, 1985년 10월 18일부터 남태령역 신설 및 과천선 직결 이전인 1994년 4월 1일까지는 모든 열차가 사당역에서 시·종착하였으며, 지금도 서울메트로 소속 직류 전용 전동차는 사당역에서 시·종착한다. 2호선과 4호선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다.
☞ 사당동명 유래 옛날 큰 사당이 있었으므로 사당동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과천현 사북면 사당리였으며 1895년 인천부 과천군 상북면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에 소속되었다, 1914년 부, 군의 명칭 위치 및 관할구역 개정 때 사당동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에 소속되어 변동 없이 내려왔다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 되었으며 1973년 영등포구에서 관악구가 신설되자 사당동은 동작구에 소속되어 현재의 이르고 있다,
(434) 남태령(南泰嶺) 서초구 방배동 2909번지에 위치한 남태령역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전철역으로, 서울 지하철 4호선과 과천선의 직결을 위해 건설하였다. 직결 구간에서 직류-교류 절연 구간이 발생하며, 교차터널에 의해 좌우 통행 방향도 달라진다. 과천선의 경우 유일한 서울메트로 관할 역이며, 종점인 관계로 한국철도공사역의 특징도 중첩되는 곳이다. 직결되는 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종점임에도 불구하고 지축역처럼 시·종착하는 열차는 없지만, 회차선과 유치선이 설치되어 있어 막차 시간대에 한 편성 시·종착하기도 한다. 역이 깊어서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역명은 사당동과 과천시를 잇는 남태령을 엽시현(葉屍峴) 또는 여우고개(狐峴)라는 전설이 있다, 고려 때 관악산 일대 무성한 숲 속에 여우가 우글거렸는데, 지금의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난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이 고개를 지날 때 여우의 극성이 심하므로 크게 노하여 다시는 고개에서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 남태령 유래 어는 때인가 정조의 행차가 이 고개에서 쉬어 가던 중 수행하던 시종(侍從)들에게 고개이름을 물었다, 이때 과천현 이방이었던 변씨라는 이가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자 본래 이 고개 이름이 여우고개인 줄 알고 있었던 정조는 거짓말을 한 변사또를 나무라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변씨가 본래 여우고개라 하오나 임금님께 그 요망스런 이름을 댈 수가 없어 갑자기 꾸며댄 이름으로, 서울에서 남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큰 고개이므로 남태령이라 한 것이 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정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그때부터 여우고개를 남태령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
(435) 선바위 1994년 4월 1일 개통한 과천시 과천동 351-7번지에 위치한 선바위역은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과천선의 역으로, 서울 지하철 4호선과 과천선의 직결을 위해 건설되었다. 직결 구간에서 직류-교류 절연 구간이 발생하며, 교차터널을 통해 좌우 통행 방향도 달라진다. 승강장 사이를 개표하지 않고 건너갈 수 없는 횡단 불가역이다. 역명 선바위라는 이름은 옛날에 맑은 개울 한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하나 서 있는 것을 보고, 서 있는 바위라고 불러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높이 2, 5 - 3m 정도 되었다는 선바위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공간이자 득남을 기원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과천의 선바위는 마을 하천 도로 전철역 이름 등으로 사용된 당 이름이다,
(436) 경마공원(競馬公園) 과천시 과천동 646번지에 위치한 경마공원역은 과천시 주암동에 면적 1, 16㎢에 한국마사화가 1989년 9월에 뚝섬경마장을 폐지하고 이곳 과천경마장으로 옮긴 후 경마이용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1994년 4월 1일 과천선 개통시 경마장역으로 영업 개시 하였으며 한국마사회 요청으로 2000년 1월 1일 경마공원역으로 역명을 변경하였다,
(437) 대공원(大公園) 과천시 과천동 727-1번지에 위치한 대공원역은 1909년 서울 창경궁에 국가말살 정책상 만들어진 동물원을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1984년 이곳 과천시 막계동 159-1번지(면적 9,162, 690㎡(277만평)에 서울대공원을 건립하였으며 관람객의 편의를 위하여 서울대공원 내에 1994년 4월 1일 과천선 개통시 대공원역으로 영업 개시
(438) 과 천(果 川) 1994년 4월 1일 개통한 과천시 별양동 2번지에 위치한 과천역은 과천시의 지명에서 명명 된 것이다, 과천의 지명은 1914년 3월 1일 군 면 폐합에 따라 동면의 주암리을 병합하여, 과일과 시내 구름, 산 암자등이 어우러져 쾌적하고 안락한 삶의 터전이라는 뜻에서 과천이라 하여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하여 현재의 이른다, ,
(439) 정부과천청사(政府果川廳舍) 1994년 4월 1일 개통한 과천시 별양동 1번지에 위치한 정부과천청사역은 1982년 12월부터 1986년까지 과천종합청사가 이전하였으며 1986년 과천시로 승격했다, 1994년 4월 1일 개통시 제2종합청사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으나 1998년 5월 15일 정부 과천청사로 바뀌면서 정부과천청사역으로 개칭함
(440) 인덕원(仁德院) 안양시 동안구 관양2동 1566번지에 위치한 인덕원역 4호선이 운행한다. 의왕시와도 가까이 인접하고 있어서 의왕시 내손동, 청계동 등지 주민들도 자주 이용하며, 2번출구에서 판교신도시 연계버스가 수시 운행한다. 역명은 조선시대 내시(內侍)들이 살던 곳으로 비록 거세(去勢)된 몸이지만 높은 관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남에게 덕화(德化)를 베풀고 사는 곳이란 의미로 인덕(仁德)이라 칭했다가 공용 여행자들의 숙식(宿食)을 제공하기 위해 원(院)을 설치하면서부터 인덕원이라 부른데서 유래
(441) 평 촌(坪 村) (★ 한림대성심병원) 안양시 동안구 노정로 123 (부림동 1608번지)에 위치한 평촌역은 1993년 1월 15일 개통 당시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경전선 평촌역과의 역명 중복으로 인한 철도청 전산상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벌말역이라고 하였으나, 평촌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변경 요구로 인해 1996년 12월 16일 평촌역으로 역명이 변경되었다. 초기에는 인덕원·안산행 안산선 직결 열차가 운행하였으나, 지금은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운행한다. 부역명은 한림대성심병원으로, 인근에는 대한전선 안양공장, 안양소방서, 안양시청, 안양교육청, 이마트 평촌점, 평촌중심상가, 평촌학원가,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등이 복합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안양시의 중심역이다.
☞ 평촌동(坪村洞) 유래 인덕원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산이 없는 허허벌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벌말이라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한강에서 과천-안양에 이르는 마을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 음씨가 많이 살아 '음촌'이라고도 불렀습니다
(442) 범 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039-1번지에 위치한 범계역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위치한 과천선의 역으로 개통 초기에는 인덕원· 안산행 과천선-안산선 직결 열차가 운행하였으나, 지금은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운행한다. 역명은 동해남부선 호계역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역이 위치한 호계동(虎溪洞)의 한글 이름인 범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은 들판과 골짝기 야산이 있어 자연 초목이 우거지고 맹수들이 서식하는 곳으로서 냇가에 범이 많았다, 하여 범계라 불렀으며 이를 한자화하여 호계동(虎溪洞)이 되었다,
(443) 금 정(衿 井) (☯ 수도권 전철 1호선) 군포시 금정동 87-1번지에 위치한 4호선 금전역은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이역은 승강장에서 바로 갈아 탈수 있다, 경부선 부설 당시에는 영업하지 않다가, 안산선의 개통과 더불어 안산선의 분기 역할을 수행하는 수도권 전철 전용역으로 만들어졌다. 경부선에서 과천선과 안산선이 합류·분기 직결한다.
☞ 금정동 유래, 본래 큰 샘이 있는 곳이어서 금우물, 금물 또는 금정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어느 곳이나 파기만 하면 물이 잘 나와 물 깃는 여인들의 옷깃을 적신다하여 금정이라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정조 임금의 화성 거둥시 이곳을 지니다가 큰 샘에서 물을 마셨으므로 그 샘을 금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럴 때 금정의 ‘금’은 크다는 뜻의 ‘큼’, ‘큰’을 표기한 글자로 볼 수 있으며 큰 우물이 있어서 큰 우물, 금우물, 금물 또는 금정이라 부른 것으로 풀이한다.
(444) 산 본(山 本) 1992년 5월 1일 개통한 군포시 산본동 1231번지에 위치한 산본역은 동명에서 명명 되었으며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수도권 전철 4호선 중 안산선의 역이다. 대규모형 민자역사로, 역사 내에는 뉴코아아울렛 산본점이 있다. 인근에는 군포경찰서, 군포시청, 군포우체국, 군포의왕교육청과 같은 공공기관과 대규모 상권, 주거 시설, 중심 상가, 역사 상가, 이마트 산본점 등이 복합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군포시의 중심 역이다. 첫차와 막차 시간대에는 이 역을 시·종착역으로 운행하는 차량도 있다.
☞ 산본동 유래 본래 과천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수리산(修理山) 밑이 되므로 산밑 또는 산본(山本)이라 하였다. 산본(山本)은 우리말의 ‘산밑, 산아래’를 한자(漢字)로 나타내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경남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산천리 산본마을 등 산밑 마을을 나타내는 여러 예(例)가 있다. 산본(山本)의 명칭(名稱)은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산저리(山底里)’였고, 일제 식민지가 되기 전인 1871년(고종 8년)에는 ‘산본리(山本里)’로 처음 문헌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445) 수리산(修理山) 군포시 수리동 1155-5번지에 위치한 수리산은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안산선의 역으로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운행된다. 대야미역과 산본역의 긴 역간거리로 전철 이용에 불편을 겪던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역사를 신축하여 2003년 7월 18일에 개통하였다. 역명은 인근에 위치한 수리산에서 따 왔으나, 사실상 역 주변은 대부분 주거 지역으로 수리산 등산로 입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 역에서 대야미역 사이에 교-교류 절연 구간이 존재한다.
(446) 대야미(大夜米) 1988년 10월 25일 개통한 군포시 대야미동 233-4번지에 위치한 대야미역은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안산선의 역이다. 이 역에서 수리산역 사이에 교-교류 절연 구간이 있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 된 것이다, 본래의 대야미(大夜味)라는 이름은 지금의 대야미역(4호선 안산 방면) 부근 행강들에 1천여 평(혹은 3천여 평) 되는 몇 개의 큰 논배미가 있어서 이 일대를 ‘큰 배미’ 또는 ‘한 배미’라 불렀다. 전답(田畓)을 헤아리는 단위로 두락(마지기), 야미(배미)가 있고, 밭을 세는 단위로 일경(하루갈이)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여기서 ‘배미’를 나타내는 야미는 두둑에 의하여 구분되는 한 자리로서 밤(바미)=야(夜)와 ‘배미’의 취음 ‘미’가 결합된 것이다. 대야미에는 정난종선생의 후손과 관련해서는 판서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447) 반 월(半 月) 안산시 상록구 건건로 179 (건건동 산 62-1)에 위차 한 반월역은 법정동이 아닌 행정동명에서 따왔으며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안산선의 역이다. 개통되었을 당시에는 같은 안산시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역 주변은 농촌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현재는 반월지구를 비롯해 택지개발이 비교적 많이 이루어져 이용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 법정동이 아닌 행정동 반월동 지명유래
마을 가운데 수리산 줄기의 속칭이 반월산이라 하여 그이름을 따 반월이라 하였으며 예전에 화성군 반월면 관내에서 팔곡동 담너머 마을을 큰반월이라 하였고 담너머보다 호수가 적은 곳이라 하여 작은반월 이라 불렀다. 본래는 화성군 매송면 월리와 본오동 경계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곳이 지대가 높고 식수도 좋지 안아 조선말에 담너머 서쪽인 현재의 위치로 이주하였다.
(448) 상록수(常綠樹) (★ 아산1대학) 안산시 상록구 상록수로 61 (본오동 409번지에 위치한 상록수역은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안산선의 역이다. 역명은 상록구의 명칭에서 따왔으며, 일제 강점기의 문학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지역인데서 상징적으로 제정되었다. 부역명은 안산1대학으로, 인근에 안산1대학이 있다.
(449) 한대앞(漢大前) (☯ 수인선 환승예정) 안산시 상록구 상록수로 337(미동 산 17-3번지)에 위치한 한대앞역은 경기도 안산시의 역 중 하나로 안산선과 수인선이 접속하는 곳이다. 안산선에는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전동차가 운행하고 있고 수인선은 오이도에서 한대앞 까지는 기존선로이며 한대앞 부터 수원까지 신설로 2013년 이후 수인선이 완전 개통예정이다, 인근 상록수 1동 1271번지에 한양대학교 캠퍼스가 있어서 명명했지만 실제로는 약 3.4km 떨어져 있고 길이 복잡하여 오히려 중앙역에서의 교통이 편리하다.
(450) 중 앙(中 央)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920 (고잔동 167-378번지)에 위치한 중앙역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역이다. 안산선에는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운행되며 수인선은 현재 폐역상태이다. 역명은 안산시의 중앙에 있다고 하여 제정되었으며 실제로 안산시의 중심가들도 중앙역 일대에 많다. 1994년까지 수인선 열차가 운행하던 역으로, 현재까지도 역명판, 승강장 등 수인선의 역 시설이 남아 있다. 1.2km 인근에 안산종합버스터미널이 있다. 평일 아침 3회 안산발 급행열차가 정차한다.
(451) 고 잔(古 棧)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784 (고잔동 453-53번지)에 위치한 고잔역은 수인선의 역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 부근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어촌 지역으로, 역에서 바다가 보일 정도였다. 안산선이 생길 때에도 고잔역 부근은 어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1988년 안산선 개통 당시에는 전철역을 만들지 않았다가, 1992년에 지역 교통 편의를 위하여 안산선의 전철역을 건설하게 되었다. 참고로 인천광역시 남동구 고잔동과 혼동되기 쉽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 고장동 유래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잉화면 고잔리라 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고잔리로 개칭되었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의거 안산시 고잔동(安山市 古棧洞)으로 되었다. 고잔은 고지(串)안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고잔(古棧)이란 한자는 뜻과는 상관없이 붙여진 것이다.
(452) 공 단(工 團)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27-1번지에 위치한 공단역은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철도공사 안산선의 역이다.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운행된다. 역명은 인근의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따온 것이나, 시에서는 장기적으로 소사-원시선의 계획에 더불어 역명을 변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부천과 시흥을 거쳐 반월공단이 있는 원시동까지 연결되는 소사-원시선이 공단역을 거쳐간다. 이 노선이 건설되면, 공단역은 환승역이 된다.
(453) 안 산(安 山) 1998년 10월 25일 개통한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435 (원곡동 377-1번지)에 위치한 안산역은 안산시에서 따왔으며 안산시는 고종 1895년에 인처부에 딸린 한 군이 되었다가 1914년에 시흥, 과천, 안산의 3개군이 시흥군이란 명칭으로 통합되었다, 그 후 1976년 시흥군의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의 반월면 일부가 증가되어 1986년 1월 1일 시(市) 승격과 함께 안산시의 뿌리를 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되었다,
(454) 신길온천(新吉溫泉)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216-2번지에 위치한 신길온천역은 개통 이전의 임시 역명은 신길역(新吉驛)이었는데, 이는 수도권 전철 1호선 및 5호선의 환승역인 경부선 신길역과 역명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 역이 계획될 당시에 역 인근에 온천이 개발될 예정이었으므로 신길온천역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온천 개발 계획이 전면 백지화된 상태로 본의아니게 온천없는 온천역이 되고 말았다. 일부 객지 승객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역내 승강장 벽면에는 「우리역 주변에는 온천시설이 없습니다. - 신길온천역장」이라는 안내문을 볼 수 있으며, 한때 역명 변경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아직은 마땅히 새 역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이 역명을 유지하고 있다.
(455) 정 왕(正 往) (★ 학국산업기술대) 2000년 7월 28일 개통한 시흥시 마유로 418번길 (정왕동 2325-12번지)에 위치한 정왕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으며, 현 정왕역 자리에는 수인선 군자역(君子驛)이 있었으며, 수인선 1937년 8월 5일 개통과 동시에 개업해 여객영업을 하다가 1994년 9월 1일 수인선 한대앞 ~ 소래 구간의 운행 중단에 따라 폐역 되었다. 이후 수인선의 복선 전철화 계획에 앞서 현 안산 ~ 오이도 구간이 안산선의 연장선으로서 전철화 공사가 진행될 당시의 임시 역명은 수인선의 역명에서 따온 '군자역'이었으나,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5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인 군자역과 역명의 중복으로 인한 혼선이 우려되어 현재의 역명을 정식 명칭으로 정하였고 개업과 동시에 인근에 한국산업기술대학교가 있어 부역명이 추가되었다.
☞ 정왕동의 동명유래는 1914년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이 시흥군으로 흡수 통합 되면서 시흥군 군자면 정왕리로 되었다가 1989년 시흥군이 시흥시로 승격함에 따라 정왕동으로 개칭된 동명이며 조선 영조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1895년까지 사용되었던 중요한 군사지역이었다,
(456) 오이도(烏耳島) 2000년 7월 28일 개통한 오이도역은 시흥시 정왕동 878번지에 위치한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안산선 연장노선의 종점이다. 상당수 수도권 전철 4호선 열차가 시·종착하는 역이다. 인근에 오이도와 시흥차량사업소가 있다. 역사 위의 역명판은 2003년의 당시 철도청 로고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역명은 오이도가 섬 아닌 섬이 된 것은 1922년에 일제가 염전을 만들기 위해 이곳과 안산시간 재방을 쌓은 뒤부터였다, 그 후 오이도는 자동차가 드나드는 섬 같은 육지가 되었다, 이곳 지명은 조선초기에는 오질애(吾叱哀)였다가 성종(成宗) 조에 오질이도(吾 叱耳島)로 개칭된 후 정조(正祖) 조에 현재의 이름이 오이도가 되었다, 오이도역은 수인선 군자역 자리는 정왕동의 중심지에 위치하므로 서울의 군자역과 혼동이 예상되어 정왕역으로, 근접해 있는 오이도 지명 되찾기 일환과 시의 문화유산을 널리 소개하기 위하여 오이도역으로 제정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