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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섭의 클라이머 스크랩 클라이머 이명희
한상섭 추천 0 조회 799 09.12.24 13:4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My Favorite Wall② 이명희의 도봉산 표범길


등반의 카르마를 즐거움으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쎄로또레 재도전 나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거벽등반가

 

글 임성묵 기자  사진 주민욱 기자

 

등반 중 내가 겪는 고통의 원인은 나다. 내가 안락함을 추구하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당연한 것이다. 세상은 완벽하다. 산도 완벽하다. 오르는 내가 불안정한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때는 내가 한심했으며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산을 오르며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과 위험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등반은 나에게 업(業)이라는 것.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기쁘게 오르는 것이다. _이명희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카르마(Karma)였다. 고등학교 졸업반 꿈 많던 소녀의 눈에 인수봉이 박힌 것은. 그 길로 타이탄산악회에 입회했다. 부모님은 과년한 처자가 남자들 소굴에 들어간다고 걱정했지만 이미 그녀에게 등반은 평생 지고 갈 업이 되었다.
산악회에 입회한 지 2주 후 선인봉 ‘설우길’ 앞에서 사부인 최철산씨는 이렇게 말했다. “가!” 그리고 퀵드로 몇 개를 선물처럼 쥐어 주었다. 이명희(36세)씨의 대답도 명료했다 “예!” 그리고 잠시 후 “우당탕~으악!” 슬랩에서 추락한 명희는 턱이 까졌지만 피 한 번 닦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단박에 올랐다.
깡이 세서도 아니고 겁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산이 좋았고, 등반이 좋았고, 고빗사위에서 발이 밀려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까지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녀는 선인봉의 크랙과 슬랩을 오르고 또 오르고, 무조건 ‘고’하는 선인파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며칠 안 남아서인지 석굴암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오색등이 달렸다. 경내에 들어서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그녀가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언제부턴가 가족과 부모님 그리고 안전등반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 시작은 8년 전 카라코람이라는 대자연을 접하면서부터였다.
2001년 여름 명희는 파키스탄 힌두라지산맥의 갈사바르 계곡에 있었다. 한 시즌에 5~6000미터급 5개 봉우리 신루트에 도전한 ‘멀티피크 원정대(대장 서기석)’ 대원으로서였다.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등반지 무스뜸(Mustum, 5620m)은 아이스폴과 수직 암벽으로 이루어진 등반길이 2000미터의 험악한 산이었다.
등반 전날 긴장감 속에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등반은 고정로프를 사용하지 않는 알파인스타일(alpine style)로 한다.” 서기석 대장의 결정에 모두 동의했다. 등반조는 서대장, 명희와 글쓴이로 결정되었다. 준비한 장비는 50미터 로프 두 동과 캠 한 조, 하켄 몇 개가 전부였다.
다음날 네 시간을 운행, 전진캠프(4100m)에 도착한 우리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정로프도 없이 전입 미답의 2000미터 벽을 무사히 오를 수 있을까? 확보물은 이걸로 충분할까? 낙석은…? 해가 뜨면 모는 것이 결판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새벽 5시, 북동벽 초입으로 가기 위해 1000미터가 넘는 아이스폴을 올라 꿀르와르에 진입했다. 설벽 200미터를 올랐을 때 “꽈과광~.” 대포알만한 낙석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괜찮나?” 서대장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자 다리에 낙석을 맞은 명희가 주저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절룩거리는 발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설벽을 올랐다.
순간 생각했다. 저 가녀린 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북동벽에 붙자 더 이상의 낙석은 없었다. 가파른 믹스지대를 종일 올라 오후 6시 정상능선 밑에 도착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이 순식간에 폭풍설로 변했다.
“쿵! 쿵!” 자정이 지나면서 시작된 눈사태는 30분 간격으로 쏟아졌다. 우리는 매트리스로 후폭풍을 막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올라갈 수 있겠어?” “끝까지 가보죠.” 추위와 피로 때문에 입술이 파랗게 변한 명희가 말했다. “그래 가보자.”
서기석 대장의 결정 후 우리는 쏟아지는 눈사태를 뚫고 무스뜸 정수리를 향해 올랐다. 200미터의 어려운 혼합등반지대를 돌파, 오후 3시 정상 100미터 전에 도착했다. 초등이 눈앞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강하자!” 갑자기 기석형이 하강을 결정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명희가 하혈을 시작했어.” 열흘 전에 생리가 끝난 그녀가 하혈을 시작했다는 것, 몸이 통제를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더 해보죠.” 바지가 피로 물든 그녀는 끝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내려가야 했다. 극한을 넘어선 그녀의 의지와 정신은 정상에 선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도착한 플라토에 우리는 임시 비박캠프를 마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설원을 가로질러 아이스폴로 향할 때도 명희는 말이 없었다. 묵묵히 걷기만 할 뿐. 그 모습이 자신의 등반을 마음속에 비춰보려는 구도자 같았다.
 
폭풍 같은 열정으로 카라코람을 누빈 여름이 지나고 몇 해 후, 우리는 인수봉에 다시 모였다. 그사이 명희는 최석문씨와 결혼, 아들 보건이를 얻었다.
“형! 명희가 우울증이 심해요.” 석문이는 출산과 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명희가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이때가 2004년이었다.
그녀를 다시 산에서 본 것은 이듬해였다. 옛 기량을 되찾고자 손이 비틀어지도록 인공암벽에 매달린 결과, 각종 등반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컴백한 모습으로였다. 물론 이 시기 보건이는 당연히 석문이의 몫이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그녀는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뼛속까지 앓아낸 것 같은 등반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벽에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선인봉을 대표하는 표범길(5.10c) 앞에 섰다. 캠 한 꾸러미를 챙긴 그녀가 등반 초입에서 루트를 살폈다.
“저 아가씨 어디서 많이 봤는데?” “저 아줌마거든요. 이름은 이명희예요.” “아! 기억난다. 아줌마원정대, TV에서 봤어요.”
그랬다. 2006년 명희는 여성 거벽등반가인 김점숙, 채미선, 김동애씨와 팀을 꾸려 알프스의 그랑드조라스 북벽, 몽블랑 뒤 따귈 삼각북벽과 에귀 뒤 미디 북벽을 오르고자 유럽으로 떠났다. 2001년 원정대의 홍일점으로 느끼고 배운 알파인 등반을 원 없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워커 스퍼(Walker Spur)를 오르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등반 그 자체였다. 그래 엉덩이를 겨우 붙일 수 있는 비박지는 호텔과 같았고 레뷔파 크랙도, 회색 슬랩도, 살얼음이 덮여있는 삼각설전도 기쁜 마음으로 올랐다.


가슴에 간직했던 세 곳의 북벽을 모두 오르고 귀국한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계획했다. 목표로 한 산은 남미 파타고니아에 있는 또레스 델 파이네와 쎄로또레였다. 한미선, 이명선씨와 함께 여성팀 최초로 세계적인 암탑을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이네 등반 때는 정상을 목전에 두고 강풍 때문에 하산했다. 바람이 잠시 멎은 틈을 타 속전속결로 나선 두번째 시도에서 겨우 정상에 올랐다. 쎄로또레는 이보다 더했다. 상상을 초월한 폭풍설 속에 베르그슈른트에서 5일을 기다렸지만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은 인간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미련 없이 하강했다.

표범길 초입 페이스를 지난 명희가 길게 이어진 크랙에 붙었다. 얼마 전 5.13루트 등반에 성공, 물 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등반을 이어가던 그녀는 표범의 하이라이트인 슬랩 트래버스도 놀이하듯 건넜다.
“쎄로또레의 크랙과 비슷한 것 같아요.” 등반을 마치고 하강한 그녀가 표범길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등정에 실패한 남미의 암탑을 다시 오르고 싶다는 암시로 느껴졌다. 


양지바른 공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명희가 스페셜 락(5.12a)에 붙었다. 손톱만 한 홀드가 연속으로 이루어진 루트로 두번째 볼트에서 추락하면 바닥을 치기 때문에 클라이머들이 등반을 꺼리는 코스였다. “출발!” 가벼운 몸놀림으로 등반을 시작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올라 두번째 볼트에 로프를 통과시킨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추락해도 문제가 없다는 듯 세번째, 네번째 볼트를 연이어 지나 크럭스인 다섯번째 볼트 밑에 도착했다. 손가락 반 마디가 걸리는 작은 홀드를 잡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갑자기 손을 놓았다. “추락!” 허공을 가른 그녀의 체중이 전해왔다.
“형! 다시 해 볼께요.” 오른쪽으로 최대한 팔을 벌려 흐르는 홀드를 잡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체중을 옮겼다. 그러나 추락! 이번에는 발이 버티어주질 못했다. 얼마 전 골절되었던 새끼발가락이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를 몰랐다. 다시 쌀알만한 홀드는 모아잡고 스미어링으로 마찰력을 높인 뒤 “아! 앗~.” 기합을 넣는 동시에 왼쪽 발을 옮기며 크럭스를 넘어섰다. 등반을 마친 그녀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하강 한 후 장비를 정리하던 명희가 낮은 목소로 말했다. “형! 내년에 쎄로또레에 다시 도전할 거예요. 그 벽 오를 방법이 있어요.”
그 방법! 그것은 오늘 등반에서 보았던 즐거움이었다. 등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기쁘게 맞아 오르는 것. 그녀에게 등반은 지독한 카르마였다.

 

 

 

 

 

 

 

 

 

 

 

 

 

 

 

 

 

 

 

 

(박스) About 이명희

등반 경력
1993  타이탄산악회 입회
2000  전국 인공등반대회 우승
2001  카라코람 무스뜸 신루트 개척
2004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대회 우승
2005  전국빙벽등반경기 선수권대회 우승
2006  그랑드조라스, 몽블랑 뒤 따귈 삼각북벽, 에귀뒤미디 북벽 등정
2007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대회 우승
2008  또레스 델 파이네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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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29 11:19

    첫댓글 한번 쯤 다시 가보고 싶은 곳 파타고니아.... 언제 갈수 있을까요? 상섭이형 그때는 함께 가시죠. 트레킹하기 진짜 좋아요. 등반도 같이... ^ ^

  • 09.12.29 15:26

    항상 열정이 넘치는 모습 참보기 좋고요.
    그래서 난 명희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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