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옛 시간 풍경
김 혜 식
공주 영명 학당
앵산 공원 뒤로 빨간3층 건물이 두 개 있었었다. 하나는 영명학교 강당이고 하나는 선교사의 집이다. 일락산 건너편 마주 보이는 일출산에 위치하고 있는 곳, 그때 당시 3층은 공주 최초의 빌딩으로 멋있었겠다. 일출산이란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게 아닌듯하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공주의 신문화의 교육을 세우란 뜻이었을 게다. 이곳은 영명학교를 상징하던 건물이다. 노후로 인해 철거할 당시 건물 머릿돌에 묻혀있던 함에는 개교 1회부터 11회까지의 동창 명단과 학교 족보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설립 허가증, 당시 사용하던 성경과 찬송가, 교직원 명단 등 소중한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역사는 그렇게 남겨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유야 어쨌든 이 강당은 남겨졌어야야 옳았다. 갤러리로 남겨졌다면 좋았겠다. 근사한 갤러리하나 잃어버린듯하다.
<사진1-
충남 공주시 중동 318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영명 학당의 3층 강당건물>
<사진2-같은 건물을 옆에서 본 모습>
이곳을 보여주면서 공주의 여성 신교육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머물다 간 곳, 유관순이 이곳에 잠깐 다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신여성 임영신이 교사로 오기도 했던 곳, 샤프선교사의 부인 하몬드가 남편을 도와 신여성의 교육을 맡아 시작했다고 한다. 초기 전신의 교명은 명선 여학당,( 장소는 이곳이 아님) 이후엔 영명 여자 고등학교, 그리고 윌리암이 교장으로 초대되면서 이곳이 영명 남자고등학교로 바뀌었다. 그렇게 공주는 일찍이 신여성을 위한 교육의 시작이 활발했건만 유관순 이후 그다지 영명한 여성이 없음이 아쉽다. 모쪼록 이름처럼 많은 영명한 깨인 여성들이 많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공주니까.
<사진3>
미국 기독교 감리회 소속의 프랭크 윌리암(Frank E. C.Williams), 우리나라 이름으로 우리암, 동상에 새겨진 한자식 우리이름이 참 친근하다.
선교사의 집
<사진4-선교사가 살던 언덕위의 빨간 집>
영명학교를 이야기할 때 함께 묶어야 좋을 것 같다. 취재차 갔을 때 선교사의 집에서 만난 집사님의 증언에 의하면 영명학교 창설자 읠리암은 결혼 기념으로 아내에게 건물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영명 강당은 사라졌다. 제일 감리교 교회 소속 건물이지만 근대 문화유산으로 이곳은 지켜져야 좋을 듯하다. 삐거덕거리는 계단과 비 들이치는 문틀들. 곧 손을 보지 않으면 많이 손상을 입을 것만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 가 있는 기도처. 높은 곳, 허름한 곳, 소박한 아내의 기도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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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아들 영명중 다니때는 있었던 건물이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져서 사진으로 볼 수 있다니 안타깝네요... 자료 감사합니다.
참 좋습니다.
어제 지수걸 교수님의 뜻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더많은 이야기수집하셔서 작품만들어 보세요
저도 이건물 헐릴때 많이 아쉬워했고 분개했는데...사진으로 대하니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