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청태종의 능으로 묘 중앙에 비슬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
마지막날은 청태종의 능을 본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하는 일정으로 이른 아침 일출을 본 후 어제 밤에 들렀던 야경이 멋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 용흥리'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히 호화로운 가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둘러 보고 이른 식사를 하고 청태종의 능이 선양 외곽에 있어 교통량을 고려, 조금 서둘러 7시 호텔을 출발하였다.
숙소에서 아침 일출을 봅니다..
숙소 맞은편에 정자가 있고..
야경이 멋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 용흥리'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상당히 호화로운 가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화로운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이동용 간이매점도 보이고..
선양으로 이동하면서 영릉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갔다. 이곳 영릉은 누루하치의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웠고 1626년 병사하였다. 청나라는 팔기군을 운영했고 팔기군 1기가 7500명으로 6만 명 밖에 되지 않았는데 명을 정벌할 때 몽고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누루하치의 부인이 5명인데 모두 몽골족이라고 한다. 중공군이 팔로군으로 출발하는 것도 청의 영향을 받은 것 같고 그래서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8이라는 숫자이다.
누루하치의 조상들의 묘가 있는 영릉 휴게소..
영릉 세번째 줄에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표시가 있듯이 청의 뿌리가 신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루하치 사후 8남 홍타이지(청 태종)는 2남 다이샨의 지지를 통해 청나라 2대 왕인 태종이 되었고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침략하였고 청을 건국하였다. 청 태종은 1640년 요서지역을 정벌하였고 1643년 급사하고 심양의 소릉에 안치되었다. 누루하치 묘가 궁궐(故宫)중심으로 동쪽에 있어 동릉(东陵), 홍타이지 묘가 북쪽에 있어 북릉(北凌)이라 한다. 청은 3대 순치제 때 심양에서 북경으로 들어가 명을 정복하였기에 순치제 이후의 능은 북경에 있다. 오전 10:40분 북릉인 청소릉에 도착하였다.
북릉인 청소릉은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광개토대왕 유적(5A)보다 한 급 낮은 4A로 관리되고 있다.
심양은 환선형 도시로 현재는 3선형에서 4선형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청소능(북릉)은 2선형 외곽에 있으며, 능을 중심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심양은 평지로 땅을 파면 모래가 나올 정도로 물이 잘 빠져 홍수가 없고 지진도 없는 천혜의 땅이라고 한다.
청소릉 입구에서 단체인증을 하고..
가이드는 입장료가 50원(만원)이라고 했는데 매표소에서 확인을 해 보니 성수기인 4월~10월 까지는 40원(비수기에는 20원)이며, 60세이상은 반값(70세 이상은 무료)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 팀은 전원 60세 이상이라서 가이드가 1인당 30원을 추가로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노팁, 노옵션으로 가이드 팁을 줄 필요가 없었지만 우리 팀은 단독추진으로 가이드에게 수고비로 10만 원 주었는데 여기서 빙땅(?)을 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북릉공원 입장료는성수기인 4월~10월 까지는 40원(비수기에는 20원)이며, 60세 이상은 반깞(70세 이상은 무료)라고 합니다.
북릉(청소릉)은 넓은 면적에 양쪽 인공 호수와 노송으로 잘 정비되어 1927년 공원으로 개조되었고,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국가4A급 관광명소로 선정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견학을 오는 등 많은 사람들이 북릉 공원을 찾고 있었으며, 인공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장면과 공원 한쪽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조금 생소하였다.
아이들이 견학을 오고 시민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인공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네요..
고목..
공원 한쪽에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멋진 소나무가 있고..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석상들이 있습니다..
소릉 들어가는 입구에는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의 세가지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제사 지내는 곳이다..
지붕에 동물들 위로 철사를 두른 이유는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연꽃무늬는 출입문으로 무늬 안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 비밀을 풀면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보물을 가져갈 수가 있다고 한다..
청 태종의 능으로 봉분에 풀이 없고 큰 나무 한 그루(비술나무)가 정상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이채로운데 이는 만주족의 풍습이라고 한다. 비술나무를 묘에 심은 것은 까마귀가 쉬어가라는 의미이며, 중국에서는 비술나무에 까마귀가 앉으면 복이 온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비슬나무 한 그루가 묘 중앙에 있습니다..
둘레가 타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능 둘레가 기울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모든 복이 능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청소릉을 구경한 후 되돌아갑니다..
그림도 그리고, 야외수업도 받고..
요 차를 타는데 10원(한국돈 2000원)입니다
17:32분 심양에서 이륙하여 약 1시간 22분 비행 후 19:54분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3박 4일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무의도 상공을 지나며 멋진 노을을 봅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3박 4일의 멋진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여행 후기
한국인이라면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고, 이 염원을 풀기 위해 국방동우회 선˙후배님들과 3박 4일 여정으로 다녀왔다. 사실 백두산에서 천지를 보는 것은 우스개 소리로 백두산을 백번 가야 두 번 볼 수 있다고 백두산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듯이 쾌청한 날씨 속에 천지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9월 이번과 동일한 코스로 이미 다녀왔으며, 당시 최고의 날씨 속에 백두산의 모든 것을 봤기 때문에 또다시 백두산을 가는 것이 조금 주저되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참가한 가장 큰 이유는 30~40년 동안 한 직장에서 부침을 함께 하였던 선 후배님들과의 동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 직장에서 청춘을 바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면 직장 선후배들과 관계가 돈독할 것이라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근무했던 부서와 업무에 관련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통하여 함께 하면 동우회 행사 때에 만나도 서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백두산 여행은 작년에 다녀 온 경험을 토대로 동우회 회장에게 백두산 여행을 건의하게 되었고, 그 결과 백두산 행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백두산 여행은 6월 말 ~ 8월 말까지가 피크로 가격도 8월로 갈수록 비싸졌다가 9월 이후면 뚝 떨어지는데 이번 백두산 여행은 해외 산행과 트레킹 전문여행사인 '산이 좋은 사람들'이란 여행사와 계약을 하였다. 이 여행사 하고는 개인적으로 2010년부터 10여 년간 매년 아시아의 명산들을 다녀 왔기에 믿고 추진할 수 있었다. 계약 결과 최초 요구보다 1인당 5만 원씩 절감하였고, 압록강 보트도 무료로 추가할 수 있었다.
드디어 6.25일 아침 6시 인천공항에서 일행들을 만나 대한항공을 타고 심양으로 출발하였다. 첫째 날 여정으로 방문 한 집안의 광개토대왕비와 능, 장군총(장수왕릉 추정), 그리고 압록강을 둘러보면서 이곳이 그 옛날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는데 지금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그들만의 역사인식으로 고구려를 자신들의 변방 지역의 일부로 치부하여 중국역사의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릉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중국 정부에서 광개토대왕릉을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장수왕릉의 경우 능을 떠 받치는 호석(護石)이 하나 없어 전체적으로 기울어가고 있는데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압록강에서 보는 북한의 민둥산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민족이라서 그럴까...... 과거고 현대고 간에 나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날은 북파에 올라 A&B 두 개의 코스에서 천지를 보는 것인데 중국의 엄청난 인파 속에서도 백두산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백두산에서 천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 팀은 한번 만에 천지를 보았기에 운이 좋은 것 같았다. 12~13년 전만 해도 백두산 트레킹도 하고 비록 불법이지만 천지까지 내려가서 발을 담글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된다. 천지는 코발트 색을 띠고 있었으며, 천지 물에는 봉우리와 구름의 투영이 반영되어 그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천지를 보고 환승센터로 내려와 인원을 점검하는데 한 명이 없어져 이 때문에 약 2시간을 허비하여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이 옥에 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일정인 장백폭포와 녹연담도 둘러볼 수 있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록 오늘 한 사람의 독단적인 행동에 따른 의사소통이 잘 되지 못한 실수가 있었지만 먼 훗날 백두산 여행을 떠올리면 추억거리가 하나 만들어진 것이라고 위안을 해 본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23시가 다 되어 오늘 계획된 농협 방문을 할 수 없게 된 점은 조금 아쉬웠다..
셋째 날은 서파에서 1442 계단을 올라 천지를 보는 것인데, 도로공사로 인하여 중국인들은 출입이 통제되고 사전에 신청이 된 한국인들만 서파에 입장을 할 수 있게 되어 천지를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승센터에서 가이드가 표를 끊으러 간 사이 재빠르게 국방동우회와 등산팀 플래카드를 게시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좋아 구름 한 점 없는 멋진 천지를 볼 수 있었고, 천지를 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어제에 이어 연이틀 천지를 보았으니 3대가 덕을 쌓기는 쌓았나 보다. 그리고 천지로 올라가는 길에 노란색의 '기는미나리아제비'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고, 만병초, 애기금매화, 하늘매발톱, 구름국화 등과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담자리꽃나무 등의 야생화들을 볼 수 있어 이번 여행에서 계획했던 것들을 모두 이룬 것 같아 좋았다.
마지막 날은 당초 계획에는 없었던 것을 가이드에게 첫날부터 얘기를 하여 심양에 있는 청태종(홍타이지)의 능을 방문할 수 있었다. 청태종은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936년) 당시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왕으로 조선에 씻지 못할 치욕을 안겨준 자였다. 당시 조선은 청과의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척화파와 주화파간의 명분 없는 논쟁만 되풀이하다가 전국토가 유린되었고 그 결과 죄 없는 백성들 20만 이상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갔다. 조선에 치욕을 안겨 준 청태종의 능을 보면서 위정자는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으므로 위정자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여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노력해 주길 기대해 본다..
백두산 여행을 통해서 국방동우회의 뜻 깊은 행사가 매년 이어져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단합을 통한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 보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