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검정시험도 혼란기였기 때문인지
공부를 게을리한 나였지만 무사히 통과하였다.
나는 무엇이든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으로 이과계의 학문에 집중해갔다.
그것이 생활에 직결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기술계통은 군대시절에 배웠기 때문에 숙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의 나”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를,
특히 물질을 주체로 하여 추구하였다.
그것은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해초로 만든 면류랑 감자, 고구마류가 주식이었다.
비누를 만들어 팔기도 하였고 라디오나 전축을 혼자서 조립하여 팔아 생활하였다.
그러나 종교서적을 읽으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고
신비의 세계에 관해서 항상 탐구를 계속하며
눈으로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었다.
선정(禪定)을 하며 자주 명상에 잠겨 봤지만
마음의 일시적인 안정은 가능하여도,
생활속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현혹되어 그것은 항상 원래의 혼란이었다.
어떨 때는 신불을 부정하는 동료에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노여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혼은 있는 것인가?
유령은 정말로 나오는 것일까?
인간의 생(生)과 사(死), 인생의 목적
그리고 여러 가지 고뇌, 그것에 대한 기도라는 것은 무엇일까?
절에서는 경문을 올리는데 왜 경문을 외우는 것일까?
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산다시에 있는 절의 절친한 스님에게 질문해도
<경(經)을 외우면 공덕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애매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가 부처가 된다.
때문에 경(經)은 그 부처를 공양하는 언어인 것이다>
라고도 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누구도 갔던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지>
라고. 이것 또한 정말로 요령부득이었다.
<왜 절을 세우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는
<부처님이 계실 장소가 필요하지.
너도 집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부처님도 계실 장소가 없으면 곤란하시겠지>
라는 정말로 아이들 눈속임에 불과한 설명이었다.
내가 납득할 리가 없었다.
또 친구와 함께 크리스도교회의 문을 두드려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설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된다>
라는 말로 믿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는다고 하는,
내게는 납득이 안가는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나는 기성종교에 차례로 실망해 갔다.
그리고 또한 지금의 육체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죽어 버리면 모두 없어져 버린다.
사후의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불교학자와 승려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재가 소중하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도 없는 터이다.
나는 생각한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에는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하고 있다.
즉, 에너지이다.
물질이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압력과 열과의 인연이 없는 한,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을 이루는 능력은 우리들의 오관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에는 물질로서의 차원이 있고
일을 이루는 능력,
즉 에너지는 완전히 물질하고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은 유기물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와 그 집단은 각각 개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동물이랑 식물은
외부의 열과 빛이라고 하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본능에 의해 종족은 보존되고 후세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이나 식물에는 광물 등의 에너지와는 다른 의식의 존재가 있고,
의식의 차원과 육체가 각각 개성을 갖고 동거하고 있다.
우리들의 경우도, 똑같이 육체로서 이 세상의 차원에 존재하고,
의식 즉 혼이라고 하는 고차원의 것과 동거하여 성립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이 때문에 인생항로의 타는 배라고 말할 수 있다.
배의 선장인 의식, 혼이 떨어져 버리면,
육체는 배로서의 의식밖에 없고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는 갖고 있지 않다.
즉 잠자고 있을 때의 상태가 그렇다.
오관도 특별한 외부의 작용이 없는 한,
기억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사고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뇌세포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들이 잠자고 있을 때에도 그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들어 버리면
아무리 콧구멍이 열려 있어도 귓구멍이 열려 있어도 완전한 기억은 없다.
외부로부터 일정이상의 작용이 없는 한,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체질 및 상태에 따라 수면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누구나 잠들고 있을 때는 어떠한 걱정이 있어도 그것을 잊고 있으며,
아픈 부위가 있어도 대부분 그 통증을 잊고 있다.
의식. 즉 선장이 타고 육체를 지배해야만,
비로소 지금까지의 상태가 계속되어 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육체 이외의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만물의 영장, 신의 자식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동물이랑 식물이랑 광물 또는 대자연의 혜택 없이,
육체의 보존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질의 차원과 에너지의 차원.
육체주(肉體舟)의 차원과 의식*혼의 차원.
이와 같이 우리들의 육체와 의식은 불이일체(不二一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는 불멸이라는 것은 이미 실증되어 있다.
또 우리들의 의식도 불멸이라는 것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통도 슬픔도 실은 육체의 오관을 통해서
차원이 다른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중심인 마음에 전달되어 가는 것으로,
이 마음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