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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
구 자 훈
“… 있어. … 괜찮아. …”
아내가 나와 함께 시청하던 텔레비전 소리를 거의 죽이고 전화를 받고 있었다.
“상관없다니까. 말해. 무슨 말이든… 아, 그럼. 좋았지, 정말. 그래. … 언제든지.”
아내의 말씨가 아주 싹싹하고 기분도 썩 좋아 보여서 누구냐고 물었다.
“애인.”
나는 픽 웃었다. 별 소릴 다 한다 싶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애인이라고 말하다니. 그런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워?
“보석 같은 친구?”
“남자야.”
남자? 남자 친구를 애인이라고 한다면 이건 좀 이상한 것 아닌가 싶었으나 진짜 애인이기야 하겠나 싶었다.
“남사친?”
“아니, 애남愛男, 사랑하는 남자.”
아내의 말투에는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었다. 일상으로 주고받는 말처럼. 그래도 농담이거니 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섹파’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설사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부터 딱 일주일 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어떤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아 식사하는 아내를 봤다. 아내가 나를 등지고 앉아 아주 다정하게 쉴 새 없이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술잔도 주고받으며. 가끔 깔깔거리기도 하는 듯했다. 멀리 떨어져 대화의 내용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나보다 좀 젊어 보였다. 앉은키로 보아 키도 나보다 훨씬 클 것 같았다. 그런 게 의식된 것은 내 자격지심이었을까. 일주일 전 전화를 받으면서 상대를 애인이라고 한 게 사실인가 싶었다. 아니, 아주 만만한 초등학교 동기쯤 되겠지, 그렇게 믿으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말을 꺼낼까 궁리 끝에.
“오늘 점심 뭘 먹었어?”
“민물장어 정식 먹었는데 왜? 별걸 다 묻네. 평소 안 그랬잖아?”
아내는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누구랑? 오늘따라 궁금하네.”
“애인하고.”
“애인….”
뒷말이 이어지지 않고 콱 막혔다. 순간 진짠가 싶어서였다. 애인 있다고 자랑하나 싶기도 했다.
“응, 애인. 애인 있다고 전에도 말했잖아. 잘난 당신 아내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내가 언제 잘난 척했다고. 내 생각에 의하면 나는 절대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아내임에랴. 나에게는 돈 좀 가진 것 말고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키도 157cm다. 어깨도 좁다. 아내가 남편이라고 남에게 보이기 싫을 게 틀림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눈썹도 볼품이 없다.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성기고 희미하다. 연필로 그린 것을 질 나쁜 지우개로 지운 듯이 어렴풋이 보이는 그런. 어디 눈썹뿐인가. 피부는 여드름 흔적으로 귤껍질 같다. 피부 빛깔도 거무튀튀해 천해 보인다. 잘난 당신이라니, 반어법으로 딴 남자 좋아하게 된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인가.
“당신이야말로 잘난 척하는 거야? 그래서 애인 생겼다고 자랑하는 거야, 지금?”
“뭐 나도 나름 잘난 데가 없지는 않지.”
결국 아내는 나한테, 자기에게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꼼짝없이 믿게 만든 것이다.
“난 뭐야, 그럼?”
“아직이야 남편이지.”
아직?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이혼 요구라도 하라고 이러는 것일까.
“이혼하겠다는 거야?”
“당신이 그래 주면 나야 좋지.”
“이혼 안 해 주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그 사람하고 헤어질 수는 없어. 내가 관계를 끊으려 해도 그 사람이 결코 날 놓아주지 않을 거야.”
“뭐? 이중생활을 하겠다고?”
“어쩔 수 없지, 당신이 원하면. 그 사람 나한테 첫사랑이야.”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는가. 나는 흥분이 되어 말이 더듬거려졌다.
“뭐, 뭐라고? 나하고 혼인하기 전부터 사랑한 사이라고?”
“말귀 어두워? 내가 뭐랬어? 좋은 사람 생겼다고 했잖아? 첫사랑이 생긴 거라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말이지. 처음부터 줄곧.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는 말이군. 그럼, 나하고 왜 혼인한 거야?”
아무리 내가 보잘것없는 남자라고 해도 민지가 여자 나이 40대도 아니고 쉰일곱 살에 이 무슨 일인가 기가 찼다.
“돈 때문에 당신 택한 거야.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거든. 가난을 참고 견디는 엄마가 대단해 보였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 사랑은 살다 보면 생길 줄 알았지.”
대학의 같은 학번 같은 학과 동기 민지는 나에게는, 일단 찍어볼 대상은커녕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나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확신하게 민지가 만들어 주었다. 대학 2학년 때 2박 3일의 엠티(MT) 둘째 날이었고, 태백산 등산을 마친 마지막 밤이었다. 단체 등산객이 주로 투숙하는 여관의 10평도 넘는 넓은 방에서 거나한 술판이 벌어졌고, 술에도 취하고 졸음에 쫓기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 옷 입은 채로 쓰러져 잠들기 시작했다. 술이 약한 나는 일찍 잠에 떨어졌다. 팔이 아파 잠을 깬 것인가 눈을 떴는데 내 팔을 민지가 베고 있었다. 몸을 찰싹 붙이고. 얼굴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듯이 하고. 나는 엉겁결에 팔을 뺐고, 민지가 잠을 깼다.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한 새벽이었고, 모두 깊은 잠에 푹 빠져 있었다. 민지가 낮은 목소리로 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기억 안 나? 팔 베어준 거.”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나에게 그 정도의 비위가 없다. 더구나 민지임에랴. 나는 열등감이 좀 있었다. 여자에게 당당할 수 없었다. 키도 작고, 어깨도 좁은 왜소한 체구에 얼굴 생김새도 추남에 가까웠다. 대중목욕탕에서는 자격지심일까 내 눈이 자꾸 남의 샅으로 가는데 보이는 물건들이 다 내 그것보다 커 보였다.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라도 여자에게 나설 수 없었다. 그런 내 심리를 안 친구들이 불쌍히 여기기까지 했다.
“필름 안 끊겼나? 안 넘어가네.”
말은 그렇게 해도 민지가 모를 리 없었다. 술이 약한 내가 가장 먼저는 아니라도 일찌감치 나가떨어져 잠이 든 것을. 내가 필름 끊길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 나를 속이려는 의도도 아니고 나를 찍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얼마나 뼈아픈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때 민지를 으스러지게 와락 끌어안고 키스해야 했는데 하고.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하고. 한 번 가버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데 기회가 다시 왔다. 민지가 거액의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이다. 졸업 때까지 네 학기 등록금을 한꺼번에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전액 장학생이었는데도.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나는 쾌재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좋아. 빌려준다. 더 많이도 가능해. 아니 많을수록 좋아.”
“그런데, 조건이 있어.”
“조건? 조건은 내가 달아야 하는 거 아냐? 좋아, 말해 봐. 조건이 뭔지.”
“상환 기일 무기한, 이자는 없이.”
아, 무기한. 나는 환호할 뻔했다. 이건 분명 평생 안 갚겠다는 것이고, 나의 여자가 되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좋아. 무기한이 마음에 쏙 든다.”
며칠 전 그날도 모두 동메달 급 부자쯤 되는 우리 삼식이는 민지를 불러 술을 마셨다. 부동산 부자 자식인 나 부식, 의사 자식인 의식, 목사 자식인 목식으로 우리 셋을 식자 항렬의 삼 형제처럼 별명을 지어준 것은 민지였는데, 우리도 서로 그렇게 불렀다. 민지와 우리 삼식은 3류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었다. 의식도 목식도 돈을 가히 물 쓰듯 잘 썼다. 목식이,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목사 아들이긴 해도 어떻게 그렇게 돈을 잘 쓰는지 놀라웠다. 의식은 돈을 잘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 아들인데 머리가 왜 또 그렇게 나쁜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가 열쇠 셋에 지참금까지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자기 아버지와 혼인했다는 것이었다. 세 개의 열쇠는 병원, 집, 승용차 열쇠였고.
민지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있었던 일 덕이었을 것이다. 의식과 목식도 민지를 아주 좋아해서 우리 셋은 걸핏하면 민지에게 같이 놀아달라고 했고, 민지가 대개 들어 주었다. 민지가 우리의 요청을 들어준 것은 우리 셋 중에서 한 사람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뒤에 말한 적이 있다. 그날 민지가 말했다. 작심하고 벼르고 벼르다가 한 것이었을까.
“나, 삼식하고 놀아주다가 전면 장학생 실격되면 휴학해야 해. 뭐든지 해서 등록금 벌어서 복학해야 해.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 무리야.”
목식이 말했다.
“우리 셋이 돌아가면서 등록금 한 번씩 대주면 안 될까?”
“그건 싫어.”
“왜?”
“대주는 대가로 뭘 요구할지 어떻게 알고?”
'대주는'이라고 하는 말이 좀 묘하게 들렸다. 목식은 그렇다 치고 민지까지 그러니까 더욱.
“대가? 우리랑 놀아주는 걸로 충분해.”
“놀아주는 것도 어디까지 놀아줘야 하는지.”
나와 의식은 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듣고 있었다.
“너, 기막힌 상상을 하는구나.”
“기막힌? 너야말로 놀라운 상상을 하나 보네.”
“수준은 네가 정해.”
“졸업하고 취업하려면 학점 관리도 잘해야 하고.”
내가 끼어들었다.
“우리 셋 가운데 하나와 혼인하면 취업할 필요 없잖아?”
“사람이 그래도 하는 일이 있어야지.”
“취미 생활하면 되지. 캘리포니아 농장주는 직접 일하는 날이 1년에 이틀뿐이래. 그 이틀은 회의 참석이고.”
“그런가? 부호들은 그렇게 살아?”
“모태 부자는 다르지. 자수성가한 부자처럼 돈 한 푼에 발발 떨지 않는다고.”
민지가 나에게 돈이 많다는 것을 안 것은 학과 첫 회식 때 사회자가 나를 소개할 때 부호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혼인 후에 들었지만, 민지는 그때 나를 남편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찍었다고 했다. 편히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민지의 솔직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몸매도 얼굴도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고 고운 피부에다가 얼굴도 썩 예쁜 편이었고, 귀여운 상이었다. 두 볼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는 것도 매력이었다. 단정하고 또렷한 눈썹, 깜찍한 입술도. 가지런하고 석류알같이 고운 이도. 키도 167cm다. 가난하게 자랐음에도 심성이 꼬이지도 비뚤어지지도 않았다. 당당했다. 게다가 그는 학교 홍보용 전면 장학생이었다.
나는 공부가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대학도 못 나왔다는 소리나 안 들으려고 대학에 입학했고. 만화나 소설 읽기를 좋아했고, 합격도 가능해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래서 학교는 그저 노는 곳이었다. 학점은 나와 같은 학생이 더러 있어서 교수들이 알아서 주었다. 교수 자리를 잃을까 봐 학생을 지켜주었지 싶기도 했다.
아내는 아이를 셋 낳았다. 문득 아이 셋이 내 핏줄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짓 그랬는지 아내가 아이 셋이 한결같이 날 닮은 데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었지만 설마 그럴 리야. 아내가 우성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었는데. 세기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이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정평이 난 버나드 쇼에게, ‘나와 혼인해 자녀를 낳으면 당신의 명석한 머리와 아름다운 내 몸을 닮은 멋진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요?’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버나드 쇼가 ‘내 못생긴 외모와 당신의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생각해 보십시오.’라는 답을 보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나한테 불만을 털어놓는 일이 별로 없었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평해 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불만이 왜 없었겠는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자 어떻게 만났는데?”
묻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싶어 도로 삼키고 싶었으나 이미 뱉어진 말이었다. 남성으로 아주 빈약한 나를 버리고 건장한, 젊은 사람 찾아가는데 무엇이 궁금해, 했다.
“내가 그 사람의 차를 받았어. 벤츠였고, 수리비가 꽤 나왔을 텐데 보상이 필요 없다고 했어. 나는 기어이 보상하려 했고, 실랑이하다가 그가 정 미안하면 밥이나 한번 사라고 해 밥을 샀는데 다음에 그가 사고 그러다 또 만나 술도 마시고 그렇게 됐어.”
젊을 때는 여자 밝히는 못된 놈이 아내를 넘보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그 때문에 당신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늑대가 덤빌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아내한테 의처증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내가
“당신이 워낙 예쁘고 고우니까 그렇지.”
해도 아내는 역공격했다.
“당신이야말로 바람피울 소지가 충분하지. 돈 있겠다…”
“또 뭐?”
혹시 열등감, 하려다 말았다. 신체적 열등감 말이다. 아내가 가끔 나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가끔 했다. 나에게 경고를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열등감 있는 남자가 보상 행위로 여자 밝힌다고. 키 작고 피부 검은 어떤 정치인을 예로 들기도 했다. 나를 경계시키는 것이구나 싶어 쓰게 웃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니까.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 말고는 다 구할 수 있다고 하잖아?”
“중정이 못 하는 일 없다는 의미로 그런 말 쓰는 사람 봤는데 돈이 그렇다고?”
“하여튼 바람피우면 죽는다.”
각서를 쓰라고 해서 썼다. 바람피우는 경우 재산의 반을 주고 이혼한다. 당신도 각서 쓰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못 했다. 못 믿는다는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는 걸로 볼 것 같기도 했고. 민지는 나에게 열등감이 있다고 보고 내가 바람을 피울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민지가 이러다니, 나에게 각서까지 쓰게 해 놓고 자기가 이러다니, 때늦게 이 무슨 가당찮은 일이냐 싶었다. 돈보다 사람을 더 중시하게 됐단 말인가. 아내가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 나는 보기 좋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구매하는 것 자체를 즐길 뿐 사용하지 않고 사장하는 것이 늘어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아내는 사랑이 식었다고 반박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내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집에 늦게 들어올 때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이 혼자 살 때의 가장 심한 씁쓸함이었다. 분명히 집을 나갈 때 불을 켜두지 않았는데. 혹시 파출부가 아직 가지 않았나. 그런 적이 없었다. 불을 켜놓고 갈 정도로 어물지도 않다. 아내가 나에게 부엌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해 커피 한잔 끓여 보지 않아 아내와 헤어지고 바로 파출부를 채용했다. 파출부를 구할 때까지 며칠은, 끼니를 외식하거나 배달받아 해결했다. 혹시 딸이 와 있나? 그럴 리도 없을 것 같았다. 독립해 독신으로 사는 딸이 예고도 없이 나도 없는데 와 있을 리 없었다. 전화도 좀처럼 안 하는 딸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딸이다. 연락은 뭔가 요구할 때나 했다. 이제 철이 들었는지 요구도 없어진 지 몇 년 된 듯하다. 학원을 운영한다. 강의도 하고. 비혼주의자다. 아들 둘은 서울 사니, 아들도 며느리도 와 있을 리가 더더욱 없다.
내 집에 불을 켜고 나를 기다린 것은 이혼한 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민지였다. 현관문 여는 소리를 듣고 옮겨 앉았는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밥도 차려 놓았다. 안주도 마련해 놓고 술병도 가져다 놓았다. 나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현관 열쇠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야?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일이 있을 리 없는데.”
“그 새끼 가버렸어. 알고 보니 내가 숙주고 그 새낀 기생충이었어. 더 빨아먹을 게 없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 너한텐 내가 숙주였던가, 할 뻔했다. 나는 민지와 이혼 후 계속 혼자 살았다. 재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주위에서 재혼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신세 좀 지자고. 여태 혼자 산 거, 혹시, 나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그런 거 아니야? 현관문 비밀번호도 안 바꾸고. 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 안 하려고 했잖아?”
내가 이혼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었다. 남의 아내 불륜에 흥분했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만나는 남자 그만 만난다면 그것도 이해해 주겠다면서 이혼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도 안 듣자 만나도 좋으니 이혼은 하지 말자고 해 볼까 생각도 했다. 비밀번호를 안 바꾼 것은 민지가 언제 들어와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물론 없었다. 따라서 비밀번호를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민지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연락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나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뻔뻔한 거 아냐? 이러는 거.”
“설마 쫓아내지야 않겠지?”
대학에 다닐 때 민지는 한자로 둔갑한 우리 말 등에 흥미를 보였다. 학구적인가 싶을 정도로. 논밭의 단위인 마지기를 두락(斗落)이라고 하는 것이 짓다[농사]는 뜻을 지다[떨어지다의 고어]로 바꾸고, 떼 지은 곳을 군락지(群落地)라 하고, 이기고 지다는 승부(勝負)라고 해 같은 음의 지다를 여기서는 등에 지다의 부(負)를 사용하는 것 따위. 그 밖에도 도장(道場)의 고어 됴댱이 도장과 도량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불도량이라 할 때 쓰이고 하나는 무도장이라 할 때 쓰이는 것, 고어 한이 황소나 황새의 황으로도 되고, 할아버지의 할로도 된 것, 짐승이 중생(衆生)의 고어에서 갈라져 나온 것 따위를 접하고 아주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나 민지는 혼인 이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까맣게 잊고 요리해 푹 빠졌다. 새로운 발견 같은 것이었다. 아내는 요리학원에도 열심히 다녔다.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도 열심히 시청했다. 별별 조리 기구도 다 사들였다. 무슨 주방 용구나 음식 재료든지 구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마음껏 즐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나는 늘 새로운 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요리의 맛을 확인해 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 덕에 집밥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특별 요리를 두루 즐길 수 있었다. 아내가 고맙고 기특했다. 아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내 재력도 뿌듯했다. 아내는 요리해서 이웃에 나누어주고 인사 듣는 것도 즐겼다. 부자 실습하듯이 돈을 잘 썼다. 아니 한풀이 하듯이 잘 썼다. 세상에 돈 쓰는 재미보다 더 좋은 재미는 없다는 듯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데 돈을 언제 흥청망청 써 봤다고 그러는지. 사람은 잘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카멜레온처럼 새 환경에 잘 적응했다. 하긴 아내가 처음부터 돈을 펑펑 쓴 것은 아니었다. 야금야금 쓰는 양이 시나브로 늘어나서 언제부턴가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쓴 것이라고 봄이 옳겠다.
아내는 한동안 빠져 있던 요리에 싫증이 났는지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그를 가르치는 화가를 고문으로 동인을 만들어 전시회도 열었다. 회장을 맡아 전시회 대관료도 부담하면서. 어쨌든 아내는 내가 가진 돈의 위력을 잘 누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돈은 그립지 않게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한 약속을 내가 지켰다. 위험한 약속이었으나 다행하게도 아내는 내가 마음으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선을 넘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명품 옷이나 가방, 패물을 탐하지 않는 것이었다. 권해도 하지 않았다. 없는 사람들이 마음이 허전해 그런 것 가지려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든든한데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신통한 소리를 했다. 혼인 반지도 두 돈짜리 커플 금반지로 했다. 민지와 내 이름의 이니셜을 새겨넣은. 그래도 차는 고급으로 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며. 민지는 실용주의자였다.
“쫓아내면?”
“우리 이혼 절대 불가역이란 단서 없었잖아?”
“헐!”
“밥 먹지.”
“먹었어.”
이혼하기 전엔 귀가가 늦어도 밖에서 혼자서 밥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술이라도 ….”
“생각 없어.”
당신이나 먹든지, 하려다 말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턴은 두 번 혼인하고 두 번 이혼했잖아. 처음 혼인 때도 두 사람은 다 초혼이 아니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총 8번 혼인에 8번 이혼했고, 리처드 버턴과 두 번 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아내한테 들어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다.
“나한테 받은 위자료 돌려줄 거야?”
돈을 돌려받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해 본 소리였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려고 한 것이었을까.
“있어야 돌려주지. 노역으로 때울게.”
민지는 역시 솔직했다. 노역이라면 무슨 일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픽 웃음이 나왔다.
“염치없이 재결합하잔 소린 안 할 테니 날 파출부로 써 줘.”
“파출부? 하필 왜 내 파출부야?”
“다른 데 파출부 하면 당신 체면 깎일 테고.”
“내 체면 생각한다고? 말이 돼?”
이혼으로 내 최면을 그렇게 구겨놓고 체면 운운하다니.
“말이 안 되면 소야? 1할인 되야? 100분의 1인 홉이야?”
“허….”
이 판에 말장난이라니.
“이혼 땐 내 눈이 뒤집혀서고.”
체면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아 말을 돌렸다.
“남의 일자리 빼앗는 건 괜찮고?”
“그 파출부 계속 써야 할 이유라도 있어?”
“이유라니?”
“내가 이런 거 물을 자격 없지만 혹시….”
“무슨 상상하는 거야? 그 사람 어려운 것 같았어. 일자리 잃고 새 일자리 얼른 못 구하면….”
나한테 여탐(女貪)이 있었다면 파출부와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일을 마치면 40대 후반의 이혼녀인 파출부가 몇 번이나, 습관처럼 물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뭐든지 해드릴 수 있는데.”
파출부에게 할 일이 취사, 청소, 정리, 세탁 및 다림질 말고 뭐가 또 있단 말인가. 내가 외롭다고 불쌍히 여겨 성이라도 제공하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반대급부를 챙기려고. 지나가는 말처럼 나에게 외롭지 않으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했다. 돈이면 불가능한 게 없는 세상인데 왜 혼자 사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 사람 그냥 두고 날 채용하면 될 거 아냐? 그 사람한테 요구 못 할 일, 내가 해 줄 수 있잖아?”
그 사람한테 요구 못 할 일이라고,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말을 삼켰다. 네가 필요한 게 아니고 하는 말도.
문득 그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심하다 싶었다. 이따위 생각이라니. 내 물건은 절정의 예각일 때도 7cm 겨우 넘을까 말까 했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내 것은 가리고, 당당히 내놓은 남의 것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나는 게다가 조루였다. 포경이어서인지. 아내가 만족 못 했을 것이 뻔했다. 네가 필요한 게 아니고 중얼거린 것이 가소로웠다. 나는 또 화제를 돌렸다. 눈앞의 현안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싶어서였을까. 민지가 젊고 건장한 그자에게 간다고 할 때 얼마나 참담했던가. 체념할 수밖에 없게 했던 내 꼴이 얼마나 비참했던가.
“왜 나였어? 의식이나 목식이 아니고.”
“착해 보여서. 절대 날 배신할 것 같지는 않아서.”
“여자한테 인기가 없으니까?”
“그렇게 들렸으면 미안.”
사실 매력 있는 여자를 독차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왜 몰랐겠나. 그러나 아내가 혹 딴 남자에게 잠시 자신을 내어준다 해도 나에게 비밀로 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준다면 다행이겠고, 혹시 들키더라도 나에게서 떠나지만 않는다면, 그 남자와의 관계가 군것질 같은 것이라면 참아야지 어떡하겠느냐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나는 두 친구에게 쾌재라도 부르듯 선언했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민지와 혼인하게 되었다고. 의식과 목식, 두 녀석이 다 꼭 민지하고 해야 하겠니, 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아쉬움이었을까. 차지하고 싶은 대상을 나에게 빼앗겨 그러는 줄 알았다. 기분이 좋았다. 목식도 의식도 민지를 탐냈다. 언제였던가.
“딱 한 번만이라도 먹고 싶다.”
의식이 말하자 목식이도
“나도.”
했다. 내가 말했다.
“먹어? 천박하게.”
“그럼 조갤 먹지 입냐?”
“조개라고?”
“금기어를 비유로 말하는 건대 그게 어땠어?”
“혼인하고 싶은 게 아니고?”
“혼인은 좀 부담스럽지 않아? 너무 매력적이라서. 손타지 않겠어? 일류 여자 사냥꾼들 유부녀를 특등급으로 친다잖아?”
“나는 금시초문인데.”
“소설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도 그렇게 과문이야?”
우리는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혹시 민지의 가난을 핑계로 반대할 것 같아 덜컥 임신부터 했다. 아버지가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은 기우였다. 임신 사실조차 기뻐했다. 뜻밖에 어머니가 우려를 표했다.
“사람만 봐서는 너한테 과하다. 혹시 인물값 할라.”
“에이 엄마도”
했지만 나도 어머니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리고 몸을 좀 헤프게 돌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거야 내 탓이지.”
그런데 전혀 뜻밖으로 민지의 부모에게 승낙을 얻는 데 어려움이 좀 있었다. 민지 어머니는 반대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민지 아버지는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듯했다. 재산은 쉽게 바람에 날아가듯 없어질 수 있는 것이라 사람이 야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업이 없는 것도 문제고,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돈은 없어지기 쉬워도 능력이 뛰어나면 어느 정도의 돈은 따른다고도 했다.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많이 가진 사람들,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자네 그랬다간 내가 가만 안 둘 걸세.”
“염려 마십시오. 제가 민지 씨를 굉장히 사랑하니까 그럴 리 절대 없습니다.”
“말이야 누구든 쉽게 장담하지.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잖아?”
“저는 절대 안 그렇습니다.”
“갖출 것 다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애라 자존심이 대단한 애니까 그거 알고 대우해야 할 거야. 명심하게.”
사용설명서 중 취급 주의 같았다. 반품 불가 소리도 나오려나 싶었다.
위자료를 건네받으며 민지가 말했다.
“이왕 이혼할 바에야 당신이 바람피웠어야 하는데 아쉽네.”
“그건 왜?”
“그랬으면 위자료 더 요구할 수 있었잖아?”
“더 달라지 왜?”
3억 달라고 해 그대로 주었다. 더 주고 싶은 생각이 잠시 일어났으나 그 생각을 주저앉혔다. 오지랖 넓게 왜 그래, 하며.
“빈대도 낯짝이 있지. 그 요구도 당신 심덕 믿으니까 뻔뻔하게 한 건대.”
민지가 내가 써준 각서를 돌려주었다.
“이거 인제 필요 없게 됐네.”
“각서는 내가 받았어야 했군.”
“사람 무안케 하네. 미안해. 한 치 앞 못 본다더니 내가 그랬네.”
그때 그랬던 민지였다.
“그 벤츠, 폐차 처분해야 할 똥차였고, 내가 낸 사고도 유발한 거더라고. 내가 돈 좀 쓰며 다닌다는 걸 어떻게 알고 노린 거였어. 그 새끼가 쳐놓은 덫에 걸린 거였어. 수면제, 최음제도 이용한 것 같았고, 당신한테 알리겠다며 협박해서 이혼해서 위자료 받아 주겠다고 하며 달랬지. 난 당신이 이혼하자고 해 주기를 바랐어.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내가 받아다 준 위자료 다 쓰곤 도망쳐버렸어. 부인도 있었어. 나, 내가 왜 이렇게 됐나 탄식도 했어. 그런데 당신이 그냥 혼자 살고 있으니까 혹시 내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가당찮은 생각이 들더라고. 혹시나 하고 당신 없을 시간에 한 번 와 봤어. 현관문 자물쇠 비밀번호 바꿨나 안 바꿨나 알아보려고. 그래서 확인이라도 해 보자 생각했어. 뭐 봐 달라고 하지는 않을게. 아까도 말했지만, 혹시라도 내가 필요하거든 받아 줘.”
그자가 도망쳐버린 게 아니라 아내가 그자에게 실망했다면 좀 좋을까. 사실이 아니더라도 거짓말이라도 하지 싶었다.
“처음 사랑 찾아간다더니?”
“첫사랑은 무슨. 내 첫사랑은 당신인 것 같아. 처음부터 사랑한 건 아니지만. 당신 입에서 이혼하자는 소리 나오게 하려고 그런 거지. 식당 장면도 당신의 동선을 미리 알고 연출한 거였어. 당신 휴대전화기로 문자 온 것 봤지.”
“귀책 사유 자기한테 있는데 위자료 줄 줄 어찌 알고.”
“당신 심덕 내가 모르나?”
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나보다 먼저 의식이, 목식이 노린 것 아니었어?”
“간은 봤지. 아니더라고. 둘 다 날 영구히 지킬 거로는 안 보이더라고.”
간 봤다는 게 떠보는 정도였겠지. 설마 그 윗선까지는 아니었겠지.
“그 자식한테 당한 건데 이야길 하지 그랬어?”
“당신 여자 불륜 질색했잖아? 그리고 나도 뭔가에 홀린 모양이야. 물론 그 새끼한테 말려든 걸 몰랐고.”
민지도 알고 있는 친구 하준식의 아내 불륜을 흥분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하준식이 자기 아내의 외도에 대해 하소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끝내 이혼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부인이 이혼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혼해야 별수 있겠는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불같이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해지니 체념이 되더라고 했다. 아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더라,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 없다. 폐암으로 죽었다. 연명 치료 거부하고. 그는 죽기 전에 자기 앞 재산 전액을 복지단체에 기부했다.
“그때 이혼할 때 왜 3억만 달라고 했지?”
“그 새끼가 3억을 요구했어. 그 돈 안 주면 당신한테 알리겠다며. 자기와의 관계 당신한테 알리겠다고 했단 말 전에도 했지. 당신한테 알리면 어차피 이혼일 텐데 차라리 내가 선수를 친 거지.”
3억만 들이면 될 걸 돈은 돈대로 날리고 3년을 낭비했구나 싶었다. 나는 아내에게 억 단위 목돈은 주지 않았다. 용처를 분명히 밝혔다면 주었을지 몰라도. 그것도 내 실수였다.
“대답해 줘. 갈까? 있을까?”
“대답 못 하겠다.”
언제나 선택은, 결정도 판단도 내 몫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내 뜻대로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을 바꿀 때도, 차를 바꿀 때도. 혼인도 이혼도. 역시 선택지는 내 앞에 놓인 것이 아니었다. 민지는 돌아가지 않았다. 숙박업소나 찜질방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열흘을 못 넘기고 항복하듯이 재결합하자고 말했다. 민지가 선심이라도 쓰듯이 진작 그럴 것이지 해서 내가 웃으며 말했다.
“각서 써 줄까?”
“괜찮아.”
“왜?”
“나더러도 쓰랄까 봐.”
나는 픽 웃었다.
“나를 믿어서가 아니고? 섭섭하네.”
나, 당신하고 헤어지고도 딴 여자 만난 적 없어, 당신 나한테 처음 사랑이었어, 할 뻔했다.
민지가 내 여자가 된 후에는 웬만한 여자는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3년이나 혼자 산 이유이기도 하다. 민지를 만나기 전에는 혐오감 느끼게 할 정도의 추녀만 아니라면 날 좋아해 주면 감지덕지할 셈이었는데.
나는 다짐했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자. 잠시 아내를 잃었던 것은 결국 내 잘못이었어. 앞으로는 절대 한눈팔지 않게 더 잘하자.
이윽고 나는 중얼거렸다. 민지가 젊은 사람한테 갔다가 되돌아왔으니 열등감 훌훌 털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내 열등감 털어준 민지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
첫댓글 몇 날을 두고 두어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슴다. 그래도 읽으야지요. 감사함다. 부산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