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화상
1837. 캔버스에 유화. 65 x 54.5 cm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샤랑트현(縣) 생 모리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17~18세기에 왕실과 궁정에서 사용할 가구를 만들었던 외벤 리즈너 가문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외교관으로서 1798년 당시 네덜란드 주재 대사였고, 보르도 지사로 재직하다가 1805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전파 화가였던 P. N. 게랭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1816년에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바로크 미술가인 루벤스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으며, 같은 낭만주의 화가였던 제리코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색채 사용법은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주로 과거와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고, 1832년에 모로코를 방문한 뒤로는 좀더 이국적인 주제도 다루게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영국 화가인 터너와 더불어 회화 기법의 대담한 혁신을 가져온 인상파에 직접 영향을 끼
쳤고,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였다.
르느와르, 모네, 세잔, 고갱, 고흐, 르동, 쇠라, 마티스, 피카소는 모두 자신들이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의 색채사용과 형태표현은 티치아노와 루벤스 못지 않았다. 하나의 미학적 운동에 국한시키기에는 너무 폭이 넓은 화가이지만, 1830년경에 낭만주의 화가로 규정되었다. 그는 여기에 불만을 품고 그는 "나는 순수한 고전주의자다"라고 답했다.
그는 미술을 통하여 자기 존재의 시적 감흥을 전달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형태와 빛, 그리고 무엇보다 교향곡과 같은 채색을 창조했고, 표현이 풍부한 조화로운 통일체로 완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