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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저 안이다. 대사 집무실에는 김호성 대
사와 조남훈 영사 외에 파리에서 날아온 또 한 사람의 사내가 있
었다. 프랑스 대사관의 무관 정필수 대령이었다. 김호성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준석은 살인 용의자로 수배중이오. 현역 한국 군인
이지만 이곳에선 어쩔 수가 없어요."
이맛살을 찌푸린 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약혼자가 실종되었다고 하더라도 외국에 나와 그런 식
으로 행동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양국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가 있어요"
"이런 말씀 드리려고는 안했습니다만.'
정필수가 똑바로 김호성을 바라보았다.
"미국은 몇 년 전에 내전중인 보스니아에 조종사 한 명이 낙하
산으로 떨어졌다고 7함대와 해병대 사천오백 명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지중해에서 시위하고 있는 동안에 조종사는 살아 나왔지
요.'
사복차림이었으나 정필수의 모습은 빈틈 없는 군인이다. 해병
대령 인 것이다.
"이준석은 무고한 사람을 사살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
"하지만 정 대령,'
'제가 당분간 이곳에서 이준석 사건을 처리하겠습니다. 정부와
군의 허락도 받았으니까요."
자르듯 말하자 김호성은 입맛을 다셨다. 외교는 군대식으로 맺
고 자르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조남훈과 함께 대사 집무실을 나온 정필수는 자신의 방에 들어
서자 참았던 분통을 터뜨렸다. 상대는 앞에 선 조남훈이다.
"이집트 당국에 실종 수사를 맡기고 가만 있을 수가 있어?조
영사, 당신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예, 그런데 저는."
'그리고 이준석이가 총이 어디서 났다고 그놈들을 輦아 죽인단
말이야? 이건 음모다!"
"하지만 목격자가."
그러자 정필수가 당장에 후려갈길 듯한 얼굴로 노려 보았으므
로 조남훈이 시선을 내렸다.
'그런 목격자는 백 명도 만들 수가 있어. 이준석에게 뒤집어 씌
우려는 거야."
'대령님 아니십니까!"
'너, 어디냐고 물었다!"
"카이로에 있습니다. "
'너, 당장 나하고 만나!"
"안됩니다. 대령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
이준석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저하고 만나는 것이 알려진다면 대령님이 곤란해지 십니다. '
"이 자식이 내 말을 거역할 셈인가!"
"전 결심을 굳혔습니다. 대 령님, 저, 예편하겠습니다. "
그러자 전화기를 고쳐질 정필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이 대위, 우선 나하고 만나자."
"제가 예편하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했습니다. 현역으로 잡
혀 군인의 명예에 해를 끼치기 싫습니다. 대령님."
정필수가 어금니를 물었을 때 이준석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
어졌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추적
"연예부 왈리드 기 자올시다. '
왈리드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치듯 말했다. 편집국 안은 시장
안처럼 소란스러웠으므로 그는 한쪽 귀를 손으로 막았다.
'찰리드 씨,난 터키 배우 아스물란의 매니저 타밀이오 인터뷰
할 것이 있는데."
"아스물란이 라구요?"
주위를 둘러본 왈리드가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아스물란
은 한달 전쯤에 터키에서 건너온 미남 배우로 지금 방영중인 TV
연속극에서 이집트 여자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스물란이 이집트 여자와 약혼 발표를 할 겁니다. 신문에는
그저 그렇게만 발표해 주시오."
"자, 잠간만, 타밀 씨."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왈리드가 손까지 저었다.
"어떻게 그렇게만 발표합니까?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셔야지."
대특종이다. 왈리드는 간절한 표정이 되었다.
"아스물란을 인터뷰할 수 있습니까?"
"아시면서. 난장판이 될 게 뻔한데.그래서 이렇게 전화로만 말
씀 드리는 겁니다. "
"자, 잠깐. 그러면 타밀 씨, 당신이라도 잠깐이면 됩니다. "
"그럼 십분 동안만이오. 아스물란은 절대로 안됩니다. 약혼식에
는 정식으로 초대할 테니까."
"지금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한 시간 후인 오후 다섯시에 카이로 세라턴의 이층
알라딘에서."
전화가 끊기자 왈리드는 팔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오후 세시
사십분이었지만 조바심이 일어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이로 세라턴은 %층 호텔로,그가 나일강변 알라딘에 들어선
것은 오후 네시 사십분이다. 입구쪽을 향해 앉은 그는 우선 기자
들이 없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매니저란 놈이 바쁘다면서 시간
별로 정보를 나눠주지는 않을 것이다.
식당은 일곱시 부터 영업을 하는 터라 홀에는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빼문 왈리드는 초조한 듯 들고 온 신문으로 부채
질을 했다. 서너 명의 동양인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가 일
공시부터 영업이라는 것을 알고는 돌아나갔다.
다섯시 정각이 되었을 때 카운터에 있던 종업원이 그에게로 다
가왔다.
"카이로 신문의 왈리드 기자세요?"
왈리드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턱으로 카운터 쪽을 가리켰다.
"전화 왔습니다. '
잠시 후에 왈리드는 로비로 나왔다. 아스물란의 매니저는 바쁜
일정 때문에 약속을 취소한 것이다. 대신 약혼 발표는 왈리드한
테만 특종으로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왈리드가 호텔을 나서자 로비 안쪽의 소파에 앉아 있던 동양인
이 일어섰다. 뿔테 안경을 긴 데다가 머리에는 뉴욕 양키스의 야
구모자를 눌러썼고 낡은 반팔셔츠에 구겨진 바지를 입은 사내였
다. 그가 옆으로 다가온 아랍인에게 백 달러짜리 한 장을 건네주
었다.
'고맙소 친구."
"천만에.'
손을 들어보인 아랍인이 바쁘게 사라졌다.
동양인은 이준석이다. 그는 길에서 만난 이집트인 대학생에게
부탁하여 왈리드를 불러냈던 것이다. 이제 왈리드의 얼굴은 머릿
속에 선명하게 박혀졌다.
호텔을 나온 그는 흥정도 하지 않고 검정색 택시를 탔다. 요시
에는 몸살이 났는지 일어나기도 힘들어 해서 혼자 나왔던 것이다.
정보국장 무 스타파는 사십대 중반으로 현역 육군소장이다. 그
는 카이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람세스 힐턴의 객실에
앉아 있었는데 찌푸린 표정이었다. 두툼한 콧날 밑의 입술은 굳
게 닫혔고 시거 연기는 콧구멍으로만 나온다. 이윽고 그가 앞에
앉은 사십대쯤의 서양인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놈도 지금 동양인들을 쫓고 있겠군."
"아마, 그럴 거야'
서양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운이 없었지. 다 잡은 고기를 놓쳤으니."
"운전사 이야기를 들으면 그 한국인이 대단한 모양이던데. 그
놈을 잡아묶어 운전사와 함께 짐칸에 실었다지 않소?"
"방심했겠지요 그 자는 잔인한 놈입니다. 이제까지 사드한테
당한 요원만 넷이오.'
"놈이 우리를 갖고 노는군,"
입맛을 다신 무스타파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CIA 이집
트 지사장 워렌이다.
'次 한국 군인이 끼어들고 나서 작전이 엉망이 되어 버렸소 워
렌, 이젠 하무드를 찾을 길도 막막하고 말이오."
"하지만 요시에를 구해냈지 않소!"
아라비아 사막에서 총에 맞아 죽으면서 요시에를 빼앗긴 두 사
내는 워렌의 이집트인 부하들이다. 당국에서는 정보요원들이 죽
은 것으로 발표가 되었지만 실제는 CIA가 이번 사건에 공동 작
전을 했다.
무스타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대사관에서 항의가 왔습니다. 이준석이는 총기를 소지하
지도 않았고 요원들을 죽일 이유도 없다는 거요."
시거 연기를 길게 뿜어낸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외로 강력한 항의였소.'
'그들을 찾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스타파 국장,사드한
711 K-7 장치가 넘겨지면 안돼요"
'BC-7은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겁니까?"
"군터가 죽기 전에 암호명이 이글인 하마니파 정보원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군터의 스위스 은행 통장에 죽은 날로 오백만 달러
가 입금된 것이 확인되었어요"
"놈들은 군터를 함께 죽여 비밀을 묻으려고 했지만 이글이 우
리에게 발각되었지,'
"그림 이글이 K-7의 자료를 가져 갔을까?"
'次렇峯 버스에서 내린 세 놈 중의 하나가 이골이오.'
하마니파는 회교원리주의 단체에서도 이탈한 테러집단으로 수
장은 하심 하마니 였는데 리비아와 이라크의 지원을 받는 극렬주
의 집단이다. 그러나 본부와 소속원의 명단은 아직 미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무스타파가 시거를 재떨이에 비벼졌다.
"빌어먹을. 난 사드가 모사드에서 보낸 놈이라고 믿소, 워렌
Dl.'
그의 거친 시선이 워렌에게 향해졌다.
"이집트 내부를 이렇게 휘젓고 다니는 걸 보면 틀림없는 모사
드 요원이오'
"어쨌든 그 동양인 커플을 찾는 것이 우선이오."
워렌이 탁자 위에 펼쳐놓은 카이로 지도에 시선을 내렸다.
"소노다의 딸 요시에가 지금쯤 이글의 존재를 말았을지도 모릅
니 다. '
입맛을 다신 무스타파가 다시 새 시거를 꺼내 물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하무드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시거에
불을 붙였다.
"왈리드를 찾았어요?"
방에 들어선 이준석을 보자 요시에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오후 여덟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집안에서는 양고기 냄새가 났다.
이준석은 비닐봉지에 담은 음료수와 빵을 방바닥에 꺼내 놓았
다.
"오늘은 얼굴만 익혔습니다. "
음료수 캔을 든 요시에가 갈증난 것처럼 마셨다.
"당신은 조금도 지치지 않는군요. 어젯밤 거의 잘을 자지 않았
는데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이준석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버스를 폭파한 범인을 찾는 것이 목적이오? 아니면 다른 이유
가 있습니까?"
그러자 퍼뜩 시선을 들었던 요시에가 입술 끝만 올리며 웃었
다.
"하긴 여자가 나설 만한 일은 아니지'
"사건 이틀 전에 급히 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는 어떤 내용이었
습니까?"
"말할 수 없어요'
'간 폭파범을 찾아 내 약혼자를 납치했는가를 캐낼 것이오 그
런데 당신은 무엇을 할 겁니까?"
이준석도 입술 끝으로 웃었다.
'당신 손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겁니까?"
"절 믿지 않으시는군요'
'난 등을 치는 놈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
"등은 치지 않아요"
"당신의 그런 태도가 싫어"
몸을 일으킨 이준석이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뭔가 감추고 있으면서 남을 믿지 못하는 그런 태도.당신은 분
명히 폭파범을 쫓는 다른 이유가 있소."
옆쪽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친 이준석이 방에 돌아왔을 때 요시
에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방 안에는 TV는 물론이고 라디오도 없었으므로 가끔 집안에
서 들리는 작은 소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준석은 그녀에게 등
을 보이며 누웠다. 온몸이 나른하도록 피로했던 것이다.
'그럼 먼저 자겠습니다그가 벽을 향해 말했다.
'내일은 왈리드를 잡을 계획이오. 방법은 그때 생각하면 되겠
소."
"아버지는 군터 박사가 K-7의 자료를 몰래 넘기려는 것 같다
고 말했어요."
요시에의 낮은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장소는 룩소르인 것 같다고.군터는 아버지 몰래 K-7자료의
사본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호텔에서 아버지는 군터의 가방에서 우연히 그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
"아버지가 날 급히 오라고 한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
몸을 일으킨 이준석이 그녀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럼 당신은 군터가 그 자료를 넘겼다고 믿는군"
'거스에서 내린 사람들에게."
'次럼 그 자료를 찾으러 온 것입니까?"
"아버지의 연구 결과니까 당연히. 군터는 조수였을 뿐예요"
"찾아서 뭘 하려고?"
'대가를 받아야죠, 당연히. 난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
람입니다. "
요시에가 똑바로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강한 시선이 조금도 흔
들리지 않는다.
"군터 따위 사기꾼한테 그 대가가 지불되게 할 수 없어요.그
자가 받았건 어쨌건 간에 간 자료를 다시 찾아 대가를 받을 겁니
다. "
그녀가 상반신을 그에게로 조금 기울였다;
"절 도와주시면 대가를 드리겠어요.아마 엄청난 금액이 될 겁
니 다. "
이준석이 누운채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을 도와주면 얼마를 주겠소?"
"일천만 달러."
힐끔 이준석의 눈치를 살핀 요시에가 말을 이었다.
'질천오백만 달러까지는 드릴 수 있어요."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아야겠군"
"일본의 연구소에 팔 작정이에요"
·"K-7은 일본인 소노다 박사의 발명품입니다. 소노다의 딸인
내가 그것을 조국에 돈을 받고 판다는데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
요'
"그 연구소란 일본 국가 기관이겠군.'
"미국이나 이스라엘, 아랍의 테러집단에게 K-7이 넘어갈 이유
가 없어_架'
길게 숨을 뱉은 이준석이 다시 누웠다.
"결국은 돈 때문이었어, 당신은."
"우리, 계약된 건가요?"
요시에가 물었으나 이준석은 대답하지 않았고 곧 고른 숨소리
가 났다. 금방 잠이 든 것이다.
한동안 이준석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요시에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문득 이준석이 남자라는 것이 느껴졌고 남자와 한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의식되었다.
침을 삼킨 그녀는 곁눈으로 이준석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전
혀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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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줄감요..
ㅈㄷ
감사~~~~~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