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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었으며, 지휘자 계의 서태지 같은 존재로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비디오 화일로 벤치마킹했던, 그래서 슈퍼스타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무려 20년 이상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의 종신 지휘자로 재직하며 압도적인 카리즈마를 발휘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08 - 1989).
노점상 클래식 음반 표지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지만, 사실 수많은 음반들 모두 압도적으로 명석하고 확고한 카라얀 사운드를, 그의 마지막 실황음반인 브룩크너의 7번 연주까지 꾸준히 유지하며 클래식 음악의 제왕으로서의 면모를 끝까지 지켜냈던 거장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그의 음반들 중에는 재밌는 것이 끼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밑의 음반..
안전벨트가 있는 스파이더에 케이지 바, 그리고 왠지 익숙한 공냉 2열식 엔진의 모습.
독수리마저 압도하는 날카로운 눈빛의 카라얀은 알고보니 역사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애호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페라리 275 GT 같이 아름다운 차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제가 처음으로 카라얀과 자동차를 연관시켰던 계기는,
지금은 왠지 찾을 수가 없지만, 예전에 그의 음반 속지에 들어있던 E-type과 함께 한 그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명차들을 소유했었고,
BMW, 야마하 등의 모터사이클,
레이싱과 요트와 모터 보트,
그리고 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삼았던 익스트림 매니아였습니다.
처음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카라얀의 이미지는 대체로 귀공자 같고 너무 완벽한 사운드, 자로 잰듯한 해석을 보여주는 탓에 판에 박힌듯한 매너리즘 마저 느끼게 하는, 왠지 기계적인 것이기 쉽습니다. 심지어 안네-소피 무터나 크리스티앙 짐머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다수의 연주자들을 비롯, 수많은 명연주자들을 길러내거나 후원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카라얀에 대한 선입견은, 그가 왠지 롤스로이스 정도나 되야 타고다닐 듯 한, 다분히 고지식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위의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보여주듯, 카라얀은 그저 정확함과 깨끗함만을 추구하는 정통파의 모습만을 지닌 것이 물론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그의 해석은 아주 가볍고,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운데다가, 여유로 가득한, 그래서, 그 자체로 숭고함에 도전하는 베토벤의 거대한 음악을 장악하려는 힘으로 충만하죠.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막 넘어가는 베토벤의 시대는 영웅들의 시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구 시대의 찌질한 왕들을 비질하듯이 쓸어버렸고, 괴테는 독일 낭만주의를 활짝 열었으나, 그 낭만주의는 기분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성, 숭고함, 지상의 것이 아닌 별들의 빛으로 가득한, 이성으로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낭만주의의 시작에는 제 2의 르네상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왕족의 시대는 가고, 의회정치와 세속 영웅의 등장,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와 사뮤엘 콜리지의 무한히 진동하며 뻗어나가는 상상력, 그 끝없는 정신적 성장의 가능성에 대한 찬사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진격에 감동을 받아 영웅을 쓰기 시작했으나, 곧 나폴레옹의 속물적인 면모에 환멸을 느끼고, 2악장을 장송곡으로 돌려버린 후에 그 자신의 영웅은 세속적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여 영원한 승리를 쟁취하도록 만들어 버렸죠. 1악장에서 이미 보여주는 파도같은 끝없는 힘의 방출은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교향곡을 지탱합니다.
카라얀도 물론 롤스로이스를 소유했지만,
우리가 클래식 롤스로이스에대해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거대한 차 속에 파묻힌 통통한 귀족 소유주는 아니었습니다.
근엄하고 무척 세심하게 연출된 듯한 앨범 재킷의 그의 사진들이나 그에 대해 갖고 있는 클래식 청자들의 선입견과 달리
그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고, 다이나믹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롤롤과 함께 통통튀는 미니는 물론,
알프스의 르노 5 알핀
차고가 40인치밖에 안되서 어쩔 수 없이 지붕의 일부분까지 같이 개폐되게 만들었던 차를 소유하기도 하고..
카라얀의 선배 세대의 대표적인 거장 중 한명인 바바리아 오케스트라의 오토 클렘페러. 저는 처음에 그가 연주한 영웅을 들으면서 베토벤을 익혔습니다만, 그래서인지 최초로 카라얀의 영웅을 들을 때는 그 가볍게 살랑거리는 음색에 깜짝 놀라면서 듣기 시작했었죠. 템포와 해석의 차이, 클렘페러의 진중하고 무게있는 에로이카와는 달리 카라얀의 히어로는 무척 빠르고, 그러면서도 풍부한 음량과 중후함, 무엇보다도 다이나믹함이 충만했습니다.
다이나믹의 중요성, 그것은 그가 탔던 명차들에도 공통되는 특징입니다.
카라얀은 메르세데스가 레이서로 개발한 300SL을 양산버전으로 처음 생산할 때,
이 역사적인 슈퍼카에 대해서 최초로 구매 서명을했던 명사들 중 한명입니다.
물론 위의 사진에도 등장했던 포드 GT40 (마크 III)도 카라얀이 소유했던 명차이죠.
노장이 되었을 때도 카라얀은 극강의 랠리카였던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물론
80년대 자동차의 공학적 구조를 재창조해낸 아우디 콰트로 까지 소유했던 진정한 레이싱카 매니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자동차 브랜드는,
물론 포르셰였습니다.
50년대 스파이더부터
앨범 재킷에도 등장했던 908 (02) 스파이더,
심지어는 917까지!
마지막으로, 포르셰의 슈퍼-랠리카 959에 이르도록,
카라얀의 포르셰 사랑은 랠리카의 역사 자체와 함께 했습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같은 다음 세대의 거장들이 등장할 때에도, 그리고 무터같이 스스로가 발굴하고 키운 영재들이 무대를 장악하도록, 카라얀은 오만하고 독재자적인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20세기 클래식 음악과 그 상업적 성장의 역사를 이끌어갔습니다.
그렇다면,
포르셰의 대표 브랜드 911도 빠질 수 없겠죠.
카라얀은 충성스런 911 매니아였을 뿐만 아니라
클래식 포르셰의 역사상 단 한 대 뿐인 차의 의뢰인이자 소유주로서도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까요.
바로 1974년 포르셰 911 Turbo 3.0 lightweight (prototype) 입니다.
음반 표지로도 등장하게 되는 이 차는 포르셰가 제작한 단 한대의 Turbo 3.0 RS (Prototype)으로 카라얀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레이싱 참가를 최종 목표로 경량 차체로 제작되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후에 전설적인 명차로 남게 되는 Carrera 2.7 RS (Renn Sport) 와는 달리, 908의 후예로 애초부터 터보 차저를 달고 태어난 930 터보의 경우 RS버전이 존재하지 않았고, 1974 년에 태어난, 단지 네 대의 레이싱용 RSR 2.1 프로토타입들 이 있었을 뿐입니다. (터보차저를 쓸 때의 환산계수 때문에 배기량을 오히려 낮춘 모델들입니다)
이 네 대의 Turbo RSR 2.1 들은 74년 마티니 스폰으로 여러 레이싱 트랙에 나타나 순수 레이싱만을 목적으로 만든 마트라 MS 670 이나 알파로메오 33/TT/12 같은 괴물들 속에서도 포디엄에 오르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관중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반면 양산형 Carrera 2.7 RS의 경우 레이싱 참가 기준 수량에 맞춰 생산 댓수를 계획했다가 예상치 못한 인기로 계획했던 대수의 세 배 이상 급조되다 보니 마지막 수백대는 RS 의 명칭에 걸맞는 가벼운 경량 철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이 와중에 기획된 양산-레이싱 Carrera 3.0 RS(R) 은 경량버전을 아예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2.7의 오리꼬리가 아니라, 처음으로 유명한 고래꼬리를 달고 등장하게 되는 카레라 3.0 RS(R) 과 과격한 레이싱용 엔진의 전통을 이어나간 터보 RSR 2.1 프로토타입들은 이듬해부터 등장하게 되는 양산형 터보 3.0 (930), 그리고 75년 급격히 낮아진 그룹 4의 레이싱 참가 기준 수량에 맞추어 제작되어 유명한 934, 그리고 형제차인 935의 베이스가 됩니다.
결국 1974년 포르셰는 911의 레이싱 섹션에서 카레라 2.7 RS 와 네 대의 터보 RSR 2.1 프로토타입들, 그리고 왠지 만족스럽지 않게 무거운 카레라 3.0 RSR 들이 있었을 뿐이고, 930 터보나 934 같은 진정한 강자들은 이듬해 부터 등장할 것이었습니다.
이 때, 카라얀이 주문한 터보 3.0 RS는 처음으로 터보차저를 단 공장 직조 양산차에, 배기량을 하향조정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경량철판을 사용하여 1974년 생산된 단 한대의 프로토타입이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나타나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네 대의 마티니 911 터보 RSR 2.1 들에 대한 오마주로써 마티니 무늬를 두른 실버 칼라로 도장되었으며, 같은 해에 생산된 카레라 3.0 RSR 들과는 다름을 명기 하기 위해서 도어 윈도우 바로 밑에 - 마치 BMW 2002 Turbo 처럼 - 흰색으로 Turbo 라고 명기한 이 차는
2000년 포르셰 본사에서 restore 되었으며 2013년에는 스튜트가르트 포르셰 박물관에서 '슈퍼스포츠 카 60년 (Supersportwagen)' 섹션에 특별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전설적인 캐나다출신 (악동) 바흐-키보드 플레이어인 글렌 굴드
야샤 하이펫츠와 함께 러시아 악파를 대변했던 거장 나단 밀스타인 등,
카라얀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수많은 명인들, 이 모든 음악적 기량과 그 성과들이 대중들에게 쩌는 전통과 권위에 상업적인 카리즈마를 더한 고전적인 카라얀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면,
콘서트 홀에서 퇴근할 때면 포르셰 스파이더를 타고 질주하는 카라얀
가족용 외출차로 페라리와 롤스 로이스를 몰았던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가볍게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던,
또 다른 종류의 애호가였던 그의 일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뭐 이래봤자, 슈퍼카를 구매하기는 커녕 한 대 지나가는 꼴을 보기도 어려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저 같은 처지에서는 그저 부럽거나 딴 나라 사람 얘기일 뿐이고, 음악계의 판도 또한, 카리즈마에 쩔어서 하나의 아이콘이나 이미지로 박제화되어버린 카라얀과는 달리, 이후 세대에서는 다시금 개성과 현장성, 그리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 카라야니즘의 추세로 돌아섰다지만, (예를 들어 권위와 권력으로 똘똘뭉쳤던 독일-오스트리아 중심의 악단 전통을 무시하며 음악의 기쁨에 몰입하며 신나게 교향곡과 오케스트라를 끌고다니는 돈 까를로스 클라이버 라든지.. 말이죠.. 알고보면 카라얀 또한 그리스계 였거늘..)
베토벤은 투쟁과 승리를 다루는 힘으로 가득한 4악장을 지닌 5번과 자연의 기쁨을 노래하는 놀라운 환희로 가득한 5악장의 6번 교향곡을 쓴 후에 무도회와 같은 기쁨과 리듬감이 충만한 7번, 그리고 그에 대비해 소박함과 소란스러움의 느낌을 주는 경쾌한 8번을 써 가면서 그의 음악의 후기를 향해 나아갑니다.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의 절정기로 나가면서 보다 열정적이고 정열적이나 또한 병적이기도 한 독일 낭만주의가 꽃피고, 바이런이나 셸리, 키츠와 같은 영웅적 탐미주의가 나타나며, 가곡의 제왕이라 불리우지만, 또한 베토벤의 적자이기도 한 슈베르트, 그리고 광기의 천재이자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슈만과, 건반 음악에서만은 그보다 더한 천재였으며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던 쇼팽이 등장하고, 그들 이후에는 오만한 바그너와 니체, 이에 선정주의를 더했던 파가니니와 리스트,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브람스, 그에 민족주의를 더한 드볼작과 차이콥스키, 시벨리우스,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 등, 다양한 19세기의 마지막 거장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치 균질함과 통일성의 질서를 추구하던 카라얀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끌라우디오 아바도의 시대부터 클래식 음악의 상업적, 그리고 현장 해석의 구심점이 와해되고 다양성, 각개성이 대두된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카라얀 자신을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가 앨범 자켓만 보고서 속단했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어쩌면 그의 음악도, 그의 일상처럼 약간은 허세에 쩔고, 하지만, 순수하게 로맨틱하며,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그 다이나믹함으로 가득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일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카라얀의 음악 또한, 과거의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아 마땅치 않을까 합니다.
첫댓글 아~ 저도 성공해서 생애 드림카를 한대만이라도 운전해봤음 하네요. 음악엔 조예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학교다닐때 저 백발의 지휘자는 본것 같은 느낌이네요. 맞을라나? ㅎㅎ;;
ㅎ~ 모르긴 하지만 맞지 않을까요? 예전에 한때는 모닝글로리 같은데서 지휘자 그림 시리즈도 나오고 했었는데, 그 때를 더듬어 보면, 안경 쓰면 칼 뵘, 노속알머리 유진 올먼디, 동양인은 세이지 오자와, 젊으면 아바도, 더 젊고 왕느끼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물론 카라얀은 그 때도 흰머리였습니다. 지금 다시 나온다면 정명훈은 확실히 들어갈 텐데 말이죠~
드림카는.. 모형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ㅋ 교쇼나 핫 휠은 대체 왜, 페라리 275 GT 를 계속 무시하는 걸까요? 부라고는 노잼인데...
@박굴 박굴님의 글은 예전의 알파 원님의 글을 떠올리게 하네요 자동차라면 각양 각색 여러 장르에서 찾아와 포스팅 하는. 영화, 음악, 산업, 미술 .. 이런글을 매번 무임승차하는 식으로만 눈팅만 해 죄송하네요^^ 사진들을 다시 찬찬히 보니깐 직업이나 여가생활이나 꿈을 이루고도 남을 열정이 넘치는 멋진 삶을 산 분 같습니다.
@진이 '예전 알파 원님의 글'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군요~ ㅠ .. 사실, 또 그 이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이 글을 올려주셨던데 말이죠. 카페가 좀더 활성화되면 좋으련만, 뭐.. 없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가요?? 각자 전공 분야에서 잘 안보이던 자동차를 찾아 끄집어 내거나 공부하면서 연결관계를 이해해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카라얀은 못해도 클래식 계의 마이클 잭슨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빌리진~ 밥말어~.. 최~덕수 밥맛없어~ 뿅뿅뾰로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