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특별기고
한훤대조寒暄大祖의 위대성偉大性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훤대조께서 크나큰 위인이라고 판단한다.
첫째는 대조大祖의 수학修學방식이다.
21세 때 스승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선생을 만나 스승의 권유로, 수신위주修身爲主의 유소아幼小兒를 위해 엮은 책, 소학小學에 침잠沈潛, 30세까지 무려 10년을 오직 그 책만을 공부했다는 것이다. 누가 국가대사를 물으면 “소학동자小學童子인 내가 어찌 그런 대의大義를 알겠는가” 겸허히 사양하고 소학만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역사상 수 많은 큰 학자, 큰 선비가 있지만 이런 사례가 없다.
대조는 대대代代로 이름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천자문千字文부터 시작, 20세까지 소학을 비롯,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도 스승의 권유 말씀에 소학이란 책을 다시 공부하며 그 책의 진가眞價를 새삼 깨달으신 것이다. 책에 적힌 대로 실천궁행實踐躬行을 함으로써 장차 큰 인물이 되기 위한 터전을 닦으신 것이다.
그리고 “독소학讀小學이란 시詩를 스승에게 지어 바치니, 점필재 선생은 “소학서중 오작비[小學書中悟昨非:소학이란 책 가운데에서 어제의 그릇된 점을 깨달았다.]”란 시구詩句를 보고는 ‘차언此言이 작성근기作聖根基[이 말이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기초다’]라는 말로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하여 대선생이 서거하신 이후에도 “근세 도학지종[近世 道學之宗:근세에서 도학에서의 으뜸-퇴계 이황], “성리학性理學에 잠심潛心, 주자朱子의 도통道統을 찾는 것은 한훤당으로부터 시작됐다-서애-유성룡” 등 수많은 큰 선비들이 마음속 깊이 찬사를 보냈다.
둘째 큰 스승으로서의 길을 걸으신 점이다.
평안도 희천熙川에서 유배流配중일 때 언제 화禍를 당할는지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처지임에도 개의치 않고 배움을 청하는 학도들을 성심誠心으로 가르쳐 참된 스승의 도道를 지키셨다. 제자 중 조정암趙靜庵과 엮어진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대선생이 하루는 꿩 한 마리가 생겨 어머니께 드리려고 삶아 말리고 있었는데 여자 종이 소홀히 하여 고양이가 물고 가 버렸다. 선생이 여자종을 꾸짖으매 언성이 너무 높고 기색이 지나쳤다.
조정암이 당시 17세이고 대선생이 45세 일 때인데, 정암이 선생께 말씀드리기를, “부모님께 귀한 고기를 봉양하고 싶은 마음은 비록 간절하지마는 군자君子가 말과 기색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인바, 소자小子가 마음에 그윽이 의심되어 감히 여쭙니다.” 했다. 정암의 이 말에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이 어린 제자 정암의 손을 잡으며 말씀했다. “나도 바야흐로 스스로 뉘우치는데 네 말이 또 이와 같으니, 내가 절로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이는 네가 나의 스승이요,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로구나”且汝乃吾師 吾非汝師也
이 후 대선생은 제자 정암을 더욱 총애하였고 중히 여겼다 한다. 이런 모습을 약 150년 이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심곡서원기深谷書院記(황해도 개성 소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조광조 선생의 자질은 이처럼 탁월하였고, 한훤당 선생 역시 학식이 깊고 도량이 넓어 사제 간에 서로 계발된 바가 있었다. 아직까지 희천에 살고 있는 늙은이들 사이에는 이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소한 잘못이 있으면 나이 어린 제자에게도 사과하는 큰 스승으로서의 풍모를 엿 볼 수 있는 미담이라 하겠다.
셋째 선생이 순천順天에서 참수형斬首刑으로 서거하실 때도
큰 선비로서의 의연함과 드높은 기개를 보여 주셨다.
선생은 당일 나라의 명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목욕하고 관대冠帶를 갖추고 나가시는데 안색顔色이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으며, 우연히 신발이 벗겨지자 다시 신으시고, 처신에 흐트러짐이 전혀 없으셨으며, 수형직전에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어 입에 물면서(함수취명含鬚就命:수염을 입에 물고 명에 나아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불가병차 수상身體髮膚受之父母不可竝此受傷[몸신체와 털과 살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 같이 상하게 할 수는 없다]이라 하시고 의연히 명命에 임하셨다. 대선생의 최후의 이 말씀은 효도의 시초始初라는 효경孝經내 이 말을 지키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면裏面으로, 비록 나라가 혼란하여 크게 잘못된 형벌로 생生을 마치지만 나의 기개나 굳센 의중은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 주신 것이다.
여기에 다 기록하지 못한 그 밖의 여러 까닭으로 한훤대조는 조선조 오현朝鮮朝 五賢 또는 동방오현東邦五賢의 수현首賢으로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에 계시고, 조선조朝鮮朝 성리학性理學의 대가大家, 근세도학近世道學의 대종大宗, 실천유학[實踐儒學=道學]의 비조鼻祖등 여러 선현들로부터 셀 수 없도록 큰 찬사가 늘 따른다. 한훤당寒暄堂 선생은 그래서 위대하시고, 나라와 민족의 전범典範으로 길이 추앙 받아 마땅하다.
글 : 효영孝永(28世 영남중파 창녕) 대종회부회장⋅효성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