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중반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공보처 공무원이 파견 근무의 형태로 대통령의 공식 행사를 기록했다. 문민정부부터 MB정부까지 4인의 청와대 전속들이 밝힌 역대 대통령의 공통점은 “사진 한 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속’이라는 표현대로 대통령 관련 사진기록을 도맡았던 이들의 앨범 속엔 세상에 미처 공개하지 못한 장면과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전속이기 이전에 사진가였던 까닭에 경직된 경호 및 의전 시스템의 한계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먼지 수북이 쌓인 청와대 전속사진사들의 앨범 속에서 대통령에 대한 기억들을 소환해 보았다.
#1. 사진으로 소통한 YS
김현종(1993~1998 청와대 전속사진사로 근무)
허리에 손을 얹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통령의 표정이 언짢다. 바로 앞에선 김덕룡 민자당 사무총장이 마치 교무실에 불려 온 학생처럼 두 손을 등 뒤로 맞잡은 채 서 있다. 지방자치 선거를 앞 둔 1995년 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풍경이다. 대권과 당권이 분리된 지금이야 여당 사무총장이 대통령에게 질책받는 장면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엔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민정부 때 청와대 전속사진사였던 김현종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살짝 열린 집무실 문틈으로 평소보다 큰 대통령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들여다 보니 뒷짐 진 김 총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혼이 나는 자세였고 대통령은 화난 목소리로 훈계를 하고 있었다. ‘일단 찍어 둬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침묵을 깨는 셔터소리 덕분에 대통령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어떤 놈이야’하고 소리 칠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대통령을 향해 다시 한 번 셔터를 눌렀다. 그러자 대통령은 나를 보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 총장에게 훈계를 계속했다. 또 찍으라는 듯이.”
김씨가 기억하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언론은 국민’이라는 개념이 확고한 지도자였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화에 있어 가장 상위의 가치에 둬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사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다자 간 정상회의자리에서도 다른 나라 정상들을 자연스러운 포즈로 리드하거나 해외 순방 시에도 조깅 장면은 반드시 언론에 공개했다. 김씨는 “김 전 대통령은 지역 순회 방문을 가서 사진기자나 영상 취재기자가 올 때까지 행사를 연기하곤 했는데 이는 해당 지역에 대한 배려이자 국민과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는 매체로서 사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 DJ, 포즈 부탁 땐 “OK”
홍성규(1994~2003 근무)
홍성규씨는 전속으로선 최초로 대통령의 청남대 휴가 모습을 기록했다. 국민의 정부 첫 해 청남대 휴가 동행을 건의한 그에게는 나름대로 속뜻이 있었다.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이 휴가를 다녀온 직후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자 ‘청남대 구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이 ‘청남대 구상’은 그 후 대통령의 휴가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세간을 떠돌았다. 홍씨는 “언론에서는 ‘청남대 구상’이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대는데 정작 청남대에 머무는 대통령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는 현실이 전속으로서 아쉬웠다. 국민의 정부 들어 건의가 받아들여졌고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오리에게 모이를 주며 휴식을 취하는 사진들이 공개되면서 반응도 좋았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치인 출신이라 사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몸이 불편한 탓에 과한 연출이나 포즈 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걸 좋아했다. 가끔 포즈나 연출이 꼭 필요한 경우엔 전속이나 취재진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줬다”라고 말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던 그는 “APEC 같은 다자 간 정상회의에서 단체 기념사진 촬영은 국가를 대표하는 전속들끼리의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현장에서 한국말이 통하는 사람은 나와 대통령 둘뿐이고, 언론에서 원하는 사진은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국가 정상과의 친근한 장면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000 대통령과 악수 한 번 하시죠’, 또는 ‘000총리랑 말씀 좀 잠깐…’이라고 부탁하면 대통령은 그대로 해 주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전속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이나 노벨평화상 시상식 등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3. ‘최고의 피사체’ 盧
장철영(2003~2008 근무)
대통령이 귀를 붙잡고 괴로워하는데 영부인은 태연하게 창 밖만 바라 보고 있다.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통령 혼자서 익살스러운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2006년 12월 호주를 출발해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 현지 사정으로 대통령 전용기인 B-747 기종의 이착륙이 어렵게 되자 뉴질랜드는 규모가 작은 총리 전용기를 제공했다. 실내가 좁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동일한 좌석을 이용했는데 평소 농담으로 좌중의 긴장을 풀어주곤 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옆 자리에 앉은 주치의에게 말을 걸었다. “비행기 타면 귀가 멍할 때가 있지요. 어떤 사람은 침을 삼키기도 하고 사탕을 먹기도 하는데 나는 코를 막고 숨을 내뱉으면 귀가 뻥 뚫립디다.” 말을 끝내자 마자 대통령은 코를 잡고 있는 힘껏 숨을 내뱉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귓볼을 잡아 흔들다가 “이제 뚫렸네”하며 편안한 표정을 짓는 대통령의 실감 연기에 수행원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청와대 전속사진사 장철영씨는 노 전 대통령을 ‘최고의 피사체’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통령은 사진에 관해서는 내 말을 100% 신뢰했다. 누구든 내 글, 내 사진을 좋아하고 인정해 주면 존경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라며 “기념촬영을 할 때도 의전에서 역광을 피해 위치를 정해두었더라도 대통령은 ‘어디 서면 좋을까?’라고 내게 물었다. ‘역광이라도 여기가 괜찮습니다’하면 ‘봐, 프로가 여기 서라는데 당신들이 왜…’라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청와대 잔디 위에 앉아 손녀와 함께 과자를 들고 장난 치는 사진을 가장 좋아했다. 그 사진은 아직도 봉하마을 사저에 걸려 있다”라고 말했다.
#4. ‘포토제닉’한 MB
김용위(2008~2013 근무)
“태ㆍ권ㆍ도!”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절도 있는 자세로 주먹을 뻗으며 외치자 옆에 서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2009년 가을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권도복과 명예 단증을 선물하는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펼쳐진 두 정상의 퍼포먼스가 재미있다. MB정부의 청와대 전속사진사로 근무한 김용위씨는 이 장면을 대통령의 ‘이 순간’으로 꼽았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규정이나 체면보다 실력을 믿는 스타일”이라며 청와대 첫 출근의 기억을 떠올렸다. “장발에 파마를 하고 꽁지머리를 묶은 튀는 외모 때문에 인수위 시절 경호나 의전 쪽에서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는 김씨는 취임식 전 날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다음날 ‘2:8’가르마를 하고 출근한 그에게 대통령이 던진 첫마디는 “머리를 왜 잘랐나?”였다. “자넨 아티스트인데 왜 스스로를 공무원으로 규정짓나. 장발이 좋았는데 실망이네….” 그는 또, “대통령은 어떤 자리건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전속을 먼저 찾았다. 가끔 내가 늦게 나타나면 ‘야… 이런 것 있었는데 어디 갔었어? 찍었어야 되는데…’라며 아쉬워 할 정도로 사진을 중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표정이나 몸짓이 역동적이다. ‘포토제닉(Photogenic)’하다는 표현도 어울린다. 국무위원들과 복도에 선 채로 토론을 하거나 국가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스케이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태권도’기합에 똑같이 응수하는 재치도 갖췄고 순국 장병의 영정 앞에선 눈물도 흘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 들고 웃는 모습은 이웃집 아저씨를 연상케 한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는 일상 사진들이 많지만 아직 대통령 기록관의 정리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사진 공개는 조심스럽다.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나면 좋은 사진들을 더 많이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