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海月) 선생의 시문(詩文) ☞ 서문(序文) 《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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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海月) 선생의 시문(詩文) ☞ 서문(序文) 《 1 》 ☜
조선(朝鮮) 중기의 문장가(文章家)로 이름난 해월(海月) 선생에 대해, 늦게나마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됨을
우선 기쁘게 여긴다.
해월(海月) 선생은 강원도(江原道) 울진군(蔚珍郡) 평해(平海: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태어나셨
으며, 생가(生家)는 현재 경북(慶北) 문화재(文化財) 자료 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울진(蔚珍)은 서울과 거리가 천리(千里)밖에 되지 않으나, 우리 나라 동쪽에 치우쳐 교통이 불편한 궁벽(窮僻)
한 곳이다.
우리는 울진(蔚珍)이라고 하면, 근래에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울진분이라는 것을 다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울진(蔚珍)의 명망(名望) 받는 선비로서 당대(當代)의 대문장가(大文章家)이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공훈(功勳) 또한 크게 세웠던, 해월(海月) 선생이 세간(世間)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해월(海月) 선생의 시문(詩文)」이란 책으로나마, 해월(海月) 선생이 어떠한 분이신지 조금이나마
알리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의 발문(跋文)을 쓰신 이세택(李世澤: 퇴계 이황 선생의 8대손으로 영조 때 대사헌(大司憲)을 지냄) 선생은, 자신은 이미 백사(白沙) 선생의 문집(文集) 속의 조천록(朝天錄)에서 백사(白沙)와 월사(月沙)와
해월(海月) 선생이 주고 받은 주옥(珠玉) 같은 글을 이미 보았으며, 세 분 선생의 문장(文章)과 그 덕(德)은 서로
우월을 가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백사(白沙)와 월사(月沙) 선생의 문집(文集)은 이미 간행(刊行)되어 우리 나라에 널리 퍼져 있어 사람들이
외울 정도이나, 유독 해월(海月) 선생의 글만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전해지지 않으니, 어찌 개탄(慨歎)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쓰고 있는 것이다.
영조(英祖) 때 인물로, 퇴계(退溪) 선생의 학문에 정통한 대학자(大學者)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선생이
쓴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서문(序文)을 보면,
나라가 중종(中宗)과 선조(宣祖) 사이에 크게 번성했으니, 이 때에 태어나 진유(眞儒)가 되고, 이름 있는 명경
(名卿)이 되고, 문장(文章)으로 나라를 빛낼 만한 재주를 지녀 그 시대의 원대(遠大)한 계획(計劃)을 아름답게
꾸몄다고 했다.
또한 해월(海月) 공(公)의 저서들이 대부분 병란(兵亂)으로 불타버려 다만 몇 권의 책만이 남았지만, 그 문장
(文章)이 바다처럼 넓어서 끝간 데를 알 수 없고, 시(詩) 또한 갈고 닦지 않으면서도 입으로 내뱉으면 시문
(詩文)을 이루었으며,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백호(白湖) 임제(林悌) 등과 더불어 그 시대(時代)를 구가
(驅駕)했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특히 임제(林悌)와 절친한 사이로, 하루는 그의 집을 방문하니 선생을 보고는 쓰고 있던 책을 감추었다가,
해월(海月) 선생의 절조(節操)있음을 아느지라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 때 해월(海月) 선생이 그 책을 읽어 보고는 즉석에서 붓을 들어 발문(跋文)을 써 주었으니, 그 책 제목이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이었다.
또한 이세택(李世澤) 선생이 쓴 발문(跋文)에서도, 해월(海月) 선생의 문장(文章)은 많은 사람 중에 단연 뛰어
나서, 한 번 물결이 일면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고, 그 시(詩)는 정묘하고 고우며, 문장(文章)이나 언어가 아름
다우며, 말(馬)이 빨리 달리는 것 같아, 당송인(唐宋人)의 득의(得意)한 마음이나 기개(氣槪)가 있으며, 남겨진
문집(文集) 속의 시(詩)를 읊조려 보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마음속이 매우 신묘(神妙)하며, 그의 기량
(器量)은 깊고 깊어 잠기는 것이 곧 바로 맑고 푸른 바다물 속에 밝은 달이 밝게 비추어 더불어 같이 흐르는
것을 상상(想像)할 수 있으니, 그 달빛과 물 속의 그림자(光影)가 얼마나 기이한가! 라고 하였다.
한편 백사(白沙) 선생의 문집(文集)에서도, 해월(海月) 선생과 월사(月沙) 선생이 자신보다 시문(詩文)이 뛰어
나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해월(海月) 선생의 자신을 다스린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났고, 효제(孝悌)는
신명(神明)에 통하고, 충성(忠誠)과 절의(節義)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性品)에 근본(根本)을 두었고, 재주
(才)는 족히 임금을 도와 나라를 빛낼만 하고 (贊猷華國), 식견(識見)은 도리(理)를 바르게 하고, 이를 흡족히
밝혀 당세(當世)의 이름 있는 선비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단 맑고 깨끗한 글(淸文)에 기이(奇異)한 기운이 솟아 다른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감복(感服)케 할
뿐만이 아니라고 하여, 문장(文章)도 뛰어났지만 오히려 인품(人品) 즉 충의(忠義)나 효제(孝悌), 식견(識見)과
재주는 더욱 탁월(卓越)하다고 하였다.
또한 해월(海月) 선생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대한 일화(逸話)도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던 해,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으로 함경도(咸鏡道)에 있었는데, 함경(咸鏡) 감사
(監司) 류영립(柳永立)은 해월(海月) 선생의 철령(鐵嶺) 고수(固守)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해월(海月) 선생의 말대로 함경도(咸鏡道)가 왜(倭)의 수중에 들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