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래하는 아들』, 최충산, 부크크(Bookk), 2021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선견자의 시편들
송광택(목사, 출판평론가, 한국독서문화연구회 대표)
필자는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최충산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문학소년 최충산은 이미 그때부터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이후의 그의 족적을 잠시 살펴보자(최 시인이 2007년 2월,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참고하였다. 강의 제목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라”)
“언제부터인가 시를 좋아했다. 시 쓰기를 좋아했다. 아마 교회의 문학의 밤에 출품하기 위하여 글을 쓰면서 시를 접한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썼다. 이때는 정말 열심히 문학 공부를 했다. 심어 3학년 때는 문예반에서 시론을 강의하기로 했다.”(‘강의안’ 중에서) 그 때에 그가 읽고 공부한 교과서가 조지훈 선생의 “시의 원리”라는 책이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산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로 ‘멋을 내는’ 시를 썼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많은 시를 썼는데, 좋은 시와 문학책을 보면서 표현이 발전해나갔다.
20대는 사랑의 실연의 고통과 좌절이 있었던 때였고, 그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밀도 있게 하는 시기였다. 또한 그 시기는 자아의 문제 즉 존재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기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아의 존재감에 대한 위기와 혼돈 같은 것들이 엿보이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무엇인가 위로부터 주시는 역사와 구원에 열망을 하고 있었다.”(‘강의안’ 중에서)
무엇인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홍해가 갈리우는 모세의 지팡이처럼
오류의 노도(努濤)를 가르는,
무엇인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안일과 그 안일의 피로 속에서,
잃어버렸던 해방의 기쁨을.
나 이제 무릎 꿇은 지금에
총알이 가슴을 관통하는 아픔을.
우리의 역사는 기다림의 역사가 아니였던가.
기다림의 신앙에 지치어
가시 돋친 장미를 가슴에 안은 우리들.
그 독과 가시에, 스스로의 가시에 쓰러져 가고 있는
우리들.
무엇인가 나타나야 할 때다.
시베리아 벌판이 일어서는 감격처럼,
노래도 없는 이 곳에
원하는 마음도 없는 이곳에
불꽃과 불꽃이 부딪치는 섬광,
가슴과 가슴이 불로 화합하는
바로 부활의 역사.
피와 그 피가 폭포수처럼
밀려오는 부활.
산이 뒤집히며
들판이 일어서는
그 무엇인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시 『지금』 전문
『해오리의 비상(飛翔)』은 그가 ‘신앙적 부활’을 희구하면서 쓴 작품이다.
시간의 끄트머리 진한 먹을 삼킨 하늘 구석에 뙤창문 열리더니, 비취로 엮은 달빛 한 속이 나려와 해오리 돌아가 길게 누운 무쇠 널을 휘휘 감싸 안더니, 부활의 섬광인양 무쇠 널을 녹이어 가슴에 차돌로 몽쳐있던 해오리, 긴 깃 포드덕 털고 긴 다리 구름에 감추오고 빛 가운데 날아가다.
해오리 그간 훗훗한 정으로 한 깃털 떨군 것이, 불꽃놀이 목전에서 부셔지듯 퐁 포옹 돋치어, 온 하늘이 백설(白雪)로 빚은 깃털 숲으로 덮히다.
우리의 좁은 눈망울에도, 달에 아기별이 안기듯 온통 해오리 깃설(雪)이 어리어 있다.
-시 『해오리의 비상(飛翔)』 전문
70년대 전반기는 그가 사회와 세계의 발견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왕성한 시적 작업을 하면서 시가 어느 정도 언어적으로 순화가 되면서 다름대로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신앙적으로도 안정을 찾으면서 자기와 세계, 그리고 신앙이 포괄적인 점에서 조화를 이루어져 내면적 혼돈이 정리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75년 부활절에 쓴 시 “부활절 미명에”는 대학교 백일장 시장원에 당선되었다. 이 시는 그가 가장 아끼는 시 가운데 하나다.
노래를 날려보내는 손끝으로
앞에 널려진 호흡있는 것들을 건드린다.
비록 옥으로 빚지 않았드래도
인고의 긴 동굴을 지나와
피로 얼룩지고 바람으로 다져진
드디어 눈앞에 피는 봄을 쓸어안는다.
한마디 발성을 위해
한알의 유리알을 품기위해
아라비아 먼 사막길에서
울부짖고, 주름지고, 접히고 했으니
오너라. 사탄의 못된 어망(魚網)이여.
얼굴을 내밀어 보아라.
바다가 펼쳐지는 절벽 끝에서
사자등허리같이 요동치는 현재에서
내 바위같이 얼근 가슴판으로
받으리라.
바위도 들먹대며 찬양할 날을,
시베리아가 일시에 갈라지며
가나안을 분만할 날을 위해
너는 얼마나 음모와 유혹의 덤불을 헤매였느냐.
모든 어지러운 사념을 한 데 모아 불사르고,
에스겔 골짜기에 흩어진 뼈들을
한마디 노래로 일으켜라.
종소리 더 맑게 퍼지는 여명,
간 시간을 생각지 말고
불비 내리는 등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슴에 땀 송송 오르도록
일어나 오는 새벽을 내달아라.
시 『부활절 미명에』 전문
군을 제대한 후, 결혼을 앞두고 나라의 민주화와 신군부 세력의 등장으로 다시 시는 사회 문제 대한 반응으로 격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민주화의 열망과 동시에 그것의 좌절이 한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젊은 영혼에게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었 었다.
『그때』, 『죽은 자의 얼굴을 본다』 등의 시는 바로 그 암울한 시절에 빚어진 시편들이다.
최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신학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있게 깨닫게 되면서 신앙고백적 시가 나왔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역사를 노래하게 된 것이다.” 『들꽃 하나 고개를 드는 것은』, 『용문동에서』같은 시들이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작품이다.
들꽃 하나 고개를 드는 것은
여러 친구 둘러서고
고운 흙 앉아있고
산바람 허리 감아 돌고
이슬 하나 잎술 적셔주고
골마다 물소리 깔아주고
하늘 넓은 가슴 스쳐가는 빛조각
순간 목숨 조각 바치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간 목숨들
한 구석 소리없는 절규
산골짜기 썩어가는 잎사귀들
피 되어 꽃잎 속에 흐르고
이름 모를 들꽃 하나 피어 난 것 어찌 우연이더냐
바위 모래알 되고 들 엎어져 다시 산 되도록
바위 모래알 되고 들 엎어져 다시 산 되도록
저 혼자 고개 드는 꽃잎 하나도 없다
저 혼자 가슴 여는 꽃잎 하나도 없다
-시 『들꽃 하나 고개를 드는 것은』 전문
둔산지구 택지개발 현장 옆으로
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사 왔다
택시 회사가 집 뒤에 있어 밤새 시끄럽고
가끔 공사장 다이너마이트다 터뜨리는 소리가
집 기둥을 들었다 놓는다
길이 엄마는 아이들 도시락 반찬이 없다고 걱정하고
나는 안집에서 준 침대에 누워 공상에 빠져있다
극동방송에선 목사님 설교가 나오는데
다시 또 전화벨 소리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는 용문동 212-2번지
아내와 나는 겨우살이 걱정을 한다
주인집 민 집사님 높은 소프라노가 현관문을 나서면
뜰 안엔 한결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이 층에 이사 온 한길이 녀석 재롱떠는 소리로
식구들 피로를 씻는다
동네 우체국에 월급을 맡겨놓은 길이 엄마
농협 매장에서 현미를 사고
자전거 바구니에 채소를 싣고
우체국에서 엽서 몇 장 부치고
호떡 몇 장을 사서 돌아오는 길이 엄마
그녀의 입에는 찬송 470장이 붙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은지”
동네 배불뙈기 아저씨네 고물상 무슨 좋은 물건 들어오지 않았나
궁금하고, 어허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구나
친구 녀석들 전화 하나 없네
오늘 할 일은 별로 없지만
마음은 바쁘고 그만큼 편치 않구나
그래도 이 용문동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서울 갔다 오면 반갑게 맞는 길이 엄마는
늘 따뜻한 유성 온천탕 물 같구나
길이와 신실이는 튼실하게 크고
오늘도 저녁 상엔 된장국이 구수하다
오늘도 우리 내외는 아이들을 일찍 재울 일이다
-시 『용문동에서』 전문
시인은 보는 사람이다. 오감으로 보고, 마음으로도 본다. 관찰을 지나 통찰로 나아간다. 시인은 꿰뚫어본다. 사물을 투시하고 역사를 관통하여 보고자 한다.
최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의인 한 사람』은 그의 시세계가 소소한 일상에만 함몰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인은 역사 앞에서 ‘깨어있는 한 사람’으로 서있고자 한다.
예레미야가 웁니다.
아무도 달래지 못하는 통곡,
아무도 알지 못하는 슬픔.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한 번 치고
더 참다못한 울음 덩어리.
예루살렘 거리,
드넓은 서울의 거리.
오가는 저 사람의 머리 물결,
누가 하늘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어느 누구 하늘의 아픔을 헤아리는지
의인 한 사람,
하나님과 통하는 의인 한 사람.
없습니까?
[중략]
예레미야가 지금 웁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또 웁니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 또 웁니다.
의인 한 사람 찾다 못해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내일로 들어가는 문지방에 서서
오늘도 그냥 떠나보내는 하루가 안타까워서
義人 한 사람
없습니까?
- 시 『의인 한 사람』 부분
최충산 시인의 시세계는 신앙적 내성(內省), 가족에 대한 사랑, 고된 삶을 사는 이웃에 대한 연민, 굴곡진 역사에 대한 고뇌, 그리고 피조 세계에 대한 관조적 통찰 등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필자는 그의 시가 지닌 독창성과 예술성에 감탄하면서 후학들이 배울만한 점들을 언급하고 싶다.
첫째, 시인은 ‘번역’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최 시인은 잘 번역하기 위해 ‘원문’을 정독해 적확하게 해석한다. 그에게 삼라만상은 모두 해독해야할 텍스트다. 이름 모를 들풀부터 설형문자(楔形文字, 또는 쐐기문자) 같은 인생사, 그리고 신앙의 숭고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으로 영으로 품고자 한다. 시 창작은 인간과 현상과 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잘 읽어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둘째, 시인은 언어의 집을 짓는 건축가다. 최 시인은 오감으로 응답하고 언어로 색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알을 품듯이 품고 있으면 때가 이르러 심상(心象)이 자리 잡고 한 편의 시나 기지개를 켠다. 물론, 언제나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번개처럼 시어(詩語)가 시인의 가슴에 내리 꽂힐 때도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근면해야 한다. 영감은 게으른 이에게 임하지 않는다. 최 시인의 시편들은 그가 성실한 구도의 자세로 시작(詩作)에 임한 시간들을 증언한다.
셋째, 그는 새로운 세상,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요 선견자로서 창작에 임했다. 그는 사랑과 진리를 믿는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귀히 여기고 낮은데 거하는 이들에게 다가가고 공감한다. 이러한 마음에서 나온 시만이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물신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모든 이를 삼켜버리는 시대에 시인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랑과 진리가 입 맞추는’ 세상을 꿈꾼다.
최 시인의 시집 『노래하는 아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묵상과 사유의 열매들이다. 그의 시는 생수처럼 목마른 영혼을 만족시키고, 단비처럼 곤고한 심령에 위로를 준다. 이후에도 아름답고 힘 있는 시편을 통해 최 시인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자(使者)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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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 songrex@hanmail.net
현)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목사
현)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현)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
현) 계간 국제문학 편집이사
현) 한국사립작은도서관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