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安島)의 밤
권 옥 희
어쩌면 지금이 전부였다
어둠의 궤적을 따라가다 다락방에 갇힌 섬
바다가 증발했다고 요란한 개구리 소리가 주인이 됐다
반짝반짝 빛나던 사랑은 그대 가슴으로 들어가고
별 하나 들어앉히지 못한 내 가슴이 까만 먹지로 갇힌 밤
안방같이 아늑하게 섬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하늘을 품은 이 길에서 길을 잃으면 눈물 날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이 전부 같기에
다락방에서는 어둠이 훨씬 수월할지 모른다
물미역이 되어 해저를 떠다니다가
마법 주문이라도 외운다면
등대의 한 점 불빛도 헛구역처럼 올라오지 않을까
실종 신고가 늦어도 실망하지 않으리
전부 같은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안도의 숨을 깊게 내쉬며
안도(安島)는 마을 앞까지 바다를 데려다 놓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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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슬픔의 말이랍니다
권 옥 희
엄마 눈에 가을꽃이 피었나 봅니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요
생목 넘어오는 슬픔의 맛은 다를지라도
쌓였던 눈물 칼질하듯 쏟아내라고
엄마는 눈으로 말합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주는 위안
젖은 풍경이 주는 쓸쓸함과 혹은 그리움
궤도 이탈처럼 알맹이 다 빠져나간 껍데기에 갇혀
원인 모를 우울증을 앓을 때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고
가을꽃에는 복받치는 엄마 눈물이 녹아있나 봅니다
눈물이 말이 되어 슬픔을 녹입니다
언제나 그리운 엄마의 기일입니다
무성한 기억을 키운 하늘이 못 견디게 파랗습니다
핏줄까지 더듬어가며 보고 싶었다고
우리 엄마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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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권 옥 희
꽃은 제 얼굴이 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스무 살의 꽃대를 화려하게 올린 그녀의
유서도 없이 꽃물 든 발자국이 걸어간 날들이 시퍼렇다
예정 없는 바람에 빛나는 봄날이 가고 있을 때
박수도 없이 아름다운 날들을 떠나는 사람들
나는 세상 떠날 때 눈물 한 장 남길 수 있을까
처음 인연의 끈을 묶듯 예뻤던 날들이 서른을 지나고
다시 봄으로 들어가 꽃잎 날리는 마흔도 몽롱하게 받아들였다
화려한 꽃무더기 속에서 발설하지 못한 말들이 허공을 울리는 오후
치열하게 살아온 비밀의 열쇠를 또 다른 나이에 꽂고
사랑에 물든 꽃잎들이 다시 피어나기가 얼마나 처절한지
뜨거움을 잃은 해를 삼킨 목구멍으로 다시 뜨거움을 뱉으며
누가 봐도 꽃은 꽃의 얼굴로 다시 핀다.
<약력>
• 경북 안동출생
• 92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 신인상으로 등단
•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문학의 집 ․ 서울 회원
• 강서문학 대상 수상
• 시집「마흔에 멎은 강」,「그리움의 저 편에서」,「사랑은 찰나였다」
공저「별난 것에 대한 애착」,「장미차를 생각함」등 다수
•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 독서논술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