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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갑옷을 입고 죄를 그치는 고난을 받게 하소서!(벧전 4:1-11)
1. 오늘의 말씀 : 벧전 4:1-11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박승혜 선교사님 가정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녀는 홀로 선교를 나갔다가 현지인과 결혼하였고 현지인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쌍둥이 딸은 한국어에 능통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나누며 그들은 그곳에서도 복음생명세미나가 열리기를 사모하였습니다. 주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심판의 천사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1/3을 죽였습니다(계 9:18). 그러나 이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않습니다(계 9:20). 도리어 더욱더 여러 우상을 섬기며 재앙을 면하고자 합니다. 주여, 재앙이 그치지 않은 시대, 살아있으나 회개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요? 그러나 죄인이 어찌 스스로 회개할 수 있으리요? 주꼐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실 때 비로소 회개합니다. 말씀 앞에서 내 죄와 허물을 보고 회개하게 하소서. 무시로 보고 듣는 것이 죄악이오니, 무시로 돌이키게 하소서. 말씀 앞에 엎드리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자초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선을 행하여도 고난받는 자가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3:17). 3:18-22는 삽입 구절로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에 관한 전승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3:18-22의 삽입 구절을 고려할 때 4:1은 3:17에서 이어지는 권면이다. 물론 주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하나님의 뜻에 관한 권면이다. 1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선을 행하는 것은 죄를 그치는 것이다. 죄를 그치는 자는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간다. 여기에 세상 사람으로부터 의구심과 비방이 따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신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1절).
서신의 저자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투쟁을 위해 무장할 것을 권면한다. 그 투쟁은 죄에 대한 싸움이다. 그리스도는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죄를 그치게 하셨다. 육체의 고난을 받아 죄를 그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한다. 사람이 금욕이나 고행 등 육체의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죄가 그쳐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죄의 세력을 분쇄하셨고 죄를 그치는 효력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같은 마음’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여 육체가 정복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몸은 장애가 되었고,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났다.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육체가 찢김으로써 고난받아 죄를 그치게 하신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의 몸이 장애가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롬 6: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무장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2절).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았으나 육체로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죄의 세력은 죽을 몸을 지배하여 몸의 사욕을 쫓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무장한 자는 남은 인생을 몸의 욕망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것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삶이다.
3절, 그리스도인은 이방인들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옛 생활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방탕과 정욕과 술 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에 빠져 사는 것이며, 이는 지나간 때로 충분하다. 여기 6가지 목록은 고대 세계에 사람들이 살던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육체의 일로서 갈 5:20-21과 로마서 13:13-14과 흡사하다. 그리스도인도 과거에 이런 방식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과거 삶의 방식을 버리면 고난을 받는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고 비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함께 그런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4절).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생활방식과 결별하면 주변 세계와 갈등을 초래하고 그들로부터 의구심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삶의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방탕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은 흥을 깨는 별난 사람이거나 훼방꾼으로 간주되며 비방받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비방은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며, 하나님께 영광이다(13절).
5-6절,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이상히 여기고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이다.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죄다 아뢰어야 합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심판받는 대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삶의 방식과 결별한 그리스도인들을 이상히 여기고 비방하는 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이에게 그들이 한 일을 직접 해명해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자이든 믿지 않는 자이든 보편적으로 임한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이다. 즉, 복음은 육체로는 심판을 받아도 영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슈라게). 첫째, 죽은 자들은 살아생전에 복음을 들었으나 복음을 거부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엡 2:1-3).
둘째, 이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타락한 천사들’및 ‘홍수 세대의 불순종한 자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하데스 선포를 들은 자들이다(슈라게). 죽은 자들은 앞으로 죽게 될 자들이 아니라 복음에 접하지 못했던 그리스도 시대 이전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 것은, 생명을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복음이 주어지지 않고 따라서 생명을 획득할 가능성이 제공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11절, 마지막으로 고난에 대한 권면(4:12-19; 5:6-11)에 앞서 종말론에 근거한 권면을 제시한다. 1:5, 7, 13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를 기억하며 준비하고 기뻐하라고 권면하였다. 이곳에서도 마지막 때를 목전에 두고 고난을 바르게 이해할 것을 권면한다.
7절은 8-11절의 일반적인 권면의 근거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종말이 임박하였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할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깨어 있어, 그날에 나타나실 그리스도 앞에서 행하라는 촉구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임박한 종말은 윤리의 동기이다.
마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음을 앞질러 경험할 때 참된 존재가 되며 결단력 있고 책임 있는 삶을 산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임박한 종말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것은, 종말을 앞질러 경험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받으실만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종말을 앞질러 사는 그리스도인은 뜨겁게 사랑하고(8절), 불평하지 않고 환대한다(9절). 종말에 깨어 있는 사람이야말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열렬한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도 사랑에 눈이 멀면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다. 허물을 덮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어내거나 표면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죄와 허물을 들추어내고, 하나님은 그것을 자백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신다(요일 1:9-10).
9절의 ‘불평하지 말고 환대하라’라는 권면도 ‘사랑하라’라는 계명에 속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행위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마 25:35; 롬 12:13; 딤전 3:2; 히 13:2 등). 특히 이 권면은 사도와 복음 선포자 등 직무상 떠돌아다니는 형제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마 10:9-13; 요삼 1:5-8 등). 그 밖에도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박해의 상황이었기에 이 권면은 엄격하게 지시되었을 것이다. ‘불평하지 말고’라는 삽입구는 환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며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평하는 자는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10절, 은사와 관련한 권면이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그 은사를 따라 선한 청지기처럼 봉사해야 한다. 은사는 다양하고 여러 형태로 주어진다. 그것은 평균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따라서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은사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안 되며 각자의 자리에서 은사대로 섬기는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은사는 자기를 실현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각자에게 부여된 은사나 재능을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11절, 특별히 말씀의 은사와 봉사의 은사를 받는 자에 대해 권면한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전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자기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한다. 이 권면은 사람이 자기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신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다. 복음을 위탁받은 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으며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다(살전 2:4).
봉사의 은사를 받은 자는 자기 힘으로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할 것이다. ‘공급하시는 힘’은 현재형이며 ‘항상’ 새롭게 공급하시는 힘이다. 여기에 자기 힘으로 한다는 마성적 세력은 개입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실시간으로 공급받는 힘으로 봉사할 때 자기주장 의지는 무력해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인간은 세계내에 내던져진 피투된 존재이다. 그는 사회 속에서 이미 형성된 문화생활과 공공 생활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원천에 근거한 삶이며, 육체의 일에 속한 삶의 방식이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한 삶을 방탕의 파도(쓰나미)로 부른다. 거기로부터 결별하는 것은 방탕의 쓰나미를 거스르는 것이며, 기존의 도식을 깨뜨리는 모험이다. 그러니 세인들로부터 마땅히 의구심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권력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방탕의 쓰나미에 휩쓸리는 타인의 시선은 그것을 거스르는 자에게 지옥을 경험케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떻게 그 물결에 거스르며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을까? 그것은 육체의 고난을 받으사 죄를 그치게 하신 그리스도의 갑옷을 입는 것뿐이다. 다른 길은 없다! 그렇다면 이상히 여김 받고 비방받는 이는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그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소극적으로 방탕의 쓰나미를 거스르며, 적극적으로 종말을 앞질러 경험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듯이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며, 나그네를 기쁘게 환대한다. 나아가 각자 받은 은사대로 공동체를 세워간다. 특히 말씀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하나님께 받은 대로 전하며, 봉사의 은사를 받은 자는 매 순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한다. 그리할 때 우리의 모든 수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
4. 나의 묵상
나는 오래도록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던 자였다. 목회하면서도 동역자와 신자들의 시선을 의식하였다. 방탕의 쓰나미, 전통의 쓰나미, 사람 중심의 쓰나미가 내 신앙과 목회를 덮치곤 하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으면 그것을 진리로 착각하였다. 참으로 무서운 일은 착각에 사로잡힌 것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진실로 어둠에 속한 자였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나 공의대로 심판하신다. 인간의 심판은 무자비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자비가 한량없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서 자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한다. 말씀 앞에 드러난 나의 죄악은 나 자신을 관용할만한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아,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주께서 어찌 나 같은 자의 허물을 다 덮으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셨는가?
그래도 종종 방탕의 쓰나미에 휩쓸리는 자이다. 갑옷을 입지 않고 전쟁하는 군인이 없다. 깨어 영적 전쟁임을 아는 자는 한시도 그리스도의 갑옷을 벗을 수 없다. 육체의 고난을 받으사 죄를 그치신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그리하여 죄를 그치고 방탕의 쓰나미를 거스른다. 죽기를 구하던 자, 어찌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랴! 죄에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조롱받고 미움받은 것은 영광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이 앞에서 방탕의 쓰나미를 거슬리는 고난을 기쁘게 감당한다.
말씀의 은사를 받은 자, 죽을지언정 다른 것을 섞지 않는다. 사람을 의식하면 그들을 기쁘게 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사람에는 눈멀고 복음을 위탁하시고 감찰하시는 주님의 시선에 나를 고정한다. 사명 다하는 날까지 오직 한 분의 청중 주님의 시선에 지배받기를 간절히 구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죄가 쓰나미처럼 사람들을 휩쓸어갑니다. 아무도 당할 자가 없나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육체의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죄를 그치셨습니다. 저 또한 같은 마음으로 고난을 받아야 죄를 그칩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계수하는 지혜를 주소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훨씬 적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수치뿐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방탕의 쓰나미, 전통의 쓰나미에 휩쓸렸습니다. 회한으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할 자였습니다.
오, 아버지... 마땅히 죽을 자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고 무덤에 던지셨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수미산처럼 셀 수 없이 드러나는 죄악과 허물을 다 덮어주셨습니다. 육체로는 심판하시고 영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도 감당할 수 없사온데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복음에 다른 것을 섞이겠습니까?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순전하게 전하게 하소서.
아버지... 이렇듯 많은 은혜를 받고도 종종 타인을 의식하는 자입니다. 타자의 시선이 권력이 되곤 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종말을 앞질러 경험하며 깨어 있게 하소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 나그네를 환대하는 사랑으로 행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은사대로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하나님이 시시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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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소극적으로 방탕의 쓰나미를 거스르며, 적극적으로 종말을 앞질러 경험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듯이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며, 나그네를 기쁘게 환대한다. 나아가 각자 받은 은사대로 공동체를 세워간다. 특히 말씀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하나님께 받은 대로 전하며, 봉사의 은사를 받은 자는 매 순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한다. 그리할 때 우리의 모든 수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