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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 儂 公 遺 稿
(만 농 공 유 고)
望西亭詩帖(망서정시첩)
追惟先宇聿來東 선정(先亭)에서 동(東)으로 오실 때를 추념(追念)하면서
誰謂如今文獻空 누가 지금(至今)같이 문헌(文獻)이 비었다고나 할까
仁庇仍昆饒有澤 인(仁)으로 감싸주니 후손(後孫)들 혜택(惠澤)이 넉넉하고
義伸館閣直生風 관각(館閣)1)에 의(義)를 펴서 곧 유생(儒生)들의 기풍(氣風)인듯
心懸帝闕紅雲裡 마음은 궁궐(宮闕) 홍운(紅雲) 속에 매여있으나
裡斷梓鄕夕照中 단장(斷腸)의 고향(故鄕)에는 저녁 노을의 가운데일세
遺志新成增百感 끼친 뜻을 새로 이룩하니 백(百)가지 감회(感懷)가 더하는 듯
倚欄西望隔晨同 난간(欄干)에 의지(依持)해서 서(西)를 바라보니 지난 새벽 같구나
주)1)관각(館閣):홍문관(弘文館)과예문관(藝文館)관. 한림(翰林)의 별명(別名). 송대(宋代) 이후(以後)의 이름
十六世孫 洛九(십육세손 낙구)
會驛上新屋(회역상신옥) 詩帖(시첩)
尋林心深今(심임심심금)
主人新屋好相尋 주인(主人)이 새집을 지으니 좋아서 서로 찾아
滿座瑤仙摠藝林 좌중(座中)의 모든 사람들은 구슬의 대(臺)의 신선(神仙)이고 모두가 문학(분學)하는 사람일세
庭際恢弘堅石志 뜰을 넓히고 키움은 돌과 굳은 뜻이요
墻圓淨潔種花心 둥근 담장이 정결(淨潔)함이 꽃을 심을 마음일세
遐賓易訪元非涉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은 원래(元來) 건너지 않게 하고
近市嬚煩亦擇深 시장(市場)이 가까워 번거로움 싫어서 또한 깊은 곳을 가려
誰識詩腸盆且苦 누가 시(詩)를 짓는 창자는 가난하고 또 괴로운데
此家淳俗古而今 이 집의 인정(人情)이 두터운 풍속(風俗)은 예나 지금(至今)일세
두산(斗山)
騷壇旗鼓鎭日尋 시단(詩壇)에 기(旗)를 꼽고 북을 쳐서 평상시(平常時)에 찾으니
必勝輕率會如林 필승(必勝)을 다짐하며 거느리고 많이도 모이는 것 같더니
明窓不見微塵跡 밝은 창(窓)에 아주 세세(細細)한 흔적도 보이지 않고
喧市尙爾太古心 시끄러운 시장(市場)과 태고적(太古的)마음은 오히려 그렇구나
十里稻梁天雨惜 십리(十里)의 도랑에 하늘 의 비도 아끼는 듯
千家桑柘午陰深 천(千)집에 뽕나무의 낮 그늘도 깊구나
邂逅詩仙文藻宅 모처럼 만난 시선(詩仙)들이 아름다운 광채(光彩)의 집에서
一旬淸興最懷今 한순간 맑은 흥(興)이 가장 지금(至今)을 생각하네
연정(硯庭)
學士靈區晩此尋 학사(學士)의 신령(神靈)한 구역(區域)에 늦게 이곳을 찾으니
翼然墻屋遶雲林 날아갈 듯한 담이 그름의 숲을 둘러있네
烟霞妙態千秋景 연기(煙氣)와 노을의 묘(妙)한 모양은 오래고 긴 세월(歲月)의 경치(景致)요
文酒酬情九曲心 글과 술의 정(情)을 구곡(九曲)1)의 심정(心情)일세
滿壑藤蘿山日亭 구렁에 가득한 넝쿨풀은 산(山)의 입구(入口)부터 조용하고
名岡喬木午陰深 이름난 산(山)의 키가 큰 나무는 낮 그늘도 깊구나
自酸世味隨時變 스스로 시고 쓴 세상(世上)의 맛은 때에 따라 변(變)하고
鄒魯遺風盡古今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끼친 풍속(風俗)은 예나 지금(至今)에도 다하리
주)1)구곡(九曲) : 굴곡(屈曲)이 많음. 아홉 굽이
만강(晩岡)
闢此高門孰不尋 이 고상(高尙)한 문(門)을 누가 찾지 않을까
綿氈珠箔好園林 비단방석과 구슬 밭에 좋은 원림(園林)1)일세
數株邱木誇家勢 두어 주(株)에 언덕의 나무로 가세(家勢)를 자랑하며
百朶庭花慰客心 백방(百方)으로 늘어진 뜰에 꽃은 객(客)의 심정(心情)을 위로(慰勞)하네
只信當年功不涉 다만 당년(當年)에 진실한 공(功)을 건너지 않을까
誰知先世德垂深 누가 선대(先代)의 덕성(德性)이 깊이 드리움을 알 것인가
昇平時事全安日 태평(太平)의 요즈음의 사회사상(社會思想)이 온전(穩全)히 편안(便安)한 날에
飮啄徒閒永矢今 마시고 먹는 것이 한가(閑暇)하니 영구(永久)토록 지금(至今)과 같으리
주)1)원림(園林) : 집터에 딸린 수풀
낙좌(洛左)
暮驛城南舊雨尋 저무는 성(城)의 남(南)에 옛 친구(親舊)를 찾아
淸閒疑是放山林 맑고 한가(閑暇)함으로 아마도 이 산림(山林)을 찾았는가
元非好酒新知面 원래(元來) 술을 좋아함이 아니라 만나서 서로 알아보니 새로워
始見其人久許心 비로소 그 사람이 오래도록 마음을 터놓았다
當此何關時勢變 이때를 당(當)해 시세(時勢)가 변(變)하는데 무슨 상관(相關)이냐
自先多頌德陰深 선대로부터 칭송(稱頌)이 많아 조상(祖上)의 덕(德)이 깊어
詩書滿案庭園闊 시서(詩書)가 책상(冊床)에 가득하고 정원(庭園)은 넓은데
不錯淳風古若今 인정(人情)이 두터운 풍속(風俗)을 어기지 않아 예날도 지금(至今)같네
주정(住亭)
鷰作當時舊雨尋 제비가 당시(當時)에 지을 때 옛 벗이 찾아와
十旬無事逗城林 십순(十旬:백일)을 성(城)밖의 산림(山林)에 머물렀네
枯腸三夏能酬酢 여름의 석달에 마른 창자는 능(能)히 술을 서로 권(勸)하며
莊釰十年始見心 장일(莊釰) 십년(十年)에 비로소 마음을 볼레라
蟬唱桐園金氣動 매미가 오동나무 동산에서 노래하니 가을의 소리를 움직이고
鴉鳴匏屋午烟深 까마귀는 박이 열린 지붕에서 우니 낮 연기(煙氣)가 깊구나
爲君莫恨離先業 그대가 전생(前生)에 지은 업인(業因)을 떠났다고 한(恨)하지 마라
舊日門楣不逮今 옛날의 문미(門楣)가 지금(至今)에 미칠 수 없구나
서계(西溪)
相逢講義每頻尋 상봉(相逢)해 의리(義理)로 강론(講論)하면서 항상 그 모양으로 자주 찾아
十世同隣密似林 십세(十世)를 함께 이웃하니 친밀(親密)하기가 술과도 같아
四匝喧塵知是驛 사방(四方)에 더러운 세상(世上)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말소리가 들려 이곳이 역(驛)임을 알고
一堂淸話覺歡心 한 당(堂)의 정(情)다운 이야기에 환심(歡心)을 깨달을레라
凝雲艸色風前偃 구름에 엉킨 풀빛이 바람 앞에 굽히고
白日蟬聲柳色深 한낮에 매미소리와 버들의 빛도 깊구나
詩仙壓座佳醪足 시선(詩仙)들이 좌석(座席)에 앉았으니 아름다운 술도 풍족(豊足)해서
不事它時更願今 다른 때를 말하지 않고 다시 지금(至今)을 원(願)하노라
만사(晩沙)
新寮要約揆炎尋 새로운 같은 벼슬과 약속(約束)을 요(要)해서 더운 기(氣)를 떨치려 찾으니
匏院花階便作林 박이 열린 원(院)의 화단(花壇)에는 문득 숲이 되었네
逸驥昏衢難聘志 좋은 말을 타고 어두운 거리에서 뜻을 맞이하기 어렵고
晩蟬高樹寓凉心 늦게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우니 서늘한 마음을 부치리
基因積厚方知固 기본(基本)이 후(厚)하게 쌓였으니 바야흐로 견고(堅固)함을 알고
計在莊修儘遠深 계획(計劃)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고 그 학문(學文)을 하는 곳에 있으니 모두 깊고도 먼일일세
皓首奎仙懷百歲 흰머리에 규성(奎星)1)의 신선(神仙)이 백세(百歲)를 생각하고
願將裕古覺非今 원컨대 장차(將次) 옛일에 넉넉하고 지금(至今)에 그릇됨을 깨달았네
주)1)규성(奎星) : 문장(文章)의 별. 수(壽)하는 별
우산(又山)
襟珮東西邂逅尋 금패(襟珮)1)가 동서(東西)에서 오래만에 우연히 찾아
豊城新屋好園林 풍산(豊山)에 새로운 집의 좋은 집터에 딸린 수풀에
庭幽穩作烟霞氣 뜰은 그윽하고 온전(穩全)하게 연기(煙氣)와 노을의 기(氣)가 끼였는데
席暖忽生太古心 자리는 따뜻한데 홀연(忽然)히 태고(太古)의 마음이 생겼도다
高樹蟬聲秋氣到 높은 나무에 매미소리는 가을의 기(氣)가 이르르고
短籬鷄唱午占深 짧은 울타리에 닭이 부르니 점심때도 깊었구나
休云缺界玆遊俗 불평(不評)이 많은 세월(歲月)에 이 모임이 속(俗)되다고 이르지마라
憶昔蘭亭亦似今 예전 난정(蘭亭)2)을 생각하면 또한 지금(至今)과도 같았어라
주)1)금패(襟珮) : 가슴에 품고 있는 소회(所懷)가 같은 사람
2)난정(蘭亭) : 진(晋)나라 왕일소(王逸少)가 지은 난정기(蘭亭記)의 내용(內容)을 보면 알 수 있다
소능(小陵)
倦逐仙笻驛上尋 게으른 것이 신선(神仙)의 지팡이를 쫓아 역상(驛上)을 찾으니
居然便作一芸林 그 모양 그대로 문득 한 예림(藝林)1)을 지었네
誰知此日淸筵足 누가 이날이 맑은 자리의 만족(滿足)함을 알고
尤切先天舊友心 선천(先天)의 옛 친구(親舊)들의 마음이 더욱 간절(懇切)하구나
莫喚詩情相從久 시(詩)를 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부르지 말고 오래 상종(相從)해라
頻聞時事自省深 자주 요즈음의 사회사상(社會思想)을 들으며 스스로 저를 되살펴봄을 깊이 하네
南雲東月俱關戀 남(南)쪽의 구름, 동(東)쪽에 달 모두가 연모(戀慕)에 관계(關係)되는 일이고
白首逢場感古今 흰머리에 서로 만나는 자리는 옛날과 지금(至今)의 감회(感懷)일세
주)1)예림(藝林) : 향기(香氣)가 나는 숲. 즉(卽) 문장(文章)들의 사림(士林)도 됨
운택(雲澤)
驛上書樓靜裏尋 역상(驛上)에 서적(書籍)의 누(樓)는 고요한 곳을 찾아
一園花木自成林 한 동산에 꽃나무는 스스로 숲을 이루었네
東山倦屐知君趣 동산(東山)에 게으른 걸음은 그대의 취미(趣味)로 알 것 같고
北海崇樽快我心 북해(北海)1)의 높은 술 단지에 내 마음에 상쾌(爽快)하구나
已悟靑雲浮夢遠 이미 청운(靑雲)2)을 깨우쳤으나 뜨인 꿈은 멀어지고
誰除白髮着根深 누가 백발(白髮)의 뿌리내림이 깊음을 덜어줄고
盈虛消息宜循理 달이 차고지는 소식(消息)은 순리(循理)가 마땅하고
休道興衰異古今 일어나고 쇠(衰)함을 말하지 마라 옛날과 지금(至今)이 다르니라
주)1)북해(北海) : 이름은 공북해(孔北海)이며 중국(中國)에 이름난 애주가(愛酒家)
2)청운(靑雲) : 푸른 구름. 높은 이상(理想)이나 벼슬을 가르키는 말
기원(杞園)
赴速如期異昔尋 정(定)한 날과 같이 부름에 가는 것도 예전과 달리 찾아
圍圓一會好園林 빙 둘러앉은 한 모임은 집터에 딸린 수풀을 좋아하고
幽花數朶明樓面 그윽한 꽃은 밝은 누(樓)의 면(面)에 두어 개 늘어졌고
碧樹雙扉適澗心 푸른 나무가 도랑 가운데 알맞게 쌍(雙)으로 삽짝일세
桑土已成陰雨滿 상토(桑土)1)로 이미 이루어 몹시 흐리고 계속 비가 내려 가득하더라도
○鄕回望水雲深 ○鄕 도라서 바라보니 흐르는 물과 구름이 깊구나
三幃篤友君家事 삼형제(三兄弟) 독실(篤實)한 우애(友愛)는 그대의 집에 일이고
此日居然感古今 이날에 그 모양 그대로 옛날과 지금(至今)의 감회(感懷)일세
주)1)상토(桑土) : 상토주무(桑土綢繆)에서 나온 말로 비가 오기전에 새가 뽕나무 뿌리로 새집의 구멍을 막아서 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사전에 환난(患難)을 방지하는 비유
서산(曙山)
此世玆筵不易尋 이 세상(世上) 이 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어
滿堂遺逸宛山林 집안에 가득하신 훌륭한 사람은 완연(宛然)한 산림(山林)1)일세
○可候詩留礎上 ○可候詩 주춧돌 위에 마음을 두고
雲何靳雨逗天心 구름은 어찌하여 비를 아끼고 하늘 복판을 머뭇거리는고
虛磨圍器藍田遠
眞訪人才渭水深 참으로 인재(人才)를 찾아 위수(渭水)2)는 깊었도다
古里蒼桑次莫恨 옛 마을이 상전벽해(桑田碧海)하다고 다음에 한(恨)하지 마라
靑氈舊業潤於今 청전(靑氈)3)의 예부터의 사업(事業)이 지금(至今)보다는 윤택(潤澤)했으리
주)1)산림(山林) :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학덕(學德)이 높은 선비를 말함
2)위수(渭水) : 협서성(陜西省)을 거쳐 황해(黃海)로 흐르는 강(江)
3)청전(靑氈) : 푸른 방석. 선조(先祖)때부터 내려오는 가규(家規)
소운(小雲)
名園留約趁相尋 유명(有名)한 동산에 약속(約束)을 두고 진작에 서로 찾아
馬首鳩聲是午林 말머리에 비둘기소리 이는 오림(午林)일세
江外奇峰勞遠自 강(江)밖에 이상한 형태(形態)의 산(山)은 먼 눈으로 노력(勞力)하고
座邊靑艸冒前心 앉은 옆에 푸른 풀은 앞에 마음을 무릅쓰네
盡收煙景奚囊滿 안개를 다 거두어들인들 어찌 주머니에 찰까
輸得朋情野酌深 친구(親舊)의 정(情)이 깊음을 가져와서 들에서 잔(盞)질을 할까
古閣淸風忘署熱 옛집의 맑은 바람은 더위와 열(熱)을 잊어버리고
願令仙分每如今 하여금 신선(神仙)의 연분(緣分)인가 항상 그 모양으로 지금(至今) 같기를 원(願)하나이다
백농(白儂)
祝屋貽謨轉此尋
移杌封竹勝山林
莫言畵閣多新妙
惟喜書箱保古心
戚氏款情刀○飽
雲翁文格沽樽深
修成一筆將傳久 한번 운필(運筆)1)해서 닦아 이루어 장차(將次) 오래 전(傳)하고자
從古英雄不異今 예로부터 영웅(英雄)이 지금(至今)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1)운필(運筆) :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놀림
후송(後松)
來同詞伯硯同尋 올 때 함께 온 사백(詞伯)1)이 벼루도 같이 찾아
吟外爭喧鳥沒林 읊는 외(外)에 시끄럽게 다투는 새는 숲 속에 숨네
天末悽雲牽野色 하늘 끝 돌아가는 구름이 들의 경치(景致)를 이끌어
枕邊流水洗塵心 베개머리에 흐르는 물은 더러운 세상(世上)의 마음을 씻었도다
憐吾病木警秋早 애달구나 나는 병(病)든 나무에 일찍은 가을을 경계(警戒)하고
恨彼鱞魚悶夜深 한(恨)스럽게 저 잠자는 고기는 야심(夜深)함을 민망히 여기누나
不意斯家歡笑日 뜻하지 아니한 이 집의 기쁘게 웃는 날에
方知安樂亦如今 바야흐로 안락(安樂)함을 알기를 또한 지금(至今) 같구나
주)1)사백(詞伯) : 시문예(詩文藝)에 뛰어남 사람. 시문(詩文)의 대가(大家)
추산(錘山)
維歲次甲子七月壬子朔二十九日庚辰豊北面長宋洛九
謹齌沐百拜敢告于
皇天后土之神天覆地載至靈有 神降升二氣施雨
行雲粤在高辛赤松爲師察世治亂降世旱雨如
何湯德有旱七年責以六事非禱是難何怨于
天尤實在人今天久旱大地爲災不幸無似身爲
面表自顧誠淺俯怍仰愧所以 神怒不念艱
辛旱魃爲虐我心如熏乃謀民衆特薦烝嘗
有尊有豆酤淸飶香簡此吉辰憚誠百拜蠢
蠢民衆不識自過較其不識天若不佑賴誰而食
賴誰而衣理無盡劉天必有悔天鑒孔昭特垂
恩慈鞭其雷公呵其電母須臾千里降雨滂沱農
夫拆官吏相賀憂者以樂病者以蘇不獨人幸
神亦有光 神其有靈請此申請 尙
饗
황천(皇天)에 토지(土地)의 신(神)은 하늘이 덮고 있고 땅이 싣고 있는데 지극(至極)히 신령(神靈)한 신(神)이 있도다. 음양(陰陽)의 기운(氣運)이 오르내리는 곳에 구름이 다니고 비로 베푸나니 저 예전 고신씨(高辛氏)때에 적송자(赤松子:옛날 신선)가 스승이 되어 말과 다스림과 난리(亂離)를 살펴서 세상(世上)이 가물기도 하고 비도 내리셨다. 어떠함 같아서 양(陽)의 덕(德)으로 칠년(七年)이나 큰 가뭄이 있었도다. 육사(六事)1)로서 책(責)했으며 빌지 아니하고 이는 어려워 어찌 하늘을 원망(怨望)하리. 허물은 실상(實狀) 사람에게 있나니 지금(至今) 하늘이 오래도록 가물어서 대지(大地)에 재앙(災殃)이 되었오이다. 불행(不幸)하게도 같을 수 없는 것이 자신(自身)의 면내(面內)의 대표(代表)가 되어 스스로 돌아보면 얕은 성의(誠意)로 내려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럽고 부끄럽사옵니다. 벌써 신(神)께서 성이 나시어 괴로움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한발(旱魃)이 모질게 되어 내 마음은 훈증(薰蒸)하는 듯 하고 이에 민중(民衆)들과 모의(謀議)를 하고 특(特)히 증상(蒸嘗)2)을 올리고자 합니다. 술 단지와 그릇이 있어서 맑은 술과 구수한 향기(香氣)로서 이 좋은 때를 가려서 성심(誠心)을 다해서 백배(百拜)를 하며 아무 것도 모르는 민중(民衆)들이 자기(自己)의 과실(過失)을 알지 못하고 그의 무식(無識)함을 비교(比較)해서 따지지 아니하고 하늘이 만약 도와주지 아니하면 누구를 의뢰(依賴)해서 밥을 먹으며 누구를 의뢰(依賴)해서 옷을 입을까. 이치(理致)에 다 죽일 수는 없사오니 하느님도 반드시 후회(後悔)하시리 하늘이 내려보시기를 매우 밝게 하사 특별(特別)히 은혜(恩惠)와 자애(慈愛)로운 정(情)을 내리시어 뇌공(雷公)을 채찍질하시고 전모(電母)를 꾸짖으시어 잠시동안 삼천리(三千里)에 비를 죽죽 내리시어 농부(農夫)들은 서로 손뼉을 치며 관리(官吏)들은 서로 축하(祝賀)를 하며 근심스러운 자(者)는 즐겁게 병(病)든 자(者)는 살았다는 듯이 홀로 사람만이 다행(多幸)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께도 또한 빛이 있으리니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께서는 혼(魂)이 있으시면 이 청(請)을 거듭거듭 청(請)하나이다
주)1)육사(六事) ; 자애(自愛), 검소(儉素), 근검(勤儉), 신중(愼重), 성의(誠意), 명변(明辨)
2)증상(蒸嘗) : 신명(神明)에게 드리는 제사(祭祀)를 올리는 것
3)뇌공(雷公) ; 천둥을 맡은 신(神)
4)전공(電公) : 번개를 일으키는 신(神)
維歲次己巳五月癸未朔十三日乙未豊北面長延安宋洛九
謹以酒腥果品謹齌沐百拜懇禱于
中臺巖山神之靈曰山川之有 神代天工而置萬物故凡
民有急禱而必應此 神明之所爲職人世之所共尊也
嗚乎生民塗炭至去歲已極矣饑餓者未蘇呻吟者未
起已今玆之旱胡又此厲春夏慳澤百穀俱焦忍見龜
坼之田疇秧無及耳顧念黎庶之魚喁食惟艱哉下土微臣
猥忝一面之長誠愚魯怠事不克奉承厥職罔知獲戾
于山川鬼神以至此咎沴然如我不宥何辜于民將使一方生
靈相率而塡溝壑則 神人感通之理絶矣天地生物之心
息矣玆敢齌肅潔蠲俯伏聽命於 壇墠之下伏惟
明靈歐逐風伯激惠龍師興雲作雨五日一降霈然千里洽此
四郊迓積再甦之民命毋至山川失職之 神羞焉 尙
饗
산천(山川)에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이 있는 것은 천공(天工)1)을 대신(代身)하면서 만물(萬物)을 번식(繁殖)시키는 고로 모든 백성(百姓)이 급(急)한 일이 있으면 빌면 반드시 감응(感應)하나니 이는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의 직분(職分)이 되는 바요 인간(人間) 세상(世上)에 공존(共存)하는 바이다. 아― 백성(百姓)의 도탄(塗炭)이 지난해에 이르러 이미 극치(極致)에 이르렀다. 주리고 배고픈 자(者) 살 수 없고 신음(呻吟)하는 자(者) 일어나지 못하면서 지금(至今)의 가뭄이 어찌 또 이렇게 모질고 봄여름에 못이 마르고 백곡(百穀)이 모두 타 들어가니 차마 거북이등처럼 터진 밭과 논에 모내기가 미칠 수 없으니 돌이켜 생각하니 뭇 백성(百姓)들은 물고기들이 입을 어물거리듯이 오직 먹기가 어려워하리로다. 하토(下土)의 미약(微弱)한 신(臣)이 외람(猥濫)히 한 면(面)의 장(長)이 되어 진실(眞實)로 어리석고 둔(鈍)해서 일에는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고 그 직(職)을 봉승(奉承)2)해서 어떻게 할지를 알지 못하고 산천(山川) 귀신(鬼神)에게 죄(罪)를 지어 이런 허물에 이르러 해치게 되었으니 나 같은 것을 용서(容恕)하지 아니하면 저 백성(百姓)들이야 무슨 허물이 있을까. 장차(將次) 한 방향(方向)의 백성(百姓)이 서로 거느리고 계곡(溪谷)을 메운즉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과 사람이 마음이 서로 통(通)함의 이치(理致)가 끊어졌다. 천지(天地) 생물(生物)의 마음이 쉬었도다. 이에 감(敢)히 엄숙(嚴肅)히 제계(齊戒)3)하고 제수(祭需)를 깨끗이 차려 부복(俯伏)하고 제단(祭壇)아래서 명령(命令)을 듣자오니 밝으신 신령(神靈)이시여 풍백(風伯)4)을 몰아 쫓고 용왕(龍王)님의 혜택(惠澤)을 돌려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지어 오일(五日)에 한번 내려 천리강산(千里江山)에 비가 쏟아지게 해서 이것이 사교(四郊)5)에 흡족(洽足)히 하여 두 번 살아나는 백성(百姓)의 운명(運命)이 있게 하시며 산천(山川)에 실직(失職)의 신(神)에게도 필요(必要)한데 쓰이게 되나이다
주)1)천공(天工) : 천연적(天然的)인 공예(工藝)
2)봉승(奉承) : 높은 사람의 뜻을 이어받음. 아첨(阿諂)함
3)제계(齊戒) : 신(神)을 제사(祭祀)할 때 심신(心身)을 깨끗하게 하고 음식(飮食)을 가려먹어 부정을 금지(禁止)하는 것 또는 그러한 행위(行爲)
4)풍백(風伯) : 바람을 맡은 신(神)
5)사교(四郊) ; 서울 네 변두리 교외(郊外)
維歲次壬申六月丙寅朔初二日丁卯豊北面長延安
宋洛九謹齊沐百拜敢昭告于
中臺巖山神之靈伏以臺巖作峯峻極于天萬民所瞻一面之
鎭維巖有神禱以斯應與雲致雨夙著化柄自古有年莫非
爾極胡瘨以旱五朔慳澤縱或沾泗如沃焦釜秧坂圻龜部
屋喁魚藝種有時其期已愆以過幾日溝壑黎民哭不虛生責
將誰擔爲面表率有靦其慙若臣有罪罰止玆身何辜于民
能不惻然 靈其冥佑訢天極捄鞭起睡龍擊惠神馬亟降
一霈慰洽三農移笛勃與灌田流漲玄化攸覃受賜孔多千
秋報 祀永賴 神休 尙
饗
중대암(中臺巖) 산신령(山神靈)에게
업드려 생각하건데 중대암(中臺巖)은 봉우리를 지어 하늘에 솟았네. 하늘을 이고 있는 만민들이 보는바 한 면(面)을 진압(鎭壓)하는구나. 오직 중대암(中臺巖)에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이 있어 빌면은 이에 감응(感應)하나니 구름을 일어나고 비를 이루어 夙著化柄 자고(自古)로 풍년(豊年)이 너의 지극(至極)함 아닌 것이 없구나 어인 일로 애타게 가물어 오삭(五朔)이나 되니 아끼듯 못이 비록 혹시(或時)라도 젓고 물품은 듯 하나 가마솥을 태우는 것 같고 모판이 거북이등처럼 갈라져 일방(一方)의 집에서는 입만 우물거리니 종자(種子)를 옮겨 심는데 시기(時期)가 있나니 그 시기(時期) 이미 지내서 몇 일을 지냈습니다. 계곡(溪谷)을 메운 서민(庶民)들이 울면서 헛되게 살지 않으리. 장차(將次) 누구에게 책임(責任)을 지울까. 온 면(面)을 대표(代表)해 이끌어야 하느니 부끄럽고 참회(慙悔)1)됨이 있소이다. 군신(君臣)이 죄(罪)가 있으면 형벌(刑罰)이 이 몸에 미치나니 백성(百姓)이야 무슨 허물일고. 능(能)히 헤아리지 못함이라. 령(靈)께서 몰래 도우셔서 하늘 호소(呼訴)해서 급(急)히 구(求)하시어 잠자는 용왕(龍王)님을 채찍으로 깨우고 신마(神馬)에게 은혜(恩惠)를 구(求)하시어 빨리 비가 쏟아지게 비를 내려서 삼농(三農)2)을 흡족(洽足)하게 위안(慰安)하시면 모를 옮겨 심고 갑자기 성(盛)해져서 물대는 논에 흘러 넘쳐 현묘(玄妙)3)한 감화(感化)가 미쳐서 내려주심이 매우 많아 오래고 긴 세월에 제사(祭祀)로 감사와 영세(永世)토록 하늘과 땅의 신령(神靈)의 도움을 의뢰(依賴)하리라.
주)1)참회 : 부끄러워 뉘우침
2)삼농(三農) : ①평지농(平地農). 산농(山農). 택농(澤農) ②춘경(春耕). 하운(夏耘). 추수(秋收)
3)현묘(玄妙) : 심오(深奧)하고 미묘(微妙)함 또는 도리(道理)
維歲次丙子五月初一日壬申朝鮮國慶尙
北道豊山面長宋洛九謹致一肩
彘一壺酒祈雨鶴駕南中臺山淨
潔處百拜虔告于惟
皇天上帝聽卑于億兆生靈之誠也否
殷有桑梓之雨宋有岐山之雨天無古今之
天雨無同異之雨而前丙子旱魃之酷生灵
飢死者過半今丙子又有雲霓之望而彌
月過旬麥橞枯苦秧苗蕩涸五日不雨則
無麥十日不雨則無禾此何據以云也民以
食爲天君以民爲天民無食焉何以爲天
君無民焉何以爲天也農夫怒而相嗔川溪斷
而不流倚枯槹而灌漑若杯水而奚救雲漢昭
回胡忍至於此境也須臾慰滿三農足朝以望
夕以望去作人間快活年時以冀刻以擬蒸和
液而播雲據邃壑而吐溜起轟雷於焂忽叱臥
龍於潛深傾神淵而倒流沛無涯而滂臨民庶
幾乎有活豈玆惠之敢忘
황천(皇天)의 상제(上帝)께서 낮추어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정성(精誠)을 들으시옵소서 은(殷)나라에 뽕나무 숲에 비가 있었고 송(宋)나라 기산(岐山)의 비가 있었으니 하늘의 옛날과 지금(至今)이 없고 하늘의 비도 같고 다름이 없으면서 앞의 병자(丙子)년에는 또 비가 올 징조(徵兆)의 바람이 있었으나 달이 차고 열흘동안을 지내도록 보리 이삭이 골고 묘판(苗板)이 말라서 오일(五日)을 비가 아니오면 보리가 없고 십일(十日)을 비가 아니오면 벼도 없다는 말이 어디에 근거한 말인고 백성(百姓)은 먹는걸 하늘 같이 여기고 임금님은 백성(百姓)을 하늘처럼 받들어 백성(百姓)이 먹을 것이 없으면 어째서 하늘이 있으며 임금님이 백성(百姓)이 없으면 어째서 하늘이 될까. 농부(農夫)가 서로 성을 내서 나무라며 시내 계곡(溪谷)에 물이 끊어져 흐르지 아니하면 고고(枯橰: 물을 푸는 두레)로서 관개(灌漑)를 의지(依持)하면 한잔의 물로 어찌 은하수(銀河水:하늘)를 비추어 돌게 할가. 어찌 차마 이 지경(地境)에 이르렀는고. 잠시(暫時)동안에 삼농(三農)1)의 만족(滿足)함을 위로(慰勞)하고 아침에 바라보고 저녁에 바라보며 인간(人間)의 쾌활(快活)을 지어 가는 것이 해와 때에 바램이면서 증기(蒸氣)가 액(液)이 되어서 구름을 문득 깊은 골짜기에 의거(依據)해서 토(吐)하며 천둥을 치고 우뢰로 호령하며 잠간의 사이에 누워 있는 용(龍)을 꾸짖어 깊이 잠겨있는 하늘과 땅의 신령의 쏘를 거꾸로 흐르는 듯 하며 끝도 없이 비가 죽죽 내려서 쏟아진다면 백성(百姓)들 아마도 살수 있으리니 어찌 이 같은 은혜(恩惠)를 감(敢)히 잊으리요.
謹賀甘雨 壬申 六月 二日
維我豊北面代表宋兄洛九氏深憂旱熯農政艱難
遂令全面行祈雨之祭晨祭而朝雨天心之感如是神速
寧不祥且奇哉敢玆一言以致頌賀之儀
下民有爲 上帝監臨 纔致人事 卽感天心
晨祭朝注 一犂惠霖 三農慰滿 萬類歡深
廳庭有樹 休憩其陰 敢書賀詩 仰表微忱
근하감우(謹賀甘雨)
오직 우리 풍북면(豊北面) 대표(代表) 송형(宋兄) 낙구씨(洛九氏)가 깊이 가물고 마르는 것을 걱정하사 농정(農政)에 어려움에 많아서 드디어 전면(全面)에 명령(命令)을 내려 기우제(祈雨祭)를 행(行)할세 새벽에 제사(祭祀)하고 아침에 비가 오니 천심(天心)의 감동(感動)이 이와 같이 신속(神速)할 수 있을까. 상서(祥瑞)롭지 아니하며 또한 기이(奇異)한 일이로다. 감(敢)히 이에 할 말씀으로 송하(頌賀)의 의(儀)를 이루노라.
下民有爲 모든 백성(百姓)이 함이 있으면
上帝監臨 상제(上帝)가 내려보시리
纔致人事 겨우 인사(人事)를 이루었는데
卽感天心 곧 천심(天心)은 감동(感動)하셨다
晨祭朝注 새벽에 제사(祭祀)하고 아침에 비 내리니
一犂惠霖 한보자락 은혜(恩惠)로운 비일세
三農慰滿 삼농(三農)을 가득히 위안(慰安)하고
萬類歡深 만(萬)은 인류(人類)깊이 우러러 권(勸)하누나
廳庭有樹 대청(大廳)의 뜰에 나무가 있어
休憩其陰 그 그늘에 휴식(休息)을 하니
敢書賀詩 감(敢)히 하례(賀禮)의 시(詩)를 써서
仰表微忱 우러러 작은 정성(精誠) 표(表)하노라
목산죄생(牧山罪生) 김병현(金炳玹) 근상(謹上)
우리 풍산(豊山)은 길운회복(吉運回復)하야 요행(僥倖)으로 귀좌(貴座)가 막대(莫大)한 면장직(面長職)에 부임(赴任)하신지 일천(日淺)하나 행정(行政) 혜택(惠澤)은 필설(筆舌)로 난기(難記)할뿐 장래(將來)에 우리 복리증진(福利增進)을 기대(期待)하는 중(中)이올시다. 본면(本面)의 제일사업(第一事業)은 중학교(中學校)올시다. 재작년(再昨年) 십일월(十一月)에 면내(面內) 유지(有志) 제씨(諸氏)가 중등학교설립기성회(中等學校設立期成會)를 조직(組織)하고 평소(平素)에 재격(才格)도 박약(薄弱)하고 아무 수완도 없을 뿐 황(况) 칠십(七十) 노물(老物)을 각위분(各位分)의 애호(愛護)로서 중대(重大)한 회장(會長)에 피선(被選)되오니 황감무량(惶感無量)합디다. 그 혜념(惠念)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보답(報答)하기 위(爲)하야 망령(亡靈)실이 출각(出脚)하였습니다. 작년(昨年) 춘하간(春夏間)에 막중(莫重)한 병산서원(屛山書院) 거액(巨額)의 재원(財源)을 황공(惶恐)하게 받고 개인(個人)의 토지(土地) 및 금전(金錢)을 모집(募集)할 때 중인(衆人)의 초방(誚謗)도 불구(不拘)하고 자신상(自身上) 노력(勞力)도 불고(不顧)하고 천신만고(千辛萬苦)로 풍우(風雨)를 무릎쓰고 양해(諒解)를 구(求)하여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작년(昨年) 칠월(七月) 십오일(十五日) 부(付)로 인가(認可)를 얻었습니다. 서곽(暑藿)으로 기지사경(幾至死境)도 수차(數次) 위독(危篤)한 일도 있었습니다. 오교(吾校)의 길운(吉運)이 개척(開拓)되어서 간판(看板)이 뚜렷하고 교수(敎授)가 훌륭한 선생(先生) 오분(五分)을 고빙(考憑)하야 당년(當年) 구월십육일(九月十六日) 금옥(金玉)같은 학생(學生) 백오십명(百五十名)을 금일(今日)까지 무사(無事)히 상학(上學)은 하여 옵니다만 제일중요(第一重要)한 교실건축(敎室建築)을 하여야 할 터인데 본면(本面)의 환경(環境)을 회고(回顧)하면 주야(晝夜)로 헛 심신(心身)만 산란(散亂)하고 한탄(恨歎)하든 차제(此際)에 천우신조(天佑神助)로 귀좌(貴座)께서 건축책임(建築責任)을 승낙(承諾)하시오니 감사(感謝)한 뜻을 어찌 다 표(表)할 수 있습니까. 저는 무사무려(無思無慮)하야 환심(歡心)만 불승(不勝)하나이다. 측문(仄聞)하면 건축예산(建築豫算)이 풍부(豊富)하지 못한 중(中)에 세입(歲入)이 감소(減少)될듯합니다. 금융조합(金融組合) 물자(物資) 가징금(加徵金)은 대부분(大部分)의 예산(豫算)인데 현시(現時)로 보면 일이(一二)원도 수입(收入)될 여망(餘望)이 없고 양조장(釀造場) 수입(收入)도 작년(昨年) 경험(經驗)을 보면 식량문제(食糧問題)로 수입(收入)이 반감(半減)될 우려(憂慮)도 불무(不無)합니다. 지출(支出)을 논지(論之)하면 예산(豫算)에 없는 급료(給料)도 요구(要求)한 듯하니 수입(收入)은 축소(縮小)되고 지출(支出)은 과다(過多)하면 무엇으로 건축(建築)하겠습니까. 금번(今番) 전도(全道) 중학교교장회의석상(中學校校長會議席上)에서 지사(知事)의 훈시(訓示)와 학무국장(學務局長)의 계획(計劃)에 초급(初級)이 고급(高級)에 승격(昇格)할 때는 문과교(文科校)가 삼할(三割)이고 실업교(實業校)가 칠할(七割)이올시다. 그의 방침(方針)은 교사(校舍)가 완비(完備)되고 기타설비(其他設備)가 충분(充分)하여야 승격(昇格)됩니다. 본교(本校) 형편(形便)을 논지(論之)하면 인가당시(認可當時)에 공업(工業)으로 조건(條件)이 되었습니다. 금년(今年)에 할 것은 십이교실(十二校室) 교장사무실(校長事務室) 직원사무실(職員事務室) 숙직실(宿直室) 교장사택(校長私宅) 동서변소(東西便所) 물치창고(物置倉庫) 이것은 건축(建築)해야 됩니다 그 경비(經費)는 계산(計算)하면 국민학교(國民學校)대로 하여도 천이삼백만(千二三百萬)원 가량(可量)은 되어야 합니다. 명년도(明年度)에 할 것은 기계(機械) 기구(機具) 준비(準備) 설치장소(設置場所) 실험지(實驗地) 완비(完備)되어야 합니다. 재명년(再明年) 이학기(二學期)에 고급인가(高級認可)를 얻어야 합니다. 현금(現金)을 수입(收入)이 수만(數萬)원이 된다하나 유력가(有力家) 유순(柔順)한 분(分)이 낸 듯 합니다. 속(速)해도 십개월(十介月)이 걸릴 듯 하니 말래(末來)에는 월수천(月數阡)원에 불과(不過)할듯하니 수입(收入)보다 지출(支出)이 십배이상(十倍以上) 초과(超過)될 듯 하니 귀좌(貴座)의 예산(豫算)는 심정(心定)하였지만은 개산(改算)하여 보시오. 징수원(徵收員)은 상당(相當)한 급료(給料)를 지출(支出)하여야 하겠지만은 기타(其他) 역원(役員)은 유급(有給)이라 하면 사회상(社會上)에도 수치(羞恥)되고 사업수행상(事業遂行上)에도 많은 방해(妨害)가 있습니다. 잘 심양(深諒)하시고 수모수모(誰某誰某) 기개인(幾箇人)이 동(東)에 가면 서(西)의 말을 하고 남(南)에 가면 북(北)의 말을 하야 무단(無端)히 아모 흔극(釁隙)도 없는 이사장(理事長)과 학교측(學校側)을 비방(誹謗)하야 두터운 인정(人情)을 소활(疎闊)하게만 들어서 사업상(事業上)에 방해(妨害)가 되게 하는 자(者) 날 종시(終始) 도모(圖謀)하신다면 결국(結局)은 사업(事業)에 실패(失敗)가 될는지 알지 못하니 저는 참고(叅考)로 진술(陳述)하오니 잘 양해(諒解)하시오. 저는 수왈(雖曰) 견마지세(犬馬之歲)라도 칠십(七十) 노물(老物)입니다. 십육개월(十六介月)을 면인(面人)의 노예(奴隸)로 있었습니다. 기인(幾人)의 야심(惹心)으로 성자(性字)만 있고 명자(名字)는 없었습니다 홀(忽)한대로 하자면 생지사판(生之死辦)하겠습니다 만은 거대(巨大)한 사업(事業)을 전두(前頭)에 두고 사소(些少)한 감정(感情)을 갚으면 사업자(事業者)의 행위(行爲)가 아닌 고(故)로 겨우 평심서기(平心叙氣)하고 퇴교(退校)하였습니다. 지난 이중(二重) 삼중(三重)으로 불쌍한 처지(處地)에만 있습니다. 교장(校長)에 취임(就任)한 사실(事實)은 인가후(認可後) 제일차이사회(第一次理事會)에 각위분(各位分)이 저를 추천(推薦)하였으나 저는 고사(姑捨)이 불락(不諾)하였습니다. 제이차이사회(第二次理事會)에서 재차(再次) 추천(推薦)한 것을 엄숙(嚴肅)히 설립자(設立者) 행위(行爲)로 개교(開校)만 하고 퇴교(退校)하겠다한즉 각위분(各位分)이 없는 학교(學校)가 어디 있으리 부득이(不得已) 반락(半諾)하였습니다. 조지약차(早知若此)언들 개교기일(開校冀日)에 퇴교(退校)하는 것이 원칙(原則)이고 기후(其後) 수차(數次) 역원회(役員會)에 건축문제(建築問題) 토의(討議)할 때 역원(役員)을 유급(有給)으로 하자 저는 무급(無給)으로 하자 이의(異議)가 분등하야 금일(今日)까지 고통(苦痛)을 받고 있습니다. 또는 학교운영상(學校運營上)에 개교(開校) 당일(當日)에 학부형(學父兄)의 기부금(寄附金) 일반학비(一般學費)를 몰수(沒收)하고 등교(登校)시키는 것이 학칙(學則)이나 본지방(本地方)의 처음 되는 사업(事業)으로 사정상(私情上)도 구애(拘碍)되고 학부형측(學父兄側)에서 추곡(秋穀)이 등장(登場)되면 몰수(沒收)가 된다는 요구(要求)가 있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립교(公立校)로 논지(論之)하면 문교부(文敎部)에서 삼사할(三四割)을 보조(補助)하여도 학부형(學父兄) 부담(負擔)을 개교(開校)이래 몰수(沒收)아니하면 상학(上學)을 아니시키는데 황(况) 본교(本校)는 학부형(學父兄)의 원조(援助)로 운영(運營)하는 것은 일반사회(一般社會)가 예지(豫知)한 바올시다. 개교(開校)한지 육개월(六個月)을 경과(經過)하였습니다. 소위(所謂) 공문(公文)으로 육칠차독촉(六七次督促)하고 애걸(哀乞)하는 사정(事情)으로 편지(片紙)도 올렸고 축호(逐戶) 방문(訪問)도 하였습니다. 저는 학생(學生)의 교수(敎授)를 촌음시간(寸陰時間)을 아껴서 교과서(敎科書) 학용품(學用品)을 대차매수(貸借買受)하야 배부(配付)하여도 지금까지 반수(半數)가 회수(回收)치 못하니 금옥(金玉)같은 자기(自己) 자제(子弟)를 무엇으로 가르치고 어떠한 학부형(學父兄)은 자기(自己)의 의무(義務)를 불고(不顧)하고 외부(外部)에 병산중학(屛山中學) 안된다는 선전(宣傳)에 방해(妨害)도 적지 아니하고 저는 주야(晝夜)로 고통(苦痛)하여도 임의(任意)로 되지 못하여 부득이(不得已) 퇴직(退職)합니다. 박약(薄弱)한 예산(豫算)에 물가(物價)는 나날이 고등(高騰)하야 태반(太半)이나 부족(不足)될 듯 하니 누가 부담(負擔)하겠습니까. 참고(叅考)로 드릴 것은 지류대가(紙類代價) 삼배(三倍)나 초과(超過)되고 대구(大邱) 남일묵판제작소(南一墨板製作所)에 묵판삼개(墨板三箇)를 작년십이월(昨年十二月)에 팔천(八阡)원에 주문(注文)하였더니 재료(材料)가 급등(急騰)하다 하여 일만사천(一萬四阡)원이라 하고 대구(大邱) 모정씨가(某鄭氏家)에 팔천(八阡)원의 논가(論價)하든 풍금(風琴)을 일만삼천(一萬三阡)원에도 승낙(承諾)아니합니다. 또 사정(事情)이 절박(切迫)한 것은 완전한 공직장(公職場)에 근무(勤務)하시든 분을 모르고 이신설교(以新設校)로 고빙(考憑)할 때 저의 생각에는 거게다 농촌자제(農村子弟)라 쌀말씩 무난(無難)할 그걸 알고 생활보장(生活保障)이나 하여주마 조건(條件)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여의(與意)하게 되지 못하니 무슨 안면(顔面)으로 대(對)할고. 여러 가지로 구애(拘碍)되어서면 여달 소위(所謂) 공문(公文)으로 학비(學費)를 완료(完了)치 아니하면 등교(登校)시키기 둘 형편(形便)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정학(停學) 퇴학(退學) 처분(處分)이 아닙니다. 오해(誤解)하시고 여론(輿論)도 있는 듯 하니 참가히 원통(冤痛)합니다. 자기(自己) 자제(子弟)를 남에게 너무 과망(過望)합니다. 저도 책임(責任)은 중(重)한 줄로 알았습니다, 존좌(尊座)도 문지(聞知)하였을 줄로 압니다 만은 지방(地方)에 저의 불만(不滿)한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학생(學生) 데리고 사회운동(社會運動)도 아니하였고 금전(金錢) 횡령(橫領)도 아니하였습니다. 사리세계(私利世界)에 저는 의무적(義務的)으로 한서(寒暑)를 불구(不拘)하고 과(過)히 노력(勞力)한 죄(罪)밖에 없습니다. 서량(恕諒)하시고 귀좌(貴座)가 공무(公務)에 분망(紛忙)하신 중(中)이라도 학교(學校)를 잘 원조(援助)하시와 교직원(敎職員)은 안심(安心) 교수(敎授)하도록 하시고 학생(學生)을 온건(穩健) 수업(受業)하도록 지도(指導)하시기를 앙망(仰望)하나이다. 저는 비록 퇴직(退職)은 하였지만은 잠시(暫時)라도 학교(學校)의 걱정을 잊을 수 없나이다. 단문졸필(短文拙筆)로 눈물을 흘리면서 진술(陳述)하나이다. 일반사회(一般社會)에 회람(回覽)은 시키시오
단기(檀紀) 사이팔일년(四二八一年) 이월(二月) 일(日)
송낙구(宋洛九) 백(白)
弔 辭(조 사)
大數(대수) 至(지)함을 따라 物(물)이 終(종)을 定(정)하는 것이라.
人類(인류)의 社會(사회)를 한번 檢閱(검열)하여본다면 百年(백년)이 못되는 짤막한 동안에 모두가 거의 空來空往(공래공왕)하여 아무보람이 없이 消滅(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萬一(만일) 이러한 가운데 能(능)히 自我(자아) 發揮(발휘)하여 그 功績(공적)이 大衆(대중)에게 미칠 바가 있다면 그야말로 偉大(위대)한 人物(인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只今(지금)에 우리가 울어보내는 故(고) 晩儂(만농) 宋洛九先生(송낙구선생)은 우리 豊山(풍산)에 다시 말하면 우리 敎育界(교육계)의 巨星(거성)이시며 先驅(선구)이시다. 그의 發軔初步(발인초보)인 五陵講習會會長(오능강습회회장), 豊北私立學校校長(오능강습회회장) 名義(명의)를 걸머지시고 어두운 밤과 같은 우리 民族(민족)의 前途(전도)를 引導(인도)하여 急進的(급진적)으로 나오시든 그 날의 그 惡戰苦鬪(악전고투)와 勞心焦思(노심초사)가 어떤 境遇(경우)에 이름에도 不拘(불구)하시고 그 後身인 豊北國民學校(풍북국민학교) 後援會長(후원회장)에 歷任하여 三十餘星霜을 한결같이 勤續(근속)하셨으며 變遷(변천)의 바퀴가 휩쓸려 돌아가며 山河異昔(산하이석)의 느낌을 나타내는 오늘에 이르러, 老衰(노쇠)하시오나 勇力(용력)을 더욱 奮發(분발)하기사, 우리 屛山中學(병산중학)을 誕生(탄생)케 하셨다. 設立期成會長(설립기성회장)으로부터 初代校長(초대교장)에 在任(재임)하시기까지 不眠不休(불면불휴)의 努力(노력)을 加(가)하여 조그마한 豊山(豊山)에 中學看板(중학간판)이 소리치고 오르게 된 것은 정말 不可思議(불가사의)의 問題이오며, 더욱이 本面內(본면내) 三個(삼개) 國民學校(국민학교)에서 年復年累(년복년누) 數百名(수백명)에 達(달)하는 卒業生(졸업생)이 갈곳이 있게됨은 참으로 先生(선생)님의 힘이 아니라 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 職員(직원) 學生(학생) 및 一般學父兄(일반학부형)이 사람마다 깊이 깊이 가슴에 새여 잊지 못할 것이 先生(선생)님의 功績(공적)이며, 멀리 國家(국가)를 爲(위)하여 多數(다수)한 礎石(초석)이 養成(양성)되는 만큼 燦爛(찬란)한 歷史(역사)가 先生(선생)님을 企待(기대)하도다.
嗚呼(오호) 先生(선생)이시여, 生(생)의 자취를 남기시고 가시는 先生(선생)을 싫어함보다 우리는 우리 學校(학교)를 爲(위)하여 우리 國家(국가)를 爲(위)하여 先生(선생)을 우는 바입니다. 아니 逌然(유연)히 가시는 先生(선생)님의 靈(영)도 亦是(역시) 우리 學校(학교)를 永遠(영원)히 잊으시지 못하실 줄 믿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움켜쥐고 先生(선생)님 靈前(영전)에 慟哭(통곡)하는 우리의 心境(심경)을 諒察(양찰)하시와 변변치 못한 글월이나마 洋洋(양양)히 降鑑(항감)하옵소서. 於乎痛哉(어호통재).
단기 4285년 1월 3일(서기 1952년1월3일)
屛山中學校職員一同(병산중학교직원일동)
슬프다 先生(선생)의 永逝(영서)하심이여 豊山(풍산)의 歷史(역사)요 豊山(풍산)의 일이니 만치 머리를 모으고 精神(정신)을 가다듬어 故(고) 晩儂先生(만농선생)의 永訣式場(영결식장)에서 한마디 弔辭(조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일찍부터 先生(선생)은 豊山(풍산)을 代表(대표)하여 샛별같이도 一般(일반)의 精神(정신)과 意導(의도)를 綜合(종합)하여 왔으며 政治(정치), 經濟(경제), 文化諸般事(문화제반사)를 質(질)과 量(양)으로 指導鞭撻下(지도편달하)에서 지나왔습니다. 그러다가 遽然(거연)이 先生(선생)의 永逝(영서)하심은 比(비)컨데 沈沈漆夜(침침칠야) 앞을 밝히든 燈燭(등촉)이 꺼진 듯 襁褓乳兒(강보유아)로서 젖떨어진 暗澹(암담)한 감이 不無(불무)합니다. 先生(선생)님이시여 80高齡(고령)이 얕다고 보잖으며 屢屢(누누)이 쌓은 累積(누적) 적다고 思惟(사유)치 않습니다. 저희 어린 가슴과 遠火(원화)한 慾望(욕망)은 오로지 國家(국가) 이 民族(민족)의 完全平和(완전평화)로 자리잡힘의 確固(확고)한 信念(신념)의 갖고 鬪爭(투쟁)하여 오던 오늘에 있어서 저희 어린 가슴엔 커다란 波紋(파문)을 받게 됩니다. 先生(선생)님이시여 이번 걸음이 마지막이고 同時(동시)에 반드시 끼치신 付託(부탁)이 계셨을 줄 思惟(사유)하옵나이다. 血氣旺盛(혈기왕성)한 저희 大韓靑年團豊山面團部(대한청년단풍산면단부)라는 重且大(중차대)한 看板(간판)을 어깨에 매고 勇往邁進(용왕매진)하는 次第(차제)에 一條(일조)의 커다란 烽火(봉화)를 물려주셔서 더 勇敢(용감)하고 또 더 知慧(지혜)롭게 鬪爭(투쟁)할 수 있는 秘力(비력)을 저희들 귀에 暗示(암시)해주셔서 肉體(육체)는 비록 이로서 나누나 精神(정신)과 熱(열)은 永遠(영원)히 連絡(연락)할 줄 깊이깊이 盟約(맹약)하는 바이올시다. 成功(성공)의 날이 언제이며 成功(성공)의 彼岸(피안)이 어디에든 先生(선생)님이시여 過去(과거)를 回顧(회고)하오면 지긋지긋한 日帝(일제)의 魔手(마수)에서 우리 大韓(대한)의 名目(명목)과 疆土(강토)가 없어지고 심지어 大韓(대한)의 子弟(자제)까지 犧牲(희생)을 當(당)하던 次第(차제)에 電光石火格(전광석화격)으로 解放(해방)의 曙光(서광)이 뻣히네. 오로지 倍達(배달)의 精神(정신)만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어 기쁨이 넘치는 가슴을 바야흐로 鎭定(진정)키도 前에 3千里(천리) 片土(편토)에서 38線(선)이 웬일이며 3千萬(千萬) 小數(소수)에서 思想病(사상병)이 웬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 靑年團(청년단)은 이에서 總蹶起(총궐기)하여 38線(선)을 뿌개고 이 思想病者(사상병자)를 무찔러버려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難關(난관)를 突破(돌파)하고 處理(처리)못한 오늘에 先生(선생)님의 永逝(영서)하신 일이 至極(지극)히도 怨痛(원통)합니다. 嗚呼痛哉(오호통재). 嗚呼痛哉(오호통재). 어이 이다지도 가실 길을 재촉하십니까. 많은 事業(사업)가 많은 功績(공적)을 이루시다가 좋을 結果(결과)를 보이기도 例外漸漸(예외점점) 나팔 格(격)으로 巨大(거대)한 怪事(괴사)가 나타남에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가십니까. 그러나 先生(선생)님이시여 年老(연로)해서 疲困(피곤)하시니 쉬시고 平安(평안)히 잠드소서. 우리 大韓(대한)의 아이 이 豊山(풍산)의 아이들이 무쇠 骨格(골격) 돌 筋肉(근육)을 갖고 先生(선생)님의 未盡事業(미진사업)를 繼承(계승)하여 難關(난관)를 突破(돌파)하고 白頭山(백두산) 第一峯(제일봉)에 太極旗(태극기) 휘날리고 이 倍達(배달)의 터田(전)을 永遠(영원)히 굳게 하고야 말겠습니다. 故(고) 晩儂先生(만농선생) 靈位(영위)앞.
檀紀(단기) 4285年 1月 3日 大韓靑年團(대한청년단) 豊山面團部(풍산면단부)
嗚呼(오호)라 先生(선생)님은 가셨도다. 永遠(영원)히 오지 못할 곳을 향해 떠나셨도다. 先生(선생)님을 여의고 슬퍼하는 우리들을 그대로 남겨 두신 채 다시 못 올 길을 밟으셨도다. 先生(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던들 오늘의 슬픔이 이다지도 크지는 않았을거늘 아 슬프다. 하늘이 울고 땅이 痛哭(통곡)하는 마당이여 남아있는 우리들을 어이하라고 두고 가셨는고. 선생님의 어지신 손에 穀倉豊四(곡창풍사)를 잡으시던 그때 豊四(풍사)를 꽃피고 그 香氣(향기)가 넘치건만 그 열매를 마저 보지 못한 채 先生(선생)님의 눈은 감으셨도다. 아 永永(영영)감으셨도다. 슬프다 先生(선생)님은 왜 우리를 남겨두고 그대로 가시려는고. 아직도 赤子(적자)같은 豊四(풍사)를 버리시고 왜 그다지도 冷情(냉정)히 가시려는고. 嗚呼(오호) 晩儂先生(만농선생)의 逝去(서거)하심이여. 榮光(영광)의 길을 가신 先生(선생)에게야 무슨 餘恨(여한)이 있으리요 마는 아직 塵土(진토)에 남아있는 우리는 슬프도다. 天理公道(천리공도)를 피할 자 없어 賢人聖者(현인성자)며 偉人烈士(위인열사)가 다 가신길이라고 先生(선생)도 이제 가시려나이까. 嗚呼(오호) 잘가셨도다. 苦海(고해)같은 塵土(진토)를 떠나시기를 잘하셨도다. 最後(최후)에 瞬間(순간)까지 正義(정의)를 爲(위)하시다가 떠나가신 先生(선생)에게는 하늘에서 받으실 그 償(상)이 分明(분명)히 크시도다. 燦爛(찬란)하다. 先生(선생)이 世上(세상)에서 걸어가신 그 자취여 四十年(사십년) 公職生活(공직생활)에 風風雨雨(풍풍우우) 오로지 育英事業(육영사업)을 爲(위)하여 盡力(진력)하시며 國民基礎(국민기초)를 닦아주시기 爲(위)하여는 豊北(풍북)에다 집을 지으셨고 國家(국가)의 干城(간성)과 中堅(중견)을 기르시기 위하여서는 西厓先生(서애선생)의 거룩한 遺志(유지)를 받들어 屛山(병산)에다 學院(학원)을 지으셨도다. 보라. 六百(육백)의 健兒(건아) 여기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것을 先生(선생)의 功績(공적)이 어찌 여기서 그치리요. 面民(면민)의 安寧(안녕)과 發展(발전)을 爲(위)하여서는 몸소 面民(면민)을 이끄시고 水利(수리)와 河川(하천) 그리고 穀倉豊山(곡창풍산)을 더한층 기름지게 하셨도다. 人類(인류)를 위한 博愛(박애)가 아닐까 先生이 豊四(풍사)를 爲(위)하여 晝夜(주야)로 勞心焦思(노심초사)하시든 그 偉大(위대)한 功績(공적)이여 面民(면민)의 罔極(망극)한 恩德(은덕)이며 無量(無量)한 惠澤(혜택)이로다. 비록 先生(선생)의 몸은 가셨으나 高潔(고결)하신 恩德(은덕)과 崇高(숭고)하신 精神(정신)은 永遠(영원)히 남아있으려니 남겨두신 그 자취 그 功績(공적)은 千秋萬代(천추만대)까지 길이길이 빛나리로다. 先生(선생)이 잠드신 三朴山(삼박산)이여. 三朴山(삼박산) 높이 있고 洛東江(낙동강)흘러서라. 白雪(백설)이 滿乾坤(만건곤)한데 蒼松(창송)이 또한 푸르렀도다. 거기서 永遠히 지키시는 이 豊四(풍사)가 榮華(영화)롭고 빛날 것이여 永遠(영원)까지 하리로다. 嗚呼(오호)라. 이제 先生(선생)의 靈前(영전)에 무슨 말을 드리리요. 다만 先生(선생)의 冥福(명복)을 빌며 고이 잠드시기를 빌 뿐 先生(선생)이 남겨두신 事業(사업)은 우리가 짊어지고 그 거룩하신 遺志(유지)를 받들어 精誠(정성)을 다할 것을 고이 잠드신 先生(선생)의 靈前(영전)에 盟誓(맹서)하면서 이것으로 그치려 하나이다.
辛卯年 十二月 初七日(신묘년 십이월 초칠일)
大韓國民會(대한국민회) 豊山面支部(풍산면지부)
반만년의 역사 중 한국의 오백년은 허무산세월중에서 몽롱히 지나왔음이라. 특히도 삼천만의 동포 중 일천오백만의 여자사회는 더 말할 것 없는 중에 허무한 역사를 지었읍니다. 오로지 만년의 일한합병이후 더구나 몰락된 사회 중에서 근본정신까지 일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시호 광명의 벗은 세계를 순환하매 동아의 한국조차 일대광명은 왔읍니다. 남녀동등의 일대서광이라. 이야말로 우리 부녀계의 고막을 울리매 비로소 우리 풍산사회에도 대한부인회의 존재가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풍산면 36구 면민일동이 이 좌석에 참석한 가운데 만농 송선생의 영결식에 제하여 우리 부인회 대표로 선생의 영영을 조상하는 마당에 한마디의 조사를 드리게 된 것은 황송하옵기 짝이 없습니다. 선생은 일찍부터 정신적 생활 중 가장 우리 풍산면민을 뜻깊이 생각하사 제반사업에 열중하시던 역사를 저희들이 다 피력할수 없거니와 우선 최근에 하신 사업으로 논하오면 최초 아동교육에의 서광으로 출현하셔서 일면 삼교계의 위대한 공적을 이루시고 면사무소를 신축하여 남북하천제방공사로서 갑술 병자 수해구호대책 등 제반사업은 이로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일면지부모로서 면민의 일반상태를 이처럼 애휼하실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춘추가 높으셔서 이다지도 졸지에 세상을 떠나심에 편달이 없던 우리 사회인인사로서 비통한 말삼이야 이로 다할 수 없거니와 남은 허다한 사업은 다 뉘에게 위임하시며 특히 이 시국 사변대책은 어이 처변하시겠습니까. 답답한 사정하소연할 길 없사와 영순앞에 남아 일장조사를 드리옵나이다. 영자영손 빛나오니 유유한 황천길에 평안히 잠드소서.
단기 4285년 1월 3일
대한부인회풍산면지부
維歲次(유세차) 壬辰(임진) 正月(정월) 初三日(초삼일) 門下生(문하생) 一同(일동)은 告(고) 晩儂先生(만농선생) 靈前(영전)에 삼가 아뢰옵노니 人生(인생)은 無常(무상)하와 先生(선생)님이 逝去(서거)하셨다하는 悲報(비보)를 接(접)함에 日月(일월)이 沒落(몰락)하고 地軸(지축)이 무너지는 듯한 悲痛(비통)한 心情(심정)을 지닌 채 우리는 先生(선생)님과 永訣(영결)의 마당에서 마지막 感懷(감회)를 말씀드리옵나이다. 險惡(험악)한 世上(세상)에서 나타나시와 모든 難關(난관)과 荊棘(형극)을 開除(개제)하시고 이 社會(사회)에 남기신 그 業績(업적)은 길이 내려갈 統緖(통서)에 언제나 嚴然(엄연)하겠나이까. 견줄대 없으리만큼 奇耻(기치) 大辱(대욕)이 極盡(극진)한 가운데 民衆(민중)으로 하여금 耻辱(치욕)의 이래 衿負(금부)와 悲慘(비참)의 期(기)에 奮發(분발)을 끊음없이 가지게 하려하여 敎育事業(교육사업)에 또는 社會事業(사회사업)에 盡力(진력)하심이 80余年(여년)의 日月(일월)을 貫徹(관철)하여 몸은 쓰러져도 魂(혼)은 社會(사회)를 떠나시지 아니하고 숨은 없으되 뜻은 敎育에 주신 그 장하고 배움을 말할진데 先生(선생)님의 臨終(임종)은 天泣地哀(천읍지애)한 巨役(거역)이 아니시리요. 여기 흙의 알알 그대로가 先生(선생)님의 熱血(열혈)의 凝体(응체)임을 생각함에 舊恨新感(구한신감)이 가슴에 막혀 어찌할 줄 모르겠나이다. 百難(백난)을 衝冒(충모)한바라 內外瓦流(내외와류)하는 幾多(기다)의 熱血(열혈)속에 全面民(전면민)의 有意(유의)을 돋우고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를 創立(창립)하시와 子弟(자제)의 養育(양육)과 地方産業(지방산업) 文化向上(문화향상)에 寄與(기여)하며 우리들을 이만큼 기르게 하시니 다 先生(선생)님의 물려주신바 先生(선생)님은 千秋下(천추하)에 오히려 襦袂(유몌)의 淚(누)를 흘렸나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서러워하는바 있으니 先生(선생)님의 보고자 하심이 우리 門下生(문하생)들의 씩씩한 活躍(활약)과 成功(성공)이라. 이날이 아직 멀리 아득한데 先生(선생)님은 가셨으니 이 느낌을 또한 어이하리요. 炎夏之署(염하지서)에나 酷寒之節(혹한지절)이나 샛별 번쩍이는 이른 아침에 草露(초로)를 밟으시고 或(혹)은 凄凉(처량)한 달빛아래 날아가는 雁群(안군)을 바라보시며 우리의 指導(지도)와 學校(학교)의 發展(발전)에 專念(전념)하시던 그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말로 人鬼(인귀)의 格(격)을 잊었으니 이제 다시 뜻을 永遠(영원)한길로 떠나셨기에 와락 自身(자신)의 存留(존유)하심이 어찌 그리 廓然(확연)함을 느끼나이다. 先生(선생)님께 바칠 馨香(형향)이 우리의 成功(성공)과 學校(학교)의 發展(발전)에 있을 뿐이거늘 이제 여기까지 達(달)하면은 距離(거리)없지 아니함에 靈前(영전)에 向(향)하는 忸怩(유이) 자뭇 무거우나 數年前(수년전)의 暗黑(암흑)뿐이요, 縷望(누망)이 없던 그때부터 先生(선생)님은 希望(희망)을 찾아서 꺽이지 아니하시고 꾸준히 일하셨으니 이제 垂成(수성)이의 業(업)에 盟誓(맹서)할 것은 勿論(물론)이요, 時(시)은 今昔(금석)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是(시)은 先生(선생)님의 遺緖(유서)로부터 나려와 依然(의연)할바니 爲先(위선) 現下(현하)를 드려 先生(선생)님께 告(고)하려 하여 在天(재천)하신 尊靈(존령)은 우리를 爲(위)하여 耿耿(경경)하실지니 그 百折不屈(백절불굴)하신 義氣至純高潔(의기지순고결)하신 高燥民我無間(고조민아무간)하신 誠心(성심)을 우리로 하여금 效則(효칙)하게 하사 泰運(태운)을 맞이하여 우리 一同(일동)의 祈願(기원)을 맞추어 이루게 하소서.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 卒業生(졸업생) 一同(일동) 再拜(재배)
白雪(백설)이 오늘의 敬虔(경건)을 象徵(상징)하고 쌀쌀한 空氣(공기)는 送終之禮(송종지례)를 더욱 哀切(애절)하게 하는 듯 二十余年(이십여년) 알뜰히 아끼시옵던 豊北校(풍북교)의 職員一同(직원일동)이 靈前(영전)에 서서 嗚咽痛恨(오인통한) 그저 感淚(감누)에 젖을 뿐 哀慕(애모)의 情(정) 고눌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 二十余年(이십여년) 日帝殘虛(일제잔허)의 屈辱(굴욕)속에서 닦으신 豊北解放(풍북해방)의 混亂中(혼란중)에서 各種溢路(각종일로)를 그냥 打開(타개)하고 새우신 屛中(병중)..... 가지가지로 面民(면민)의 福利(복리)를 爲(위)하시던 붉은 마음 꽃피고 열매맺어 남구신 功績百年(공적백년)의 生命(생명)이 躍動(약동)합니다. 받들어 이어 永劫(영겁)에 꺼짐 없을 先生(선생)님의 그 빛을 위하여 이렇게 머리 숙여 合掌(합장)하옵니다. 先生(선생)님 이루신 功(공) 크시옵고 恨(한)없이 가시올 때 이 고장에 좋은 香氣(향기) 풍기게 하시옵소서. 冥福(명복)을 비옵고 물러서며 服人各位(복인각위)의 純至(순지)하신 孝思(효사)에 敬意(경의)를 表(표)하옵고 服体支護(복체지호)하시옵고 敬請()하옵고 삼가 두어마디 弔辭(조사)로 합니다.
壬辰(임진) 正月(정월) 三日(삼일)
豊北國民學校職員一同謹(풍북국민학교직원일동근)
造物主槿域(조물주근역)을 設計(설계)하시고 濟世經倫(제세경륜)을 人類(인류)에 맡기신 이래 悠久(유구)한 歷史上(역사상) 이 땅에 先生(선생)님을 配送(배송)하사 다스리게 하신 業績(업적)이 가장 컷도다. 이제 先生(선생)님을 召還(소환)하시니 오호라 人子(인자)는 光明(광명)을 잃고 森羅萬象(삼라만상)은 悲哀(비애)에 잠그도다. 痛哉(통재)라 先生(선생)님의 永眠(영면)하시여 先生(선생)님의 一生(일생)의 事業(사업)은 이 땅에 빛나고 그 精力(정력)은 穀倉豊山(곡창풍산)을 덮어 우리 겨레의 血脉(혈맥)으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豊山平野(풍산평야)가 渴(갈)하면 慈雨(자우)를 내리게 治山(치산)을 하셨고 漼泣(최읍)할 물이 남을 때 이것을 가두어 旱節(한절)에 對備(대비)할 貯水池(저수지)를 막으셨고 洽足(흡족)한 물도 汎濫(범람)치 못하게 堤防(제방)을 쌓으시기도 先生(선생)님의 努力(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그 얼마나 됨을 모를 사람 잇사오리까. 先生(선생)님의 새우신 五陵學園(오능학원)은 우리 民族育英(민족육영)의 가장 健實(건실)한 溫床(온상)이며 民族文化啓發(민족문화계발)의 土臺(토대)이였으며 先生(선생)님의 努力(노력)으로 이루어진 各國民學校(각국민학교)에서 해마다 輩出(배출)하는 數百名兒童(수백명아동)은 다시금 先生(선생)님 晩年事業(만년사업)으로 成就하신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로 進學(진학)할수 있게 된 것이 모두 豊山(풍산)의 幸福(행복)이며 國家(국가)의 幸福(행복)이며 先生(선생)님의 不惜身命(불석신명)하오신 努力(노력)의 結晶(결정)인 것을 누구나 잊을 수 있겠나이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永遠無窮(영원무궁)토록 先生(선생)님을 뫼셔서 偉大(위대)하옵신 育英事業(육영사업)을 받들어 나가려 하였건만 於乎痛哉(어호통재)라. 宇宙(우주)의 公道(공도)는 막을 수 없어 先生(선생)님은 드디어 長逝(장서)하셨도다. 그러나 先生(선생)님의 偉大(위대)하옵신 가지가지 遺業中(유업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 今日(금일)의 盛況(성황)이 오로지 先生(선생)님 古稀老齡(고희노령)을 무릅쓰시고 東奔西走(동분서주)하신 勞苦(노고)의 結晶(결정)인 것을 感佩(감패)하고 있는 우리들은 先生(선생)님 靈魂(영혼)의 加護(가호)아래 遺訓(유훈)을 받들어 先生(선생)님 雄圖(웅도)를 이 땅에 永遠(영원)히 살려 民族敎育(민족교육)에 이바지할 것을 銘心(명심)하옵고 暗澹(암담)과 哀痛(애통)에서 暫時(잠시) 눈물을 收拾(수습)하고 英明(영명)하옵신 先生(선생)님 冥福(명복)을 빌며 뜻하지 않던 오늘날 이 땅에서 永訣(영결)을 告(고)하게 된 것을 슬퍼하나이다. 嗚呼痛哉(오호통재).
檀紀(단기)4285年 1月 3日
屛山敎育財團理事會(병산교육재단이사회)
백설이 우리 삼천리 강토를 자욱이 덮고 시베리아 넓은 벌판 바람이 집 잃고 고향 잃은 헐벗은 우리 겨레에 사정없이 내려 닥치는 이때 우리 풍북의 九百名(구백명) 생도들을 대표하여 우리 풍북 九百名(구백명)의 위대하신 원호자 고 宋先生(송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몇마디 말씀을 올리나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지금부터 二十(이십)여년전 우리들이 아직 나기도 전 그 일정의 독살을 피하시며 우리 겨례의 장래와 우리 면민의 문화를 원렴하사 지금의 풍북의 터전을 닦으시고 또 그후 오랜 세월을 우리 풍북 九百名(구백명)의 유일한 원호자로서 동분서주! 어언 二十(이십)여년! 그 얼마나 마음과 몸으로 애쓰시셨나이까? 베푸신 은덕으로 우리들은 선생님 모시고 공부 잘하며 닦으신 터전 더욱 길이 빛내도록 힘껏 마음껏 노력하겠기를 맹세하오리다. 끝으로 우리 풍북 九百名(구백명)을 대표하여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합장하여 물러나겠습니다.
檀紀(단기)4285年 1月 3日
豊北國民學校(풍북국민학교) 兒童代表(아동대표) 金進泓(김진홍)
삼가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 設立者(설립자)이시고 初代校長(초대교장)이신 故(고) 晩儂先生(만농선생)님의 靈前(영전)에 아뢰옵나이다. 先生(선생)님이 病患(병환)으로 계옵신 以來(이래) 回春(회춘)하옵심를 저희들은 眞情(진정)으로 祈願(기원)하였사오나 溘焉(합언) 長逝(장서)하옵신 悲報(비보)에 接(접)하여 哀悼痛哭(애도통곡) 눈물이 앞을 가리입니다. 先生(선생)님은 일찍부터 이 땅에 겨레의 文化向上(문화향상)에 各別(각별)하옵신 先覺的抱負(선각적포부)를 가지시고 初志一貫(초지일관) 先生(선생)님의 理想(이상)을 實現(실현)하시어 우리 民族(민족)의 文化向上(문화향상)에 寄與(기여)하신 功績(공적)이로다. 헤아릴 수 없이 偉大(위대)하옵나이다. 즉 8.15 解放(해방)과 함께 이 땅의 急途(급도)한 文化回復(문화회복)과 飛躍的(비약적) 發展(발전)을 爲(위)하여 育英事業(육영사업)의 緊急(긴급)함을 生覺(생각)하시고 檀紀(단기) 4280年(년)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를 設立(설립)에 着手(착수)하시여 當時(당시)의 混亂(혼란)과 沒理解(몰이해)한 社會(사회)로서 갖은 苦楚(고초)와 至難(지난)한 溢路(일로)가 많았으나 古稀(고희)의 高齡(고령)이심에도 不拘(불구)하시고 日夜(일야) 東奔西走(동분서주) 寢食(침식)을 익고 모든 難關(난관)을 克復(극복)하시어 今日(금일)의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를 이루어 저희들 四百健兒(사백건아)가 씩씩하게 배움의 길을 닦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偉業(위업)을 오즉 先生(선생)님의 英明(영명)하신 天稟(천품)과 高邁(고매)하신 人格(인격)과 더불어 한결같은 地方發展(지방발전)의 애끓는 情熱(정열)의 所致(소치)로서 先生(선생)님이 아니였으면 누가 능히 成就(성취)할수 있었을까요? 嗚呼(오호). 先生(선생)님 夢寐之間(몽매지간)에도 잊지 않으시든 이 學校(학교)와 저희들을 뒤에 두시고 永遠(영원)히 가시옵나이까? 先生(선생)님 지금 先生(선생)님의 거룩한 永訣式場(영결식장)에는 數百(수백)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 學徒(학도)가 哀悼(애도)하고 있습니다 先生(선생)님 “얘들아 왔느냐”하고 왜 한마디 말씀이 안계시나요? 先生(선생)님 病中(병중)에 계시면서도 지나간 五月(오월) 우리 學校(학교) 運動會(운동회)때 손수 나오시서 저희들을 보고 즐거워하시든 仁慈(인자)하옵신 先生(선생)님의 風威(풍위) 只今(지금) 面前(면전)에 髣髴(방불)하오며 저희들을 訓戒(훈계)하옵시던 부드러운 말씀소리 只今(지금)도 귀에 들리는 같습니다마는 다시는 들을 수 없사오며 뵈옵지 못하오니 嗚呼(오호) 이 슬픔을 무엇에 比(비)하며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先生(선생)님 비록 幽明相隔(유명상격)하오나 先生(선생)님의 尊靈(존령)은 반드시 우리 學校(학교)를 加護(가호)하실 것이오며 오즉 生(생)과 死(사)의 다름이 있을 뿐이오니 先生(선생)님 先生(선생)님 平安(평안)히 白玉樓(백옥루)로 올라가시서 길이길이 亨樂(형락)하시옵소서. 在天(재천)하신 尊靈(존령)이시여 저희들 微力(미력)하오나 先生(선생)님의 遺志遺訓(유지유훈)을 받들어 더욱더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를 빛낼 것을 삼가 靈前(영전)에 盟誓(맹서)하오니 先生(선생)님의 冥福(명복)을 비옵나이다.
檀紀(단기) 4285年 1月 3日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 在學生(재학생) 一同(일동)
代表(대표) 李會槿(이회근)
壬辰(임진) 正月(정월) 初三日(초삼일)은 宋先生(송선생) 永訣(영결)의 날이라. 小生(소생) 晩雲學校師弟一同(만운학교사제일동)을 代表(대표)하여 簡單(간단)히 永訣(영결)을 告(고)하노이다. 이성에 生(생)을 얻어 服從(복종)하지 않을 이 없사오니 當(당)하여 슬퍼하고 可惜(가석)하지 않을 이 있아오리오마는 功德(공덕)이 길이 빛나고 萬人(만인)이 우러러 追慕(추모)할진대 어찌 그러하지 않겠아오며 하물며 그 功(공)의 大部分(대부분)이 敎育界(교육계)에 뻗쳤으니 直接(직접) 敎育界(교육계)에 從事(종사)하는 이로서 더욱 그러하지 않으리이까? 아 슬프고 애닲을진저 暫時(잠시) 精神(정신)을 鎭定(진정)하여 先生(선생)의 功績(공적)을 적어 永訣(영결)하노이다. 回顧(회고)하건데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를 設立(설립)에 着手(착수)하시여 當時(당시)의 混亂(혼란)과 沒理解(몰이해)한 社會(사회)로서 갖은 苦楚(고초)와 至難(지난)한 溢路(일로)가 많았으나 古稀(고희)의 高齡(고령)이심에도 不拘(불구)하시고 日夜(일야) 東奔西走(동분서주) 寢食(침식)을 익고 모든 難關(난관)을 克服(극복)하시어 今日(금일)의 緣故(연고)가 아니로이까. 당신은 日帝暴壓(일제폭압)의 治下(치하)이라 안으로 母語(모어)와 禮俗(예속)까지 빼앗기고 밖으로 周圍四方(주위사방)이 敵(적)의 圈內(권내)에 들어가 國權恢復(국권회복)의 길이 漠然(막연)하여지자 眞理(진리)는 萬通(만통)이라 民智(민지)를 깨우치고 民度(민도)를 높임으로써 아득히 먼날을 바라보시며 希望(희망)의 그 날을 지향하여 面民(면민)들을 啓蒙(계몽)하시고 張次(장차) 國家(국가)를 짊어질 第(제)2世(세) 國民(국민)에게 커다란 期待(기대)를 가지시와 敎育事業(교육사업)에 盡力(진력)하시니 民族(민족)의 先覺者(선각자)요 功勞(공로)가 빛나도다. 벌써 그 功績(공적)이 奏效(주효)하여 中堅志士(중견지사)가 솟아나 活躍(활약)하오니 아 壯(장)할진저 先生(선생)이시여 快(쾌)할진저 先生(선생)이시여 잊지 못할 甲戌年(갑술년) 大水災時(대수재시)를 비롯하여 面民(면민)의 救濟(구제)와 福利(복리)를 위하여 또는 學校(학교)의 設立認可(설립인가)와 擴充(확충)을 위하여 晝宵不撤嚴冬雪寒(주소불철엄동설한)도 무릅쓰시고 連日請願勤念(연일청원근념)하신 履歷年淺(이력연천)한 小生(소생)이 어찌 다 헤아리오마는 暫時(잠시) 들었을 뿐으로도 感激(감격)하고 歎服(탄복)한바있아와 더욱이 哀痛(애통)한 念(염)을 禁(금)치 못하는 바이오이다. 깨닫지 못하던 그 時節(시절)은 그만두고라도 三千萬(삼천만) 民族(민족)의 聖(성)스러운 解放(해방)의 鐘(종)소리가 울리자 때는 왔도다고 世界(세계)에 列强(열강)에 어깨를 겨누자고 步調(보조)를 맞추자고 한걸음에 뛰어 他面(타면)에 類例(유례)없는 屛山中學創設()에 도뿌를 끊으시고 다시 山村各地(산촌각지)에까지 海澤(해택)을 입히고자 本校(본교) 晩雲學校(만운학교)의 建設(건설)에까지 갖은 困難隘路(곤난애로)를 甘受打開(감수타개)하시니 功勞(공로)는 學校(학교)의 繁榮(번영) 및 歷史(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지어다 昨年(작년) 正月(정월)이즈음 小生이 學校長(학교장)의 命을 띄고 赴任人事를 여짜올제 欣然(흔연)히 기뻐하시고 가지가지로 所託激勵(소탁격려)하시던 말씀과 그 後(후) 從從(종종) 뵈올제마다 慰勞(위로)와 奮勵(분여)시키시던 일이 아직 耳目(이목)에서 사라지지 않사오나 그도 벌써 옛일로 돌리시고 永訣(영결)의 人事(인사)를 告(고)하오니 아 슬프고 애달프오이다. 아 先生(선생)님은 敎育推進事業○家(교육추진사업○가) 列席(열석)에 永久(영구)한 空席(공석)을 만들어 놓고 가시도다. 先生(선생)이 가시고 우리 敎育事業界(교육사업계)는 偉大(위대)한 指導者(지도자)를 여의고 허전한 感(감)을 禁(금)치 못하오니 쓸쓸할 따름이오이다. 先生(선생)의 生前(생전)에 그 德(덕)을 돌리지 못하고 이제 이것을 적어 前途(전도)를 期約(기약)하기도 슬픈 일이오나 事業(사업)하신 源泉(원천)에서는 志士續出(지사속출)하여 所期希望(소기희망)에 넘칠 것이오니 先生(선생)의 德(덕)인저 先生(선생)의 德(덕)의 우물과 香氣(향기)를 끼치고 길이 가시도다. 아 壯(장)할진저 先生(선생)이시여 빛날진저 功德(공덕)이여 先生(선생)의 功德(공덕)을 讚揚(찬양)하여 冥福(명복)을 빌고 弔辭(조사)에 代身(대신)하오이다.
壬辰(임진) 4285年 元月(원월) 初三日(초삼일)
晩雲國民學校校長(만운국민학교교장) 金進昌(김진창) 再拜(재배)
때 檀紀(단기) 四千二百八十五年(4285년) 一月(일월) 三日(삼일) 삼가서 淸酌庶羞(청작서수)의 奠(전)으로 故(고) 宋先生(송선생)의 靈(영)에 告(고)하나이다.
嗚呼(오호). 先生(선생)님 옛사람의 말에 和氣熱心(화기열심)한 사람은 그 福(복)이 또한 厚(후)하고 그 澤(택)이 또한 길다하더니 先生(선생)님은 氣絶(기절)이 磊落(뇌락)하고 性味(성미)가 溫和(온화)하며 言語(언어)가 活潑(활발)하며 衿期(금기)가 暢達(창달)하여 사람으로 더불어 對(대)할 때 圭角(규각)이 없으시며 淸濁(청탁)의 所失(소실)이 없었으나 自我(자아)의 心柱(심주)가 確固(확고)하여 事業(사업)을 經營(경영)하실 때 可能(가능)한 일은 幾百人(기백인)의 反對(반대)라도 確固不拔(확고불발)하며 어떠한 口實(구실)이 있더라도 듣지 않으시고 毁譽(훼예)는 關係(관계)치 않으셨다. 豊北(풍북) 豊山(풍산) 兩面面長(양면면장)으로 在職時(재직시)의 功勳(공훈)은 枚擧(매거)하지 않아도 그 누가 모를 사람이 있겠으며 더욱이 晩雲(만운) 함박산 砂防工事(사방공사)와 植木(식목)은 전혀 先生(선생)님의 努力(노력)의 結晶(결정)이였으니 오늘날 先生(선생)님의 永眠之地(영면지지)가 될 줄이야 어떻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合面以後(합면이후) 至今은 灰燼(회신)하였읍니다마는 道內有數(도내유수)한 面事務所(면사무소) 新築(신축)을 비롯하여 面內(면내) 各(각) 機關이 先生(선생)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무엇일가요. 豊北(풍북) 屛山(병산) 兩校(양교)를 設立 建築할 때 風寒雪熱(풍한설열)을 돌아보시지 않으시고 一心努力(일심노력)한 結果(결과)로 豊北校(풍북교)는 國民校(국민교)로서 遜色(손색)없는 學校(학교)가 되었고 屛山中學校(병산중학교)는 中學校(중학교)로서 至今(지금)은 基礎(기초)가 確固(확고)하여졌으나 主人(주인) 잃은 이 두 學校(학교) 一千五百餘名(일천오백여명)의 學生(학생)들과 三十餘名(삼십여명)의 敎職員(교직원)은 어미 잃은 병아리 모양으로 갈 바를 指向(지향)못하고 헤메이는 것을 두고 先生(선생)님 어떻게 가셨습니까. 先生(선생)님. 先生(선생)님. 불러도 불러도 對答(대답)이 없으니 오직 先生(선생)님은 가시고야 말았구나. 豊山(풍산)의 社會(사회)는 비록 적다고 하지만 어느 團體(단체) 어느 機關(기관)을 莫論(막론)하고 先生(선생)님의 惠澤(혜택)을 입지 않은 곳이 없으니 先生(선생)님 肉體(육체)는 가셨다 하더라도 先生(선생)님의 靈(영)은 이 團體(단체) 이 機關(기관)을 永久不滅(영구불멸)하게 守護(수호)하시겠지요. 先生(선생)님 오늘 이 자리에서 늙으신 두분 季氏(계씨)께서 長枕(장침)을 못하시게된 哀痛(애통)의 소리를 先生(선생)님은 들으시는지 못들으시는지 어버이 잃으신 세 分(분)의 允玉(윤옥) 叩地叫天(고지규천)의 痛哭(통곡)을 들으시는지 못들으시는지 世烈君(세열군)을 비롯한 여러 從兄弟(종형제)의 할아버지의 棺柩(관구)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소리를 선생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先生(선생)님. 先生(선생)님. 이런 모든 것을 모르시는 것을 볼 때 오로지 先生(선생)님은 참으로 가셨구나요. 이와 같은 餘暇(여가)를 타셔서 祖先(조선)의 榟宮(재궁)과 亭臺(정대)를 設立(설립)하셨고 子孫(자손)들을 爲(위)하여 敎育(교육)을 極盡(극진)히 하셔서 面面(면면)이 이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시고 할아버지를 부르나 오직 한가지 遺憾(유감)된 点(점)은 洪烈君(홍열군)은 國家(국가)를 爲(위)하여서 이 哀痛(애통)을 모르고 우리의 敵(적)인 赤狗(적구)를 殲滅(섬멸)하고 있으니 不遠間(불원간) 統一(통일)의 聖業(성업)을 完成(완성)하고 凱旋(개선)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先生(선생)님 여기까지 쓰고 나니 눈물이 종이를 적셔서 더 이상 記錄(기록)치 못하고 輓(만)하기를
朔雪獰風歲暮天 (삭방<朔方>의 눈과 모진 바람 해 저무는 날에)
晩雲山色獨蒼然 (만운<晩雲>의 산색<山色>이 홀로 창연<蒼然>하구 나)
玉京惟勝人間樂 (옥경<玉京>이 인간<人間>의 즐거움보다 나아)
今送人間五福仚 (지금<至今> 인간오복<人間五福>의 신선<神仙>을 보내니)
又
憶昔吾家伯仲間 (에전 우리 집 백중씨<伯仲氏> 사이를 생각하면)
於公支誼我同看 (저 공<公>과 의<誼>를 지탱<支撑>함이 나와 같이 보리)
如今二允惟如此 (지금<至今>같이 이윤<二允>이 오직 이와 같으니)
不禁昏衢洴泗還 (어두운 거리 사수<泗水>에 돌아올 표백<漂白>을 금 <禁>치 못하리)
嗚呼(오호). 先生(선생)님.
檀紀(단기) 四千二百八十五年(4285년) 一月(일월) 三日(삼일)
豊山國民學校敎職員(풍산국민학교교직원)을
代表(대표)하여 金秉汶(김병문) 痛哭(통곡)
김병문(金秉汶) 1905~1959년 자(字)는 혜도(惠道)이고 부(父)는 낙서(洛書)로 초등학교교장을 역임했으며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炫-塡)
1. 先生의 仙化事엔 悲詞가 動하도다
八旬歷史짜르잖고 一生 業績 적잖건만
皇天길을 向하심은 怨痛하기 짝이 없네
先生이 가신 길은 다시 못 올 길이신가
無情할 손 歲月이오 有限할 事壽命이라
씩씩한 그 風骨과 嚴慈한 樑子가
儼然히 生存한 듯 어이 그 길 催促일가
牛山에 지는 해는 齊景公의 눈물이오
2. 汾水에 秋風歌는 漢武帝의 슲음이라
萬古英雄 秦始皇도 驪山宿草 일우었고
天下一色 楊貴妃도 馬昆塵이 되단 말가
春草年年 돋아나도 王孫一去不復歸라
南鄕長德衰盡하야 先生不是乘麒로다
生前 業績 每擧하면 紙面이 不許하니
已往 붓이 가는 길에 參考삼아 數條쓰네
家庭事業 비롯하야 經濟敎育 씩씩하니
3. 人誰敢侮修身士아 天不能窮力穡家라
面內啓蒙旋力하사 東北豊三機로세
經濟沒落豊四社會 金融機關肇創하고
河川被害豊潤野를 南北堤防築造하고
太西文建築模倣하야 三層빌딩面事務所
甲戌丙子兩年水災 夏禹功績效則하사
道會出入 周邊할제 巨濟蒼生하시라고
星星白髮生覺잖고 飄飄少年 달랜 歷史
4. 이로 다시 追憶하면 뉘 아니 感泣하리
最後平素하신 말씀 政是이때일할대다
慇懃한 그 音聲이 귀 곁에 붙었는 듯
어화 世上志士들아 이 어른을 標榜하야
生前功績쌓아놓고 死後遺名하자서라
白雪이 弔問하니 뜨끌 世上 덮었세라
先生의 潔白성엔 天理도 無心찬네
生의 힘이 다하셨나 死의 길이 웬 말인가
5. 望西亭을 作別하고 三朴山이 웬 말일가
生의 힘을 돕기 위해 求仙藥次가시였다
瀛州山 白鹿潭에 仙水가 차자 가시였다
天台山 第一峰에 芝草 캐러 가시였다
一簣之功添하랴고 天國視察가시였나
萬歲磻石 暝暝陰德不虧로다
先生의 남긴 事業 孝子孝孫繼承하고
餘慶이 璀燦하며 棟楹이 堅實하니
6. 世波비록 凶獰하나 아모 두렴 없사오니
光明한 樂園길에 고요히 잠드소서
古貌 다시 뵈오릿가 눈물어린 조히에다
短文拙筆 무릅쓰고 一章弔詞敢獻하니
泉臺一店 수이서셔 回首下監하옵소서
地上愚拙生 鄭周燮 哭呈
만사(晩詞)
晩雲亭晩起 늦게야 만운(晩雲)에 정자(亭子)를 세워
泉石向來知 산수(山水)의 경치(景致)는 본래부터 아는 곳
古氣輸精虎 옛스러운 운치(韻致)는 호랑이의 정기(精氣)를 실어온 듯
眞心筮運龜 진심(眞心)은 거북의 운(運)을 점쳤는 듯
德優方面俠 넉넉한 덕성(德性)의 방면(方面)은 좁고
時暮洛城遲 낙동강(洛東江)지역(地域)은 저물어 가는데 더디기만 하구나
錫類推庭孝 효자(孝子)의 덕성(德性)이 뜰에까지 미치니
政深西望思 정말 서(西)쪽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하누나
정제(情弟) 안동(安東) 김병현(金炳玹) 재배추만(再拜追輓)
拭晋眸處輒開眉 눈을 비비며 씻고 나아가는 곳 문득 눈썹이 피어
交道申勤樂在也 서로 사귀는 도리(道理)를 두 번 세 번 이야기하는 즐거움 여기 있나니
滿座賓朋恒自遠 자리에 꽉 찬 손님으로 대접(待接)하는 친구(親舊)는 항상(恒常) 멀리서부터 이고
盈庭梧竹幾多移 뜰에 가득한 오죽(梧竹)은 몇 번이나 옮겼는고
湛和且翕聯房弟 즐겁게 지내고 화합(和合)하며 연(聯)이은 방(房)의 아우에
德惠應傳衆口碑 덕성(德性)과 은혜(恩惠)는 응당(應當) 많은 사람의 입에 비(碑)로 전(傳)해져
混濁塵埃良苦苦 혼탁(混濁)한 티끌 진실(眞實)로 고생(苦生)스러우나
今君猶勝此生之 지금(至今) 그대는 이 생(生)보다 오히려 나을 것인가
손제(損弟)안동(安東) 권동호(權東浩) 통곡추배(恫哭追拜) 만(輓)
권동호(權東浩) 1882~1966년 초휘(初諱)는 영호(寧浩)자(字)는 기숙(氣叔), 부(父)는 준성(準誠)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容大-純澤, 純一, 純善)
蘭音忽報夢眞疑 홀연(忽然)히 난음(蘭音:부고)을 알리니 꿈인가 참인가 의심(疑心)스러워
八耋居然一瞬時 팔순(八旬)의 늙은이 그 모양 그대로 한 순간(瞬間)일세
寬大周詳優器局 관대(寬大)하고 주변(周邊)하며 자세(仔細)하여 넉넉한 도량(度量)이요
聰明磊落好風姿 총명(聰明)하고 뇌락(磊落)1)해서 좋은 풍자(風姿)일세
平生喜怒何形色 평생(平生)에 희(喜)와 노(怒)의 형색(形色)을 어찌할까
急處憂愁不上眉 급(急)한 곳 근심과 시름도 눈썹 위에 올리지 아니해
如我疎慵多感事 나같이 소용(疎慵)2)한 것이 감회(感懷)의 일도 많아
銘于心也豈言詞 마음에 새겨 어찌 말로서 할까
歷數吾公施業恢 분명히 우리 공(公)의 하시는 사업(事業)이 넓으니
門閭高起又亭臺 문여(門閭)3)가 높이 솟았고 또 정자(亭子)의 대(臺)가 있어
孝友慈詳餘外事 효도(孝道)하고 우애(友愛)하며 자상(慈詳)함과 그 나머지의 일은
南州多士口碑嵬 남(南)쪽 고을의 많은 선비들의 입의 비(碑)가 매우 높고 크구나
子若孫曾善述先 아들과 손자(孫子) 증손(曾孫)이 선대(先代)를 잘 이어
後餘慶也永緜緜 뒤에 남은 경사(慶事)를 기리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어가리
嗟吾嫂氏攀呼慟 슬프구나 우리 수씨(嫂氏)가 상여(喪輿)를 잡고 호곡(呼哭)을 하니
不下僉哀孰慰焉 여러 상주(喪主)와 못지 않아 누가 위로(慰勞)를 할 것인가
주)1)뇌락(磊落) : 뜻이 커서 작은 일에 구애(拘碍)하지 않는 모양
2)소용(疎慵) : 데면데면하고 어리석음
3)문여(門閭) : 문(門)밖 거리
통가하생(通家下生) 진성(眞城) 이한국(李翰國) 통곡재배(慟哭再拜) 추만(追輓)
海國斜陽近 바다 같은 나라에 사양(斜陽)이 가까우니
夫公宜返眞 저 공(公)은 마땅히 참으로 돌아가네
濬川民食阜 내를 파서 깊이 하니 백성(百姓)들의 먹을 것이 수북하고
興學士趍新 학교(學校)를 일으키니 선비의 취향(趣向)이 새롭구나
和不同流俗 동화(同化)를 해도 일반(一般)의 풍습(風習)과 같이 아니하고
貞而莫說畛 곧고 굳으면서 휴진(畦畛)1)을 베풀지 아니하였다
嗟嗟難再覿 슬프다 두 번 보기 어려우니
拚紼淚盈巾 상여(喪輿)의 줄을 잡고 눈물만 수건(手巾)에 가득하네
주)1)휴진(畦畛) : 밭두둑. 얼굴을 찡그리면 이마가 밭두둑 같이 되는 것을 말함
통가하생(通家下生) 선성(宣城) 이준영(이준영) 재배(再拜) 경만(敬輓)
鶴山山嶷嶷 학가산(鶴駕山)은 산(山)이 더 높고
洛水水泱泱 낙동강(洛東江) 물은 물이 더욱 깊도다
嗚呼豊社事 아 풍산(豊山)의 사회(社會)의 일은
無奈已頹綱 기강(紀綱)이 무너지니 어쩔고
소제(少弟) 예천(醴泉) 임노수(林魯洙) 통곡재배(慟哭再拜) 근만(謹挽)
軒軒鶴骨不徒然 출중(出衆)한 학(鶴)의 기골(氣骨)에 움직이지 않음은 아닌데
能事一方衆望圓 한 지방(地方)의 능(能)한 일은 뭇사람들의 촉망(囑望)이 원만(圓滿)하다
㫰日偏荷勤厚意 지낸 날 부지런하고 후(厚)한 뜻을 홀로 입어서
至今追憶淚雙懸 지금(至今)에 추억(追憶)하니 두 눈에 눈물만이 흐르네
하생(下生) 안동(安東) 권영원(權寧遠) 통곡배(慟哭拜) 만(輓)
권영원(權寧遠) 1896~1974년 초휘(初諱)는 영익(寧益)자(字)는 여홍(汝弘), 부(父)는 준호(準濩)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五斌-大勳,大黙. 五重-大珏,大經)
白雲前流古家山 소백산(小白山) 만운(晩雲) 앞에 흐르는 옛 가산(家山)1)에
翁去翁來百歲間 옹이 살아오고 옹이 떠나가는 백세의 사이
耕讀初年光祖業 밭을 갈며 글 읽어 초년(初年)에는 조상(祖上)의 업(業)을 빛내려고
公私暮邇得人懽 공사간(公私間)에 저물어도 쉽게 남들이 기뻐하고
滿庭蘭玉春容好 뜰에 가득한 자손(子孫) 봄의 모습인 듯 좋고
別幄塤箎老景閑 악수(幄手)하고 형제간(兄弟間)의 우애(友愛)로움을 이별(離別)하니 늙바탕은 한가하고나
厭彼塵寰仙御促 저 더러운 세상(世上)이 싫어서 신선(神仙)의 행차(行次) 재촉하니
此生何處更華顔 이 생(生)에서 어느 곳에 다시 꽃다운 얼굴을 뵈올고
주)1)가산(家山) : 고향. 한 집안의 묘지(墓地)
계소제(契小弟) 진성(眞城) 이동희(李東熙) 곡(哭) 만(輓)
晩托姻親仰厚○ 늦게야 혼인(婚姻)하여 친척(親戚)이 됨으로
延安華閥有公家 연안(延安)의 화벌(華閥)1)인 공(公)의 집이 있었도다
富無驕各人誰怨 풍부(豊富)해도 교만(驕慢)하고 아끼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누가 원망(怨望)할고
壽未榮祺老共嗟 수(壽)가 영기(榮祺)2)는 못 미쳤으니 늙음을 함께 슬퍼하노라
勤儉治家嘉訓立 근검(勤儉)하게 집안을 다스렸으니 아름다운 가훈(家訓)을 세워
謙恭行已令聞多 겸손(謙遜)하고 공순(恭順)한 몸가짐으로 좋은 소문(所聞)이 많구나
窮廬每向心常祝 궁(窮)한 집에서 항상(恒常) 그 모양으로 향(向)하여 마음으로 항상(恒常) 빌어
一幅挽章慟若何 한 폭(幅)의 만장(輓章)으로 통곡(慟哭)함이 어떨고
天降純嘏昌大門 하늘에 내린 복(福)이 창대(昌大)할 문호(門戶)에
滿庭諸子又諸孫 뜰에 가득한 여러 아들 또 여러 자손(子孫)들이
幸余嬌女蒙公恤 다행(多幸)히 나의 딸은 공(公)의 돌봐줌을 입어
未幾同岑塚作寃 얼마 안되어서 같은 산록(山麓)의 무덤만 원통(寃痛)하구나
公病彌留我問遲 공(公)의 병(病)이 오래 낫지 않았으나 나의 문병(問病)은 늦어
白頭東望但空思 흰머리에 동(東)쪽을 바라보니 다만 공연(空然)한 생각인 듯
卽今永阻幽明悵 곧 지금(至今) 영구(永久)히 막힌 이 세상(世上)과 저 세상(世上)의 한(恨)을
歷歷前塵萬事悲 분명(分明)한 앞에 더러운 세상(世上)의 많은 일이 슬프구나
주)1)화벌(華閥) : 세상(世上)에 드러난 높은 문벌(門閥)
2)영기(榮祺) : 오래 사는 것
사제(査弟) 개성(開城) 고면림(高冕林) 배곡(拜哭) 만(輓)
軒儀快辯逈出倫 헌출(軒出)한 모습과 상쾌(爽快)한 언변(言辯)이 같은 무리 가운데에 뛰어나
堪數塵寰一巨人 더러운 세상(世上)의 한 거인(巨人)으로 셀 수 있을 듯
克紹先徽亭復起 능(能)히 선대(先代)의 아름다운 사적(事蹟)을 이어 다시 정자(亭子)를 지어
深憂民杜堰初申 백성(百姓)의 사회(社會)를 처음 새로 쌓을 때 근심은 깊었어라
胸藏杜厦千間小 가슴에 감춘 사회(社會)의 유용(有用)한 집은 천(千) 칸도 작고
慶溢苟龍四世均 경사(慶事)가 넘쳐 구씨팔용(苟氏八龍)1) 사세(四世)를 고르게 하니
閉塞躬陰風雪路 섣달그믐이 폐색(閉塞)되어 눈바람의 길에
愧違匍匐導靈輴 포복(匍匐)해서 상여(喪輿)를 인도(引導)하지 못함 부끄럽구려
주)1)구씨팔용(苟氏八龍) : 후한(後漢)의 구씨(苟氏)의 여러 형제(兄弟)가 모두 훌륭해서 칭찬(稱讚)하는 말
경제(庚弟) 영가(永嘉) 권오봉(權五鳳) 통곡(慟哭) 추만(追輓)
권오봉(權五鳳) 1879~1960년 자(字)는 순여(舜汝) 또는 우여(羽汝), 호(號)는 동포(桐圃)이고 부(父)는 영만(寧萬)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佳稷-鼎九, 龍九, 駿九)
玉如人在孝門庭 옥(玉)과 같은 사람이 효자(孝子)의 집 앞의 뜰에 있으니
恒拜先山路不停 항상(恒常) 선산(先山)에 성묘(省墓)하느라 길을 멈추지 아니해
秋月同輝豊北里 가을달은 함께 풍북(豊北)의 마음에 비취고
春風世德望西亭 봄바람과 같은 세덕(世德)은 망서정(望西亭)일세
芝蘭自保塵區碧 지란(芝蘭)1)과 같이 세상(世上)을 푸르게 스스로 보존(保存)하고
松栢須看雪壑靑 소나무와 전나무는 모름지기 눈 구렁에 푸르게 보이네
八旬歸化今何恨 팔순(八旬)에 돌아가시니 지금(至今) 무슨 한(恨)이 있을까
重憾兒孫尙典型 거듭 자손(子孫)들에게 감회(感懷) 오히려 모습이 남아 있도다
주)1)지란(芝蘭) : 선인(仙人). 군자(君子). 지초(芝草:영지)와 난초(蘭草)
정제(情弟) 안동(安東) 김병현(金炳玹) 통곡재배(慟哭再拜) 추만(追挽)
鶴山南畔有斯人 학가산(鶴駕山) 남(南)쪽에 이 사람이 있어
志闊膙莊大義伸 뜻은 활달(豁達)하고 힘줄을 씩씩해 대의(大義)를 폈도다
出世經營洪社會 출세(出世)를 경영(經營)해서 사회(社會)에 이바지하고
奉先誠意作亭新 선조(先祖)를 받드는 성의(誠意)로 정자(亭子)를 새로이 지었도다.
避危離亂忙流跡 위태(危殆)로움과 난리(亂理)를 피(避)해서 세속(世俗)의 자취는 바쁘고
病氣常侵未起身 병(病)은 항상(恒常) 침범(侵犯)하니 몸은 일으키지 못하고
七十年過仙化去 칠십년(七十年)을 지내고 선화(仙化)1)해 가니
公家慶福自然臻 공(公)의 집에 경사(慶事)와 복(福)이 자연(自然)히 이르리라
주)1)선화(仙化) :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뜻으로 노인(老人)이 병(病)없이 죽음을 이름
정제(情弟) 진성(眞城) 이도휘(李道熙) 통곡재배(慟哭再拜) 근만(謹挽)
崑玉荊金自有光 곤륜산(崑崙山)의 옥(玉)과 형산(荊山)의 금(金)이 자연(自然)히 빛이 있어
材虹萬丈屋頭章 재목(材木)은 만장(萬丈)1)의 무지개처럼 집 머리에 빛이 난다
吾鄕振作空音響 우리 고을에 비어있는 음향(音響)을 떨쳐 일으켜서
孰以知音警世長 누가 지음(知音)2)을 해서 세상(世上)을 깨우칠 것인가
桑海風潮大陸浮 상전벽해(桑田碧海)3)의 풍조대륙(風潮大陸)4)은 떠있는데
鎭民膏澤觴處留 백성(百姓)을 진압(鎭壓)하는 은혜(恩惠)는 술잔에 머물을까
堪嗟後死零零淚 뒤에 죽을 사람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이 떨어져
忍送丹銘古壟屢 차마 명정(銘旌)을 옛 무덤으로 보낼고
주)1)만장(萬丈) : 만발이나 되도록 몹시 높음
2)지음(知音) :자기(自己)의 마음을 아는 사람. 거문고소리를 듣고 뜻을 분간(分揀)함. 서로 마음이 통(通)하는 친(親)한 벗
3)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 시세(時世)의 변천(變遷)이 심(深)함을 일컬음
4)풍조대륙(風潮大陸) : 바람에 딸려 흐르는 조수(潮水). 시대(時代)의 따라 변천(變遷)하는 세태(世態). 세상(世上)이 되어 가는 형편(形便). 시세(時世)의 경향(傾向).
손제(損弟) 전의(全義) 이준호(李駿鎬) 문누배(抆淚拜) 만(輓)
이준호(李駿鎬) 1876년. 자(字)는 형옥(亨玉), 부(父)는 동좌(東佐), 본관(本貫)은 전의(全義)이다. ()
浮世難容金石姿 이 세상(世上)에 용인(容認)하기 어려운 금석(金石)의 자질(資質)을
瓢然仙馭竟何之 표연(飄然)히 신선(神仙)이 이끌어감으로 마침내 어디로 가는고
齊家垂範猶進泰 집을 다스리는 모범(模範)이 되게 함으로 오히려 태연(泰然)하게 나아가리
敎育安民亦可師 교육(敎育)해서 백성(百姓)의 마음을 편안(便安)하게 하니 또한 가(可)히 스승일세
薤歌數曲涕淚流 상여(喪輿)소리 두어 곡(曲)에 눈물 콧물 흘리고
談笑交遊渡幾秋 담소(談笑)하고 서로 사귀어 왕래(往來)한 것이 몇 가을이나 지냈는고
我思思君君不見 내가 생각하는 그대 그대는 보이지 않고
西亭餘月使人愁 망서정(望西亭)에 남은 달이 사람으로 하여금 시름답게 하노라
정제(情弟) 월성(月城) 이시우(李時雨) 배(拜) 만(輓)
追惟明達士 오직 똑똑하게 사리가 통(通)하는 선비를 미루어 생각하니
豈獨在前時 어찌 홀로 지나간 시절(時節)에 있었는데
守已必難守 몸을 지킴은 반드시 지키기 어려워
爲人不易爲 남을 위(爲)하는 사람 쉽게 되지 아니해
彈誠心鍊鐵 성심(誠心)을 다하니 마음은 단련(鍛鍊)된 쇠와 같고
樹德口傳碑 덕성(德性)을 심으니 입으로 비(碑)와 같이 전(傳)하네
且莫燕歌唱 또한 잔치에 노래를 부르지 마라
雲山從此奇 만운(晩雲)의 산(山)이 앞으로 기이(奇異)하구나
통가제(通家弟) 영탕(永湯) 이원연(李源淵) 통곡재배(痛哭再拜) 만(挽)
噫矣晩農子 아― 만운(晩雲)에 농사(農事)하는 자네여
此行我先之 이 길을 나보다 앞서 가는가
同庚知已友 동갑(同甲)에 지기(知己)의 벗이
獨立徒漣洏 홀로 서서 눈물만 짓네
友道寥寥日 친구(親舊)와 사귀는 도리(道理)가 적막(寂寞)한 날에
君吾卽古規 그대와 나는 곧 옛날의 규칙(規則) 그대로이다
事業就先進 사업(事業)은 선배(先輩)로 나아갔고
衿期不相嗟 친(親)한 교분(交分)은 서로 어기지 않아
世人交異我 세인(世人)들의 사귐은 나와는 달라
黃金深淺爲 황금(黃金)이 깊고 얕은 데로 되나니
然諾千金重 그렇다고 허락(許諾)함을 천금(千金)같이 소중(所重)히 하여
金盡交便衰 돈을 다하니 사귐도 변(變)하나니
七旬如一日 칠십년(七十年)을 하루같이
輥到已耋期 이미 늙음을 기약(期約)함에 빨리도 다다랐네
擧酒西亭上 망서정(望西亭) 위에서 술잔을 들 때
看知東洛湄 낙동강(洛東江) 물가를 보고 알았네
江山風景好 강(江)위에 풍경(風景)은 좋아
何處不進隨 어느 곳에 나아가 따르지 않을까
有鳥江南樹 강남(江南)의 나무에 까마귀가 있어
哀鳴群共������ 슬피 울며 무리 지어 함께 나르네
知音空宇宙 음(音)을 알아보는 우주(宇宙)에
緣水靑山悲 푸른 물과 푸른 산(山)이 슬퍼하는구나
種子琴絃斷 종자기(種子期)1)의 거문고 줄이 끊어지는데
郢人斤堊知 영인(郢人)2)이 근악(斤堊)을 알까
並轡晦淵老 고삐를 함께 해서 회연(晦淵)에서 늙었고
隨君上玉墀 그대 따라 옥지(玉墀)에 올랐도다
獨來還獨去 홀로 왔다가 홀로 가니
踽踽我去誰 외로이 나는 누구를 보낼 것인고
街巷無從淚 길거리에 쫓을 곳 없는 눈물
可知深入慈 가(可)히 자애(慈愛)로운 정(情)이 깊이 들었음을 알레라
豊浦多濟溺 풍산(豊山)의 계에 빠지니 건져 주는 이 많고
仁厚普公私 마음이 어질고 무던하니 공(公)과 사(私)에 널리 알도다
食報天應矚 멀지 않은 갚음을 하늘이 응당(應當) 볼 것이니
充閭于氏兒
人言同成降
皈亦享同祺
有柳生吾肘
不悲能幾時 슬퍼하지 아니한들 능(能)히 몇 때인고
相逢雖未遠 상봉(相逢)이 비록 멀지 않으나
此別寧無噫 이 이별(離別)이 어찌 슬프지 않을까
我不一言訣 내가 한 마디의 영결(永訣)을 하지 아니하면
公應九地疑 공(公)이 응당(應當) 구천(九天)에서 의심(疑心)하리
擬爲床下奠 상 아래에서 한 잔을 드리고 싶으나
漬綿愧無資 체면(漬綿)을 하려해도 미쳐 못했네
耿耿長宵目 긴긴밤에 마음이 편(便)하지 아니한 눈으로
搆成數闋辭 두어 곡(曲)의 말을 구성(構成)해서
洋洋如不散 넓고 크게 해서 흩어지지 아니한 것 같으니
鑑我格于玆 나를 보아서 이에 응감(應感)하시리
주)1)종자기(種子期)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초(楚)나라 사람. 백아(白牙)가 타는 거문고를 들으면 반드시 그가 갖는 심정(心情)을 찰지(察知)하였으나 종자기(種子期)가 죽은 후(後)에 백아(白牙)는 자기(自己) 거문고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를 손에 대지 않았다 함.
2)영인(郢人) : 초(楚)나라 서울 사람.
동경제(同庚弟) 이효선(李孝善) 추만(追輓)
이효선(李孝善) 1880~1955년. 자(字)는 달원(達源), 부(父)는 재학(在鶴),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永稙-憲昌)
一哭山陽淚纔收 산양(山陽)에서 한번 곡(哭)을 하고 눈물을 겨우 거두려는데
公胡今又便長休 공(公)이 어찌하여 지금(至今) 또 길이 쉬게 되는고
聰明洞若證江月 총명(聰明)하고 깊기는 강(江)의 달을 깨달은 것 같고
氣局能容濟世舟 도량(度量)은 능(能)히 세상(世上)을 구제(救濟)하는 배도 용인할 것 같아
早日割鷄鄕面小 일찍이 할계(割鷄)1)하는 고을과 面(면)의 작은 일에도 주밀(綢密)2)하며
莫年刱學校庠優 노년(老年)에 학교(學校)를 창설(刱設)하고 모든 일에 넉넉하였도다.
傷心海變存亡恨 상심(傷心)이 되노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천(變遷)과 존망(存亡)의 한(恨)도
不獨交親念舊遊 친하게 사귀고 지난날에 같이 놀던 일을 홀로 생각지 않으랴
주)1)할계(割鷄) : 닭을 잡음. 즉 작은 일을 처리함.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고을의 원이 되어 있거늘 공자(孔子)께서 가서 보시니 현가(弦歌)의 소리가 들리거늘 공자(孔子)께서 할계(割鷄)하는데 어찌 우도(牛刀)를 쓰는고 하셨다는 말씀으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할계(割鷄)라 했고 큰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우도(牛刀)라고 하였음.
2)주밀(綢密) : 빽빽하게 들어섬
정제(情弟) 의성(義城) 김시욱(金時煜) 통곡배(痛哭拜) 만(輓)
天庭令資闡有名 타고난 그대로 뛰어나 자질(資質)은 유명(有名)하게 드러나
追先牖後繼家聲 선대(先代)를 추모(追慕)하고 후예(後裔)를 바라지해서 집안의 명성(名聲)을 이었도다
方言大小恩功施 바야흐로 크든 작든 간에 은공(恩功)을 베풀어
圓滿公私事業成 공사(公私)간에 원만(圓滿)하게 해서 사업을 이루었네
參子趨庭誠孝極 세 아들이 뜰에 허리를 굽혀 급히 가며 정성(精誠)스러운 효도(孝道)가 지극(至極)하고
諸孫需世學文明여러 손자(孫子)들이 세상(世上)에 수요(需要)해도 쓰일만하니 문덕(文德)이 빛나는 것을 배웠도다
鴒原莫慰違臨穴 동기(同氣)간 임혈(臨穴)1)에 어그러짐을 어찌 위로(慰勞)할고
倍切堪悲愧巨卿 배(倍)나 간절(懇切)하여 거경(巨卿)에게 부끄러워 슬픔을 견딜까.
주)1)임혈(臨穴) : 장사(葬事)때 광내에 영결(永訣)할 때
지상우(地上友) 죽계(竹溪) 안섭(安 燮) 재배(再拜) 곡만(哭輓)
儒賢咸仰望西翁 유현(儒賢)1)들이 모두 우러르는 망서옹(望西翁)은
十世承傳孝友風 십세(十世)를 전승(傳承)하며 효도(孝道)와 우애(友愛)의 가풍(家風)일세
墓刻崇碑亭突兀 묘(墓)에는 높은 비(碑)를 새겼고 높이 솟은 정자(亭子)
光前誠力孰如公 전대(前代)를 빛내는 정성(精誠)과 힘을 누가 공(公)과 같이 할고
胸運恢恢手所優 가슴은 광대(廣大)하고 여유(餘裕)가 있고 움직여 이용(利用)하는 솜씨도 우수(優秀)한 바로
公私事業果無儔 공사(公私)의 사업(事業)은 과연(果然) 짝하리 없어
稱家兒有難兄弟 이 가정(家庭)의 아이들은 알맞게 형(兄)과 아우를 분간하기 어려움이 있어
餘蔭庭前宝樹稠 남은 조상(祖上)에 은덕(恩德)의 뜰에 보배로운 수하(手下)의 자손(子孫)들의 나무가 빽빽하구나
好筒風儀好箇心 좋고 멋진 풍범(風範)과 용의(容儀)와 좋은 그 마음
暮年淸望屬吾林 노년(老年)에 청렴(淸廉)한 망수(望數) 우리 사림(士林)에 부쳤어라
分安戾洛非他事 분수(分數)에 편안(便安)하려 비틀어 떨어짐도 다른 일이 아니라
只爲諸孫學海深 다만 여러 손자(孫子)들을 위(爲)하여 배움이 바다처럼 넉넉함을 깊이 하리
何年三喚果槐亭 어느 해 괴정(槐亭)을 지내다가 세 번이나 불러내어
四皓聯笻一夜停 사호(四皓)2)처럼 지팡이를 연(連)해 하루 밤을 머물었네
醉後不知牕其曙 취한 뒤에 창(牕)이 밝혀지는걸 알지 못하고
殷勤○酒勸余醒 은근시리 ○ 술로 내가 깨기를 권(勸)하였네
槿域兵塵漲忽明 삼천리(三千里) 지역(地域)이 병진(兵塵)3)이 창일(漲溢)3)하다가 홀연히 밝혀지니
人人奔竄苦無涯 사람마다 숨기에 바빠 고생(苦生)도 끝이 없어
亂中同避南湖曲 난리(亂離)중에 함께 피란(避亂)을 남호곡(南湖曲)5)으로
語及餘生發一○ 남은 여생(餘生)말을 하려 한 ○ 발표(發表)했다
翛然歸臥晩雲岑 유연(翛然)히 돌아와서 만운(晩雲)의 산(山)에 누웠으니
聞說無何二竪侵 말을 들어보니 아무 일도 없이 이수(二竪)6)이 침법해서
拪屑未躬徒挹恨 자리가 완전(完全)하지 못해 ○ 한갓 한(恨)을 누르고
各天今日便零淫 오늘날 각각(各各)의 하늘이 되니 ○○○○
주)1)유현(儒賢) : 유교(儒敎)에 정통(正統)하고 언행(言行)이 바른 선비
2)사호(四皓): 상산(商山)의 사호(四皓). 진(秦)나라 말년(末年)에 전란(戰亂)을 위하여 협서성(陜西城) 상산(商山)에 은거(隱居)한 네 사람의 백발노인(白髮老人). 곧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각리선생(角里先生) ,기리계(綺里季) 등이다.
3)병진(兵塵) : 병란(兵亂)이 나서 풍진(風塵)이 일어남
4)창일(漲溢) : 물이 불어 범람(汎濫)하계 됨
5)남호곡(南湖曲) : 남(南)쪽 호수(湖水)의 마을
56)이수(二竪) : 질병(疾病). 병마(病魔). 진(進)나라 경공(景公)이 병(病)으로 누워 있는데 병마(病魔)가 아이 둘로 화신(化身)을 하여 왔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세제(世弟) 풍산(豊山) 유후식(柳厚植) 통곡재배(痛哭再拜) 추만(追輓)
유후식(柳厚植) 1887~1971년. 초명(初名)은 심영(心榮)이고 부(父)는 도헌(道獻)으로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 (慶一,大一)
爲訪寒天古渡濱 추운 하늘에 옛날 거닐던 물가를 찾아가니
屛居床褥久吟呻 병상(病床)에 은거(隱居)하여 오래도록 신음(呻吟)하니
暫逢却恨歸笻促 잠시(暫時) 만나고 발길 돌리기를 재촉하니 한(恨)스럽구나
猶信前期又在春 오히려 기일(期日)에 앞서서 또 만나기로 믿었더니
告別歸來未幾焉 작별(作別)을 고하고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蘭音遽至歲寒天 부음(訃音)이 문득 해가 다 되어 가는 날에 이르렀네
平生不出尋常淚 평생(平生)에 나가지 않고 범상(凡常)한 눈물만이
今日於公正涕泫 오늘날 저공에게 정말 눈물을 흘리네
朱陳知已有如公 주진(朱陳)1)을 이미 아는 공(公)과 같은 이 있어
逢輒相歡別恨同 만나면 문득 서로 반갑고 이별(離別)하는 한(恨)은 같아
幷世七旬如一夢 세상을 함께 한 칠십년(七十年)이 한 꿈결 같아
念來平昔摠成空 생각해 오든 일상(日常)이 다 빈 것 같구나
卓犖風儀寔見公 진실(眞實)로 우뚝한 멋진 풍채(風采)의 공(公)을 보니
達論弘量蘊胸中 통달(通達)한 여론(輿論)과 넓은 도량(度量)을 흉중(胸中)에 쌓아
經綸多小無人會 경영(經營)하고 처리(處理)함이 많고 적음을 남들이 알지 못하고
洛水鳴鳴逝不窮 낙동강(洛東江) 물은 명명(鳴鳴)2)히 끝없이 흐르네
古家規範○靑氈 옛집의 규범(規範)은 ○ 푸른 방석3)
亭榭新楣克守先 정자(亭子)의 문미(門楣)를 새롭게 하여 능(能)히 선세(先世)를 지켜
祖述遺篇猶未刊 조상(祖上)의 지은 유편(遺篇)을 오래 간행(刊行)을 못하고
病中頣指子孫傳 병중(病中)에도 지적(指摘)해서 자손(子孫)에게 전(傳)하라고 하였고
興校豊山孰有功 풍산(豊山)에 학교(學校)를 일으킨 것이 누구의 공(功)이 있었을고
偉然事業盡推公 위대(偉大)한 사업(事業)을 다 공(公)에게 미루었네
薤歌一唱黃壚路 상여(喪轝)소리 한번 불러 황천(黃泉)의 길에
數百生徒立雪中 수백(數百)의 생도(生徒)들이 눈 속에 섰네
주)1)주진(朱陳) : 주(朱)씨와 진(陳)씨가 한 동네에서 혼인을 지냈다는 말
2)명명(鳴鳴) : 물 흐르는 소리
3)푸른 방석 : 조상(祖上)때부터 물려받은 방석
사소제(査少弟) 연안(延安) 이세령(李世寧) 통곡배(慟哭拜) 만(輓)
不躋耄耋不曾憂 모질(耄耋)1)이라 같은 제배(儕輩)는 못한다고 일찍이 근심을 아니해
戱語相期笑點頭 농담(弄談)으로 서로 기약(期約)하며 웃으며 고개 쪼아
校塾堰堤留事業 학교(學校)앞의 제방사업(堤防事業)이 남아 있어
詩筵儒席做風流 시(詩)를 짓는 선비의 자리 풍류(風流)를 지어가네
忍孤吾輩長城恃 참고 괴로운 우리들은 만리장성(萬里長城)같이 믿었더니
遽向泉臺百鬼遊 문득 저승을 향해 많은 요귀(妖鬼)와 놀면서
平日盤桓三百路 평소(平素)에 두런두런 삼백(三栢)의 길에
無勞尋壑與經邱 구렁을 찾기 수고롭지 않아 더불어 지름길 언덕
주)1)모질(耄耋) : 늙어빠짐. 늙은이 백발. 80세 이상
정제(情弟) 풍산(豊山) 유치묵(柳致黙) 통곡배(痛哭拜) 만(輓)
유치묵(柳致黙) 1881~1954년. 자(字)는 국일(國一), 호(號)는 아거(我居)이고 부(父)는 동준(東濬)으로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 (旼夏,圭夏)
可憐今夜北風凉 가련(可憐)한 오늘 밤 북풍(北風)은 서늘한데
化羽翩翩何處鄕 우연(偶然)이 날개가 달려서 펄펄 날아 어느 곳의 고을인고
東土長沈公抱恨 동국(東國)가 기리 침체(沈滯)되어 공(公)의 한(恨)을 품었고
玉京爭奏斥秦强 옥경(玉京)1)에 다투어 주달(奏達)2)해서 진(秦)나라 강적(强敵)을 배척(排斥)하리
古賢家梩有肖孫 옛 현인(賢人)의 집 가운데 맏손자(孫子)자 있어
上繼貽謨下裕昆 위로 끼친 꾀를 잇고 아래로 넉넉한 후손(後孫)
雷夏風於文士集 우레 치는 여름이나 바람 부는 겨울에 문인(文人)을 모아
望西亭子仞餘門 망서정자(望西亭子)에 길이 넘는 문(門)일세
憶昔身遊萬戶冠 예전에 몸이 많은 집의 우두머리에 놀 때를 추억(追憶)하니
每人咸服盡情歡 사람마다 다 복종(服從)하니 정(情)을 다해서 기뻐하네
至今大堰垂千歲 지금(至今)에 큰 제방(堤防)이 천세(千歲)를 드리워
茂茂平原賴是安 풀이 성한 평원(平原)이 이를 의뢰(依賴)해 평안(平安)하리
趨庭淑鳳祐孫麟 뜻에 허리를 급히 굽혀 가는 현숙(賢淑)한 봉황(鳳凰)또 기린(麒麟)의 손자(孫子)
金玉聲中晩累塵 금(金)과 옥(玉)의 소리 중에 더러운 세상(世上)의 누(累)를 벗어나
從此車輪多輻輳 앞으로 차바퀴가 많이도 모여들어
一望門戶倍增新 한번 문호(門戶)를 바라보니 배(倍)나 더 새롭구나
公是吾家自出人 공(公)은 우리 집에 외손(外孫)이 된 사람으로
從姑旣歿早年春
無間相伏同衰暮 사이 없이 서로 의지(依持)해서 나이가 쇠약(衰弱)해지는 날
此日冰天淚下巾 이 날은 얼어붙은 하늘이 눈물만 수건(手巾)을 적시네
주)1)옥경(玉京) : 하늘에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산다고 하는 가상적(假想的)인 서울
2)주달(奏達) : 임금님께 아뢰는 일. 서류(書類) 등을 상급(上級) 관청(官廳)에 올려 보냄
종내종소제(從內從少弟) 안동(安東)장목희(張穆熙)통곡배(恫哭拜)만(輓)
白雪山阿歲暮時 흰눈 덮인 산아(山阿) 세모(歲暮)의 때에
萬人祖送北邙歸 만인(萬人)을 전송(餞送)1)하는 북망(北邙)으로 돌아가네
沒寧生順公何憾 살아서 편안(便安)하게 살면 죽어서도 편안(便安)하니 공(公)은 무슨 유감(遺憾)일고
暝道徊徨堪可嗟 어득한 길에 두런거리며 가(可)히 탄식(歎息)을 견딜까
又
停鸞峙鵠少監兒 제비새끼 머무는 듯 고니가 우뚝한 듯한 소감(少監:벼슬)의 아이
裕後仁人驗不差 어진 사람이 후예(後裔)를 넉넉하게 하는 징조(徵兆)를 경험(經驗)함을 그르치지 않으리
鷹峰秀色千年古 응봉(鷹峰)의 수려(秀麗)한 빛 천년(千年)이나 옛 모습인데
英魄固應穩妥其 영혼(靈魂)은 진실(眞實)로 응당(應當) 편안(便安)하고 평온(平穩)하리
주)1)전송(餞送) : 전별(餞別)하여 보낸
시교생(侍敎生) 김정서(金鼎瑞) 재배(再拜) 경만(敬挽)
難關事業許多經 난관(卵管)의 사업(事業)을 허다(許多)히 겪고
聲譽于今望八齡 소문(所聞)과 기림 지금(至今)가지 팔십(八十)을 바라보는 나이일세
獎學勤勞開兩校 장학(獎學)하려 부지런히 노력(勞力)하여 두 학교(學校)얼어
奉先心力起西亭 선조(先祖)를 받드는 마음과 힘으로 망서정(望西亭)을 일으켰네
洛上何時催盛會 낙동강(姜) 위에 어느 때 성대(盛大)한 모임을 재촉하여
面中今日弔英靈 면내(面內)에선 오늘날 영령(英靈)을 조상(弔喪)1)하네
人間此別誰無恨 인간(人間)의 이 이별(離別)을 누가 한(恨)이 없을고
慰以兒孫滿一庭아들과 손자(孫子)들을 위로(慰勞)하자니 한 뜰에 가득하구려
주)1)조상(弔喪) :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함을 표함
지상정우(地上情友) 풍산(豊山) 김병목(金秉穆)서주통곡배(西疇慟哭拜)만(挽)
김병목(金秉穆) 1881~1971년 자(字)는 문언(文彦)이고 부(父)는 낙귀(洛龜)이며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在敎)
栢山矗矗晩雲收 함백산(咸栢山)은 뽀족뽀족 만운(晩雲)을 거두어
我公疑是作仙流 우리 공(公)은 아마도 신선(神仙)의 유(流)였는가
事業長餘豊野堡 사업(事業)은 길이 남아 풍산평야(豊山平野)를 막고
誠心不匱望亭秋 성심(誠心)은 다하지 않아 망서정(望西亭)의 가을일세
情契多輸親友伴 정계(情契)1)를 많이 실어 친우(親友)를 벗하고
勞功爭頌學生儔 공로(功勞)를 다투어 칭송(稱頌)한느 학생(學生)들일세
塵世全歸須勿恨 티끌의 세상(世上)에 온전(穩全)히 돌아가니 모름지기 한(恨)을 말고
賢郞次第繼家猷 현랑(賢郞)2)들이 차례로 집안의 명성(名聲)을 이어가네
주)1)정계(情契) :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온 정)로 맺어진 계의(契誼).
2)현랑(賢郞) : 남의 아들의 존칭(尊稱)
정제(情弟) 안동(安東) 권중석(權重碩) 통곡배(慟哭拜)만(輓)
鷹東晩築洞深雲 응봉(應峰)의 동(東)에 구름 깊은 마을에 늦게 지으니
亭榭田園柿栗蕡 정사(亭榭)1)의 전원(田園)에 감과 밤이 주렁주렁
爭說望翁遺蔭大 다투어 말하기를 망옹(望翁:승지공)의 음덕(蔭德)이 크구나
重與祖業孰如君 거듭 조상(祖上)의 유업(遺業) 누가 그대와 같을고
黌舍營營積十年 학교(學校)를 여기저기 십년(十年)을 쌓은 공로(功勞)
槐亭之北鳳臺前 괴정(槐亭)의 북(北)쪽 봉대(鳳坮)의 앞에
群蒙有識公心苦 뭇 아이들 공(公)의 고생(苦生)을 알고 있을까
只愛通行距里便 다만 통행(通行)의 거리(距里)가 편리(便利)함이라
漆髮交遊到說鬈 검은머리 교유(交遊)해서 수염이 눈 같으니
公私何事不相援 공사간에 어느 일인들 서로 원조(援助)하지 않았으랴
那知此路嗟先後 이 길에 앞뒤가 있어 슬픔을 어찌 알았을고
獨步寒山我洟漣 홀로 차가운 산(山)을 거닐으니 내 눈물 줄줄 흐르네
주)1)정사(亭榭) : 정원(庭園)에 놀이터를 만든 자그마한 정자(亭子)
정우(情友) 풍산(豊山) 김이섭(金履燮) 통곡(慟哭)만(輓)
김이섭(金履燮) 1886~1958년 자(字)는 경후(景厚)이고 부(父)는 병호(秉灝)이며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日鉉)
一年二夜曉星空 일년(一年)에 이틀 밤은 새벽 별이 없어
再從俄歸繼又同 재종(再從)이 문득 가고 또 이어서 함께 가네
豎石先瑩垂拜位 선영(先塋)에 돌을 세워 절하는 자리까지 미치니
起亭今日不虧功 정자(亭子)를 일으켜 오늘날 공로(公路)가 이지러지지 아니하네
多方興學知新後 여러 방면(方面)으로 학교(學校)를 일으켜 신지식(新知識)을 후인(後人)에게 알려
濟衆始公未睱中 모든 사람들을 구제(救濟)하려 시공(始工)하느라 알맞은 여가(餘暇)를 못해서라
更慾承顔何世有 다시 접견(接見)을 하고자하나 어느 세월에 있을고
紫荊花待復春風 박태기나무에 꽃이 필까 가시 봄바람을 기다리네
사계(舍季) 낙범(洛範) 재배통곡배(再拜慟哭拜)만(輓)
有美懸空特地崇
百年間流賦吾公 백년(百年)사이를 흘러 우리 공(公)이 타고 났네
胸藏大庇詞臣厦
夢入太淸上帝宮 꿈에 태청궁(太淸宮)에 들어가니 상제(上帝)의 궁궐(宮闕)인듯
留學兒童蒙惠雨 아동(兒童)들을 유학(留學)시켜 두 가지 혜택(惠澤)을 입혀
滿庭蘭玉見遺風 뜰에 가득한 자녀손(子女孫)에게 끼쳐진 풍습(風習)을 볼레라
追惟簿牒同馳逐 오직 추종(追從)하면서 장부(帳簿)에 적혀 있는 것에 함께 달려가서 쫓으니
譽處推人毁處躬 기리는 곳은 남에게 미루고 헐뜯는 곳은 몸소 했다
시하생(侍下生) 안동(安東) 권기성(權奇性) 재배(再拜) 경만(敬挽)
권기성(權奇性) 1897~1978년 자(字)는 선필(善必), 호(號)는 능암(陵菴)이고 부(父)는 오봉(五鳳)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佳稷-鼎九, 龍九, 駿九)
雪山輕此夜 눈 덮인 산에 가벼운 이 밤
公去也丁寧 공(公)이 가신지 정녕(丁寧)하구나
風悲雲北社 슬픔바람과 북(北)쪽 사회(社會)의 구름은
月落望西亭 달이 지는 망서정(望西亭)일세
聲譽黌舍翼 소문(所聞)과 명예(名譽)는 학교(學校)의 날개요
治績口碑銘 치적(治績)은 입으로 비(碑)를 새겨라
不食臻臻慶 무성(茂盛)한 경사(慶事)는 없어지지 아니해서
孫曾却滿庭 손자(孫子) 증손(曾孫)은 문득 뜰에 가득하구나
疎慵知愛重 소홀(疎忽)하고 용렬(慵劣)하나 사랑이 소중(所重)함은 알고
一巷七旬春 한마을 거리에서 칠십년(七十年)의 봄이었네
詩成花發處 시(詩)도 이루고 꽃이 필 곳에
碁罷水流濱 바둑을 파(罷)하는 물 흐름의 물가일세
安危須互仗 편안(便安)함과 위험(危險)함을 모름지기 서로 의지(依支)하고
氣味乃相因 기미(氣味)가 이에 서로 인연(因緣)했구나
自此幽明隔 이로부터 이 세상(世上)과 저 세상(世上)이 막혔으니
餘慶爲孰陳 남은 경사(慶事)를 누구 위(爲)해 진술(陳述)할고
지상우(地上友) 진성(眞城) 이의식(李宜植) 통곡(慟哭)만(挽)
吾鄕章甫忽齎咨 우리 고을의 선비들 홀연(忽然)히 탄식(歎息)하네
爲說山南晩老悲 산(山)의 남(南)에 만운(晩雲)의 노인(老人)이 슬프다고 말을 할까
歲暮風埃孤權返 세모(歲暮)의 바람과 티끌에 외롭게 권력(權力)을 돌이키려니
夜深書燭短簾垂 밤 깊은 서당(書堂)의 촛불은 짧은 주렴을 드리웠네
濬川十里流民利 준천(濬川)1)의 십리(十里)에는 유민(流民)들 이익(利益)이 되고
設序一方養士奇 한 편으로 학교(學校)를 설립(設立)하여 선비를 양성(養成)하니 기특(奇特)하구나
福善仁天亶不爽 복선(福善)과 인천(仁天)이 믿었게 상쾌(爽快)하지 않을까
滿庭蘭玉摠㽔葳 뜰에 가득한 자손(子孫)들 다 더부룩하고 무성하구나
세하생(世下生) 선성(宣城) 이용구(李用龜) 통곡재배(慟哭再拜) 만(挽)
爽若秋容藹若春 상쾌(爽快)하기는 가을모습 같고 애연(藹然)하기는 봄날 같아
軒軒氣宇淨無塵 출중(出衆)한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티끌 없이 맑아
先亭翼翼輝前烈 선대(先代)의 정자(亭子)를 공경(恭敬)하고 삼가 유훈(遺訓)을 빛내고
鄕序揚揚惠後仁 향교(鄕校)의 집이 양양(揚揚)해서 후인(後人)에게 은혜(恩惠)롭구나
歲暮江湖閒日月 해 저무는 강호(江湖)의 한가(閑暇)한 일월(日月)
夜深書燭穩精神 야간(夜間)의 서당(書堂)의 촛불 온전(穩全)한 정신(精神)일세
八旬歸順曾何憾 팔순(八旬)에 쉽게 돌아가니 일찍이 무슨 감회(感懷)일고
且有滿庭善繼人 또한 잘 이어갈 사람들이 뜰에 가득하구나
주)1)준천(濬川) : 내를 파서 깊이함
세하생(世下生) 선성(宣城) 이대열(李大烈) 통곡재배(慟哭再拜) 만(挽)
이대열(李大烈) 1896~1968년. 자(字)는 성재(聖哉), 부(父)는 병인(秉仁),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會泳)
木老村閒澗瀉淸 나무는 늙고 마을에 한가한 도랑물이 맑게 흐르는
晩山雲物昔如明 만운(晩雲) 산(山)의 경치(景致)는 내일도 옛날과 같아
樓臺猿鶴無人管 누대(樓臺)에 원숭이와 학(鶴)은 관리(管理)하는 사람이 없어
歲暮天穴凍雪橫 세모(歲暮)의 찬 하늘인데 얼어 있는 눈만 날리네
魁梧倜儻貌如心 오동(梧桐)처럼 빼어나고 기개(氣槪)가 있어 모양과 마음이 같이
鄧植超存枳棘林 등림(鄧林)1)에 탱자나무의 가시를 뛰어 넘어 존재(存在)하도다
任合棟樑需世用 동량(棟樑)이 세상(世上)에 수요(需要)해도 쓰일만한 것이 책임(責任)에 합당(合當)하니
令人知識不知深 사람으로 하여금 지식(知識)의 깊음을 알지 못하네
孫能爲孝祖其尊 손자(孫子)가 능(能)히 효도(孝道)하니 그 조상(祖上)을 높혀
石語眉顔事事敦
三百年今恢拓大 삼백년(三百年)인 지금(至今)에 크게 날리 개척(開拓)하여
有聞皆謂有人門 들음이 있는 이는 모두 사람이 있는 문호(門戶)라고
恤民餘手又開蒙 백성(百姓)을 구휼(救恤)하든 남은 손으로 또 아이들을 열어주려
半生專力盡委公 반평생(半平生)에 전력(專力)이 모두 공(公)에게 맡겨졌네
至今遺蹟豊城畔 지금(至今) 유적(遺蹟)이 풍성(豊城:풍산)의 경계에서
輿誦成稱身後功 여론(輿論)으로 외우는 죽은 후(後)에 공(功)으로 칭송(稱頌)하네
忘年契誼老愈新 나이도 잊은 소로의 정의(情誼)는 늙을수록 더욱 새로와
對輒懽欣若別人 대(對)하면 기뻐하는 별(別)다른 사람 같아
病裡申勤情素語 병중(病中)에 두세 번한 본시(本是)의 정화(情話)가
那知相握更無因 서로 악수(握手)한 인연(因緣) 다시 없을 것을 어찌 알았을고
주)1)등림(鄧林) ; 초(楚)나라 북경(北境)에 있는 유명(有名)한 삼림(森林)
정소제(情少弟) 선성(宣城) 이회춘(李會春) 통곡배(慟哭拜) 만(挽)
이회춘(李會春) 1880~1955년. 자(字)는달원(達源), 호(號) 서산(曙山)이며 부(父)는 재학(在鶴),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銖稙)
毅然其氣藹然姿 의연(毅然)1)한 그 기개(氣槪)와 애연(藹然)한 자질(資質)이
庭出吾鄕一老師 우리 고을에 뛰어난 한 늙은 스승일세
半世苦心公益事 반평생(半平生)의 고심(苦心)이 공중(公衆)의 이익(利益)의 일이요
八方雷口頌仁辭 팔방(八方)에서 우레 같은 어진 소문(所聞)으로 송덕(頌德)하네
滿天塵雨回船急 하늘 가득한 진우(塵雨)2)가 회선(回船)하기에 급(急)해서
僻地庄園聽水時 벽지(僻地)의 장원(庄園)에는 물소리를 들을 때일세
寶樹庭前遺蔭厚 자손(子孫)이 뜰에 가드하고 조상(祖上)의 덕(德)이 후(厚)하여
全歸此日不須悲 온전(穩全)히 돌아가는 이날 모름지기 슬프지 않을까
주)1)의연(毅然) ; 지조(志操)가 굳고 끄떡없는 모양
2)진우(塵雨) : 더러운 세상(世上)의 비
소제(少弟) 선성(宣城) 이회복(李會輻) 재배(再拜) 만(挽)
이회복(李會輻) 1891~1974년. 자(字)는 원필(元弼), 호(號) 만사(晩沙)이며 부(父)는 재두(在斗),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匡稙)
靈地名聞七十秋 신령(神靈)한 땅 이름난 구역(區域)에 칠십년(七十年)인데
公何棄世上仙樓 공(公)이 어찌하여 세상(世上)을 버리고 신선(神仙) 누(樓)로 올라 가셨는가
報國餘忠無者繼 나라에 갚는 남은 충성(忠誠)을 계승(繼承)할 자(者) 없고
爲民深澤有誰收 백성(百姓)을 위(爲)하는 깊은 혜택(惠澤) 누가 있어서 거둘 것인가
門惟今日棟先折 오직 문중(門中)의 오늘날 기둥이 먼저 꺽어지니
生亦於時淚自流 저 이런 때에 살았으니 눈물이 자연(自然)히 흐르네
四憐瞻仰猶未洽 사방(四方)에서 애달파 존경(尊敬)하고 사모(思慕)하니 오히려 흡족(洽足)하지 아니해
怊悵輀歌下空州 상여(喪輿)소리에 초창(怊悵)1)하며 빈집으로 내려오네
주)1)초창(怊悵) : 원망(怨望)하는 모양. 서로 바라는모양. 실심(失心)한 모양
휼하생(恤下生) 광주(光州) 노희순(盧熙淳) 재배곡(再拜哭) 만(輓)
鷹峯崔嵂谷雲深 응봉(鷹峰)은 높고 가파르며 계곡(溪谷)의 구름이 깊어
育氣盤桓種여林 기른 듯한 기(氣)를 머뭇거리며 녹나무 숲을 심었도다
罕世良材終有售 세상(世上)에 어진 재주가 마침내 팔릴 곳이 있어
防山防水導民心 산(山)을 막고 물을 막아 백성(百姓)의 마음을 인도(引導)하리
又
政庭如水洒無塵 훌륭한 정치(政治)의 뜰에 물과 같이 물을 뿌려 티끌이 없어
校塾多成學日新 학교(學校)의 집 이루어 학문(學問)이 날로 새로워지네
人事甡甡爭頌德 인사(人事)는 간혹(間或) 가다가 송덕(頌德)을 다투고
英名垂世也彬彬 뛰어난 이름 세상(世上)에 끼쳐 잘 되어 나가리라
又
望西亭立望先瑩 망서정(望西亭)에 서서 선영(先塋)을 바라보니
十尺碑顔聳古城 십척(十尺)의 비면(碑面)이 고성(古城)에 솟았구나
懿蹟明文獀卷積 아름다운 자취를 명문(明文)1)으로 책(冊)을 모아 쌓아서
千秋高讀月朝評 오래고 긴 세월(歲月)에 높이 읽어 달뜨는 아침에 평론(評論)하리
又
漢城寓槖返遲遲 한성(漢城)의 우소(寓所)에 낭탁(囊橐)2)도 돌아오기 더디고 더뎌
乖雨狂風到不時 괴상(乖常)한 비와 미친 바람이 불시(不時)에 이르러
役役修程崇有作 고달픈 먼길에
毬床經歲藥無差
우(又)
外族惟公獨愛吾 오직 공(公)이 홀로 외족(外族)인 나를 아껴
有時休慽必徵呼 때때로 근심걱정이 있으면 반드시 나를 불러
終知這遏成天古 마침내 그침을 알고 오랜 옛적에 이루어
萬事如今一夢吁 만사(萬事)가 지금(至今) 같이 꿈결인가 답답하구나
又
雲翁家學不虛踈 만운옹(晩雲翁)은 가정(家庭)의 학문(學問)을 소홀(疎忽)하지 않아
儒素風流到處煦 유소(儒素)3) 풍류(風流) 도처(到處)에 따뜻하구나
何時更尋春一氣 어느 때 다시 찾을까 봄의 기운(氣運)이
典型遺在舊庭除 모습이 옛 뜨락에 끼쳐 있도다
又
鄕面指推善福家 향중(鄕中)과 면내(面內)에서 복선가(福善家)로 미루어 생각하며 지목(指目)해서
滿堂巾經立如麻 집안 가득하게 건경(巾經)4)이 삼밭 같이 섰구나
七旬健力元難賦 칠순(七旬)의 건강(健康)한 힘 원래(元來) 펴기 어려워
至化精神一不遮 지극(至極)한 감화(感化)의 정신(精神)한 바도 가리지 못할레라
又
輓弔旌詞踏雪程 만사(輓詞)와 조사(弔詞)를 받쳐들고 눈길을 밟고
村廚煙斷野舂停 마을의 부엌에 연기(煙氣)가 끊어지고 들에 방앗간도 멈쳤네
精靈也愛多成立 정령(精靈)이 아끼고 성립(成立)이 많은데
莫使薤歌促古扃 하여금 상여(喪輿)소리로 옛 문호(門戶) 재촉하는가
주)1)명문(明文) ; 똑똑하게 문장(文章)을 나타냄. 명백(明白)하게 증거(證據)가 될 문장(文章)0
2)낭탁(囊橐) : 자루. 대
3)유소(儒素):유자(儒者)의 평소(平素)의 행동(行動)
4)건경(巾經) ; 두건(頭巾)을 쓰고 요질(腰紩)한 것. 상주(喪主)
표재종(表再從) 선성(宣城) 이재희(李在禧) 재배(再拜) 경만(敬挽)
이재희(李在禧) 1896~1962년. 자(字)는 성도(聖禱), 부(父)는 택효(宅斅),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會璋-明洙)
四百年庄晩數寮
任公雲物互相撩
軒軺小碎崇雙面
門閥初通轄四轑
時㙉香馨來麝鹿
世巾庄跡果鶬鷯
治餘利博阡池壯
雪月風情一夜寥 눈위에 내려 비치는 달의 풍정(風情)이 하루 밤에 쓸쓸하구나
지상시하생(地上侍下生) 김원식(金元植) 재배(再拜) 만(輓)
望西亭下一衡扉 망서정(望西亭)아래 한 형문(衡門)1)의 삽짝
講樹依依習鳥飛 강의(講義)하는 나무 밑에 의의(依依)한 습조(習鳥)가 날아가네
養得書生閑日月 서생(書生)을 얻어 기르니 일월(日月)4)은 한가(閑暇)하고
營來事業順天幾 경영(經營)해 오든 사업(事業) 천지(天地)의 기밀(機密)을 순응(順應)하야
寧知拙分惟耕鑿 어찌 졸열(拙劣)한 분수(分數) 오직 경착(耕鑿)5)인데
不識塵區有是非 더러운 구역(區域)알지 못하고 시비(是非)가 있을까
抑抑風儀何處復 신중(愼重)한 멋진 풍채(風采)는 어느 곳에서 다시 볼까
丹旗飄拂淚沾衣 명정(銘旌)이 펄럭이니 눈물만이 옷을 적시네
주)1)형문(衡門) : 은자(隱者)가 사는 곳
2)의의(依依) : 안타까이 사모(思慕)하는 모양. 헤어지기 섭섭한 모양. 마음이 설레는 모양. 나뭇가지 휘늘어진 모양
3)습조(習鳥) : 새가 나는 것을 익히는 것
4)일월(日月) : 해와 달. 날짜. 세월(歲月)
5)경착(耕鑿) : 우물을 파서 갈고 농사(農事)를 지음
시하생(侍下生) 안동(安東) 권병남(權丙南) 통곡재배(慟哭再拜) 만(挽)
권병남(權丙南) 1899~?년 자(字)는 극노(極老), 부(父)는 철수(喆銖)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重烈- 泰壽)
蘭薰其氣玉蘊姿 난초(蘭草)의 훈기(薰氣)같은 그 기개(氣槪)와 온옥(蘊玉)같은 자태(姿態)
叔世堪爲典範持 말세(末世)의 본보기를 가지게 되었도다
况是環豊多事業 하물며 이 풍산(豊山) 전역(全域)에 많은 사업을 하였는데
百年不朽有其辭 백년(百年)이나 그 말이 있으니 예쁘지 않으랴
北風號怒雪飄揚 북풍(北風)이 성이나 부르듯 눈보라 휘날리며
薤露聲中歲色忙 상여(喪輿)소리 가운데 해사 다가가는 무렵에 바쁘구나
今天浩往無餘憾 지금(至今)의 천지(天地)에 태연(泰然)히 가니 남은 감화(感化)가 없을 듯
况復蘭庭降百祥 하물며 다시 자손(子孫)에게 백(百)가지 상서(祥瑞)로움을 내리리
세하생(世下生) 선성(宣城) 이병호(李秉灝) 통곡(慟哭) 경만(敬挽)
이병호(李秉灝) 1898~1955년. 자(字)는 맹순(孟淳), 부(父)는 청일(淸一),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光玉)
稀齡七十二年加 희년(稀年)인 칠십(七十)에 이년(二年)을 더해
飄學仙姿鬢雪華 훌쩍 떠나는 두루미의 자태(姿態)가 귀밑머리 눈처럼 빛나도다
學舍積功推首席 학사(學舍)에서 공적(功績)을 쌓아서 수석(首席)으로 추대(推戴)하고
望亭詩禮數名家 망서정(望西亭) 시례(詩禮)는 명가(名家)로 셀 수 있네
萼樓堪樂三幃棣 형제(兄弟)간에 누(樓)에서 즐겁게 지내는 삼형제(三兄弟)
蘭礎㽔葳四季花 난초의 주추 더부룩한 사계절(四季節)의 꽃이 되어
幾度庬床申舊契 몇 번이나 형제(兄弟)간 상(床)을 연(連)해서 구계(舊契)를 거듭하니
薤歌一幅後生哀 상여(喪輿)소리 한 폭에 후생(後生)들이 슬퍼하네
세하생(世下生) 선성(宣城) 이장선(李章善) 통곡재배(洞哭再拜) 만(挽)
이장선(李章善) 1906~1974년. 자(字)는 대여(大汝), 부(父)는 용제(用濟),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東秀)
稟性溫仁孝友先 품성(稟性)이 온순(溫順)하고 어질어 선대(先代)부터 효도(孝道)하고 우애(友愛)해서
吾林喬嶽挺巍然 우리 유림(儒林)의 높은 산 같이 인격(人格)이 특히 뛰어 나도다
爲蒙設校遺謨大 아이 위해 학교(學校)를 설립(設立)하니 끼친 계획(計劃)은 크고
濟衆勞思施澤專 여럿을 구제(救濟)하느라 수고롭게 생각했으니 혜택(惠澤)도 오로지 베풀어서
曾祝壽星長耀彩 일찍이 수성(壽星)1)에게 빌어 기리 빛이 비취더니
何知夜夢忽成仙 어찌 간밤의 꿈에 홀연(忽然)히 신선(神仙)이 되었어라
永無今日依歸地 영구(永久)히 오늘날 의뢰(依賴)하여 따라 곳 없으니
題此哀辭淚自垂 이 애사(哀詞)2)를 쓰자니 눈물이 자연 흐르네
주)1)수성(壽星) : 수(壽)를 하는 별
2)애사(哀詞) : 죽음을 슬퍼하는 글
시생(侍生) 청주(淸州) 정무섭(鄭武燮) 재배(再拜) 경만(敬挽)
정무섭(鄭武燮) 1894~1983년. 자(字)는 문보(문甫)이고 부(父)는 봉흠(鳳欽)이며 본관(本貫)은 청주(淸州)이다. (昌錫,晋錫)
如岳其儀耿介姿 산악(山岳)같은 그 威嚴이 있는 몸가짐과 경개(耿介)1)한 자질(資質)로
古家模範保弓箕 고가(古家)2) 모범(模範)으로 궁기(弓箕:가업(家業))을 보유(保有)했다
睦婣親戚傾和悅 친척간(親戚間)에 화목(和睦)하고 화열(和悅)3)을 기우리고
忠信交人例不知 진심(眞心)을 다하고 거짓이 없이 사람을 사귀며 사례(事例)를 알지 못하네
建校成功群學進 학교(學校)를 세워 성공(成功)하니 뭇 학도(學徒)나아오고
爲防竣築廣河支 방축(防築)4)을 준공(竣工)해서 넓고 큰물을 버티었네
無驗蒼天觀化日 경험(經驗)이 없는 창천(蒼天)5)으로 돌아가는 날에
一鄕士友總深悲 한 고을의 선비 벗들이 모두 깊이 슬퍼하네
주)1)경개(耿介) : 덕(德)이 널리 빛나 위대(偉大)함. 절조(節操)를 굳게 지켜 세속(世俗)과 구차스럽게 화합(化合)하지 않음.
2)고가(古家) : 여러 대(代)를 두고 지체 높이 잘 살아온 집. 지은지 오래된 집
3)화열(和悅) : 마음이 화평(和平)하며 기뻐함
4)방축(防築) : 방죽. 물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
5)창천(蒼天) : 푸른 하늘. 봄 하늘. 하느님. 천제(天帝). 조물주(造物主)
계소제(契少弟) 밀양(密陽) 박진춘(朴震春) 경만(敬挽)
發外存中理莫違 중심(中心)에 존재(存在)하여 외부(外部)에 발(發)함이 이치(理致)를 이기지 못해
恢張門戶洞開扉 문호(門戶)를 넓히고 별려 동내(洞內)에 삽짝을 열어
闡先備盡仁明責 선조(先祖)를 천양(闡揚)1)하는 어짐을 밝히는 책임(責任)을 다 갖추어
裕後亦云福祿肥 후손(後孫)에게 넉넉하고 또한 복록(福祿)이 살찐다 이르리
憐才愛士風猶厚 애달픈 재주의 선비를 사랑하며 풍습(風習)은 오히려 후(厚)한데
好是急人德不微
今私歷診還如夢 지금(至今) 사사(私私)롭게 가서 물으니 도리어 꿈결 같구나
雪月緘詞淚一揮 설월(雪月)에 만사(輓詞)2)를 보내니 눈물을 한번 뿌리리
주)1)천양(闡揚) : 명백(明白)하게 들어 나타냄
2)만사(輓詞) :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
지상정우(地上情友) 안동(安東) 권중한(權重漢) 통곡배(慟哭拜) 만(挽)
권중한(權重漢) 1885~1956년 자(字)는 문백(文伯), 호(號)는 동천(東泉)이고 부(父)는 인석(仁錫)으로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寧博-五珍,五亨,五信. 寧卓-五叙,五疇,五一. 寧準-五三,五赫)
憶昔槐亭陪話時 예전 괴정(槐亭)에서 모시고 말씀할 때를 생각하니
雍容處事是天姿 화락(和樂)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處理)함은 타고난 모습일세
八旬偕老人皆仰 팔순(八旬)에 해로(偕老)1)하니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고
三棣連床衆所推 삼형제(三兄弟)가 상(床)을 연(連)했으니 여럿이 추앙(推仰)하는 바이다
萬卷詩書眞活計 만권(萬卷)의 시서(詩書)가 참으로 생활(生活)인걸
一區田土足營爲 한 구역(區域)의 논밭을 족(足)히 경영(經營)하노니
寒山風雪丹旌擧 차가운 산(山)의 눈바람에 명정(銘旌)을 들고 가니
哭送靈輀淚自垂 울면서 상여(喪輿)를 보내니 눈물이 자연(自然) 흐르네
주)1)해로(偕老) : 부부가 일생을 함께 늙음
세하생(世下生) 영양(英陽)남상호(南相鎬)통곡재배(痛哭再拜)경만(敬挽)
남상호(南相鎬) 1896~1993년 자(字)는 좌경(佐卿)이고 호(號)는 성제(誠齌)으로 부(父)는 영수(永洙)이며 본관(本貫)은 영양(英陽)이다. (時德)
風儀磊落溪胸襟 멋진 풍채(風采)에 공명정대(公明正大)해서 활달(豁達)한 심중(心中)
治積吾鄕賴及今 치적(治績)이 우리고을에 지금(至今)까지 힘입었네
可合經綸須盡力 경륜(經綸)1)이 합당(合當)하니 모름지기 힘을 다해서
無端毁譽不關心 까닭이 없는 훼방(毁謗)과 칭찬(稱讚)에 관심(關心)을 아니하네
兒童學業謀宮設 아동(兒童)의 학업(學業)을 위(爲)해 집을 지으려고 계획(計劃)하고
賓友交情對酒斟 손님과 벗 사귀는 정(情)에 술을 대(對)해 권(勸)하네
人間五福終辭去 인간(人間)의 오복(五福)을 마침내 사양(辭讓)하고 가니
寂寞雲山雪月沈 적막(寂寞)한 운산(雲山)2)에 구름에 가리운 달만 침침하구나
주)1)경륜(經綸) : 천하(天下)를 다스림. 일을 조직적(組織的)으로 잘 경영(經營)함
2)운산(雲山) : 그름에 잠겨 있는 산(山)
지상손우(地上損友)풍산(豊山)김병철(金秉澈)춘포(春圃)통곡재배(慟哭再拜)만(輓)
김병철(金秉澈) 1885~1953년 자(字)는 경거(景擧)이고 부(父)는 낙헌(洛獻)이며 본관(本貫)은 풍산(豊山)이다. (在衡-原永)
洛水東西漭蒼間 낙동강(洛東江) 동서(東西)의 근교한 사이
同居十世一家看 함께 십세(十世)를 살아서 한집으로 보나니
起樓極盡追先孝 누(樓)를 지어 선조(先祖)를 추모(追慕)하는 효도(孝道) 극진(極盡)하고
置酒疑催接友歡 술을 두고 친구와 만나기를 재촉하네
又
手自斡旋能富厚 손으로 국면(局面)을 알선(斡旋)하니 능(能)히 풍부(豊富)하고 후(厚)하고
身常通泰老安閒 몸소 항상(恒常) 통(通)하고 태연(泰然)하니 늙어서도 편안(便安)하고 조용하구나
向來歌喚追遊地 여태까지 노래하고 부르며 추종(追從)하며 놀던 자리
敗柳衰楓夕照寒 버들잎 떨어지고 단풍(丹楓)은 쇠(衰)했는데 저녁 빛이 차구나
又 우
爽朗頎然白哲人 상쾌(爽快)하고 명랑(明朗)한 헌칠한 허연 사람
襟懷溫雅穩生春 가슴속 온아(溫雅)함 온전(穩全)히 봄별이 나는 듯
最中樹立尤難及 가장 중심(中心)에 수립(樹立)되어 더욱 미치기 어렵구나
大小公私事業身 대소(大小)의 공사간(公私間)에 사업(事業)하는 몸일세
又 우
生平難事賴公圖 평생(平生)에 어려운 일 공(公)을 힘입어 도모(圖謀)하니
暮道失公誰與諏 모도(暮道)1)에 공(公)을 잃으니 누구와 더불어 물어볼까
床褥多時違一診 잠자리에 오래였으나 한번도 문병(問病)은 못해
賴公吾是負公吾 내가 공(公)을 의뢰(依賴)하나 이는 우리 공(公)에게 저버렸네
又 우
載送靈輀歸北邙 상여(喪輿)에 실어 북망(北邙)으로 들여보내고
塵寰萬事日炊梁 더러운 세상(世上)의 만사(萬事)가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듯
炊梁未熟人何處 밥을 지으려니 미숙(未熟)하고 사람은 어느 곳에 있는고
落月依俙下屋樑 떨어지는 달이 어렴풋이 지붕에 내려오네
又 우
近日豊城厄會生 근일(近日)에 풍성(豊城:풍산)에 불행(不幸)한 고비가 생겨
晩翁長作各天氓 만운옹(晩雲翁)이 기리 각각(各各)의 하늘에 백성(百姓)이 되었네
奚論與世羣豪傑 어찌 뭇 호걸(豪傑)과 더불어 세상(世上)을 논(論)할고
可見於家子孝誠 가(可)히 저 집에 자식(子息)을 효성(孝誠)을 볼 수 있네
又 우
十載公門人不怨 십년(十年)을 공문(公門)에 출입(出入)하니 사람들은 원망(怨望)을 아니하고
一心中學校完成 한마음에 중학교(中學校)를 완성(完成)하고자하였네
七旬穩享無餘憾 칠순(七旬)을 온전(穩全)히 누렸으니 남은 감회(感懷)가 없을 것이나
莫測鄕隣慟哭聲 고향(故鄕)의 이웃의 통곡(慟哭)소리 헤어릴 수 없네
주)1)모도(暮道) : 늦은 길에. 곧 죽어갈 무렵
정제(情弟) 선성(宣城) 이회만(李會萬) 재배(再拜) 만(挽)
이회만(李會萬) 1888~1964년. 자(字)는 경필(慶弼), 부(父)는 재두(在斗),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憲一)
蘭書如夢到荊扉 부고(訃告)가 꿈결같이 가시나무 삽작에 이르니
鯨駕迢迢去未歸 크게 멍애 메워 멀리멀리 돌아가리
白雪空山殘照裡 흰눈 공산(空山)1)의 저녁볕 속에
丹旌愁見遠揚輝 명정(銘旌)은 시름답게 멀리 나부끼네
右
淡潔襟懷矍鑠身 깨끗한 가슴속의 원기(元氣)가 왕성(旺盛)한 몸
風流譚笑座成春 담소(談笑)하는 풍류(風流)는 좌석(座席)에 봄을 이루어
寬容汎愛終多驗 관용(寬容)하고 넓이 사랑해 마침내 경험(經驗)이 많아
賢士東南摠結親 현인(賢人)들 동남(東南)에서 모두를 가까운 정의(情誼)를 맺네
右
豊城文藝久書空 풍성(豊城:풍산)의 문예(文藝) 오래도록 서당(書堂)을 비워
黌舍新粧賴我公 학교(學校)를 새로 단장(丹粧)함도 우리 공(公)의 힘이어야
養出英才偉業積 영재(英才)를 길러내는 위대(偉大)한 업적(業績)
口碑得頌萬人同 입으로 비(碑)를 얻어 외워서 만인(萬人)이 다함께
右
玉蘭璀璨滿庭華 백목련(白木蓮) 빛나는 모양 뜰에 가득히 빛나
况復孫曾次第佳 하물며 손자(孫子) 증손(曾孫) 차례(次例)로 아름다워
穩過稀年高擧地 온전(穩全)히 희년(稀年:나이칠십) 지내고 높이 들이는 처지(處地)
世間淸餉比無加 세간(世間)에 맑은 복(福)을 누림을 비교(比較)가 없을로다
주)1)공산(空山) : 사람이 살지 않는 산중(山中)
통가하생(通家下生) 선성(宣城) 이준길(李準吉) 통곡재배(慟哭再拜) 만(挽)
이준길(李準吉) 1890~1974년. 자(字)는 경재(慶哉), 호(號)는 백농(白農)이며 부(父)는 회종(會種),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南稙)
海天風雪閉藏辰 바닷가의 눈바람 우주(宇宙) 만물(萬物)을 숨겨둔 때에
獨秀貞松晩麓峋 홀로 있는 곧은 소나무는 빼어나고 만운(晩雲)의 산록(山麓) 깊숙이
廣厦棟材高且鬱 넓은 집 동량(棟樑) 재목(材木) 높고도 울창(鬱蒼)한데
不干鋩刀遠荊蓁 칼날도 간여(干與) 않고 잡목(雜木)의 숲을 멀리하리
右 우
賢愚不分廣輸情 어짐과 어리석음을 분간(分間)없이 널리 정(情)을 다해서
款接長時戶屨盈 매우 정(情)답고 친절(親切)하게 대접(對接)하니 긴 시간(時間)을 문(門)에 신이 가득하였다
卄載權門廉謹地 이십년(二十年) 권세(權勢)가 있는 집을 상종(相從)하면서 청렴(淸廉)하고 삼가는 처지(處地)이니
諧淡榮辱一毫輕 농담(弄談)과 영욕(榮辱)이 털끝만치도 없어라
右 우
大洛何年溢海洋 대단(大端)한 낙동강(洛東江) 어느 해 해양(海洋)이 넘쳐
鎭民昏塾盡痍瘡 백성(百姓)을 진압(鎭壓)하는데 혼미(昏味)에 빠져 모두 상처(傷處)뿐일세
棠陰淚雨成膏澤 팥배나무 그늘에 눈물이 비 오듯 은혜(恩惠) 입음을 이루어
縷命生靈賴一方 실오라기 같은 명(命)이 살아 떨어질 때 한 방향(方向)에 의뢰(依賴)하리
右 우
長沙島嶼盡平蕪 장사(長沙)의 섬들 모두 평안(平安)한데
處涸噞鱗奈新呼 물이 자자진 곳에 벌름거리는 고기
斲忙粧莎勞績用
平章完局闢長衢
右 우
營闡先徽已昔時 선대(先代)의 아름다운 사적(事蹟)을 들어서 나라내려고 경영(經營)한지 이미 예전인데
每恨儇俗日孤危 항상(恒常) 그 모양으로 풍속(風俗)에 약삭빨라 날마다 외롭고 위태(危殆)로웠어라
望西署榭超然構 망서(望西)라고 써서 이름하고 초연(超然)하게 구축(構築)하니
戀國微忱及我私 나라를 연모(戀慕)한 작은 성심(誠心) 나의 사사(私私)로움에 미처
右 우
敎塾新成鳳峀陽 학교(學校)를 새로 봉수(鳳峀:봉대미)의 양지(陽地)에 하니
公私獎進不殫○ 공사(公私)로 이끌어 세우니 ○ 다하지 아니해
嘈啾小持能知否 매미 우는 작은 기예(技藝) 능(能)히 아는가 모르는가
衿佩蹌蹌是德坊 옷깃의 위에 있게 차고 이 덕성(德性)의 마을
右
叢蘭滿砌盡琳琅 난초(蘭草)의 떨기가 계절(階節)에 가득 모두가 옥(玉) 같은데
天祜無窮俾爾昌 하늘의 도움이 무궁(無窮)하여 하여금 너의 창성(昌盛)함이여
生順沒寧君子福 순(順)하게 살면 죽어도 편안(便安)하다는 군자(君子)의 복(福)이여
七旬無憾遽雲鄕 칠순(七旬)토록 유감(遺憾)없이 문득 운향(雲鄕)에 가다니
右
毬床把手慰相思 둥근 상(床)을 손에 마주잡고 서로를 생각하며 위로(慰勞)하고
○語申勤贈後期 ○ 말씀 신근(申勤)1)하게 후기(後期)에 남겨
一夜飜驚樑月夢 하룻밤의 양월몽(樑月夢)에 놀라 깨어
溪雲山鳥共含悲 시내의 구름 산(山)새들 모두 슬픔에 머금은 듯
右
令名不瘞瘞英靈 좋은 명예(名譽) 묻지 않고 영령(英靈)을 묻어
和淚塤床隻影橫 형제(兄弟)간에 서로 정(情)이 좋게 지내는 눈물이 화(和)하니 하나의 그림자만 방자하네
從此西門那堪過 이로부터 서문(西門)을 어떻게 지나서 갈고
山空○○○丹銘
주)1)신근(申勤) : 두 번 세 번 이야기함
지상손제(地上損弟) 선성(宣城) 이두선(李斗善) 재배곡(再拜哭) 만(挽)
이두선(李斗善) 1888~1962년. 자(字)는 운약(運若), 호(號)는 우산(又山)이며 부(父)는 재식(在湜),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景稙)
可憐花樹一根屬 가련(可憐)하구나 꽃나무 한 뿌리에 속(屬)하는데
南北東西各自枝 남북동서(南北東西) 각각(各各) 스스로 가지가 뻣어
葉葉豈無榮辱日 잎잎이 어찌 영욕(榮辱)의 날이 없을고
柯柯應有盛衰時 가지마다 응당(應當) 성쇠(盛衰)1)의 때가 있나니
貽孫本業三農務 후손(後孫)에게 끼쳐진 본업(本業)은 삼농(三農)2)에 힘쓰고
傳子功名百歲垂 자손(子孫)에게 전(傳)한 공훈(功勳)과 명예(名譽) 백세(百歲)에 드리웠네
另別恩情知也否 별(別)달리 은혜(恩惠)와 정(情) 아는가 모르는가
靈風飄拂動哀詞 신령(神靈)한 바람이 나부끼는데 애사(哀詞)도 움직이네
주)1)성쇠(盛衰) : 성(盛)하는 것과 쇠(衰)하는 것
2)삼농(三農) : ①평지농(平地農). 산농(山農). 택농(澤農) ②춘경(春耕). 하운(夏耘). 추수(秋收)
종하생(宗下生) 태영(台榮) 재배통곡(再拜痛哭) 만(輓)
風猷碩德賦於天 풍류(風流)와 높은 덕(德)이 하늘에서 부여(賦與)받아
歷數南州屈指先 분명히 남(南)쪽고을에 세어봐도 손가락 먼저 꼽아
赫赫門欄雲水地 빛나는 문간은 구름과 물의 땅에
推看增彩世難肩 미루어 보니 채색(彩色)을 더해 어깨 겨누기 어렵구나
右 우
兟兟庭下付靑氈 자손(子孫)이 많은 뜰 아래 푸른 방석에 부쳐
無憾冥昭後祿圓 유감(遺憾)없이 들어 나지 않고 으슥한 가운데 밝혀 후록(後祿)에 원만(圓滿)하리
昨夜文星零落盡 어젯밤에 문장(文章)의 별이 다 떨어져
誰將指的免何愆 누가 장차(將次) 지적(指的)해서 어떤 허물 면(免)할고
右
高風賴仰已多年 고상(高尙)한 풍치(風致)의 의뢰(依賴)해서 우러른지 이미 여러 해인데
乘鶴今宵涉九泉 학(鶴)을 타고 오늘 저녁 구천(九天)으로 건너갔네
萬事從今渾似夢 만사(萬事)가 지금(至今)부터 꿈에 섞인 것 같은데
吾林氣數奈蕭然 우리 유림(儒林)의 기수(氣數)1) 어찌 쓸쓸한고
주)1)기수(氣數) : 스스로 돌아가는 그 자신(自身)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運數)를 일컬음
시하생(侍下生) 선성(宣城) 이준규(李準規) 재배곡(再拜哭) 만(挽)
이준규(李準規) 1886~1958년. 부(父)는 수달(洙達), 본관(本貫)은 예안(禮安:宣城)이다. (豊稙-熙大)
欲寫哀詞淚自垂 애사(哀詞)를 쓰고자하나 눈물이 절로 흘러
須將何語送靈輀 모름지기 장차(將次) 무슨 말로 상여(喪輿)를 보낼고
醇仁接物人咸服 순박(醇朴)하고 어질므로 사물(事物)을 접(接)하니 남들이 다 복종(服從)해
爲衆成功世所推 여럿 위(爲)해 성복(成服)하니 세상(世上)이 추앙(推仰)하는바
每擬百年長依仰 항상(恒常) 그 모양으로 백년(百年)을 기리 의지(依支)하고 우러러 사모(思慕)하려고 하나
那知一疾遽違辭 한번 든 병(病)으로 문득 말이 어겻음을 어찌 알았을고
薤歌數曲千山暮 상여(喪輿)소리 두어 곡(曲)에 모든 산(山)이 저무는데
雲社如空異舊時 만운(晩雲)의 사회(社會)가 빈 것 같아 옛날과 다르구나
정소제(情少弟) 남한진(南漢鎭) 재배통곡(再拜恫哭) 만(輓)
남한진(南漢鎭) 1890~1971년 자(字)는 운경(雲卿)이고 호(號)는 율죽(栗竹)으로 봉암서원(鳳巖書院)을 복원하여 제향(祭享)에 앞장섰으며 부(父)는 기환(基煥)이며 본관(本貫)은 영양(英陽)이다. (在燮)
만농공유사(晩儂公遺事)-휘낙구(諱洛九)
공(公)의 휘(諱)는 낙구(洛九)이며 자(字)는 중극(中極)이고 호(號)는 만농(晩儂)으로 23세손(世孫)이며, 승지공(承旨公)의 16대손(代孫)이다. 휘(諱) 영조(英祖)의 맏아들로 서기1880년 4월 25일에 태어나니 나면서부터 세상(世上)에 수요(需要)가 될 재능과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 그리고 깊은 생각이 있었으며, 기절은 굳건하고 성품이 온화하며 언어의 구사가 능통하였고, 마음을 서로 모으는데 구김살 없이 발달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대할 때 말과 행동이 모가 나지 않았으며, 청탁(淸濁)의 허물이 없었으나 자아(自我)의 마음에 줏대가 확고하여 사업을 경영하실 때 가능한 일은 몇 백인의 반대라도 확고부동하며 어떠한 구실이 있더라도 듣지 않으시고 어떠한 훼방과 칭찬도 관계치 않으셨다.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육영사업(育英事業)에 유심(留心)을 해서 풍북오능강습회(豊北五陵講習會)를 운영하시다가 1925년 안동시 풍산읍 괴정리에 터를 마련하여 풍북사립보통학교(豊北五陵講習所私立普通學校)로 인가를 받아 초대교장을 지내셨으며, 1947년에 병산중학교(屛山中學校)를 설립에 착수하셨지만 당시는 혼란(混亂)과 이해(理解)를 떠난 사회로서 갖은 고초와 지극히 난감한 애로가 많았으나, 고희(古稀)의 고령이심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동분서주 침식을 잊고 모든 난관(難關)을 극복하시어 오늘에 병산중학교(屛山中學校:현풍산중고등학교<現豊山中高等學校>)를 설립해서 교장으로 활동하시며 모든 후생(後生)들을 이끌어 깨우치셨다. 또한 민족육영(民族育英)의 가장 건실한 온상(溫床)이며, 민족문화의 계몽과 발전하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1933년에 풍산공립보통학교(豊山公立普通學校:현풍산초등학교)를 유치하여 건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리고 1949년에 개교하여 2년간 망서정(望西亭)에서 수업을 한 만운국민학교(晩雲國民學校)를 유치하여 건축하는데 공이 컸으며, 공(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3개의 국민학교(國民學校)와 풍산중고등학교(豊山中高等學校)에서 많은 후생들이 배출이 되었다. 그리고 풍북면장(豊北面長)을 지내시다 풍북(豊北)과 풍산(豊山)이 합면(合面)이 된 후, 풍산면장(豊山面長)으로 계실 때 갑술(甲戌:1934년) 병자(丙子:1936년) 양년(兩年)에 수해가 발생하므로 복구대책을 위하여 당시 일본인 도지사(道知事)를 찾아가 면회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되자, 도청 앞 광장에서 연7일간 1인(人) 농성시위를 하여 끝내 일본인 도지사(道知事)를 감동시켜 면회가 이루어져, 경북북부지역(慶北北部地域)에서 가장 쌀이 많이 생산되는 풍산평야(豊山平野) 복구사업에 일본인 道知事(道知事)가 어느 지역보다도 우선적으로 수해복구예산을 배정하여 시행하겠다는 확약(確約)을 받아냈다. 그 결과로 풍산(豊山)의 남북하천(南北河川 :상리와 하리의 하천, 어란에서 소산앞 하천)을 항구적인 석축(石築)으로 제방공사를 기어이 완공(完工)하셨으며 이로 인하여 수해로 인한 면민(面民)들의 절망과 한숨을 씻어내어 주었다. 그 외에도 만운리(晩雲里) 함백산(咸白山) 사방공사(砂防工事)와 식목사업(植木事業)과 면사무소 신축공사 등 면내(面內) 각 기관(機關)이 공(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렇게 생전(生前)의 공(公)의 업적이 켰기에 사후 장례(葬禮)때 공(公)의 여러 가지 업적을 잊지 못한 면민들이 마지막 떠나는 상여(喪輿)을 면민대표들은 면민대표대로, 병산중학교(屛山中學校)학생과 교직원들은 그들대로, 풍북초등학교(豊北初等學校)학생 및 교직원들은 또한 그들대로, 자손은 자손대로 서로 마지막 떠나시는 상여(喪輿)을 운구(運柩)하려고 서로 싸움이 되어 결국 그 날 산으로 운구(運柩)하지 못하고 다음날 10일장(葬)으로 서로 타협하여 원만하게 장사(葬事)를 지냈으며, 지금도 연로(年老)하신 지방어른들의 모임에서 공(公)의 생전의 업적과 수해복구사업에 얽힌 도지사(道知事)와의 일화(逸話)와 마지막 가시던 날의 전체 면민(面民)들이 서로 운구(運柩)하겠다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지역의 전설처럼 회자(膾炙)되고 있다. 공(公)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폭정(日帝暴政)의 치하(治下)였지만 공(公)의 영명하신 천품(天稟)과 고매(高邁)하신 인격과 더불어 초지일관 지방발전에 대한 불같은 정열로 면민(面民)을 위해 생각하고 잠을 잤으며, 안으로는 우리의 모국어(母國語)와 우리의 이름 그리고 우리의 예속(禮俗)까지 빼앗기고, 밖으로는 주위사방이 일제(日帝)의 손에 들어가 국권회복(國權回復)의 길이 아득하고 막연해지자 진리는 만통(萬通)이라 민지(民智)를 깨우치고 민도(民道)를 높임으로써 아득히 먼 훗날의 국권회복(國權回復)의 꿈을 그리시며 면민(面民)들을 계몽하시고 장차 국가를 짊어질 제2세 국민교육에 기대를 가지시고 교육사업에 진력(盡力)하시니 안동(安東)의 선각자이시며 애국지사였도다. 한편 1939년 만운리(晩雲里)에 승지공(承旨公)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망서정(望西亭)을 건축하였는데 망서정(望西亭)이 준공될 때 망서정시첩(望西亭詩帖)에 쓰신 詩를 보면������追惟先宇聿來東 誰謂如今文獻空 仁庇仍昆饒有澤 義伸館閣直生風 心懸帝闕紅雲裡 裡斷梓鄕夕照中 遺志新成增百感 倚欄西望隔晨同 (선정(先亭)에서 동(東)으로 오실 때를 추념(追念)하면서 누가 지금(至今)같이 문헌(文獻)이 비었다고나 할까 인(仁)으로 감싸주니 후손(後孫)들 혜택(惠澤)이 넉넉하고 관각(館閣)에 의(義)를 펴서 곧 유생(儒生)들의 기풍(氣風)인 듯 마음은 궁궐(宮闕) 홍운(紅雲) 속에 매여 있으나 단장(斷腸)의 고향(故鄕)에는 저녁 노을의 가운데일세 끼친 뜻을 새로 이룩하니 백(百)가지 감회(感懷)가 더하는 듯 난간(欄干)에 의지(依持)해서 서(西)를 바라보니 지난 새벽 같구나)”라고 하였다. 조상에 독실(篤實)한 효성과 동기간에 우애가 있고 자손의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으며, 조상을 숭상하는 성심이 대단하여 앞장서서 정자(망서정<望西亭>)와 재궁(梓宮)을 짖고 묘비(墓碑)를 입석(立石)하는 등 안동(安東)의 연안송문(延安宋門)을 위한 많은 일을 하셨으며 종친간에 돈목(敦睦)의 도리가 극진하였다.
서기1951년11월28일에 임종하여 만운 합백산(咸白山) 내곡(內谷) 갑좌(甲坐)에 장사(葬事)하였다. 배(配)는 예안이씨(禮安李氏)이니 수삼(洙參)의 따님으로 서기 1878년에 태어나 서기1956년 4월 2일에 卒하시고, 3남2녀를 두셨다. 장자(長子) 원식(元植)은 민선 풍산면장(豊山面長)을 연임하시고 제2대 경상북도(慶尙北道) 도의회의원(道議會議員)을 역임하셨으며 철도화물사업과 정부미 도정업을 하셨고, 차남(次男) 희식(熙植)은 풍북양조합자회사 사장으로 양조업에 종사하였으며, 삼남(三男 인식(寅植)은 풍산중학교 교감과 외자청 안동지청장을 역임하셨다. 公의 손자 세렬(世烈)은 제일은행(第一銀行) 이사(理事), 감사(監事)를 거쳐 대우상선(大宇商船) 사장(社長)을 역임하였으며, 동렬(東烈)은 안동군청(安東郡廳) 특작계장(特作係長)으로 근무하였으며, 보렬(寶烈)은 제일은행(第一銀行) 은행장(銀行長)과 포항제철 사외이사(社外理事)를 역임했다. 이러한 업적을 후세에게 전하기 위하여 손자 성렬(聖烈:예천여자중학교 교장역임)과 증손 재상(在商:약사)이 함께 삼가 공경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