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크닉 신영호 입니다.
오늘은 '생각'에 대한 정의와 그 다양성에 대해서 다각도로 사유해 보고자 합니다.
명상가나 명상도 '생각'을 잘 다루고 정화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예로부터 '생각'에 대한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있어 왔습니다.
첫째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잘 활용해야할 생각이 있고,
둘째는 생각이 많거나 잘못된 생각을 하면 근심, 번뇌라는 것입니다.
치유하고 정화하고 무화해야할 생각이 있다는 것.
파스칼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즉 인간 존재로서 생각하고 사유하고 철학하는 능력과 지혜가
바로 그 사람의 인간다움, 즉 인격을 말해주는 것으로 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와 같이 생각에 의해 인간 존재 조건이 설정되고 정치됩니다.
생각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정적 생각과 불량 자아들에 의해 잘못된 오류들을 위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스님들이나 선사님들은
한결같이 생각 자체를 정화하고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은 분별이나 차별, 또는 선악 이원론으로 바라봄으로써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을 요주의 문제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같은 생각이라도 '올바른 생각', '지혜로운 생각', '합당하고 합리적인 생각'은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낭비시키는 잡념이나 번뇌, 쓸데 없는 일회성이거나 휘발성 생각들은
정화하고 치유해야할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철학자가 바라보는 '생각'의 의미와 중요성이
선사님들이나 고승께서 바라보는 '생각'의 의미와 개념에 차이가 있듯이
심층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생각'은 또 다릅니다.
심리학자는 생각은 마음의 파편이자 증세로도 봅니다.
따라서 우울한 생각이나 분열된 사유들은 정신적 문제와 트라우마의 증세로 보기도 합니다.
생각들의 논리와 배합이 엉망이고 자신에게 특히 부정적이고 무기력함을 가져다 준다면
사실 그의 정신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주면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타인들을 멀리하게 하고 기피하게 합니다.
저와 같은 타로마스터이자 마법사 개념으로
'생각'을 사유해 본다면
생각은 에너지와 기운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때로는 마음의 일부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불안, 무의식 속 그림자의 투사 등등
물론 '생각' 중에는 기도와 주문
그리고 만트라(진언) 등은 마법의 힘을 지닌 생각이자 언어입니다.
따라서 힘으로서의 생각을 활용하는 마법 주문 등은
생각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현실화 됩니다.
"말이 씨앗이 된다." 또는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내용은 말이나 글의 힘이 마법적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주술사가 보는 '생각' 개념
퇴마사가 바라보는 '생각' 개념...
등등
따라서 생각을 한가지 관점이나 개념으로 정의하고 규정(define)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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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에이전트에게서 얻은 내용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들으셔서 아시는 것처럼 "코끼리와 장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가르침들 중 ‘부분적 지식의 위험성’, ‘주관적 집착’, 그리고 **‘올바른 통찰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전한 대표적인 설법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 것입니다.
또한 우파니샤드나 자타카, 그리고 불교뿐 아니라 인도 철학 전체에서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이야기 형식과 함께 철학적 해설을 곁들여 다시 소개하였습니다.
이야기 원형 – 코끼리와 장님 6인 이야기 (불교 설법 변형)
옛날 어느 마을에 여섯 명의 장님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한 지식은 귀로만 들을 수 있었기에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그러던 중 마을에 왕이 큰 코끼리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장님들은 서로 말했다.
“코끼리가 어떤 동물인지 늘 궁금했네. 오늘 직접 만져보면 알 수 있겠군!”
그리하여 이 여섯 명은 코끼리를 만져보게 되었다. 그러나 각각 다른 부분을 만지게 된다.
첫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말했다.
“아하! 코끼리는 기둥 같군. 두꺼운 나무기둥처럼 단단하고 크네!”
두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지며 말했다.
“아니야, 코끼리는 부채 같네. 납작하고 넓고 가볍군.”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잡고 말했다.
“헛소리 말게. 코끼리는 줄처럼 생겼네. 긴 밧줄과 같다네.”
네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코(코끼리의 긴 코)**를 만지며 말한다.
“자네들 다 틀렸어. 코끼리는 뱀 같아. 움직이는 뱀처럼 느껴졌네.”
다섯 번째 장님은 몸통을 만지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소리들인가? 코끼리는 커다란 벽이야. 평평하고 넓은 벽 말이야.”
여섯 번째 장님은 **엄니(상아)**를 만지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코끼리는 매끈한 창 같아. 뾰족하고 단단했네.”
이렇게 각자 다르게 말하니,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다툼이 벌어졌고 마침내 소란이 일어난다.
이를 지켜보던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 진실의 일부만을 보았소. 그 지식을 전부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오. 진실은 전체를 아는 지혜 속에 있소.”
이 이야기는 **《우다나(Udāna) 6:4》**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설법 중 하나로, 다음의 교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1. 부분적 앎의 한계
각 장님은 코끼리의 일부만을 접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접한 그 일부를 "전부"라고 착각한다. 이는 **무명(無明, avidyā)**으로부터 오는 인식의 오류다.
2. 집착으로 인한 다툼
자신의 체험이 전부라는 집착으로 인해 서로를 비난하고 다툰다. 이것은 견해의 갈등을 상징하며, 모든 분열과 전쟁의 뿌리이기도 하다.
3. 전체를 아는 지혜 – 바른 견해(正見)
불교는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정견(正見, sammā-diṭṭhi)**이라 부른다. 이는 세상을 전체로 보고, 인연과 공(空)의 법을 통찰하는 올바른 안목을 의미한다.
4. ‘공(空)’ 사상과도 연결
부분은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고, 전체 맥락에서만 의미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공(空, śūnyatā)’ 사상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오컬트적 적용 및 영적 확장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지 윤리적 비유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오컬트 및 철학적 사유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① 상징과 실체의 분리: 각 장님은 하나의 '상(象)'에 집착함으로써 '진실(實相)'을 보지 못했다. 이는 상징 해석이나 오라클 리딩, 타로 해석에서도 중요한 교훈이다.
② 입장과 차원의 차이: 같은 실재도 접촉하는 위치(차원, 경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고차원의 의식일수록 통합적 시각을 가짐을 뜻한다.
③ 집단지성의 조화: 각자 틀렸지만 동시에 모두 옳다. 이는 보병궁 시대의 ‘다원 진리’ 및 ‘통합적 진실’과 맞닿아 있다.
위 이야기 속 상징들은 다음과 같이 추출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 | 실상(實相), 진리, 또는 ‘전체적 실재’ |
장님들 | 제한된 감각과 편견을 가진 인간 |
각 부분 | 부분적 진실, 단일한 관점 |
다툼 | 무지와 집착에서 오는 견해 충돌 |
왕의 말 | 바른 지혜(正見)의 안내자 역할 |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침이나 법(다르마)를 설명하는 것을 메타포(metaphor)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상징과 비유"에서 이야기하는 그 비유로서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피크닉 신영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