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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해석자요 전달자요 수호자들이었는데 어쩌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게까지 되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의 본래 의미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외적인 조항에만 집중하다가 보니까 정작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주신 목적과 이유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위선을 펼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그 율법을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 율법이 오히려 그들의 밥그릇 지키기의 수단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르치시다가 그들의 권리를 건드리셨고, 바리새인들은 군중들에게 권력(영향력)을 빼앗길까봐 온갖 계략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백성들에게 펼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못 박지 않도록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율법 문제로 많이 부딪치셨습니다.
율법의 전통만을 고집하던 바리새인들과 그 율법의 본질을 강조하시던 예수님은 언제나 율법 문제로 많이 부딪쳤습니다. 하지만 외적으로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1. 가장 크게, 자주 부딪치는 문제는 안식일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어떤 문제로 비판했습니까? (마 12:9~10) (눅 13:11~14)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 율법에는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이든 언제이든 환자들을 고치셨다.
■ 안식일과 이스라엘 절기 때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명령이 나온다. 이때의 ‘일’의 정의는 무엇인가? 생존을 위한 노동, 생업을 유지하기 위한 일을 뜻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질문을 한다. 회당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를 뜻하는데 예수살렘 성전에 일일이 갈 수 없기 때문에 각 지역에 회당을 설치했었다. 이것을 시나고그(synagogue)라고 하며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이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고 이런 질문을 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서 먹는가 하면 질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일까지 하시기 때문에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얽어매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교리 문제로 시비를 걸었다. 교리 문제에서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표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답변은 이들의 주장을 여지없이 무너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마 12:11~14) (눅 13:15~16)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의 질병을 고치는 일이 어찌 율법을 범하는 것이냐?
■ 안식일의 기본정신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7일째에 안식하신 것을 따라 백성들도 그와 같이 쉬라는 의미와 함께 가난한 사람의 노동도 쉼을 주는 것이고 6일 동안 일을 충분히 마치고 온전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라는 것이다. 이 안식일에는 하나님께서 삶을 책임지신다고 하셨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는 7일째 안식일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시고 그 대신 6일째에 이틀 치의 만나를 주셨다. 그래서 결국 생활을 위한 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안식일 계명을 세분하여 금해야 할 행동을 39가지로 정해놓았다(미쉬나). 씨 뿌리고 밭 갈고 추수하고 타작하고 반죽하고 굽고 실뽑기와 천 제조와 매듭과 바느질, 가죽에 선 긋거나 자르기, 두 글다 이상 쓰거나 지우지 말기, 불 지피거나 끄는 행위 등이었다. 물론 근거 있는 규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 많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이든 평일이든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더구나 환자를 고치거나 살리는 일은 39개 금령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꼬투리들을 붙잡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또 다른 중대한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눅 5:20~21)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 예수님께서 죄로부터 오는 질병을 고치시면서 죄를 사한다고 선포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었다.
■ 그러면 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공격하는 것일까? 공격할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신앙적인 권위를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권위들을 근본적으로 깨뜨리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문에서처럼 사람들의 죄를 사면해주는 권위는 자기들에게는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다고 생각하고 건드리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그 권위를 사용하여 질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자기들의 권위가 무너질 것을 생각하여 예수님을 비판하고 공격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명이라는 데에 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권위를 부정하면 참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예수님은 바로 이 생명과 직결되는 오해와 모순을 주로 지적하시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분노했던 것이다.
4. 율법에 금하고 있는 죄인들과 거리낌 없이 접촉하시는 예수님을 비판하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막 2:15~16)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율법을 겉으로만 지키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 바리새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진행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고 어떻게 대처할 방법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이 멀리 하는 것에는 더 다가가시고 자기들이 가깝게 여기는 것은 더 멀리 내치시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었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의 원형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전부 이런 삶의 방식으로 복음을 보여주고 전파했었다. 세리나 죄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면서 배척하고 멸시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세리나 죄인들과는 가깝게 하신다. 죄인들과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 안 되는데 예수님은 정반대였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관점의 차이였다. 그들은 드러나는 죄로만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심령으로 판단하신다. 그들은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내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하신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을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러니까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2)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리새인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뿐 아니라 저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1. 바리새인들의 가장 위선적인 행동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마 15:3~6)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 “ …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르반!) 하고 외치면 굳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말씀을 폐하는 일이다.
■ 1~2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전통을 범한 것이라고 비난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내용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인데 바리새인들이 전통처럼 행하는 것이 부모에게 드릴 것이라도 먼저 “고르반!”하고 선포하면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포하고 나서 헌금으로 드릴 때에는 그 중 일부만을 드리고 나머지는 자기 용도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계명 중 하나를 지키지 않는 아주 위선적인 행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의 종교적인 위선의 핵심을 찌르는 비판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함으로써 여호와 신앙을 오히려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2.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위선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것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마 23:2~7)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 종교적인 율법은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대로 전혀 행하지 않는다.
■ 우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목적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자기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교묘하게 바꾸어서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권위를 앞세움으로써 백성들마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위선적인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죄인들에게는 그런 교만은 없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교만과 위선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심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바리새인들의 종교적인 위선의 마지막은 예수님을 영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어떤 비판입니까? (마 12:22~24)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도 귀신의 왕의 힘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 결국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서 어떻게 하면 약점을 잡을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또 다른 권력자들인 대제사장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기적조차도 귀신의 왕이 내려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지킨다고 자처하면서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면 거기에서 또 트집을 잡고 함정을 파고 거짓으로 백성들을 현혹하는 자들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사실상 변화되기 힘들다. 그래서 성경적으로는 많아지면 버리고 비우고 높아지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4. 결국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결정적으로 공격하십니다.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 12:34, 23:13, 23 등)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23:13, 23)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저들에게 화 있으라고 저주하시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크게 비판하신다.
■ 처음에는 알아듣도록 쉽게 설명하고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셨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부터는 바리새인들을 아예 정면에서 직설적으로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의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모르셨을 리가 없다. 예수님은 점차 십자가로 가까이 가시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게셨고, 또 바리새인들을 통하여 미래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비록 세상과 부딪치거나 손해를 볼지라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방식을 지킬 것을 강하게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3)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교리적으로 대립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호시탐탐 예수님을 올무나 함정에 빠뜨리고자 계속 시험했습니다.
1. 가장 강한 시험은 어쩌면 율법 문제가 아니라 세상 문제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했습니까? (막 12:13~15)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안 바치는 것이 옳은가였다. 어느 대답도 곤란했지만 예수님은 도리를 다하라고 하셨다.
■ 이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바리새인들과 그들이 보낸 첩자들이 대답하기 정말 곤란한 것들만 골라서 예수님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질문했다. 바치라고 하면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비난과 원망을 들을 것이고 만약에 바치지 말라고 하면 현행법으로 저촉되기 때문에 총독에게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정말로 대답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도저히 책잡을 것이 없게 만들어버리셨다.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denarius)을 하나 가져오라고 해서 동전에 있는 글자와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그것은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케사르’라는 글자와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이었다. 예수님은 로마의 것은 로마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바치라고 대답하셨다.
2. 율법으로는 음행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히면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요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일어나시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써 다 물러가게 만들었다.
■ 역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와서 “율법에는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묻는다.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죄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용서하라고 하면 모든 백성들이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이단으로 정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도 별다를 것이 없다고 할 것이고, 치지 말라고 하면 역시 더 이상 따를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의중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을 찌르는 말씀을 주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라 먼저 돌로 치라.” 모여 있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돌을 땅에 버리고 하나둘 흩어져 가버렸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더 미워하게 되었다.
3. 바리새인들은 정탐꾼들을 보내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책을 잡게 했습니까? (눅 20: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 그들은 스스로 의인인 체하거나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처럼 말을 시작하면서 말로 꼬투리 잡으려고 하였다.
■ 바리새인들의 시험은 여러 가지였다. 율법대로 이혼증서를 써주면 마음대로 이혼해도 되느냐고 하는 질문,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하는 질문, 그리고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하는 질문들을 했다. 이 영생에 대한 질문에서 예수님은 유명한 선한 사라미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쓰러져 거의 죽어 있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서 지나갔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받던 어떤 사라미아 사람은 피하지 않고 그를 돌보고 상처를 치료해 주고 여관에 부탁하면서 돌아올 때 비용이 더 들었으면 지불하겠다고 했다. 제사장, 레위인은 종교지도자들이었고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심지어 대화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돌보지 못한다면 영생은 없다고 하신 것이었다.
4. 바리새인들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강권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마 12:38~39)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
일 표적이 없느니라”
➔ 저들은 그 어떤 표적을 보여주어도 안 믿을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부활)을 말씀하셨다.
■ 바리새인들은 급기야 예수님이 정말로 그리스도라면 그리스도라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은 수많은 표적을 행해오셨다. 질병을 고치고 바다 위를 걸어가고 귀신을 쫓아내고 도시락 하나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기까지 하셨다. 이보다 더 큰 표적들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코 돌아올 수 없다. 바리새인들은 전부 지옥으로 떨어졌다. 기독교 이단들이 이와 같다. 타 종교인들은 회개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만 이단들은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부활밖에는 없다. 그들이 믿든 믿지 못하든 부활은 마귀의 세력에게 승리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메시아, 곧 구세주라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죽음을 이기실 수 있다.
4) 외식하는 자들을 저주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원수처럼 보입니다. 왜 예수님은 유독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셨겠습니까? 그들이 지도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신앙적인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1. 예수님은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은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눅 18:11~14)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바리새인들은 교만했고 자기 의를 자랑했지만, 세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낮추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자기 죄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 벌어진다. 참된 기독교인은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이다. 정말로 지옥에 갈 사람은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은 모두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교만한 것이다. 세리가 의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리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 때문에 그 순간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하심을 받
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특히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본받을까 봐 염려하신 것이다. 누구나 바리새인과 같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은 아예 그렇게 고착되어 버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 23:25~27)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면서도 겉으로는 거룩한 척, 깨끗한 척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었다.
■ 죄인의식이란 스스로 죄를 알고 한탄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은 색깔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자기 의로움을 겉으로 꾸미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심령이 더 의로운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을 받아들일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이려는 사람은 자기 죄를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원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죄의식이 없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하게 하고 회칠한 무덤처럼 온갖 썩은 것을 다 감추는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3. 결국 그런 위선적인 마음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애를 쓰게 되겠습니까? (마 6:2, 5, 16)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어댔고, 기도할 때 크게 외쳤으며, 금식할 때 머리도 안 감고 상을 찌푸렸다.
■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동과 삶의 모습들은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일관되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믿음이 참 좋은 사람들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전혀 없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는 것밖에 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다 지킨다.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고 구제도 한다. 이웃사랑, 하나님사랑 전부 다 철저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광고를 한다. 구제도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기도도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하고 금식을 해도 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을 보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4. 결국 바리새인들의 이런 위선과 외식은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마 23:13, 15)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천국 문 앞에 서서 자기와 백성들 모두 못 들어가게 했으며, 백성들을 가르쳐 오히려 지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 지도층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모든 행동과 삶의 모습들은 단지 그들만의 허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그 하나님의 법을 바꾸거나 왜곡하거나 그 법의 집행을 가로막거나 어긋나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훼방하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잘못은 그들의 잘못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미래를 가로막고 그들이 구원을 훼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죄에 더하여 백성들의 죄를 다 뒤집어쓰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만약에 교회 목사에게 “당신은 교회 성도들을 다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당신보다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다.”고 외친다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는가?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자기들을 훼방하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해버렸던 것이다.
5)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피하여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 예수님께 죄를 뒤집어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들과 헤롯당까지 끌어들였습니다.
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쉽게 처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막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 백성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고 따르므로 그 백성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두려워했다.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진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고 싶었지만 거기 모여 있던 모든 백성들이 전부 예수님을 옳게 여기고 그 가르침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붙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기독교인들도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지금
현재 우리를 박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지옥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생이 아니라 영벌을 내리실 분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2. 바리새인들은 경쟁자이며 같은 기득권층이었던 반대파까지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요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 대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사두개인들로서 바리새인들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뭉쳤다.
■ 악은 악과 뭉칠 뿐이다. 마치 여당과 야당처럼 반대편에 서있던 사람들이 서기관인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인 사두개인들이었다. 종교적으로 대조되는 세력들이었지만 그들도 역시 기득권자인 것은 분명하였다. 자기들의 이익을 훼파하고 권위를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는 예수님은 그들에게는 단지 방해세력일 뿐이었다. 예수님을 제거해야 모든 특권들은 유지될 것이다. 겉으로는 나라 걱정을 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오직 자기들의 세력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모습들이다. 예수
님은 오히려 이들의 연합과 예수님에 대한 대적을 기다리시는 것처럼 조금도 그들을 배려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응하심으로써 십자가의 길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3. 심지어 사이가 전혀 좋지 않았던 또 다른 무리들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막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헤롯 왕의 부하들인 헤롯당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친로마적인 사람들로서 바리새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 결국 한 통속인 것이다. 서로 간에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바리새인이든 대제사장들이든 왕의 부하들이든 각각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거나 사라지게 되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고 또 다른 문제의 불씨가 되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어느 정도는 이런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 참된 가치는 기존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정 반대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세상의 반대와 부딪치게 되어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각양각색의 무리들이 존재하지만 결국은 그들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자기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한, 반대파이든 원수이든 다 함께 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결국 예수님은 누구에 의해서 체포되셨고, 고난을 받게 되셨습니까? (요 18: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선동을 일으켜 빌라도에게서 사형판결을 받은 후 예수님을 붙잡았다.
■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단 하나의 걸림돌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판결이었다. 예수님을 사형시키기 위하여 모든 세력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서 자기들의 권한 밖에 있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며 설득하고 백성들을 앞세워 협박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하여 명절에 사면해주는 전례를 들어 당시 흉악범으로 유명한 바라바와 예수님을 앞에 놓고 누구를 석방할까를 물었을 때 빌라도는 백성들이 당연히 예수님이라고 할 줄 알았다. 선동꾼들이 바라바를 외침으로써 결국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하게 되었다. 기득권이나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권력의 맛을 보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헤어나기 힘들다. 그들은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예수님은 사랑이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바리새인들과 권력자들을 대적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랑은 편하고 행복하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랑을 표현하고 지키기 위해서 투쟁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다.
6) 우리 속에 바리새적 요소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교리와 전통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바리새인들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들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위선이 신앙생활과 연결될 때에는 심각한 바리새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위선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할 때에 심화됩니다. 또한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무엇을 지키는 것만 강조하면 바리새화가 되기 쉽습니다. 바리새화가 되면 거룩한 척하거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쉽고 겉과 속이 딴판인 사람으로 변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혹시 당신에게 신앙적인 위선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겠습니까?
2.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리새화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부분에서 애를 써야 하겠습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잘 믿고 가르친다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메시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 덕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우리들도 말씀을 바로 알고 실천하지 못하면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온갖 비난을 받는 것도 이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이 신앙인들을 통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남들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정말이지 성경말씀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조차도 충분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 아는 성경말씀이라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특히 신앙적인 위선을 보이지 않도록 성령님으로 가르쳐주옵소서. 예배나 기도나 찬양을 드릴 때에도 남들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옵소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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