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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이 있는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참이슬
[사진 설명을 겸한 수승대 기행문]
수승대는 서북쪽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1986년 국민관광휴양지로 지정되었다.
위치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 리마을 앞 구연동이다.
이 곳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지역으로
백제가 멸망할 무렵 신라로 떠나는 사신을 송별하던 곳이다.
시국이 혼란하니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
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원(龜淵書院)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
자들 을 양성하였고 대(臺)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선생이 함양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
다며 음이 비슷한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수승대의 면에다
새김으로써 비롯되었다고 한다.
관광단지 안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 거북바위 등이 있는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다.
내가 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와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수승대의 별칭인 '거북바위'다.
과연 거북처럼 생겼을까.
저멀리 빨간 현수교가 보인다.
현수교는 주위경관과 잘 조화된 수승대의 명물로서 야간 조명등이 켜지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낮에 보니 그다지 아름
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조명이 켜지면 불빛이 물에 비치니 또다른 분위기가 풍길 것 같기도 하다.
수승대관광단지에 도착했을 때 첫느낌은 예상을 뒤엎은 크고 넓은 계곡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승대하면 일반적으로 '거북바위'를 주로 이야기 하고, 그 주변의 자연환경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별로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수승대에 오면 거북바위나 보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엄청 넓은 폭의
계곡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는데 수심이 얉고 그 주변으로 울창한 솔숲이 형성되어 있어 물놀이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얼른 거북바위를 보고 싶었다. 큰 바위만 보면 모두 거북처럼 보여서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푯말을 보고
방향이 반대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거북바위를 찾아 다녔다. 주차장에서 국민관광단지정문쪽으로 쭉 걸어들어가면 바로
거북바위가 나오는데 다른길로 갔다가 조금 헤맸다.
앗! 저기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우리가 여태 '이게 거북바윈가보다라'고 했던 바위보다 훨씬 '거북'스럽다.
마치 거북 한 마리가 모래톱에 머리를 들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신기하다.
가까이 가보니 정말 거북과 비슷하다. 등쪽은 등딱지모냥 갈색을 띠고 두 개의 앞다리 중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꺾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같더니 가까이 보니 걷는 중이다. 게다가 재밌는 것은 거북의 표
정이다. 몹시 흐믓한 표정이 아닌가. 거북바위 위쪽에는 소나무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으며 바위둘레는 이황이 수승대라 이
름지을 것을 권한 4율시를 비롯, 옛풍류가들의 시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거북바위의 진모습을 보려면 '요수정(樂水亭)'으로 가라고 했다.
거북바위 앞의 휘몰아 도는 물굽이를 굽어보고 서있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 정자가 요수정이다.
이곳은 요수 신권이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서 거북바위와 그 앞으로 흐르는 물, 그리고 정자 뒷편의 울창한 솔숲과
조화되어 이곳의 경관을 절경으로 만들고 있다.
요수정은 한눈에 봐도 오래됐음을 알 수 있었다. 바위위에 그대로 기둥을 세워 정자를 지었다.
요수정 바로 맞은 편에 거북바위가 있다. 요수정 위에는 출입이 금지라 올라가지를 못한 것이 안타깝다. 이 위에서 보면
수승대일대 전경이 무척 멋지게 보였을 것 같다. 거북바위는 요수정에서 보는 것보다 오히려 현수교쪽에서 보는 것이 더
거북처럼 보였다.
요수정 아래로 내려가 봤다. 그 일대는 넓적넓적한 바위가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다.
바위 하나가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위가 땅을 이룬 곳이다. 금원산도 바위산이더니, 이곳도 온통 큰 바위들이다. 바위가 밝은 회색빛을
띠고 있고, 표면질감이 마치 시멘트로 만들어놓은 바위같다.
바위 중간에 움푹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는데 깊지 않아 아이들은 폭~들어가 물놀이를 해도 좋을만했다.
바위가 넓적넓적하고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놓으니 도마뱀들처럼 해바라기를 하고 싶어진다.
(전생에 도마뱀이었나, 왜 사람들이 하는 일광욕이 생각이 안 나고 웬 해바라기...^^;;)
수승대 일대의 계곡은 대체로 물이 잔잔한데 구연교(구연교)가 밑으로는 제법 물살이 세다.
거북바위의 측면이다. 사진상으로는 바위의 크기를 짐작하기 힘들다.
사람들이 한창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과 크기를 비교해보면 거북바위가 작은 바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북바위는 높이 10미터의 천연바위라고 한다. 한덩이 바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바위 중앙에 수
승대(搜勝臺)라는 붉은 글자가 분명히 보인다.
바위위에는 대(臺) 같은 것이 있는데 이곳에서 백제인들은 돌아올 기약도 없이 신라로 떠나는 백제의 사신들을 위해
마지막 위로잔치를 베풀었을 것이다.
바위를 빙 둘러가며 한시와 작자명이 새겨져 있다. 밑부분은 아주 오래돼 보이고 윗부분은 새로 새긴것 처럼 보인다.
바위의 아랫쪽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멀리 솔숲사이로 돌고래형상의 바위가 보이는데 내 맘대로 '돌고래바위'라고 이름 붙여줬다.
수승대 뒤쪽으로는 자갈밭이고 수승대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보인다. 수승대를 둘러싸고 소나무들이 힘겨운 세월을
버티며 잘 자라고 있다.
수승대 주변으로 솔숲이 울창하다.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솔숲에서 쉬기도 할 수 있으니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최적이
아닐까.
수승대를 보고 안내소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문루(門樓)인 관수루(觀水樓)가 있는데, 이 문루는 영조(1740)때 세워진 것으로,
당시의 안의현감 조영우가 이름을 지어 기문(記文)하고, 부사 김인순이 건 누액(樓額)이 있다. 고을현감, 중앙의 관리, 선비
들이 모여 시회나 연회를 열기도 하고, 평소에는 고을사람들이 쉬거나 더위를 피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나는 수승대도 좋았지만 이 관수루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단청도 거의 다 벗겨지고,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을 뿐만아니라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진 누각이다. 큰바위를 활용하여 기둥으로 삼고, 휘어지고 틀어진 나무를 하부기둥으로사용하는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형태가 매우 수려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암반 사이에 조성된 각 기단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
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 바깥쪽의 네 모퉁이에는 적절하게 높이를 조절한 활주를 세웠다. 정면에는 문을 달
아 두었으나 나머지 공간은 개방해 두었다.
관수루의 뒷면인데, 앞면의 하부기둥이 곧은 원통형인 반면, 후면의 기둥은 휘고 비틀어진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미를
살렸다. 비틀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자연석을 초석으로 삼아 기둥을 세운 이 관수루가 무척 인상에 남는다.
요수정도 바위위에 기둥을 세웠고, 바위의 높낮이가 다르니까 기둥의 길을 알맞게 조절하여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거창지역의 누각은 이렇게 자연미를 살려 누각을 짓는 특징을 보였다.
관수루에 올라 수승대일대를 바라보자. 울창한 솔숲과 넓적한 암석과 맑고 넓은 계곡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관수루를 통과하면 구연서원이 있는데, 이 서원은 요수선생이 중종(1540년)때에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숙종(1694년)때에 구연서원으로 명명돼었다. 요수 신권,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 황고 신수이 세 분을 배향하고 있다.
사당인듯하다.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수승대국민관광단지를 나와 맞은편 쪽에 있는 황산리 전통한옥마을로 향하는 길에 본 나무다. 거창과 함양을 여행
하면서 이 정도의 큰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키가 큰 나무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기둥이 굵은 나무들은 보기 힘든 것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길에는 이렇게 휘어지고 비틀어진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좀전에 본 구연서원의 휜기둥들은 이런 나무들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창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황산전통한옥마을은 수승대 맞은편길에 위치하며 가까워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한옥마을 하면 전주, 서울, 경주, 성주, 안동, 담양, 강원지역의 한옥마을이 유명한데, 거창과 함양도 그에 못지 않게
한옥마을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 마을은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요수 신권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 후,이 마을
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민박집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전통한옥의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가옥은 낡은 그대로
이지만 길은 관광객의 편의성을 위해서인지 잘 닦여있고, 돌담도 가지런하다. 삼지천마을의 돌담은 세월에 손때 묻은
흔전이 역력한 반면 내부의 가옥들은 전통한옥이 많지 않다. 반대로 이 마을은 돌담과 길은 깨끗하게 보수한 흔적은
역력하나 가옥자체는 손을 많이 대지 않아 전통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마을 내 주택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에 건립된 것으로 한말과 일제강점기 지방 반가의 건축양식을 잘 보
여주고 있는데 마을 전체는 약 50여호로 거의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다.
마을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벌써 휴가를 왔는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툇마루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승대 바로 앞에도 깨끗한 민박과 호텔, 모텔들이 있지만 이렇게 한옥마을에서 숙박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황산마을 입구에 눈에 띄는 한옥이 있어 들어가 봤다.
이곳은 관광객이 묵는 곳인지 아직 인적이 없다. 휴가철이 되면 이 방들의 꽉꽉 찰 것이다. 한옥민박의 시설은 기대하지 않
는 것이 좋다.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은 기본이다. 옆방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마당에서 말하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안채는 어느 집이나 사정이 비슷한듯 어수선하다. 농번기라 집안살림 돌볼 여유가 없는듯 가재도구
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사는 집 같다.
만약 깔끔하고 편한 숙박시설을 원하는 사람은 이 한옥민박이 불편할 수도 있다.
뒷문으로 빼꼼 들여다 보니...
황산한옥마을의 내부는 대체로 이렇다. 전통한옥의 모습이 대체로 잘 보존된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황산한옥마을 추천! 이곳 마을의 민박집 현황과 연락처는 아래 링크된 곳에 잘 나와 있다.
황산한옥마을에서 규모와 형식면에서 월등함을 보여주는 시도민속자료 제 17호인 '황산신씨고가'이다. 지금 건물은
1927년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 것으로 ‘원학고가(猿鶴古家)’라고도 부른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소한 양식에 서민 전통한옥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집이다. 현재 안채에
는 주인장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의 대표적인 가옥이니 가는길에 꼭 들러보길.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 집의 주인은 큰 지주였다고 하는데 이집은 그러한 집주인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경남지방의 일반적인 주택양식인 홑집 대신에 겹집의 팔작(八作)지붕으로 지어 집주인의 부
와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랑채는 궁궐이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장식물로 꾸몄다. 잘 다듬은 커다란
돌로 쌓은 받침돌과 기둥을 받친 주춧돌 위에 설치한 기둥자리 등은 조선중기 이전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집안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밖에 안채와 그 건물을 둘러싼 크고 화려하게 지은 부속건물들도 집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
고 있다. 그러나 안채의 늘어난 방 수, 좁아진 대청, 집안에 들어선 화장실 등은 전통의 격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20
세기 초 실용성을 중시하던 가옥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가옥은 격식의
해체, 실용성의 증가, 심화된 경제적 계층화 등 복합적인 사회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황산리신씨고가 안내참조>
이렇게 깨끗하게 정비된 가옥도 있다.
마을 입구에 600년된 느티나무가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느티나무 뒷쪽으로는 너른 논이 펼쳐진다.
거창에 여행을 오게되면 이곳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묵어보자. 옛날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할 수 있으니 어른들
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좋은 한옥체험 학습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남 거창은 '요산요수(樂山樂水)'의 고장이라고 한다. 덕유산과 가야산,지리산을 지척에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창은 산이 높고 깊기 때문에 수승대의 물이 좋은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물놀이를 하고 밤에는 곧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를 관람하는 것도 아주 좋은 피서가 될 것 같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자연, 인간, 연극이라는 주제로 매년 7월말~8월중순까지 열리고 있는데 올해는 7월 25일~8월
10일까지 공연을 한다.
수승대관광지내 야외극장에서 저녁 8시부터 펼쳐지고 있으며 지역문화축제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연속에서 이루
어진다는 점에서 더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저녁에는 연극관람을 할 수
있고, 밤에는 한옥마을에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수승대국민관광단지는 최적의 여름철 휴가지로 손색이 없을 것 같
다. 누구나 섬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날 때 오히려 내륙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주변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 쌍계사, 지리산 국립공원 등의 관
광지가 있다.
동서울과 남부터미널에서 거창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하루 8회 운행되고 있으며,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승대방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연극제기간 중에는 동서울-수승대 간 고속버스가 하루 한 번 운행이 되고, 거창읍내에서 수승
대까지 셔틀버스도 운행이 된다.
[참이슬 사는동네]
첫댓글 격조 높은 전통 황산마을과 수승대
언제까지나 평안 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