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해야 할지, 세상사는 참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대통령재신임문제로 불거진 정국의 파장은 결국 여야 4당이 총선전 ‘지구당 폐지’등을 합의하는 등 발빠른 정치개혁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힘겨운 한 해가 간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국내외 기류가 그렇고 경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바닥을 칠줄 모르고 얼어 붙었다. 많은 것이 요동치고 자중지란에 해지는 줄 모르는 속에서도 그래도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정객(政客)이 있어 우리는 희망이란 말을 쓴다.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일이 결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요즘의 정치풍토 속에서 소신껏 할 말을 다 하고 굳건히 할 일은 다하는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경북 안동)의원이 그사람이다. 그가 요즘 한창 뜬다. 지난달 16일 그는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과감히 지구당위원장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지구당위원장 사퇴를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며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서는 당 쇄신은 물론 정치개혁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권의원이 국민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라 하겠다.
권오을 의원. 총선을 코 앞에 둔 민감한 시기임에도 본지 편집·취재기자진은 세차례의 심의회의를 거쳐 권오을 의원을 이달의 인물(표지인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양심으로 실천하는 정치인’이 주된 선정 주제였다.
흔히 ‘의정보고서’로 불리는 그의 ‘의정활동자료집’을 보면 그가 어느새 이나라 주요 언론의 뉴스 중심축에 선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홍보용’일 수 밖에 없는 ‘의정보고서’는 대부분 과장된 수식어로 채워지게 마련이지만 권오을 의원의 경우는 자신과 관련된 보도기사만을 스크랩해 만들어진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만큼 그는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그는 시민단체와 언론으로부터 이미 의정활동을 높이 평가 받아 최우수의원으로 다년간 선정되어 ‘소신있는 정치인, 할 말은 할 줄 아는 깨끗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속에 각인된지 오래다.
그는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문제제기능력, 정책대안제시, 성실성, 구체적 답변유도능력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검증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국유권자운동연합으로부터 2001년 최우수의원으로 평가 받아 의정활동종합평가 대상(大賞)의원으로 선정된 이래 내리 5년 연속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권오을 의원이 국민적 칭송을 받는 모범 정치인이 된 데에는 그만의 눈물겨운 각고의 노력과 성실성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남보다 한 발 앞서 뛰는 현장 정치인으로서의 근면성, 늘 공부하는 자세로 연구하고 확인하는 학구파적 열정이 오늘날 그를 존경받는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케 했다는 것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중론이다.
그같은 실체를 뒷받침 해주는 대목이 있다. 지난 10월 21일 제 243회 정기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10년 내에 국민소득 2만불시대를 열기 위한 참여정부 임기중 2만불시대의 기반구축을 하겠다고 했으나, 향후 10년내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려면 환률고정을 가정하더라도 연 3%성장시에는 1만2천4백불이 고작이고 환율요인을 제외하고 단순계산으로 연간 7%의 성장이 따라야만 가능한 것을 어떻게 10년내 2만불 달성을 할 것인지’ 그 실천전략을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청년 실업문제에 있어서도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 대안을 들어가며 오늘의 뼈아픈 실체적 진실을 파헤쳤다. 이를테면 ‘신용불량자가 335만명에 달하고 이는 경제활동인구 7명중 1명, 경제활동인구 2,324만명 대비 14.4% 수준’으로 그 심각성을 지적한 뒤 ‘직업 및 소득이 없는 청년, 중장년 신용불량자가 약정에 의해 인력난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에 일정기간 근무하게 함으로써 급여의 일정부분을 채무상환, 신용회복지원기금에 적립토록 하는 일자리 제공 프로그램을 운용할 용의는 없는가’하고 물었는데 이는 상당히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단적인 예지만 이같은 그의 견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가 얼마나 민생현장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의 민성(民聲)을 가슴에 담아 나름대로 해결하려 애쓰는 정치인인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 권오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심성깊은 정치인이다. 당내에서 조차 그의 서슴없는 직언이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불의를 보고는 참아 넘기지 않는 불같은 성격이지만,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서민들의 애환앞에서는 별수없이 눈물이 많은 정깊은 남자일 뿐이다.
권오을의원이 정치를 하게 된 동기 역시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 심부름꾼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정치철학은 ‘국민을 편하게 하는 정치, 누구나 평등하게 대접받고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어쩌면 권오을의원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가 그 누구보다 민생현안에 애착을 갖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이나라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익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정치계는 아직도 나쁜 관행을 버지리 않고 있다. 국회가 열리면 으레 폭로와 정치공세 및 이에 대한 반발로 얼룩지고 만다.
국민들은 힘이 들건 말건, 고통을 받건 말건, 산적한 민생법안은 뒤로 한 채 그저 이전투구로 날을 새운다는 게 아직도 국민들의 인식이다. 이같은 정치행태에 국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차지만 그래서 더더욱 권오을의원 같은 이가 표상처럼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권오을의원의 지론은 간단하면서도 단호하다. ‘무차별적 정치공세와 이에 따른 반발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치불신을 심화시키는 식의 정치관행은 이제 과감히 청산돼야 한다’고. 그는 네편내편을 가리지 않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는 지극히 단호하고 과단성있게 실행하고야 마는 성품이다.
권오을의원은 이제 내년 총선이면 3선에 도전한다. 그는 이미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자리 매김했다. 이제 40후반임에도 그의 경력은 너무도 화려하고 특이하다.
권오을의원은 경북 안동 도산에서 태어났다. 리더쉽(Leader Ship)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경북 안동초등학교, 안동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놀랍게도 모두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그가 또한 기록적인 인물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91년, 서른넷의 나이에 경북지역에서 최연소로 도의원(道議員)에 당선된 것이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그는 마침내 1996년, 당시 서른아홉의 나이로 제15대 국회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또한 영남권에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이란 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 그러니까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내리 시민단체 및 언론사로부터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진기록을 연거푸 수립함으로써 그는 세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가 걸어온 행보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억척으로 충실하며 살았는가를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권오을의원은 1982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기 1999년, 그때는 이미 국회의원 신분임에도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따낸 것이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학구파인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는 1991년 4대 경상북도 도의원으로 정치와 처음 연을 맺는다. 이후, 구 민주당 기획조정실장, 경북도지부장, 대변인을 거쳐 2000년에 한나라당 농림해양수산위원장,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감사,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을 맡으면서 중앙정치무대에서 중량감 넘치는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갔다. 물론 그 토양은 이미 그보다 앞서 1998년에 한나라당 총재 기획특보, 국회 예산결산특위위원으로 활약한데다, 1998년에는 정치개혁시민연대가 주는 예산결산위원회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됨으로써 중견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받은데서 비롯된다.
권오을의원의 진면목은 2000년 의정활동 대상을 수상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제16대 국회의원 273명 평가에서 한국유권자운동연합이 그를 1위로 뽑은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유권자운동연합은 지난해(2002년)에도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최우수의원으로 그를 선정하였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고 난 후에 얻어낸 결실의 진가가 이런 것일까. 권오을의원은 이제 누가 뭐라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았다.
흔히 정치인들이라면 우연히 얻어질 수 있는 순간의 명예가 아닌, 또는 영상처럼 스쳐 가는 신기루 현상과도 같은 반짝 인기도 아닌, 국민의 뇌리속에 각인돼버린 값진 산물인 것이다.
SK비자금이니 부정한 정치자금이니 해서 온통 나라 전체가 정치권부패에 진저리를 치고 오금이 저려도 그만은 신통하게도 정치권비리와는 늘 무관한 청렴성이 그 진가를 보여 준다.
그의 청순한 도덕적 인품은 본시 어려서부터 ‘남으로부터 의심받을 일은 하지도, 가까이 대하지도 말라’는 올곧은 집안 내력의 뿌리깊은 도덕정신과 추상과 같은 부모의 엄격한 훈육이 본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부모의 이같은 가르침이 그가 오늘이 있기까지,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실로 크고 장대한 초석이 되었음은 말할 것이 없겠다.
경상북도 안동. ‘바다의 동쪽, 편안한 고을’이라는 이름처럼 유순한 안동이 권오을의원의 고향이요, 정치적 기반이요, 그가 더 큰 희망을 엮어갈 터전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자락 아래로 낙동강의 꿈같은 물줄기가 숱한 역사의 여울을 머금고 흘러 가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원이 향내 나는 화초처럼 명당의 기운을 배어나게 한다. 실제로 안동은 예로부터 명현과 석학을 수없이 배출해낸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과 유학의 대가 퇴계 이황을 필두로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났다. 그래서 안동사람들의 자긍심은 오늘날에도 대단하다. 바로 그곳, 그처럼 자긍심이 대단한 고장 안동의 도산이 권오을의원이 태어나고 자라 ‘흙냄새 사람냄새 나는 깨끗한 정치, 희망의 정치’를 이루기위해 지성으로 남다른 애정을 쏟고 사랑하는 곳이다.
그 애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표현이 하나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소회가 가슴 뭉클하게 전해지는 인상 깊은 글귀다.
‘힘들었던 그 시절 자식 뒷바라지에 소팔던 날, 오히려 아랫대 잘되면 그만이시라며 잔잔히 웃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흙 묻은 손, 기름 묻은 손, 행주잡던 손으로 바른정치 하라시던 여러분의 말씀, 변함없는 어머님의 사랑처럼 가슴 깊이 아로 새기고 있습니다.’
그는 늘 이 글귀의 의미를 되새기며 큰 그릇이 되어 ‘국민을 편하게 하는 희망의 정치’를 반드시 펼쳐 보이겠노라고 다짐하곤 한다.
권오을 의원은 의정활동 8년을 몇달 남기지 않은 현재까지 무려 170여건의 법안을 발의하여 국민들이 느끼는 고충을 법률에 담아 제도화 하는데 앞장섰다.
그 중에서도 농어민의 가장 큰 부담일 수 밖에 없었던 부채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결코 짧지 않은 3년간이란 세월을 줄기차게 노력한 끝에 기어코 좥농어가 부채 경감특별법좦을 관철시킨 것은 지금도 세인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또한 권오을의원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나라 살림을 다루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국회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예산을 절감시켜 경실련이 주는 초대 납세자의 친구상을 수상하기도 한 의원이다.
인구 179,600여명의 고장.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통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선비·양반문화로 지칭되는, 민족사를 주도하여 국난극복에 앞장서 온 충절의 고장 안동.
그 안동을 사랑하는 권오을의원의 애정은 집착에 가까우리 만큼 각별하다. 권오을의원은 안동을 위해, 내고장 지역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한푼의 예산이라도 더 끌어 오기 위해 오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최선을 다해 뛴다.
지난해 그는 신시장 소방도로 개설에 5억등 13건에 35억, 2001년에는 보조댐 인도교 개설 7억외 8건 34억 등 예기치 못한 재정수요에 배정하는 특별교부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실로 눈물겹게 지역발전을 위해 공헌했다.
그래서 권오을의원에 대한 안동인들의 자부 또한 대단하다. 안동지역민들은 오늘과 같은 정치개혁의 회오리 속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권오을의원만이 지금 이시대가 요구하는 ‘깨끗한 정치 희망의 정치’를 펼쳐 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일까, 언젠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한 사석에서 ‘차기 대통령은 경제도 살리고 통일도 이룰 수 있는 60세 미만의 젊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며 이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중에 ‘경북 안동의 권오을의원’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 대목을 똑똑히, 그리고 범상치 않게 기억하고 있다. 그의 정치행보가 어떻게 미래정치의 희망으로 연결되어 나갈지 지금 이나라 국민들은 물론 언론이 오늘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글/구성·조은정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