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 기립하시오, 당신도..!
1919년 3월 12일, 오스만 제국이 붕괴했습니다. 술탄 압뒬메지드 2세는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도망치다 영국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혔고, 콘스탄티니예에 그리스군이 진입하는 굴욕적 상황이 이어졌죠. 오스만 제국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마지막까지 저항을 선택했지만... 트라브존에서 소련군과 맞서다 큰 부상을 입고 당분간 활동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뒷처리를 맡기 위해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강화회의가 열렸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의 외교관들은 각자 자신들이 영향권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습니다. 소련 측 특사단 역시 초청되었죠. 연방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조약이 맺어질까요?
솔제니친을 총책으로 한 사절단이 테살로니카에 도착했습니다. 여독을 풀 새도 없이, 협상국들은 "쟤들은 뭔데 여기 껴있냐"는 반응을 보였고, 연방 대표단은 그들이 터키를 어떻게든 더 착취하려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무튼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결론은 사절단이 도착한 이튿날 벌써 도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은 터키와의 단독 강화.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해서 터키 인민들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해 관대한 조건을 주장했고, 우스트랼로프는 자캅카스 SFSR의 중앙집행위원장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편을 들며 "실컷 때려놓고 이제 와서 관대한 조건을 제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우리 동지들이 우선이다"라는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솔제니친은 우스트랼로프의 의견에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해당 조건을 터키 대표단에게 내밀었습니다. 이들은 화가 났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단독강화는 약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타결되었고, 사절단은 귀국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심복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와 그리스 공산당의 베나로이 총서기를 만나고 온 표트르 간니발이 중요한 소식을 전달해왔습니다. 그리스 공산당의 성장을 위해서는 메갈리 이데아의 좌절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이에 마르텔 파우코이 GRU 국장은 프랑스와 그리스의 욕심을 부추겨 협상을 파토내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어차피 협상은 누가 조금만 건드려주면 마치 풍선처럼 터질 게 뻔했기 때문에, 전략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프랑스의 고집대로 중서부 아나톨리아 전체에 프랑스의 괴뢰국인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영국은 레반트 전역을 가져갔습니다. 그리스는 해협의 통제권을 뺏겼을 뿐 아니라 최소한 가지려 했던 이오니아해 연안 지역조차 가지지 못해 분통을 터뜨렸고, 테살로니카에서 협상국들을 추방하고 협상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팔레르모에서 나머지 협상을 끝냈습니다. 터키인 그 누구도 터키 공화국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터키는 곧바로 무정부 상태에 빠져, GRU의 공작에 힘입어 이뇌뉘 반군-엔베르 반군-공화국 정부군의 3파전 양상으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
1919년 4월 10일, 터질 게 터졌습니다. 독일군 총참모부는 킬 군항의 수병들에게 자살에 가까운 무리한 명령을 내렸고, 이들은 "개소리 집어쳐!"라면서 항명을 선언했습니다. 킬 군항의 반란이 터진 것입니다. 현지에 나와 있는 고정간첩(?) 카를 라데크가 급히 전보를 보내왔습니다.
"동지들, 독일에서 혁명이 터졌습니다! 긴급!!!"
사절단으로 갔던 당원들은 테살로니카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상황이고, 각자 본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의 휴가를 즐기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들은 연락을 받고 급히 당사로 출근했습니다.
킬 군항의 반란 이후,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며 독일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공화국 임시대통령 에베르트(사민당)는 초반에 중앙당-사민당-독립사민당의 중도좌파 연정을 꾸려 위기수습을 시도했지만, 독일의 노동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총파업과 가두시위를 벌이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사민당은 국방장관 구스타프 노스케의 의견을 충실히 따라 열심히 우경화했고, 독립사민당이 연정에서 내쫓겨 보수당-중앙당-사민당의 우익 연정이 수립되었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독일에 파견되어 독립사민당과 스파르타쿠스단 간의 연대를 추진했습니다. 둘은 서로를 각각 '회색분자', '모험주의자'로 여기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적어도 목표만은 같았기 때문에 제헌 총선에서의 선거연대안에 동의했습니다. 한편 표트르는 카튜셰프가 긴급번역해준 독일어 연설문을 가지고 현지에서 선전활동을 다녔습니다. 이에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좌익 연대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죠.
한편 우익 진영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빨갱이를 막자" 이외에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었던 연합이기에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던 지도 모르죠. 결국 선거에서 독립사민당-스파르타쿠스단 연합이 40%가 넘는 의석을 점유하며 누구도 정부를 꾸릴 수 없는 교착상태가 만들어지고 맙니다. 즉 신생 독일 공화국은 불과 수립 2달만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이었죠. 연방은 라데크와 우스트랼로프, 표트르, 바레츠노프 등 현지 요원들에게 행동방침을 맡겼고, "적들이 먼저 선수를 치게 해 신망을 잃게 만들자"는 작전이 승인됩니다. 노동절 봉기가 취소된 끝에 5월 5일 카프 반란이 발생하며 독일 내전이 막을 열었습니다.
-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민주노동당이 의석 과반을 점유하며 인민공화국 체제가 수립, 친소 민주국가가 되었습니다. 헝가리는 아예 쿤 벨러의 공산당이 사민당과 연대해 정부를 전복한 끝에 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의 협공을 받아 위기에 처했긴 하지만 잠재적인 동맹국이 생긴 것입니다.
독일에 파견된 표트르는 독일 인민군(Volksarmee)의 사령관으로서 유감없는 활약을 펼쳤고, 우스트랼로프 역시 독일 자유사회주의공화국의 공업부 겸 농업부 장관을 맡아 내치를 다졌습니다. 내전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건 즉 트로츠키의 권력기반이 공고해져 자칫 권력 독식의 위험이 생긴다는 의미였고... 솔제니친은 더 이상 이를 두고볼 수 없었습니다.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솔제니친의 반트로츠키 연대가 결성되어 트로츠키에게 "군 요직 독점 중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카튜셰프는 자캅카스에서의 토지개혁과 공업정책을 담당해 꽤 괜찮은 성과를 냈습니다. 당 지도부는 그의 조정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단지 교육 쪽이 아닌 다방면으로 활용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바레츠노프는... 프랑스로 가서 그들의 검은 속을 낱낱이 알아내 본국으로 전송했습니다.
#08. 일어나라, 대지의 저주받은 이여
속보! 긴급상황! 1919년 8월 28일, 폴란드군이 갈리치아-로도메리아 공화국 국경을 넘어 전진하고 있습니다! 갈리치아 정부는 우선 영국에게 원조와 중재를 요청했고, 영국은 (9 기준, 3/4/2 딱코) ...폴란드와 국가연합을 맺고 자치권을 보장받는 정도에서 타협을 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갈리치아 정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공격이 벌어진 지 3일째, 갈리치아-로도메리아 공화국의 외무장관 '안드레이' 경이 모스크바로 와 원조를 청했습니다. 이들은 연방이 자국을 독립보장해주고 폴란드 놈들의 공세를 막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독일 내전이 서서히 혁명군의 승리로 기울어가던 때, 국내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이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피우수트스키의 의중과 무관하게, 국경 지역의 분쟁이 그대로 전면전으로 확전된 것입니다. 사실상의 만장일치로서 폴란드에 대한 개전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총사령관을 맡은 솔제니친은 협상국의 해상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발트 방면의 대공세를 주문했고, 야전 지휘관인 투하쳅스키는 이를 유감없이 이행했죠. 물론 다른 전선에서 기만용 조공을 곁들인 결과 적 역시 섣불리 군대를 이동시킬 수 없었습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불과 1달도 걸리지 않아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지원루트마저 차단되자, 영국은 소련에게 쿠를란트를 할양하고 나머지 지역의 독립을 공동보장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연방은 추가제안을 던지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협상이 질질 늘어질 수록 이익이었으니까요. 폴란드의 철도 운영권을 가져가는 안이 영국과 폴란드 양국에 의해 거절당하자, 더 이상 눈치볼 것도 없던 붉은 군대는 그대로 바르샤바에 적기를 꽂았습니다. 폴란드는 무조건 항복했고, 영국은 메멜 근방에 국제연맹 관할 하 자유지대를 설치해 와드를 박아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리투아니아를 뺏긴 폴란드에는 이후 드모프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실의에 빠진 인민들은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출했습니다. 폴란드 공화국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폴란드 인민공화국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팽창을 동유럽에서 저지하려는 협상국의 계획은 멋지게 좌절되었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으로, 2차 방파제를 세우는 안이 가결되었죠.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베르사유에서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지하고 곧바로 서독일로 진군했습니다. 월 마리아가 무너졌다면 월 로제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협상국은 엘베강 이동 영역과 바이에른을 제외한 나머지 서독일에서 철수하라는 요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습니다. 가용 가능한 정보에 따르면 이들은 더 이상의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바레츠노프가 보내온 보다 정확한 정보는 이들이 어떻게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블러핑을 치는 것이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연방은 곧바로 제안을 일축하고 표트르에게 동프로이센을 향한 총공세를 지시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에 적기가 게양되고 카프 우익반군이 완전히 궤멸되고 나서, 협상국은 라인란트 일대의 완충지대 수립이라는 완화된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알자스 로렌만 주고 꺼지라고 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솔제니친은 협상국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함부르크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독일 내전의 종결 이후 시점에서, 레닌의 계승자 후보군 중 단연 앞선 것은 트로츠키와 솔제니친이었습니다. 트로츠키는 약속대로 군사혁명위원회 폐지와 국방인민위원장직 사임을 선언했고, '당연하게' 솔제니친이 선임되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솔제니친의 세력이 트로츠키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자 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연대안을 철회했습니다. 한편 부하린은 지노비예프를 제치고 코민테른 의장직에 선임되며 제3세력의 구심점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혁명 후 솔제니친은 숙원이었던 군 현대화의 첫 삽을 뜨는 데 성공했습니다. 첫 차량화사단이 완편되었고, "7월 혁명 차량화사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사단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기념 열병식을 가졌습니다. 레닌은 솔제니친을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마르텔은 GRU 요원의 비극적인 희생을 수습하고, 요원들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을 강조하면서, 교육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표트르는 독일 공산당원인 아만다 사이프리드 양과 약혼했습니다. 신생 독일사회주의공화국의 중앙집행위 주석 '카를 카우츠키'는 표트르에게 독일 인민군 육군참모총장 직을 제안했고, 표트르는 잠시 캅카스에서 할 일이 있다면서 유보를 요청했습니다. 유보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표트르는 캅카스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서 군사교육에 매진했습니다.
카튜셰프는 지난 카프카스에서의 행정적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중국 국민당의 정치고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의 혁명적 이상에 감동한 쑨원은 카튜셰프의 절친이 되었고 왕징웨이 역시 친밀한 사이가 되는 등 당내 좌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했으나, 문제는 장제스, 후한민 등 당내 우파가 그를 경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스트랼로프는 부하린과 만나 당의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그와 연합해 당의 화합에 기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국가경제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습니다.
바레츠노프는 트로츠키의 손을 잡고 숙원이었던 외무인민위원장 직을 꿰찼습니다. 첫 임무는 코민테른과의 공조 하에 공산국가 내지 친소국가 간의 협력체를 만드는 것이었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체코슬로바키아가 헝가리와의 갈등 해소를 조건으로 제안을 유보하는 등 석연찮은 일도 있었지만, 카를 레너의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가 '비스바덴 조약기구'의 준회원국으로 가맹한 것입니다! 모두가 이 사건에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뭐,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소련과 협력해 티롤과 슬로베니아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말이죠.
이름: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플레이어: 931117
생년월일: 1889년 11월 17일
성별: 남성
민족: 폴란드인
능력치:
- 통솔 16
- 체력 10
- 지능 11
- 지혜 13
- 매력 12
트레잇:
- 지적 유희
그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학문을 좋아하는 딜레당트입니다. 이는 토론과 논쟁에서 도움이 됩니다.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논쟁 및 토의에서 +1의 모디파이어.
- 불도저
그는 자신이 계획한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하급자 또는 동지에 대한 압박에 +2, 상급자에 대한 설득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은 폴란드 남작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매우 유복한 권력자의 삶을 누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관학교에 진학했으나,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서적을 읽고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대전쟁에서 겪은 참상은 그의 의문을 확실시해주는 것이었고, 급기야 1917년 2월 병사들의
항명 사태가 벌어지자 오히려 부패하고 무능한 장교들을 처단해 차르정의 붕괴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부가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겨울궁전을 습격해 사회주의 혁명의 1등공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공적으로 당 중앙에 진출한 이반은 그 뒤 적백내전에서의 활약으로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레닌 이후 사회주의 조국의 차기 지도자 후보 중 한 사람으로 주목받는 중입니다.
-
이름: 마르텔 파우코이
플레이어: dear0904
생년월일: 1878년 12월 16일
성별: 남성
민족: 프랑스인
능력치:
- 통솔 9
- 체력 8
- 지능 14
- 지혜 18
- 매력 11
트레잇:
- 거짓의 윤무곡
그는 거짓으로 무언가를 꾸며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조작하거나,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데 +2의 버프를 받습니다.
- 암약가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손을 더럽히는 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파괴, 암살, 사보타주, 테러 등의 공격행위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마르텔 파우코이는 파리 코뮌의 봉기에 관한 역사를 읽고 벅찬 감정을 느끼던 평범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이제 막 한 사람의 청년으로 자라나던 무렵 레닌과의 짧은 만남과 대화는 그를 훌륭한 혁명가로 만들었죠.
마르텔의 장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류를 읽고, 그 틈바구니에서 적절한 사실과 거짓을 섞어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끔 하는 능력이었습니다. 타고난 첩보원이었던 그는 7월 혁명 과정에서 훌륭하게 여론을 이끌었고,
체카에서 다종다양한 경험을 쌓은 끝에 신생 군 정보총국(GRU)의 국장에까지 위촉되었습니다.
정보 분야의 사실상 2인자로서 마르텔은 사회주의 조국의 영광과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
이름: 뾰뜨르 뾰뜨로비치 간니발
플레이어: 통장
생년월일: 1894년 9월 4일
성별: 남성
민족: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5
- 체력 18
- 지능 8
- 지혜 9
- 매력 12
트레잇:
- 사회주의적 인간형
그는 누구보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가장 낮은 잘에 있는 자의 입장에서 진솔한 언행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대중에 대한 설득과 선동에 +3의 모디파이어.
- 영웅은 공부 따윈 안한다네
그는 어려운 이론, 변증법 논쟁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게 중요하지 그런 게 뭔 상관이겠습니까?
학술적, 이론적 논쟁 및 성과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뾰뜨르는 크라스노다르 시 인근 미르에 속한 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건장한 체구와 완력으로 골목대장 겸 해결사 노릇을 맡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질 수록 그는 사회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한 심성 탓에 분을 홀로 삭이며 부농에게 몰매를
그대로 맞고만 있던 때, 페트로그라드에서 온 한 혁명가의 연설은 뾰뜨르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았습니다.
수도로 향한 뾰뜨르는 7월 혁명의 현장에 휘말린 끝에 감옥소에서 트로츠키를 구출해내며 그의 측근이자 전위대장이 되었습니다.
특유의 진정성 있는 연설은 거칠지만 노동자 동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후 그는 캅카스 지역에서 많은 공로를 세우고 GRU의 지도편달을
받아 독일 혁명을 이끄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명실상부 혁명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
이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카튜셰프
플레이어: 카라멜 마끼아또
생년월일: 1890년 10월 29일
성별: 남성
민족: 발트인(에스토니아)
능력치:
- 통솔: 10
- 체력: 9
- 지능: 14
- 지혜: 12
- 매력: 12
트레잇:
- 유능한 행정가
그는 사람들의 배경과 상황을 감안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전반적인 행정 관련 행동 일반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알렉산드르 카튜셰프는 페트로그라드의 중산층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별 굴곡 없이 가업을 잇고, 역시 별일 없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대전쟁 때도 전문직 종사자라는 이유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죠. 여러모로 평범한 삶이었지만,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없는 차르가
쫓겨나고 척박한 러시아 땅에도 자신이 책에서나 보던 혁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7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축출되기 직전, 카튜셰프는 끓어오르는 의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무언가 홀린 듯 볼셰비키당에 입당했죠.
이후 그는 사상교육 담당 관료를 거쳐 교육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의 직책에까지 올라 연방의 인재들을 발굴하고
다듬는 일의 실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카튜셰프는 당원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며 착실히 사다리를 오르는 중입니다.
-
이름 :일리야 바실리예비치 우스트랼로프
플레이어: 렌지파일
생년월일: 1891년 5월 23일
성별: 남성
민족: 유대계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1
- 체력: 8
- 지능: 16
- 지혜: 11
- 매력: 11
트레잇:
- 네고시에이터
그는 반대파에게도 화합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모든 갈등에는 해결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갈등의 조정 및 설득 과정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일리야 우스트랼로프는 본래 제국대학의 법학도였으나, '자본론'과 '독일 이데올로기' 등을 탐독한 끝에 결국 맑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 길로 곧장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볼셰비키파에 속했음에도 각종 당내 분규에 휘말렸고, 1912년 레닌에 의해 당이
두쪽나는 과정에서 비밀경찰의 추적을 피해 스페인 망명을 떠났습니다.
1917년 8월, 일리야는 붉은 페트로그라드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동지를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던
이들이 사회주의 조국의 고위직을 차지한 모습을 보자 오히려 착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과 무산계급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당내 비주류 계파들의 융화를 돕는 한편 지도부가 지시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다시금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간이 없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라고 믿는 그는 과연 자신의 작은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
이름: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바레츠노프
플레이어: 하일레 셀라시에
생년월일: 1894년 10월 1일
성별: 남성
민족: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0
- 체력 9
- 지능 11
- 지혜 15
- 매력 14
트레잇:
-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그는 은근슬쩍 정보를 빼내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데 +3의 모디파이어.
- 샌님
누군가에게는 귀티나는 행동으로 보이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수없는 샌님의 행동인 법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 선전 등 행위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알료샤 바레츠노프는 주 런던 러시아 제국 대사관의 1등서기관을 역임한 콘스탄틴 바레츠노프의 아들로서,
런던 빈민가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사회주의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주문대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배신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 그리고 각종 노동조합의 서기직을 맡으며 그의 신념을 관철해 나갔습니다.
이는 오래지 않아 탄로났고, 알료샤는 집안과 의절하게 되었죠.
이후 다시 고국 러시아로 향한 그는 7월 혁명의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 공산당에 가입해 사회주의 조국의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탁월한 말솜씨로 상대에게서 각종 정보를 간파하는 재주를 가진 알렉세이에게 외무인민위원회의 간부직은 꽤나 나쁘지 않은 직업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조금 더 당에 기여하고 정치적 입지를 쌓을 수 있는 일을 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흑군과의 공조, 소수민족 내지 백군 출신
지휘관들과의 인맥 쌓기, 민족문제위원회 위원장 서리직 수행 등 그는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노력했습니다.
트로츠키 동지는 그의 외교적인 공로를 적극적으로 주목하며 바레츠노프를 외무인민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왕좌의 게임: 권력 투쟁 업데이트. (1920년 상반기 기준)
1.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일명 '트로츠키' (55)
2.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46)
3. 이오시프 비사리오비치 쥬가슈빌리, 일명 '스탈린' (15)
4. 그리고리 예브세이예비치 지노비예프 (5)
5.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18)
6. 일리야 바실리예비치 골드시테인, 일명 '우스트랼로프' (8)
*현재 당내 정치 긴장도: 3(협조적)
요즘 새벽 2시까지 진행하시느라 많이 무리하셨을텐데. 이해합니다.
그래도 짐작이라도 가면 다행이지.
원인도 모르겠는데 아픈 경우도 허다해요.
심지어 전 고딩때 야자하다 일어서서 걷다가 갑자기 몸에 가운 빠져서 픽 쓰러진적도 있다니까요.
발목 삐꿋항 정도로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전거에서 내리다 자전거와 함께 쓰러져 척추에 금이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종종 허리에 통증이 올 때가 있어서 미치겠습니다. 아픈게 오래가니...
혹시 영향력 업데이트도 올라올 예정인가요? 아니면 개인행동을 슬슬 고민해야..
중국 혁명을 특정 계파가 주도한 게 아니다 보니, 영향력은 변동하지 않았습니다.
단, 카튜셰프가 특정 계파에 들어가게 되면 얘기가 다릅니다.
개인별 보상이나 미션은 아직 안나왔나요?
보상 및 영향:
1) 이반 솔제니친.
- 경전차, 복엽기 등 군 현대화의 결과물들은 국민혁명전쟁에서 (+2) 3/6/2 +2 = 13.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당 지도부의 다른 간부들은 "이런거 더 없나요?"를 외치며 정진을 주문합니다.
- 투하쳅스키와 트리안다필로프, 프룬제, 예고로프 등 지휘관들은 종심돌파이론을 중심으로 한 기동전 교리의 공식 채택을 요청했습니다.
- 솔제니친의 지능이 +1 상승합니다.
2) 마르텔 파우코이.
- GRU 역시 전세계적으로 많은 활약을 보인 결과, GRU의 조직을 확대해 붉은 군대 '방첩대'와 국가정보위원회(KGI)로 분리하는 안이 채택되었습니다. 마르텔은 KGI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신규 규정에 따라 당연직 정치국 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 KGI의 첫 주요간부회의에서는 여러 안건이 나왔는데, 당연히 모두 해외에 관련한 안건이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터키 건이 최우선과제로 올라왔군요. 하나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1.그래서 개발 지시 몇개 더한거고.
2.요청하는데 유사시를 위한 대체안도 마련해야...
이 동네 소련은 해외정보와 국내정보 군사정보가 전부 분리되었네요 ㄷㄷㄷ 러시아인줄
뭐 어쩌다보니까 분담이 됐네요
뭉쳐있으면 예조프의 NKVD 되버리니까 갈라놓는게 좋긴하죠
그렇긴 하죠.
3) 표트르.
- 표트르는 모든 권세를 포기하고 은퇴했지만, 대문호 막심 고리키는 그를 "사회주의적 인간의 전형"이라고 칭송하며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냈습니다.
- 표트르 P. 간니발 군사학교가 설립되어 외국인들(물론 독립투쟁가들을 포함합니다)을 교육하는 군사교육기관이 되었습니다.
- 칭호, "소비에트 타잔"이 해금됩니다. (?)
4) 카튜셰프.
- 카튜셰프는 국민혁명의 주역입니다. 지금껏 행정가로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다릅니다. 무엇보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군령부장 후한민을 (휘하 총참모 장제스의 은근한 부추김으로) 왕징웨이가 축출해버렸습니다.
- 앞으로도 난징과 모스크바(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며 여러가지 과업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 카튜셰프에게 트레잇 "동방의 붉은 별"이 추가됩니다. 그는 동양 문화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동시에 이해하는 이로, 동양 지역의 사회주의 세력 조직에 +2의 모디파이어가 주어집니다.
장제스.. 최후에 승리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후한민이 꺼졌으니 적들이 줄어드는군요. 그런데 장제스 꼬시는덴 성공했나요?
5) 우스트랼로프.
- 우스트랼로프의 방법론 하에서, 연방의 공업 생산효율과 농민 여론은 개선되어 갑니다.
- 연방의 국가경제최고평의회 의장으로서 그는 연방 전역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독자의 파벌을 이룰 정도로 성공한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 우스트랼로프의 지능이 +1 상승했습니다.
6) 바레츠노프.
- 국민혁명에서 바레츠노프의 공 역시 작지 않습니다. 그는 정치국 위원이 되었고, 이로써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4인이 모두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 바레츠노프의 '샌님' 트레잇이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를 귀족 나부랭이로 보는 여론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 바레츠노프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영국을 영원히 고통받게 만드는 임무입니다. 이미 얼굴이 팔린 상태이기 때문에 직접 갈 수는 없고, 대신 KGI에 인력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카튜셰프 개인과는 이제 사이가 좋습니다. 문제는 소련을 계속 좋아할 것인가 그거죠.
+ 빼먹고 언급은 안했지만, (카튜셰프의 개인 의견과는 별개로) 소련이 장제스가 고안한 농촌 우선 진격을 지지해준 덕에 장제스와의 친밀도 역시 덩달아 더 많이 상승한 겁니다.
영국을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임무라니.. 대체 뭘하게 되는겁니까 ㄷㄷ
그런데 미션은 없나요? 없으면 간체자를 도입해 중국의 문맹률을 줄이는데 집중하겠습니다.
북아일랜드와 이집트, 인도 공작 아닐까요 역시?
흑흑 그만한 인간이 안되는데도 사회주의적 인간형이라니, 뾰뜨르는 기뻐할 겁니다 ㅜㅜ
후... 일단 겉잡을 수 없는 댓글 둠스택(?)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로그를 작성해야겠군요.
엌ㅋㅋㅋ 개인행동은 그럼 어떻게 할까요? 새 글에 올릴까요?
넵넵 ㅠㅠ
열심히 쓰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다음 화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