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학과 기철학의 개념과 특징
첫 강의를 시작하며 신유학과 기철학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성립되었는지, 그 이론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신유학과 기철학의 성립 배경에 대해 공부하며 유학의 쇠퇴와 도불의 성행, 현실 문제와 도통 의식, 신유학의 성립, 기철학의 성립 등 다양한 배경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현실 문제와 도통 의식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현실 문제와 도통 의식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의식이 확산되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인식’ 하는 태도를 가지고 올바르게 사고하고자 하였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모색함에서 신유학과 기철학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도피한다는 것은 문제 상황에 맞서기보다는 피하려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식이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분명히 그러한 의식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을 낳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제 예상대로 현실도피 의식이 확산되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느끼고 현실도피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벗어나기 위해 '지금 여기의 중요성' 을 인식해야 한다는 새로운 의식과 더불어 현실에 마주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큰 놀라움을 느꼈고, 그러한 태도를 본받아 삶에서 어떠한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회피하려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계속해서 시도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유학과 기철학 또한 그러한 현실 문제에 있어 좌절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성립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한유‘라는 사상가는 묵가, 양주, 도가, 불교를 비판하였으며 중요시 한 개념은 ’도통 의식‘ 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한유는 그러한 도통 의식의 계승과 발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현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가철학 이론의 심화 필요성을 인식하며 신유학이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기철학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성립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기철학의 성립 배경은 명나라가 멸망하게 되고 그 후 청나라가 성립되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철학이 중시되었던 17세기의 중국에서는 사회 내부에 다양한 모순들이 심화되게 되었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삶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많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여기서 백성들은 지배계층의 사치와 더불어 군비가 증가함에 따라 생활하는데 더욱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백성들은 많은 착취와 수탈을 당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약한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여겨졌고 세상이 혼란스럽게 흘러간다면 제일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공부하며 새롭게 느낀 점은 통치자를 비롯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어떠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들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보듬어 주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삶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그렇게 되면 다양한 문제들을 낳게 되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터를 떠나 유랑하기도 하였지만 조직을 결성하여 문제를 바로잡고자 항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불만 의식으로 농민군들은 봉기하게 됩니다. 그 후 강남 지역에 농업과 수공업을 비롯한 상품경제가 소규모로 발달함과 동시에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천주교 사상과 자연 과학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리학 못지않게 기학 또한 발전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의 수용에 힘 업어 결국 선험적인 앎의 추구보다는 경험과 검증을 중시하는 학풍이 위력을 발휘하게 되며 기철학이 성립되었다는 점을 새롭게 알고 큰 놀라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송대 이전의 시기에는 많은 학자들이 리의 개념보다는 기의 개념을 더욱 중요시하였고 유가와 도가의 효시인 공자와 노자도 이 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리는 ’옥을 다스리는 것이다. 왕으로부터 나오고 소리를 리로 냈다‘고 지적하였는데 결국 이것은 옥을 가공하는 사람에 집중해 보았을 때 그러한 가공자가 옥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결에 맞게 옥을 잘 다듬듯이 사물의 성질을 잘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띄는 ’성질‘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여 활용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롭게 알 수 있었고 그러한 점을 ’옥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큰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리의 개념은 후에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진화되기 시작하여 송대의 정이와 주희 등에 의해 우주 만물의 존재 근거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말청초의 황종희, 방이지, 왕부지 등은 실제적인 입장에서 타당함을 찾고자 하였고 그로 인해 리는 다시 기의 규율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왕부지는 기철학의 이론에 대해 리를 기를 초월하는 존재가 아닌 기에 부속되는 기의 조리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청대의 대진은 리에 대한 사상을 사람을 죽이는 공허한 철학으로 여기며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공허한 철학이 명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성리학이 어떠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수업 시간을 통해 성리학이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의 논리 구조로 왕권 통치의 강화에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리학의 의의에 대해 알고 나니 성리학에 따른 문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성리학에 따른 문제들은 사실과 당위의 동일성 문제, 정적인 리가 동적인 기를 주재할 수 있는지의 문제, 원리주의의 고착화 문제, 단일한 가치와 다원적인 가치의 충돌 문제 등 생각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낳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기철학 또한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그들의 학문적인 영향을 발휘하였고, 동시에 변화하는 현실의 본질적인 측면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비실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철학 이론들을 분석하며 비판하였고 실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론들은 계승하고 발전시켰지만 특수와 특수가 충돌할 때에 어떻게 합당한 보편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서 제한적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유학과 기철학의 개념과 특징들에 대해 배우며 고등학교 시절 윤리와 사상 과목을 공부하며 배웠던 성리학과 이기론 등의 개념들을 떠올리며 강의를 들으니 과거에 공부했던 다양한 지식들이 더해져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리와 기에 대해 배울 때에는 어렵기도 하였고 이해하는 데에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이 거름이 되어 이 수업을 들으며 더욱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신유학과 기철학의 개념이나 특징 의의 등에 대해 배우니 더욱 깊게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