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이 말했다.
“예전 우리 진(晉*註1)나라”가 천하에서 가장 강성했다는 것은 선생께서도 아시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인으 대에 이르러 동족으로는 제나라에 패해서 내 큰아들이 죽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게 땅을 칠백리나 빼앗겼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 패배하여 모욕당하였습니다. 과인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남김없이 설욕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땅이 사방 백리(*註2)만 되어도 천하의 통일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왕께서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仁政]을 베풀어서 형벌을 감면해 주고 세금을 적게 하며, 농지를 깊이 갈고 잘 김매게 하며, 장정들이 일이 없는 한가한 날에는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의 덕을 닦아 집에 들어가서는 아버지와 형을 섬기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들을 섬기게 하면, 몽둥이를 만들어 가지고도 진나라나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무기에 맞서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진나라와 초나라의 군주들은 지금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를 빼앗아 밭 갈고 김매서 그 부모를 봉향할 수 없게 하여,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어 죽으며 형제와 처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백성들을 고통의 구덩이에 빠뜨릴 때 왕께서 가서 정벌하면 누가 왕에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말에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왕께서는 제 말을 믿으십시오.”
梁惠王曰,
“晉國, 天下莫强焉, 叟之所知也, 及寡人之身, 東敗於齊, 長子死焉, 西喪地於秦七百里, 南辱於楚, 寡人恥之, 願比死者壹洒之, 如之何則可?”
孟子對曰,
“地方百里而可以王, 王如施仁政於民, 省刑罰, 薄稅斂, 深耕易耨, 壯者以暇日, 修其孝悌忠信, 入以事其父兄, 出以事其長上, 可使制梃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 彼奪其民時, 使不得耕耨以養其父母, 父母凍餓, 兄弟妻子離散, 彼陷溺其民, 王往而征之, 夫誰與王敵? 故曰, ‘仁者無敵’ 王請勿疑!
첫댓글 *註1 : 양혜왕의 진晉 나라의 유력한 세 대부였던 한씨(韓氏), 조씨(趙氏), 위씨(魏氏)가 원래의 군주를 내쫓고 각각 셋으로 찢어서 세운 나라중의 하나였다. 이들 세나라는 모두 자신들이 진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우기 위해 자칭 진이라고 했다. 양해왕이 ‘우리 진나라’라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註2 : ‘사방 백 리’(方百里)는 네 변을 합한 길이가 백 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네 변의 길이가 각각 백리씩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굳이 ‘사방 백 리’라고 거론한 것은 주나라 때 문왕이 사방 백리의 작은 영토를 가지고도 어진 정치[仁政]을 베풀어 천하를 다스린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