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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61. 숙부인 시가·우화당 마루 (낮)
강화의 숙부인 시댁 별당. 숙부인의 거처인 우화당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부용정과 달리 언덕위에 소박하게 들어앉은 정갈한 집이다. 햇살 좋은 날. 자그마한 돌절구에 빨간 봉숭아 꽃잎을찧고 있는 손.
은실 이걸 구하느라 온 산을 다 뒤졌습니다.
숙부인 고생했구나
은실 생전 안 하시던 봉숭아 꽃물을 왜 들이신대요? 그것도 여름 다 지나서
숙부인 이뻐 보이려고 그런 다. 왜
은실 마님도 참
아주까리 잎에 찧어놓고 봉숭아를 얹어 손가락을 감싸는 모습. 양손의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을 감싼 숙부인과 열손가락을 다 감싼 은실이가 마루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은실 한양으로 올라가셔야 않겠어요?
숙부인 왜, 한양에서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니?
은실 호호… 이젠 농담까지 다 하시구 그게 아니라요. (몸서리를 치며) 역병이 재 너머까지 번졌다는데 사람들 죽어나가는 걸 보면
숙부인 난 안 간다. 예서 너랑 이러고 죽을 때까지 살란다.
은실 (정색을 하며) 엄마야, 전 싫어요. 저도 예서 이러고 처녀로 늙어 죽으란 말에요? 앗 (숙부인 눈치를 보다) 제 말씀은요. 그러니까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저도 그게 아니라 (말을 자꾸 하다 보니 더욱 어색해지며) 네 그러시자면 그래야죠. 뭐
-시간경과-
숙부인이 은실의 새끼손가락을 마지막으로 동여맨다.
숙부인 다 했다!
은실 (동여맨 열손가락을 보며 좋아하며) 첫 눈 올 때까진 남아 있겠죠?
열 손가락을 다 감싼 은실이와 양손의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을 감싼 숙부인이 봉숭아물 들인 것을 들여다본다. 숙부인, 편히 뒤로 기대며 하늘을 본다. 청명한 하늘이 눈이 부시다. 쓸쓸함이 감도는 숙부인의 얼굴
S#62. 유대감 집·부용정 건넌 방 (낮) @@
문 쪽을 등지고 누워 있는 소옥. 방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지만 돌아보지는 않는다. 소옥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버선발. 갓을 벗더니 소옥의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데 조원이다. 부드럽게 소옥을 뒤에서 끌어안는 조원. 흐느적 끌려가는 소옥.
소옥 (눈을 감은 채 작은 소리로) 뉘시오.
조원 나지. 누구냐. 어찌 대낮부터 누워만 있느냐?
소옥 (응석 부리듯) 누워 있을 밖에. 치∼그리 만든 게 누군데
조원 (목에 입을 맞추며) 간밤에 그리도 아팠더냐? 그래서 나를 본 척도 않는 게냐
소옥 (짧은 한숨) 흠∼없던 길 낸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아팠겠소.
조원 (씨익∼은근히) 그럼 좋았더냐?
소옥 (조원의 손길이 밑을 파고들자 움찔하며) 초행길에 뭐 그리 좋았겠소. 다만
조원 다만?
소옥 (작은 소리로) 기왕 낸 길 아쉽기는 합디다.
그 말에 조원, 소옥을 돌려 눕히고, 마지못해 응하는 척 조원을 안는 소옥. 소리가 새어 나가지않게 신음 소리를 삼키는 두 사람
S#63. 국궁터 (새벽) @@
해뜨기 직전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적막한 국궁터. 텅! 화살이 정확하게 과녁 한가운데 꽂힌다. 다음 시위를 준비하는 조씨 부인. 궁사다운 복장을 한 전과 달리 엄숙하다.
조씨부인 (화살촉을 닦으며) 알 수가 없구나. 난 왜 이 넓은 세상 가운데 하필 조선 땅에 태어났을까? (활줄에 밀랍을 입히며) 왜 하필이면, 수많은 남자 중에 유치헌의 아내가 되었을까? 또 하필, 여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을까? (활시위를 당겨 쏜다) 내 비록 오라버니들 어깨 너머로 사서에 삼경까지 깨쳤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한갓 소실 따위에 투기나 하는 범부에 지나지 않으니…
조씨 부인 돌아보면, 정금이 묵묵히 화살들을 다듬고 있다. 정금이 자기를 보고 있는 눈길을 의식하고 조씨 부인을 쳐다본다.
조씨부인 (쓸쓸한 미소를 띠며) 차라리 네 신세가 부럽구나. 험한 얘기 안 들어도 되고 꾸민 말도 할 필요 없으니…
조씨 부인, 정금이를 보며 씨익- 웃어주자 정금, 영문도 모른 채 쑥스럽게 따라 웃는다.
조씨부인 (싸늘한 미소로 바뀌며) 하지만 어쩌겠니…이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인 걸…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향했던 손을 천천히 들어올려 허공을 향해 화살을 날려보내는 조씨 부인.
S#64. 유대감 집·부용정 건넌방 (밤)
일을 치른 후 껴안고 있는 두 사람. 소옥, 조원 품에 착 안겨 있다.
조원 (대견한 듯) 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나
소옥 정말요? 제가 그렇게 잘 하는 건가요?
조원 대감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게다. 아주 교육을 잘 받고 왔다고
소옥 (흐뭇해하며) 다 나으리 덕분이죠.
조원 그러게, 실전학습이 중요한 게지.
소옥 저. 유대감이란 분 나이가. 아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조원 음. 기묘생이니 마흔이 다 되가는 걸.
소옥 (놀랍고도 싫은 듯) 아. 그럼 할아버지잖아요. 제 아비보다 나이가 많네요.
조원 그러니 잘 배워가서 기쁘게 해 드려야지.
소옥 (긴 한숨을 쉬며) 아이.
조원 그래도 네 엄마 곁에서 잔소리나 들으며 사는 것보단 백 배 낫지 않느냐.
소옥 그렇긴 하지만.
조원 우리 귀여운 종달새가 울적해졌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까?
소옥 (금새 호기심에 누이 반짝) 뭔데요. 뭐언∼데요?
조원 네 어미도 한때 정인이 있었단다. 너희 아비가 중국으로 간 사이였지, 아마...
소옥 (놀라며) 저, 정말요? (소리가 컸다고 느꼈는지 바깥을 의식하는 두 사람)
조원 얼마나 정신이 팔렸던지 네 아비가 돌아왔는데도 집엘 가지 않겠다고 무던히도 버티다가 결국 정인에게 채이고 말았지 뭐냐.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끝장이니라. 넌 절대 그러지 말거라. 알겠느냐?
소옥 (또 새로운 것을 배웠다. 끄덕끄덕) 네에 그런데, 나리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조원 (소옥의 눈을 그윽히 들여다보며) 그 정인이 나였으니까.
소옥 (눈이 동그래지며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어쩜 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요.어떻게 이런 인연이 다 있을 수가 있죠?
조원 (미치겠다) 그러게 말이다. 이런 걸 기연이라고나 할까. 정 못 믿겠으면 네 어미에게 직접 물어보거라.
소옥 (가슴을 툭탁) 아잉 그런 걸 어떻게 물어요. (조원의 품으로 파고드는 소옥)
S#65. 숙부인의 시가·우화당 마당 (낮)
우화당의 안마당. 단풍이 바알갛게 물들기 시작하고 감국이 곱게 가을 색을 들어내는 어느 한 낮. 은실이 무엇을 찾는지 화단 앞을 서성대며 두리번거린다.
은실 어째 오늘은 통 보이질 않네.
발을 내린 방 안에선 숙부인이 수를 놓고 있다. 수를 놓고있는 것은 매화 그림이다. 갑자기 소리치는 은실.
은실(off) 히앗! 잡았다!
잠시 멈춰 밖을 내다보는 숙부인. 은실, 마당에서 나비 하나를 손에 잡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은실 이럴 땐 일진을 뭐라고 해야하나 노랑도 아니고 하양도 아니고
은실, 손에 잡은 나비를 발 너머로 건네준다. 나비를 건네 받은 숙부인 정씨. 보면 노랑과 하양이 섞인 호랑나비다.
숙부인 (의아한 듯) 노랑이면 길조고 하양이면 흉조라 하지 않았느냐?
은실 그렇다면 나쁜 일과 좋은 일이 같이 온단 말이네요?
숙부인이 손을 펴자 사뿐히 날아 올라 어디론가 날아가는 호랑나비
S#66. 강화 가는 길 (낮)
말을 타고 둔덕을 오르는 조원. 나귀를 타고 뒤따르는 자근노미. 둔덕 아래로 한적한 나루터 마을이 펼쳐지고 저만치 바다너머 강화도가 보인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마침내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조원과 자근노미, 말과 나귀를 재촉하여 나루터로 향한다. 화문석을 달구지에 가득 싣고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강화 상인들 옆을 스쳐간다.
S#67.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과 마당 (초저녁)
Ins
비가 그치고 우화당 마당 한켠에 놓인 돌로 만든 물웅덩이로 나뭇잎에서 흘러내린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숙부인, 차를 마시려 다구를 준비한다. 조원이 준 차함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열어 찻잎을 꺼낸다. 이때,
행랑아범 마님, 웬 선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의아해 하는 숙부인 정씨. 은실이가 눈치를 살피며 발을 내린다.
숙부인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어른들도 안 계시고,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서방님도 안 계시니 그냥 가시라고 하게나.
행랑아범 그런데 그게
숙부인 왜 그러는가?
행랑아범 워낙 장시간 비를 맞고 오셔서 몸을 덜덜 떠는 것이 사정이 좀
발 너머로 살짝 내다보는 숙부인. 이미 중문 안으로 들어서 있는 조원. 비에 흠뻑 젖었다. 조원의 등장에 당황스러워 하지만 곧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뀌며 망설이는 숙부인.
숙부인 (행랑아범과 은실에게)잠시 나가들 있거라.
행랑아범 예. (은실과 함께 중문 밖으로 나가고)
조원 부인
숙부인 (발 너머로 하소연하듯) 어찌 이리 무모 하시 답니까. 역병을 피해 시어른들이 집안을 비운 틈에 예까지 발을 들이시니 제가 어떻게 해야만 멈추시겠는지요
조원 (슬픈 눈빛으로) 멈출 것이오. 마지막 기별을 고하러 왔소.
숙부인 (의외의 반응에 멈칫하고)
조원 내 비록 넉넉한 집의 장자이기는 하나. 세상이 다 아는 파락호.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주제가 아니겠소. 그런 나에게 부인의 마음을 달라고 하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겠소.
숙부인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런 것이 아닌 줄은 저도 알고
조원 부인의 사랑을 받을 주제가 아님을 잘 알지만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람이다 싶어 무리를 했소이다. 더 이상 부인을 괴롭히지는 않겠소. 내 떠날 것이오. (움찔하는 숙부인) 청나라로 떠나 드넓은 땅에서 이 외로움과 고통을 누일 작정이요. 그러면 이제 다신 부인을 괴롭힐 일은 없을 것이오.
이때, 번개가 번쩍하더니 천둥이 친다. 숙부인, 고개를 숙인 채 갈등에 빠져 있다. 조원, 그 모습을 슬프게 응시하다가 돌아선다.
조원 (두어 걸음을 떼다가 멈춰 서서) 혹 만에 하나 이 사람에게 전할 기별이 하나라도 있으시면 역참에 있는 여관에서 하룻밤 유숙할 작정이니 (고개를 흔들어 잊어버리려는 듯) 아니오. 아니오! 이런 나약한 작자가 세상에 또 있나 허어 (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표정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숙부인, 고개를 들어 빗속으로 걸어가는 조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S#68.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 (초저녁에서 아침)
Ins
빗발이 다소 꺾여 흐린 하늘 사이로 비치는 일몰의 기운이 우화당을 점점 물들여 가고 있다. 창에 어리는 그림자를 통해 숙부인이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해가 지고 밤이 깊더니 그대로 아침이 된다. 정갈하게 앉아있는 숙부인의 모습. 티끌하나 없는 바닥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힘없이 매만지다가 까닭 모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운다. 한참을 울다가 처연하게 추스리고서 비장한 편지를 써 내려간다.
-시간경과-
숙부인 마알간 얼굴로 편지를 곱게 접으며
숙부인 은실아. 행랑아범 좀 들라 해라.
은실 네.
숙부인 (잠시 생각해보더니) 아니다. 그만 둬라.
S#69. 강화여관 (오전)
마실 걸 들고 방문 앞 쪽마루에 놓고 방문을 두드리는 여관주인. 문이 열리며 조원이 내다본다.
자근노미 (뒤쪽에서 나와 마루에 걸터앉으며) 변덕스런 비님이 오늘은 그치신 겐가
조원 (하늘을 올려다본다)
자근노미 여기도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한대요. 역병이 좀체 가라앉질 않아서 이제 그만 올라가시죠? (대답이 없자) 숙부인께선 안 오신 다니까요. 글쎄
조원 가만 좀 있어봐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오지 않을 리 없다.
자근노미 어께 너머를 보고는 씨익 미소가 이는 조원. 여관 입구에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숙부인이 서 있다. 시선을 내리 깔고 아직도 망설임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감격에 찬 조원의 표정. 자근노미,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비켜준다.
조원 (기뻐 믿어지지 않는 듯) 와 주시었구려. 와 주시었구려
숙부인 (자르듯 품에서 편지를 꺼내 내밀며) 제가 온 까닭은
조원 (손목을 잡으며) 일단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숙부인 (조원의 손길에 깜짝 놀라 뿌리치려 하며) 어딜 들어간단 말입니까?
조원 (설득조로) 사람들 눈이 있잖소.
이때 바깥에서 "주인장 계신가?" 하며 사람들 소리가 들리자 놀라는 숙부인.
S#70. 강화여관·방 (오전)
조원에게 끌려들어오는 숙부인 정씨. 문이 닫히자, 손을 뿌리치고 외면하며,
숙부인 부디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온 까닭은 한낱 이성에 대한 사념 때문에 장래 큰 일을 하실 분이 이토록
순간 조원이 숙부인의 장옷을 벗겨내며 입을 맞춰 버린다. 한 번의 입맞춤으로도 온 몸에 힘이 빠져 버리는 숙부인, 그대로 조원의 품에 무너져 버린다. 보기에도 안스럽게 벌벌 떠는 숙부인. 신음인지 혼잣말인지 하늘님만 되뇌이는데 조심스레 보듬어 안고 다시 입을 맞추려는 조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숙부인. 차마 더 이상 진전을 하지 못하는 조원, 무슨 생각끝에 숙부인을 슬며시 놔준다.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숙부인. 시선을 돌리며 비장함에 젖는 조원. 망설이다 결심한 듯.
조원 (문을 열고) 자근노미야. 부인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오거라. 우린 한양으로 올라가자.
S#71. 강화 저수지 (낮) @@
을씨년스런 저수지 앞으로 난 길에 달구지가 지나간다. 그 위엔 거적에 덮인 시체가 맨발을 드러낸 채 실려 있고 그 뒤로 한 시골 아낙이 포대기에 애를 업은 채 울며 따라가고 있다. 시체 옆에는 댓살 먹은 아이가 철없이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 위로 숙부인의 편지 소리
"선대에는 하물며 남편을 따라 물에 빠져 죽은 아내도 있다 하는데 목숨을 부지하며 일부종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여자의 도리라고 하겠습니까. 마음은 본래 허하고 신묘하니 제 하고 싶은대로 하면 어디 갈 데가 있으리오. 정성이 아니면 지켜지지 않고 공경이 아니면 길러지지 않으니, 현명하신 나라께서 광인의 마음을 품지 않으시길 바라오며 나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 처지를 십분 이해하시리라 믿사옵니다."
반대편으로 말을 타고 가는 조원과 자근노미. 그 뒤로는 소를 탄 나이 어린 기생이 악사의 비파 반주에 맞춰 단가를 부르면 따라오고 있다. 소리 없이 웃는 조원. 그걸 본 자근노미
자근노미 웃음이 나오시우? 일을 거진 다 이루고도 그냥 물러 나오시더니…
조원 사랑한다는 고백을 수치로 여기는 그런 여자에게 이 정도의 복수는 약과이니라…
자근노미 뭔 소리를 하시는 건지 원…
마침 옆으로 스쳐 가는 달구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조원.
S#72. 유대감 집·솟을대문 앞 (초저녁)
집으로 들어가려는 조원에게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가오는 인호
인호 (고마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저… 감사드리러 왔습니다.
조원 (지레 찔리는 게 있는 듯) 아… 그간 잘 지내셨는가…
인호 네… 덕분에… 저 소옥낭자의 서신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목소리를 낮추며) 소옥낭자와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시고 계시다구요.
조원 흐흠… 내가 한 일이 뭐 있다구
인호 (진심으로 감사)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아무쪼록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조원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게나
인호 그리고 (망설이다) 송구스럽지만 이 서신을 좀
조원 (선뜻 웃음) 그리하지
S#73. 유대감 집·소옥 별채 방 (밤)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면 조원이 들어온다. 속옷차림으로 엎드려 편지를 쓰다 벌떡 일어서며,
소옥 (조원을 반기며) 왜 이리 한참 만에 오셨소.
S#74. 좌의정 집·좌의정부인 방 (밤)
놀란 얼굴의 좌의정 부인. 그 앞에 쓰러지듯 앉아 손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숙부인.
좌의정부인 (너무나 걱정되는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숙부인 (눈물을 흘리며) 그 분은 절 그냥 놔주고 떠나셨어요. 절 욕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제게 이런 감정이 빚어질 것을 알면서도 왜 전 더욱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이런 감정쯤은 제 의지대로 억제할 수 있다고 자만했을까요?
좌의정부인 (막상 일이 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가) 설사 자네가 무너지더라도 품행을 바르게 하고 정조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는 자부심만은 결코 잃지 말아야 하네.
숙부인 (흐느끼며) 바보같이 전 사랑에 대해 너무 몰랐었어요. 그 분을 그 분을 도저히 제 안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어요. (통곡하듯) 전 이제 어쩌면 좋죠?
S#75. 유대감 집·조원 별채 방 (아침) @@
의관담당하인 (상자를 열며) 주문하신 춘추복이 왔구먼요.
한지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상자를 펼치자 새로 맞춘 명주 도포가 들어있다. 눈부시게 희다. 조원, 시동들의 시중을 받으며 새 옷을 입어 보는데
자근노미 숙부인께서 간밤에 좌의정 댁에 급히 다녀가셨답니다.
조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관문만 남은 듯 하구나.
자근노미 (당연한 듯) 지필묵을 준비할까요?
조원 아니지. 지금은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의 단계이니라.
자근노미 (끄덕이며) 역시…
S#76. 유대감 집·부용정 누마루 (낮)
책을 보다 꾸벅꾸벅 조는 소옥. 그 옆에서 같이 책을 보다 문득 소옥을 보곤 한심해하는 조씨부인.
안동댁(off) 부호군 나리 드셨습니다.
조씨부인 (소옥에게)자넨 들어가 있게 (안동댁에게) 들라하게.
소옥이 물러나자 누마루 난간에 서서 마당에 선 조원과 얘기를 나누는 조씨부인.
조씨부인 복수를 지나치게 한 것 아니시오. 저 아이가 저리도 맥을 못 추고 있는 걸 보면
조원 매사에 늘 최선을 다 할 뿐이지요.
조씨부인 저 나이 땐 금방 아이가 들어설 텐데
조원 (화제를 돌리며) 조만간 강화에 다녀와야 할 듯 싶소. 승리가 눈앞에 보입니다.
Ins.
바람이 몹시 부는데 숙부인이 혼자 쓸쓸히 저수지를 걷고 있는 풍경. 치마와 머리카락이 하염없이 흩날린다.
조씨부인 (일순 짜증이 스치지만 이내) 감축드리오. 궁지에 몰린 범은 사나워지는 법 다치치 않게 조심하세요.
조원 늘 충고를 잊지 않으시는군요. (가려다 귓속말로) 상이나 준비하고 계시지요.사향분 듬뿍 바르고
이때 바리바리 선물을 들고 소옥모가 등장한다. 조원을 보곤 깜짝 놀라며 외면한다.
조씨부인 놀라긴 이 사람 여긴 강경서 온 내 사촌 동생이라네.
조원 (지나치게 예의 바르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사돈이 되신다구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생각난 듯) 아! 그리고, 따님이 아주 총명하더군요. 모친을 닮아서겠지요?
조원, 씨익 웃으며 나가자, 깨름칙한 표정을 짓던 소옥어미, 다시 표정을 좋게 바꾸며 조씨부인을 본다.
S#77. 숙부인 시가·우화당 마당 (황혼녘)
저녁무렵, 숙부인 정씨가 은실이와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행랑아범 (걱정스럽게) 아씨마님. 아무리 막아도 막무가내로
마당을 보니 조원이 이미 들어와 서 있다. 반갑고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조원.
숙부인 다들 잠시 나가 있게나.
행랑아범과 은실, 우화당에서 물러나고 마당에 말없이 서 있는 두 사람.
조원 아직도 내가 반갑지 않소? 난 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참지 못하고 달려 왔는데
눈가가 촉촉해지는 숙부인.
S#78.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 (밤)
두려움, 떨림, 설렘 등등으로 갈등하는 숙부인의 옷을 한겹 한겹 벗겨내는 조원. 불안감과 숨막힘으로 어쩔 줄 모르는 숙부인. 조심스레 그녀를 이끄는 조원. 마침내 운우지정의 극치를 맛보는 두사람. 그 위로 조원의 편지 내용이 흐른다.
"나를 저항할 수 있다고 믿던 그 교만한 여자가 나에게 정복당했소. 그 여자는 내게 모든 것을 바치더이다. 굳게 닫혔던 문은 나의 미세한 손놀림에 떨리며 열리더니 겉으로는 그토록 얼음장같던 여자가 어찌나 감도가 좋은지 손이 닿은 곳마다. 입이 닿은 곳마다 어찌하여 이제사 왔느냐고 아우성을 치고 내 양대를 약간만 디밀어도 몸이 활처럼 휘어지며, 더 안 찔러주면 목숨이 달아난다 애걸복걸하니 그간의 여자들과는 온갖 방중술로 기교를 부리며 즐겼으나 달리 자세를 바꾸지 않아도 기분이 구름을 나는 듯 하니 나로서도 기이한 경험이었소."
다정하게 나란히 누워 속삭이는 조원과 숙부인.
조원 부인의 손을 쥐고 있으니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하오.
조심스레 숙부인의 이마에 입 맞추는 조원. 천천히 뺨으로 콧등으로 입술을 옮겨간다. 수줍게 받아들이는 숙부인.
S#79.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초저녁)
편지를 읽고 있는 조씨 부인.
조씨부인 (편지를 읽다 묘하게 일그러지며) 사내 맛을 못 봐서 그렇지 절개는 무슨 이제 사내들을 찾아 밤이슬 깨나 맞고 돌아 다닐터!
조씨부인의 옆엔 편지 봉투와 함께 피 묻은 천이 슬쩍 보인다. 흐르는 조원의 목소리
{S#78의 장면에서 계속되며 그 위로}
"아. 몇 번이나 정상에 올랐던지 제가 느꼈던 건 완벽한 일치감이었소이다. 사실 쾌감 그 자체보다 그 기쁨이 오래 간 건 내겐 처음 있는 일, 결국 온 마음을 바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걸로 일단락을 맺었습니다. 게다가 얼마간은 진심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불가항력적인 쾌락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이 있소. 내 서둘러 누이가 내릴 상을 받으러 올라가야 하나 며칠 늦어질 듯 하오이다. 이 여자와의 쾌락이 오래 지속 되겠소이까 만은 쾌락이란 것이 몰두하고 있는 그 순간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건 누이도 잘 아실 것인 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로써도 어쩔 수가 없소이다. 그럼, 늘 누이만을 그리는 조원"
어금니를 물며 편지를 화로에 던져버리는 조씨 부인.
S#80. 강화 바닷가 (낮)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를 걷는 조원과 숙부인. 한참 뒤로 은실과 자근노미가 뒤따른다.
-시간경과-
바닷가 한 옆으로 검은 바위 무더기가 있고 그 위를 걷다가 작은 웅덩이 앞에 멈춰서 서 웅덩이를 들여다보는 조원. 웅덩이 안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조원 부인, 이것 좀 보시오.
숙부인 무얼 말입니까?
조원에게 다가와 앉으며 물 속을 보는 숙부인. 두 사람의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한다.
조원 저런 물고기들을 보고 있자면 성현들이 말하는 올바른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무에 의미가 있나 싶으오.
숙부인 무슨 말씀이신지요.
조원 저 물고기들 중 바른 물고기와 그른 물고기를 나눈 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인간의 삶도 길다 하나 억겁의 세월 속에 티끌만도 못한 것. 선악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오.
숙부인 (조원을 보고 웃더니) 그래서인지 나으리 평판도 선악이 엇갈리더이다.
조원 세간의 말이 꼭 틀리다 할 순 없겠지만 사람의 일이 그리 단순하겠소.
숙부인 (다시 물 속을 보며) 하기는 나으리처럼 물 속 같은 눈을 지니신 분이 나쁜들 얼마나 나쁘겠습니까.
그 말에 숙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원. 숙부인, 살포시 고개 돌리며,
숙부인 혹시 연경에 가 보셨습니까?
조원 그건 왜요?
숙부인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보았습니다. 연경의 시전 리우리창은 27만 칸이나 된다지요?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라면 우리가 부부라고 한들 누가 뭐라겠습니까.
조원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그 먼 길을 어찌 간단 말이오?
숙부인 천지간에 만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남녀의 만남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 지극한 만남을 이루어 나리를 만났는데,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조원이 그윽하게 바라보자) 왜 그리 보십니까?
조원 (사랑이 가득 찬 눈빛, 숙부인을 끌어안으며)그럽시다. 그러자구요.
그대로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는 바닷가. 바위 뒤로 펼쳐진 풀숲에서 반딧불들이 날아 오른다.
S#81. 숙부인 시가·우화당 입구 (낮) @@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 조원과 숙부인. 뒤편에선 은실이가 자근노미에게 도시락을 건넨다.
조원 내 곧 다시 오리다.
미련이 남는 듯 미적거리다 말에 올라타는 조원.
조원 그럼, 가오. 기별을 보내겠소.
숙부인의 주변을 한번 돌고 떠나가는 조원. 그를 바라보는 숙부인의 두 눈이 촉촉히 젖는다.
S#82. 한양 가는 길 (오후)
서둘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조원과 자근노미.
자근노미 아이고, 우리 서방님 이번엔 어쩐 일로 이리도 오래 머무셨대요.
조원 그랬더냐? 얼마나 지났지?
자근노미 날 가는 줄도 모르셨구먼요. 벌써 열흘째요. 열흘째. 근데 이번 일은 그림으로 안 그리십니까?
조원 (주저하며) 이번엔 왠지 그리고 싶지 않구나.
자근노미 (알만하다는 듯) 히히 (눈치를 살피다) 혹시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이제 임자를 만나신 건가요? 연분말이요, 천생연분.
조원 뭐? (얼버무리듯 피식) 내 쉽사리 그럴 놈으로 보이느냐?
자근노미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지. 그럴 놈이 아니지...
조원 이 눔이... (자근노미 내빼고 말을 서둘러 모는 두 사람)
S#83.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 (오후)
숙부인,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곱게 빗다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상자 안에는 조원이 선물한 빨간 비단 목도리와 노리개, 분첩 등이 있다. 숙부인, 조심스레 분첩을 꺼낸다. 하얗게 쌓인 먼지. 숙부인, 먼지를 털고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앞뜰을 내다본다. 그러나 곧 수줍은 듯 미소짓는 얼굴 위로 숙부인의 나레이션.
"소동파는 해마다 봄이 가는 것을 서러워하지만, 봄은 그 서러움을 용납치 않고 떠난다고 하였는데, 제게는 그 많은 가을이 지났어도 아까워할 만한 가을을 맞이한 적도, 지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을 나리님과 함께 하니 비로소 저는 아까운 가을을 알았습니다."
S#84. 유대감 집·부용정 입구 (초저녁)
기고만장해서 부용정 중문을 여는 조원을 정금이가 제지한다.
조원 (손 발짓 써가며) 마님은 어디 계시느냐? 가서 내가 밀린 빚을 받으러 왔으니 어서 납시라고 여쭈어라.
-시간경과-
콧노래를 부르며 꺾어 온 들꽃을 만지작거리며 중문 입구에 서 있는 조원. 잠시 후, 중문이 열리고 안동댁이 얼굴을 비춘다.
안동댁 나으리, 마님께서 지금 귀한 손님이 와 계시니 다른 날에 오시라 하십니다.대신 이 서신을 전하라고만
묵묵히 서 있는 안동댁. 의아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는 조원의 얼굴 위로 조씨부인 목소리의 편지 내용이 흐르기 시작한다.
"서신대로라면 그대가 부정하든 말든 자네는 사랑에 빠져 버린 거라네.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라니 그 얼마나 자네와 어울리지 않는 일인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거라오. 특히 방종했던 남자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법. 나도 아우님과의 해후를 기다렸건만 지치고 말았소. 지금 나도 새 정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나중에 보기로 하지요. 그런데 그 흉칙한 핏자국이 과연 그 여자의 것이 맞는지 심히 궁금하더군요. 돼지 피인지 토끼 피인지..."
Ins
자신의 밀실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조원의 소란 소리를 듣고 있는 조씨 부인. 그 옆에 누군가가 누워있다.
분을 삭히는 조원. 들꽃을 내동댕이치고 자리를 뜬다.
S#85. 기생집 방 (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굳은 채 앉아 있는 조원. (위 나레이션이 여기까지 이어진다) 잠시 후,추월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는다.
추월 (눈치를 살피며 아양을 떤다) 왜 이리 심각하시오. 제가 좀 늦게 왔다고 이러시는 게요? (대꾸도 없는 조원) 열녀문을 하사 받은 대갓집 마나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추월이, 나름대로 절개 있는 년이랍니다.
조원 (시큰둥하게) 절개는 뭔 놈의 절개.
추월 참, 예서 며칠 째 이러고 계시니 그 소문은 들으셨나 몰라?
조원 소문? 이번엔 염소가 기린이라도 낳았다더냐? 흥.
추월 지금 옆방에 의금부 나리들이 와 계시질 않소. 가만히 들으니 풍속을 어지럽히는 천주교도들을 모조리 잡아들일 예정이라 하옵니다.
조원 풍속을 어지럽힌다! 그래 천주교도들이 서로 통간이라도 했다더냐?
추월 (눈이 동그래지며) 귀신이오! 어찌 그걸 아셨소? (쳐다보는 조원) 천주학 무리들은 양반이건 상것이건 서로 존대하고 남녀간에도 내외 구별을 없애 제 멋대로 간음케 한답니다. 게 중에는 외간사내와 놀아난 지체 높은 양반 부인도 있다 하오.
조원 양반부인? 그게 누구라 하더냐?
추월 (목소릴 낮추며) 열녀문까지 하사 받은 숙부인 정씨라 하더이다.
술상을 내리치는 조원. 파르르 요동치는 술잔 속의 술.
S#86.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밤)
Ins.
깊은 밤. 안채 담을 넘어 부용정 마당으로 들어서는 조원.
조심스레 안채를 찾아 들어가면, 등불이 켜진 조씨부인의 침소가 보인다. 조용히 방문 앞으로 다가서는 조원. 슬며시 들여다보고 아무도 없자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침실 안쪽 병풍 뒤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자 조심스럽게 병풍 뒤를 엿보면 희미한 불빛 속에 휘장을 둘러친 조씨부인의 밀실이 드러난다. 조원, 놀란 표정이나 눈치채지 않게 안을 살피면,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 좀더 들여다보면 알몸으로 엎드려 있는 한 사내와 저고리를 추스리는 조씨부인이 보인다. 알몸의 사내가 뒤척이다 고개를 돌리면, 권인호다. 조원, 질투인 듯 놀람인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쳐 물러 나온다. 조씨부인, 어둠 속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조원의 방문을 눈치챈 듯한 묘한 표정을 짓는다.
S#87.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아침)
조씨 부인의 아침 단장을 위해 하녀들이 대야며 수건을 들고 분주히 드나들고 그 위로 조씨부인의 목소리.
조씨부인(off) 곧 나갈 테니 기다리시라고 전해라.
시간경과-
안방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조원 (싸늘하게) 아주 치졸한 방법을 쓰고 계시던군요.
조씨부인 곧 매형이 돌아온답니다. (함박 웃으며) 그리고 기뻐하세요. 애가 들어섰답니다.
조원 숙부인을 무고하는 일은 우리 내기의 본말이 아니잖소. 게다가 부인은 천주교교도 아니오.
조씨부인 그 동안 소옥이에게 공들여 놓은 아우님 선물에 만족하겠지요?
조원 이 일에서 그녀를 빼 주셔야겠소이다.
조씨부인 (한심하다는 듯) 아직도 그 청승 얘기시오? 부호군엔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조원 그런 얘기가 아니잖소. 지금, 숙부인은 하필 남인가의 부인이고 소론가의 여식이오. 필시 천주학 무리들 뿐 아니라 우리 노론에게 적이 되는 모든 세력에게 그 화가 미칠텐데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겝니까?
조씨부인 그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지 내 미처 몰랐군요.
조원 ....
조씨부인 (싸늘하게 노려보며) 빠져도 단단히 빠지셨군! 평생토록 아우님 마음 속 방을 차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랑이 과연 누구였단 말이오. 선비의 정조가 어찌 그리 허술한 게요?
조원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처지가 아니지 않소? (어금니를 물며) 간 밤엔 아주 볼 만 하더이다.
조씨부인 (비웃으며) 아우님은 숱한 여자들과 놀아나도 나는 아니 된단 이 말이시오? 나는 아우님에 대한 정조를 꺾은 일이 없소이다. 어디 지금 내 앞에서 권인호의 목을 베어보시게. 내 눈이라도 깜짝할 듯 싶소?
조원 (잠시 침묵하다) 우리는 연경으로 가야겠소.
조씨부인 (미간을 꿈틀거리며) 우리? (한동안 노려보는 조씨부인) 지금 우리라고 하였는가? (그러다 피식 웃음이 삐져 나오면서) 오호라. 자네와 나 말이오? 어쩐다? 난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차갑게 웃는 조씨부인. 분개하는 조원을 보며 싸늘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조씨부인 내가 아니 된다면 어찌 하시겠소?
조원 나도 그냥 보고만 있진 아니할 것이오.
조씨부인 (코웃음치며) 아우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누가 아우님 말을 믿어 주기나 할 것 같소? 잘 아실 텐데 아우님은 기껏해야 한낱 소문난 오입쟁이일 뿐 아니오?
혐오스럽게 조씨부인을 노려보는 조원. 미소짓고는 있지만 경멸 가득찬 눈빛의 조씨부인.
조씨부인 알겠소. 숙부인을 청나라로 보내주지요. 허나 아우님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오. 그것이 그들과 무관함을 밝히는 길이오. (새삼스레) 설마 진정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니겠지요? 우리의 목표는 정복이지 사랑은 아니잖소?
조원 (쏘아보는 그대로 비틀린 웃음을 머금고) 그럴 리가 있겠소.
조씨부인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셔야죠. 당연히 그러셔야죠. (여담을 늘어놓듯) 내가 아는 한 남자의 얘기나 들어 보겠소? 자기 인생에 어떤 해가 될지도 모르는 한 여자를 만나 헤매던 자가 있었지요. 심약한 그 자는 그걸 알면서도 감히 내치질 못했어요. 그 자는 "나도 어쩔 수가 없소"라고 천치 같은 말만 지껄여대며 계속 진창에 코를 박고 있었던 겁니다. (짐짓 가여운 듯 한숨) 한편, 그 자를 끝까지 신뢰하고 후원하던 유일한 동반자는 보다 못해 마지막으로 그 자에게 나약함과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지요. 상까지 준비해 놓고요.
조원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서... 그 멍청한 작자는 조언을 받아들였나요?
조씨부인 본성을 되찾은 그 자는 그 길로 자신을 진창에 빠뜨린 여자에게 마지막 기별을 고했지요. 그런 류의 여자들이 늘 그렇듯 울면서 매달렸지만, 그 자는 한마디로 일축했답니다. "이게 나요.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소" 라고 그 후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아직 못 들었어요. (싸늘한 미소) 잘 가게, 아우님.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표정의 조원.
S#88. 가마 안 (낮)
흔들리는 가마 안에 앉아 있는 숙부인. 목에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얇게 화장한 얼굴이 곱다. 얼굴엔 긴장감과 설레임이 교차한다. 그 위로 들리는 좌의정 부인의 편지 내레이션…
좌의정부인(V.O) 지금 한양엔 천주교도들을 내사한다는 소문이 흉흉하니 당분간 한양에는 오지 않는 게 좋을 듯 하구나. 각별히 몸조심하고 조용히 지내거라.
S#89. 유대감의 집·조원 별채 마당 (낮)
숙부인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조원의 별채로 들어서려는데 자근노미가 숙부인을 말린다.
자근노미 (난색을 표하며) 아씨마님,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아니 하시겠다 십니다.
숙부인 (농담이란 듯이) 그럴 리가 있느냐? 분명 내가 왔다고 이른 게나?
숙부인, 사랑채 앞에서 조원을 부른다.
숙부인 나으리! 아니 계시옵니까? 희연이가 왔습니다.
숙부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럴 리가' 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려는데, 마침 한쪽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조원이 내다본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본 숙부인, 반가운 마음에 이끌리듯 다가서는데, 나머지 문이 열리며 빼꼼이 내다보는 흐트러진 매무새의 추월이 조원에게 휘감기듯 매달려 키득거린다. 믿어지지 않는 듯, 못 박힌 채 바라보던 숙부인, 얼굴이 굳어지며 외면한다. 조원이 눈짓을 하자, 추월, 투정 부리듯 눈을 흘기더니 피식 피식 웃으며 뒷방으로 물러간다.
조원 (태연하게) 오신 게요? 헌데 왜 이리 소란이요.
숙부인 (움찔, 여전히 외면한 채)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조원 말해보오.
숙부인 (단호한 어조로) 먼저 떠나가 있으라 하시는 건 무슨 연유이십니까?
조원 아직 볼일이 남았다지 않소.
숙부인 저를 내치실 의향이 아니시면 (자기 목소리가 흔들린다고 느낀 듯 진정하려 애쓰며) 기다렸다 함께 가도 되지 아니하겠습니까?
조원 아니 되오.
숙부인 아니 된다는 건 무슨 까닭이십니까?
조원 이를테면 (무심하게) 어쩔 수가 없다는 뜻이오.
숙부인 무슨 말씀인지 (점점 목소리가 흔들리며) 분명 오시긴 오시는 것입니까?
조원 (같은 어조로) 벌써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만났구 우린 너무 오래 만났소. 난 원래 그렇게 안 하는데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거요.
숙부인 허면, (현실을 깨달은 듯 입술을 깨물며) 한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동안 제게 하신 말씀은 모두 진정이 아니셨습니까?
조원 (잠시 응시하다) 나도 내가 변한 줄 알았소만 사람의 본성은 쉬이 변치 않나 보오.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안 순간 내 사랑이 변하더이다. 왜 그랬소? 날 사랑하지 말지. 미안하오. 이게 나요.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소.
숙부인 (울먹이며)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요?
조원 (점점 싸늘한 미소가 짙어진다) 알고 싶다면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 첫 번째 잘못은 나를 만난 것이오. 두 번째는 내 말을 귀담아 들은 것이오. 세 번째는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도 떠나지 않은 것이오. 그러니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게요.
숙부인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며) 그만! 그만하세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며칠 만에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신 겁니까. 장난이라면제발 그만 두시어요. 가슴이 저려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분명 다른 연유가 있으신 게지요?
조원 (잠시 말을 못 잇다가) 먼 길을 가자면 서둘러야 할 테니 이만 가시지요.
숙부인 (원통한 듯) 나으리. 늘 이렇듯 숱한 여자들을 농락하고 희생자로 만들어오신 겁니까?
조원 (냉랭하게) 그만하시지요, 부인. 정숙한 부인께서 이러시면 점잖은 체면이 뭐가 되오? 어찌 그리 눈치가 없으시오.
하얗게 질리며 온 몸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숙부인.
조원 뭣들 하느냐? 어서 아씨를 뫼시거라.
자근노미, 머뭇거리며 숙부인을 이끈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자근노미와 청지기의 손에 끌려나가는 숙부인, 울먹이며 따라가는 은실이. 숙부인의 빨간 목도리가 스르르 풀려 질척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만다. 가까스로 목도리를 움켜쥐고 질질 끌려 문 밖으로 나가게 되는 숙부인. 추월, 빙긋이 웃으며 다가와 조원을 끌어안는다. 싸늘하게 그 손을 내치는 조원.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다.
Ins
보고들은 것을 고하는 안동댁. 가만히 듣고 있다가 싸늘한 미소가 번지는 조씨 부인.
S#90.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황혼녘)
꼿꼿한 자세로 조씨 부인을 담담히 바라보는 조원. 그런 조원을 무시한 채, 화병을 앞에 놓고 전지가위로 꽃가지를 싹둑 싹둑 잘라 화병에 꽂는 조씨 부인.
조원 지난 번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난답니까? (냉소적인 웃음을 띄며) 동반자의 조언을 받아드린 그 멍청한 자는 결국 상을 받게 되나요?
조씨부인 글쎄요. 거기까진 아직 진도가 안 나간 터라. (눈을 반짝이며) 오늘은 그 뒷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지요.
조원 (애써 여유를 부리며) 전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인가요?
조씨부인 (너무나 즐겁다는 투로) 물론이죠. 결국 사내에게 버림받은 그 열녀 청승은 자기연민의 대가답게 청나라로 가지 않고 역병이 창궐하는 시가로 돌아가 환자들을 돌보며 치욕스런 과오를 참회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산송장처럼 지낸다니 그것으로 사내는 본래 계획을 이룬 셈이 되었지요.
조원 (비틀린 웃음으로 쓸쓸해지는 얼굴)
조씨부인 그러니 처녀막을 부순 흔적보다 더 훌륭한 정복의 증거가 아니겠소. (화병을 문갑 위로 올리며) 흠. 그 사내는 이제 모든 조건을 다 이뤄냈으니 동반자로부터 상을 받게 되겠지요. 마침내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는 거지요.
조씨 부인, 조원 쪽으로 돌아앉으며 한쪽 버선발을 사뿐이 뻗어 조원의 사타구니를 향한다. 버선목 위로 드러나는 하얀 종아리. 조원도 동조하듯 빙긋 웃으며 버선발을 살며시 움켜쥔다. 간지러운 듯 웃음이 새어 나오는 조씨 부인. 하지만 조원,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조씨 부인의 발목을 내려놓는다.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하는 조씨 부인의 표정.
조원 (슬픈 미소를 띄우며) 누이를 알다가도 모르겠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도 모르겠어. 오직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갖을 수 없는 것을 부수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 밖엔 없는 사람 같아.
조씨부인 (웃는 얼굴로 굳어진 듯하다.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그래서?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 것인데?
조원 이제 나 누이를 보러 오지 않겠소.
조씨부인 가질 수 없는 쪽으로 가면 어찌 될 줄 알면서도?
조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 아니요. (아주 덤덤하게) 내 여기 오는 길에 대문 안을 기웃거리던 권인호를 보았소. 그래서 소옥이가 그리워하더란 얘길 했더니 이내 울 것 같은 얼굴로 누이이게 전해 달라더군요. 이제 그만 두겠다구. 잠시 미혹에 빠졌던 것 같다구. (끝도 없이 굳어져 불타버릴 듯한 조씨 부인의 얼굴) 그러면 아실 거라 하더이다. 나 가오.
어둠으로 사라지는 조원. 그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는 조씨 부인의 (웃지만) 진짜 무서운 얼굴. 조씨 부인, 갑자기 문갑 위의 화병을 내리친다. 바닥에 산산조각 나는 화병.
S#91. 유대감 집·조원 별채 방 (낮)
조각난 화병에서 숙부인의 초상화로 디졸브 된다. 조원, 숙부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 동안 그리던 춘화들과는 달리 품격 있는 미인도 풍이다. 그림을 그리는 붓, 필치 하나 하나에 정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미인도를 그리는 조원의 얼굴엔 슬픔이 가득하다. 조원의 목소리.
"나는 이제서야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S#92. 북촌 골목 (오후)
바람이 스산히 부는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오는 조원. 일군의 젊은 양반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조원과 반대 방향으로 카메라를 등지고 걸어간다.
"난 겁이 났던 거요. 상대에게 주기만 했던 고통을 내 자신이 느끼게 되는 것을 상상하니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소. 난 어찌할 수가 없었소"
S#93. 강화 역병 격리소 (저녁)
정성껏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숙부인. 어딘지 창백하고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표정. 환자들에게 간신히 웃어 보지만 기쁨이란 감정은 잊은 듯하다. 얼굴에 흰 천을 두르고 두리번거리던 자근노미. 숙부인을 발견하곤 서둘러 다가간다. 자근노미와 맞닥뜨린 숙부인. 약간의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만 이내 감춘다.
자근노미 (숙부인을 한켠으로 이끌며 편지를 내미는데) 서방님께서 이 서찰을..
숙부인 (고개를 저으며) 난 그분을 모르오. 그만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다시 환자들 사이로 돌아간다.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환자들을 돌보는 숙부인. 그러다 갑자기 맥없이 쓰러진다. 쓰러지는 숙부인을 달려가 간신히 받아 부축하는 자근노미.
자근노미 아씨 마님! 정신 차리십이오!
간신히 눈을 뜨는 숙부인. 그러나 눈을 초점을 잃고 허공을 향해 있다. 가녀린 눈물이 빰을 타고 흐른다.
S#94. 좌의정 집·인호 방 (아침)
먼 길을 떠나는 듯 옷가지와 책들을 꾸리는 인호. 소옥의 편지 뭉치를 보듬어 보는 인호.
인호(V.O) 부득이 이번 과거는 못 치를 것 같소. 어머니의 권유로 다시 지방 유림에게로 가서 수학을 더 해야만 할 듯하오.
S#95. 유대감 집·뒤틀 담장 (아침)
사모하는 낭자를 두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옥이 이보다 고통스러울까 싶소.
서신을 주고받던 담장 앞에 선 인호. 편지를 꽂아 놓으려 기왓장을 들쳐보니 소옥의 편지가 곱게 접혀 놓여 있다. 희색이 돌며 반갑게 편지를 펼쳐 보는 인호. 소옥의 목소리로 편지 내용이 흐른다.
"그동안 도련님을 속여왔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이 댁에 오자마자 부용정 마님 동생 되시는 조원이라는 분과 몸을 섞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도련님을 뵙고 마음에 변화가 왔으나 이미 처음으로 받아들인 그분에게 몸이 익숙해져 버린지라 괴로움만 켜져 왔습니다."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점점 굳어가는 인호의 얼굴
Ins.
안동댁이 소옥의 편지를 옆에 놓고 글씨를 흉내내가며 편지를 쓰고 있다. 소옥의 목소리는 점차 안동댁에게 편지 내용을 불러주는 조씨 부인의 목소리로 바뀌며
"그래서 도련님께 하루라도 빨리 고하고 그만두려 했으나 사실을 알게 된 그분이 재미있다면서 자꾸만 편지를 쓰게 하였습니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분의 지시인지라 어기기 어려웠습니다."
황망해하는 인호의 얼굴. 편지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Ins.
음신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조씨 부인
S#96. 길가 @@
넋이 나간 채 길을 걷는 인호. 그 위로 소옥과 조씨 부인의 목소리가 섞여 편지가 계속 흐른다.
"그리던 중 그분이 귀댁에 와 계시는 정씨라는 과부와도 통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비통한 마음에 울며 이 글을 적어 올립니다."
S#97.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아침) @@
눈을 부릅뜨고 따지듯 앉아 있는 인호
조씨부인 (놀라는 척하며) 아니 안색이 왜 그러시오.
인호 그 동생 된다는 조원이라는 사람... 지금 어딨습니까?
조씨부인 아마 기방에서 술이나 푸고 있겠지요.
인호 (이를 뽀드득 갈며) 그 자가 소옥낭자를 노리개로 삼아 왔습니다. 저도 농락하고 게다가 내 사촌누님에게 마저 차마 못할...
조씨부인 (차마 들을 수가 없다는 듯) 맙소사... 그런 일이... 난 몰랐습니다. 이럴 수가
멋들어지게 연기하는 조씨 부인.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더니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황급히 뛰쳐나가는 인호.
S#98. 광화문 앞 육조거리·청나라 사신 행렬 (오전) @@
성대히 이어지는 행자 행렬. 화려한 옷을 입는 중국 사신단과 그들을 앞뒤로 호위하는 무관들. 행차의 선두에서 광대들과 악사 그리고 낙타들이 장관을 이룬다.
-시간경과-
누군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거슬러 헤쳐 나가는 인호.어린 똘마니 하나를 붙들더니 엽전을 두어 푼 쥐어 주며 행렬 속에서 호위를 하고 잇는 윤중원을 가리킨다. 똘마니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엽전을 더 쥐어준다.
-시간경과-
행렬에 갑자기 뛰어들어 윤중원에게 서찰 하나를 쥐어 주고는 호되게 경을 치르는 똘마니. 의아한 표정으로 걸어가면서 서찰을 읽어보는 윤중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인호의 얼굴 위로 인호의 목소리.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마시오. 귀하의 형수가 유대감 댁 식객으로 있는 조원이라는 자와 그동안 놀아났소. 그 자에게 물어보오. 다 알 테니… 귀하의 형수가 그리된 건 그에게 농락당한 충격 때문…"
글을 다 읽은 윤중원의 수염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 벌벌 떨린다. 허리에 찬 환도를 움켜쥐는 윤중원
S#99. 숙부인 시가·우화당 마당 (오전)
은실. 손에 물수건과 대야를 들고 방에서 나오다 마당에 서성이던 자근노미를 보고,
은실 (울먹이며) 역병에 걸리신 것도 아니라는데 이게 무슨 변고일꼬…
자근노미 아무래도 서방님을 뫼시구 와야겠다.
대문을 나서는 자근노미
S#100. 기생집 방 (낮)
Ins.
사자놀이가 벌어진 공터에 한참 흥이 오르고, 사람들이 가득 둘러싸고 있는 풍경의 부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 골목 밖에선 뿔피리 소리가 요란하다. 기방 마당에는 낙엽이 수북히 떨어져 서리맞은 채 쌓여 있고 감나무엔 따지 않아 농익은 채 늘어진 감들이 매달려 있다. 조원이 기방에 홀로 앉아 있다. 바깥에서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들리며 소란스럽다. 추월이가 문을 빼꼼히 열어 조원을 본다.
추월 아침부터 또 술 이시우? 수표교 윗 공터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다해서 다들 가 볼 작정인데, 같이 안 가실라우?
조원, 대꾸 없이 손짓으로 안 간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머쓱해져 슬며시 문을 닫고 나가는 추월.
-시간경과-
모두들 사자놀이를 보러 나간 텅 빈 기방. 누군가가 소리 없이 담을 넘어 들어온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조원이 보인다. 검객, 칼을 빼어 들고 정적을 가르며 방문을 열고 뛰어든다. 조원을 겨누는데, 그 자리는 어느새 비어있다. 당황하는 검객, 윤중원이다. 조원, 어느새 뒤에서 윤중원을 끌어안고 목에 부채를 들이댄다. 부채 양날에는 쇠장식이 되어 있다.
조원 누구냐?
검객 ......
조원 (대답이 없자) 네 실력으론 어림없다. 가서 네 주인에게 좀더 날쌘 놈으로 보내라고 전하거라.
밀치며 놓아주자 마당으로 굴러 떨어지는 윤중원. 그를 알아본 조원, 마당으로 내려선다.
조원 (그다지 놀라지 않으며, 비웃듯 미소를 지으며) 감나무 밑에 무사 아니시오.
윤중원 (수치스러움에 이를 물고) 무슨 헛 소리냐?
조원 떨어지지도 않을 감을 바라고 입만 벌리고 누워 있는 무사, 아니던가?
윤중원 (붉게 달아오른다) 정녕 내 형수와 (얼굴이 일그러지듯 웃는다) 통하였느냐?
조원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통했으나 그건 내 죄요. 모두 내가 꾸민 일이니.
윤중원 통하고 버렸더냐?
조원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내 죄가 아니오. 그만 두고 싶다 말했을 뿐이오.
윤중원 (칼자루를 다시 쥐며) 이 자식 가문과 형수님의 명예를 더럽힌 죄 이 칼로 씻으리라!
조원 질투심을 유발한 죄라고 하지 그러오. 화나는 건 알겠지만, 어차피 당신은 말도 못 꺼낼 위인 아니었소?
윤중원 (그 말에 더욱 화가 나는지 거세게 칼을 휘두르며) 니 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조원 (가볍게 피하며) 어허 그러다 정말 사람 죽이겠소.
계속되는 윤중원의 공격. 허나 조원의 날랜 솜씨를 당해내지 못한다. 조원의 공격에 마당 한켠의 감나무까지 뒷걸음으로 밀리던 윤중원, 나무에 부딪히며 넘어진다. 그 위로 농익은 홍시감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진다. 벌겋게 물은 윤중원의 머리와 옷.
조원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어차피 지나가고 나면 그만인데 뭘 그러시오.
주춤대며 일어서 달려드는 윤중원. 윤중원을 제압하며 칼을 쳐내는 조원. 뿔피리 소리 요란한 바깥쪽을 물끄러미 보며,
조원 (거의 입만 벙긋거리는 혼잣말로) 진심도 절망도 다 놓아버리는 기분이 이런 것인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윤중원을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 뒤돌아 걸어가는 조원.
조원 그만 돌아가시오. 난 만나러 가야할 이가 있으니
망설이던 윤중원. 조원에게 달려들어 조원의 등을 찌른다. 칼에 찔리는 조원. 찌르고서도 놀라 주춤거리고 물러서는 윤중원, 오히려 당황한다. 조원의 등에 피가 번지고 무릎을 꿇고 쓰러지면서도 어딘지 재미있고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뒷걸음치다 도망치는 윤중원. 담 밖에는 뿔피리 소리가 여전하다.
S#101.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 (같은 시각)
혼절해 있던 숙부인이 눈을 뜬다. 지켜보던 은실이 얼굴에 희색이 돈다.
은실 (감격스럽게) 아씨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S#102. 강화 가는 길·도성 앞 (낮) @@
말을 타고 힘없이 도성을 빠져나가는 조원. 창백한 얼굴에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런 조원을 이상하게 보는 도성 주변의 사람들
S#103. 숙부인 시가·우화당 안방 (낮)
언제 아팠냐는 듯 일어나 창아한 모습으로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마무리하는 숙부인.
S#104. 한양 가는 숲길 (오후)
급한 마음에 부지런히 한양으로 향하는 자근노미. 쉬지 않고 달려 온 듯 나귀 입에선 김이 쉼 없이 뿜어진다. 이때 허리가 구부러진 채, 말에서 떨어질 듯이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며 그냥 스쳐가려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와 보면 조원이다. 기겁을 하는 자근노미
자근노미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오. 어쩌다 이 지경이
조원 (대꾸 대신 피식 웃는다)
-시간경과-
조원을 말에서 내려 머리를 무릎에 얹자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안정을 찾는다.
자근노미 (우는 소리로) 하이고 의원에라도 가야하잖소
조원 소용없다. 날 우화당으로 좀 데려다 다오. (여전히 피식 미소짓자)
자근노미 칼에 찔려 죽는 주제에 좋기도 하겠수..
S#105. 우화당 가는 길 (황혼녘)
조원을 뒤에 태우고 말을 몰고 가는 자근노미. 나귀가 그 뒤를 따르고 조원은 자근노미 등에 기댄 채 힘든 표정이다.
조원 (가까스로 입을 떼며) 사실 진심인 척 했을 뿐인데... 척을 하다 보니 결국 진심이 되어 벼렸구나. 이런 경우가 다 있다니...
자근노미 내가 뭐랬소. 연분을 만난 거 같다니까. 뭐가 무서워 보내버렸소?
조원 난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을 때가 가장 두려웠으니까...지금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냥 보고 싶기만 하니 그런건 아무 상관 없었을지도 모르지. (피가 쿨럭하고 쏟아진다)
자근노미 이 딱한 양반아. 지금 숙부인께서도 죽을랑 말랑 하고 계시단 말이오.
조원 (다시 피를 쿨럭하고 쏟아내며 희미한 눈빛으로 웃음)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려 했는데...(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자근노미 참말로 강화까지 가실 수 있겠소? 지금이라도...빨랑 가까운 의원에라도...(이상한 예감이 들어 돌아보며) 서방님..서방님..
조원, 눈을 감지 못한 채 이미 죽은 듯 하다. 갑자기 말에서 떨어지며 진흙창으로 굴러 처박히는 조원. 외마디 비명을 외치며 말에서 뛰어 내리는 자근노미.
자근노미 (조원을 흔들어 깨우며) 서방님. 서방님. 아이고 이를 어째 (눈물을 흘리며 혼잣말처럼) 참으로 값어치 없게도 죽는구만. 양반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데..
비참하게 구겨져 나둥그라져 있는 조원의 얼굴이 반쯤 진흙에 잠겨 있고, 붉게 물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S#106. 숙부인의 시가·우화당 안방 (밤)
숙부인이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자근노미가 가져온 조원의 마지막 편지를 마침내 열어 본다.
조원(V.O) 아직도 나약하기만 한 이 몸은 그대와 새로이 시작하는 꿈을 꾸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해도 무슨 상관이겠소. 내 그대를 통해 이제서야 비로소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데 눈만 감아도 당신의 숨결이 내 곁에 느껴지는데 날 용서해 주겠소.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힘없는 미소와 슬픔이 교차하고, 마저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자 조원이 그린 미인도가 보여진다. 이때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은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저주저 하다가
은실 아이고 아씨. 부호군 나으리께서 나으리께서 변을 당하셨답니다.
일순 얼굴이 굳어지는 숙부인.
S#107. 숙부인 시가·우화당 마당 (아침)
Ins.
우화당 한켠의 돌 웅덩이가 꽁꽁 얼어 있다. 나들이 가는 듯 곱게 단장한 모습의 숙부인. 마지막으로 빨간 목도리를 정성껏 목에 두른다. 방을 나서는 숙부인. 은실이와 행랑아범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온다.
은실 아니, 아씨 날씨도 추운데 어딜 나서세요.
숙부인 내가 좀 만나러 가야 할 이가 있다.
은실 몸도 성치 않은데 혼자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숙부인 중차한 일이니, 내 혼자 다녀오마
숙부인이 결연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은실. 우화당을 나서는 숙부인을 보며 발만 동동구른다.
S#108. 강화도 저수지 (오전)
얼음이 하얗게 변해버린 저수지. 숙부인 저수지를 향해 걸어가더니 얼음 가에 선다. 결연한 표정의 숙부인.
숙부인 이승에선 인연이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굳은 뺨 위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저수지 얼음 위로 한발을 내딛는 숙부인.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점점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숙부인.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고 푸욱- 소리와 함께 치마가 동글게 말리며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숙부인. 심연으로 가라앉는 숙부인. 빨간 목도리만이 물 위에 떠 있다.
숙부인(V.O) 그곳에서는 우리가 부부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요.
S#109. 유대감 집·부용정 안방 (초저녁)
안방 창문 아래서 하녀들이 삼삼오오 문틈 사이를 힐끔거리고 있다. 안에서 울음소리, 가재도구 던지는 소리들이 들린다. 안동댁이 쪽마루로 나와 하녀들을 물리치고 창문을 닫아버린다. 어둠 속에서도 보료 위에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조씨 부인. 마치 먼 풍경화처럼 보인다. 공허하고 싸늘한 분위기. 가까이 보면 몸을 떨며 오열하고 있다. 크게 울며 소리 지르기 시작하는 조씨 부인
조씨부인 아니야... 이게 아니야
S#110. 몽타주1
사건이 급이 전개되는 화면 귓속말을 하면 수근대는 사대부 부인들.
"유판서 대감 처남 되는 자가 칼에 맞아 죽었답니다."
"저런.. 그렇게 몸을 함부로 굴리더니"
"따라다니던 종놈이 죽였대요. 글쎄"
조원이 그인 춘화들을 급히 챙겨 넣는 자근노미 / 춘화를 서사 주인에게 넘기는 자근노미 / 달아나는 자근노미 / 조원의 춘화들이 화공들의 손에 의해 모사 되는 모습 / 조씨 부인과 도령의 그림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된다.
"에그 망측해라" , "부용정에서 이런 일이"
"그러게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잖소"
자신에게까지 이른 춘화첩을 보고 경악하는 조씨 부인의 얼굴
S#111. 유대감 집·원동헌 (밤)
길제 때처럼 문중 원로들이 근엄하게 둘러앉아 있고 한쪽에 유대감도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그들 앞에는 조씨 부인 부분만 발췌해 묶은 춘화첩이 놓여 있다. 엄숙한 듯하지만 어딘지 진지하지 않은 듯도 보인다.
원로1 음풍이 미만하고 있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예의지국인데, 견마도 차마 삼갈 짓을 한다는 것을 알고 군자로서 가만 있을 수가 없소.
원로2 저 화첩 속에 음란한 여인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 그것의 진위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원로3 그간 며늘아기의 행실을 미루어보자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오. 금부의 조사 덕에 시중에 돌던 화첩은 대부분 거두어 들였으니 이 사건을 묻어두는 것이 어떻겠소?
S#112. 유대감 집·부용정 침실 (같은 시간)
어두운 방 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든 조씨 부인의 실루엣이 소리 없이 열리는 방문 틈새로 새어 드는 달빛에 드러난다. 그 위로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들. 높이 칼을 치켜 들어 가차 없이 찌른다. 몇 번을 찌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시 멈추고 당혹해 하는 복면의 사내들.
S#113. 유대감 집·원동헌 (밤)
여전히 왈가왈부하는 문중원로들.
원로3 부모 3년 상도 같이 치른 조강지처를 맘대로 출처 할 수는 없는 일. 난감한 일이로고,
이때 청지기가 슬며시 들어와 원로1의 곁으로 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순간 원로1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유대감과 눈이 마주친다. 청지기 이내 물러나고 이어지는 문중의 탁상공론.
S#114. 몽타주2
이어지는 몽타주 장면들
가마를 타고 곱게 차린 신부 소옥. 고개를 살포시 들어 미소를 띄우면 디졸브되며 조씨 부인 대신 부용정을 차지하고 앉은 소옥의 모습으로 바뀐다. 이전의 앳띤 표정은 간데 없고 마치 조씨 부인의 후계자인 듯 표정이 바꾸어 있고 카메라가 그녀의 부른 배를 비춘다. 웃음소리가 넘치지만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휘도는 부용정. 화사했던 연꽃은 앙상하고 시든 줄기들만 삐죽삐죽 꽁꽁 언 연못 위로 드러나 있다. 그 위로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S#115. 중국으로 사는 돛단배 위 (낮)
함박눈이 풀풀 날리는 망망한 바다 위를 누런 돛을 단 배가 지나가고 있다. 중국 상인들과 조선 상인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다. 정금이와 몸을 붙이고 앉아 바람을 피하고 있는 조씨 부인. 지친 듯 기대 잠든 정금이. 조씨 부인 꼿꼿하게 앉은 채 상념에 잠겨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다. 조씨 부인, 문득 품에서 종이에 싼 무언가를 꺼낸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종이를 펴자 조원이 처음 집에 당도했을 때 준 들꽃이 잘 말려져 있다. 꽃을 들여다보며 허망한 미소를 짓는 조씨 부인. 배가 넓은 바다를 향해 흔들거리며 떠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