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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렙산을 정복하자(006.2011.7.31) 출3:1-12
할렐루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물어야 할 중요한 확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 확인하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고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 신학교에서 면접시험을 볼때 가장 소명의 질문을 받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목회자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학력보다도 어떤 능력보다도 소명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명감의 문제는 단지 목회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목회자들에게 소명이 중요하듯이 성도 누구에게나 소명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종종 한국교회에서 평신도들의 소명감은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가운데서 어떤 직업을 갖든지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소명감을 갖고 가야 합니다. 특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는 직분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소명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서 다양한 직분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먼저 부르심을 봅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부르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들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을 갖고 분명히 부르시고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저를 부르셨고 또 여러분도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음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음을 믿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과 땅차이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모든 노력과 수고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많고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나같은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을 갖고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실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공중에 나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엇나니’라고 합니다. 여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을 세신바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부르실까요? 본문의 모세는 어떻게 소명을 받게 됩니까? 모세가 부름받는 과정을 보면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소명을 받는지 그 원리는 대개 유사합니다.
애굽에서 모세는 살인죄를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한지 40년이 되어서 80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세는 미디안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80세에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해방자로 부름을 받고 생을 시작합니다. 부름받기 위하여 호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호렙산은 시내산의 다른 이름으로 건조한 산입니다. 이 산의 위치는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유대전승에 의하면 시나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2291M의 현재 ‘예벨무사’입니다. 또 이 산은 하나님의 산으로 불리워진 이유는 훗날 모세가 이곳에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산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기 위하여 호렙산으로 올라가 봅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도 80세까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 이드로와 함께 살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80세에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르키는데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다음에는 직접적으로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자가 아마도 삼위일체 2위인 그리스도가 아닌가 추측을 합니다.
그리고 ‘떨기나무’는 가시덤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시내산을 중심으로 해서 아카시아 종류의 덤불입니다. 그런데 이 떨기나무는 우람하면서도 아름다운 나무들과 대비가 되는데 여기서 노예로서 굴욕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지않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되 끝가지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를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으니 이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는 것은 곧 애굽에서 압제하에서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가한 사건을 통해서 모세의 생애는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만나도 이상할 정도로 변화는데 하나님을 만나면 오죽 많이 변하겠습니까?
바울의 생애중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을 섰지만 다메석 도상에서 빛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는 완전이 생애가 바뀌어져서 일생을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생애중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뽕나무에서 예수 만날 때였습니다. 요나의 일생중 가장 중대한 변화는 고래 뱃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모세의 가장 큰 변화는 호렙산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면서 어디서 체험했는가를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없으면 신앙에 힘이 없습니다.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불붙는 가시떨기 앞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꺼지지 않는 불을 확실하게 보았습니다. 너무도 분명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때 나타나셨습니까?
1. 하나님은 일상 생활속에 나타나십니다.
오늘도 모세는 어김없이 양무리를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며 푸르른 풀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먼 호렙산까지 양무리를 이끌고 나갔다가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려고 작정을 하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려고 산에 올라가 필사적으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무리를 치다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에 출3:2-4‘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했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에 불꽃이 이상한 것이 나타나서 그것을 보려고 가까히 갔을 때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야, 모세야’ 하고 두 번을 불렀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도 어부로서 고기잡이 하다가 고기가 하나도 안 잡히던 새벽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뽕나무 밭에서 뽕을 따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도 자기의 임무인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다갈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경험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충성되게 일하다가 부딪치는 문제속에서 기가 막히게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을 만나듯이 가서 면회를 하고 와서는 늘 아들 생각을 하며 살다가 또 만나러 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업가에는 사업의 현장에서 나타난 주십니다. 학생들은 공부의 사건 속에서 나타나 주십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하게 만나주신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만나주시던 장소를 기억하시고 첫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호렙산은 이렇게 하나님이 만나주신 산이기에 우리는 오늘 호렙산을 찾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절망속에 나타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지금 광야학교에 입학 중에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광야에서 모세처럼 무명의 양치기로 이름없이 힘없이 고난 가운데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광야 중앙에서 처절하게 외로움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무력함을 깊이있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못이루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영광의 관문으로 들어가는 준비인 것입니다. 그 고난의 시간 그 고난의 현장을 원망하지 말고 나를 내려놓고 주를 붙들고 살아가시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절망속에 있습니다. 사백삼십년 전에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한 후 오늘에 이루기 까지 이스라엘 자손의 실제상황은 성경에서 빠져 있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번성하여 애굽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고 애굽 사람들은 중다한 노역을 부과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도록 학대 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을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호소하므로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것은 귀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에게 귀중한 직분을 맡기시기 위함입니다.
애굽에서의 실패에서 미디안 광야에서 우울하게 보내던 모세는 여기서 소명을 받습니다. 과거 사십년 전의 모세는 자신이 배운 애굽 궁중의 학문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행동하고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오늘의 모세는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이 소명에 대해서 사양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호렙산에서 출3: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하며 소명을 주었습니다. 절망속에 있던 모세에게 들려진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기백성 이스라엘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3: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해서 고통 속에서 부르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이를 위한 도구로 모세를 선택하시고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출3:8‘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 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해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모세에게 이행하도록 소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의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애굽의 바로에게 자기백성을 보내줄 것을 청원하라고 소명을 주었는데 이것은 죽음과도 상통하는 문제입니다. 이 소명을 주면서 염려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소명에 대한 보장을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보면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속에서도 모세를 만나 소명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는이들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소명을 주십니다. 그 소명을 잘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자굴속에서 다니엘에게 나타나셨고,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셨고, 감옥속에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풍랑속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밤이면 별이 나타나듯이 절망 때면 하나님이 나타나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무도 많은데 하필이면 가시나무에서 불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분이 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잘못하면 귀가 멀 것 같다고 의사가 진단하였습니다. 그는 절망가운데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에 깊이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가서 전해라 고쳐줄게’ 이 음성을 들은이는 ‘하나님 고쳐옵소서. 전하겠습니다라’고 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전해라 고쳐줄게’, ‘고쳐주옵서서 전하겠습니다’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작정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의사가 출근하였을 때 퇴원 수속을 요구했고 의사는 기가 막혀서 ‘귀가 멀기로 작정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단 한마디를 하였을 뿐입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공원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그 순간 귀가 뻥 뚫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새롭게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 중에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도 절대적으로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호소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은총속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부르십니다. 여기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미디안 광야에서 무명의 40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무명의 시간 모세는 왕자로서의 모세가 아니고 유명한 사람으로서 모세가 아니고 별볼일없는 무명의 모세로 살아갔습니다. 모세를 알았던 사람들도 그를 잊어버렸고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는 그를 기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자였고 나름대로 지식과 신분도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에게 잊혀저가는 삶을 산다고 할때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무명의 시절 광야의 모세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 소명자는 먼저 잠잠히 참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주님이 나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일을 해야지 내가 주님을 이용해서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모세도 그렇고 예수님도 바울도 무명의 시간을 대개 충분히 갖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준비의 시간이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 때인 것입니다.
모세는 단 한번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몸부림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주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기를 쓰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미친 듯이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세상만사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될 수 없습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발이 빠른 자라고 선착하는 것 아닙니다. 돈을 모은다고 부자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복을 주셨습니다. 전5:18-19절‘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평생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낙을 누리게 해 주신 것이 분복입니다. 누구에게나 재물과 부요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복은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결과로 재물과 부요는 쌓여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절대로 복을 받아서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뉴욕의 역대 시장중 가장 존경받는 시장은 ‘라과디아’라고 합니다. 그가 시장이 되기 전에 즉결 재판소의 판사로 있었습니다. 어느날 빵을 훔쳐먹다 잡힌 노인이 기소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배가 고파서할 수 없이 남의 빵에 손을 대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당신의 행위는 벌금 10불에 해당이 됩니다’라고 선언을 하고는 자기지갑에서 10불을 꺼내서 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매이고 있는데 배불리 먹은 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재판부 서기한테 주면서 방청객에게 말했습니다. 이 재판장에 계신 여러분도 나처럼 잘먹은 대가로 벌고 내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하고 모았는데 47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벌금을 내러왔던 노인은 47불을 가지고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덕이 알려지면서 라과디아는 뉴욕시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4.하나님은 신비속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우리는 유한하기에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는 육을 지녔기에 어차피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에는 신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도 신비속에서 만났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이 신입니다. 천사가 불꽃 가운데 나타난 것이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드려오는 것이 신비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신비속에서 모세는 만났습니다. 출3:2절‘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했습니다.
바울도 다메석도상에서 남들이 보지못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물론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됩니다. 물이 좋다고 해서 물에 빠져죽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불은 좋은데 불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비의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신비한 하나님을 만나면 신비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세가 신비의 하나님을 만나더니 신비의 역사들을 많이 일으켰습니다. 39번의 기적이 모세를 따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병고침 신비의 환상 음성 방언 지혜 기적 등등이 나타납니다. 그런 신비의 음성이 들려질 때에 어떻게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밀하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무관심하면 잘 모릅니다.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어도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일입니다. 모세는 경이속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조그만 사건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손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닭울음소리에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다메석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갔습니다. 정오의 강한 빛보다 더 강한 빛이 내려와서 바울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고도 주님을 영접하지를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무딘 사람은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는 회개했습니다. 신을 벗는 일입니다. 출3:5절‘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했습니다. 성결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건마다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에굽에서 건져내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그 사명을 깨닫는 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자가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호렙산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하나님을 만나 장소를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어떤 절망이 찾아와도 절망속에서도 보호하시고 찾아와 만나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부르짖어 기도하시고 신비속에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9.4.28 수............2011.7.31주일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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