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받은 뒤
한 달을 넘게 많이 아팠고 힘이 들었다.
아마도 내 자신이 그 축복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나 보다.
한 달을 조금 더 지나 교회를 가자 전도사님께서
"정수야! 우리교회 말씀이 너하고는 안맞제?"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네 안맞아요."
그리고 그 뒤에도 전도사님께서는 나에게 상심할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내가 너에게 예배 전에 찬양할 때 지휘를 맡긴게 니가 구원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구원을 받게 해 볼려고 너를 붙들어 준 거다 아나?"
라고 말씀도 하셨고 나는 그제서야 전도사님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를 가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다가 아마도 1995년 여름쯤에
전도사님께서 다른 교회로 발령을 받게 되셨고 송별식에 올 것을
나에게 형으로부터 기별을 주셨으나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 교회형제들과 멀어져 있었고 참석해 봐야 좋은 말을
들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도사님께서 다른 교회로 발령을 받으셨을 때는
목사안수를 받으셔서 목사님이 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목사님께서 떠나시고 다른 전도사님께서 오셨으며
나는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가끔씩 교회를 배회하며 찾아 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 형제님으로부터 교회 좀 오라고 전화가 와서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교회를 찾았지만 그 형제님은 나에게 악담을 멈추지 않으셨다.
"정수야! 너는 약하고 힘 없는 귀신에 들렸어. 너는 지옥에 간다." 라는
말을 했고 아마도 이보다 훨씬 악담의 수위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조용히 교회를 나왔고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상실감에
함께 방황하며 친하게 지내던 형제님 댁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으려고
전화를 드렸고 그 형제님은 흔케히 어서 오라고 말씀하셨기에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나는 형제님이 잠든 사이 "이렇게라도 살아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나는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님 아파트는 영세민임대아파트였었고 10층이 넘는 곳에 있었기에
뛰어 내리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나는 어두운 가운데 유서를 한 메모지에 써 놓고서는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려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고
나는 "아무나 자살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생각한 것이 "그래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자." 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당시 영주 역 앞에 있는 사창가를 찾게 되었다.
나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순결과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아 왔고 순결과 절개는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순결과 절개를 잃는 것보다는 자결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였고 그렇게 최선을 다 했지만 자살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그렇게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순결과 절개를 결국 육체의 쾌락으로 바꾸어 버렸으며
나의 영혼은 파괴되고 나의 삶은 깊은 수렁에 빠져 들었다.
그것이 아마도 1998년 4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육체의 정욕과 욕정에 이끌리며
살아 가게 되었고 내 인생을 보면서 한숨 지을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기쁜소식선교회와 등을 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기쁜소식선교회와 나는 척을 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