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을 보며
지자체마다 꽃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꽃들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면서 함께 깊이 생각해 봅시다.
먼저, 염려입니다.
우리 주님이 산상설교 중 하신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농사, 길쌈하느라 수고도 아니 하고,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지만, 천부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귀히 여겨 먹이십니다. 누구를 위해 피었는지, 불러주지도, 아니 이름도 없는 들의 꽃 한 송이, 들꽃 한 포기를 곱게 아름답게 피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새도 꽃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 주님의 선한 일 하라고 목사로, 사모로 부르셨는데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 깊이 잘 생각하시고 염려 대신 기도와 감사합시다. 인내의 열매는 갑절입니다. 욥의 인내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은, 사명입니다.
정채봉 님의 <참 맑고 좋은 생각> 중에 ‘풀잎도 할 일이 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새는 "자기"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참새처럼 날렵하지도 못하고, 꿩처럼 아름답지도 못하고, 독수리처럼 용맹스럽지도 못하고, 그리고 부모로부터 내쫓김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늘 웅크리고 있는 그를 이웃들은 별 볼 일 없는 새라고 천대를 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솔개 사제를 찾아갔다. 그의 푸념을 낱낱이 들은 솔개 사제가 말했다.
"당신처럼 생각한다면 풀 한 포기도 살아 뭐 하겠느냐고 하겠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하잘것없는 풀잎도 풀무치의 집이 되어줍니다. 빈 조개껍데기 또한 쓸모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들도 고기 새끼들의 둥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저 실낱같은 여린 나뭇가지 끝도 눈 한 짐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새는 그날 돌아와서 이 숲과 저 숲을 훨훨 날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젊은이 두 사람이 숲을 지나가다 이 노래를 들었다.
"저렇게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 이름 알아?"
"알지, 휘파람새야."
내가 사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내가 해야 할 미션이 분명히 있습니다. 누가 봐 주든지 봐 주지 않든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간에 자기 자리에서 때 되면 피고 지며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무명의 들꽃처럼 사명으로 삽시다.
마지막은, 타이밍입니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게 아닙니다. 여름에도 핍니다. 해바라기가 피고 접시꽃도 피고 백일홍, 나팔꽃, 장미, 무궁화 여름에 핍니다. 가을에도 핍니다. 코스모스, 국화, 구절초 가을에 핍니다. 꽃은 겨울에도 핍니다. 동백꽃, 수선화 겨울에 핍니다.
나는 어느 때에 꽃이 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지못해 피는 꽃이 되지 마십시오. 골짜기에 피어난 꽃에도 향기가 있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잡초 더미 위에도 단비가 내립니다. 온실 속에 사랑받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벌판에서 혹한을 견뎌내는 작은 들꽃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 없이 사랑받는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혹한을 참아낸 들꽃의 생명력이 더 강합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선택받은 목회자로 나에게 부여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명이 있습니다. 비교하지도 마시고 주인만 바라보며 충성을 다합시다. 하나님의 때에 나의 꽃은 핍니다. 목회는 믿음과 인내로 하는 것입니다. 따뜻하라고 준 봄에 꽃들을 보며 함께 묵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