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빌리지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나의 개인적인 핀드혼 경험을 얘기해야겠다. 핀드혼은 북쪽과 서쪽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변마을이다. 마을 중간쯤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고 나머지는 거의 평평한 사구(Sand Dune)로 되어있다. 핀드혼을 둘러보는 첫 날. 마을에서 동떨어진 풍력 발전기에서 바닷가로 나아가는 길이다. 중간에 광대한 지역이 모두 고스(Gorse) 라는 나무로 채워져 있다. 이 나무는 영국의 해안가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종의 침엽수로서 나뭇잎이 그야말로 바늘 끝 같다. 다 자라야 사람 키만큼 밖에 안 큰다. 이 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도무지 접근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접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식물들도 이 나무들 속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정말 징그러운 나무다. 나는 이 나무에 고슴도치 나무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봄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제히 노란 꽃을 피워대는 것이 정말 장관이다. 이 곳의 고스숲에는 잔디풀이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 나고 죽고 또 났는지 푹신하기가 응접실의 소파 저리가라다. 발로 쾅쾅 밟아 보아도 땅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위에 똥그란 토끼 똥이 엄청나게 깔려있다. 토끼가 똥을 얼마나 많이 싸는지 토끼를 길러봐서 잘 안다. 핀드혼 일대엔 정말로 토끼가 많다. 토끼들 등쌀에 이 곳의 정원은 모두 이중 삼중의 철조망을 쳐 놓았다.
고스 숲을 지나니 갑자기 일망무제의 황무지가 나타난다. 황무지라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칼라풀하다. 스코트랜드 특유의 헤더(Heather) 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철나무 비슷한데 잎 크기가 사철나무 잎의 1/4도 안되고 가지 끝에는 코딱지 만한 분홍색 꽃이 잘잘하니 맺혀있다. 키가 겨우 발목 근처에나 올까말까할 이것이 둥글둥글 무리를 지어 온 사구를 뒤덮었는데, 처음 이 광경을 마주치는 순간 숨이 헉하고 막히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야생의 들판(Wilderness) 이었다.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에 이런 ‘윌더니스’가 있다니! 이 헤더들판은 바닷가에 가까워질수록 사구의 굴곡이 심해짐에 따라 더욱 현란한 장관을 연출한다. 나는 이후로도 심심하면 찾아와서 이 황량한 아름다움에 젖어있곤 하였다.
바닷가에 이르면 모래사장이 한없이 길게 뻗어있다. 이렇게 좋은 모래사장이 있어도 수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나 긴 해안선 중간쯤에 접근불허의 철조망이 나란히 달리고 있어 가까이 가보니 군용 비행장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유엔군에 의해 건설된 것이라 한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있냐고 물으니 이 근방에서 핀드혼 지역이 가장 맑은 날이 많기 때문이란다. 장자의 말이 딱 맞는다. 쓸모가 많은 놈은 제 명에 못 산다더니. 핀드혼은 이 놈의 비행장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인상을 찡그리고 살아야 한다. 물론 살다보면 이골이야 나겠지만, 학창시절 비행장 옆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나로서는 어찌하여 공동체 설립자들이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이 비행장은 때때로 평상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굉음을 낼 때가 있는데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 아마도 전시에나 만들어졌음직한 거대한 구형 수송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 타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나이지만 그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과연 저들이 누구로부터 저렇게 산천초목이 벌벌 떨 정도로 소음을 내어도 좋다는 권리를 부여받았는지 의심스럽다. 그들은 하늘의 무법자요 독재자다. 어느 나라엘 가든 군대는 성역이다. 거기엔 에콜로지고 이웃이고 간에 없다. 논리는 간단하다. 나라가 침공 당하면 생태환경이고 이웃이고 간에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여기 핀드혼 해변가에는 저 군인들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초라하게 나자빠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차 대전 중 이곳의 군인들은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해안가에 콘크리트 방벽을 세우고 곳곳에 토치카를 세워 놓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파도에 의한 해안침식으로 인하여 모두 무너져 내려서 지금은 모래사장 위에 군데군데 머리만 내밀고 있다. 마치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문명의 최고수준을 뽐내던 ‘위대한’ 미국의 상징이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해변 모래사장 위에 반쯤 파묻혀 있는...
민톤 하우스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4일을 보냈다. 오랜 떠돌이 생활에 지친 내게는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다. 이제 워크샾 날짜가 닥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방을 비워야만 한다. 아침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웬 젊은이가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아니 다가온게 아니라 이 집에서 일을하고 있는 일본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끼어든 것이다. 파비오라고 자기이름을 밝히면서 스위스에서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 키브츠에도 좀 있다가 인도의 한 아쉬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이리로 온 것이라고 한다. 오늘 핀드혼을 떠난단다. 스위스로 돌아가면 농사일에 도전해 보겠다고 자기 포부를 말한다. 나도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친해진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본다. 밖에서 택시 경적소리가 나니까 부랴부랴 가방을 열더니 메모지에다 자기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스위스에 오거든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핀드혼 공동체 역사를 다룬 책 한권을 선믈로 준다. 전날 책방에서 살까말까하고 망설이다가 그만둔 책이다. 나도 밥 먹고 바로 나가야한다니까 친절하게도 주인여자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B&B(Bed & Breakfast) 한집을 가르쳐 준다. 고맙다고 말할 사이도 없이 짐을 들고 나가버린다. 만난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친절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 본다. 확실히 핀드혼에는 무언가 베풀고싶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짐을 싸 가지고 체크아웃을 하는데 데스크에서 공동체 단지 내에 있는 B&B 한군데를 또 가르쳐 준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번째 가르쳐준 집으로 가기로 한다.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고 들고나오니까 매니저가 와서는 자기 차로 가는 곳까지 태워주겠단다. 이런 고마울 데가! 가보니 피닉스 상점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단독 주택이다. 조금 전에 전화하고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대신 문 앞에 키가 꽂혀 있고 그 위로 메모지가 하나 붙어있다. 결혼식에 가기 때문에 집을 비우니 오른쪽 방에 짐을 풀고 마음놓고 지내란다. 들어가 보니 작은 방이 세 개 있는데 그 중에 2개를 손님방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 거실 소파에 앉아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니 거의 모두가 신비주의에 관한 것들이다.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있는데 지형이 좀 이상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언가가 그린 미래의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에 의하면 미국은 서부지역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아프리카도 절반이 날아간다. 제일 타격이 심한 나라는 러시아다. 거의 80%가 물에 잠긴다. 우리 나라도 절반쯤은 날아간다. 대신 바다 여기저기에 새로운 대륙이 생겨난다. 내가 읽은 한국 예언가들의 예측과는 사뭇 다르다. 한가지, 다가올 미래에 무언가 엄청난 지질학적 변동이 있다는 점만은 같다. 재미있는 집에 온 것 같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있기가 뭣하여 나도 메모를 남겨놓고 나가버렸다.
밖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Mo Willet. 핀드혼 주민 협의회(Council) 주요 멤버로 7년째 이곳에서 살고있는 ‘고참’이다. 말씀이나 행동을 보면 전혀 신비주의에 탐닉할 분 같지가 않다. 행동이 거침없고 활달하다. 살아온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굉장히 모험심이 강한 분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아온 궤적의 편린들로 장식해 놓았다. 한쪽 다리를 약간 전다. 젊었을 때 테니스를 잘 쳐서 직업운동선수로 나가려고 하였단다. 자신의 이름 Mo도 그 무렵 윔블던 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웠던 여자선수의 이름을 따서 고쳤단다. 그는 지역대회에서 우승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윔블던 구장에 섰단다. 그런데 신은 그에게 다른 길을 예비해 놓으신 모양이다. 첫 게임에서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그 뒤로 수술을 여러 번 하였건만 결국은 다리를 약간 절게 되었단다. 결혼 두 번에 아이들 셋을 낳아 다들 보내버리고 7년전부터 혼자 이곳에 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도중 전화가 와서 기다리는 사이 탁자 위에 놓인 잡지들을 들춰본다. 역시 대부분 UFO 나 초능력 따위의 신비주의 관련 잡지들이다. 그 속에 낯익은 잡지가 하나 눈에 띈다. Amnesty. 이 분의 관심이 다양한 것은 알겠는데 엠네스티 활동까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자 나는 잡지를 손에 들고 물었다. “혹시 엠네스티 회원이십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집회활동은 못하고 이렇게 뉴스레터나 받고 있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간단히 내 소개를 한다. 십사년 간 옥살이를 한 정치수 출신이며 국제 엠네스티 초청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반색을 한다. 갑자기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가족을 대하듯 애틋한 정이 넘쳐흐른다. 그 동안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것저것 묻는다. 얘기를 대충 듣고 난 그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요청을 한다. 당신의 얘기를 이 곳 공동체 식구들에게 들려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엠네스티와 관련하여 이런 요청을 받으면 거절을 할 수가 없다. 그 동안 엠네스티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둘째로 치고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제3세계의 수많은 양심수들을 생각하면 내게 시간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해야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모임을 가져봤기에 나의 발언이 제3세계 현실과는 십만팔천리 떨어져 있는 서구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겠노라고 수락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냐고 묻는다. 나는 나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에코빌리지를 둘러보고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등록은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미 며칠 전에 대금 지불을 포함하여 등록 절차를 마쳤다. 그는 나 같은 경우 참가비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자기가 환불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단다. 그러더니 사방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대충 낌새를 보니 저쪽에서 굉장히 난감해 하는 것 같다. 이미 지불이 완료된 것인데 다른 방식으로도 나를 도울 수있을 것이니 제발 그만 두라고 사정을 한다. 할 수 없다는 듯 그제야 수화기를 놓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또 하나의 작은 방에 묵고 있는 데런이라는 여자가 들어온다. 삼십대 중반 무렵의 지적으로 생긴 웨일즈 출신 여자이다. 현재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활동가이다. 주로 하는 일은 여성들의 의식개발과 지위향상에 관련된 것이란다. 자기를 포함하여 친구 몇몇이 조그만 자선사업단체(Charity)를 조직하여 외부의 도움 없이 현지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카드를 그려 팔아서 그 돈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단다. 대단한 여성들이다. 현재 영국에 와서 휴가를 보내고 있으며 시월이면 다시 감비아로 간단다. 피곤해 보이는 Mo가 먼저 침실로 간 뒤에도 밤늦도록 데런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오후 바닷가 산책을 갔다오니 모의 집에 손님 두 사람이 와 있다. 인사를 나눴다. 제레미와 엠마. 모두들 십여년 넘게 산 고참들이다. 둘 다 공동체와 외부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하고 있단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대외창구인 셈이다. 이들은 무언가 흥미로운 껀수를 감춰들고 왔는지 싱글싱글하며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제레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내가 한국 TV에 방영되어도 괜찮으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아닌 밤에 홍두깨인가 싶어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라고 다그친다. 자기네들에게도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기억하기에 내가 핀드혼에 찾아온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후 만난 모든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주에 한국 국영 TV 촬영팀이 이곳에 올 것이며 또 그 주말에는 한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란다. 한국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안 비치던 곳에 한꺼번에 세 무리의 한국사람들이 들이닥치게 되니 기가막힌 우연이라는 것이다. 전에도 나라마다 이런 바람이 불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웨이브(Wave) 라는 단어를 썼는데, 전에도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Japanese Wave, Brazilian Wave, Spanish Wave가 밀어 닥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결이 한번 몰아 닥친 이후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그 나라 말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게 되었단다) 이제는 코리안 웨이브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냐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건 그렇구, 그들은 한국의 촬영팀이 오게되면 이 곳의 어디를 안내해야 할지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내가 이곳에서 ?공동체 체험하는 장면을 찍고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면 홍보효과가 더 있을 것이라며 나에게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이다. 나는 뭐 숨어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안 될게 뭐 있나싶어 당신들 뜻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이건 여담인데, 작년에 한국을 떠난 이래 이상하게도 TV 카메라와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네덜란드에서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일단의 광고방송 촬영팀에게 붙들려서 본의 아니게 새로 개발한 콤퓨터 소프트웨어 제품을 광고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마도 한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특이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노르웨이에서는 TV에 나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토크쇼까지 하였고, 슈마허 대학에서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국 BBC 촬영팀이 와서 학교 생활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찍어갔다. 무슨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았는데 확인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이번엔 한국 티브이가 여기까지?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아직까지 핀드혼 교육관에서 행해지는 교육 프로그램 내부를 외부에 공개해 본 적이 없다는 것과 한국 촬영팀의 촬영의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리 날짜를 당겨서 결말을 이야기하겠다. 공동체 스태프들이 내가 속해 있는 그룹에 와서 촬영협조를 부탁하자 그룹 성원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절반쯤은 상관없다는 의견이고 나머지는 거부의사를 표시한다. 이것은 내용상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므로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논의를 시작할 때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결론은 자명하다. 이 사실이 통고된 후 나는 우연히-그러나 내 생각엔 교육생의 일정을 잘 알고 있는 스태프들이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핀드혼 코뮤니티 식당에서 KBS 촬영팀과 마주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이 일주일에 하루 날 정해서 하는 ‘침묵의 식사’ 시간이었다. 이역만리 오지(?) 에서 동포를 만났는데 말도 못하고 눈인사만 나눈 채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이 마치 어색하게 연출된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서야 겨우 통성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나의 이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공동체 스태프들이 다 얘기한 모양이다. PD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넨 젊은 친구가 묻는다. “내일 모래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신다면서요?” 오잉! 왠 기자회견? “기자회견이 아니라 공동체 사람들의 초청에 의하여 제가 감옥에서 겪었던 정신적, 심리적 변화과정을 이 곳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들은 KBS 의 ‘세계는 지금’ 이라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데 얼마 전 에딘버러 페스티발을 다녀왔단다. 여기에 와서는 에코빌리지 취재를 마쳤으며 이제 북 아일랜드에 가서 한가지만 더 취재하고는 돌아갈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곳의 사는 모습이 밖의 사회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오고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변함없는 매일의 일과 속에서 ‘신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라고 말해주고 프로그램 일정에 쫒겨 간단한 눈인사만 나눈 채 식당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