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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큐수온천여행기
일시 2008. 3. 12 ~ 2008. 3. 15
**** 지중해모임 가족 18명과 함께****
[2008년 3월 12일]
해외여행을 비행기가 아닌 쾌속정으로 아시아 대륙의 오른쪽 끝 태평양상에 떠있는 섬의 나라 일본[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西 ),큐슈(九州)]는 4개의 큰 섬과 수백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온천여행은 처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의 맨 아래에 있는 섬 큐슈여행길에 나섰다. 새벽3시20분에 익산을 출발하여 질흙 같은 어두움 속을 달리고 달려 부산항에 도착하니 7시40분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10시에 코비쾌속선에 올랐다. 부산앞 바다의 푸름과 잔잔한 파도를 보며 행복해하는 일행가족들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한 채 망망대해를 가르지르며 시속55킬로로 질주하는 쾌속선 창밖의 바다를 보는 순간순간마다 행복이 가슴으로 달려와 안기고 코비는 큐슈 히카타항에 1시분에 도착 3시간의 바다를 달려 큐슈는 일행들의 품에 꼭 안겼다.
일본의 면적은 37만8천㎢ 남한의 4배이고 인구 1억2천만 명 남한의 4배 인구가 살고 있다. 큐슈는 불의나라 빛의 나라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연기를 토해내는 불의 산(화산)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 눈부신 태양이 푸른 하늘과 에머랄드색 바다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빛의 고장 강열한 불과 빛처럼 호쾌하고 명랑한 사람들 땅의 불 그리고 바다와 하늘의 빛사이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있는 곳 일본의 열도 최남단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세계에서 3번째긴 해저터널인 관문(關門)터널과 연륙교로 혼슈와 연결되어있는 큐슈는 한반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부터 대륙문화를 받아들여 정착시켰고 일본에서 가장먼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곳으로 그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일본인들이 정년하고 살고 싶은 제일의도시로 지진이 없는 도시이다
일본의 수도는 동경이고 큐슈는 이지방의 중심도시인 후쿠오카시 인구는 135만 명으로 일본의 8번째 도시이며 후쿠오카 현을 비롯하여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이야자키, 등 7개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아소국립공원, 운젠 - 아마쿠사 국립공원, 기리시마 국립공원 등을 비롯한 많은 공원들이 있고 최남단에는 오키나와 군도가 길에 뻗어져 있다.
후쿠오카(福岡)시는 원래 2개의 도시가 합쳐진 도시 즉 나카사기와 강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후쿠오카성이 있었던 무사의 도시 인 후쿠오카가 있었고, 동쪽에는 무역의 중심지였던 “상인의 도시인 하카타(博多)”가 있었다. 1889년 행정 개편시 두 도시를 합친 다음 후쿠오카로 정식 도시명을 정하였으나 하타카로 혼용하여 쓴다. 후쿠오카는 정치• 경제면에서 많이 사용되며, 하카 타는 사회• 문화면에서 주로 사용되어 규슈지방의 관문으로 한반도나 중국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만큼 대륙문화가 유입되어 꽃이 피었고 일본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하카 타만을 배경으로 문화, 레저시설이 확충되어 국제도시이자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예산부터 일본과 아시아제국과의 교류지점으로 상업• 공업을 중심으로 한 기타큐슈(北九州市)라는 두 곳의 백만 도시를 안고 있는 후쿠오카 현은 큐슈의 중추적인 존재이다.
[후쿠오카 ~ 나가사키로] 이동 순교와 원폭투하도시 나가사키 현은 큐슈의 북서 끝에 위치하며, 인구 24만 명으로 5개의 반도와 많은 섬들로 구성되어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과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대륙과의 교통의 요충지로 17세기 이후는 포로투칼과 네덜란드등과의 무역항도 설치되었으며 한때에는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현내에는 이국정서가 넘치는 사적과 건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무인도를 포함해서 971개나 되는 섬들이 현면적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여 현내에는 “사이카이국립공원”에 위치하는 “구주쿠시마”와 시마바라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는 화산(운젠 산의 주봉)후겐산등의 관광명소가있고 또한 네덜란드에 관련된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는 인기 있는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다.
나가사키로이동중 휴게소 관광안내도
두 번째로 방문한 일본의 시가지는 참으로 깨끗하였다. 도로 및 가로수가 잘 어우러져 있었고 도로 갓길의 흙먼지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하고 산뜻하였다. 또한 산마다의 울창한 산림 목재로서의 쓸 수 있는 산림은 수십 년을 자라서 재목으로서의 안성맞춤이었다. 심어서 방치하지 않고 항상 가꾸는 산림으로서 우리가 꼭 배워서 실천해야할 것의 하나의 목표이자 과제였다.
나가사키의 원폭자료관 앞
피폭의 참상을 비롯하여 원폭이 투하되기 전까지의 경과, 피폭부터 지금까지의 나가사키의 부흥모습 핵병기개발의 역사, 평화 갈구등의 스토리성이 있는 전시를 펼치고 있다. 대형원폭피해자료, 피폭한 우라카미 성당의 남쪽벽 일부를 재현 조형하는 등 피폭 직후의 나가사키의 참상을 재현하고 있었다. 우리가 관람하였을 때 일본인의 학생들이 많이 관람하고 있었는데 침울한 표정으로 질서를 지키고 메모하는 학생과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 전시장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낙서투성이에 잘 관리되지 않고 방치한 자료 등을 상상하니 가슴이 저미어온다. 일본은 역사를 책으로만 모든 자료를 두지 않고 언제나 일본인들이 관람하고 언제나 피부에 느낄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시각적으로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다. 자료관 관람후 “평화는 나가사키로부터”라는 슬로건으로 완성된 청동 평화 기념상 은 자료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지대가 약간 높은 곳으로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언제나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곳곳에 나무며 꽃들, 조형물 등으로 꾸며 가족, 동료, 연인들과 산책이나 데이트코스로 좋은 시민들의 쉼터였다.
평화공원 비둘기날개앞에서
일본인들은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 할 줄 아는 국민이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첫날저녁은 온천욕 후 일본인들이 쓰는 다다미방과 기모노를 입고 일본정식을 먹었다.
[2008년 3월 13일 (목요일) 9시]
나가사키~ 운젠 으로 이동 1934년 일본을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운젠 으로 이동은 평풍처럼 펼쳐진 산이 가도 가도 이어진다. 민둥산은 찾아볼 수 없고 목재목이나 대나무 등으로 조림되어있었다. 대나무는 뿌리는 지진에 많은 도움을 준단다.
휴게소 판매장에서 포로투칼의 방식으로 구운 카스테라가 유명하다하여 구입하였다.
일본의 매장은 어디서나 시식을 하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시식용이 별도 진열 되어있었다.
[운젠지옥계곡] 운젠 온천은 모두 고탕 신당 소지옥 3개의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1653년 고탕이 처음 개발된 것이 운젠온천의 시작이라 한다. 1731년에는 소지옥이 개발되었고 이곳을 놀러온 문인들에 의해 운젠 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되었다한다. 운젠은 한때 기독교탄압의 순교지가 된 적도 있었는데 도쿠가와막부의 3대 장군 이에미쓰 (家光)로부터 기독교 금압(禁壓)명령을 받은 영주 마쓰쿠라 시게마사(松倉重政)가 바로이곳에서 기독교 박해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신자들을 끌고 와서 뜨거운 온천물에 빠뜨리는 등의 고문을 자행하여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다. 지옥계곡 중간지점에 온천에 찐개란을 파는 할머니는 91세라는데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일본은 많은 노인들이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움직일 수만 있으면 일을 해서 몸 건강관리를 하며 스스로 자립하여 살고 있다. 소지옥 한편에 마련된 운젠 공원 비지 센터에서 운젠화산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역사, 풍속, 자연환경 등 비치되어 있고 근처에는 언제나 시민들이 족욕을 즐길 수 있도록 족탕시설이 있었으나 때마침 관공사로 인하여 일행들은 족욕을 하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기며 다음 행선지로
운젠 지옥탕
일본은 대체적으로 노점상이 없다고 해도 괜찮다. 노점상 처음으로 이곳에서 귤파는 아저씨를 만나 귤이 맛있게 보여 일행들에게 줄 귤을 샀다. 일본의 물가는 우리나라의 10배에 가깝다. 귤18개에 우리나라 귤1박스 값으로 너무 물가가 비싸서 사서 먹을 수 없다.
운젠 에서 15년 전 화산폭발이 시발점으로 하여 13년 전 5월15일전에 화산이 불출된 시마바라 후켄다겐산은 1483M로 화산으로 인하여 사망이 37명 토성피해 집이 지붕만 남고 흙이 처마까지 차있는 그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그 당시의 참상은 이곳에서 만 볼 수 있고 집들이 언제 그런 참상이 있었냐는 듯
후켄다겐산 평온하고 아늑하게 마을을 포근히 안아주는 듯하다.
시마바라항에서 구마모토로 이동하기 위하여 육로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배를 이용하였다. 배 아래층은 버스를, 1, 2층은 사람들이 승선하였는데 우리는 2층에 예약이 되어 이층으로 가서 오순도순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 선창밖에 나가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고 동료들과의 우애도 다지며 35분 정도 승선을 마치고 구마모토 현으로 향했다.
구마모토 현은 일본의 서단 , “규슈”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동부에 “아소 산” 북부에 “지쿠히 산지”가 위치하며, 북서부에는 산지에서 발원하는 “기쿠치강”과 “구마강“등의 하천이 흐르고, ”아리아케 바다“연안에는 구마모토평야와 ”야시로 평야“가 형성되어있다. 풍족한 자연. 경관과 물로 유명하며 온난하고 비가 많은 기후. 세계제일의 칼데라를 가지는 아소를 포함한 「아소쿠주 국립공원」 다소10섬들과 「운젠아마쿠사 국립공원」은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경관을 자랑 할 뿐 아니라, 현재각지에서 온천이 다수 용출하여, 귀중한 관광자원이 되고있다. 또, 이름난 명수백선에 전국최다인 4개소가 꼽히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상수도 용수의 지하수 의존도는 ,인구60만 명을 넘는 구마모토 시에서 거의100%, 현 전체에서도 약8할이 지하수로 조달 해지고 있다. 구마모토는 63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로서 큐슈에서는 후쿠오카. 기타큐슈 다음으로 세 번째 큰 도시. 구마모토는 구마모토 현의 현청으로 현의정치, 경제의 중심지이고. 지리적으로는 큐슈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남북과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성의 하나로. 원래 구축 되였던 작은 성들을 포함하여 1607년 개축한 성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7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축성당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었다하여 은행나무성이라는 별명도 붙은 이성은 100개가 넘는 우물과 수십 개의 성문과 성류드을 보더라도 구마모토성이 대단히 큰 규모의 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측벽으로 아래쪽은 완만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수직 형이 되는 독특한 방식을 구축된 것으로 곡선미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침공을 진두지휘한 다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자신의 한반도 침략으로 얻은 조선식축성술을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성으로 가는 다리를 지나면 그의 좌상을 뒤로 웅장한 성이 버티고 있고 성벽의 아랫부분은 완만하게 되어 있지만 위쪽은 휘어진 모양으로 보병을 물론 쥐새끼조차도 기어오를 수 없게 되어있으며, 성내에는 은행나무를 심어 공격에 방비 할 수 있게 하여 일본의 내란 때에도 난공불략의 요새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성은 1887년 메이지정권의 출현으로 파괴된 뒤 1960년에 재건된 것임. 언덕의 정상에 세워진 성의 넓이는76만㎡에 그 위가 5.3㎞ 외곽의 길이가9㎞ 에 3개의 건물, 2개의 덴슈카쿠(天守閣), 49개의탑, 18개의ㅣ누각, 29개의 성문, 적의 포위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 등이 있어 이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우토야쿠라고 부르는 작은 텐슈카쿠(天守閣, 성에서 가장높는 건물)는 1887년에 불타지 않고 내부까지 축성당시의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중앙의 큰 넨슈카쿠의 내부는 가토일가와 구마모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 및 도검류가 전시된 박물관으로 되어있다. 두 개의 덴슈카쿠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번주(藩主)가된 기분으로 구마모토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성내의 정원에는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은행나무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꽃과 수목으로 풍성한 드넓은 공원에 많은 관람객과 어울러 함께 거닐며 아름다운 경관을 시각으로 가슴으로 듬뿍 관람하고 활화산과 초목으로 어우러진 아소 산으로 이동
일본도로 정비는 허술하다. 이것은 침략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고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아끼는 일본인을 보고 우리가 꼭 배워서 후손에게 남겨줄 나라 사랑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구마모토성 입구
구마모토 아소 판 랜드 오후5시20분 도착 그림에서 본 듯한 시설이 눈에 띤다. 목장으로 사용하다가 온천랜드시설로 변경되어서 인지 곳곳에 얼룩소모조품동상이 반갑게 우릴 반겼다.
돔집 한 채에 2인1조
일행들은 2인1조로 돔같이 생긴 집한 채씩을 선물로 받았다. 일행들은 P 215,~216, Q 223호~ Q 228로 입소하였는데 난 Q 224호로 전체시설은 어마어마하다. 1층은 온천욕실로 안으로 들어가면 시설 안에 대형탕 열탕, 냉탕이 있고 실외로 석회석탕 꽃잎탕 한 방탕. 전 열탕. 팀질방등 그 시설이 정말 대단하다. 뉴질랜드 여행시에서 온천욕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수영복차림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한 기억이 있다. 그곳도 여러 곳에서 나누어서 남녀가 같이 온천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이곳은 혼탕은 아니고 남탕, 여탕 따로 있어 각국 여행 온 사람들과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온천탕 앞에서
숙소 들어가는 입구의 화려한 불빛을 배경으로
돔집 구조는 원룸 식으로 들어가면 침실겸 거실 침대 4개, 창문3개 욕실1개,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였지만 워낙 방이 뜨거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 9시]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루만 좋아지면 좋으련만 하늘이 우릴 도와주지 않았다.
사무사와시 원숭이 극장관람 가는 도중 농산물팬매센터에 들렸다. 대형주차장을 넓게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계 안은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들이 즐비하다. 농산물을 연계하여 육류, 곡류, 엽체류, 치즈, 과자류,주류등 가지수를 셀수가 없고 꼭 시식할 수 있게 별도 진열품이 있었으며 한국에서 같이 마구사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사루마와시 원숭이극장에오니 온통 한국인들로 가득하다. 광양농협에서 농업인을 대상으로 250명 정도 연 수온 사람들과 함께 관람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미리와 있어서 우린 맨 뒤좌석에 앉아 관람하였는데, 원숭이7년생과 2년생으로 보이는 원숭이 2마리가 높이뛰기. 공굴리기, 기 들어올리기 등을 하는데 별로신기하지는 않고 좀 촌스럽다고나 할까? 시간이 좀 아까웠다.
비는 계속내리고 세계최대의 복식칼테라 분화구인 아소 산 분화구로 향하였다. 우리는 소형차로 인하여 분화구 앞까지 갈 수 있었는데 차창 밖으로 전개된 광활한 대초원지대가 보였다. 이지대가 쿠사센리란다, 연기를 내뿜은 산의 배경을 바라보며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검게 탄 목초지대가 검다목해 시커멓다. 아소 산은 최근까지 화산폭팔을 했던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이다. 아소 산 면적 380㎢로 동서18㎞ 남북24㎞, 둘레128㎞,이다. 아소 산의 폭발은 3천만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카다케,다카다케,네코다케,예보시다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에도 계속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최초의 국립공원으로 현재에도 높이1,328㎞ 폭 1.1㎞ 깊이 100㎞ 의 나카다케는 용암을 내뿜고 있어 살아 있는 아소 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단다. 아소 산 정상까지는 1959년 세계최초로 활화산에 설치된91인승대형 로프웨이로 올라갈 수 있으며 평소에는 15분~20분 간격으로 성수기에는 6~5분 간격으로 운행되면 높이108M의 정상 까지는 4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분화구 앞까지 소형차로 갔지만 분화구 안은 하얀 물안개로 부끄러운 듯 온 아소 산을 가리고 있어 볼 수 없었다.
정상적인 날 아소산분화구 모습
활화산분화구는 아소산중앙화구의 중심에 있는 나카다케는 지금도 활발한 화산활동들이 계속되고 있다 화구는 남북1.1㎞ 동서400M 주위4㎞ 에 걸쳐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화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데 아쉬움만 남긴 채 초철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2:45분에 일본3대 온천지중 하나인 뱃부로 이동하는 도중 아소 산의 아쉬움 때문에 일명 미니 나이아가라폭포, 구름다리, 물레방아를 관람하였다.
뱃부시 오이타 현에 속하며 뱃부만의 가장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뱃부는 서일 본에서 가장규모가 크고 유명한 온천리조트다. 이곳에서 솟아오르는 온천물은 하루100,000㎞가 넘고, 온천 또한 3,000개 이상이다. 그 용출량은 일본제일이며, 온천의 원천숫자와 종류에 있어서도 세계유수의 온천리라고 할 수 있다. 뱃부온천은 하마와키, 뱃부, 간카이사, 요반, 간나와 md의 8개 온천마을로 형성되어 있어 뱃부 하치유(여덟개의탕)라고도 불리며, 풍부한 온천을 이용한 리조트도 다수 자리하고 있단다. 뱃부시가지가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높은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옛 시골마을 굴뚝을 연상케 한다.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황재배지 유노사토는 초가지붕에 구리와 점토를 깔아 온천에서 분출되는 수증기를 씌어 만든 것, 수증기에 포함된 온천성분이 점토표선에서 결정체로 굳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온천수로 만든 꽃, 유노하나이다. 유노하나는 가정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입욕제로 판매되고 있으며 류머티즘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황가족탕 유황재배지 유황재배지입구
가마도 지옥 탕에 첫 관문엔 대형 가마솥이 우리를 반긴다. 여러 삼점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면 족탕, 훈탕, 유황 물마시는 곳등 관람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많아 우리나라에 있는 느낌이 든다. 이곳사장님은 365일 쉬지 않고 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며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관리 운영 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상도를 중요시 여긴다. 처음 거래는 신중하다. 하지만 한번 믿으면 신의를 지키며 회사는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회사경영을 잘 할 수 있는 제3자에게 물려주어 부도 내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2008년 3월 15일 (토요일) 08시30분]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화창하다. 어제 아소 산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오늘이라도 화창하니 위로가 된다. 다자이후이동 지금의 다자이후시는 1,300년 전에 큐슈 전체를 다스리는 다자 이후라는 커다란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 동안 그 역할을 담당해 지금도 그때의 역사를 알려주는 다자이후 유적, 미즈키성유적, 오노조성유적, 칸재은지절, 치쿠젠 고쿠분지절, 다자이후텐만 신사등 많은 유적이 산재해있다. 그중 천만 궁은 905년에 창건하여 도비우메(飛梅, 날아온 매화나무)의 전설과 학문의 신으로 유명한 스가와라미치자네를 기리는 덴 만구의 총본산이다. 메이지시대에 다자이후진자(大宰府神社)사가 되었다. 이후현재의 다자이후텐만구궁원도진하여 학문의 신스기와라 미치자네를 모진 천만궁의 현재의 건물은1590년에 건축 혼텐(本殿)앞에는 6,000그루의 매화나무가 매년1월부터 3월 사이에 핀다는데 때마침 만발한 버들매화가 우리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만궁안에는 첫 구름다리는 과거 두 번째 다리는 현재 세 번째 다리는 미래라고 하는데 구름다리 밑에는 고인 물로 탁한 초록빛 물 사이로 비단잉어가 한가롭게 남생이와 함께 놀고 있었다. 본전 뒤로 빼곡히 심어져있는 매화가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또한 봄이면 일제히6.000그루의 벚꽃이 피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단다. 맛있는 도시락을 일행들과 맛있게 먹는데 일본인들인지 아닌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남자건 여자건 무릎 꿇고 앉아서 식사하는 모습이 어렸을 적에 어른 앞에 앉으려면 단정하게 무릎 꿇은 것처럼 일본인들은 몸에 베인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모치상점이 길 양쪽으로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방송국에서 왔다갔다는 집에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사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집은 손님이 없고 한 것을 보니 일본인도 방송을 타면 더욱 손님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쉬운 일본관광을 마치고 항구로 가려니 섭섭하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머리를 스친다. 일본인들의 절약하는 습성, 몸에 베인것을보고 우리도 일본인과같이 전 국민이 절약하고 노력하는 습성이 몸에 베이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천만궁우신앞(소머리를 먼저만지고 머리를 만지면 영특해진다는 전설이있는곳)
[느 낌 점]
1. 깨끗한 거리 도로 폭이 넓지 않는 도로구조 등은 자연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활용 하고, 외침의 침략 배제등, 개발도 좋지만 자연을 훼손하는 난개발은 금지조항 필요
2. 절약이 습관화된 국민성을 알 수 있었다. (아파트12~15평, 소형 쓰레기통. 물 절수. 간판등)
3. 납골당부근의 땅 가격이 고가이며 화단조성이 잘 된집이 부자? 라는설명을 듣고
나라마다의 문화와 풍습이 다르지만 우리도 좋은 점은 본받아 실천하려는 의지가 필요 하며 나를 버리고 우리 모두가 나라사랑하는 마인드로 실천과 행동이 절실
4. 일본의 역사는 국민들이 근접에서 보고 느끼는 시각적 효과를 부각시키는 행정을 보고 우리도 문헌으로만 남기지 말고 인접에서 가족이나 친구. 연인등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면서 역사에 접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법적 절차가 절실
4. 금번 큐슈일본여행을 통하여 보고 느낀 것들을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보고 느낀것을 우리가 먼저 실천하여 자손들이 보고 본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할 큰 과제를 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