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하는 11세기부터 불린 명칭으로, 리오하 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에브로 강의 일곱 개 지류 가운데 하나인 리오 오하(Rio Oja)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장밋빛 토양 때문에 스페인어로 ‘빨강’을 뜻하는 로하(Roja)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또는 바스크어로 ‘빵의 땅’이라는 뜻의 에리아 오히아(Eria Ogia)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는데, 이 지역이 곡물 재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리오하는 필록세라가 유럽 전역의 포도원을 피폐하게 만들던 당시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은 지역으로, 이 때문에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이 리오하로 이주하면서 그들의 양조기술을 전파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1925년에 스페인 최초로 DO 등급 산지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에 스페인 최초로 DOC 등급으로 승격되면서 일관성과 높은 품질을 갖춘 산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오늘날 리오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5대 와인산지에 속하는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리오하의 와인생산량은 약 3천4백만 헥토리터로 전세계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며(2010년 기준), 60% 이상이 자국 시장에서 소비된다.
리오하 와인은 우아하고 토속적이며 품종, 포도재배, 와인양조의 세 가지 요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최근 리오하 지역의 많은 와인생산자들이, 개별 포도밭의 특성과 품종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와인을 생산하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여러 지역 포도밭의 포도나 와인을 블렌딩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된 와인이야말로 리오하 와인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기여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스페인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상적인 몇몇 와이너리는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어둡고 습한 저장고에는 곰팡이와 거미줄로 뒤덮여 수십 년간 보관된 와인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 |
아르타디 (Artadi)
중세 스페인 마을 라구아르디아에서는, 리오하의 미래가 로그로뇨 가에 있는 아르타디 셀러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나돈다. 스페인 와인업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구자인 후안 카를로스 로페스는 1985년 협동조합으로 출범한 아르타디를 1992년 사기업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큰 키에 성격이 정열적이고 강렬한 와인생산자이며 혁신주의자이다. 그는 스페인의 대표품종 템프라니요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와인을 양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결과 높은 고도의 포도밭에서 재배한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극히 소량의 포도만 수확해 와인을 만들었다. 또한 오크통에서의 유산 발효, 프랑스산 오크통의 사용 등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기법들을 도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커다란 오크통에서 8~20년간 숙성하던 관행을 깨고 짧은 숙성을 거쳐 병입하는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과거 오크통 숙성 기간에 따라 크리안자, 레세르바, 그란 레세르바의 등급을 부여하던 시스템을 버리고, 포도나무의 수령을 더 강조한 와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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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디 비냐 엘 피손.
후안 카를로스 로페스가 불어넣은 이러한 혁신 정신 덕분에 아르타디는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인들을 생산해 왔는데, 그의 지휘 하에 아르타디가 리오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헥타르 정도의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아르타디의 와인은 매우 풍부하고 깊은 맛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아르타디에서 생산하는 비냐 엘 피손은 단일 포도원의 오래된 템프라니요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어두운 보라색을 띠며 위대한 와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우아한 부케를 지닌다. 또한 바닐라, 향신료, 송로버섯, 블루 베리, 산딸기 향 등이 잘 섞여 있으며 민트 향도 은은하다. 40년에서 50년 정도 숙성시키면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 |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es de Riscal)
19세기에 설립된 마르케스 데 리스칼은 리오하에서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이며, 현재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 때부터 왕실에 와인을 공급해오고 있다. 아름다운 지하 저장고는 무려 4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곳곳에 거미줄과 잿빛의 희끄무레한 곰팡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별로 감흥 없는 와인들을 생산했지만, 그 뒤 이 와이너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우아하고 뛰어난 리오하 와인을 만드는 방향으로 회귀했다. 작황이 뛰어난 해에는 와인이 가시덤불 향이 나는 커런트, 버섯, 달콤한 초콜릿 풍미와 함께 실크처럼 부드러운 근사한 질감을 드러내며 놀랄 만큼 복합적이다.
양조방식의 기준으로 삼았던 보르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리오하 와인은 전통적으로 품종을 블렌딩해서 제조해왔다. 레드 와인 블렌딩에서 중심 품종은 가장 섬세한 템프라니요다. 여기에 첨가되는 다른 세 품종은 스페인 토착 품종인 가르나차, 마수엘로, 그라시아노다. 요즘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기도 하는데 리오하에서는 여전히 드문 현상이다. 1980년대에 마르케스 데 리스칼 같은 와이너리에서, 전통적인 리오하 와인의 맛은 아니지만 독자적으로 만든 맛이 좋은 특별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블렌딩 방식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일례로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바론 데 쉬렐 레세르바는 훈연 향, 코코아의 풍미를 발산하는데 맛이 대단히 좋다. 보르도의 관습에서 영향을 받은 또 한가지는 와인을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시키는 것이다. 1780년대 마누엘 킨타노라는 리오하의 와인생산자가 이러한 보르도식 와인숙성방법을 채택하였는데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단 프랑스 방식과 달리 대형 오크통을 사용했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 역시 1850년대에 작은 오크통을 사용해 와인을 숙성시켰다. | |
마르케스 데 리스칼 바론 데 쉬렐 레세르바(좌),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우).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Marques de Murrieta)
과거에는 리오하의 150곳 정도 되는 와이너리 대부분이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않고 1만 4천여 개의 소규모 재배자들로부터 포도와 와인을 구매한 후 병입하여 판매했다. 요즘에도 와이너리들 대부분이 생산자와 지역협동조합으로부터 여전히 포도와 와인을 일부 구입하지만, 포도밭을 소유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추세다(와이너리가 포도밭을 소유하면 포도의 품질을 훨씬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다). 1990년대 당시 20곳의 와이너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소유 양조장에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토지를 상당량 매입했는데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도 이 부류에 속한다.
오래된 유명 와이너리인 무리에타는 훌륭한 양조장을 운영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한 소유주 세브리안 가문의 열정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는 장기 숙성한 최상급 화이트 리오하 와인생산자로 꼽히는데, 리오하의 어떤 화이트 와인도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의 화이트 이가이만큼 다양한 측면으로 표현력을 강력하게 발산하지 못한다. 최고의 빈티지는 흙내음이 강해서 지하 동굴 같은 냄새를 풍기며 산도는 마치 스시 칼처럼 날카로운데, 아몬드, 크렘 브륄레, 볶은 견과, 꿀, 버터 바른 토스트, 정향, 시나몬의 활기찬 풍미가 벨벳 커튼처럼 산도를 감싼다. 한편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의 최고 빈티지 레드 이가이는 풍성한 과일 맛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급 보르도 와인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쌉쌀한 초콜릿, 멘톨, 훈연 향, 가죽, 코코아의 황홀한 향기로 시작하며, 흙내음의 신비로운 풍미가 이어진다. 훈연 향, 블랙 베리의 향이 여운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차츰 사그라진다. | |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 이가이.
리오하에서는 레드 와인을 4~10년 숙성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최고급 리오하 와인을 15~20년 숙성시킨 후 출시하는 것이 보통이던 과거에 비하면 훨씬 짧아진 것이다!). 이때 오크통의 타입이 중요한데, 프랑스산 오크통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리오하에서는 미국산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적이다. 미국산 오크통은 새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중고 오크통은 인상이 강하고 두드러지는 바닐라 향을 형성하는 새 오크통에 비해 와인의 풍미를 훨씬 더 부드럽게 한다.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는 이렇게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 감도는 흙내음의 풍미를 보여 무엇이 리오하 와인을 리오하 와인답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 |
보데가스 무가(Bodegas Muga)
1932년에 설립된 보데가스 무가는 가족경영체제의 와이너리로 전통적인 스타일의 최상급 리오하 와인을 생산한다. 최고급 레드 부르고뉴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와인은 웅장하고 복잡한 향과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특징이다. 중반부 미감은 은은하면서도 흙의 풍미가 겹겹이 깔리는 장엄함이 있다. 프라도 에네아는 이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세련된 그란 레세르바의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8년 숙성시키며, 그 중 4년은 무가 가문이 미국에서 수입한 오크 나무를 가지고 자체적으로 만드는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1990년대에 무가에서는 현재 대단히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와인인 토레 무가를 소량 만들기 시작했다. 이 토레 무가는 육중하고 농축되었으며 오크향이 매우 강렬한 신세계 스타일로, 프라도 에네아와는 정반대의 특징을 보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무가는 단 몇 톤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과 찬사를 얻었다. 지금은 연간 150만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할 정도로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오늘날 무가 가문의 젊은 세대들이 가족 사업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보데가스 무가는 가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무가의 포도원은 점토질과 석회질로 구성된 토양이 대부분이며 일부가 철을 함유하고 있는 충적토이다. 이렇게 자연적, 화학적 특징이 다른 토양에서 자란 템프라니요는 와인의 맛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량 재배하고 있는 마주엘로나 그라시아노, 가르나차 품종은 템프라니요 품종을 보완하여 와인에 균형감을 부여한다. 또한 자체 제작한 오크통을 사용하여 와인 숙성과 저장에 사용하며 10년에 한번씩 새것으로 교체한다. | |
보데가스 무가 토레 무가.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Marques de Caceres)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는 리오하의 대표적인 현대주의 와인생산자 중 하나로, 이들 현대주의자는 좀더 선명하고 뚜렷한 과일의 특징과 풍성한 오크의 풍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의 등장은, 입안을 강렬하게 채우는 잼 같은 특징과 오크의 풍미를 지닌 캘리포니아와 호주 와인, 론과 이탈리아의 특정 와인에서 연상되는 현대적인 미감을 지닌 젊은 와인애호가들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19세기 후반 필록세라로 인한 피해와 이후 발발한 세계 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으로 쇠퇴했던 스페인 와인산업이 다시 부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 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이들 현대주의자들의 역할이 컸다.
엔리케 포르네르는 이런 움직임에 가장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의 가문은 1964년 이래로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에 있는 샤토 카망삭, 샤토 라로즈 페르강송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르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스테인리스스틸 탱크 도입, 발효 시 온도 조절, 새 프랑스산 오크통을 사용하되 장기간에 걸친 숙성은 피하는 등 새로운 양조 방식을 적용하여, 좀더 신선하고 과일 풍미가 강조되는 스타일의 와인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0년에 보르도 대학의 에밀 페노 교수의 자문 아래 스페인 리오하 지역에 와이너리를 설립하였으며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렇게 탄생한 와이너리가 바로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다.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는 지금까지 리오하의 많은 근대적인 와이너리들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들은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다른 와이너리들과 함께 리오하 와인산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 |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 가우디움(좌), 설립자 엔리케 포르네르와 크리스티나 포르네르(현 CEO).
참고문헌
로버트 파커의 The Greatest Wine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지난 30여 년간 [와인 애드버케이트(The Wine Advocate)]의 발행인이자 저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 최고 권위의 대통령 훈장 두 개를 포함하여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 ‘로버트 파커의 The Greatest Wine’은 그의 오랜 경험과 판단을 통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156개의 와인생산자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시음노트와 함께 싣고 있다.
더 와인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뉴 스페인 (The New Spain)
스페인 와인을 위한 완벽한 가이드 북으로, 존 래드포드가 집필했으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생산자 미구엘 토레스가 서문을 썼다. 전통적인 와인산지 리오하에서 리베라 델 두에로, 나바라 등의 새롭게 떠오르는 와인산지 모두를 지역별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포도원 등급, 품종, 토양, 기후, 양조에 대한 세부 정보까지 제공한다. 이 책은 Le Prix du Champagne Lanson, Glenfiddich Drink Book of The Year 등을 수상하였다.
- 글 정보경/에디터/와인오케이닷컴
- 와인오케이닷컴(http://www.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발행일 201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