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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타미야 카달로그" 속에 나온 두개의 탱크에 대해서 얘기할까 합니다. (일단 위에 붉은 선 원으로 표시한 오늘의 탱크 2개는 일본 자위대 Type 61과 미해병 세리던 탱크입니다.
2.일본 자위대 탱크 "Type 61"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많은 수의 미국인들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막연히 "아시아 구석에 작은 섬나라" 정도로 생각하고 큰 관심도 없는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주만 공격에 이어서 태평양을 무대로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거대한 군사력에 대등하게 전쟁을 치루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하게 되면서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일 항모 "쇼카쿠"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A6M 제로 전투기들, 전쟁 말기에
대부분의 유능한 일본 조종사들은 전투 중에 전사하거나, 가미가제 자살
공격에서 소모품으로 사라져갑니다.)
전쟁 내내 일본은 우리 나라와 중국, 그리고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섬들에서 잔혹한 살육을 거듭하였고, 패색이 짙어지자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자살 특공대들이 지상에서는 "가미가제" 공격으로 바다 밑에서는 "자살 잠수함"(카이텐, 카이류)까지 계획하게 되었고 사이판을 비롯한 수많은 섬들에서 연합군들이 경악하게 만들었던 "옥쇄"라는 이름의 집단 자살 행동은 군국주의의 광기를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이런 광기에 휩쌓인 "싸이코들의 나라"에 연합군이 상륙하여 일본 본토에서 또 다시 "옥쇄"와 "자살 공격"을 받을 것을 생각하게 되니 본토 전투 없이 신속히 전쟁을 마무리 짓는 것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결국 1945년 여름 B-29 폭격기에서 투하한 원폭에 의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잿더미가 된 후에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외치게 됩니다.
(1945년 4월 미해군 미조리를 향해서 카미카제 공격을 하는 제로 전투기. "옥쇄"의 원뜻은
"옥처럼 부서지다"라는 뜻으로 "대의와 충절을 지키면서 아름답게 희생한다"는 의미이지만
전쟁 말기 일본 군부가 보여준 광기의 카미카제 공격은 젊은 조종사들의 의미없는 죽음을
강요하게 됩니다.)
다시 탱크 이야기로 돌아오면, 사실 진주만 공격 전까지 일본이 상대한 나라들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 없었던 중국이었습니다. 그런 탓에 연합군 탱크들과 상대할 때 장난감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Type 97 탱크로도 얼마든지 적에게 공포감을 주고, 효과적인 공격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전격전"을 주도했던 나치의 2호 전차나 3호 전차가 몸집이 작고 기동성이 강조된 형태였으나 기갑 부대가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폴란드와 같은 약소 국가들에게는 엄청난 전술적 효과를 본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Type 97 전차는 나치의 2호 전차를 연상하게 하는 소형 전차였습니다.)
진주만 공격 후에 본격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서구 강대국들의 탱크들을 상대하게 된 일본은 M4 셔먼과 같은 강력한 화력과 철갑 능력을 보유한 중형 전차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자신들의 기갑 전략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열세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다행히 나치와 연합군과의 전쟁은 유럽 대륙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였기 때문에 기갑 전력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면, 일본과의 전쟁은 태평양 섬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투였기 때문에 좁은 섬 안에서 그나마 울창한 밀림이 태반인 조건에서 전차전보다는 보병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투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일본의 탱크 전력의 열세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나치 Tiger 1의 기술을 지원 받아 개발하였던 중형 전차 "치리"는 결국 제대로 개발이
완료되지도 못하고 종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점점 연합군의 일본 본토 상륙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본토에서의 전투에서 기갑 전력은 매우 중요해진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셔먼 탱크에 대응할 수 있는 중형 전차 개발을 서두르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나치의 타이거 1의 기술을 지원받아서 개발한 Type 5 중형 전차 "치리"였습니다. 1945년 항복이 임박할 때까지 제대로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2차대전 종전이 될 때까지 일본의 탱크 전력은 초라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타미야 키트 이야기를 좀 하면,
명색이 세계 최고의 모델 키트 메이커라고 할 수 있는 타미야가 수많은 2차대전 탱크 키트들을 발매하여 전세계 모델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자국의 2차대전 탱크라고 하면 별로 내세울만한 물건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구색은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위에 게재한 소형 전차 "Type 97" 1/35 키트를 판매하고있지만 또 하나의 1/35 키트로 아래 "Type 3 "치누""를 발매합니다.
(무려 4개의 피규어가 포함된 Type 3 "치누" 탱크)
하지만 "치누"라는 탱크에 대해서 조금 깊게 알아보면 그 역사가 매우 초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나치 독일 초기 전차 중에 하나인 3호 전차의 기술을 지원 받아서 개발한 "치누"는 전쟁 말기에 개발이 완료되기는 하였으나 일본 본토 전투에 대비해서 대부분의 수량을 본토에 세워놓고 연합군의 상륙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오라는 연합군 지상군은 안오고 난데없이 원폭 두발이 투하되면서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이 탱크의 본격적인 전투 기록은 거의 "0"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역사 배경을 알고나서 위의 박스 아트에 나와있는 "뭔가 매우 심각한 출동 장면을 연출하고있는 설정"을 보면 씁슬한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군요........
종전이 되고 일본을 임시로 통치하게 된 연합국, 특히 미국은 일본에 모든 공장에서 절대 무기와 그와 관련한 어떠한 제품과 시설에 대한 생산을 금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고나서 공산주의의 세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불과 종전 5년만에 일본 무장 금지를 철회하고 재무장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때 지금의 자위대가 구성되고, 미국은 자국의 M4A3E8 탱크와 M24 Chaffee 탱크를 지원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M4A3E8의 경우, 일본인들의 작달막한 키와 숏다리는 미국인 체형에 맞춰 설계된 위의 두개의 탱크 모두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M24의 경우, 일본 기갑병들이 선호하였으나 당시 한국 전쟁에서 2차대전에 이어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소련의 T-34과 비교하여 열세라는 점을 감안하여 일본에게 두가지 선택 옵션을 주게 됩니다. 즉, 당시 미국 신형 전차였던 M46 패튼 전차(후에 M47로 바뀜)를 구입하던가, 아니면 일본 자신이 자기들 실정에 맞고, 전술적인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탱크를 개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가지로 따져본 결과 M47조차 일본인들의 요구 조건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결국 종전 후에 10년도 안되어 전쟁의 원흉이었던 일본은 자신들의 탱크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일본 자위대의 최초의 탱크가 될 뻔했던 M47 패튼 전차)
일본은 자신들의 신형 탱크를 개발에 앞서서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어차피 많이 만들 수도 없는 입장에서 소수의 탱크들이 넓은 지역에서 신속하게 이동하고, 투입되어야 한다면 기차로 실어나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야 한다.
둘째,위의 이유로 전차의 무게는 약 25톤으로 제한하고 이 조건 하에서 최대한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다.
세째, 전차포는 90mm 포여야 한다.
이렇게 개발된 Type 61 탱크는 일본 자위대의 최초의 MBT(Main Battle Tank: 냉전시대부터 사용하는 현대전에서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전투용 전차를 정의하는 개념)으로 미스비시 중공업이 생산을 맡게 되어 39년 동안 자위대의 주력 전차의 위치를 지키게 됩니다. 1980년부터 Type 61은 신형 Type 74에게 자리를 내주고 퇴역을 하였습니다.
(무조건 항복을 하고 불과 10여년 만에 일본 자체 기술로 등장했던 Type 61)
(Type 61의 뒤를 이어 일본이 개발한 자위대 주력 전차 Type 74)
낡은 타미야 카달로그에서 발견한 일본 자위대 전차의 모습에서 한국 전쟁이 그들의 재무장을 패전후 불과 10년만에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왠지 씁쓸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군요...............................
3.어정쩡한 실패작 : M551 셰리던 탱크
이번에는 쥔장님께서도 몇개를 작업하셨다고 하는 미육군 탱크 M551 셰리던 탱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위에 카달로그에 Type 61 옆에 있는 탱크가 바로 셰리던 탱크입니다.
모델러의 시각에서 보면 우선 M42 대공포 전차와 마찬가지로 다른 일반적인 탱크의 모습과는 확연히 틀린 개성적인 디자인이 왠지 완성해놓고 보면 마치 건담 애니메이션에서 튀어 나올 듯한 공상과학 스타일의 탱크 모습도 느껴지며 신선한 기쁨을 주곤 하였습니다. 그런 탓에 저도 오래 전에 한대를 조립하여 즐겨보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키트이기도 합니다.
(납작한 포탑은 상하부 접합 후에도 무척이나 얄삽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짧은 포신은 왠지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에 등장해야 어울릴 것 같은 "외계인"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참고로
위의 키트 내부 사진들은 eBay에 나온 사진들을 게재하였습니다. )
(모터가 들어있는 초기 일본제 키트가 아직도 eBay에서 거래되네요. 정말 타미야 빈티지 키트는
끝도 없이 나오네요. 이키트도 족히 30년은 넘은 역사를 가졌을텐데.....부품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고 조립도 간단하나, 실제 도색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탱크의 역사를 쫓다보면 왠지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 없이 그저 가늘고 길게 사는 인생같은 그런 신세의 탱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친" 격의 셰리단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탱크의 소개에 앞서서 이 탱크의 이름인 "셰리던"은 무슨 의미일까요? 바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전쟁 영웅인 필립 셰리던 장군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장군은 어떤 인물이었길래 미육군이 무려 100년 가까이 흐른 세월 후에 그의 이름을 탱크의 이름으로 사용할까요? 그는 북군의 최고 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각별히 인정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전쟁 말기인 1864년에 그가 지휘한 기병대는 셰난도우 계곡에서 남군과 결정적인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 전투를 승리한 후에 남군의 전쟁 자금을 지탱하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그 지역을 불태워서 남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 장본인입니다. 전술적으로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점령지역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리는 것을 "초토화 전략" (Scorched Earth Tactics)라고 하는데 이러한 전략을 처음으로 시도한 지휘관으로써 전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는 1866년 남군의 최고 사령관 리 장군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크게 공헌한 전쟁영웅으로 미국 역사 속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필립 셰리던 장군 (1831~1888)
여기서 우리는 미육군 탱크들에게 붙혀진 이름들이 과거 미국 역사 속에서 훌륭한 장군들의 이름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2차대전 초기 투입된 M3 스튜어트 탱크는 남북전쟁의 남군 장군 J.E.B.스튜어트 장군의 이름에서,
*참고로 M3는 파생 모델이 나오면서 남군과 북군 양쪽의 최고 사령관 이름인 "리"와 "그랜트"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게 됩니다.
(M3 그랜트 탱크는 75mm 전차포를 측면에 장착하고, 포탑에 37mm 소형 포를
또 하나 장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상적입니다.)
M4 셔먼 탱크는 북군의 윌리엄 셔먼 장군의 이름에서,
M24 채피 탱크는 미육군 기갑 부대 창설의 주역인 애드나 채피 장군의 이름에서,
M47과 M48 패튼 탱크는 2차대전 미국 전차부대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의 이름에서,
M41 "워커 불독" 탱크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방 시찰 중에 전사한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시간을 후울쩍 뛰어넘어서 M1 애이브럼스는 월남전 참전 영웅인 크레이톤 애이브럼스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게 됩니다.
너무 얘기가 샛길로 빠져버렸네요......
어쨌든 2차대전이 끝난 후에 미육군은 M41 워커불독 탱크를 개발하여 경전차의 새로운 기종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2차대전 무렵까지 탱크는 그 사양에 따라 경전차(light),중전차(medium), Heavy Tank (번역하기가 좀 그렇네요...), Super Heavy Tank 이렇게 네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경전차라 함은 M3 스튜어트 전차 정도를 의미하고,
(M3 스튜어트 탱크)
중전차는 M4 셔먼이나 소련의 T-34가 좋은 예입니다.
Heavy Tank라 함은 나치 독일의 타이거 1 정도 되어야 할 것이고,
Super Heavy Tank는 사실 실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나치의 엄청 거대했던 탱크 "Maus"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28mm 초대형 전차포(참고로 타이거 1은 75mm)를 장착하고 무게가 200톤 (타이거 1은 60톤 내외)이 나가는 엄청난 탱크였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다지 실용가치가 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나치 독일의 초대형 탱크 "Maus")
어쨌든 경전차의 용도로 개발한 M41은 경전차라고 하기에는 25톤이라는 무게가 무거운 감이 있었고, 연비를 감안할 때 이동 거리도 짧았습니다. 76mm 포를 장착하였으나 동일한 포를 장착하고 더 가벼운 탱크들이 제작되게 되어서 M41의 매력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됩니다. 게다가 50년대 들어서서 군사력 경쟁을 시작한 새로운 적 소련이 PT-76이라는 수륙양용 전차를 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지상 뿐만 아니라 하천에서도 원활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게 됩니다.
(M41 워커 불독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대만,말레이지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었고 심지어 대만은 아직까지도 육군과 해병대에서 사용 중입니다.)
결국 탱크 개발 속도보다 더 빨리 발전하는 새로운 시대의 탱크의 요구 조건들에 부합하기 위해서 미국은 완전히 새로운 경전차 설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경전차의 무게의 최경량화와 2차대전과는 전혀 달라진 보다 강력해진 소련 전차들을 적절한 사격 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는 전차포를 장착해야 한다는 서로 상충되는 요구들로 인해서 신형 경전차의 개발은 더욱 더 어려워집니다.
결국 당시로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해결점을 찾게 되는데 새로운 경전차 시험 모델로 채택된 XM551은 경량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전차포의 구경은 152m로 크게 증가시킨 반면에 포신을 매우 짧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파괴력은 증가시키면서 유효 사거리는 희생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먼 거리에 적 탱크를 파괴하지 못하는 전투용 탱크는 오른팔을 묶고 권투를 하는 선수나 마찬가지 입장이 될 것이므로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포로 발사할 수 있는 대전차 미사일 "셜렐라"를 장착함으로써 해결하려 합니다. 결국 동일한 대포를 사용하여 단거리의 표적을 포탄으로 파괴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장거리의 적에게는 같은 대포 구멍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어 파괴하는 해결책을 찾게 된 것입니다.
(대전차 미사일 "셜렐라" 발사 장면)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지만 문제는 대전차 미사일로 그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신무기에 속하던 이 물건이 매우 복잡한 반도체 기술이 요구되는 전자장비에 의존하는 입장이었고, 그런 예민한 전자장비는 시도 때도 없이 쏘아대는 대포의 진동에 매우 취약하였습니다. 결국 미사일과 그를 위한 유도장치는 매우 고가이면서도 실전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애물 단지였고 XM551이 본격적으로 M551 세리단 탱크로 명명되어 양산되어 월남전에 배치될 때 월남으로 향하는 이 탱크에는 미사일과 유도장치를 빼고 오로지 대포만 쏠 수 있는 성능으로 보내게 됩니다.
화력의 경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화력을 포기하고 초경량화를 달성한 덕분에 셰리단은 기동성에 있어서는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당시 탱크들 중에서 매우 빠른 속도에 속하는 시속 72km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부작용이 따랐는데 차량 소음이 엄청나서 실제 전투에 투입되었을 때 이런 문제가 전력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철갑 두께도 너무 얇은데다가 알루미늄 강판을 사용하여 왠만한 중형 자동화기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취약하였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M113 전차에 대비해서 대전차 지뢰에도 유난히 약한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포격을 받아서 철갑이 관통이 되면 자체 전차포를 위해 갖고있는 포탄들이 폭발하게 되어서 가뜩이나 위험한 조건에서 전투하는 기갑병들이 몰살 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였습니다.
(왠만한 월남전 다큐멘타리 화면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탱크가
M113 이지요. 매우 실용적이고 성공적인 모델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이렇듯이 강점보다는 약점이 많고 문제 투성이였던 M551은 이후 미육군이 향후 탱크 개발 계획에 있어서 MBT(Main Battle Tank) 즉, 한가지 탱크가 전투의 요구 조건을 거의 전부 충족시키는 정책으로 바뀌게 되면서 어중간한 화력과 장갑 능력의 셰리단 탱크는 경전차로도 분류되지 않고 그렇다고 MBT에도 포함되지 않으면서 ARAAV (Armored Reconnaissance/Airborne Assault Vehicle - 장갑 정찰/공수 습격 차량)이라는 어정쩡한 카데고리로 분류되게 됩니다.
개발 직후인 1967년에 주한미군에도 배치되었지만 주로 월남전에서 M113 탱크와 같은 ACAV(armored cavalry assault vehicle : 장갑 병력 수송 차량)와 짝을 이루어 M113이 부족한 화력을 지원해주곤 하였습니다.
월남전이 미군의 철수와 공산화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마무리되고 나서 대부분의 미육군은 셰리단 탱크를 퇴역시켰지만, 흥미롭게도 이 탱크만이 갖고있는 유일한 특징인 "공중 투하 가능 탱크"라는 점 때문에 미국 공수 부대는 상당수의 세리단을 "수많은 약점"에 불구하고 보유하고 있게 됩니다. 세월은 흘러서 1989년 파나마 독재자 마구엘 노리에가가 마약 밀수에 관계됨을 포착한 미국은 그를 축출하기 위해서 무려 2만 4천명의 미군 병력을 동원하여 파나마 침공을 감행합니다. 그때 미군 공수부대는 14대의 셰리단 탱크를 병력과 함께 보내게 되는데 갤럭시 수송기로 투하된 셰리단 중에서 2대는 파괴되었지만 상당수는 정상적으로 전투에 투입되어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노리에가는 1년 후에 미국에 투항하게 되며, 파나마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투하된 셰리단 중에 적지 않은 수는 파괴되어 사용 못했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그래도 공수부대에게는 유일하게 항공기 투하가 가능한
탱크였기에 오랜 동안 보유하게 됩니다.)
세월은 다시 흘러서 1990년대 걸프 전쟁이 발발했을 때까지 이 질기고 질긴 탱크는 미국 공수부대에서 보유해준 덕분에 이라크에 배치되는 미군 탱크들에 끼어서 현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함께 배치된 탱크들에 비하면 60년대 초에 배치된 M60A1에 이어서 두번째로 노후된 기종이 되어 실제 전투에 참가하기 보다는 정찰 업무에 사용되게 됩니다.
(잔뜩 장갑판을 부착한 M60A1 탱크는 생산한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에 걸프 전쟁에 배치되었지만 셰리단과 마찬가지로
순찰 및 덜 위험한 임무에 사용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셰리단 탱크는 빈약한 성능에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 기간 전장에 남아있게 되었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은 별로 없는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 실패작이었습니다.
도리어 1950년대 초기에 개발되어 셰리단 탱크 개발의 동기 부여를 해주었던 M41 워커 불독 탱크는 무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만에서 꿋꿋하게 사용 중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막상 필을 받아서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글이 길어진 듯 하네요. 어쨌든 다음 번 이야기는 M42 대공포 전차 Duster 부터 이어가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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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m47은 51톤 가까이 중량이 나가서 경전차로 보기는 어렵습니다.(90mm 주포구요)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M551 셰리던 탱크의 사용도는 비교적 가벼운 경전차이고..(20톤 내외)
c-130허큘리스에서 낙하산을 이용한 낙하로 적진 침투 후방 공격,교란용으로 공수부대의 부족한 화력을 지원했다는 전설이 있더군요.(베트남,파나마 전쟁)
경전차이지만 짧은 주포에 대형탄(152mm)을 사용했기에 파괴력은 강했다고 봅니다..긴 설명글을 읽으면서 제가 모르던 부분까지...재미있었습니다...감사합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의 관심과 의견이 이렇게 글을 쓰는 입장에서 큰 기쁨이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아마도 짧은 포신 때문에 사거리와 얇은 장갑이 약점이었겠지요. 그래도 공수부대의 약한 화력에 큰도움이 되었다는....
(요즘은 휴대용 미사일에 발전형을 갖고 다니면서 사라지고 있죠)
따블오남편(김준만)님도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찌 이리 풍부한 지식이 있으시답니까? 점점 흥미 진진해 집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요....그냥 단순히 프라모델의 형태만 보고 제품을 사곤 했는데...그 배경이나 역사를 알고 만들게 되니 더 재밌네요..
쭈욱 끄덕끄덕하면서 읽다보면 어느덧 마지막 스크롤이네요.. 덕분에 경전차, 중전차...등등...하는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쉐리던이 낙하투입되었다는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설명이 재밌네요^^
그리고 그탱크이름들이 다 장군들 이름였군요^^
육군 논산훈련소 6주 교육후-광주 상무대 기갑학교 12주-춘천 102보충대 1주- 강원도 15사단 승리부대 훈련소 1주= 교육 받고 자대 배치 받았었습니다.....
교육이 길어서 자대가고서 금방 일병 달아버리더군요. 경기도로 배치 받았으면 K1전차였을텐데...ㅡㅡ;;
수퍼소닉님은 M48 모셨었나요? 아님 K1? 기갑부대 계셨던 분 살아오면서 한분도 못만났었는데...... 그런데 군대있을 때 뭘 다뤘냐에 따라서 세대가 갈리는 것 같더군요.....참고로 저는 논산 군번인데..... 13669935......M16 자동소총 가지고 사격 훈련한 군번입니다....ㅎㅎㅎㅎㅎ
우와 총기 넘버를 기억하시는군요@@ 저도 M16으로 훈련 받았습니다.
상병 무렵에 K2소총으로 변경되었구요. 좁은 실내환경으로 전차장과 조종수는 대우정밀에서 만든 K3권총이 지급되었습니다.
차량 전방에 30과 포탑에 50 기관총 이었지요....화기는 여러 종류를 만져본것 같습니다^^
전차는 48보다 골동품인 M47이었습니다(지금은 퇴역했겠지만..오래되어서 엔진 트러블이 많았어요 M48,K1을 보면 부러웠습니다~ㅠㅠ)
대한민국 최대의 훈련소 논산...화이팅!^^~~ㅎㅎㅎㅎ
수퍼소닉님...... 위의 번호 총기번호가 아니라 제 군번인디.........T T
억!....죄송합니다.
근데 번호가 저와는 많이 다르네용 ㅡㅡ;; (저는 입대년도 뒷자리 두개와....8자리 였습니다)
92-7******* 이렇게요.
저....86년 3월 군번인데...... 그때는 그랬는데............- - !
한참 선임인것 같다는 느낌이 팍 오더군요^^......필승^^~!
저는 경례 구호가 "충성"이었는데......^ ^
역시 기동성도 있어야..... 무장도 좋고... 장갑도 좋지만..,.. ^^ 매일 좋은글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