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 관아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관할 : 임당동 성당 T : 033)642-0700
관아는 넓게는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 전체를 의미하지만 좁게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업무를 보던 곳을 말한다.
강릉부 관아는 조선 시대 강릉에 있던 현재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의 기능도 함께하여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獄)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이 현재와는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강원도 지방, 특히 춘천교구 내 영동 지역의 순교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나 있는 강릉 지역의 순교자는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심 스테파노 한 명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도청과 같은 곳인 감영뿐만 아니라 관아에서도 신자들이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이 여러 연구 결과 및 구전, 순교자 증언록에 나오는 것을 보면 강릉부 관아에서도 많은 이들이 순교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순교자 증언록을 보면, 강릉부 관아의 수령 집무실인 칠사당에서 병인박해 때 심문도 없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많은 교우들이 순교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강릉부 관아에는 당시의 동헌인 칠사당을 비롯하여 체포된 천주교인들을 묶어 갖은 고문을 가하며 심문했던 것으로 전하는 고목이 마당 한가운데에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출처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한국천주교주교회의著)
칠사당 : 조선시대 관공서 건물로 일곱가지 정사(호구,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비리단속에 관한 일)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최초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고쳐지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수리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진위병(鎭衛兵)의 군영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로 타 버린 것을 강릉부사 조명하(趙命夏)가 다시 지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강릉군수 및 강릉시장의 관사로 1958년까지 사용되었다. 정면 좌측에 누마루(다락같이 한층 높게 만든 마루)를 별도로 달아 낸 'ㄱ'자형 평면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측면 1칸은 툇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뒤편에도 방 2칸과 툇마루(방이나 마루 비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를 툇칸으로 구성하였다. 누마루 부분의 4개 기둥과 전면의 툇기둥은 둥근기둥으로 둥근형 초석위에 세워져 있다.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쇠서 모양을 내고 조각한 공포재의 하나)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조금씩 변형되어 조화를 잃은 면도 보이나, 전체적으로 관청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강릉 임영관 안내판
아문(衙門)
중대청(맨 앞)을 뒤로 서헌,동헌,전대청(뒤족 좌로부터)이 보인다.
집경전 터 표지석
오른쪽 건물부터 동헌,전대청,서헌이다.
동대청 : 이 건물은 좌측의 서현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재판,국가 경사 및 애사(哀事)시 망곡(望哭)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西軒)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 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현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전대청 : 이 건물은 객사의 정청(正廳)이자 중심공간이다. 전대청에는 왕의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예(望闕禮)를 행하였던 곳이며, 사신 및 외관이 왕에게 글을 올리거나, 왕이 내리는 향을 맞이하는 의식, 관찰사 순행시 지방관이 연명(延命) 등을 행하던 곳으로서 우측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 높게 지어졌다.
서헌 : 좌측 뒤에 있는 이 건물은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규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 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별당 : 현재 강릉 관아 작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곤장과 곤장틀 : 곤장(棍杖)은 조선시대 형벌 중 장형(杖刑)에 속하는 죄인을 다스리는데 쓴 형구이다. 곤장은 주로 볼기를 치는데 사용하였는데 모양과 쓰는 방법 및 규격에 따라 곤형과 장형으로 구분된다.
곤형은 죄의 크기에 따라 중곤(重棍),대곤(大棍),중곤(中棍),소곤(小棍)과 치도곤(治盜棍)을 사용하였는데, 치도곤(治盜棍)은 주로 도적을 다스리는데 .중곤(重棍),대곤(大棍),중곤(中棍),소곤(小棍) 등은 일반 범죄인을 처벌하는데 사용하는 형구이며, 이중 중곤(重棍)은 군중(軍中)의 곤장으로 사죄(死罪)를 범한 자를 다스리는 데만 사용하였으며, 가장 잔혹한 형구 중의 하나였다.
장형은 가시나무로 만든 형구를 사용하였는데, 폐단이 가장 심한 형벌의 하나였으며, 옷감(布)이나 돈으로 환산 집행되기도 하였다. 이들 형벌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 폐지되어 점차 없어졌다.
칠사당 전경
칠사당 정문
보호수 : 수령 560년 된 은행나무로 수고 12m, 흉고직경 320cm, 수관폭 15m로 1982년 11월 1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과거 관공서로 사용하다 강릉군수 관사로 이용한 칠사당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대 부사가 이 은행나무와 더불어 새와 자연을 즐겼다고 전함.
의운루
관할하는 임영동 성당
성당 내부
요한 바로로2세 교육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