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 TETZE (When You Go Out) 너가 나아갈 때
신명기 21:10–25:19; 이사야 54:1–10; 누가복음 23:1–25; 고린도 전서 5:1–5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신21:10)
지난주 파라샤 쇼프팀은 재판관들, 재판과 정의의 개념에 초점을 두었다.
이번주 토라포션의 제목, 키테째는 히브리 동상 야차에서 온 것으로, 떠나다, 가다 또는 밖으로 나아가다를 의미한다, 이집트를 떠났던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속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임박한 순간에 스스로 서있다는 것을 안다.
이번 파라샤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민과 가정의 삶을 대부분 다스리는 일련의 법을 준다.
이러한 법률들은 그들 자신의 평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평안과 관련하여 올바른 백성들의 공동체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힘없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 에게 자비와 선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이것들은 전쟁의 여자포로들, 이방인과 외국인, 가난한 노동자들, 난민 노예들, 사랑받지 못한 아내의 자녀들, 그리고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자들-고아와 과부들을 포함하고 있다.
의로운 행동을 드러내고 비-유대인들를 향하여 우정을 보여주는 이스라엘은 거룩함의 행동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은 이방 세계에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정의 개념은 유다이즘에서 아주 중요하다. 친구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카베르는 키브르에서 왔으며, 이것은 소속되다 또는 연합되다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클럽이나, 사회 또는 그룹의 멤버가 됨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카베르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소속과 수용의 장소를 찾는 것이다.
돌봄과, 도덕적인 공동체의 이러한 이상을 사실로 옮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들은 다양한 상황들을 위한 규범들-크로스 젠더 의상에 대한 금지로부터 새나 동물을 향한 관심에 이르기 까지 전반적인 것을 제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성을 깊게하는데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시설에서, 고래들은 인간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1.거룩한 공동체를 만들기 Creating Godly Community:
이번 파라샤에서 기록 된 토라는 연결성이 없으며, 관련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공동체의 기대된 행동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토라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이 매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불결한 것 오염된 것, 그리고 공동체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진영밖에 두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쁜 동료는 착한 성격을 타락 시키기”때문이다, 하나님은 또한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훔치는 사람, 거짓말하고, 속이고, 간음하고 심지어 통제하기 어려운 자녀들조차도 타락시키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금하고 있다.
토라가 드러내는 것은 거룩한 자녀들은 하나님의 법을 향하여 그리고 다음 세대에 축복을 전하기 위하여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데 정보를 제시하는 것에 책임지고 있다.
모든 공동체는 술꾼이고 대식가인 반항적이며, 고집센 젊은 사람을 다루는 것을 포함해야만 한다.
고대시대에 성서적인 법은 한 젊은 사람이 여러번의 경고후에 돌에 맞아 죽어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은 결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대하여 야기된 것이 아닐 수 있다. 비록 그렇다 할 지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는 그러한 행동을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21:21)
하나님은 또한 장사거래에 있어서 공정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키테째는 장자의 상속권, 이혼,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잃어버린 것을들 되돌려주는 법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비자발적인 노예를 위한 처벌을 규정한다.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24:7)
심지어 배설물을 덮는 것조차도 토라에서는 다루어지고 있다.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신23:14)
이번 파라샤는 또한 결혼에서 좋은 출발을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자는 결혼 후 일년 동안은 전쟁에 보내져서는 안 된다. 그는 집에 머물며 그의 새 아내를 행복하게 해야한다. 신호 부부가 1 년간의 긴 신혼여행을 원치않을 이유가 있는가?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24:5)
이 법은 하나님의 인자와 하나님이 결혼 언약의 거룩함에 두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결혼 관계들이 토론되었다, 정복지에서 포로된 여인들과의 결혼 , 레버맅( 죽은 남자의 동생이 그의 과부와 결혼해야만한다) 과 두 아내와 결혼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모세의 법이 한명의 아내 이상을 허용하지만(아마 유대인의 남자의 부족 때문에), 타낙에서 일부다처의 모든 예는 다툼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일처는 아담과 이브를 위한 하나님의 의해서 만들어진 결혼의 이상적인 형태이다.
하나님은 하프타라에서 그의 신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것이 어떻게 사실인가를 확언하고 있다.
2. 그의 신부를 위한 하나님의 신실함 God's Faithfulness to His Bride:
이스라엘 한 신부가 결혼식게 전통적인 키두쉬로 부터 베일을 들어올리고 있다. 신랑이 같은 컵을 마시기 직전, 이러한 상징적인 몸짓은 앞으로 어느 순간에도 그들의 삶을 공유하겠다는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상응하는 하프타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남편과 아내의 은유로써 예언자 이사야의 시적인 그림을 통하여 결혼을 토론하고 잇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오세이흐)가 네 남편이(보예라이흐)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54:5)
히브리어 에서 소유격 ,”your”는 네가지 방법으로 사용된다. 단수, 복수, 남성, 여성, 우리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말하는 가에 달려 있다. 위에 구절에서, your는 실제로 단수 여성 어미이다.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한명의 일부일처의 신부이다.
예루살렘은 :”결실치 못한 아내”로 불려지지만, 이스라엘은 포기되어 남겨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내와 비교된다, 주님은 친밀함(가까이)으로 다시 부를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6)
하나님이 분명히 하는 것은 이번 하프타라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한 분노는 단지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7-8)
우리는 유대인들이 세계 주변으로 부터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이러한 약속이 드러나고 있음을 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메시아가 실제로 누구인가하는 진리에 눈을 뜨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경계선을 정하기 Setting Boundaries
이번 파라샤에서 기록된 법은 또한 개인적인 보호와 현대 건축의 안전 법의 기초와 연관되고 있다.
집소유자와 건축자는 사고의 추락을 막기 위하여 평평한 지붕위에 난간과 벽을 건설할 하는 것이 의무규정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소홀함의 범죄행위로 간주되었고, 그리고 소유주는 만약 사람이 떨어져 죽으면 살인죄로 알려졌다.(신22:8)
유다이즘 에서 이러한 규정은 우리가 죄에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 주변에 개인적인 벽을 건설해야만 한다는 개념으로 확대되어왔다.
예를 들면, 남자는 부주의로 유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의 아내 이외에 한 여인과 홀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금하고 있다.
잠언은 그러한 예방적인 차원의 지혜로 가득차 있으며, 경고들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젊은 남자들에게 훈계하기를 나쁜 몸가짐을 가지고 여성의 집을 지나쳐서 걸어가는 것을 피하라 한다.
유사하게 술을 남용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현명하게 술이 있는 곳이나 상황을 피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이시대에 온라인은 중독과 죄를 향한 길이 될 수 있다, 현명한 부모는 인터넷 사용을 모니터 하는 것이 좋으며, 개인적인 침실보다는 가정의 공개된 장소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것을 아이들에게 요구해야한다.
이러한 종류의 경계선을 두는 것은 신중한 것이고 성서적이다.
4. 아말렉을 기억하라 Remember the Amalekites
비록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며,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지만, 너무 사악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확대하지 않는 한 백성들이 있다. ‘아말렉사람들’
비록 우리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어서는 결코 안되지만, 이번 파라샤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이 이집트를 떠났을 때 아말렉이 그들에게 했던 것을 결코 잊지 않기를 원한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25:17-19)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둑에 있는 신발들은 2차세계 대전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파시스트 십자군들에 의해서 물가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자들의 신발을 벗기고 죽인후에, 물에 던져 떠내려가게 했다.
홀로코스트 이후, 나치는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고 거의 성공했다, “결코 잊지 말자”는 유대인들의 모토가 되었다. 그들은 기억을 살려서, 영원히 살인자들을 증오하지 말고, 민족 대학살의 영과 유대인들에 대항하는 악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악한 영의 표징들을 기억함으로써, 희망적으로 예방하는 단계들이 취하여져서 같은 징후들이 다시 나타나면 다른 민족 대학살을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렉과 나치에 거주했던 같은 영이 특히 이스라엘 주변의 백성들 안에서 그리고 유대인들을 전멸하려는 음모 안에서 살아나고 있다.
비록 성서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직면할 것이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비록 깨어질 수 있는 연약한 평화가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지만, 하마스는 여전히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을 그들에게 내어줄것이라고 말로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밖에서 많은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로 가득찬 마음의 결과로써 위협과 고통과 때로는 죽음에 직면해야 했다.
모든 증오와 음모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고, 그러나 항상 이스라엘에게 실패하지 않는 사랑과 선을 보여 줄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의 평화의 언약은 결코 제거 되지 않을 것이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