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가 열풍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가진 자들의 연대’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고, 우리 사회는 ‘분노의 도가니’가 되고 있다.
도가니 열풍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레>인턴기자였던 이지원씨, <한겨레> 광주주재 기자 안광옥, 정대하 선배, 그리고 소설가 공지영씨다. 이들이 없었으면 소설 <도가니>는 물론 영화 <도가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씨는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한겨레>에서 처음 접하고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당시 <한겨레>기사를 봤어요.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청각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법정을 울렸다’는 구절이 나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들이 울부짖을까. 사건 내용을 알아 본 뒤 경악했습니다.”
그렇다. 우리사회를 ‘공분의 도가니’로 들끓게 만든 이 소설은 인턴기자가 쓴 한 줄의 글에서 시작됐다. 이지원씨는 2006년 7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때 <한겨레> 인턴기자로 광주 인화학교 문제를 취재했다.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한겨레>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21명의 인턴을 선발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인턴을 선발한 것은 <한겨레>가 최초였다.
당시 난 인턴 교육과 그들의 관리를 맡고 있었다(사실 내가 인턴을 교육하고 관리한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관리하고 교육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취업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한겨레> 인턴들은 한여름 땡볕에서 한겨레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뛰며 두 달 동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난 그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고 싶었다. <인턴21>을 기획했다.
그러나 지면을 만드는 작업은 오롯이 인턴기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2주 동안 스스로 지면을 꾸려나갔다. 기획, 취재, 기사작성, 사진, 편집, 디자인 모든 작업을 인턴 스스로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인턴21>이었다. 달랑 4장짜리였다. 처음에는 8면까지 생각했으나 시간과 여력이 못 미쳤다.
<인턴21> 맨 마지막 4면에서 인턴 기자들은 두 달 동안의 폭풍취재를 한 내용을 후기 형식으로 담았다. 우리의 인턴들은 무덤덤한 후기를 쓰지 않았다. 대학생다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형식으로 취재후기를 쓴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영화 같았던 취재기’였다. 복합상영관에서 가보면 여러 편의 영화가 있듯, 취재 후기도 휴먼다큐, 로맨스, 코미디로 분류했다.
이지원 인턴기자의 글은 휴먼타큐에 소개된 취재 후기의 글(오락실 불법 취재, 부산앞바다 지킴이)과 함께 소개됐다.(한 인턴이 마라톤복을 입고 손을 번쩍 들고 있는 그래픽은 자폐증 청년이 세상과 어울리면서 마라톤을 완주해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이지원씨의 글은 아래와 같다.
전남 광주인화학교 교직원들이 10여년 동안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성폭행을 자행한 과정을 취재한 이지원 인턴. 피해자들이 청각장애 학생이기에 인터뷰를 ‘글’로 주고받았다. 조사가 종결되고,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전 행정실장의 항소심이 있던 날,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었다. “학생들에게 상처 준 점은 인정되지만 (중략) 1년 전 위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아…” 결국 그는 10여년 동안 수십명의 학생들을 성폭행한 죄 값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순간 수화로 판결을 듣던 청각장애인이 벌떡 일어나, 수화와 함께 힘껏 ‘으어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는 끌려 나갔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였다. 이 인턴은 그를 보면서, 눈물을 참으며 생각했다. “세상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구나.”
이 한 줄의 글은 그저 나온 게 아니었다. 이지원 인턴 기자는 이 글을 쓰기 전 여러차례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에 대해 상당한 취재를 했었다(아래 참조).
이지원 인턴기자의 취재에는 안광옥, 정대하 선배의 뒷받침이 있었다. 두 선배 기자는 지역 사회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턴기자와 함께 취재하며 기자 교육을 시킨 것이다.
공지영씨도 자신의 책 <도가니>의 ‘작가의 말’(294페이지)에서 “나의 상상을 벗어나는 이 현실을 아는 데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광주의 안관옥, 정대하 기자님, 이지원 인턴기자..(중략)”라고 썼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사람이 공지영씨다. 그의 감수성이 무척 부러울 따름이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었다면 그의 소설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소설 <도가니>에서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도가니 열풍을 보면, 미국의 해리엇 스토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이 떠오른다. 이 책이 출판되자 미국의 양심에 불을 질러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곧바로 남북전쟁이 터진다.
마지막으로 이지원 인턴기자와 함께 <인턴21>을 만든 인턴기자들이 있었다. 도가니 열풍은 그들이 보낸 <한겨레> 인턴기자 생활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 올 것 같다. 나 역시 젊은 그들의 열정과 패기가 떠오른다. 다음은 21명의 인턴기자들이다. 이 중 2명은 <한겨레>에서 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한겨레 2기 인턴기자 =강은지(서울대 언론정보4) 김규남(성균관대 경제학 졸업) 김도원(서울대 외교3) 김민경(서울대 언론정보4) 김진화(서울대 사회교육4) 김현진(이화여대 정치외교4) 박향미(상명대 시각디자인 졸업) 선지혜(외국어대 스페인과3) 성낙희(한남대 행정학3) 성화선(서강대 신문방송3) 송경화(서울대 지리4) 장유영(서울대 지리교육4) 오수재(성균관대 경영3) 오주원(경성대 신문방송4) 윤종규(중앙대 사진학과4) 이명국(청주대 신문방송2) 이상호(외국어대 법학과2) 이용주(서울대 정치4) 이은지(경북대 신문방송 졸업) 이지원(전남대 정치외교4) 이혜민(이화여대 정치외교 졸업)
by 정혁준 http://blog.hani.co.kr/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