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의 고문서- 교지(敎旨) 이야기
곽창호(학예연구사)
사진1. 조영복 교지
조선사회의 사대부들은 시험을 통해 관직을 얻고, 진급하고, 은퇴하고, 죽어서 명성을 남기는 것을 중요시 하였고, 그 과정을 자연스레 거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국가, 즉 왕으로부터의 인정과정이지요. 이렇게 왕으로부터 받는 명령서를 ‘교지(敎旨)’라고 합니다. 교지는 이름에서부터 왕과의 관련성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내릴 교(敎)’라는 글자는 그야말로 왕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띄어쓰기가 없는 한문(漢文)의 구조임에도 각종 문서 외에 책자, 금석문(비석) 등에 ‘교’자는 항상 띄어쓰기를 해서 왕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지요. 요즈음 여러 문중에서 보관하고 가보로 전승하는 고문서들의 대부분이 이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가지고 사대부의 관직 생활에 맞춰 교지를 소개하지요. 대부분 기증받은 유물입니다. 흔히 부르는 교지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대부가 제일 먼저 기본적인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생원진사시험을 치릅니다. 여기 입격자(자격이 되므로 입격이라고 합니다)에게 내리는 교지를 ‘백패(白牌)’라고도 합니다.(사진1) 사진1은 영조 때 도승지를 지낸 조영복의 백패로 1705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받은 것입니다.
사진2. 이완 교지
다음으로 문.무과시험을 치르고, 합격자는 또 교지를 받지요. 이것을 ‘홍패(紅牌)’라고도 합니다.(사진2) 사진2는 효종 때 북벌을 준비한 유명한 이완 장군의 홍패입니다. 1624년 무과에 합격하고 받은 것입니다. 어모장군이라는 관직이 이미 있지요. 시험 없이도 관직을 받을 수는 있지만 관직을 가진 후에도 문무과시험은 치릅니다. 그만큼 어렵고, 반드시 통과해야만 사대부로서 위신이 서니까요.
관직에 들어서면서부터의 임명장(사령장)은 ‘고신(告身)’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의 공무원처럼 품계(品階)라는 계급을 받고, 관직(官職:일하는 자리)도 받게 되는데요, 품계나 관직이 변할 때마다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5품 이하까지의 고신은 교지라고 하지 않고 ‘교첩(敎牒)’이라고 부릅니다.(사진3)
사진3. 선우흡 교첩
사진3의 유물은 1618년 선우흡을 숭인전감(崇仁殿監)으로 임명하는 교첩입니다. 참고로 숭인전은 기자(箕子)를 모시는 사당으로 평양에 있습니다. 북한의 보물급문화재 2호입니다. 선우(鮮于)씨는 기자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어서 조선시대에 숭인전을 모시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교첩이야기를 하자면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남편과 자식의 직급에 따라 외명부(外命婦)라 불리는 직급을 받았습니다. 종3품 이하 벼슬아치의 아내인 숙인(淑人)까지는 교첩을 받았습니다.
4품 이상으로 가면 이제 교지라는 명칭이 사용됩니다.(사진4) 사진4는 1488년 김종한이 여주목 판관으로 임명되면서 받은 교지입니다. <이십삼상대회도>와 함께 보물 14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3품 이상이면 아내의 경우도 교지의 이름으로 받았습니다.(사진5) 사진5는 1874년 이돈상의 아내인 숙부인(淑夫人) 이씨를 정부인(貞夫人)의 직급에 봉하는 교지입니다. 좌측에 보면 작은 글씨로 법에 의거하여 남편의 직에 따르도록 한다고 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전에는 각 관부(관청)에서 받던 것이, 왕이 직접 수여하는 것으로 예우가 바뀝니다.
사진4. 김종한 교지
사진5. 정부인 교지
이 외에 관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녹패(祿牌)’라는 것을 받습니다.(사진6) 이 유물은 1674년 이완이 받은 것입니다. 우의정 때 받은 것이어서 그 크기가 대단합니다. 보통의 것은 아주 조그맣습니다만, 이건 녹봉(봉급)을 받을 때 보여주는 증서라 아주 중요한 거지요. 노비를 하사받거나 토지에 관한 권리를 받을 때 등의 경우에도 교지를 받았는데, 이것은 ‘사패(賜牌)’라고 합니다. 또 왕이 먹을 것이나 생필품 등을 선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같이 보내는 교지를 ‘하선장(下膳狀)’이라고 합니다.(사진7) 사진의 하선장은 1791년에 좌승지 이재학에게 꿩고기 1마리, 곶감 1첩을 내려준 것입니다.
사진6. 이완 녹패
사진7. 이재학 하선장
관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나면 살았을 때의 공이나 가족의 공에 의해 또 품계를 받고, 증직이라는 가상의 관직도 받습니다. 이때 받는 교지는 추증교지(追贈敎旨)라고 합니다.(사진8,9) 사진8은 1787년의 이의규 추증교지로 손자 이숭우가 형조판서가 되면서 받은 것입니다. 사진9는 1800년 이재학의 아내인 정부인 정씨가 사후에 남편의 직에 따라 추증된 것입니다.
사진8. 이의규 추증교지
사진9. 정경부인 추증교지
또 살았을 때의 공이 대단할 경우 시호(贈諡)를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는 충무(忠武)이지요. 그래서 충무공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는 별도로 시호교지를 받지요.(사진10) 사진10의 시호교지는 1633년에 유순익이 충정(忠靖)이라는 시호를 받은 교지입니다. 유순익은 인조반정의 공로로 정사공신 3등에 오른 인물입니다. 조선시대에 시호교지를 받을 정도이면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삶을 마감했다는 뜻이겠지요.
사진10. 유순익 시호교지
아주 간략하게 교지의 종류와 어느 경우에 받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혹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조상유품 중 교지가 있다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이제부터는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만들어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