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여성신문이 주관하는 ‘2008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자 7명이 선정됐다.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은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했으며 각계에서 추천받은 후보자 중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영화), 이경자 소설가(문학),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공연예술)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인 전효관 전남대 문화대학원 교수와 이수홍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회장 등 5명으로 구성됐다. 음악, 영상, 공예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 수상자 7인의 소감과 포부를 들어봤다.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 임순례 영화감독
영화 ‘우생순’으로 ‘아줌마의 저력’ 보여줘
“많은 관객들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여성 영화인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인데 제가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나와 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 소감을 밝힌 임순례 감독. 그는 “여러모로 의미 있었던 2008년을 또 하나의 수상 소식과 함께 마무리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지난 1월 개봉되어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여성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이 힘을 합쳐 만든 ‘여성들의 승리’로 불렸다. 영화 속 ‘아줌마 선수들’이 보여준 열정은 이후 베이징 올림픽에서 실제로 벌어진 여자 핸드볼 경기에까지 이어졌고, 올 한 해 문화 예술계를 휩쓴 새로운 ‘아줌마론’의 시발점이 됐다. ‘우생순’은 임 감독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1993년 제1회 단편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인 ‘우중산책’에 이어 데뷔작 ‘세 친구’(1996)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까지 평단의 극찬과 대중의 무관심이라는 극과 극의 반응을 경험했던 그는 ‘우생순’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 성공했다. ‘임순례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변했다’라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지만 상업영화를 ‘임순례 식’으로 새롭게 만들어 낸 그의 연출력은 이 영화에서 돋보였다. 그는 “무엇보다 다음 영화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기쁘다”면서 “영화와 대중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임순례 감독은 현재 ‘우생순’의 배우 문소리, 박원상과 함께 차기작 ‘날아라 펭귄’의 촬영에 한창이다. 사교육 압박과 조기교육 열풍,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 황혼이혼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임 감독 특유의 시선으로 녹여낼 이 영화가 기다려진다.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김정자 성정문화재단 이사장
“인재 발굴은 문화사절단 육성하는 것”
“21세기는 문화 창조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예술 인재 육성이야말로 우리나라 문화산업에 초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정자(65) 성정문화재단 이사장은 군부정권 통치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환경에서도 지난 20여 년간 꿋꿋하게 예술인재 양성사업에 투신해 왔다. 1981년 ‘난파소년소녀합창단’ 창단을 시작으로 성정청소년교향악단, 성정뮤지컬단, 성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성정예술기획을 설립하며 성정문화재단을 예술인재 양성의 본거지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특히 성정문화재단에서 개최하는 ‘성정음악콩쿠르’는 전국에서 연 3000여 명의 인재들이 모여들 만큼 권위 있는 대회로 성장했다. “제7회 대상 수상자 한명원(성악부문)씨는 베르디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제15회 대상 수상자인 문태국(첼로 부문)씨는 2007년 독일국제청소년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성정음악콩쿠르는 국제적인 음악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 이사장은 문화경쟁 시대에 예술인에 대한 후원은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사절단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은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해외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의 노래하는 작은 천사’라는 찬사를 받으며 문화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정문화재단을 역사와 전통 있는 문화단체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경순 한국공예예술가협회 부회장 - 신진 여성문화인상 을주상
한국 전통공예품 세계화 앞장
“우리의 전통 공예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게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권경순(47) 한국공예예술가협회 부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한국의 전통공예품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홍보대사 역할을 해왔다. 한국 공예문화의 유럽 진출을 목표로 벨기에를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 15차례에 걸쳐 전시회를 연 것이다. 그의 발품 덕분에 한국 공예인 300여 명의 작품이 세계에 소개됐고, 호평이 이어졌다. “한번은 전시부스 벽면에 훈민정음이 새겨진 한지를 붙였는데 행사가 끝나고도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한지를 붙인 부스 조각을 받아가려고 한 거였죠. 외국인들의 한지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권 부회장은 전시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내 전통공예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 개발에 나섰다. 전자파를 차단하는 한지를 개발해 신생아용 스탠드 제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럽에서 한지 스탠드 매장만 별도로 운영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인기”라고 전했다. 그는 요즘에도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작품을 전시했던 협회 회원들과 함께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권 부회장은 “외국인들이 우리의 한지나 노리개, 나전칠기 등의 전통공예품을 귀하게 여기더라”며 “앞으로 더 다양한 공예품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신진 여성문화인상 을주상 - 이정희 나사렛대 재활창업보육센터 원장
장애 딛고 ‘전통 자수’ 명맥 이어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겠습니다.” 이정희(43)씨에게 ‘장애’는 그가 지난날 혼신의 힘을 다해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온 결과 완벽하게 극복한 단어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하반신 마비로 장애인이 된 그는 17세 때부터 30년간 전통 자수를 업으로 삼아왔다. 그는 ‘전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수가 좋다고. 불편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보다 아름답고 전통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 어디든 찾아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고 작품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세미나, 전시관, 미술관, 박물관을 찾는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장애인미술대전 등 총 36회에 걸쳐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특히 2003년 대한민국 장애인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작품 ‘시집가는 날’은 이 대전에선 최초로 청와대에 기증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후진 양성과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이 많다. 2002년 전북 정읍에 전통 자수 수련원인 ‘예다움’을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으며 지난해 6월부터는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재활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과 학과 학생들에게 전통 자수를 교육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정부와 학교 당국의 지원이 점차 늘어 동료 장애인들이 활발한 예술활동을 펼치고 직업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또 개인적으론 무형문화재 등 전통문화 기능 보유자나 명인 등의 꿈도 조만간 실현되길 소망했다.
고미현 소프라노 - 신진 여성문화인상 을주상
거침없는 노래로 관객 사로잡아
“화려하고 섬세한 노래, 거침없이 풍부한 음량과 투명한 감성, 노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관객들의 호흡을 멈추게 했다.” 소프라노 고미현(32)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평가다. 고씨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독일 라이프치히와 하노버, 이탈리아, 러시아 등 전 세계 6개국 초청 독창회, 국제적인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을 통해 한국 성악계의 높은 위상과 수준을 세계무대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특히 올해로 창학 102년을 맞은 숙명여대에서 음악대학 설립 이래 최초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숙대 성악과 박사 1호’란 타이틀로도 화제를 모았다. 외국 유학이 당연시 여겨지는 음악계에서 외국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가지고 거꾸로 국내로 들어와 성악과 석·박사를 취득한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어린 시절 유학한 그는 호주 시드니에 소재한 오스트레일리아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해 국제무대 경험을 쌓으며 성악가로서의 기량을 쉼 없이 갈고 닦았다. 그는 여성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들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 폴란드 100년 전통의 역사적인 대극장 ‘아담 미키예베츠’에서 체코 야나첵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가곡 ‘신 아리랑’을 불렀는데 현지 언론과 문화계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며 “여성 음악가들이 자신의 전공인 클래식만이 아니라 가곡을 연주하며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리는 데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신진 여성문화인상 을주상 - 여성영상집단 ‘움’
다큐로 ‘보여주는 여성운동’앞장
‘영상을 통한 여성운동’을 지향하는 여성영상집단 ‘움’은 장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 외에 ‘女성매매’ ‘우리들은 정의파다’ 등의 작품을 꾸준히 제작하며 우리 사회의 여성, 그중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다루는 데 노력해 왔다. ‘움’을 이끌고 있는 이혜란 대표는 여성소수자 시선과 감수성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온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다큐작업을 통해 여성주의 문화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받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로 다양한 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해 표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소통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수상을 통해 이런 작업이 지원·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기쁩니다.” 현재 움은 ‘이반검열’의 세 번째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2005년 제작된 ‘이반검열’은 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레즈비언 소녀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그려 화제가 됐으며 지난해에는 세 명의 레즈비언 소녀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린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가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2009년이나 2010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인 세 번째 이야기 ‘달남자’는 레즈비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움은 다큐 제작뿐만 아니라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지역여성민우회 등에서 여성 미디어 활동가 역량 강화 워크숍 외에도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봉미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 신진 여성문화인상 을주상
‘금녀의 벽’ 깬 당당한 여성지휘자
“2008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해 영광입니다.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기쁨과 설렘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있는 김봉미(34)씨. 그는 국내에서 여성 지휘자의 영역을 개척한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금녀의 땅으로 불렸던 국내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똑 소리 나는 악보 해석 능력, 연주자들을 포용하는 카리스마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강건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실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묘사됐던 강마에의 경력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김봉미 지휘자는 1994년 부산대 피아노과를 실기 수석으로 졸업했고, 1998년 독일 에센 폴크방 음대 피아노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또 데트몰트 음대, 카셀 국립음대를 거치며 지휘를 배웠다. 피아노를 배우며 습득한 탁월한 곡 해석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3년부터 2007년 7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맡기 전까지 독일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등 명성을 쌓아왔다. 현재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은 물론 향후 국내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김봉미 지휘자는 “예술인은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아닌 누가 예술을 예술답게 하느냐가 먼저”라며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윤수·권지희·채혜원·김세형·김은경·전희진·김재희 / 여성신문 기자 1007호 [종합] (2008-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