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론 2026 봄
가톨릭 여성 리더십 : 예수님의 꿈과 길을 따라서
강영옥 (평신도 가톨릭 연구자)
가톨릭 교의신학을 전공하고, 서강대학교와 수도자신학원에서 강의하였으며,
은퇴 후 영성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의 소리
가톨릭 본당이나 교구에서 활동하는 여성신자들의 연령층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본당 단체장이나 교구 임원진이 예전에는 40~50대 여성들로 구성되었으나, 최근에는 60~70대 여성들이 주류이다. 그들은 자신의 직책을 물려줄 후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우선 신자들의 고령화라는 가톨릭 교회의 현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또한 젊은 세대 여성신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2005년에 시행한 「한국 천주교회 여성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조사 결과보고서」에 의하면,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성들이 리더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길 권장하며 아울러 여성사목의 핵심과제로서 ‘여성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의 개발과 교육’을 제안한다.여성 리더십에 대한 요청은 2024년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에 제출된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에서도 되풀이된다. 이 보고서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해, 여성들에게 리더십과 전례 참여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본당 사목 평의회 회장·단체장은 대부분 남성이 맡고 있으며, 여성이 본당 사목 평의회 회장을 맡거나 성체 분배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많은 신자들이 어색함과 거부감,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여성들이 리더를 맡는 경험과 문화를 늘리고, 전반적인 영역에서 여성들의 참여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우리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남성과 여성의 평등 문화를 만들고, 여성 리더십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여성 리더의 육성과 여성 리더십 함양을 제안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교회 여성의 신원(identity)이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협력자’ 혹은 ‘봉사자’로서 역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구성원들은 ‘여성 봉사자’라는 말은 친숙하게 사용하지만, ‘여성 지도자’라는 말에는 거부감을 느끼고 어색해한다. 더구나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가는 교계의 성직자는 원천적으로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 리더’ 혹은 ‘여성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반(反)교회적’이라는 뉘앙스마저 지닌다.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가톨릭 여성들이 기쁘게 활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복음의 원천으로 돌아가 이 시대 여성에게 기쁜 소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함께 찾아 나서기로 하자.
2. 시대의 징표
토플러(A. Toffler)가 “제3의 물결” 이론을 제창한 이래, 21세기 현대 사회는 지식정보사회로 규정된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현대 사회는 제3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여성 리더십’((Feminine Leadership)에 대한 요청은 이러한 사회 변화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지식정보사회의 발달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었고, 그 변화는 사회-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와 가정생활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인간 내면의 심리적 영역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사회변동과정에서 남녀의 차이와 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을 구성하는 인간관계 전반에 관한 검토가 새롭게 이루어졌다. 리더십에 관한 이론들은 그러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미치는 사회적 역학관계 안에서 새롭게 고찰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조화의 관계로 이해되며, 상명하복의 수직개념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수평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리더십’이란 리더 개인의 특질이나 자질로서 이해되지 않고,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교호작용(interaction) 혹은 상호작용과정(reciprocal action)으로 파악된다. 리더십 이론에 성(性)의 관점이 도입된 것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변화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1985년 로든(M. Loden)이 처음으로 ‘여성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이전까지 ‘여성 리더십’이나 ‘여성 리더’라는 개념은 통용되지 않았다. ‘리더’ 혹은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남성 세계에 속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된 새로운 사회 환경에서 '남성 리더십'이 점차 비효율적임이 드러났고 그동안 여성적 특성으로 간주되었던 특성들이 21세기 리더십의 덕목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나아가 여성 리더십이 기존의 리더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산업사회에서 통용되던 수직적 상명하달 방식의 리더십은 점차 퇴조하고 오히려 조직구성원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배려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부드러운 리더십”, “감성의 리더십”이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 리더들이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여성의 특질을 고려한 여성 리더십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리더십을 원하는 시대적 요청과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확대되어 가는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현실적으로 맞물리면서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개진되어 왔다. 현 시대 흐름에 영향을 받아 가톨릭교회에서도 여성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미래 사목을 위한 여성 리더십의 함양과 여성 리더의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제안하게 되었다.
3. 가톨릭 여성 리더십의 원천
가톨릭 리더십의 영성은 섬김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님은 위에서 지배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하였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코 10,42-4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로 섬기는 자세를 가르쳤다.
또한 요한복음서의 최후만찬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서로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바오로가 채집하여 서간에 수록한 초기 교회의 노래에서도 섬김의 자세를 취하는 ‘종’이라는 표상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해석하고 있다. “주님의 종”이라는 성서적 표현은 예수님의 사명과 직결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노획물로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까지,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셨도다”(필립비서 2,7-8).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종과 같이 봉사하는 행동의 결과로 죽음을 맞이하였음을 전한다.
예수님이 보여준 리더십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의 자세를 취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전망(vision)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 안에 들어 있다.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여성 리더십은 예수님의 꿈과 길로부터 영향받아 그러한 선한 영향력을 교회와 세상에 펼치는 가운데 발휘된다. 섬김의 자세로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눌 필요도 없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남자든 여자든 예수님의 꿈을 따라 그 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가톨릭 리더로서 성장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