貊族은 본디 중국의 북방지역에 흩어져서 취락을 이루고 살았었다. 그들이 분화하는 정황에 관하여 呂思勉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1] 그 종족의 일부는 차츰 남쪽을 향해 이동해 가서 먼저 晉•秦 제후국과 접촉하여 어울려 뒤섞여 살다가 결국에는 漢族 속에 녹아들어갔다.; [2] 다른 일부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옮겨가며 살다가 점차 새로운 민족 즉 月支를 형성하게 되었고, 나중에 여기서 또 삐져나와 小月支 일족이 되었다.; [3] 또한 일부는 끊임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살다가 마지막으로 동북지구에 진입하여 동북 古민족의 일족을 이루었다.”(呂思勉).
貊族의 일부가 동북으로 들어가 동북 古민족으로 바뀐 뒤에는, 문헌에 보이는 “두 나라(兩國)”가 주요하다. 한 나라는 바로《山海經•海內西經》에 기재된 貊國이다. 여기서 말하길 “夷人在東胡東. 貊國在漢水東北. 地近于燕, 滅之.”라고 하였다. 郭璞의 注에 “今扶餘國卽濊貊故地, 在長城北, 去玄菟千里, 出名馬•赤玉•貂皮•大珠如酸棗也.”. 郝懿行의 注에 “(三國志)《魏志•東夷傳》說夫餘與此注同, 卽郭所本也…….《大雅•韓奕》篇云: ‘其追其貊’謂此.” 여기서 貊國은 다름아닌 《詩經》“其追其貊”의 貊國으로 두가지 모두 동일한 國族이다.
이 貊國의 땅을 바라보기를, 郭璞은 扶餘에 대한《魏志》의 기사를 근거로 扶餘의 땅이 바로 이 貊國이 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淸나라 사람 吳承志는《海內西經》의 “漢水”는 바로 동요하(東遼河)라고 하였다. 동요하는 요하(遼河)의 지류인데 이 설에 따르면 貊國은 지금의 요하 상류의 동요하 북쪽 기슭 지역에 위치한다. 이밖에 지금의 동북평원 남부의 혼하(渾河)를 옛 漢水라고 여기는 설도 있다 (何光岳 1990). 이와같이 貊國의 땅은 혼하 유역에 있어야만 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혼하 유역에 있다는 설이 비교적 실제에 가깝다.
첫째,《山海經》에 기재된 “貊國”이 《詩經》에 나오는 “其追其貊”의 “貊” 과 동일한 國族이라는 점에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追”는 곧 “穢”의 전사(轉寫)이므로 필연적으로 그들은 당시의 穢族과 서로 인접할것이다(蒙文通). 또한, 周 초기에 穢族은 동북으로 옮겨가는 중도기에 지금의 하북성 천진(天津)시 주변의 발해연안 지역에 살면서 韓侯에 예속되어 통치를 받고 있었다. 貊族과 穢族은 같은 시기에 周나라 천자에 의하여 韓侯에게 양도되었으므로 두 종족은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야한다. 이러한 정세로 추측하건데 貊國이 있던 곳은 지금의 요동만 연안이다.
둘째, 貊國의 땅은 [《山海經》의] “近于燕 [燕에 가깝다]”고 본다. 춘추시대 이전의 燕나라 세력범위는 동쪽으로는 대릉하(大凌河) 유역을 지나지 못하였고, 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요동 등의 땅을 장악하였다. 만약에 貊國이 지금의 요하 상류의 동요하 이북 지역에 있었다고 하면 燕과 너무 멀리 떨어지게 되니 근본적으로 “近于燕”이란 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燕이 나아가 古朝鮮을 공격할때, 정세를 따라 貊國을 정복하였었다. 이 貊國은 반드시 燕과 古朝鮮 사이에 있어야만 한다. 요동만 연안의 혼하 유역이 이 범위안에 딱 자리한다.
윗글에서는 한 나라를 제외하였다. 바로 동북지구의 또 하나의 “貊國”, 즉 “小水” (지금의 애하유역)의 小水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