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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호님의 역사소설. 컬럼 스크랩 역사소설 "서희"
仁影 추천 0 조회 68 11.12.28 02: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편역사소설 서희! 

                                


요즘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를 두고 말이 많다. 모두 애국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溫故以知新이라고 옛날 고려의 문신인 徐熙의 협상술을 되새기며 이 소설을 쓰려한다. 고려초기 성종때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화북지방도 점령하여 승승장구하던 거란의 침략을 막아 고려를 구해내고 오히려 세계역사상 단 한번인 침략국이 정벌할 대상국가에게 땅을 내준 희귀한 사건의 주인공인 고려의 서희에 대해서 그리려 한다. 필자는 틈틈히 역사 공부를 했다고 하나 아직 아마추어적인 지식밖에 습득하지 못해 고려의 서희를 어떻게 독자에게 인상있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요즘 온 나라가 쇠고기 협상에 대하여 들썩이여서 이 때 만고 충신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협상가인 서희를 내세워 어떻게 하면 많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하는 바람에서 모자라나마 좌판을 두드리기로 한다.

요사이 서희의 협상술에 대하여 책도 나오고 각 대학이나 대학원 그리고 어떤 기업연수원에서도 서희의 협상술에 대하여 강의도 한다고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협상은 거의 무역에 대한 협상이 대부분이고 전쟁과 겸한 협상은 거의 없다. 거란의 침입시 만일 서희의 탁월한 협상력이 없었다면 고려가 멸망했거나 아니면 거란의 신하국이 되었거나 아니면 영토를 할량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희가 가지고 있는 전쟁수행능력과 협상력이 겸비되어 별 손실없이 오히려 옛고구려 땅 강동 6주를 회복했다. 이 점은 세계 전쟁사상 유례가 없었다는 것을 앞에서도 기술하였던 만큼 서희가 조선의 전쟁영웅인 이순신보다 모자람이 없다고 하겠다.

거란의 소손녕은 83만 대군을 이끌고 안융진(지금의 안주)까지 내려왔다. 거란의 대군이 쳐들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려조정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 아무리 고려군사가 정예라고 하더라도 동원할 수있는 병력은 10만 안팍이어서 거란의 80여만의 군사를 막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서희는 세치의 혀로 당당하게 거란을 물리치고 전술한 것 처럼 강동6주를 얻은 것은 전설적 역사사건이었다. 그것은 협상에 나서기 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확신함으로서 뒷받침되었던 것이었다. 모름지기 확신과 용기없는 협상은 출발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최근에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 촛불집회로 마음이 뒤숭숭해서 나라가 걱정이 되고 협상 하나 때문에(쇠고기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저렇게 죽자살자 집회를 여는 것이 마음이 아픔)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그 와중에 폭력시위, 폭력진압 시비가 따르고 해서 뉴스 시작하자말자 땡꽝뉴스가 연일 계속하여 보도되니 옛날 전두환시절에 땡전 뉴스가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고유가 때문에 경제가 너무나 어려운데 빨리 매듭을 지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을 쓸 때 친구인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교수의 저서인 '서희! 협상을 말하다'를 많이 참고했다는 것을 독자제위에게 알려드립니다. 그럼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행복과 건승을 빌며 이제 부터 글을 쓰려 합니다.


2008년    월

밀양 평리 마을에서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허경호 씀







1. 거란의 침입

태보내사령 서희는 기분이 슬슬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퇴청을 미루고 있었다. 아직도 집무실에 앉아 옛날 할아버자 서필의 유물을 만지작 거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데 밖같 통로에서 인기척이나 누군가 싶어 방문을 열어보니 민관어사 이지백이 바둑 한판 두자고 청하는 것이 아닌가? 서희는 오늘 몸 상태가 않좋다며 거절했으나 이지백은 억지로 한쪽 구석에 있는 바둑판을 꺼내어 강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게 하였다. 자신보다 계급이 어린 이지백이 강제로 바둑을 두게 하는 것이 기분이 ?잖았으나 그래도 이 양반이 나외는 정붙일 데가 없어서 이러는가 보다 하고 억지로나마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 실력은 아무래도 서희가 한수 위였으니 오늘따라 왠일인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아 반쯤 두었을 벌써 더이상 두지 않을 만큼 이지백에게 헛점을 많이보여서 그만 두자고 했다.

그 때 바깥에서 약간 소란해지며 호위병 여러명이 안융진 성주가 급히 서찰 보냈다며 태보내사령 대감과 민관어사 대감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방을 나와 호위병과 안융진 성주가 보낸 서찰을 건네 받았다. 서찰을 건네 받고 내용을 확인한 서희와 이지백은 안으로는 무척이나 놀랬으나 애써 태연하게
"알았네! 자네들은 오늘 여기서 푹쉬고 내일 안융진으로 떠나도록 하게. 내일 조정회의에서 논의하여 급히 군사들을 안융진으로 출병시킬테니까." 하고 말했다. 서찰내용은 이러했다.
'태보내사령 서희 대감과 민관어사 이지백 대감에게 아뢰옵나이다. 이 서찰을 시중 어른이자 저의 외숙부인 박양유에게 전달해봐야 뚜렸한 답이 안나올 것 같아 두 대감께 먼저 비상사태를 알려 드립니다. 옛날 부터 태조께서 거란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저희들은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은 관계로 이번과 같은 변이 초래되었사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안융진건너 살수강가에 헤아릴 수 없는 거란의 군사가 진을치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협박하고 있사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저로서는 어떻게 할지 몰라 두 대감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려드리니 속히 방법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안융진 성주 왕융'

서희는 이지백과 함께 저녁 하늘을 쳐다 봤다. 북쪽 하늘엔 흰 구름이 서쪽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 거란의 군사가 고려를 범하려 하지만 우리도 그리 쉽게 당하지 않을 것 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지백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감! 한바탕 전투가 벌어 지겠소. 그러나 우리는 거란의 숫적인 우세에 결코 굴하지 않겠소. 고구려가 그러했듯이 고려도 거란의 80만 대군을 몰아 낼 수가 있소. 내일 조정회의에서 이건을 상정하여 황상의 허락을 받아 내가 출전하겠소." 라고 말하니 이지백은 펄쩍 뛰며
"서 대감은 궁궐에 남아서 황상을 보필해야 합니다. 보다 더 담력이 있고 무예가 출중한 장군을 선발하여 안융진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렇게 서희와 이지백은 옥신각신하면서 고려의 국운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음 날 서희와 이지백은 거란의 침입사건을 성종과 조정대신들에게 보고했다. 조정대신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성종은 과연 임금답게 단 아래를 내려보며 말했다.
"우리 고려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로서 무도한 거란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오. 다만 태조께서 거란을 조심하라는 유언을 소홀히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오. 전쟁은 병사의 수가 많고 적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오. 어?튼 거란의 병사가 안융진까지 내려왔다고 하니 내일 당장 소집 가능한 병사를 편제하여 안융진으로 떠나되 박양유(시중)를 상군사, 서희를 중군사, 최량을 하군사로 임명하니 각자 책임을 다하여 우리가 영광된 고구려의 후예임을 보여주고 오시오!"

다음 날 고려의 5만 군사들은 박양유, 서희, 최량의 지휘 아래 안융진을 구원하러 출정했다. 출정식 때 서희는 병졸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외쳤다.
"고려의 군사들은 들어라! 우리들은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거란이 고려까지 넘보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기면 거란은 다시는 우리를 넘보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지면 발해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를 이어 받은 우리 고려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거란의 군사는 80만이라 하나 실제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병력은 그 반 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오랜 행군으로 많이 지쳐있고 보급선이 길어 우리가 지구전으로 이끈다면 침략의 수괴인 소손녕은 옛날 당태종 이세민의 꼴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출정하여 거란군을 마음대로 무찔러라! 침략자에게 아량이 필요없다. 우리 고려를 침략한 죄가가 무엇인지 알려줘라.!"
이에 고려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되어 "중군사 장군만세! 서희 장군만세."라고 목이 쉬라고 외쳤다.

서희는 박양유, 최량과 함께 안융진을 구원하러 출전했다. 그런데 출전도중 우리 고려 군사로 보이는 연락병이 급히 말을 달려 이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보니 우리 고려군사가 맞았다. 그 연락병은 숨도 고르지 않고
"봉산군이 위급하니 안융진보다 봉산군(살수근처)을 먼저 지원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상군사 박양유가 물었다.
"지원을 요청하려면 마땅히 서찰을 소지하고 봉산군수의 직인이 찍혀 있어야 하거늘 나 어찌 너를 믿겠는가.?" 그 말에 봉산군 연락병은
"상군사 어른! 지금 봉산군은 서찰을 쓰고 직인을 찍고 그러한 형식에 매달릴 시간이 없사옵니다. 봉산군수께서 저에게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지원병을 받아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제가 이대로 돌아가면 저는 명령불이행죄로 참형에 다스려 질 것이며 봉산군의 안위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애원하였다. 이에 중군사 서희가 나서며 상군사 박양유에게 간청했다.
"시중 어른! 이 연락병이 말하는 것을 보면 봉산군이 위기에 처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직 안융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연락이 없으니 저만 이라도 봉산군으로 지원함이 어떨까요?" 상군사 박양유는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중군사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오! 그대신 승전보를 꼭 황상에게 올려야 하오. 그래야만 중군사를 봉산군에 보냈다는 내책임이 면하게 되오." 말하면서 봉산군에서 죽자살자 뛰어온 연락병을 향해
"자네! 중군사 대감을 모시고 급히 봉산으로 가게! 군사는 일만오천명을 딸려 보낼 테니까 꼭 봉산군을 사수하게.!"
하면서 어깨를 툭툭치며 위로해 주었다. 한편 저 연락병이 혹시 고려군사들을 분산시키려는 거란의 세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군사 서희가 나서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아닌 것임을 확신했다.

서희는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속도로 봉산군을 향해서 군대를 몰아 갔다. 이틀 정도의 행군 끝에 봉산성에 입성했다. 봉산군수를 만나기 전에 살수 거너편을 보니 거란 깃발이 정연하고 진을 친 모습을 보니 군기가 잡혀있고 거란군이 언제든지 봉산군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서희는 봉산군수 윤태원에게 물었다.
"봉산군수! 언제부터 거란이 저 살수 맞은 편에 진을 치고 있었소.?" 이에 봉산군수는 대답하기를
"사흘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는데 공격을 해올 듯 하면서 아직 공격을 해오지 않고 있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서희는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강건너 족히 20만정도의 거란 군사가 3일이나 진을 치면서 식량만 축내는 이유가 뭘까? 다시 서희는 봉산군수를 불러 다시 물었다.
"자네! 나에게 다 죽어가는 시늉을 내면서 원군을 청했으면 최소한의 전투라도 벌어져야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3일이나 진을 쳐놓고 공격을 안하다니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에 봉산군수는 대답하기를
"진을 친 첫날 우리에게 곧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우리에게 항복하라는 쪽지가 붙은 화살이 몇개 날아 들어 왔습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동도 안하니까 저렇게 진만치고 있는데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나이다. 중군사 대감.!" 이말을 듣고 서희는 괴이하게 생각되어 봉산군수를 불러
"거란이 우리를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먼저 거란을 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거란이 먼저 살수를 건너 먼저 우리를 칠 때까지 먼저 공격하지 마시오! 다만 경계는 절대 소홀히 하지말고 특히 살수의 수위을 때때로 조사를 하시오. 거란놈들이 살수의 수위가 낮아 질 때까지 기다릴 지도 모를 일이오!"하고 명령했다.


2. 서희! 소손녕을 만나다.

서희가 봉산군을 구원하러 온지가 벌써 5일이나 지났다. 아직도 거란 진영은 봉산군을 공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관내를 봉산군수와 순찰하고 있는데 강을 건너는 거란 병사 3명을 발견했다. 서희와 봉산군수 윤태원은 저 거란군사 3명이 무슨 이유로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우리 진영으로 달려 오는지 어리둥절했다. 물에 흠뻑 젖은 거란 군사 3명은 무장도 하지않고 서희장군을 찾았다. 그래서 서희는 그들을 불러 만나서 강을 건너온 이유를 물었다. 거란 군사는 소손녕의 친필 서한을 내보이며 '서희장군을 만나서 할 말이 있으니 거란 진영으로 모셨으면 한다'는 내용이였다. 서희는 '옛날 오랑캐가 요즘은 제법 예절을 지키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고민을 했다. 소손녕이가 간곡한 내용으로 초청장을 보내온 것을 보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 같으나 만일 하나 소손녕의 꼬임에 넘어가 목숨을 잃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하고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봉산군수 윤태원은 중군사 서희에게 '거란은 야만적인 족속이니 절대로 가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말했으나 그래도 서희는 봉산군수에게
"비록 적국의 장수이지만 명색이 장수와 장수의 만남인데 별일이 있겠느냐? 그러나 만일 다음 날 인시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변고가 생겼다고 간주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라고 명령하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채 거란군사의 안내로 소손녕을 만나러 갔다.

서희가 거란진영으로 들어가니 예상대로 거란의 군기는 잡혀 있었다. 거란병사들의 눈을 보니 대부분 식사도 잘하고 훈련도 제법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서희는 내색을 않은 체 소손녕이 있는 막사로 인도되었다. 소손녕은 아주 반가운 모습으로 웃음을 머금으며 서희를 보고 말했다.
"장군의 고명은 우리 거란말고도 송나라까지도 알고 있소. 하물며 고려 사람에게는 얼마나 추앙을 받겠소. 나는 장군만큼은 되지 못하나 大朝의 장군으로서 장군에게 한마디 하겠소. 지체없이 우리에게 항복하시오! 그러면 우리 거란과 고려는 피 한 방을 흘리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될 것이오. 그 얼마나 좋은 일이오. 그리고 우리 거란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거의 다 차지하였는 데 지금 당신네 나라가 우리 강토를 점령하였기에 우리가 토벌하러 온 것이오. 우리 거란이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아직까지 우리에게 귀부하지 않은 나라는 당신네 고려뿐이오. 만일 우리에게 귀부치 않으면 기어코 소탕할 것이오. 지체말고 항복하시오!"

서희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장군은 나에게 항복을 권할 자격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려의 대신으로서 항복할 권리가 없소. 나에게 시간을 주면 곰곰히 생각하여 우리 황상께 말씀은 한번 올리리다. 그러니 우리가 항복할 것이라는 것은 완전히 믿지 마시오! 모든게 절차가 있는 법이오. 손장군도 나에게 말하다시피 대조의 장군으로서 항복을 받고 싶다면 우리 조정내부에서 절차도 거처야 하오. 그리 아시고 나는 이만 우리 진영으로 가보겠소." 이 말에 소손녕은 더 이상 서희를 붙잡고 왈가불가할 수가 없었다. 워낙 꼿꼿하고 그 말에 일리가 있는지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소손녕은 일어서서 나가려는 서희를 붙잡고 말하기를
"대인께서 귀한 걸음을 하셨는데 술 한잔 대접이 없어서 되겠소. 비록 약소하나마 술자라를 마련했으니 기분 좀 풀고 가시오. 그 자리에선 이런 이야기를 않겠소." 이에 서희는 쾌히 승락하며
"나도 손장군과의 이야기가 길어질까봐 부하 장수들에게 내가 약간 늦더라도 기다리라고 일러났소. 장수와 장수끼리는 비록 적으로 만나도 통하는 뭐가 있지않소." 이에 소손녕은 박장대소하며
"서대인은 문신임에도 불구하고 무신의 기질이 듬뿍있어 부럽기 짝이 없소. 내가 이리로 내려 올 때 맛있는 술과 재색을 겸비한 우리 거란의 여인과 거란국안에 살고 있는 애들 중에 제법 괜찮은 여진애들을 데리고 왔소. 그 애들과 한번 취해 봅시다."
소손녕은 밖을 향해 큰 소리로
"여기에 술상과 여자 아이를 들여 보내거라.!" 하니 미리 준비가 되었던지 금방 술상과 여자아이 4명이 들어왔다. 술은 고려에서 볼 수 없는 어떤 진귀한 술같고 안주는 간단하면서도 아주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유목민의 촌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서희는 웃음이 나왔다. 소손녕은 서희에게 술 한잔 건네며 자신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걸 잊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어쩌면 나라도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이래 사나 저래 사나 고달픔은 다 같은 것 같았다. 서희와 소손녕은 술 한잔을 쭉 들이켰다. 술은 상상외로 독했다. 소손녕도 그 술이 독한지 미리 알고 있었는 모양이다. 서희를 쳐다보며 실실 웃는 것을 보니......소손녕도 긴장이 풀리는지 거란계집을 껴안고 또 술을 마신다. 서희 보고도 같이 자기처럼 해보란 듯이...서희도 거란 계집을 품고 술을 또 한잔 마시니 좀 어질어질했다. 거란계집의 가슴을 손으로 만져 봤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젊은 여자의 유방을 애무해본 지가 오래된 것 같았다. 술김에 거란 계집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쳐주니 거란 계집아이는 앙탈을 부리면서 서희의 몸에 찰싹 들어 붙는다. 뭔가 훈련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뭉클뭉클한 유방이 보일락말락하니 서희도 남자인지라 발동이 걸렸다. 그래서 유방을 다시 애무해 주고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어 주고 난뒤에 삼각주를 만져 보니 벌써 삼각주를 가르는 수로는 홍수가 난 것 같았다. 그래서 상류에 있는 단추와 홍수의 진원지를 애무해 주니 거란 계집은 어쩔줄 몰라했다. 앞에 있는 소손녕은 그 모습을 보고 말하기를
"손대인! 우리 오랜만에 비록 전쟁터에서 만난 사이라 하지만 회포를 같이 풀어 봅시다." 하며 옆방으로 자신은 옮겨 갔다. 서희는 이제까지 고려내에서는 이렀게 젊은 애에게 해본 적이 없었으나 '오늘은 이까짓 거란계집이야' 라고 생각하며 홍수가 난 삼각주의 수풀을 헤치며 자신의 방망이를 거란 계집의 우물에 깊숙히 집어 넣었다. 일이 끝나니 소손녕도 작업을 끝냈는지 싱긋웃으며 들어와서 서희에게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 서희는 다알면서 뭐 그런 것 묻느냐는 듯이 눈을 흘겨본다. 이제 소손녕은 돌아가는 서희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막사 밖에 까지 따라 나오며
"대인께서는 우리의 뜻을 귀하의 황상에게 꼭 전하시오.!" 라고 말했으나 서희는 빙그레 웃으며 거란진영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서희는 어느 정도 소손녕의 마음과 80만 대군을 일으켜 고려를 침입한 거란의 속사정을 희미하나마 파악되는 것 같았다. 서희는 속으로 '오랑캐는 할 수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잡히는 게 있어. 뭐가 급하다고 우리에게 병사를 보내 중군사 밖에 안되는 나에게 항복을 권해' 라고 생각하며 거란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강을 건너 다시 봉산군으로 돌아 왔다. 서희의 안부를 걱정하던 모든 봉산군내의 모든 군사와 백성들은 이제야 안심을 놓았다. 그리고 봉산군수와 기타 장수들은 서희와 소손녕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궁금해서 서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서희는 봉산군에서 장고를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거란의 소손녕이가 의외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말하고 오히려 저자세도 보이는 등 이해못할 부분이 보였던 것이다. 무력시위는 안하고 항복을 하라는 말만 몇번이고 되풀이 했다. 그러면 소손녕이가 원하는 것은 고려 영토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항복만 받을려고 하는가? 그러면 80만 대군을 동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정예병 20만만 가지고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도 있느데 쓸데없는 병력을 동원한 저의는 무엇인가? 하나하나 생각하니 서희의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판단 하나로 고려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섬찢했다. 좋다. 일단 소손녕의 항복권유에 촛점을 맞춰보자.그러면 일단 항복이라는 최종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소손녕과 협상을 해야되지 않은가? 이 점 미리 소손녕에게 이야기했던 바이다.

서희는 소손녕이 당분간 고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서경으로 돌아와 성종에게 소손녕과 협상하기를 요청한다. 성종은 서희의 요청을 받아들여 거란과의 화친을 주제로한 조정회의를 열었다. 성종은 국서를 써놓고 거란과의 화친내용이 담긴 국서를 누가 소손녕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조정대신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 원로대신 이몽전이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황상 폐하! 소신은 여태까지 국록을 먹고 살았으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없사옵니다. 이번에 소신이 소손녕을 만나 황상의 국서를 전하고 필히 화친이 성사되도록 힘써 보겠나이다. "
이리하여 성종은 원로대신 이몽전을 파견하면서 거란 진영에 위와 같이 화친하자는 국서를 보냈다. 그런데 이몽전이 거란 진영으로 가는 도중에 소손녕은 고려에 문서를 보내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다.
"거란의 80만 군사가 도착하였다. 만일 강변까지 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고려의 군신들은 빨리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그 뒤에 이몽전은 거란진영에 도착하니 소손녕은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 사유를 이렇게 말한다.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을 대신하여 벌주러 온 것이다. 만일 화친하려거든 빨리 항복하라"
이몽전은 소손녕의 어이없는 주장에 할 말을 잃었고 더 이상 성종의 국서는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소손녕에게 말하기를
"손장군! 장군께서 저와 서희 중군사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우리 고려에게 통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국정은 정당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데 손장군의 말씀은 저 북방 오랑캐가 억지 부리듯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합시다." 하고 거란 진영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손녕은 이몽전의 질책에 오히려 못들은 척하며 이몽전의 뒤통수에 대고
"우리도 시간이 없으니 빨리 결정하시오.!" 하며 한번 더 항복을 권유했다.

위와같이 이몽전도 소손녕으로부터 서희와 비슷한 항복권유를 받음으로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오고 말았다.이리하여 조정내의 분위기는 삭막해져 갔고 겁먹은 조정대신들의 불화와 의견 불일치로 성종은 하루하루가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었고 매일 회의를 열었으나 거란과의 화친방법에 대해서 뾰죽한 대안을 시원하게 제시하는 대신들이 없었다. 아직까지 거란의 움직임이 없으나 성종과 조정대신들의 불안감은 백성들과 함께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3. 안융진 전투

이몽전이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 오자 조정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이에 다시 대책을 논하기 위하여 성종은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대부분의 문무대신들은 投降論과 割地論을 주장했다. 투항론은 거란의 요구대로 무조건 항복하자는 것이고 할지론은 서경(평양)이북의 땅을 주고 화의를 청하자는 것이었다. 성종은 며칠간의 고심 끝에 할지론을 채택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서경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쌀은 거란군이 군용으로 사용할 것을 염려하여 대동강에 버리게 하였다. 이때 서희는 아래와 같이 할지론을 반대하면서 할지론의 부당성을 조몸조목 비판하고 거란과의 일전을 불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서희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앞에서 어느 정도 전술한 적이 있다.

서희가 거란과의 일전을 불사하고 할지론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 내용을 적어본다.
1. 서희와 이몽전이가 봉산에서 소손녕이를 만났을 때와 말로만 섬멸하겠다 등 얘기를 해놓고선 끝에는 '항복하라' 이말에만 강조한 점
2. 자꾸만 실제 병력수를 80만이라고 강조한 점
3. 물리력을 행사 않고 문서만 계속 보낸 점
4. 소손녕이가 봉산이남으로 이때까지 진격하지 않는 점

위의 것을 미루어 보아 거란은 전투는 회피하고 실제로는 항복만 받아갈 속셈인 것 같다고 서희는 어렴풋이 판단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서희는 성종에 대하여 할지론에 대하여 반론을 편다.

"식량이 넉넉하면 성을 지킬 수 있고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병력이 세고 약하고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적의 약점을 잘 알고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식량을 버리려 하십니까? 더구나 양식은 백성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설령 적에게 이용될지언정 어찌 헛되이 강에 버린단 말입니까? 이것은 하늘의 뜻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서희가 이렇게 아뢰자 성종도 그의 의견을 옳게 여겨 쌀을 대동강에 버리는 것을 중단 시켰다. 그리고 다시 서희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나라 안북부까지 이르는 수백리 사이는 모두 여진이 차지하고 있어 선황상 광종께서 이것을 취하여 가주, 송성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 거란이 침략한 의도는 이 두개의 성을 탈취하려는 데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고구려의 옛땅을 찾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를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거란의 병세만을 보고 경솔하게 서경 이북 땅을 떼어 주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삼각산 이북 또한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그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끝없이 강요한다면 우리 땅을 다 내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개경으로 돌아가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일전을 겨루게 한 뒤에 다시 화친을 논의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조정회의에서 거의 할지론으로 국론이 결정될 찰나 서희의 서릿발 같은 비판에 성종과 문무대신들도 수긍했다. 그리고 민간어사 이지백이 다음과 같이 서희의 의견에의 적극 찬성함에 따라 성종은 더욱 확신이 섰다. 만일 서희 혼자만 그렇게 주장했으면 성종이 서희의 의견을 받아 들여졌을까? 성종은 조정대신들이 물러간 뒤 곰곰히 생각했다. 서희와 이지백의 말대로 일전을 불사한다? 하기야 한번 붙어 보지도 못하고 항복 또는 할지를 한다는게 고구려 후손으로 망신스럽고 선황상들에게 죄송함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 두 사람의 진언으로 성종은 힘을 얻었다. 이지백의 의견은 이러했다.

"태조께서 나라를 창건한 후 대통을 이어옴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충신도 없이 모두들 국토를 떼어 경솔하게 적에게 주자고 하니 이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청하건데 금은보화를 뇌물로 소손녕에게 주고 그의 속 마음을 타진해 보십시오. 또한 국토를 경솔히 할양하는 것 보다 차라리 선대로 부터 전하여 오던 연등회, 팔관회, 선랑등의 행사를 다시 거행하고 다른 나라의 풍습을 본받지 말아서 국가를 보전하고 태평을 누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먼저 신명께 고하고 그 다음에 싸우거나 화친하는 문제는 황상 폐하의 생각대로 결정하시옵소서."


고려조정에서 할지냐 일전불사냐 하고 갑론을박을 벌일 때 소손녕은 고려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래도 오랫동안 답변이 없자 소손녕은 드디어 안융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군사 박양유는 대도수(大道秀)와 유방(庾方)과 함께 3만천5만의 병력으로 거란을 막기로 하였다. 박양유는 대도수와 유방과 상의하여 일단 수성전을 펴기로 결정했다. 병력수가 월등히 거란이 우세한 이상 정면 승부는 바로 패배를 자초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도수는 살수 상류 50리 근방에 강을 막을 수 있는 모든 물자를 모아 놓고 밤에 강물을 가뒀다. 왜냐하면 낮에 강물이 줄면 거란측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혹시 우리측 군사들이 물을 막는 작업이 눈에 뛰기 쉬울 것 같아서 그렇게 명령했다. 마침 물을 막는 날밤은 보름달이 밝게 비추고 있어 햇불도 필요없어 거란측에게 들킬 수 없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안융진성에는 박양유와 유방의 지휘아래 5천의 군사만 남겨두고 대도수는 안융진성 부근과 강을 따라 늘어선 숲속에 매복을 했다.

드디어 거란의 선봉대가 강물을 헤치며 말을 타고 건너오기 시작했다. 선봉대는 병력수가 얼마 안되어 고려의 작전을 시험하는 것 같아 화살의 사거리내에 올때까지 기다렸다. 거란의 선봉대는 우리측의 화살 사거리 범위 안에 들어오면서 고함을 쳤다.
"고려군사들은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오늘밤 내에 모두 몰살을 당하리라.!"
이말을 들은 유방은 껄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거란 애송이들아! 여기가 어딘줄 알고 들어 왔더냐? 이 땅은 하늘이 점지해준 고려 땅이다. 고려 땅을 침범한 이상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이 한마디에 고려군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거란 군사들은 약간 움찔 하는 듯 했다. 대도수는 상류에 물을 막아놓은 곳에 병사를 보내어 줄이 3번 당겨지면 가둬 놓은 물을 터트리라고 명령했다. 거란 선봉대가 대부분이 화살 시위권에 들어 왔다. 유방은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저 거란 선봉대를 몰살시켜라.!"
이 명령에 거란의 선봉대는 대부분 화살에 맞고 강물에서 버둥거리다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에 고려군사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조금 뒤 소손녕이가 맞은편 강가에 나타나 큰 소리로 외쳤다.
"고려군사들은 모두 내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살려 줄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황천으로 보내주마.!"
이에 유방은 더욱더 큰 소리로 외쳤다.
"소손녕은 들어라! 너희들 군사는 80만이라 하나 본인이 파악하니 대부분 오합지졸에 불과하구나. 한번 붙어보자 누가 이길 것인지?"
이렇게 유방은 소손녕의 약을 잔뜩 올려 놓았다. 이에 소손녕은 정예부대 약 10만여명을 도하시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손녕은 밤새 강물이 얕아진 것을 모르는 듯 했다. 유방은 연락병을 대도수에게 보내 곧 거란 정예병이 강을 건널 것 같으니 보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달했다. 드디어 거란 기마명들이 얕아진 강을 물을 튀기며 건너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5만명 정도가 강의 절반을 건넜을 때 유방은 상류에다 연결해 놓은 줄을 3번 당겼다. 거란의 군사들은 빠른 속도로 안융진성에 다가오고 있었다. 거란의 일부 정예 기마병이 안융진에 상륙할 시점에 상류에서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며 강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거란 기마병 대부분은 강물에 떠내려 가고 어째 운좋게 안융진에 도달한 거란군사들은 강가 숲속에 매복해 있는 고려군사에 의해 목이 달아나고 있었다. 이리하여 소손녕은 정예기마병 10만을 몇시간만에 잃어 버렸다. 이 승전보를 박양유는 개경으로 보내니 성종이하 문무대신들도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서희와 이지백은 그래도 거란의 70만 병력이 있으니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성종에게 거란군의 침입통로인 봉산군과 안융진의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주청했다.

이 안융진 전투가 있은 후 소손녕은 또 고려에 "70만 병력이 남아 있으니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쓸어 버리겠다"고 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에 성종은 고심했다. 안융진 전투에서 이기긴 했지만 계속 전투가 벌어질 경우 고려로서는 거란을 완전히 진압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장영(閤門舍人)을 보내 화의 교섭을 진행하도록 거란측에 보냈다. 그런데 소손녕은 고려측 대표를 아래와 같이 대신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하여 화의교섭이 깨져 버렸다.

"고려는 마땅히 조정의 대신을 우리의 軍前에 보내어 나 소손녕과 면대하도록 해야 화의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또 빈손으로 돌아온 장영을 보고 성종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면 누굴 보낼 것인가?
서희는 곰곰히 생각했다. 분명히 거란이 안융진 전투에서 패배했는데 보복할 생각은 않고 '항복하라. 화의대표를 대신으로 격상해라'등 이상한 요구만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거란이 고려를 완전히 정복할 마음이 있으면 이때까지 봉산군이나 안융진 건너에서 몇개월을 진치고 있을까? 거란이 고려 땅을 뺏았을 마음이 있다면 사신으로 간 장영의 목을 베도 가당치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모든 중신이 가고 싶어하지 않은 화의대표로 자청했다. 서희는 그 날밤 북두칠성을 올려다 보며 천지신명께 고려의 안위를 빌고 협상이 잘되기를 또 빌고빌었다.


4. 진정한 고구려의 후예

서희는 성종의 위임장과 국서를 가지고 안융진 맞은 편에 있는 소손녕의 진영으로 가서 역관으로 하여금 상견례하는 절차를 묻도록 하였다. 소손녕이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는 마땅히 뜰에서 나에게 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희는
"신하가 임금을 뵐 때에는 뜰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禮이다. 그러나 두 나라 대신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하고 반대했다. 재삼 서희가 반대하고 또한 소손녕이 고집하므로 서희는 화를 내며 숙소로 돌아와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소손녕은 전에 한번 서희를 만난 적이 있고 지금도 하는 행동이과 인품이 비범하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마침내 당 위에서 대등하게 대면하는 예식절차를 승낙하였다. 이리하여 서희는 소손녕의 진영 문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 소손녕과 뜰에서 마주서서 읍한 후에 당위로 올라가 예를 행하고 동서로 대좌하였다. 사실 서희가 이렇게 쑈(?)를 한 것은 물론 각나라를 대표하기에 대등하게 예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였으나 속으로는 소손녕의 마음을 떠보아 정말로 고려를 침범하여 속국 혹은 땅을 할량받을 목적인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 었다. 서희는 소손녕이 예에 침착하는 것을 보고 거란이 고려를 완전히 정복할 의사는 없고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거란이 고려에게 무력시위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서희는 아직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서희와 소손녕이가 마주보고 대좌하자 먼저 소손녕이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귀공께서 우리 진영에 머물고 간 뒤에 귀국의 조정에서 어느 정도 우리의 의견을 받아 들일 줄 알았소. 그런데 나의 희망과 반대로 전투가 발생하여 섭섭하기 짝이 없소. 오늘은 우리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에 서희는 속으로 '조금전만 하더라도 예를 갖추어야 하니 대조의 대신 앞에 절을 해야 하니 하면서 이제는 약간 수그러져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자고...그러면 내가 예상한대로 우리 고려를 정복할 의사는 없단 말이 아닌가?' 이에 서희는 예를 갖추어 말했다.
"장군께서는 참으로 아량이 넓소! 나 같으면 고려를 계속 밀어 부쳐 아리수(한강)까지 밀어낼 건데....흠흠."
소손녕이도 호탕하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우리 거란은 조그마한 사항 가지고 쪼잔하게 굴 나라가 아니오. 우리의 강토는 중국 화북지방 이북과 몽고 그리고 발해의 전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대국이오. 이 점 귀공께서 참고 하기 바라오!" 서희도 말하기를 "그 정도의 넓은 영토를 가졌으면 고려같은 나라를 침범하지 않아도 될텐데 왜 침범했소?" 이에 소손녕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 우리에겐 전에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고려만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있소. 거기에다 고려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옛땅은 우리나라 소속인데 당신네들이 우리 땅을 침식했소. 또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우리와는 통교하지않고 바다건너 송나라와 통교하는 까닭에 이번 정벌을 하게 된 것이오." 이말을 들은 서희는 소손녕의 정벌이유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렇지 않소.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요. 그래서 국명을 고려라하고 국도를 평양으로 정했소. 그리고 경계를 가지고 논한다면 귀국의 동경이 우리 영토안에 들어와야 하오. 그러므로 어떻게 장군께서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할 수가 있소?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소. 그런데 그 여진은 완악하고 간사스러워 육로로 가는 것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도 왕래가 더 곤란하오. 그러니 국교를 열지 못하는 것은 여진 탓이오. 만일 여진을 몰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거기에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을 통하게 하면 어찌 국교를 맺지 못하겠소? 장군이 나의 의견을 귀국의 임금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소?"
실로 논리 정연한 반박이었다. 서희의 예감과 그리고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라는 확신감,협상에 대한 기술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밑천이었다. 한편 소손녕으로서는 자신도 할말이 더 있겠지만은 저번처럼 다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서희의 말대로 고려가 땅은 작지만 고구려의 후계자라고 확신을 가진 이상 함부로 행동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양제와 당태종도 얼마나 고(구)려에 당했는가? 우리도 그렇게 당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 불길한 전조가 한달전 전투의 패배가 아닌가? 소손녕은 서희에게 말했다.
"대인! 오늘은 객관에서 푹 쉬시고 내일 다시 한번 만나 의견을 다시 한번 조율합시다. 그게 좋지 않겠소? 나라간의 약속이 하루만에 이루어 진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소. 오늘 대인에게 술상과 여진 계집아이를 보낼테니까 푹 쉬도록 하시오!" 이에 서희도 찬성하며 말했다.
"장군도 장군나름대로 생각이 있질 않겠소? 그러니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합시다." 이렇게 하여 첫날은 이렇게 끝을 맺고 각자 방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객관으로 돌아온 서희는 여진 계집이 건네주는 술을 한잔 들이키며 분명 거란은 고려를 넘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과의 통교를 원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왜냐하면 소손녕은 고려하고 국교를 맺었다고 하나 별로 왕래가 없는 송과의 국교를 트집잡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조만간 거란과 宋나라간의 큰 전쟁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서희는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여진 계집아이는 술을 더 마시라고 앙탈을 부리며 서희곁에 바짝부터 유혹을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어떻게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옆에 술시중드는 여진 아이도 핏줄상 우리와 같은 핏줄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아이도 측은해 보였다. 자기를 안아 달라고 보채는 이 아이를 할 수 없이 안아 주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여진 아이가 "대감은 고려에서 두번째 가면 서러울 정도로 박식하다면서요. 오늘 대감을 모시게 되어 너무 기쁘옵니다. 오늘 저랑 비록 하루가 될지 모르지만 깊은 운우의 정을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떤지요?"하면서 서희의 가슴을 두들기며 애교를 부렸다.
서희는 이 말을 듣고 '아! 발해가 망하는 바람에 이제 여진이 남의 나라 사람이 다 되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콧잔등이 쨘했다 . 아직도 여진 계집아이는 서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희의 머리에 뭔가 퍼뜩 지나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거란이 트집잡는 송과의 통교문제다. 아까도 예견했지만 거란과 송나라간의 일전이 벌어지면 혹시 거란이 우리 고려가 송나라 편을 들어 거란의 후방을 칠까봐 미리 우리를 묶어 놓으려는 목적으로 필요도 없는 80만 대군을 끌고 와서 제대로 전투다운 전투도 안해보고 항복만하라고 하는 것이 아닐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해답이 나온 것 같았다. 답을 찾은 듯한 서희는 여진아이가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며 술에 취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소손녕이가 호위병을 이끌고 직접 서희를 모시려 왔다. 그 전에 서희는 벌써 일어나 한번 더 소손녕과 담판을 매듭지을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첫째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이긴 하나 거란은 자신들이 더 많은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고 있어 혹시나 여기서 또 트집을 잡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그러면 우리가 정통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둘째 고려가 왜 거란과 통교하지 않고 바다건너 송나라와 통교하는지 한번 더 강조해야 한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이 생각에 잡혀있을 때 소손녕이가 인기척을 내면서
"대인! 밤사이 푹 쉬셨습니까? 그리고 별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하고 먼저 인사를 한다. 여기서 서희는 답답한 측은 오히려 우리 고려인데 저 사람이 왜 일부러 내 침소까지 찾아와 아침 인사를 먼저 할까? 서희는 여기서 어제 밤에 자신이 상상했던 바를 유추해봤다. 아!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분명히 송과 거란사이에 전쟁이 날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다독거리려 온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한번 안융진 전투에서 당했기 때문에 만일 회담이 결렬되면 자신의 거취도 불명확해질 것이 아닐 것인가? 이래서 서희는 애써 담담한 채 말했다.
"장군이 이곳까지 행차하시니 과분하군요. 엊저녁에 대접 잘 받고 잘 쉬었소이다. 장군도 고단하실텐데 일찍 일어나셨군요."라고 대답하니 소손녕은 호휘병을 향해 "너희들! 고려의 대인을 아침식사할 수 있도록 모셔라!"하고 외쳤다. 아침식사 도중 소손녕은 계속 서희의 눈치를 보는 것을 서희는 직감했다. 무었때문에 기세등등한 대조(소손녕의 말대로)의 장군이 나에게 저리 아첨에 가까운 행동을 보일까? 물론 자신의 진영을 찾아온 사신을 극진히 대접하여 돌여 보낸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모든 나라의 전통이지만.....


5. 마지막 협상

아침식사후 다시 서희와 소손녕은 마주 보고 앉았다. 둘다 어제 하고 싶었던 말은 거의 다했던 바라 가벼운 담소로 시작 되었다. 먼저 소손녕이가 입을 열었다.
"저번 안융진 전투를 지휘한 장군이 누구요? 나는 그 사람의 작전에 완전히 속아 그만 당하고 말았소. 평소에도 살수가 그리 깊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날도 수심이 깊지않아 10만명을 투입했는데 살아온 병사는 부끄럽게....도저히 창피해서 대인에게 말못하겠소." 이에 서희가 말하기를
"아무리 원정대가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땅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누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겠소? 그것은 전투의 기본 상식이 아니오? 그 전투는 장군이 잘못 지휘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리를 조금 더 잘 이용한 덕분이죠. 껄껄껄......."
이에 소손녕은 무릎을 탁치며 화답하기를
"맞소! 우리는 아시다시피 옛날에는 초원을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이 아니오? 탁트인 장소에서는 우리가 유리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지만 고려처럼 곳곳에 강과 산이 있는 곳에는 백만명을 동원해도 못당하겠소. 이제야 옛날 수양제가 당한 이유를 알겠소. 수양제는 130만을 출병시켜도 고구려의 30만 군사에 몰살을 당했다지요?" 이에 서희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하기를
"그렇소!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4000년의 역사가 끊기지 않고 이제까지 이어지고 있다오. 바다건너 송나라도 나라를 세운지 50년 정도 거란도 100년을 못 넘기고 있지만은 우리는 조선이 2000년 고구려가 900년 신라가 무려 1000년 백제가 700년 발해가 200년 이제 우리 고려가 100년에 가까와 지고 있소. 중원의 나라가 거의 200년을 못채우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 그 이유가 나오지요." 소손녕은 서희의 말에 그 말 옳다는 투로
"대인의 설명 듣고 보니 참으로 옳은 말이오. 중원과 북방에서 수많은 나라가 명멸했지만 옳게 200년을 넘긴 나라가 漢과 唐뿐이오. 나머지는 하루살이처럼 일어났다 사라졌지요.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우리도 집안단속을 잘하여 고려와 같이 4000년을 넘겨야 할텐데 우리민족은 유목민이라 그렇게 될런지 모르겠소. 말갈도 고구려와 발해에 속해 있다가 이제는 우리의 신민이 되었고 흉노는 저멀리 북쪽으로 이동해 버리고 돌궐은 서역으로 가지 않았소. 그러고 보니 우리 거란도 좀 불안하네요. 지금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서희는 소손녕이 좀 수그러지자
"우리 고려와 거란이 손잡으면 그런 일이 생기겠소. 거란도 멀리보면 우리 고려와 친척인데...안그렇소? 장군!" 하고 오히려 위로하니 소손녕은 조금 마음을 풀며
"이제 우리 한담은 이것으로 그치고 어제 주고 받은 이야기를 매듭지읍시다. 서대인은 고려가 거란과 통교를 맺지 못한 이유가 가운데 여진때문이라고 하셨지오?" 하고 어제 한말을 되새기니 서희는 아직도 내말을 이해 못하느냐? 하는듯이
"장군! 거란과 우리 고려사이에 여진이 땅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나 거란이 통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래서 우리 고려가 바다건너 송나라와 통교하는 것이 오히려 쉽소. 그러니 귀국과 우리 고려사이에 있는 여진을 몰아내고 육로를 터준다면 귀국과 통교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그리고 그 땅은 본래 고구려와 발해땅이 아니오?" 하고 말하니 소손녕은 이 말을 듣고 어제 서희가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하며 말했다.
"그 말씀이 옳소! 나도 어제 밤에 곰곰히 생각했는데 서대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대로 거란과 고려는 먼 친척뻘되는데 서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소.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죠" 서희는 소손녕의 이 말에 바로 어제한 이야기를 한번 더 강조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오. 그러니 귀국의 임금께 우리의 이야기를 문서로 만들어 재가를 받도록 하시오." 그러자 소손녕이도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대인의 말씀은 참으로 명쾌하오. 나같은 무장은 따라갈 수가 없구려. 대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으니 우리 황제도 쾌히 승락할 것이오." 이리하여 서희와 소손녕은 두번째 만나 담판을 매듭짖고 거란의 황제의 재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협상결과를 소손녕이 거란 본국에 보고하니 소손녕의 보고를 받은 거란의 성종은 "고려가 이미 화호를 청하니 이를 받아들임이 마땅하니 군대를 철수시켜라' 는 명을 내렸다. 소손녕은 성종이 재가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고려조정에 전달하였다. 소손녕이 보내온 합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재가를 받았는 바 우리 임금(거란의 성종, 우연의 일치로 사후 휘호가 둘다 성종으로 추존됨)은 고려와 조속히 화호하라고 지시하였고 이제 국경이 서로 접하게 되었으므로 小로서 大를 섬기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규범이니 이러한 원리로 출발하여 끝가지 가야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이고 만약 이를 베풀지 아니하고 미리 방비하면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중단될 우려가 있으니 고려와 더불어 협의하여 중요지점에 城池를 만들도록 지시하였읍니다. 우리의 임금의 명령하에 의거하여 고려가 알아둘 것은 압록강 서편 지역(만주 서남지역)에 5성을 쌓는 일이며 이것은 3월 초에 공사를 착수하게 될 것입니다. 청컨대 대왕(고려의 성종)은 미리 지휘를 하시어 안북부(안주)로부터 압록강 동편에 이르는 지역 280리에 걸쳐 성을 쌓을 것을 지시하십시오. 그리고 성을 쌓는 공사는 양국이 함께 착수하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車馬의 길을 터서 고려가 거란에 조공하는 길을 열어 영원히 거란을 받듦으로서 고려는 스스로 평안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 두가지다.
1. 고려와 거란이 통교하는 것(고려가 거란을 받드는 것):고려는 거란에 朝覲(거란의 왕을 배알하는 것)과 正朔(고려가 거란의 달력을 사용함으로써 신민이 되는 것)
2. 거란이 압록강 동편에 있는 여진의 옛 땅 280리를 고려가 영유하는데 동의하는 것.

이에 따라 서희는 세치의 혀로서 소위 강동 6주((흥화진,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 )를 획득했다. 이렇게 하여 실질적인 협상은 끝이 났다.이렇게 협상이 종료된 뒤에 소손녕은 기념으로 연회를 베풀고 서희를 초대했다. 그러나 서희는 소손녕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정중히 거절한다.
"장군! 아직도 거란과 고려는 살수양안에서 군대가 대치중이오. 어찌 전쟁중인데 내가 어찌하여 연회에 참석할 수 있겠소. 당신이 일으킨 전쟁때문에 고려 군사나 백성들이 아직도 고통을 당하고 있고 장군의 군사들도 진영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있소." 라고 말하니 소손녕은 과연 서희는 고려가 배출한 만고의 충신임을 또 확인한다. 소손녕은 또 다시 서희를 보며 달랜다.
"우리 황제가 협상문을 재가하였고 귀국의 임금도 지금쯤 내가 보낸 문서를 읽고 만족해 하실거요.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책임지겠소."라고 말하니 서희도 어쩔 수없이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서희는 연회에 참석하기 전에 소손녕에게 다시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잘못한 날이 없지만 귀국의 대군이 멀리까지 동원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임금이나 신하가 모두가 황급히 무기를 손에 잡고 전쟁터에 나온지가 여러 달이 되었소. 어찌 잔치를 하고 즐기겠소?" 그러나 소손녕도 다시 한번 말하기를
"두 나라의 대신이 만났는데 어찌 친목하는 예식이 없겠습니까? 대인! 실질적으로 협상은 끝이 났으니까 전쟁도 끝이 난게 아닙니까? 우리둘 비록 악연이나마 만나서 여러날을 보내고 다시는 언제 만날 지 모르는데 어찌 연회라고만 하십니까? 이별주를 서로 나눈다고 생각하면 아니되십니까?" 소손녕의 이 말에 못이긴 척 연회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적진에서지만 만사를 다 잊고 매우 즐겁게 놀고 만 7일만에 고려진영에 돌아왔다. 돌아올 때 소손녕은 서희에게 낙타 10마리 말100필 양 1.000마리 비단 500필을 예물로 주었다.

이로서 협상은 끝났다. 서희는 협상으로 강동 6주를 회복함으로 태조왕건의 북진정책의 일부나마 이행하였고 거란과의 첫 전투를 이김으로 거란이 고려를 만만하게 보지않게 만들었고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 대등하게 협상을 벌임으로 자존심을 지켰다. 서희가 거란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낸 것은 뭐니뭐니 해도 첫전투의 승리가 기반이 되었고 서희 자신의 대쪽같은 성품과 풍부한 학식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확실한 역사관이 뒷받침이 되었다. 물론 고려가 거란의 신민이 된다는 거북한 내용이 있으나 그때 역사적인 사정으로 보아 별로 비난할 것이 못되며 그 당시의 사대정책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국제정세를 이용하는 한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소손녕과 서희가 헤어질 때 보면 거란측의 예물이 너무 많아 오히려 거란이 고려를 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므로 사대정책을 편다는 것이 굳이 민족의 자존심을 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외교상 실리만 챙기고 백성들의 고통만 없어준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


서희가 협상을 성공리에 마무리 짓고 개경으로 돌아왔다. 성종은 서희를 바라보며 '저 서희같은 신하가 있었기에 사직을 보전했지 아차했으면 어찌되었을꼬?' 하며 속으로 서희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이렇게 서희의 노고를 칭찬했다.
"중군사! 자네는 어찌 옛날 자네 조부하고 똑같은가? 자네 조부는 선황상 광종에게도 목숨을 내놓고 간언했지. 대쪽같은 같은 성품은 빼닮았어. 특히 옳다 싶은 것이나 남이 하기 싫어하거나 위험한 것은 자청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면 부전자전 아니 祖傳孫傳이지. 암 그렇고말고!" 이에 서희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황상 폐하! 국록을 먹는 벼슬아치로서 당연히 임금의 명을 수행해야 하며 계급이 높을수록 더 위험한 일을 맡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아뢰옵나이다. 폐하! 이번 일로서 우리는 이제 국제정세에 눈을 다시 떠야 할 줄 아룁나이다. 바다건너 宋나라는 종이 호랑이로 변해있고 지금은 저 거란이 중국의 북방과 몽고 그리고 저 멀리 동해바다 끝까지 세력을 떨치고 있사옵나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셔야 하옵니다. 비록 우리가 국서상 거란의 신하국이 되었지만 그것은 형식이고 실제로는 거란은 우리 고려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얼마 안있어 거란과 송나라는 전쟁에 돌입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에 따라 정세는 달라 질 것이고 그 때는 강동 6주만이 아니라 더 많은 옛고구려 땅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이점 꼭 헤아려 주시기 바라나이다." 이 말을 들은 성종은 '과연 서희로다. 원로대신들 중에 누가 서희를 이길 것인고? 모두 다해봐야 서희 한 사람을 못이길 것이다. 서희가 내곁에 있어주는 것만해도 나는 복받은 임금이야' 라고 생각했다.

성종은 국교를 맺기 위해 시중겸 상군사 박양유를 서둘러 거란에 보내어 국교를 맺도록 했다. 이에 서희는 성종에게 간언했다.
"황상 폐하! 그렇게 빨리 국교를 서두를 필요가 없사옵나이다. 답답한 측은 오히려 거란이옵니다. 70만 대군을 이끌고 본국으로 회군하려면 최소한 3개월은 걸릴 것이고 그때야 소손녕이가 동경에 도착하여 거란의 왕을 만날 것입니다. 그 때를 맞추어 사신을 보내어도 늦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거란이 강동 6주를 우리에게 준다고 했으나 아직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마디 더 붙이건데 지금 겨우 압록강 남쪽 땅만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압록겅 저편의 땅까지 회수될 때까지를 기다려서 국교를 정상화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성종은 서희의 간언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였다. 서희의 말은 옳으나 국서에는 압록강 저편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다. 아무리 국서를 훑어 보아도 압록강 저편에는 언급이 없고 오로지 압록강 안쪽 강동 6주만 언급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희를 다시 불렀다.
"중군사! 국서에는 강동 6주외에는 땅을 준다는 말이 없는데 압록강 저편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서희가 말하기를
"소손녕이가 나머지 군대를 끌고 중원으로 향하면 압록강 방비가 소홀히 할테니까 그때를 노려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땅을 점령하고 소손녕의 대군이 중원으로 진출하면 압록강 저편도 우리가 여진의 동태를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를 기다려 국교를 정상화하면 거란측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요구대로 응할 것입니다."
성종은 서희의 말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했으나 방금 서희가 한 말은 '서희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말이지 양쪽 임금끼리 약속한 국서는 아니지 않은가? 혹시 서희가 한말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성취감에 도취되어 착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다시 서희를 불렀다.
"중군사! 아무리 국서를 훑어봐도 압록강 건너편을 우리에게 준다는 글은 없소. 혹시 잘못되면 국교가 성립이 안될 줄 모르니 바로 사신을 보냅시다." 그러고 보니 서희도 생각하기를 성종의 말아 옳았다. 그래서 사신을 빠른 시간내에 거란으로 보내기로 했다. 성종이 서희에게
"중군사! 거란으로 보낼 사신을 누구로 정하면 좋겠소?"하고 물으니 서희는 주저없이 대답하기를
"상군사 박양유 시중이 적격입니다. 서열로 보아 폐하 다음이라 거란에서 벼슬의 높고 낮음으로 시비걸지 않을 것이고 저번 안융진 전투에서 박양유 상군사에게 당한지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성종은 박양유를 불러 국서를 지참하고 거란으로 국교를 맺도록 보냈다. 서희는  소손녕과의 대화한 내용을 박양유에게 일러주면서 혹시 있을 실수를 막도록 하였다. 거란은 박양유를 서희이상으로 환대하며 서로 국서를 교환하여 무난히 국교를 맺고 돌아왔다. 한편 서희는 국교 문서에 명시된 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압록강 유역에 있는 여진을 내쫓고 장흥, 귀화 두 鎭에 성을 쌓았으며 그 다음 해에 선주 ,맹주 두 고을에 성을 쌓는 등 강동 6주 접수에 온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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