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산리(仁山里)
뒤로는 조천리의 지불등이 동남으로 뻗어 내려와 한 줄기는 건질미산에 이르고, 또 한 줄기는 어봉산(魚鳳山)에 이른다. 그 사이에 인목(仁牧), 관목(冠牧), 평지동(平地洞) 등이 있고, 어봉산 아래에 용포동(龍浦洞)이 있다. 북으로는 호암산의 산줄기가 내려와 죽바우산에 이른다. 이 산 아래쪽에 지수동(智水洞)이 있다. 그 사이에는 주위의 여러 마을에 내려온 하천이 모여 청도천을 이루어 무안면으로 흘러 간다. 이 하천을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이 주위에 중신기, 상신기 등이 있다. 동.서로 탁트인 마을이다. 지금도 24번 국도가 마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동.서로 달리고 있다.
1912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인목, 지수, 평지동을 병합하여 인산리라는 법정리를 이루었다. 행정리동은 인산과 평지로 나눈다. 지금은 인목, 관목, 못골, 중신기, 상신기, 지수, 평지동, 용포 등 8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인산초등학교와 청도중학교가 있어서 청도면 교육의 중심지로써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동으로는 고법리, 남으로는 조천리 지불등에서 내려오는 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무안면과 경계를 이룬다. 서로는 구기리, 북으로는 소태리와 인접해 있다. 유적으로는 평지동 지석묘군이 있다.
(1) 인산(仁山洞)
인산리는 본래 관목, 중신기, 상신기, 지수동 등을 합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의 대칭적인 의미에서 붙인 지명이라고 한다. 일찌기 청도김씨와 밀성박씨의 일파가 이 마을에 각각 입촌한 후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또 성주배씨와 신창표씨도 입촌하여 세거해 왔다. 오늘날은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재사로는 관목동에 청도김씨 일문의 강학소였던 흥교재(興敎齋)가 훼철된 후, 그 유지에다 청도김씨 일문의 강학소겸종실로 건립된 인산서당(仁山書堂)이, 또 지수동에는 김하정(金夏鼎)의 시천(始遷)을 추모하고, 그 후손들의 회합 수목하기 위한 종실로서 건립된 돈의정(敦義亭)이 각각 보존되고 있다.
○ 관목동(冠牧洞, 관목골)
중신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일명 관목골이라고 한다.
○ 중신기(中新基, 중사태)
청도중학교 위쪽 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일명 중사태라고 한다. 이것은 중새터가 중사태로 변음된 것이다.
○ 상신기(上新基, 상사태)
중신기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일명 상사태라고 한다. 이것은 상새터가 상사태로 변음된 것이다. 이 마을의 일부는 구기리에 속하고, 농산물집하장이 있는 일대만 인산리에 속한다.
○ 지수동(智水洞, 屯止, 屯尾)
중신기의 북쪽 죽바우산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화악산의 다른 이름이 둔덕산(屯德山)인데, 이 산의 끝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둔지(屯止) 혹은 둔미라고(屯尾)라고 한다. 이것이 변해서 들미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인자요산, 지자요수의 대칭적인 의미로서 지수(智水)라고 붙였다고 한다.
○ 건질미산(음달산-陰達山)
인산리 서쪽에 있는 산이다. 지금은 이곳에 밤나무밭이 있다. 근기리에서는 이 산이 늘 음달지다고 해서 음달산이라고 한다.
○ 구멍바우
건질미산 중턱에 있는 바위이다. 지수동에서는 허옇게 보인다. 이 바위에 구멍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 안에 2-3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방이 있다.
○ 무당바우(야시방우)
야시방들 동쪽 산에 있는 바위이다. 이곳에서 무당들이 많이 빌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야시방우라고 한다.
○ 문동골(門童谷)
나무송골과 뒷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 머련진바우
죽바위산 정상부의 아래쪽에 있는 바위이다. 이곳에는 바위가 여러 개가 있는데, 소태리 쪽으로 나온 것이 죽바우이고, 인산리 쪽으로 나온 것이 머련진바우이다.
○ 나무송골
지수동의 서북쪽 맹근솔비알과 문동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쇠구렁굴(새구렁굴)
야시방들 동쪽에 있는 산에 있다. 이곳에서 일제 때 철광을 채굴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도 이 굴 안에서 철분이 많이 흘러 나와 주위에 있는 토지에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쇠구렁이라고 한다. 이 일대에서 고법리의 바래미산까지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다. 이곳에는 많은 토기와 금가락지, 철부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 생이방우
나무송골과 문동골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가 상여를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 뒷골
지수동 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마을 뒤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맹근솔비알
지수동에서 소태리 유촌동으로 가는 산모롱이 일대를 가리킨다.
○ 상사태들
상신기에 있는 농산물집하장에서 지수동으로 가는 길목 일대에 있는 들이다.
○ 상사태보
구기리 상신기 마을 위쪽에 있는 보이다. 이곳에 웃보, 아래보가 있다. 상사태들에 물을 댄다.
○ 야시뱅들(야시방들, 부엉들)
지수동 마을 밑에 있는 큰 들이다. 부엉들이라고 한 것은 인산리 앞에 있는 모든 들을 가리킨다. 옛날에 소태리의 구천지골에 구천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승려가 9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씻었는데, 그 뜨물이 흘러 내려와서 이 일대의 들이 부옇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 야시방보
지수동과 두곡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하천가에 있는 보이다. 야시방들에 물을 댄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 연당
지수동 마을 앞 냇가에 있는 조그마한 못이다.
○ 중신기들
중신기 마을 앞들이다. 마을 앞에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 진등(진등대)
지수동 뒤산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죽바우산 정상에서 마을 뒤에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일명 진등대라고 한다.
○ 바래미보
지수동의 위쪽 하천에서 시작되며, 바래미들에 물을 댄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 황소골
건질미산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황소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바위에는 황소가 뿔로 막은 자국과 입으로 문지른 흔적이 남아 있다.
(2) 평지동(平地洞)
평지동은 인목, 못골, 용포, 평지동 등을 합친 마을로서 평지동의 본동이다. 이 마을은 평지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마을은 인산동과 함께 청도김씨 일파가 세거해 왔으며, 인목동에는 전주이씨 일파가 입촌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오늘날은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재사로는 전주이씨 일문의 시천조(始遷祖)인 이감(李堪)과 이복(利復) 부자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한 재숙소(齋宿所)로 원모재(遠慕齋)가 보존되고 있다.
○ 인목동(仁牧洞, 仁牧谷)
평지동의 남쪽 어봉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못골과 합쳐 인목골이라고 한다.
○ 못골
인목동의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뒤에 못이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 용포동(龍浦洞)
인목동의 남쪽 청도천 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앞에 용지보와 용지들이 있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다.
○ 곡량고개(谷良峴)
인목동에서 무안면 양효리 곡량으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
○ 공동산(共同山)
인목골의 마을 안쪽에 있는 산이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며, 공동묘지가 있다.
○ 서당모팅이
인목동에서 평지동 쪽으로 가는 산 모롱이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옛날에 서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넙덕바웃걸
인산국민학교 앞에 있는 들이다. 이곳에 넙덕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바위가 지석묘이다. 이 주위에 3기의 지석묘가 있다.
○ 용지들
평지동과 용포동의 사이에 있는 들이다.
○ 용지보(용진갯보)
평지교 위쪽에 있는 보이다. 일명 용진갯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