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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병대를 사랑하는 사람들~[해.사.사] 원문보기 글쓴이: 찡 코
총론 전쟁 그리고 다이옥신 작전하의 촌락 고엽작전의 목표가 되었던 배트남의 촌락과 숲을 근간에 몇번째나 찾아 보았을까. 거기에서는 언제나 여러사람들과 숙식을 함께하였다. 그런 취재를 거듭하던 와중에 전후의 20년이 지나갔다. 전쟁중으로 부터 헤아려보면 이 25년동안 20회나 베트남을 다녀왔다. 일본으로 돌아왔을때마다 『다이옥신에 오염되지는 않았나』하고 물어오는 일이 잦았다. 내몸을 걱정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라고 나는 언제나 말해왔다. 물론 작전 당시는 높은 레벨의 오염이 있었을 터였다. 취재의 초기에는 나도 꺼림직했고 다소의 오염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가령 현장의 오염이 아무리 심각했을지라도 취재는 짧은 방문에 지나지 않았고, 거기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그 위에 열대·남베트남의 기후는 거칠다. 우기에는 매일 반드시 퍼붓는 스콜이 오고, 후에는 쨍쨍 내리쬔다. 건기에 세찬 바람이 불면 안개가 낀 것 처럼 흙먼지가 날린다. 땅위에 쏟아부은 다이옥신은 땅속에서 분해되지는 않아도 흙탕과 바람에 실려서 자꾸자꾸 이동하여 버리는 것이다. 살포로부터 10년 만큼의 기간에 그것은 상당히 진행됐다. 지표에서 개울로, 개울에서 메콩강과 같은 큰강으로 흙탕은 흘러서 최후에는 오폐수와 더불어 바다에 토해낸다. 종종 현지를 방문하여 조사를 수행해온 아이엔대학농학부(愛媛大學農學部)의 협본(脇本)교수등의 보고에 의하면 베트남 전국에서 수집된 111지점의 토양표본중 고엽제로 말미암은 다이옥신이 발견된 것은 5분의 1이었다고 한다. 살포지였던 타이닌성이 14ppt였는데비해 살포목표지가 아니었던 호치민시에서 59.2ppt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베트남측의 조사로도 대량 살포되었던 돈나이강의 강밑 흙탕에서는 찾지못했고 도리어 살포지하유역에 불과한 사이공강의 흙탕에서 231ppt가 검출되기도 하고 있다. 오염이 무질서하게 확산되면서 이동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메셀슨교수등은 1973년에 돈나이강의 물고기로부터 522∼814ppt의 다이옥신을 검출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5년후인 88년에 실시된 베트남측의 조사로는 물고기는 0.46ppt이하 밖엔 안되었다. 면밀히 조사해 보아도 베트남의 자연환경중에 다이옥신은 좀체로 찾아볼 수 없는 상황으로 된 것이었다. 땅속에 갇혀있던 다이옥신이 발견되는 일은 있어도 작물, 물고기, 새우, 고기 따위의 오염은 벌써 다른 공업국과 같은 레벨이던가 그 이하 밖에 안된다. 현지에서 마시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것은 전연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사람의 몸에만 남았다. 전에 아직 강한 오염이 있었던 당시에 먹거리와 물에 포함된 다이옥신을 섭취하여 체내축적을 계속하여 온 것은 인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물고기와 야생동물, 가축에도 생체농축을 거친 축적은 있었으나 그같은 생물은 벌써 죽었거나 잡아먹혀버려서 몇회째의 세대교체와 신진대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만은 당시부터 그대로 살아왔다. 일단 사람의 몸에 축적된 다이옥신은 지방조직에 녹아든채 좀체로 배출되지 않는다. 독일의 연구자가 80년대 초에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실험했는데 체내의 오염이 조금씩 배출되어 반감하는 데는 5년에서 7년이 걸린다고 계산한 일이 있으나 12년이라는 분석도 있어서 반감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이 안되고 있다. 어느것으로 하건 살포한지 4반세기나 지난 오늘까지 남베트남의 일부의 주민의 몸에서는 높은 농도의 다이옥신이 발견되는 것이다. 1993년 11월에 베트남의 『고엽제피해조사 10/80 위원회』가 발표한 역학조사보고에 의하면 "게릴라 근거지"라고 하여 집중적인 살포작전이 시행된 남베트남 송베성 주민의 혈액에서는 3.4∼32ppt나 되는 2,3,7,8-4 염화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 87년부터 6년이 걸린 이 조사는 남부의 16개 지역에 사는 40세 이상의 전시체험자 913명에 대해 실시한 것이다. 고엽제의 살포가 없었던 하노이 주민의 혈액이 대조군(對照群)으로 사용되었다. 하노이 주민의 혈중농도는 2.4ppt 이하였고 송베성 주민의 혈중농도는 그의 13배 이상이나 되었다. 85년의 조사에서는 100ppt나 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전체로는 체내축적은 조금씩 감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은 이상한 고농도인 것이다. 그외에 고엽작전의 출격기가 보급기지로 삼고있던 비엔호아와 다낭의 주민에서 각각 28ppt, 18ppt나 되는 높은 농도의 혈중 다이옥신이 발견되고 있어서 미국이 남긴 "기지오염"의 문제가 새삼스럽게 걱정되고 있다. 당시 미국군은 자기들의 기지주변에 고엽제를 정성들여 뿌렸다. 주위의 풀숲과 키가 큰 풀이 자라는대로 말려서 전망을
좋게하여 게릴라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최근의 조사에서도 원래의 미군기지내의 고엽제보관창고의 토양에서 100만ppt를 초과하는 다이옥신이
검출되기도 했다. 2,4,5-T 중에는 1ppm(=100만ppt)-수십ppm이나 되는 다이옥신이 함유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지금도 이러한 오염이
기지에서 발견되는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여성(어머니)들의 몸, 그리고 태아 전쟁중에 머리위에서 쏟아지는 고엽제를 맞았던 날의 일을 혼 디 후옹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밝아올 녘이었는데 미군기가 날아오니까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 끌어 도랑안으로 도망했습니다. 폭격은 면했지만 내려오는 안개와 같은 것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헝겁을 적셔 짜서 코와 입을 덮도록 해주셨습니다. 냄새가 났는데 어떤 냄새였는지는…. 그때 저는 아직 열살쯤이였습니다.』 81년도 저물어가는 타이닌성 로쿠훈촌에서 만난 그녀는 벌써 24세의 젊은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팔에는 3세와 4세가 되는 두 딸아이가 안겨있었다. 둘이 같이 구순열(口脣裂-언청이)의 증상이 있었다. 『이 애들 보다 먼저 애는 유산됐어요. 뒤에 태어태어난 아이에게는 구개열(口蓋裂-입천정 갈라짐)이 있었습니다만 그애도 곧 죽어버렸습니다.』 해방세력의 근거지가있었던 보이로이 숲에 가까워서 촌락은 여러차례 고엽작전에 휩쓸렸다고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유산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이 많다구요』라고 후옹은 말했다. 다이옥신이 태아에 기형을 일으킨다는 것은 벌써 다우케미칼사등이 실험쥐를 사용하여 실시한 동물실험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그것이 예상한대로 사람에게 똑같게 일어났다. 베트남의 많은 여성(어머니)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그 실험이 정확했음을 뒷바침하는 역할을 떠맡은 것이었다. 기형·선천장해가 나타나는 양태도 여러가지였다. 그것은 무뇌증과 구순·구개열, 유합체(癒合體), 사지장해(四肢障害)등의 외표기형에 더하여 심장장해등의 내장기형에까지 미쳤다. 호치민시에 있는 투두(Tu Du)산과병원에는 사산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아이들이 표본으로 진열된 방이 하나있다. 유리병에 가까이 갔더니 태내에서 고생한것이 틀림없는 태아들의 표정까지 선명하여 참을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그 대부분이 고엽제 살포지구에서 온것이라고는 하나 독물이 심각하게 이동확산된 것을 생각하면 출산이상은 살포지에서 끝난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 태아로도 되어보지 못하고 유산으로 사라져간 무수한 애들이 있는 것이다. 투두병원의 기록을 그래프로 보면 출생아에서 보여지는 선천기형은 고엽작전이 한창일 때(1961∼71)보다는 그후에 더욱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살포를 끝낸지 대략 15년인 86년에는 1.6%로 최고에 달했고 이후에는 다시 점점 줄어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데이쿄(帝京)대학의 木田盈四郞교수(유전기형학)는 『독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거의 다 유·사산이 되어버려서 태어나 보지도 못한다. 체내의 독이 줄어가면 손상은 있어도 차차로 태어날 수 있게된다. 더욱 줄어 농도가 희석되면 평상화(平常化)로 되어간다』고 분석했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다이옥신은 조금씩 몸에서 배출된다. 기형의 발현이 어렵게 죽음을 모면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라면 그 이전의 오염이 극심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천기형의 발현율에 대해서 일본은 0.93%라는 통계도 있으나, 어디까지를 기형으로 하는가하는 나라마다의 기준의 차이가 있으므로 수치만으로 베트남과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기형발현율은 출생된 어린애들 중에서의 비율이고, 그것보다는 『애당초 "태어났던 것"은 전 수정란의 몇 %였는가가 문제』라고 木田씨는 말한다. 유산율이 극히 커지면 출생은 0에 가까워지는 두려운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하나 남베트남에서 분명히 발견되는 질환은 암의 발생에 관한것이다. 일찌기 일본정부가 제2차세계대전의 배상으로 당시의 사이공정권에 넘긴 쵸라이병원은 지금도 남부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서 자리잡고 있는데, 그곳에는 부인들만이 누워있는 병실이 있다. 침대가 모자라서 한 침대에 두명씩 누워있는 형편이다. 그 여성들은 모두 포상기태(胞狀奇胎) 환자였다. 전암증상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수정란이 태아발생의 도중에 죽은 후, 태내의 융모가 포도알처럼 많은 낭포(囊胞)로 변해가는 것이다. 임신했는데도 자궁내에 태아가 없다. 그런데도 배는 불러와서 본인은 태아가 성장하고 있는것으로 여기게 되어 발견이 늦어지는 일이 많다. 그러나 방치하면 융모암으로 진행하는 위험한 병인것이다. 일본에서는 극히 드문것으로 되어있으나 많은 환자들이 쵸라이병원과 투두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서 남베트남에서는 발생빈도가 높음을 엿볼 수 있다. 포상기태의 빈도통계는 미국에서는 임신 2천에 대해 1건, 유럽에서는 1천2백에 대해 1건인데 여기서는 58∼590에 대해서 1로 보여지고 있다(Ng.T.Xiem 타). 81년에 타이닌성과 민하이성의 주민으로 부터 들은 증언은 『고엽제가 살포된 후 잠시 지나 병약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임신하고 있던 여성들은 유산하고 죽어버린 자도 많았다』라는 내용이 공통적이었다. 임신했던 여성들이 죽어버렸다고 한다면 그중에는 포상기태도 있지는 않았을까. 전시중의 임부들은 병원에도 갈 수 없었고 갔더라도 항암제가 있었을 턱이 없었다. 통계에도 나타나지 않은채 많은 여성들이 남모르게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 투두병원의 포상기태환자수가 전후에 와서 급증하고 있는것도 그러한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는 고가의 항암제는 지금에도 귀중한데 전후10년경의 단계에서는 포상기태의 특효약 메토트렉세이트가 없어서 각 병원은 고생했다. 『그것만 있으면 많은 여성들을 보고 죽이지 않았을텐데』라고 퐁박사는 여러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다이옥신이 일으3키는 통상의 암에 더해서 포상기태와 융모암, 자궁암이 되는 것은 어느때일까하는 두려움이다. 예컨대 자궁이 그것을 모면하여 태아를 기를 힘을 남겼다 하더라도 태아독성이 선천장해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 이러한 고통과 공포를 베트남 여성들은 지금도 짊어지고 있다. 다만 베트남의 여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호치민루트 남자들의 생식기능장해 전쟁중에 군인이 되어 미군과 싸운 베트남 남자들은 대체 몇백만명이나 되었을까. 베트남에 있어서는 "온 민족의 전쟁"이었다고 하는 방식으로 본다면 전쟁에 참가한 것은 남녀노소를 묻지 않고 몇천만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무기를 가진자만 해도 정규군, 지방군, 게릴라, 민병이라는 식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며, 거기에 15년의 세월을 더한다면 정말 수를 알 수 없는 병원수(兵員數)가 되는 것이다. 어느쪽으로 치던지 전투원이었던가 비전투원이였는가를 물을 것 없이 전화로 죽은 베트남인의 총수는 남북 합쳐서 백수십만이라는 추정은 벌써 나와있다. 그리고 고엽작전의 목표지점에 살고 있어서 영향을 받은 사람의 수는 "100만명 이상"으로 되어있다. 모두 대략 추정한 숫자이지만 당시의 상황하에서 정확한 수가 확인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중에서도 가장 극심하게 고엽제를 뒤집어쓴 것으로 볼 수 잇는 그룹이 있다. 그것은 호치민루트에 있던 전투원들이었다. 호치민루트란 북의 게안성으로부터 남의 송예성까지 남북베트남을 묶고 있던 비밀의 군사도로망을 일컷는 것이다. 정글의 두터운 수관(樹冠)아래를 1만6천㎞에 걸쳐서 개척한 그물의 눈 모양의 간선로다. 상공에서는 보이지않을 뿐만아니라 폭격등으로 어딘가에 통행할 수 없게 되더라도 우회 루트로 돌아가면 되는 해방군측의 무장부대에 대한 인적,물적 보급의 네트워크(Network)로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갖고 있었다. 미공군은 이것에 집요한 폭격을 시도했으나 "보이지 않는 도로"에 대한 공격은 효과가 적었다. 그러나 정글은 전부 말려죽여서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리기만 하면 수송로는 노출된다. 미군에 있어서 고엽제는 루트를 파괴시키는데 가장 알맞는 무기였다. 호치민루트를 확보하면서 이동하는 베트남측의 전투원들을 가는곳 마다에서 살포를 받아, 어떤 때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어져버린 살포지에 머물면서 전투를 계속했다. 노출된 도로는 버리고 새로이 길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이 제때에 안될때에는 벌거숭이의 도로를 라이트를 켜지않은 트럭부대가 미군기가 보지못하는 한밤중에 빠져나갔다. 루트의 개척과 병사들의 남하가 1960년 전후해서 조금씩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끝날때까지의 15년간에는 연(延)200만명의 병사가 남북을 왕래하여 대량의 물자를 운반했다. 베트남전쟁을 최종적으로 결정지은 75년 봄의 "호치민작전"도 이 길을 몰래 남하한 기동부대가 전력의 중핵이 되었다. 고엽제의 강한 독성에 폭로된 사람은 해방구 촌락과 해변의 밀림에 사는 사람들과 호치민루트를 사수하고 보수하는 임무를 담당했던 전투원들이었다. 레 카오다이 교수등 베트남의 연구자는 이 병사들에 대한 추적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 밝혀질 것을 생각해보면 두렵기조차하다. 유,사산 따위의 출산이상은 통상 8.4%인데 귀환병들의 경우는 13.2%로 높았고, 영아의 선천이상도 정상적으로
1.1%인데 비해 귀환병측은 2.4%라는 높은 비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부친의 다량의 다이옥신 피폭(被曝=쬐였다라는 뜻)이 있고나서 독성이 강한 단계에서는 정자가 받는 손상이 커서 불임의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정자를 만들어내는 정모세포도 상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염이 희박해지면 정자 등의 활동은 정상화한다. 그러나 정자 그것만은 원기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DNA가 이미 손상되었다면 "고칠수"는 없고 유전학적후유증의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여전히 가설의 단계에 있고 다이옥신이 DNA손상을 일을키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않았다. 그러나 이 가설을 간단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문제로서 인류가 개발합성하여 온 화학물질중에 유전자손상을 일으키는 독물이 몇 개있다는 것은 벌써 확인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오크릿지 국립연구소의 W.L 럿셀박사가 제2차대전후에 시작한 메가 랫츠(MEGA RATS)계획은 1백만 마리의 쥐를 거대한 건물 안에서 사육하면서 돌연변이의 실험을 하는 대규모 연구였다. 같은 조건하에서 쥐의 수컷에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을 투여하여 기형을 일으키게 할 뿐만아니라 변이가 유전되는 독성용량 발견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1백만마리라면 몇만분의 1이던가 몇십만분의 1의 확률에서 일어나는가도 알 수 있고 자, 손, 증손으로 늘어나가는 가계연구를 통해 유전적인 발현율도 조사할 수 있다. 연구를 통하여 발견된 유전자손상 화학물질중에는 예를 들면 항암제로서 임상적으로 사용하여 온 에칠 니도로소 우레아 등도 있었다. 그것은 방사선으로 년간 최대 허용량(1렘)의 5배를 주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돌연변이의 8만배에 달하는 빈도였다. 84년에 일본에 왔을때 강연 후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다이옥신도 동일하게 검증해야할 것중 하나라고 생각하나 예산이 아직 없다』고 말했었다. 사람 정자의 염색체 이상을 유발하기 쉬운 항암제에는 그밖에도 다우노마이신과 브레오마이신도 있다는 것이 아사히가와(九月川)의대의 우에구찌교수에 의해 93년 2월10일 지적되었다. 더욱이 부친의 유전자는 상하기 쉬워서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난다는 것은 쿄다이(京大) 방사선생물연구센터의 사사끼마사오 등의 그룹도 마침내 알아내고 89년의 일본암학회에서 보고하고 있다(89년 10월25일자 『아사히신문』). 뼈에 생기는 암, 골육종의 세포염색체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알게된 것인데 돌연변이는 부모의 구별없이 같은 확률로 일어날 것이라는 유전학의 상식을 뒤엎는 발견이었다. 아버지쪽의 염색체가 태어났을 때부터 돌연변이를 받기쉬운 성질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현상은 젖먹이아이에서 호발하는 윌름스종양에서도 보여진다고 한다. 유전자를 미치게하여 암과 선천이상의 방아쇠를 만들어내는 물질의 존재는 "종(種)의 존속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까지 말한다. 어느편으로 하던지 월남에서의 역학조사의 결과가 던지고 있는 바는 미국 귀환병의 가족에 일어나고 있는 출산이상과도 연관되고 있어서 더욱 역학적연구를 깊게 해야할 커다란 문제인 것이다. 미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일부 귀환병들의 정자감소, 성욕감퇴, 불임 따위의 증상은 전부터 표면화되고 있던 문제였던
것이다. 다음 다음의 세대에게 고엽작전 당시에 무사히 태어났거나 혹은 그후 태어난 어린아이들의 세대가 성장하여 이제는 베트남에서 어른이 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서 아이에게로 오염이 계승되어 가는 중에 다음 다음 세대의 갓난아이에게 또 무슨일이 일어날 것인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때가 다가온 것이다. 인체는 오염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혈액중의 더러운 것도 먹거리의 개스도 배설물이 되어 나간다. 그러나 지방이나 세포조직에 들어와 버린 중금속이나 화학물질따위는 조금씩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이 임신하여 태내에 아기가 있으면 태반을 통하여 오염물질이 이동한다고 한다. 결국 몸에서 나가는 태아쪽에다 "배설"시키고 마는 것이다. 전부 나가버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모체쪽은 얼만큼 깨끗해진다. 그것이 태아독성으로서 작용할 때 갓난아이는 비극을 한몸에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체에서의 배설이라는 이러한 생리기능이 있음으로서 모체가 지켜져서 다음 임신에 대비가 될 것이다. 종의 보존을 위해서 유전자에 짜여넣어져 온 소중한 기능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배설작용은 자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유를 통해서도 같은 일을 하고마는 것이다. 모체의 다이옥신은 모유에 농축되어서 영아는 그것을 먹고 자라난다. 아이들은 출생 전,후로 오염에 휩쓸리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중인 1970년에 미국의 바우맨, 메셀슨 두 박사가 살포지구에 들어가서 베트남 부인의 모유의 오염상황을 조사하였다. 그때에는 평균 484.9ppt, 최고가 1450ppt라는 고농도의 오염을 검출하였다. 그후에 1987년부터 88년에 걸쳐서 베트남의 고엽제조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는 131ppt, 그리고 93년의 발표에서는 평균 10∼20ppt로 서서히 감소하여 오고있다. 더욱이 그 모유를 먹어온 유아들의 생후 일년 이내의 사망 위험율은 작전이 한창일 때인 66∼70년은 140%, 그리고 81∼86년에는 30%로, 20년간에 걸쳐서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유를 먹으면서도 간신히 위험을 빠져나가서 살아남은 유아들만이 성장한다. 만발독성(晩發毒性)이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 한사람 알지 못하는 채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전미해군 총사령관의 베트남 재방문 소규모로 경작된 밭의 저편에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1994년 9월14일, 엘모 줌월트(Elmo R. Zumwalt) 제독은 그 밭의 둑위에서 지평까지 이어지는 초원을 응시하였다. 사이공 서북방 50㎞쯤의 송베성의 한 모서리, 해방전선의 사령부가 있다고하여 전쟁중에는 철저적인 고엽작전의 목표가 되어서 소멸되버린 정글의 자취가 있는 땅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거의 20년의 세월이 경과하고 있었다. 제독은 당시의 베트남파견 미해군총사령관이어서 종종 고엽작전기의 출격을 명하는 입장에도 있었다. 4반세기만에 남베트남의 땅을 밟고 이전의 전장, 그리고 자신이 살포를 명한 고엽제피해지구에 가서 본 것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속을 오갔음이 틀림없다. 옆집에 사는 베트남 농부가 갓난애를 안고 가까이 왔다. 목구멍에 선천성장애가 있는
여자아이였다. 제독은 그 아이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엄마의 하소연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1968년 9월에 줌월트중장은 베트남에 부임했다. 해군중에서도 이례적으러 빠른 출세였고 47세라는 사상 최연소 사령관이었다. 현지의 전황이 극히 치열하던 때의 부임이었다. 부임 2년초(年初)에 사이공의 미대사관은 테드(구정)공세로 해방전선 게릴라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거되었었다. 케산기지의 공방전에서도 미군은 2천5백명의 전사자를 내고 기지를 버렸었다. 제독이 지휘한 것은 남지나해의 경계임무를 띠고 있던 제7함대는 아니었다. 베트남 내륙의 하천과 연안을 패트롤하는 정찰군이었다. PCF라고 불려지던 알미늄제의 쾌속정과 파이버·프라스틱제의 9순시정 PBR가 수로를 따라 메콩델타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철의 사용을 피한 선체는 자기기뢰에 감응하지 않아 기동력이 뛰어났다. 그럼에도 해방게릴라측은 강안의 무성한 수풀에 숨어서 복병으로 맞섰다. 혼자서 어깨에 멜 수 있는 대전차포 B-14 같은 것이 발사되면 미군 순시정은 한발에 격파되었다. 순시정에 탔던 미군의 68년 사상율은 1개월에 6%, 다시말하면 이 임무에 1년간 복무하면 70%이상이 죽던가 부상한다는 상황이었다. 제독의 아들 엘모 줌월트 3세 해군대위는 제독과 똑같은 때에 똑같이 베트남에 종군했다. 사령관의 자식이라면 사령관에 따라붙는 부관이 되는 관례를 거부하고 엘모대위는 최전선에 몸을 두었다. 임무는 쾌속정 PCF로 정찰하는 것이었다. 줌월트제독은 공군에 대해서 대량의 고엽제를 하천을 따라 뿌릴 것을 지시했다. (자신의 자식을 포함하여) 미국군의 사상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강가의 정글과 숲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엽제의 독성에 관한 나의 문의에 대해서 육군과 공군의 참모들은 특별한 해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여 나는 그것을 믿었다. 그러나 고엽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나는 사용했을 것이다.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잃어야 되는 것이 명백하였기 때문이다. 고엽작전의 결과 "베트콩"은 강에 접근할 수 없게 되어 미군의 사상율은 1%이하가 됐다』 사령관은 남베트남·메콩델타의 최남단에 위치하는 가마우 곶을 주목했다. 광대한 망그로브의 정글, 거기는 우밍의 숲과 함께 무장해방 세력의 일대거점이었다. B-52 중폭격기를 사용한 폭격과 네이팜공격에 의해서도 정글은 타지도 않았고 동요도 없었다. 『가마우곶을 베트콩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구아론강가에 있는 나무칸 거리 주변에 진공의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판단한 사령관은 즉시 구체안을 작성하였다. 구아론강에 평평한 철판으로 만든 배를 연결하여 축구경기장만한 수상기지가 건설되었다. 이 거대한 떠있는 섬 "씨 프로트(Sea Float)에는 미해군 특수부대(SEALS)를 비롯하여 200명의 요원이 배치?다. 헤리포드가 있었고 정찰군에 제공하는 보급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구아론의 강폭은 그렇게 넓지가 않았다. 정글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가마우의 숲에 대한 고엽작전이 더욱 강화되었다. 바로 그때쯤, 패트롤 보트의 지휘자로서 종종 "베트콩"측의 총격에도 위험을 돌보지않고 수색토벌의 나날을 거듭하고 있던 엘모 대위는 고엽작전이 실행된 후의 일상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었다. 『수목의 잎은 몽땅 말라죽어 떨어졌고 풀이 깊던 정글은 발가숭이의 작은 가지만이 남았을 정도로 황폐한 땅으로 끝장이 나있었다. 전에 나는 잘도 이런데를 걸어 돌아다녔고 고엽제가 흘러들어온 강이나 운하를 걸어서 거늘기도 하면서 그 물속에서 몸을 씻곤 하였다. 또 가는 곳 마다의 촌락에서 과일과 야채를 사서 먹었는데 그것들도 어쩌면 에이전트 오렌지를 뒤집어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씨 프로트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피부에 발진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햇볕에 타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그후에 고엽제에 폭로되었어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My Father, My Son" : 일역『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들』). 다행히도 부상하는 일 없이 종군기간을 마친 엘모대위는 미국에 돌아왔다. 한편 줌월트사령관은 70년에 대장이 됨과 함께 귀국명령이 떨어져서 해군작전부장에 임명되었다. 닉슨 대통령 휘하에서, 전쟁을 확대하면서도 "미군의 베트남으로부터의 명예로운 철수"가 모색되었다. 1982년, 민간인이 되어있던 아들 엘모에게 이변이 생겼다. 이미 베트남전쟁은 끝났고 줌월트제독도 퇴역한 때였다. 엘모의 겨드랑이 임파절에 결절성저분화(結節性低分化)임파종이 있음이 발견된 것이었다. 85년이 되어서 비호치킨씨임파종에 더하여 서혜부의 임파절에 호치킨씨병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름은 닮았으나 전연 다른 종양인 것이다. 비호치킨씨임파종이 있는데도 호치킨씨병에도 걸린 것은 세계에서도 전례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진기한 케이스였다. 하나의 암에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실시하면 제2의 암이 유발되는 예는 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투약치료도 받지않았는데도 두 번째의 암의 나타난 것이다. 줌월트집안에는 또하나의 근심이 생기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귀환한 엘모는 약혼자였던 캐시와 결혼했는데 77년 3월에 출생한 장남인 럿셀이 학습장애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 살 쯤부터 보이게 된 그것은 선천적인 감각통합기능장애였음이 확인되었다. 엘모의 몸에 생긴 이상한 암, 그리고 아들인 럿셀의 선천장해. 이러한 것들이 정찰산에서의 "고엽제피폭"과 연관되어 불안이 엄습했다. 엘모는 화학요법과 골수이식으로 암과 싸워나갔다. 그러나 발병한지 6년이 되는 88년에 힘이 다했다. 재향군인병원도
그의 죽음을 고엽제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아들과 손자의 몸에 내리닥친 고난을 생각할 때 줌월트제독의 가슴을 조르는 것은 그가 스스로
작전살포를 명한 것이었다. 『자신에 책임이 있다』라는 생각을 끊어버릴수는 없었다. 줌월트제독의 월남에 대한 제안 줌월트제독은 1994년이 되어서 베트남에 갈 것을 결의했다. 이미 퇴역한 한 민간인으로서의 입장이라고는 하나 거기는 일찍이 전지였고 "적지"였다. 물론 호위부대가 붙을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동행한 것은 죽은 아들 엘모대위의 아우 짐과 다이옥신연구의 제1인자라고 일컬어지는 뉴욕주립대학의 아놀드·쉑터 교수였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그때까지도 베트남측의 연구자와 쉑터교수는 비참할 정도의 통계를 세계에 제시하여 왔다. 베트남과 미국과의 국교관계가 회복되기 전이었어도 "베트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는 없다. 베트남과의 공동연구를 가능한 한 지원하여야 한다는 것이 제독의 결론이었다. 일찍이 베트남측은 고엽제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어린아이들에 대한 미국민간단체로부터의 "인도적"원조를 완곡히 거절한 일이 있었다. 사람을 억지로 상처나게 하여놓고 약을 발라주겠다고 하는 투의 행위에 인도성을 인정해야 되는것인가라는 의문을 벗어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년이라는 세월은 어떤 종류의 완고함을 뒤로 밀어넣는다. 베트남은 제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같은 문제와 싸우고 있는 미국의 베트남 재향군인까지 "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전쟁책임의 문제는 선반위에 올려놓은채, 쌍방의 관계를 강화하자는 대응태도를 베트남은 참을성있게 보여주었다. 제독은 하노이에서 레 독 아인 대통령과 만났고 보구엔 잡 장군과도 만났다. 둘 다 월남군의 최고 지휘관이였던 군인이다. 더욱이 호치민시에서의 베트남전쟁을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은 "호치민작전"의 사령관 챤 반 챠 장군과도 만나서 포옹하였다. 이미 퇴역한 제독을 이러한 정상급 장성들과 대면시킨 것은 미국과의 수교를 계획하는 베트남측의 계산된 태도인것이다. 베트남 인민군 남부 총참모본부에 초청되어간 제독은 거기에서 챤 반 챠 장군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소개가 끝나자 제독은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베트남에 파견되어 있던 동안에 당신과 당신측의 사령부를 찾아낼려고 필사적으로 수색했었는데 끝끝내 어디에 있는지 몰랐소. 그때부터 25년이 지나서 오늘 이렇게 간단히 당신이 있는 곳을 알게 될 줄이야…』. 폭소하는 쌍방의 표정에 적과 아군으로서의 거리낌은 어느덧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72세가 된 노제독에 있어서는 지금 고엽제와의 "싸움"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한쪽에서 제독의 발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베트남 귀환병도 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제독은 이러한 발언을 했다. "(만약 또다시 베트남에서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 내가 사령관이라면) 미국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시한번 고엽제의 사용을 명령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정글과 풀섶을 없애는 것으로서 복병의 공격 등에 의한 사상자수를 수천명이나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고엽제때문에 아군에 다소 피해가 난다고 하여도 사용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줌월트 제독의 생각속에는 "고엽제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없다. 상대방의 피해가 얼만큼이나 되었나 하는 관점도 없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에 도무지 꺼림직해 하지도 않는다. 미국에 뿌리깊이 존재하는 『일본에의 원폭투하는 정당했다』는 생각과 공통되는 사고방식이다. 요몇년 제네바에서 계속되어온 새로운 화학무기금지조약에는 고엽제의 사용금지조항도 여러가지가 새로이 담겨졌다.
95년까지 각국이 이것을 비준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 20주년에 해당하는 4월30일에도 비준하지않는 주요국의 하나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다이옥신과 일본인 『베트남의 상황은 확실히 심각합니다. 그러나 다이옥신 오염은 당신네 일본과 같은 선진공업국에서 이제부터 정말 큰 문제가 될것입니다』. 베트남의 N.T.N 후옹 박사는 이미 80년대 초기부터 이렇게 말해왔다. 이러한 발언과 같이 선진공업국에서 오염이 심각화되는 문제는 요 십수년간에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고엽작전이 있었을 턱이 없는데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각국의 다이옥신 오염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주된 오염원은 쓰레기 소각로이며 제지펄프공업이나 화학공업, 금속제련공업, 자동차배기사스 따위였다. 유기염소계 농약도 물론 오염원이었으나 그 이외에도 많은 "범인"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공업국일수록, 쓰레기를 소각하는 나라일수록, 그리고 농약 등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일수록 주민의 오염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사태는 일본에 있어서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극히 적은 다이옥신이 토끼를 죽여버리기도 하고 피부에 염증을 일으킬기도 하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독일의 연구자 슐츠였다. 1956년의 일이었다. 그것이 사람에게 어느정도의 독성효과를 일으키는지는 후에 고엽작전이라는 "인체실험"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었다. 다이옥신은 인류가 아는 모든 독물중에서도 최강의 독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출산이상이나 암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미량오염으로도 여러 가지 질병의 방아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줄거리와 다이옥신의 특성, 질병과의 인과관계가 오늘에는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옥신은 베트남이라고 하는 특수한 곳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 자신을 위협하는 어려운 문제로서 우뚝 솟아오른 것이다. 염화비닐등, 염소가 엉킨 프라스틱이나 방충처리된 목공품, 의료폐기물 따위를 태우면 반응이 일어나서 다이옥신이 생긴다. "태울 수 있는 쓰레기"를 덮어놓고 태워버리고 보자는 처리시스템속에서 일본내에 있는 1천8백41기의 소각로(90년시점)가 밤, 낮 없이 매일 9만5천톤이나 되는 쓰레기를 태우고 있다. 소각로 속에서 생겨 배출되는 다이옥신은 일년간에 6∼22㎏정도가 된다고 계산하고 있다. 남베트남전토에 흩어뿌려진 다이옥신의 총량 1백80㎏에 겨우 8년∼30년으로 따라잡아버리는 양인 것이다. 연기와 함께 굴뚝에서 나온 다이옥신은 눈에 보이지 않은채로 어디라고 할 것없이 내려붓는다. 소각한 재 속의 다이옥신도 여기저기에 재와 함께 매립되는 것이다. 지표의 다이옥신은 비에 씻겨서 강으로 흘러든다. 종이·펄프의 제조공정에서도 표백 등의 염소처리가 있기 때문에 다이옥신을 생성한다. 그것은 보통 종이에도 포함되어있고, 흘려내보는 공업용 폐수에도 혼합돼있다. 그것들이 호소나 주변해역에 괴여서 어패류가 체내에 거둬들인다. 우리들은 그러한 어류를 즐겨 먹는다. 고엽작전에 비하면 오염의 정도는 아주 근소하지만 그것이 매일 계속되고 있고 오염을 피할 수 없는 구조속에 우리들은 살고있다. 만성미량오염이 계속되어서 몸 속의 축적이 늘어나 바야흐로 베트남을 뒤따라가는 오염국은 일본, 독일, 미국등이 되었다. 일반시민의 몸에 얼마만큼의 오염이 있는 것인가. 규슈(九州)의과대학 나가야마(長山淳哉)조교수에 의하면 일본인 성인의 경우 한 사람이 하루에 854피코그램(1피코는 1조분의 1)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 태반은 먹거리에서 거둬들이나 그외에 대기에서 19.8피코그램, 물에서 0.036피코그램이 숨어든다. 또 다이옥신이 축적되기 쉬운 지방조직을 1g 조사해 보았더니 41.9∼54.6피코그램이나 되는 높은 레벨이었다. 후꾸오까현(福岡縣)보건환경연구소의 히라가와씨등은 사고로 죽은 사람을 포함한 36명의 일본인의 지방조직을 조사하여 연령과 함께 축적량이 증가하는 실태를 94년 12월에 발표하고 있다. 그것에 의하면 19세는 35피코그램, 20세는 37.9피코그램, 40세는 48.2피코그램, 60세는 61.4피코그램, 80세는 78.1피코그램, 82세는 88.9피코그램으로 올라갈수록 축적이 증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몸으로부터 조금씩은 배설되고 있지만 지방에 축적되는 것이 더 많기때문에 증가하는 것이다. 그의 계산에 의한 평균은 58.4피코그램이었다. 그것은 발달한 공업국이 대략 평균 30∼45피코그램인것과 비교하면 평균을 넘어선 상태다. 고엽작전을 겪은 남베트남의 65피코그램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말하면 공업지역도 아니고 고엽제의 살포도 없었던 북베느남이나 중국에는 12∼13피코그램으로 극히 낮은 상태다. 문제는 지방뿐만아니라 간장을 비롯하여 타 장기나 혈액도 물론 오염되어 있다. 지금의 다이옥신 농도로도 이미 위험한
양에 달해있다고 간주되는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방분이 많은 모유속에는 모체보다도 더 높은 농도로 다이옥신이 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되어버릴 것인가? 모유 오염 뉴욕주립대의 A. 쉑터 교수에 의하면 베트남의 살포지 다낭의 모친의 모유 샘플에서 35ppt(1ppt는 1조분의 1)의 다이옥신이 발견되는데, 일본과 독일은 27ppt, 캐나다는 26ppt, 미국이 20ppt 였고, 이러한 수치는 사이공의 18ppt를 웃도는 수치였다. 남베트남의 다이옥신은 씻겨내려가고 공기중에서 날아가서, 고엽작전 종료후 25년이나 지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차차 감소되어왔다. 이제는 오히려 "선진"국들의 다이옥신 오염농도가 베트남을 넘어서느냐 아직 못넘어서느냐 하는 수준에 와있는것이다. 공업지역이 아닌 북베트남 하노이에서는 8.5ppt, 타이나 캄보디아에서는 3ppt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선진공업국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고엽작전"속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태인 것이다.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모유는 도대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갓 태어난 갓난 아기는 그것만 먹음으로 생체농축이 어른이상으로 진행된다. 자꾸자꾸 영양을 섭취해서 자라기 시작하는 사람의 몸이, 인생의 출발단계에서 고농도로 오염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세포분열이 진행하면서 신체가 성장하여 갈 때 많은 문제가 생긴다. 옛날에는 그다지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 난치성의 과민증이 주변에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무언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모유는 다이옥신 뿐만아니라 PCBs와 DDT, BHC 따위의 유해한 유기염소화합물 등에도 복합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94년 11월 교토에서 행해진 제14회 국제다이옥신 학회에서 『오염된 모유가 아이들의 생식기관에 장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보고자는 캐나다 라발대학의 G.캐리야교수 등이었다. 세계의 제일선에서 다이옥신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연구자들은 매년 1회, 각국 차례로 여는 국제학회에서 최신의 연구를 발표한다. 일본에서는 86년에 후꾸오까(福岡), 그리고 94년에는 쿄토(京都)에서 개최되었었다. 캐리야교수는 이누잇트의 여성 1백5명의 모유를 조사하여 유아가 하루에 섭취하는 양은 2,3,7,8-사염화다이옥신으로 환산하여 체중 1㎏ 당 226피코그램에 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미국의 환경보호국(EPA)이 94년에 낸 섭취허용량 0.01피코그램과 비교하면 2만2천6백배라는 양이었다. 그결과 체내의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분량은 1g 당 100피코그램을 초과하는 셈이다. 원숭이나 쥐를 사용한 실험에서 그만한 오염은 생식기관에 암을 일으키는 수준이고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누잇트의 여성에게서 조사한 것은 고래나 바다표범이라고 하는 고농도로 다이옥신에 오염된 동물을 먹는 일이 있어서 그 분량만큼 인체오염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고기의 오염수준은 해수,담수를 막론하고 높았으며 물고기를 생식하는 민족의 오염은 심각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경고(분석)가 벌써 EPA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에 문제가 되는 곳이 일본인 것이다. 아이엔(愛媛)대학의 마쯔다(松田宗明)선생은 『일본인의 다이옥신 오염의 6할은 물고기를 먹는 일로부터 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물고기를 피하고 육식을 하기로 하자"라고 생각하여도 별로 의미는 없다. A. 쉑터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유럽과 미국의 경우 오염의 태반은 육식에서 온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담백원을 육식에서 대두(大豆)로 바꿔치기 하여도 역시 쓸데없는 노릇이다. 예를들어 다이옥신의 수준은 낮을지라도 거의다 수입대두이므로 때로 검출되고 있는 리뉴론(발암성이 있는 제초제)이나 살충제 마라치온, 클로로포스로러스메칠 따위를 체내에 흡수할 확률이 높아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미 수입식품도 국내의 식품도 많이 오염되어 있어서 먹거리를 고르는 것으로 다이옥신오염을 회피해 보려는 것은 극히 힘들다. 이렇게되어 일본여성의 경우 모유는 오염되어서 갓난아이에게 주어지고 있다. 나가야마(長山)조교수에 의하면 모유를 먹고있는 일본의 갓난아이는 하루에 체중 1㎏ 당 70∼340피코그램, 평균 180피코그램의 다이옥신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결정한 섭취허용량 1∼5피코그램의 36∼180배의 양인 것이다. 앞서 이누잇트의 유아에서 조사된 오염수준과도 커다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유아의 체내축적은 모유먹기를 그치는 시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여 20세쯤 되면 일단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먹거리로부터의 섭취가 계속되기 때문에 다시 늘어나서 50∼100피코그램 정도의 오염이 지속되면서 생애에 걸쳐 축적된다고 캐리아교수는 계측하고 있다. 어떻든간에 유아기의 오염이 무엇을 일으키는지는 금후에도 많은 연구가 나올것임이 틀림없다. 네덜랜드의 연구자들은 모유로 자라는 신생아에 갑상선 홀몬의 이상이 나타나는 것을 이미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갓난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지말고 인공유만으로 기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에서도 나올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우유의 다이옥신오염도는 모유의 10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인간의 20년정도 쌓은 오염의 일부를 단시일의 수유로 자식에게 먹여버리는 것과 달라서 젓소는 목숨이 다할때까지 젓을 매일 계속하여 짜내기 때문에 오염이 덜 되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아에게 가장 우수한 영양물질인 모유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병에 대한 면역과 저항력을 계승하는 것을 포함하여 우유와의 차이는 크다고 한다. 포유동물답게 사람의 자식에게는 모유, 소의 새끼에게는 우유가 이상적인 먹거리라는 것이다. 다이옥신 오염을 면하고 싶다는 관점만으로 기타의 이점을 모두 버리고 말겠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지금의 오염도가 유아에 대해서 "참고 먹이세요"라고말해도 좋은 것인지 말려야되는 위험한 레벨인지 판단이 안되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일본에서의 연구나 데이터는 아직도 너무나 적다. 다이옥신 연구에 관해서는 좀더 윤택한 예산배분이 있고난 다음에 나무랄 일이다. 그리고 오염식물을 피하는 것도
어려운 우리들 일반시민으로서는 다이옥신의 배출원(排出源)에만은 눈을 돌려서 오염의 근원부터 잘라버리는데에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탈출구는 없는 것
같다. 면역과 생식계에 대한 장애 미국은 많은 베트남 재향군인이 직면했던 문제를 일반시민의 건강에도 관계되는 과제로 여기고 많은 연구를 해왔다. 방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견실한 방법의 기초연구가 10년, 20년간 계속되어 온것이다. 논의와 검증이 되풀이 되어서 94년에는 드디어 "종합적인 결과"가 나왔다. 미국환경청(EPA)이 9월에 발표한 『다이옥신의 영향에 관한 재평가』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가 제기한 바는 중대한 것이었다. 다이옥신의 규제를 생각할 때 이제까지는 발암과의 관계가 기준이었다. 발암성은 물론 문제이나 그 이상으로, 요컨대 암을 일으키는 것 보다 훨씬 적은 양이라도 다양한 장애와 질병을 일으키는 독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생식기능장해와 면역부전(免疫不全), 발육장해, 홀몬부전증등 인간의 병에 대한 저항력이나 종의 보존에 관계되는 것에 대한 영향이 현저하다는 것도 명백히 밝혀졌다. 발암성이 있음과 동시에 면역력도 잃어버린다면 발암을 촉진할 수밖에 없게된다. 감염증에도 약하고 생식계의 발달에 불완전한 일이 벌어지면 사람은 다이옥신 오염과 더불어 멸망에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다이옥신 오염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엄격한 규제를 하지않으면 안되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성의 정자의 양이 최근 50년간에 반감해버렸다는 보고도 벌써 나와있다. 덴마크의 N. 샷케베크교수등은 각국의 1만5천명의 남성정자를 조사하여 1940년에 실시했던 같은 조사와 비교하여 정자밀도도 정액양도 절반이 되었고 "생식곤란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교수는 PCBs등 환경중의 유독물의 증가가 그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이옥신이 미량인 경우, 어떤 일정 수준까지는 독성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역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논의도 최근 수년간 계속되어왔다. 『역치가 있다』라는 가설에 대한 연구는 산업계의 기대가 걸려있었다. 역치가 있다면 거기까지의 오염은 허용된다는 것으로 되어서 다이옥신의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경비지출을 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으로 끝났다. 환경청(EPA)의 결론은 역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조금이라도 유해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되며, 오염은 제로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것이다. 미국의
식품의약국(EDA)이 내놓은 일일섭취허용량은 0.06피코그램이며, EPA도 94년에는 0.01피코그램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EPA가 전부터
제기하고 있는 안전기준량은 체중 1㎏ 당 0.006피코그램(0.0000000000006g)이다. 이 기준에 적용시키면 미국인의 거의다가 벌써
그것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된다. EPA의 L. 밴바움교수는 『그러면 그럴수록 기준이 소중』하다고 했다. 격심한 오염의 실태에 질질 끌려가서
허용치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할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자는 자세인 것이다. 다이옥신 배출원에 대한 엄한 규제도 이러한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다이옥신"에 대한 대책이 없는 일본 『다이옥신의 인체에의 영향에 관한 보고는 없었다』는 것이 일본 후생성의 견해이다. 다이옥신 문제에 대한 기본대응방침이 이것이다. 이런 자세를 십여년간 지속해 온것이다. 건강위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이옥신은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근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다이옥신에 대해 유해지정도 되어있지 않고 방치된 그대로라고 해야 좋을 상황에 있다. 다이옥신에는 75종류의 이성체(異性體)가 있고 그 외에 135종류의 퓨란과, 209종의 PCBs가 있는데 이것들을 통칭해서 흔히 다이옥신이라 부른다. 각기 극독(劇毒)이기는 하나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이 2,3,7,8-사염화다이옥신(TCDD)로, 이와 비교하여 독성이 2분의 1부터 1천분의 1까지로 그 독성강도는 다양하다.(역자주: 모든 다이옥신이 높은 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이옥신 75종 중 7종만이, 135가지 퓨란중 10종만이, PCBs 209가지중 11종만이 다이옥신 유사 독성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이옥신이라는 용어를 쓸때는 이들 28가지를 모두 포함해서 다이옥신이라부른다.) 한 시료에 여러종류의 다이옥신이 혼합되어 있을경우 독성정도는 2,3,7,8-TCDD를 기준으로하여 독성을 환산하고 각각을 모두 합한 것으로 독성을 정하는데 독성당량(TEQ)을 기본단위로 표기한다. 허용량이 몇 피코그램이라 할 경우, 그것은 2,3,7,8-TCDD를 기준하여 비교한 용량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의 허용량은 어느정도인가, 놀라웁게도 일본은 허용섭취량조차 정하고있지 않는 것이다. 먹거리가 어느정도 오염되어 있어도 문제가 안된다는 상태인 것이다. 허용치는 아니지만 우선의 지침이 되는 『평가지침서(잠정기준치)』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체중 1㎏ 당 하루에 100피코그램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기준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다이옥신 오염의 문제가 일어날때마다 이것을 기준으로 안전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일반시민의 오염이 하루에 40피코그램을 넘어선 상황인데도 『이 수준의 오염으로는 (100피코 이하이니까) 인체에 위험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는식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제국이 정하고 있는 1일 섭취허용량은 1∼10피코그램의 사이다. 여기에 비한다면 100피코그램이라는 일본의 기준치는 10배에서 100배나 느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EPA의 0.01피코그램은 일본 기준보다 일만배나 엄격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사람들보다 1천배나 1만배의 오염을 받아도 일본사람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일본인 성인(체중 60㎏)이 하루동안 몸에 섭취하는것은 평균량 854피코그램을 체중 1㎏으로 치면 14.2피코그램. 이것을 1피코그램이라는 유럽과 동등한 기준으로 본다면 허용기준을 14.2배나 초과한다는 사실이 된다. 미국의 기준이라면 1420배나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100피코그램이라는 기준에 아직까지 도달하지 않았으니까 안전하다는 논리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수치를 사용한 속임수와 같은 것이다. 잠정기준치는 84년에 정한 이래 10년이상 변하지 않은 채로 있다. 이렇다면 "잠정"이 아니라 "결정"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제적 상식과는 너무나도 차가 큰 것이다. 역시 100피코그램이라는 터무니없는 수치를 그대로 놔두는 편이 오염방지의 경비를 들이지 않고 우물적 때우는 그만큼 산업계는 즐겁고, 세간에서는 위험을 깨닿지 못하니 소동이 안일어나 좋다하는 식의 사고방식이었을까. 다이옥신을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소각로에 대해서도 일본에는 규제치가 없다. 가이드라인이라고 부르는 "목표"치만이 나와있어서 신설로라면 배연(排煙) 1입방m 당 500피코그램으로 되어있다. 그것도 유럽의 100피코그램이라는 규제치보다 5배나 느슨하다. 그외에도 일본의 경우는 규제치가 아니므로 법적구속력이 없다. "목표치"의 몇백배나 되는 다이옥신을 내뿜고있는 소각로는 각지에 얼마든지 있으나 규제도 안되고 쉬는일도 없이 운전을 계속하고 있다. |